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두 개의 장벽 (2012)

두 개의 장벽 - 40 아제르바이잔 바쿠 중앙우체국

좀좀이 2012. 10. 2.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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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우체국에 가려고 한 이유는 혹시 아제르바이잔 전통의상 우표가 있는지 보러 가기 위해서였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중앙우체국에서 수집용 우표를 따로 팔아요. 단연 우즈베키스탄 뿐만 아니라 체코, 슬로베니아, 세르비아, 타지키스탄에서도 그랬어요. 알바니아는 직접 중앙우체국에 가본 것은 아니지만 티라나에서 간 우체국에서 수집용 우표 사려면 중앙 우체국에 가라고 알려주었어요. 중앙우체국 가서 우표를 사면 좋은 점이 거리에서 사는 것보다 조금 싸요. 우리나라는 아예 액면가에 팔구요.


아까 우체국에서 중앙우체국은 이쪽에 있다고 알려주었어요. 대학교는 그냥 본 거 하나 늘리고 시간 때울 셈으로 간 거에 비해 여기는 보다 확실한 목표가 있었어요. 그래서 대학교를 찾자마자 재빨리 우체국을 찾기 시작했어요.


"중앙우체국이 왜 안 보이지?"


큰 길을 걸으며 찾아보았지만 중앙우체국처럼 생긴 건물 자체가 보이지 않았어요.  분명 이 나라에서 중앙우체국이라면 분명 눈에 띄어야 정상인데...중앙우체국은 꽤 중요한 국가기관이에요. 특히 시간을 거슬러갈 수록 그 중요성은 더 커져요. 중요성이 큰 국가기관인데다 직접 많은 물건을 다루는 곳이다보니 공간도 많이 필요해요. 그러므로 중앙우체국은 대충 위치를 비슷하게 찾아가면 쉽게 찾을 수 있기 마련이에요.


"우체국 어디에요?"


처음 물어본 사람은 몰랐어요.


"우체국 어디에요?"


두 번째로 물어본 사람도 몰랐어요.


"우체국 어디에요?"

"이 길로 세 블록 더 가면 있어요."


세 블록 더 가면 있다고 해서 그대로 갔어요. 세 블록이 얼마 안 되는 거리인 줄 알았는데 꽤 먼 거리였어요.


"정말 여기로 가면 있는 거 맞아?"


서로가 서로에게 물어보았어요. 하지만 둘 다 모르기는 매한가지. 일단 현지인이 알려주었으니 그대로 걸어보기로 했어요. 한참 걸어가자 작은 우체국이 나타났어요.


"설마 여기가 중앙우체국?"


딱 보아도 그건 중앙우체국이 아니었어요. 그냥 평범한 우체국이었어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일단 들어갔어요.


"여기가 중앙우체국이에요?"

"그거 사힐역 근처로 옮겼어요."


아놔...왜 서로 잘 몰라!


원래 중앙우체국이 이 근처에 있었지만, 지금은 지하철 사힐 역 근처로 옮겼다고 직원이 알려주었어요. 당연히 여기는 수집용 우표 파는 곳이 없었어요. 더욱 짜증나는 것은 지하철 사힐 역은 이체리 셰헤르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는 것. 오늘은 하필이면 금요일. 제대로 우체국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오늘 가야 하는데 길을 헤매다 이미 늦어버렸어요. 지하철 사힐 역 근처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이렇게 엉뚱한 곳 와서 시간 다 날리며 헤매지도 않았을 거에요.


짜증에 짜증을 더해주는 것은 교통체증이 시작되었다는 것. 지하철을 타고 가려면 왔던 길을 그대로 또 돌아가야 하는데, 역에서 반대편으로 조금 많이 걸어왔어요. 중앙우체국 구경하는 것은 물 건너갔고, 이제 허탈한 마음으로 걸어서 지하철역까지 가는 일만 남았어요.


"이렇게 된 이상 우리는 무조건 중앙우체국 간다!"

"거기 문 닫았잖아."

"내가 거기 입구라도 사진 찍고 올 거야!"


중앙우체국을 구경하고 혹시 거기에서 수집용 우표를 팔거나 기념 우표 팔다 남은 것 있으면 사오려고 했던 저의 기대는 다 끝났어요. 하지만 오기가 생겼어요. 이렇게 헛고생한 것이 억울해서라도 꼭 중앙우체국을 찾아가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문을 닫았어도 좋아요. 그 앞에 가서 내가 갔다 왔다는 사진이라도 한 장 남기고 와야겠다는 생각 뿐이었어요.


