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외국 여행을 가면 책을 사서 모으고 있어요. 책을 사서 모으기 위해 서점을 가면서 여행지와 벗어난 곳도 같이 둘러보곤 해요. 제 외국 여행기를 쭉 보신 분들은 제 여행기에서 서점 가는 이야기가 반드시 한 번은 나오는 것을 알고 계실 거에요. 다른 나라 가서 책을 사서 모으기 위해 서점을 가다보니 그와 관련된 이야기가 여행기에 나올 수 밖에 없거든요.


제가 맨 처음 외국 여행 가서 모으기 시작한 책은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요. 모든 나라에서 다 구입하지는 않았어요. 해당 국가의 국어로 번역된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만 구입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여러 언어로 된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 책을 갖고 있어요. 제가 여행 간 국가에서 사용하는 국어로 번역된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책은 어지간한 곳은 거의 다 있어요.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는 외국 여행 가면서 모으기 시작한 지 꽤 되었어요. 이것만큼은 외국 여행 가면 악착같이 모으려고 하고 있어요. 심지어 전혀 기대할 수 없었던 라오스 가서도 마지막까지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어요. 당연히 라오스에는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 라오스어 버전이 존재할 리 없어서 실패했지만요. 덕분에 라오스 비엔티안에 있는 서점은 열심히 찾아다녔어요. 도서관도 들어가보고 대학교도 가보구요.


이렇게 오기로 덤벼서 어떻게든 모아보려고 하지만 딱 하나 예외였던 나라가 있었어요. 서점 한 곳 갔다가 바로 포기해버린 나라가 있었어요.


바로 투르크메니스탄이었어요.


투르크메니스탄 여행을 갔을 때였어요. 투르크메니스탄은 여행 비자 받기 매우 어려운 나라였어요. 여행 비자를 받는 것도 어려웠지만, 여행 비자를 받는 것으로 끝이 아니었어요. 여행 중 매일 가이드를 대동해야 한다는 조건이 더 붙어 있었어요. 그래서 많은 여행자들이 투르크메니스탄은 5일짜리 경유비자로 방문하고 있었어요. 이것도 하도 많이 이용하니까 아제르바이잔에서는 아예 발급을 해주지 않았고,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대놓고 거진 20일 후에 발급해준다고 해서 이런 여행자들이 이용 못 하게 하고 있었어요. 말이 좋아 20일이지, 경유비자였기 때문에 최종 도착지 비자가 있어야 했어요. 이 비자까지 받으려면 사실상 한 달 걸리는 거였거든요.


천신만고 끝에 투르크메니스탄 경유 비자를 획득했어요. 이때는 제가 우즈베키스탄에 우즈베크어를 공부하러 가 있었던 때였기 때문에 투르크메니스탄 경유 비자를 받을 수 있었어요. 이래도 투르크메니스탄 경유 비자를 받는 길은 참 험난했어요. 다시는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이 있는 쪽으로 절대 안 가겠다고 다짐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우즈베키스탄에서 투르크메니스탄 경유 비자 받은 이야기 : https://zomzom.tistory.com/373


아슈하바트에 도착하자마자 서점을 찾아갔어요. 이때 투르크메니스탄의 투르크멘어 교과서도 구해야 했고, 투르크메니스탄에 왔기 때문에 파울로 코엘료 소설 연금술사 투르크멘어 버전도 있으면 구입할 생각이었어요.


교과서라도 구할 수 있을까?


서점에 갔다가 절규할 뻔 했어요. 투르크메니스탄에 살고 있는 투르크멘인들이 외부 세계 문화를 매우 궁금해한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었어요.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 집권 시절에 쇄국정책을 펼친 나라였거든요. 제가 투르크메니스탄에 갔던 2012년은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가 사망하고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이 집권한 지 6년째였어요. 그러나 여전히 투르크메니스탄은 쇄국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중이었어요.


서점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어요. 투르크메니스탄에서 가장 큰 서점이라고 찾아간 곳 규모는 우리나라 동네 서점보다도 훨씬 책이 없었어요. 면적은 우리나라 동네 서점보다 넓었어요. 넓은 면적을 최대한 활용해서 책을 아주 널찍널찍하게 배치해놨어요. 투르크멘어로 된 책은 거의 없었어요. 아니, 그냥 책 자체가 거의 없었어요. 한쪽 구석에는 러시아어 책이 쌓여 있었어요. 이게 이 나라 최대 서점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았어요. 그러나 곧 납득해버렸어요. 여기는 세계적으로 가장 폐쇄적인 국가 중 하나인 투르크메니스탄이었거든요.


