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해야 했던 숙제 (2012)

해야 했던 숙제 - 20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일반 구역 탐험 01

좀좀이 2012. 11. 5.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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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12년 9월 26일, 부하라 2일차. 그리고 우르겐치행 밤 기차 타야 하는 날. 눈을 뜨니 아침 7시. 여행중 이동이 많으니 저절로 아침형 인간이 되었어요. 평소에는 울리든 말든 신경도 안 쓰는 핸드폰 알람을 듣고 잠에서 바로 깨어났으니까요.


일어나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갔어요. 아직도 속이 안 좋은 건가? 다행히 전날보다 많이 좋아졌어요. 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다시 잠깐 생각해 보았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종종 먹으러 가던 타슈켄트 초르수 바자르에 있는  케밥집서 먹은 케밥이 문제였던 거 같았어요. 하지만 심증만 있을 뿐. 그 외에도 속이 안 좋아질 이유가 몇 개 더 있었어요. 어쨌든 다 나은 건 아니지만 하루만에 많이 좋아졌어요.


체크아웃 시각은 12시. 전날 아침을 8시 반에서 9시에 먹겠다고 말했어요. 아침을 먹고 관광지가 아닌 일반 구역 좀 돌아다니고 와서 12시에 짐 찾아 외곽으로 나갈까? 이것도 나쁜 생각은 아니었어요. 무겁지는 않았지만 가방을 메고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맨몸으로 돌아다니는 것이 훨씬 편했으니까요. 일반 구역이라고 해서 관광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었어요. 여행자들이 가는 길 바로 옆은 전부 개발이 안 되어 있고 옛날 모습을 가진 일반 구역이었거든요. 굳이 '일반 구역'이라고 한 이유는 관광지로 잘 개발된 곳도 '구시가지'의 일부였기 때문이에요. 같은 구시가지인데 Baxovuddin Nakshbandi 거리와 Xoja Nurobod 거리 및 그 사이 지역만 관광지로 개발이 되어 있었고 나머지 지역은 하나도 관광지로 개발이 되어 있지 않았어요. 관광지로 개발이 된 길에서 한 발짝만 벗어나면 개발이 안 된 옛날 모습 그대로라서 이것을 표현할 마땅한 방법이 없었어요. 멀리 외곽으로 걸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주요 관광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을 돌아다닐 생각이었기 때문에 2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았어요.


샤워하러 숙소 정문으로 갔어요.


'어제 일정을 잘못 짰어.'


샤워를 하며 드는 생각은 어제 동선을 잘못 짰다는 것이었어요. 어제 부하라에서 관광객들이 대충 보고 갈 때 가는 길을 다 걸었어요. 그래서 이 길은 갈 필요가 없었어요. 어제 그렇게 본 덕분에 오늘은 전부 외곽으로만 돌아야 했어요. 남쪽으로는 보보이 포라두즈 묘소 Poboyi Poraduz Maqbarasi와 부하라 성벽 (이하 남벽), 서쪽으로는 사모니 공원과 부하라 성벽 (이하 서벽), 북쪽으로는 시토라이 모히 코사, 동쪽으로는 바카웃딘 낙쉬반드 묘소를 가야 했어요. 이 네 개가 전부 부하라 외곽에 위치해 있었어요. 남벽을 보고 거기에서 서벽으로 간 후, 서벽에서 마슈르트카나 택시를 타고 시토라이 모히 코사를 간 후, 거기에서 바카웃딘 낙쉬반드 묘소를 거쳐 기차역으로 가는 일정이 남아 있었어요. 일단 이론상으로는 가능했어요. 문제는 이건 어디까지나 지도를 보았을 때 - 즉 이론상 그렇다는 것이었어요. 전날 볼로 하우즈 모스크를 버렸어야 했어요. 볼로 하우즈 모스크를 갈 게 아니라 시토라이 모히 코사를 먼저 본 후, 관광을 시작해서 한쪽 끝은 끝내놓아야 했어요. 하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


"오늘 죽어라고 걸어다녀야겠네."


