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중앙아시아 생존기 (2012-2013)

우즈베키스탄 마티즈

좀좀이 2012. 10. 2.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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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한국을 잘 아는 이유가 몇 가지 있어요. 물론 가장 큰 것은 많은 우즈벡인들이 한국으로 일하러 가기 때문. 시골에서는 한달에 100달러 버는 집도 허다한데 한국 가면 한 달에 1000달러 이상 송금해주니 '한국으로 일하러 간다 = 인생역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두 번째는 바로 '대우'. 이 나라는 삼성보다도 대우가 더 유명한 나라. 그 이유는 이 나라에 대우 자동차 공장이 있기 때문이에요. IMF 때 대우 그룹이 부도가 났는데, 이 나라 자동차 공장은 계속 가동되었어요. 아마 정부에서 억지로 돌린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어쨌든 대우 자동차가 많이 돌아다녀요. 그리고 이 대우 자동차들은 종종 택시로 많이 사용되죠. 그리고 이런 자동차 종류가 아예 택시 종류로 이름이 굳어버린 경우도 있어요.


넥시아 - 장거리 택시

넥시아도 자동차 종류 중 하나인데 장거리 택시를 타고 간다고 하면 모두가 '넥시아 타고 갔다'고 해요. 넥시아가 아닌 차를 타고 갔어도 그냥 '넥시아 타고 갔다'고 해요.


다마스 - 소형 마슈르트카

이건 타슈켄트에서는 별로 안 보이고, 주로 지방에서 많이 보여요. 그냥 '다마스'라고 해요. 이용 방법은 마슈르트카와 똑같아요. 단지 마슈르트카에 비해 매우 비좁다는 특징이 있죠.


우즈베키스탄에서 흔히 보이는 승용차는 크게 두 가지. 하나는 마티즈, 나머지 하나는 지굴리.





마티즈의 특징이라면 마티즈 운전자들이 택시로 잘 세워준다는 거에요. 여기는 아무 차나 잡아서 흥정해서 가곤 해요. 물론 불법이므로 경찰이 있으면 이렇게 못 하지만, 경찰이 안 보이는 곳, 또는 경찰들도 이런 식으로 아무 차나 잡아서 택시로 타고 가요. 마티즈는 높은 확률로 택시로 바뀌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거리에서 택시 잡을 때 마티즈가 잘 보이면 택시 금방 잡겠구나 생각하고, 마티즈가 별로 없거나 아예 없으면 택시 잡기 조금 어렵겠구나 판단하죠. 마티즈와 지굴리 운전자들이 택시도 같이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우즈베키스탄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는 마티즈는 정말로 많이 돌아다니고 있는 차이기는 한데, 이 차의 특징은 차체를 감싸고 있는 철판이 매우 무르다는 것. 예전 꺼는 철판이 매우 튼튼하고 좋았는데, 요즘 꺼는 매우 무르다고 해요. 그래서 조금만 사고가 나도 차가 찌그러져 버린다고 해요.


오늘 친구와 거리를 돌아다니는데 사고 현장을 목격했어요.


차는 두 배로 다쳐도 사람은 덜 다친다! 마티즈!

vs

사람은 부서져도 차는 멀쩡해야 한다! 지굴리!




이 무슨 어이없는 매치란 말인가...


참고로 지굴리는 소련 시절 나온 자동차로 차 하나는 튼튼해요. 문제는 탑승자를 보호해주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것. 그래서 지굴리 보고 사고가 나면 차는 멀쩡해도 대신 안에 탄 사람이 부서졌을 거라는 농담을 할 정도에요. 현지인들에게 지굴리는 어떤 점이 좋냐고 물어보면 한결같이 하는 대답 - 짐 나르기 좋아!


짐 나르기 좋은 승용차가 자랑이냐? 그럴 거면 차라리 소형 트럭을 써!


그런데 확실히 지굴리가 짐 하나는 끝장나게 잘 날라요. 사진 보이시죠? 차 위에 가구 실어놓은 거요. 가구 같은 것은 굳이 트럭 쓰지 않고 지굴리로 나르고, 지굴리에 무거운 짐을 산더미처럼 쌓아서 다니는 것도 흔히 보는 풍경. 저렇게 해 놓아도 차는 신기하게 잘 굴러가요.


하여간 마티즈와 지굴리가 박은 현장을 보았는데...


지굴리는 헤드라이트 깨지고 범퍼 조금 찌그러진 정도였어요. 그런데 마티즈를 보니...앞쪽 1/3이 완전히 다 찌그러져서 안쪽으로 푹 꺼져버렸어요. 마티즈만 보면 진짜 제대로 사고 난 것 같았어요. 지굴리를 보면 그냥 가벼운 접촉 사고 난 것 같았구요.


처음에는 마티즈만 보았기 때문에 큰 사고 난 거 아닌가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어요. 그런데 멀쩡히 두 차 운전자가 나와서 누가 잘못했네 서로 따지고 있었고, 경찰이 와서 둘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어요. 운전자들이 멀쩡한 것을 보고서야 지굴리를 보았는데, 지굴리는 가벼운 접촉 사고 정도였던 것이었어요.


운전자 둘 중 하나는 멀쩡했고, 한 명은 머리가 조금 깨져서 피가 나고 있었어요. 그 외에는 둘 다 아주 멀쩡해서 둘이 서서 서로 열심히 상대가 잘못했다고 따지고 있었어요.


"저 다친 사람은 지굴리 운전자일까, 마티즈 운전자일까?"


일단 둘이 들이박는 상황을 못 보았기 때문에 친구와 저도 오직 추리로 맞추어야 하는 상황. 일단 차의 파손 정도를 보면 왠지 다친 사람은 마티즈 운전자. 그러나 운전자 보호할 게 아무 것도 없는 지굴리이기 때문에 오히려 지굴리 운전자가 다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굴리는 안전벨트도 완전 걸레짝이 되어서 이게 과연 제 기능을 할까 경찰 단속에 보여주기용으로 남아 있는 것일까 알 수 없는 지경인 경우도 흔하거든요. 오히려 이런 가벼운 사고인데 머리에서 피를 흘리는 것은 아마 지굴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그저 말로만 우즈베키스탄 마티즈는 철판이 종이같다는 말만 들었는데 정말로 그렇다는 것을 눈으로 본 하루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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