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해야 했던 숙제 (2012)

해야 했던 숙제 - 13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좀좀이 2012. 10. 28.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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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


할아버지께 3만숨을 드리고 택시에서 내렸어요.




"에구구...허리야!"


카메라 가방과 가방을 메고 주위를 둘러보았어요. 여기는 너무나 낯이 익은 곳. 바로 타슈켄트역 앞이었어요. 여기는 바로 저의 홈그라운드. 제가 무려 반년 넘게 살고 있는 곳. 물론 제가 살고 있는 곳은 타슈켄트역에서 멀지만 타슈켄트역은 매달 몇 번은 지나가는 곳. 기차를 타러 온 적도 있었고, 이발하고 장을 보러 가스피탈르 가기 위해 온 적도 있었고, 공항 가기 위해 온 적도 있었어요. 타슈켄트역은 초르수 보조르와 더불어 타슈켄트의 교통 중심지. 중심지라고 할 정도로 시내 중심가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로 치면 영등포, 서울역 정도 되요. 즉, 다양한 방향으로 가는 버스가 모여드는 곳.


제가 간 역은 북역이었어요. 타슈켄트에는 기차역이 2개 있어요. 남역과 북역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기차역'이라고 하면 북역을 말해요. 북역은 지하철로도 올 수 있고, 가는 버스도 많아요. 버스 노선도 많구요. 그리고 웬만한 기차는 다 북역에서 탈 수 있어요. 남역은 교통도 매우 안 좋고, 갈 일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기차표를 살 때 북역 매표소에서 기차표를 사는데, 남역 가서 타라고 표를 이상하게 끊어준 적도 없었거든요. 그냥 '타슈켄트에서 어디 가는 기차요', '어디에서 타슈켄트 오는 기차요'라고 하면 알아서 북역으로 기차표를 끊어주어요.


'시간이 애매한데 초르수 보조르부터 갈까?'


우리나라에는 '철수 바자르', '초르수 바자르'라고 잘 알려진 초르수 보조르. 타슈켄트 온 여행자들은 여기를 꼭 가야하는 곳처럼 가요. 초르수 보조르를 가는 이유는 딱 세 가지 이유. 그 이상도 이하도 없어요. 딱 세 가지 이유 중 하나에 속해요.


첫 번째, 초르수 보조르 근처에 '굴나라 게스트하우스'라는 숙소가 있어요. 여기가 배낭여행자들 사이에서는 꽤 잘 알려진 숙소에요. 그래서 이 숙소 때문에 초르수 보조르를 가요.


두 번째, 초르수 보조르 근처는 배낭여행자들 사이에서 암달러 거래하는 곳으로 유명해요. 가격이 크게 좋은 편은 아니나 초르수 보조르 근처에서 많이 하더라구요.


세 번째, 초르수 보조르 근처에 볼 것이 조금 있어요.