서점이 별로인 것은 우즈베키스탄도 마찬가지였어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 있는 가장 큰 서점을 가도 책이 별로 많지 않았거든요. 책은 분명히 많이 출판하는데 정작 서점 가면 책이 별 거 없었어요. 좋은 책을 구하려면 헌책방을 찾아 돌아다녀야 했어요. 우즈베크어로 좋은 책을 열심히 출판하고 있었지만 그 책들을 서점에서 본 적은 거의 없었어요. 헌책방에 가서 구하거나 인터넷으로 파일을 다운로드해야 했어요.


우즈베키스탄은 서점이 정말 시원찮아도 괜찮았어요. 우즈베키스탄은 희안하게 서점에는 책이 없지만 인터넷에서는 책을 공유 많이 해주거든요. 신간 나오면 서점 갈 게 아니라 인터넷을 뒤져서 파일이 올라왔나 살펴봐야 했어요. '살펴봐야 할 지경'이 아니라 '찾아내야만 했어요.' 책이 실물이 있으면 구입했지만, 실물 없고 인터넷에 파일만 존재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어요.


우즈베키스탄은 인터넷이라도 활성화되어 있어서 괜찮았어요. 의지만 있다면 우즈베키스탄에서 출판된 책 중 어지간한 것은 다 구할 수 있었거든요. 어쩌면 마치 중국에서 신용카드, 체크카드 사용 단계를 건너뛰고 바로 모바일 결제로 넘어간 것처럼 우즈베키스탄도 서점과 도서관을 활성화시키는 게 아니라 바로 인터넷 공유 세계로 발전한 것일 수도 있어요. 선진국은 단계를 앞서서 하나씩 밟아가며 발전하지만 개발도상국은 중간 단계 싹 생략해버리고 신문물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맞춰 발전하는 경우가 꽤 많거든요.


문제는 투르크메니스탄은 인터넷도 제대로 안 되는 나라라는 점이었어요. 2012년만 해도 투르크메니스탄은 인터넷 사용이 사실상 불가능한 나라였어요. 인터넷 사용 활성화가 전혀 안 되어 있는 나라였어요. 그렇지 않아도 이런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러시아의 영향으로 주로 사용하는 인터넷 세계가 매우 상이해요. VK, 아드노클라스니키 одноклассники, 얀덱스 Яндекс 같은 것을 주로 사용하거든요. 이건 그쪽 사람들과 연락할 용도가 아니라면 솔직히 한국인이 이용할 일이 진짜 없어요.


그래서 바로 포기해버렸어요. 이 나라에 파울로 코엘료 투르크멘어 버전 같은 것이 있을 리 없었어요. 그 소설을 정말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냥 러시아어 버전을 구해서 읽을 거였어요. 없는 것을 당장 만들어내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때 이후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 흘렀어요. 인터넷에서 투르크메니스탄 투르크멘어 교과서를 찾아보던 중이었어요. 인터넷으로 투르크메니스탄 투르크멘어 교과서를 구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몇 권 있기는 했지만 그건 저도 갖고 있는 거였어요. 제게 없는 것은 인터넷에도 없었어요. 기대를 전혀 하지 않고 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색하고 있었어요.


'설마 파울로 코엘료 투르크멘어판 있을 건가?'


당연히 투르크메니스탄 투르크멘어 교과서는 없었어요. 검색을 포기하고 그만두려는 차에 문득 파울로 코엘료 투르크메니스탄 투르크멘어 버전이 있는지 궁금해졌어요. 이런 게 존재할 리 없었어요. 투르크메니스탄 방송에서 나오는 서점 보면 제가 갔을 때보다 책이 아주 약간 더 늘어난 수준이었거든요. 아마 방송 촬영한다고 어디에서 책 더 가져와서 진열해놨겠죠.


"어? 뭐야?"


파울로 코엘료 투르크메니스탄 투르크멘어 버전이 있었어요.


"이거 정식 출간된 건가?"


정식 출간된 것은 아닌 것 같았어요. 누가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를 투르크멘어로 처음부터 끝까지 다 번역해서 pdf 파일로 만들어 올려놨어요. 이런 것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했어요.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는 투르크메니스탄 책은 대부분 소련 시절 출판된 책이었고, 그나마도 진짜 책에 곰팡이 피고 변색되어서 책을 들자마자 도서관 특유의 냄새가 진동하게 생긴 책이 대부분이었거든요. 보자마자 눈알 피로 맥시멈으로 찍어주는 시력 파괴 키릴 문자 활자체로 된 책요.