친구도 그냥 갔다 오자고 했어요. 어차피 마땅히 할 것도, 갈 곳도 없던 데에다 사힐 역이면 이체리 셰헤르에서 멀지 않았거든요. 어차피 호스텔에서 조금 많이 걸어가야하는 곳이라 그곳까지 갔다 오면 오늘 하루도 무언가 하기는 하며 알차게 보낸 셈이 되는 것이었어요.






"여기 95번 버스도 오는데?"


친구가 지하철 역 앞에서 95번 버스도 온다고 했어요.


지하철을 타고 갈 것인가, 버스를 타고 갈 것인가...


바로 앞에 지하철 역과 버스 정거장이 있었어요.



왼쪽은 지하철 역이 있는 건물이고, 오른쪽은 버스 정거장.



일단 지하철 역 앞에 서서 잠깐 생각을 했어요. 지하철을 타고 갈까? 버스를 타고 갈까? 지하철 타는 건 별로인데...지하철보다는 버스를 타고 싶은데...교통체증 한 번 직접 겪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 한데...


"이미 우체국 문 닫았을 텐데 밥이나 먹고 가자."

"메르신 카페?"

"응. 밥 먹을 시간도 슬슬 되었잖아."


생각해보니 밥 먹을 때가 되기는 되었어요. 95번 버스를 타고 MUM에서 내려 밥을 먹고 소화도 시킬 겸 사힐 역으로 걸어가서 중앙우체국을 찾아내는 것도 괜찮을 듯 했어요. 어차피 우체국 이용은 글렀으니까요. 그래서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어요.


95번 버스에 올라탔어요. 버스는 충혼공원 근처에 있는 국회의사당을 향해 갔어요.


"여기서 내릴까?"

"오늘 가게?"

"됐다."


내려서 충혼공원을 보고 갈까 잠깐 고민했어요. 하지만 친구의 반응도 시큰둥했고, 저도 꼭 오늘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충혼공원에서 숙소까지 버스를 타기도 애매한 거리. 특히 이런 교통체증 속에서라면 더욱 애매했어요. 그러면 걸어내려가야 하는데,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어차피 내일 전동차 운행한다고 했으니 내일 가도 되는 곳.


MUM에서 내려서 저녁을 먹고, 도넛을 사서 이체리 셰헤르 입구로 갔어요. 커피를 한 잔씩 뽑아 도넛과 같이 먹었어요.


"이것이 도시 생활이구나!"


한국에서도 안 했던 커피와 도넛을 후식으로 먹는 일을 여기에서 해 보았어요. 참 별 거 아닌 소소한 것이었는데 우리 모두 매우 즐거워졌어요. 바쿠에서 이렇게 시간을 보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거든요. 바쿠에서 돈이 없어서 굶지나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해 왔어요. 그런데 나름 만족스럽게 하루 하루를 잘 보내고 있었어요. 이제 떠날 날은 멀지 않았는데, 나날이 소소한 즐거움을 하나 둘 찾으며 더욱 정이 들어가고 있었어요.


느긋하게 쉬다가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이제 갈 곳은 지하철 사힐 역.


지하철 사힐 역까지 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어요. 사힐 역 위치는 우리 둘 다 잘 알고 있었거든요. 이체리 셰헤르에서 바닷가를 향해 서서 왼쪽으로 쭉 가면 사힐 역이 나와요.


사힐 역에 도착해 경찰에게 중앙우체국 위치를 물어보았어요.


"중앙우체국? 모르겠는데?"


경찰이 모르면 누구한테 물어보라는 거야!


경찰은 저쪽에 보이는 다른 경찰에게 가서 물어보라고 했어요. 그 경찰은 아마 알 거라고 알려주었어요. 그래서 경찰이 알려준대로 다른 경찰에게 가서 물어보았어요.


"그거? 저 골목 보이지? 저 골목으로 들어가서 쭉 가면 돼."


경찰이 알려준 대로 갔어요. 그런데 우체국이 있을 것 같지 않았어요. 그래서 다시 다른 경찰에게 물어보았어요.


"중앙우체국? 그거 엘름레르 아카데미야스에 있어."

"거기 갔는데 없었어요."

"그러면 나도 몰라."


음...


무작정 주위를 돌아다닌다고 될 일이 아닌 것 같아 다른 경찰을 찾아갔어요.


"그거? 이 길로 들어가서 쭉 가면 있어."


경찰이 가라고 한 대로 길을 쭉 따라갔어요.



사힐 역 근처에 있는 게 맞기는 맞구나...