타슈켄트 관광은 사실 별 것 없어요. 타슈켄트가 역사적으로 아주 오래된 도시이기는 하지만 1966년 대지진으로 도시 전체가 폭삭 무너졌거든요. 지금의 타슈켄트는 거의 대부분 1966년 대지진 이후 지은 도시라고 보면 되요. 이런 타슈켄트에서 볼 곳은 딱 구역 네 개 있어요. 첫 번째는 아미르 티무르 공원 및 그 주변. 아미르 티무르 공원 및 아미르 티무르 역사박물관을 보고 브로드웨이 거리 걷고, 브로드웨이 거리 끝까지 가면 대통령궁이 나와요. 그리고 아미르 티무르 공원에서 나보이 거리로 나와서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데데만 호텔 및 국립 도서관 등 새로 지은 새하얗게 빛나는 건물들이 있어요. 이것이 첫 번째 구역. 나보이 거리에서 데데만 호텔 반대 방향으로 가면 초르수 보조르가 있어요. 초르수 보조르 근처에 쿨케다쉬 마드라사 Kulkedash madrasasi 가 있고, 타슈켄트 전망을 볼 수 있는 탑 같이 생긴 건물도 있고, 타슈켄트 구시가지 및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코란이 보존되어 있는 하스트 이몸 모스크 Hasti-Imom Masjidi 도 있어요. 여기에 보존되어 있는 코란의 특징은 당연히 아랍어로 쓰여져 있지만, 자음을 구분하기 위한 점이 없어요.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코란'이라는 신성함과 더불어 아랍어학사에서도 매우 가치가 높은 서적이에요. 이 초르수 보조르 및 그 일대가 두 번째 구역. 세 번째 구역은 밀리 보그에요. 여기는 잘 꾸며놓은 공원으로 알리셰르 나보이의 동상이 있으며, 야외 수영장 및 국회의사당이 있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텔레미노라 및 그 주변. 여기는 교통도 안 좋고 솔직히 전망 보러 기어올라가는 곳. 그런데 타슈켄트 자체에 높은 건물이 많지 않고, 키가 큰 나무들이 많아서 그렇게 추천하지는 않는 곳이에요.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구역은 조금씩 멀리 떨어져 있기는 한데 교통이 아주 좋아요. 전부 지하철역이 있거든요. 하지만 네 번째 텔레미노라는 다른 세 구역과 달리 엉뚱한 곳에 있고, 지하철역도 없어요. 타슈켄트에 높은 건물이 별로 없어서 보이기는 엄청 잘 보이는데 가기는 그다지 좋지 않은 편이에요.


타슈켄트역에서 초르수 보조르든, 밀리 보그든, 아미르 테무르 공원이든 금방 갈 수 있어요. 왜냐하면 이 네 곳은 모두 전철로 이어져 있거든요.


'관광객이라면 당연히 초르수 보조르는 꼭 보겠지?'


아미르 테무르 공원은 정말로 가고 싶지 않았어요. 지금 제가 살고 있는 곳으로 이사가기 전에 그 근처에서 살았거든요. 여기는 하도 가서 이제 질렸어요. 아미르 테무르 공원에 갈 바에는 차라리 집에 들어가서 빨랫거리나 놓고 기차역으로 돌아갈 거였어요. 밀리 보그는 혼자 배낭 메고 돌아다니기에는 심심한 곳. 게다가 이쪽에는 아제르바이잔 대사관이 있었어요. 아제르바이잔 비자는 별로 어렵지 않게 받아서 알레르기 반응 같은 것은 생기지 않았으나 여기 역시 비자 때문에 몇 번 갔던 곳. 게다가 공원에 혼자 가서 고독을 씹어대고 싶지는 않았어요. 게다가 밀리 보그는 관광객 입장에서 아미르 티무르 공원이나 초르수 보조르보다는 아무래도 중요도가 많이 떨어지는 곳. 이렇게 두 곳이 빠지니 남는 곳은 초르수 보조르였어요.


'전철타고 가야지.'


당연히 전철을 타고 갈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전철역으로 가려는 순간.


'짐검사 받기 귀찮아!'


타슈켄트에서 지하철을 탈 때에는 무조건 수하물 검사를 받아요. 안 할 때도 있는데 대부분 해요. 타슈켄트에서 지하철을 이용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아요.


1.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가면 제톤 파는 매표소가 있어요. 여기에서 제톤을 삽니다.

2. 입구로 들어갑니다. CHIQISH 라고 되어 있는 곳은 출구이니 KIRISH 라고 적혀 있는 문으로 가세요.

3. 들어가면 하얀 플라스틱 탁자와 경찰이 있습니다. 가방이나 불투명 비닐봉지 등 하여간 짐처럼 생긴 게 있다면 경찰에게 가서 열어서 보여줍니다.

4. 경찰이 여권을 보여달라고 하면 여권을 보여줍니다.

5. 개찰구에 제톤을 집어넣고 안으로 들어갑니다.

6. 지하철을 탑니다. 지하철역 내부는 사진 촬영 금지입니다.

7. 내릴 때는 그냥 내려서 나가면 됩니다. 수하물 검사도, 제톤 집어넣는 것도 들어갈 때만 합니다.


지금 제 꼴은 누가 봐도 여행자. 이대로 지하철역 가면 가방 다 까야 하고, 여권도 보여줘야 할 것이 분명했어요. 가방 다 열어서 보여주어야 하는데 이게 그렇게 귀찮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별 것 아니기는 한데 가방을 풀어야한다는 것 자체가 아주 귀찮았거든요.