샤워를 마치고 나오며 중얼거렸어요. 부하라가 규모가 큰 도시인데다 딱 네 지점만 찍고 나갈 수 있을 정도로 볼 것이 없을지 의문이었어요. 정말 오늘 갈 계획이었던 네 지점이 최악으로 볼 게 없지 않는 한, 정확히 네 지점을 차량 이동하게 될 확률은 적었어요. 더욱이 전날 살짝 일반 구역을 돌아다녀본 결과, 일반 구역이라고 무시할 것은 아니었어요. 아침에 잠깐 숙소 찾겠다고 일반 구역을 헤매고 돌아다녔을 때 본 유적도 몇 개 되었거든요. 대충 휙 둘러보고 상태 안 좋다고 무시할 곳이 절대 아니었어요. 만약 일반 구역을 제대로 안 돌아다니고 그냥 관광지로 개발된 구역만 보고 간다면 금괴 파내겠다고 금맥은 다 버려버리는 꼴.


샤워용품을 방에 가져다놓고 주머니에 칫솔과 치약을 집어넣고 밥을 먹으러 갔어요.


"우와! 계란후라이가 두 개야!"


어제와 똑같은 밥상이었어요. 차이라면 계란 후라이가 두 개 나왔다는 것. 별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계란 후라이 1개와 2개의 차이는 매우 컸어요. 계란 후라이 2개를 보고 좋아하는 자신을 보며 예전 한국에 있을 때 동대문에 있는 우즈베키스탄 식당에 가던 때가 생각났어요. 그 식당의 최대 미스테리는 바로 계란 후라이. 왜 계란 후라이를 그렇게 몇천원에 팔았는지 모두가 궁금해했어요. 가격에 속아서 계란 후라이를 시켜본 사람들도 있었는데, 한결같이 시식후기가 정말로 그냥 계란 후라이라고 했어요. 그 생각이 나서 계란 후라이 1개와 2개 차이가 더욱 크게 느껴졌어요. 우즈베키스탄이라고 계란값이 특별히 비싼 것은 아닌데 그 식당은 대체 왜 계란 후라이를 그 가격에 팔았을까요?


아침을 먹고 바로 양치하러 갔어요. 양치를 하고 방으로 돌아와 짐을 꾸렸어요.


"오늘은 힘들 거 각오해!"


저 자신에게 오늘 힘들 거라고 말하며 긴장을 시켰어요. 부하라에 또 오고 싶지만 여기는 타슈켄트에서 쉽게 올 수 있는 도시는 아니에요. 게다가 겨울에는 정말 아름다움이 푹 깎여버리구요. 그런데 이제 다시 여행을 할 수 있는 날은 겨울이 되어야 와요. 겨울에 중앙아시아 그 어디든 여행을 가고 싶지는 않았어요. 이미 2월에 와서 구 소련 지역의 겨울은 어떤지 충분히 잘 배웠거든요.


바로 출발하고 싶었지만 일단 참고 방에서 조금 쉬었어요. 전날 설사 때문에 고생을 했기 때문에 혹시 신호가 급히 올 수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아침을 먹고 속이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 조금 더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침대에 앉아 쉬었어요.


아침 10시. 드디어 방에서 나왔어요.


"안녕히계세요."



부하라 라비하우즈


오늘도 시작은 바로 라비 하브즈. 그러나 오늘은 라비 하브즈 쪽이 아니라 그 정반대쪽을 다니는 날. 이쪽은 지도도 제대로 안 나와 있는 지역이라 그냥 감으로 돌아다녀야 했어요. 대충 방향을 믿고 남서쪽으로 돌아다니다 서벽을 보러 갈 생각이었어요. 남벽쪽도 보러 갈까 했지만 그렇게 다 돌기에는 거리도 가깝지 않고 제 배를 믿을 수 없었어요.


부하라_유태인_시나고그


시작은 가볍게 유대인 교회부터. 이것은 전날 본 유적이에요. 이 유대인 교회는 16~19세기 유적으로 지금도 유대인 교회로 사용되고 있는 곳이에요. 부하라에는 주로 타지크인들이 살지만 유대인들도 아주 정말 조금 명맥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해요. 이제 거의 사라지기 직전이지만요.



