심야시간에 서울을 돌아다니고 있을 때였어요. 수유역에 있는 24시간 카페 두 곳을 간 후 다음에 갈 곳은 멀리 새절역에 있는 24시간 카페였어요. 수유역에서 새절역까지 심야시간에 대중교통으로 바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어요. 수유역에서는 심야버스 N15번, N16번이 있어요. 이 두 버스 모두 새절역은 고사하고 홍대입구역까지도 안 가요. 홍대입구역과는 아예 다른 방향으로 가요.
심야시간에 수유역에서 홍대입구역까지 심야버스를 타고 가는 방법은 종로로 가서 N26번 심야버스를 타는 방법이 있었어요. N26번 버스는 김포공항 김포발 제주행 첫 비행기 탈 때 이용하면 매우 좋은 버스에요. 과거에 심야시간에 서울 24시간 카페를 찾으러 돌아다닐 때도 N26번 버스를 이용해본 적 있었어요. N15, N16번 버스도 이용해봤구요. 그래서 방법은 알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심야버스는 배차 간격이 매우 길어요. 게다가 슬슬 심야버스 막차가 출발할 때가 되어가고 있었어요. 여름이라면 사실상 포기해야 할 때였어요. 여름에는 새벽 5시면 동이 터서 제 아무리 이른 시각이라 해도 아주 훤해요. 하지만 이때는 11월 2일 새벽이었어요. 동지까지 한달 반 남아서 나날이 밤이 길어지고 있었어요. 아침 6시 30분까지는 어둑어둑했어요.
'아무 거나 오는 대로 타고 새절역까지 걸어서 가야겠다.'
새벽 3시 25분에 수유역에 있는 24시간 카페인 엔제리너스 수유역점에서 나왔어요. 이제 N15번이든 N16번이든 오는 대로 타고 종로쪽으로 이동해야 했어요. 아무 거나 오는 대로 타고 이동한 후에 최대한 종각 근처에서 내려서 거기에서부터 새절역까지 걸어가기로 했어요. 거리가 꽤 있기는 하지만 못 걸어갈 거리는 아니었고, 부지런히 걷는다면 어둠이 내리깔린 시간에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어요.
제가 타고 싶었던 버스는 N15번이었어요. 그런데 N15번 버스는 제가 카페에서 나오기 몇 분 전에 이미 수유역을 지나가버렸어요. 이제 곧 올 버스는 N16번 버스였어요. N16번 버스는 명동 뒷편인 퇴계로로 가요. N16번 버스를 타면 퇴계로 쪽 명동에서 내려서 명동을 가로질러서 가서 청계천을 따라 가다가 광화문으로 가야 했어요. 그래도 이 정도면 수유역에서 답없이 걷는 것보다 훨씬 나았어요. 지하철 노선도로 보면 수유역에서 종로까지 얼마 안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거리는 수유역에서 종로는 고사하고 미아역까지도 꽤 멀어요.
N15번 버스를 타고 명동으로 갔어요. 이제 열심히 걷는 일만 남았어요. 명동을 가로질러서 가다가 중국 대사관이 나오자 여기에서 큰 길로 나갔어요. 주한 중국 대사관에서 방향을 틀어서 큰 길로 나가면 포스트타워가 나와요. 포스트타워에서 길 건너 한쪽에는 한국은행이 있어요. 그리고 길 건너 다른 한쪽으로는 신세계백화점 본점이 있고, 그 너머에는 남대문 시장이 있어요.
'지금 남대문 야시장은 가봐야 아무 것도 없겠지?'
남대문 야시장은 원래 가봐야 별 거 없어요. 예전에는 남대문 야시장 규모가 엄청나게 컸어요. 그렇지만 패션이 동대문 상권으로 완전히 넘어가면서 남대문 야시장은 엄청나게 쪼그라들었어요. 패션이 동대문 상권으로 완전히 넘어가면서 명동도 덩달아서 아무 특색 없이 유명하니까 가는 곳으로 전락해버렸구요. 패션을 동대문에 완전히 넘겨준 남대문 시장은 이제 예전 명성을 다 잃어버렸어요. 남대문 시장에는 지금도 야시장이 열리기는 해요. 하지만 규모가 엄청나게 작아요. 직접 가서 보면 실망할 정도에요.
가뜩이나 시간에 쫓기는데 남대문 야시장까지 갈 시간은 없었어요. 가도 볼 것도 없었기 때문에 빨리 광화문으로 가기로 했어요. 여기는 워낙 잘 아는 길이라서 주변을 둘러보고 신경쓰지 않고 오직 길만 보며 걷고 있었어요.
서울중앙우체국 건물인 포스트타워가 눈에 들어왔어요. 빨간 조명이 포스트타워 유리벽에 반사되어 비치고 있었어요.
"신세계 크리스마스 조명 설치했네?"
그제서야 서울 명동 신세계백화점 본점을 향해 고개를 돌렸어요.
서울 명동 신세계백화점 본점 외관 크리스마스 전구 조명 야경이 설치되어 있었어요.
"올해는 매우 수수하네."