'그냥 택시 타고 갈까?'


만사 귀찮아서 택시에서 내린 자리에서 택시를 잡았어요. 이것이 일이 꼬이게 된 원인이었어요.


제가 택시를 잡은 곳은 기차역 바로 옆. 이쪽은 경찰이 있어서 택시를 원래 잘 안 세워주는 곳이에요. 그리고 있는 택시 기사라고는 전부 꾼들이구요. 원래는 길을 건너서 버스 가는 길로 들어가서 택시를 잡아야 좋아요. 그런데 이때는 귀찮아서 그냥 기차역 옆 주차장 근처에서 택시를 잡았어요.


"택시?"


지나가는 차를 잡아야 하는데 당연히 경찰이 있는 곳이라 택시를 세워주지 않았어요. 제가 택시를 잡는 것을 보고 택시 기사가 스물스물 접근했어요. 그냥 길을 건너서 잡거나 전철 타고 가면 되는 것을 귀찮아서 당연히 택시 잘 안 잡히고 꾼들만 몰려 있는 곳에서 택시를 잡았으니 그 이후 일은 망조가 들었다고 밖에 할 수 없었어요. 어쨌든 택시는 지지리 잡히지 않았고, 마침 택시 기사가 하나 접근해서 그 택시 타고 초르수 보조르 가기로 했어요.


"초르수 보조르, 4천."

"안 돼. 만 숨."


이게 미쳤나?


아주 관광객으로 보인다고 막 불러대네? 기차역에서 초르수 보조르까지는 4천숨이면 충분히 가는 거리. 여기는 정말 많이 주어야 5천숨이에요. 타슈켄트에서 웬만한 곳은 택시비가 3천숨. 조금 먼 곳은 4천숨 정도에요. 아무리 멀어도 5천숨이면 다 가요. 흥정을 잘 한다면 제가 말한 가격에서 더 깎을 수도 있구요. 저는 흥정을 참 못하는 편이지만 흥정 못하는 저도 저 정도에 다녀요. 게다가 제가 사는 곳은 기차역에서 초르수 보조르까지의 거리보다 더 먼 곳인데도 항상 많이 주어봐야 5천숨 주고 다녀요. 인내심을 가지고 흥정하고 택시 잡는다면 4천숨, 귀찮으면 5천숨. 만 숨은 말 그대로 관광객용 바가지 요금이자 미친 가격. 이래서 제가 꾼들이라고 하는 것이에요. 길 가는 차량 잡아서 타면 외국인이라고 많이 불러봐야 6천숨 부르고 5천숨이면 가는데, 이것들은 마구 높게 불러버리거든요.


"안 타."

"만 숨은 정상 가격이야."

"4천."


똥파리 같은 택시 기사가 달라붙어서 아주 귀찮게 되었어요. 만 숨 부르는 택시 기사를 쫓아내자 다른 택시 기사가 왔어요.


"8천."

"4천."

"8천이면 정상 가격이야."

"나 버스 탈 거야."


택시가 잡히지 않아서 짜증나던 차에 택시 기사들이 관광객인줄 알고 자꾸 모기처럼 들러붙자 그냥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어요. 기차역에서 초르수 보조르까지 당연히 버스로 갈 수 있거든요. 버스 정거장은 매표소 정반대쪽 끝에 붙어 있어요.


택시 기사들을 떼어내고 버스 정거장으로 걸어가는데 8천을 부른 택시 기사가 쫓아왔어요.


"야, 8천은 정상가격이야!"

"나 타슈켄트에서 살거든? 내가 집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맨날 4천 내고 온다!"


그래보아야 택시 기사 입장에서는 믿음이 가지 않을 말. 누가 봐도 관광객인데 믿을 리가 없죠. 택시 기사는 팔을 잡으며 선심쓰듯 말했어요.


"7천."

"싫어. 나 버스 탈 거야!"