내부는 이렇게 생겼어요. 히브리어와 다윗의 별이 없다면 그냥 평범한 건물. 안을 조금 더 자세히 둘러보고 싶었지만 안에서는 무슨 수업이 진행되는 것 같았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 시나고그를 보았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놀라운 일. 정말 집시와 유대인은 세계 곳곳에 퍼져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어요.


다시 길을 걸었어요.



너무 낡아서 다시 짓는 집.



전날 밤에 불이 너무 없어서 걸어다닐 엄두도 못 냈던 길이었어요. 하지만 낮에 보면 꽤 정이 가고 걷고 싶어지는 길.




거리에서 자전거를 고치는 사람들. 날이 풀리니, 그리고 지방으로 내려오니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종종 보였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 자전거는 정말 날이 따뜻해져야 타고 다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4월까지 타슈켄트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을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5월부터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고, 6월부터는 보기 어려운 정도까지는 아닐 정도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간간이 보였어요.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사진 속 보이는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아 보이는 낡고 허름한 건물도 유적이라는 것. 정확히 무슨 유적인지는 모르겠어요. 저도 원래 사진을 찍을 때에는 자전거 수리하는 것을 찍은 것이지, 유적을 찍은 것이 아니었거든요. 나중에 사진을 넘겨보다가 저것도 유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 정도로 이 골목길은 매우 흥미로운 곳.



어디에서 어떤 유적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길이었지만 정말 평화롭고 평범한 사람들 사는 길이었어요. 그냥 사람들이 사는 그런 동네. 그리고 이쪽에는 관광객도 보이지 않았어요. 관광객으로 돌아다니는 것은 오직 저 혼자였어요. 가끔 사람들이 저를 '왜 관광객이 여기에서 돌아다니지?'라는 눈빛으로 바라보기도 했지만, 대부분 그냥 지나가는 행인 정도로 여기고 관심도 가지지 않았어요.



골목길을 계속 걸어갔어요. 방향은 대충 서쪽으로 간다는 느낌으로 잡았어요. 서쪽으로 적당히 걸어가다가 미노라이 칼론이 보이면 그쪽으로 방향을 틀어 빠져나갈 생각이었거든요.









길을 걸으며 든 궁금함이 하나 있었어요. 이것은 아직까지도 풀지 못한 질문. 이 궁금함은 바로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2층을 지었을까?'였어요. 우리나라 전통 가옥에서 2층을 짓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우즈베키스탄만 해도 전통 가옥 중 2층이 있는 집도 많아요. 나무를 짜맞추어 2층을 지으면 될 거 같기야 하지만, 나무도 많이 들 뿐만 아니라 2층을 지으면 2층의 무게는 어떻게 버틸까요? 그리고 나무가 썩으면 2층이 무너지지 않을까요? 볼 때마다 2층을 어떻게 짓는지 궁금했어요.



이것은 나중에 혹시 환상 소설을 쓰게 된다면 참고 자료로 쓰기 좋게 생긴 모습이었어요. 가끔 옛날 마을은 어떻게 생겼을까 혼자 상상할 때, 상하수도 시설은 어떻게 처리했는지 궁금해질 때가 많거든요. 요즘이야 음식물 쓰레기도 그냥 잘 버리면 되고, 더러운 물이야 하수구와 화장실에서 처리하면 되지만 과연 옛날에는 어떻게 했을까요? 그리고 한 마을이 전부 우물에서 물을 길어서 살아야한다면 도시가 어디까지 커질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에 대한 조그만 대답을 주는 모습이었어요.



내가 지금 인터넷이 날아다니는 21세기에 살고 있는 거 맞을까?