혹시나 해서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수위가 옆에 있는 다른 쪽 문으로 들어가라고 했어요. 그래서 다른 쪽 문으로 들어갔어요.


"지금도 업무를 하네?"


오후 8시인데 업무를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직원에게 물어보았어요.


"우표 파나요?"

"우표요?"

"우표 모아서 우표 사고 싶어요."


직원이 잠시 기다리라고 했어요. 정말 수집용 우표 파나 보다! 여행이 끝나가서 마지막으로 운이 따라주는 건가?


직원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어요. 운이 따라준다는 생각에 혼자 속으로 기뻐했어요. 역시 초반에 최악의 불운을 맞이하니까 그 다음부터는 일이 술술 잘 풀리는구나! 혼자 좋아하고 있는데 드디어 직원이 나왔어요.


엥?


직원이 들고 나온 우표는 말이 그려진 보통우표 4종과 20개픽짜리 꽃 그려진 보통우표. 이것은 전에 우체국에서 본 우표들인데?


"수집용 우표 없어요?"

"우표는 이것 밖에 없어요."


그래. 중앙우체국 구경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자...


우체국에서 나왔어요. 그래도 중앙우체국을 발견하기까지는 했으니 스스로 70점까지는 줄 수 있는 일. 우체국에서 나와 주변을 둘러보니 국회의사당 근처였어요.


"이왕 여기 온 김에 국회의사당이나 보고 갈까?"

"거기는 왜? 그거는 작년에 갔는데 또 갈 필요 있어?"

"그래도 바쿠 왔는데 한 번은 보고 가야지."

"그것도 나쁘지는 않네."


오늘은 무슨 밀린 숙제하는 날인가? 정말 가고 싶어서 갈망해 다닌다는 느낌보다 그저 밀린 숙제를 끝내기 위해 다니는 기분이었어요. 어쨌든 중앙우체국에서 국회의사당이 멀지 않았기 때문에 국회의사당까지 보고 가기로 했어요.



가는 길에 본 부조.



국회의사당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이것이 바쿠 힐튼 호텔.



"가자."


작년에 본 것이었기 때문에 또 자세히 감상하고 주변을 둘러보고 걸어보고 싶은 욕구가 없었어요. 정말 '바쿠에 왔기 때문에 꼭 보아야하는 것 중 하나'라는 이유만으로 온 것 뿐. 한 마디로 숙제 하나 끝내기 위해 억지로 마음에도 없는 곳에 갔다 온 학생의 기분. 굳이 안 가도 되었지만, 이번에도 바쿠 간 김에 보고 왔다는 것 - 그것 하나 때문에 온 곳이었어요. 그래서 사진만 빨리 찍고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갔어요.


집에 와서 마나트가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했어요. 남아 있는 마나트는 앞으로 공항 갈 택시비를 제외하면 딱 이틀간 식비에 약간의 간식비 정도 남아 있었어요. 정말 다행이라면 여기에서는 선물을 사서 갈 필요가 없다는 것. 만약 선물을 사서 가야 되었다면 마나트가 부족했을 거에요. 하지만 주변 사람 챙겨야할 필요가 없는 곳이라 살짝 부족한 듯 하면서도 딱 맞는 양의 아제르바이잔 마나트가 남아 있었어요. 이 정도면 처음 500 마나트 인출해서 알차게 잘 썼어요. 지출이 꽤 많이 나온 이유는 단연코 책. 책 구입으로만 170 마나트를 사용했으니까요.


밖에 앉아서 쉬고 있는데 주인 누나 얼굴이 불편해 보였어요.


"안 좋은 일 있으세요?"

"내일이 둘째 딸 대학교 입학 시험이야."

"아...좋은 일 있기 바래요."


주인 누나 얼굴이 불편한 이유는 다음날이 둘째 딸의 대학교 입학 시험이었기 때문이었어요. 둘째 딸은 생글생글 웃으며 돌아다니고 있어서 지금까지 몰랐어요. 주인 누나는 자기가 딸보다 더 걱정하고 있다고 이야기하셨어요. 둘째 딸이 다른 것은 다 잘 하는데 수학이 약해서 제발 내일 수학 시험이 가장 걱정된다고 말씀하셨어요.


"만약 딸이 시험 잘 쳐 오면 내가 일요일에 너희들 가고 싶은 곳 한 곳 데려고 가 줄게."


주인 누나는 딸 때문에 걱정되어서 얼굴이 굳어 있었어요. 다음날 아침 일찍 딸을 데리고 시험을 치러 간다고 하셨어요.


제발 주인 누나의 둘째 딸이 좋은 점수를 받아서 원하는 곳에 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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