사실 이게 우리나라 돈으로 하면 얼마 하지도 않는 차이였어요. 1000숨이 5백원 채 안 되거든요. 하지만 호구잡히는 거 뻔히 알면서 호구잡힐 수는 없었어요.


"얼마 원하는데?"

"4천!"


택시 기사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 버스를 타러 갔어요. 택시 기사는 '나도 싫어!'라고 외치며 스스로 정신 승리를 시전했어요. 하여간 이 나라는 다 좋은데 택시 기사들이 인상을 다 망쳐놓아요. 택시 기사들에게 당하지 않는 법은 현지인에게 먼저 목적지까지 얼마냐고 물어보는 것이에요. 안 그러면 택시 기사들이 '어이구, 호구 오셨어요?' 하고 가격을 마구 높게 불러버리거든요.


기차역에서 초르수 보조르 가는 버스는 76번. 76번 버스가 버스 정거장에 서 있었어요. 문을 닫고 있어서 타기 위해 문을 두드리자 운행 안 한다고 문을 안 열어주었어요. 그래서 다음 버스를 기다려 올라탔어요.



운행을 안 하면 비켜주어야 하는데 운행을 안 하는 76번 버스가 길을 딱 막고 비켜줄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제가 탄 76번 운전기사는 계속 경적을 빵빵 울렸어요. 5분 정도 그렇게 경적을 울리고 차를 옆으로 돌리고 전진했다 후진했다 해서 겨우 역에서 빠져나왔어요.


76번 버스는 기차역에서 공항 주변까지 갔다가 밀리 보그를 지나 초르수 보조르로 가는 버스. 이날따라 하필이면 차도 엄청 막히고 신호등이란 신호등은 죄다 다 걸렸어요. 타슈켄트에서 길이 막히는 일은 별로 없는데 정말 희안하게 이날은 많이 막혔어요.


'찌르크 근처 식당에서 밥이나 먹고 가야겠다.'


밀리 보그를 지나 찌르크에 왔을 때는 이미 4시가 다 되어 있었어요. 빨리 부지런히 돌아다닌다면 하스티 이몸 모스크까지 갈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루 종일 굶으면서 돌아다니고 싶지는 않았어요. 어차피 거기는 전에 간 적이 있었기 때문에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이었어요.


찌르크 Sirk 는 우리말로 '서커스장'. 원래 Цирк인데 우즈벡어로는 Sirk라고 써요. 그리고 모두가 '찌르크'라고 발음하죠. 그 이유는 타슈켄트에 러시아인들이 많이 살아서 ц (ts) 발음이 확실히 살아있거든요. '시르크'라고 하면 사람들이 못 알아들어요. 이 찌르크는 초르수 보조르 하나 전 정거장. 특별히 볼 게 있다기 보다는 이 찌르크 근처에 매우 유명한 식당이 있어요. 이곳은 타슈켄트 사람들이 외국인들이 우즈벡 음식 먹어보고 싶다고 하면 한결같이 추천하는 식당. 여러 번 이 식당 앞을 지나가기는 했지만 이 식당에서 음식을 먹어본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시간을 놓치거나, 아니면 그냥 동네 시장 식당에서 우즈베키스탄 음식을 사 먹었거든요. 하지만 오늘 나는 타슈켄트 주민이 아니라 타슈켄트 관광객. 그러므로 이 식당에 가서 한 번 밥을 먹어보기로 했어요.


'시간이 조금 애매하기는 한데...괜찮겠지?'


오후 4시면 밥 먹기 매우 나쁜 시각. 이때는 어느 식당을 가든 웬만한 우즈베키스탄 음식은 다 팔리고 없어요. 그래도 그 식당은 큰 식당이니 혹시 모른다는 생각으로 갔어요.



찌르크에서 내려서 식당으로 갔어요. 식당은 찌르크 맞은 편.


"아놔..."


하필 제가 간 날, 그 식당은 문을 닫았어요. 그래서 옆 식당으로 갔어요.


"뭐뭐 있어요?"

"지금 카봅 밖에 없어요."

"자즈 있어요?"

"자즈 없어요. 키마만 있어요."


하...