물론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인터넷이 날아다닌다는 표현을 쓰기 어려워요. 매일 툭하면 끊기기 일쑤인 인터넷. 그 인터넷을 테더링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더 느리고 더 잘 끊기는 환경 속에서 살고 있어요. 그래도 인터넷이 되는 21세기에 살고 있는 것은 맞아요. 그런데 이 가로등을 보니 제가 과연 21세기의 길을 걷고 있는지 궁금해졌어요. 이런 것은 왠지 20세기의 유물처럼 보였거든요.



멀리 유적이 보였어요. 멀리서 보자마자 보존 상태가 매우 안 좋다는 것이 딱 보였어요. 이 길에서 잠자고 있는 다른 유적들과 마찬가지로 저기도 아직 방치된 유적.



"저기 가보아야겠다."


꽤 괜찮은 보석 원석을 찾은 기분이었어요. 보석도 원석 상태에서는 그냥 돌멩이. 가공을 해야 찬란한 빛을 발하는 보석이 되는 것처럼 저 유적도 관리를 잘 하고 보수를 하고 복원을 하면 꽤 괜찮은 곳으로 알려졌을 거에요. 하지만 아직 여기에 있는 유적까지 전부 신경쓸 여력은 없어 보였어요. 그 이유가 돈이 없어서이든, 전문가가 부족해서이든, 둘 다 해당되든 간에요.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은 부하라가 우즈베키스탄에서 매우 중요한 도시이자 돈이 많은 지역이라 돈이 없어서 방치중이라고 한다면 발끈하지만, 사실은 사실인 걸요. 문화재 보수가 돈 한 두 푼 들어가는 일도 아니고, 굳이 문화재 보수를 제외한다 쳐도 우즈베키스탄은 구소련 시절에 지어진 각종 사회 제반 시설을 보수하고 다시 짓기 위해 정신 없는 나라에요. 좋게 이야기하자면 단지 가난해서라고 하기 보다는 당장 사회 제반 시설이 낙후되어서 이것을 손대는 게 더 시급한 문제라고 할 수 있겠죠. 사실 우리나라도 옛날에는 마찬가지였구요.



유적을 찾아가는데 다른 유적이 보였어요.


"이 길 끝이 미노라이 칼론과 이어지는 건가?"


멀리 보이는 거대한 유적이 부하라 관광 지역에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이렇게 생각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어요. 왜냐하면 관광 지구에서 한 발짝만 벗어나면 전부 지금 제가 걷고 있는 거리와 비슷한 거리였거든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구한 부하라 지도를 보면 지도에 표시된 마드라사만 21개, 모스크 24개에 여러 개가 모여 있는 복합체만 8개. 이것을 다 보려면 정말로 3일이 필요했어요. 이유는 관광 지구 밖에 있는 것도 많은데 길이 다 이래서 지도를 정말 잘 보는 사람이 아닌 이상 지도 한 장 믿고 찾아가기에는 어려움이 있었거든요. 게다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부하라가 작은 지역도 아니구요.



일단 멀리 유적이 보였기 때문에 길을 물어서 가지는 않았어요. 유적이 있는 방향으로 잘 걸어가면 되었어요. 높은 건물이 없어서 유적이 잘 보여서 이렇게 다녀도 크게 어려운 것은 없었어요.


유적을 향해 걸어가는데 다른 유적이 나왔어요.


Husayni Madrasasi


이곳은 18세기에 지어진 후세이니 마드라사 Husayni Madrasasi. 문이 잠겨 있지 않아서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보았어요.



"헐..."



이 정도로 방치되다니 할 말이 없었어요. 이곳이 과거 마드라사였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은 오직 입구 밖에 없었어요. 내부는 이미 일반 가정집처럼 변해 있었어요. 그나마도 제대로 관리가 되는 집이 아니라 버려진 집처럼 보였어요.