서울 명동 신세계백화점 본점 외관 크리스마스 전구 조명 야경은 매우 수수했어요. 예전에는 엄청 화려했었어요. 그러나 올해는 1년 내내 사회적 거리두기에 두들겨 맞아서 많이 힘든지 조명도 매우 수수하게 해놨어요. 그저 색만 변할 뿐이었어요.
서울 명동 신세계백화점 본점 외관 크리스마스 전구 조명 야경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어요. 아랫쪽은 건물 벽면을 따라 설치되어 있었어요. 흥미로운 것은 건물 윗부분이었어요.
건물 윗부분 크리스마스 전구 조명은 반달을 눕힌 모양이었어요. SPC삼립 기업 마크가 반달 눕힌 모양이에요. 그래서 처음 저거 보고 뭔 SPC삼립과의 콜라보레이션인가 했어요. 그런데 다시 보자 한옥 기와 막새처럼 생겼어요. 나름대로 한옥 느낌 조명으로 만들어놨어요. 물론 한옥을 모티브로 했다기 보다는 파티 리본을 모티브로 저렇게 했겠지만 한옥 기와를 떠올리게 하기도 했어요.
잠시 서서 서울 명동 신세계백화점 본점 외관 크리스마스 램프 조명 야경을 보다 갑자기 웃음이 터져나왔어요.
'신세계는 지금 이 바득바득 갈고 있을 거야.'
요즘 대기업 회장님들의 SNS 마케팅이 주목받고 있어요. 여기에서 단연 투톱은 SK 최태원 회장과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이에요. SK 최태원 회장과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 모두 SNS를 참 즐기시고 있는데 보면 스타일이 아주 달라요. 평가하자면 SK 최태원 회장은 끼는 그렇게 없어 보여요. 반면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은 진짜 혈액 속에 '관종 혈구'가 돌아다니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끼와 재능 자체가 있어요.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이 SNS로 이슈를 만들고 운영하는 능력이 SK 최태원 회장보다 훨씬 앞서는 것은 당연해요. 기본적으로 끼와 재능 자체에서 차이가 크게 날 뿐더러, 신세계는 유통업체에요. 유통은 물건을 좋은 가격에 확보하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마케팅도 중요해요. 저가에 매수해봐야 저가에 팔면 마진이 얼마 안 남아요. 저가에 매수해서 고가에 팔아야 마진이 크게 남죠. 그래서 유통업체는 마케팅 능력이 엄청나게 중요해요.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야 하는데 여기에서 비싸게 팔기 위해 포장하는 능력이 마케팅이니까요. 그러니 재능 뿐만 아니라 일 자체가 그런 쪽이니 당연한 거에요.
좌파, 시민단체 때문에 가장 큰 피해 본 기업이라면 독보적으로 신세계일 거에요. 재래시장 살리자며 이마트 24시간 영업도 금지하고 일요일 영업도 금지시켰어요. 여기에 그놈의 재래시장 상권 살리기 때문에 신사업 진출도 항상 막혔어요. 그래서 영역 확장은 고사하고 눈 뜨고 파이 다 뜯기고 빼앗기는 것을 멀뚱멀뚱 구경만 해야 했어요. 당연히 속으로 분통 터지겠죠. 신세계가 좌파, 시민단체들에게 당하고 태클당한 게 한둘이 아니에요. 뉴스 보면 아주 수두룩해요. 신세계가 뭐만 해보려고 하면 재래시장이 어쩌구 골목상권이 어쩌구 하며 좌파, 시민단체들이 난리쳐대었어요.
좌파, 시민단체 선동에 얻어터진 것만으로 따지면 롯데가 신세계보다 훨씬 더 엄청 얻어터졌어요. 그런데 롯데는 종합그룹이에요. 롯데가 무슨 롯데마트, 롯데백화점에 껌팔이 과자 팔이 아이스크림 팔이 정도라고 아는 사람들이 의외로 엄청나게 많아요. 그런데 롯데는 건설도 있고 화학도 있어요. 롯데는 종합 그룹이라 사업 분야가 엄청 많아요. 그래서 수시로 얻어맞지만 그 피해는 롯데그룹 전체로 보면 일부에 제한되요. 반면 신세계는 유통 전문 기업이라 한 번 트집잡히고 얻어터지면 그게 전체적인 피해에요.
신세계 입장에서 본다면 지금까지 학교에 가지도 못 하게 하고 책도 다 빼앗아놓고 수능시험 쳐서 성적 나쁘니까 왜 성적이 나쁘냐고 혼나는 기분일 거에요. 그런 맥락에서 보면 오만 것에 미안하고 고맙다고 한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의 SNS도 충분히 이해 가능해요. 그동안 얼마나 속으로 부글부글 끓었겠어요. 과거와 상황이 바뀌어서 이제는 그런 정용진 부회장의 SNS에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열광하며 좋아하고 있어요.
이런 게 떠올라서 웃었어요.
'그래도 올해 많이 어려운가?'
예전에 비해 신세계백화점 본점 크리스마스 조명은 매우 수수했어요.
'내년에는 다시 예전처럼 화려한 조명으로 바뀔 건가?'
올해는 화려한 조명이 가득한 크리스마스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거에요. 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재건될 거고, 그러면 화려한 크리스마스 조명 가득한 서울의 밤거리를 볼 수 있을 거에요. 그게 내년이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