한숨을 내쉬며 옆 식당에서 나왔어요. 카봅만 있다는 것만으로도 한숨이 나오는 상황인데 하필이면 그 카봅 중에서 키마만 있다고 했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 양고기 카봅은 크게 두 종류가 있어요. 그냥 덩어리 고기인 자즈 Jaz와 간 고기를 뭉쳐 놓은 키마 Qiyima에요. 나머지는 간 같은 특수 부위 케밥. 키마는 자즈보다 가격이 저렴한 대신, 냄새가 심해요. 이론적으로 맛은 고기 구이와 고기 경단 정도의 차이이지만, 실제로는 키마는 자즈보다 냄새가 심해서 별로 안 좋아하는 샤슬릭이에요. 가격도 초르수 보조르 근처에 갔을 때 종종 가는 초르수 보조르 입구에 있는 가게보다 비쌌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라그몬이나 한 그릇 먹고 올 걸...'


타슈켄트역에서 매표소 방향으로 쭉 걸어가다보면 식당이 있어요. 매표소를 넘어가면 주차장이 있고, 그 주차장 바로 옆에 건물 하나가 있어요. 이 건물에 식당과 가게가 여럿 있는데, 가장 끝에 중국집이 있고, 중국집 바로 옆 가게에서 파는 라그몬이 꽤 맛있어요. 면발은 평범하지만, 국물이 쇠고기 국물이라 한국의 맛과 비슷해요. 아까 타슈켄트역에서 내렸기 때문에 그 식당에 가서 밥을 먹어도 되었어요. 정말 가는 날이 장날이 아니라 가는 날이 휴일이었어요.


원래 가려던 가게는 휴일이고, 옆 가게는 거리에서 사먹는 카봅보다 비싼데 키마만 있었어요. 그래서 초르수 보조르 가서 대충 카봅이나 먹고 역으로 돌아가기로 했어요.


'결국 카봅 먹네.'


카봅을 좋아는 하지만 정말 이번 여행중에 카봅은 먹기 싫었어요. 이유는 간단했어요. 저녁을 거리에서 먹게 된다면 아주 높은 확률로 그 메뉴는 카봅이니까요. 선택지가 여럿 있는데 그 중 카봅을 고르는 것과 선택지가 오직 카봅 밖에 없어서 카봅을 먹는 것은 천지 차이. 그래도 굶을 수는 없었어요.



찌르크 앞에서 사진을 찍고 나보이 거리를 따라 쭉 걸어갔어요. 버스로 한 정거장 걸어가는 것인데 정말 버스를 타고 가고 싶었어요. 그래도 그냥 걸어갔어요.



초르수 보조르 입구쪽 쿨케다쉬 마드라사 Kulkedash madrasasi 를 지나 제가 가는 카봅 가게로 갔어요.



자리에 앉아 자즈 2개와 키마 1개, 차 한 주전자와 논 반 개를 시켰어요.


"전에 왔었어요?"

"예."


종업원이 저를 보자 전에 왔었냐고 물어보았어요.


"얼굴을 본 기억이 있어서요."

"봄에 종종 왔었어요. 여름에 더워서 안 왔구요."

"아..."


봄에는 카봅을 먹으러 이 집에 자주 왔었어요. 그러나 여름에는 단 한 번도 가지 않았어요. 이유는 간단했어요. 더웠으니까요. 50도까지 올라가는데 카봅 먹으러 초르수 보조르에 가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어요. 게다가 여름 폭염 속에서 카봅을 먹고 싶은 마음 자체가 없었구요. 이 집이 맛은 좋기는 한데 굽는 곳 바로 근처가 식탁이라서 연기 속에서 먹어야 할 때도 종종 있거든요.


카봅을 시키고 주변을 둘러보았어요.



이 카봅 가게 양 옆은 터키식 케밥 가게. 이 가게 양쪽에서 파는 터키식 케밥도 맛있어요.



오늘따라 카봅이 금방 나왔어요. 위의 두 개는 자즈, 맨 아래 것이 키마에요. 자즈는 고기 사이 사이에 비계를 같이 끼워주어요. 저는 이 자즈에서 비계를 고기보다 더 좋아해요. 비계에서 기름이 적당히 빠져서 매우 고소하고 맛있거든요.