누군가 문을 열고 닫았었을 것 같은 문. 하지만 지금은 그 누구도 저 문을 열지 않을 것처럼 보였어요. 옆에 보이는 것은 의자처럼 생겼지만 의자라고 하기에는 너무 낮았어요. 그냥 물 같은 거 놓는 탁자 아닐까 생각했어요. 저기에 화분이라도 하나 있으면 이렇게 가슴 속이 텅 비어버리는 기분이 들지는 않을텐데...보존 상태가 안 좋고 방치된 유적이야 여기에서만 본 것은 아니었어요. 우즈베키스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다른 나라들에서도 본 적은 있었어요. 하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어요. 이것은 보는 사람이 마음 아플 정도. 만약 복구 비용을 위한 모금함이 있었다면 1000숨이라도 넣고 오고 싶었어요. 그만큼 실제 보고 받은 충격은 대단했어요. 전날 잠깐 일반 구역을 돌아다니며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실제 보니 상상했던 충격보다 더 큰 충격이었어요. 코칸드에서 방치된 유적이 차라리 양호해보일 정도였어요.



이제 원래 가려고 한 유적으로 발걸음을 돌렸어요.



"이것도 만만치 않을 거 같다?"


마음 속 한켠에서 스물스물 올라오는 불안한 느낌. 이게 아예 유적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사실 유적이라는 것도 권위 있는 곳에서 인정을 해 주어야 유적이지, 안 그러면 유적이 아니에요. 무슨 '백 년이 지난 것은 무조건 유적, 유물이라 칭한다'는 강력한 국제 조약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구요. 아무리 오래되어도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인정을 하지 않으면 그건 유적이 아니라 그냥 건물에 불과해요.


이와 비슷한 경우는 타슈켄트에서도 간간이 찾아볼 수 있었어요. 굳이 초르수 바자르 근처 구시가지를 들지 않아도 곳곳에 이런 곳이 있었거든요. 얼핏 보면 유적처럼 보이는데 가 보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이 있었어요. 타슈켄트 뿐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멀리서 딱 보고 모스크라는 생각이 들어서 가 보면 그냥 일반 가정집이나 식당인 경우도 있었구요. 사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요. 이것은 단순히 우즈베키스탄에 한정된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에요. 유적이 아니라 그냥 폐허라면 그게 무엇인지 알아낼 방법도 여행자 입장에서는 마땅찮아요. 동네 주민들이 유적이나 중요한 곳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폐허는 동네 주민들에게도 이름 없는 폐허일 뿐이니까요.



제가 다가가고 있는 폐허 앞에는 동네 어르신들께서 앉아 이야기를 하고 계셨어요.



드디어 유적으로 추정되는 폐허 앞에 섰어요.



정말 다행히도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 수 있는 단서가 있었어요. 그것은 바로 정문 위에 붙어 있는 현판. 이곳은 투르키 잔디 묘소 Turki Jandiy Maqbarasi. 현판 내용에 따르면 '알-샤이크 알-이몸 아부 나스르 아흐말 이븐 알 파즐 무소' Al-shayx Al-Imom Abu Nasr Ahmal ibn Al Fazl Muso 라는 사람을 사람들이 '알-잔디' Al-jandiy 라고 불렀대요. 이 '알-잔디'라는 사람은 12세기 사람으로, 샤이크 아부 바크르 이븐 아부 이스호크 칼롭브디 Shayx Abu Bakr ibn Abu Ishoq Kalobbdiy 의 제자이자 동료였던 인물이었구요. 그리고 여러 학자들에게 존경을 받았대요.


그 이상 이 '알-잔디'와 관련된 특별한 정보는 없었어요. 주어진 정보로 추측해보건데 지역에서 유명한 학자이자 선생님이었을 거에요. 현판을 읽어본 후 안으로 들어갔어요.



입구에는 구리로 만든 패가 달려 있었어요. 아랍어로 적혀 있는 것은 경구일 거에요. 읽어보려 했으나 이건 무리였어요. 기교를 잔뜩 부려 서예로 쓴 아랍어는 글자를 하나씩 따라가며 읽으면 떠듬떠듬 겨우 읽어내기는 하는데, 이건 무늬도 점도 색깔 구분이 없고 빽빽하게 글자가 들어가 있어서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어요.


Turki Jandiy Maqbarasi


내부 건물은 아까 본 후세이니 마드라사보다는 괜찮아 보였어요.



"하..."