카봅 세 개라 해도 양이 많지 않아서 금방 다 먹었어요. 카봅을 다 먹고 계산한 후 초르수 보조르를 둘러보기 시작했어요.







이제 시장도 문을 닫을 시간이 거의 다 되었어요. 시장에서 장을 보는 사람은 별로 없고, 거의 다 돌아가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래서 크게 볼 것도 없었어요.


'이렇게 된 거...전망대나 올라갔다 가야겠다.'


그래서 전망대 쪽으로 걸어갔어요.



저 바벨탑처럼 생긴 건물이 전망대에요. 여기는 안에 들어가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밖에 옥상까지 올라가는 길이 있어요. 그래서 건물 주위를 뱅글뱅글 돌며 올라가며 타슈켄트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에요. 물론 당연히 옥상에서도 타슈켄트 전망을 볼 수 있구요. 타슈켄트에 높은 건물이 별로 없어서 굳이 TV타워 (텔레미노라) 가서 전망을 내려다볼 필요가 없어요.


처음 타슈켄트 왔을 때에는 꽤 많이 갔던 곳. 그러나 여름 되어서 더워지고 타슈켄트에 적응한 이후로는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던 곳. 관광객 차림으로 올라가는 건 처음이었어요.



사진 속 파란 돔이 찌르크에요.



푸른 돔 옆에 보이는 공장 굴뚝 2개처럼 보이는 게 바로 하스트 이몸 모스크.



줌으로 당겨서 찍으면 이렇답니다.





이쪽은 구시가지 (에스키 샤하르)에요. 저 위성 안테나는 전부 러시아 방송을 보기 위해 설치한 것이에요.



사진 속 오른쪽 커다란 돔이 초르수 바자르, 그리고 왼쪽 높은 건물이 호텔 초르수에요. 호텔 초르수는 흉물스럽게 변해 있어요. 보수 공사 중이라고 하기에는 2월부터 지금까지 너무 흉물스러운 상태가 하나도 변하지 않고 있어요.


"정말 오늘은 되는 일이 없나 보다."


타슈켄트에 거주지등록이 되어 있는 타슈켄트 주민으로써 타슈켄트를 돌아다니는 것은 정말로 자신있었어요. 이건 정말 동네 구경 수준. 그런데 이상하게 꼬였어요. 밥도 먹고 싶은 거 못 먹고, 간 곳이라고는 고작 초르수 보조르 뿐. 어디에서 꼬인 것일까? 그건 기차역에서 그냥 전철을 타지 않은 것에서부터 꼬인 것이었을 거에요. 귀찮음의 대가가 너무 혹독했어요. 정말 타슈켄트 주민으로서 너무나 부끄러울 지경.


슬슬 기차역 가야할 시간이 되어갔어요. 그래서 이 건물 옥상에서 내려가서 다시 76번 버스를 타고 기차역으로 갔어요.


"응? 이 버스 공항 가잖아!"


기차역에서 76번 버스를 탔을 때에는 공항 근처만 지나갔어요. 그런데 초르수 보조르 입구 길 건너 맞은편에 있는 '굼' 앞에서 76번 버스를 타니 공항까지 갔어요. 이것은 매우 중요한 정보. 초르수 보조르에서 택시로 공항을 가는 것보다 버스로 공항을 가는 것이 10배 이상 저렴하거든요. 허탕만 치고 부하라로 떠나나 했는데 이렇게 얻어 걸린 것이 하나는 있었어요. 하지만 '초르수 보조르에서 76번 버스 타면 공항 간다'는 것 하나 알아낸 것에 비하면 참담한 희생이었어요. 솔직히 제가 초르수 보조르에서 공항까지 버스 타고 갈 일도 없구요. 제가 사는 곳은 초르수 보조르에서 버스 갈아타고 공항 가는 것보다 타슈켄트역에서 버스 갈아타고 공항 가는 것이 훨씬 빠르고 편했거든요.


버스를 타고 기차역에 도착하니 어느덧 7시. 굳이 시간을 다른 곳에서 때울 필요도 없이 바로 기차역 안으로 들어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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