보수중인 것인지, 보수를 하다 만 것인지 구분할 수 없는 모습. 그래도 제일 안쪽에 철근을 엮어 놓은 것은 언젠가는 보수하겠다는 의지로 해석해야 하나? 할 수만 있다면 제가 보수 작업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오고 싶을 정도였어요.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서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들어왔어요. 뒤돌아보니 외국인 배낭여행자 2명이었어요. 외국인 배낭여행자들의 손에 들린 것은 론니플래닛. 그냥 웃었어요. 우즈베크어는 당연히 못 할 것이고, 러시아어 못하면 론니플래닛 하나만 믿고 다니기에는 꽤 힘들텐데. 둘이 주위를 둘러보는 동안 저는 밖으로 나갔어요.


부하라


정말 안 무너진 것에 감사한다.


감상이라고는 딱 저 말 밖에 없었어요. 지금 제 앞에서 와르르 무너져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어요. 내부나 외부나 지금 제 앞에서 와르르 무너졌을 때 왜 무너졌는지 궁금해하게 만들 그 무언가가 아무 것도 없었어요. 만약 이때 제 앞에서 와르르 무너졌다면 저는 그냥 너무 방치되어서 무너졌다고 생각했을 거에요.


"실례합니다. 말씀 좀 여쭈어볼 수 있을까요?"


투르키 잔디 묘소 옆에 앉아 쉬고 계신 두 할아버지께 말을 걸었어요.


"자네 우즈벡어 아는가?"

"예."


두 할아버지께서 제가 우즈벡어로 이야기하자 놀라시며 자신들에게 물어보라고 하셨어요.


"이것은 묘소인가요, 모스크인가요?"

"묘소라네."


현판 내용만 보아서는 모스크인지 묘소인지 알 방법이 없었어요. 모스크라고 하기에 크기가 작기는 했지만 이 정도 크기의 동네 예배당 수준의 모스크도 많기 때문에 한 번 확인차 여쭈어 본 것이었어요.


제가 할아버지들과 대화하고 있는데 서양인 배낭여행자들이 나왔어요. 그들은 제가 할아버지들과 대화하는 것을 신기하게 보더니 자기 갈 길을 갔어요. 저는 두 할아버지께 평소에 궁금해하던 것을 여쭈어 보았어요.



그것은 이것. 이게 상징물로 여행을 다니다보면 종종 만나게 되는 것이에요. 대략적인 의미는 알고 있었지만 정확한 의미를 알고 싶었어요. 손은 파티마의 손으로 악마를 쫓아낸다고 하는 것이고, 구슬은 원래 모스크에서 중요도를 나타내는 상징이에요. 지금은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원래는 구슬 갯수에 따라 의미가 다 있어요. 무조건 구슬을 마구 붙이는 것이 아니라 어느 기능까지 담당하는지에 따라 구슬의 갯수가 달라져요.


"저 손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저 손은 죽은 사람이 묻혀 있다는 의미지."

"다른 의미는 없나요?"

"다른 의미는 없어."

"악마를 쫓아낸다는 의미는 없나요?"

"그렇게 볼 수도 있구."


저 손의 원래 의미는 '이곳에 죽은 자가 묻혀 있음'이라는 의미라고 했어요. 그리고 다른 곳에서 파티마의 손을 믿는 것처럼 원래 의미는 죽은 자가 묻혀 있는 자리임을 나타내는 의미이지만, 악마를 쫓아내기 위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대답해 주셨어요.


"저 구슬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요?"

"저 구슬들은 죽은 자가 무슬림이었다는 것을 의미해."

"고맙습니다."


두 할아버지께 인사를 하고 뒤돌아서서 제가 갈 방향으로 걸어갔어요. 두 할아버지께 들은 대답은 제가 예상하던 것과 비슷했어요. 어쨌든 부하라에 사시는 할아버지들께 제가 궁금해하던 것의 답을 들어서 속이 시원했어요. 그리고 이 유적에 와서 귀한 보물을 하나 주워간 기분이 들었어요.


"이제 슬슬 서벽으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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