정식 출간된 것이 아닌 것처럼 보였지만 그래도 기뻤어요. 이런 것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에 깜짝 놀랐어요. 이런 것을 구했다는 것에서 엄청난 희열을 느꼈어요. 온라인으로 실물 책을 구할 수 있다면 바로 결제하고 싶었어요. 그러나 그것까지는 없었어요. 단지 pdf 파일로만 존재할 뿐이었어요.


파울로 코엘료 - 연금술사 투르크메니스탄 투르크멘어 버전


1장 첫 번째 문장은 다음과 같았어요.


Ýetginjegiň adyny Santýago diýip tutýardylar.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 영어판 1장 첫 번째 문장은 The boy's name was Santiago 에요. 투르크멘어 ýetginjek 뜻은 '청소년, 10대'에요. 이 문장은 매우 중요해요. '소년의 이름은 산티아고였다'라는 매우 간단한 문장이지만 다양한 언어로 번역된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를 비교해보면 이 한 문장 번역도 제각각이에요. 우즈베크어, 아제르바이잔어, 터키어 버전 모두 The boy's name was Santiago 형식으로 번역해놨어요. 그러나 투르크멘어 버전은 원문인 포르투갈어 버전 문장인 O rapaz chamava-se santiago 에 맞춰서 번역했어요.


이걸 보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바로 이 첫 문장을 번역해놓은 것을 보면 보통 두 가지 버전이 있어요. 하나는 '소년의 이름은 산티아고다' the boy's name was Santiago 이고, 다른 하나는 '소년의 이름은 산티아고라고 불렸다' The boy was called Santiago 에요. 원문인 포르투갈어는 후자를 사용했어요.


두 번째 문장은 다음과 같았어요.


Ol terk edilen hem-de ýarpy bölegi weýran bolan ybadathananyň golaýyna öz dowarlaryny sürüp eltende, iňrik garalyp ugrapdy.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 영어판 1장 두 번째 문장은 Dusk was falling as the boy arrived with his herd at an abandoned church. 에요.


왜 더 구체적인가!


투르크멘어 버전을 직역하면 '그가 버려지고 절반이 파괴된 교회 근처로 자신의 양들을 몰고 갔을 때, 저녁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에요. 영어 버전을 직역하면 '소년이 그의 양떼와 함께 버려진 교회에 도착했을 때 어둠이 내리깔리고 있었다' 정도 되요.


어디에서 절반 파괴되었다는 소리가 나온 거지?


물론 세 번째 문장을 보면 반쯤 파괴된 교회 맞아요. 지붕은 무너진지 오래되었고 성물보관소 자리에는 거대한 나무가 자라고 있었으니까요. 사실 이 정도면 반쯤 파괴된 수준이 아니라 그냥 폭삭 무너진 거에 가까운 수준이죠. 그러나 심지어 포르투갈어판을 번역기로 돌려서 봐도 두 번째 문장에 반쯤 파괴되었다는 말은 없어요.



대망의 맨 마지막 문장. 짧고 꽤 임팩트 있는 문장이죠. 영어 버전은 다음과 같아요.


"I'm coming, Fatima," he said.


투르크멘어 버전은 다음과 같아요.


— Men barýan — diýip, ol içindäkini daşyna çykardy. — Patma, men seni yzlap barýan!


야! 너는 왜 두 번 외쳐!


포르투갈어 버전을 봐도 산티아고는 딱 한 번 외쳐요. 포르투갈어 버전 맨 마지막 문장은 - Estou indo, Fátima - disse ele 거든요. 맨 마지막에 파티마는 딱 한 번 나와야 해요. 이게 정석이에요. 원문이 그런 걸요. 그런데 투르크멘어 버전을 보면 무려 두 번이나 외쳐요. 정석적으로 번역하려 했다면 Men barýan, Patima - diýdi 로 끝났을 거에요. 문화와 어순을 고려해서 Patima, Men barýan - diýdi 라고 번역하는 것까지는 그러려니 해요. 그런데 투르크멘어 버전을 보면 달라요. 투르크멘어 버전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아요.


'나 가고 있어' 라고 그는 가슴 속에 있는 것을 밖으로 끄집어냈다. 파티마, 나는 너를 찾으러 가고 있어!


번역가가 소설 읽으며 번역하다 너무 몰입해버린 건가...


만약 진짜 제대로 번역한다면 '가슴 속에 있는 것을 밖으로 끄집어냈다'라고 하면 안 되요. 저렇게 번역해서 번역했다고 제출하면 욕먹어요. 최소한 '가슴 속에 담고 있던 말을 내뱉었다' 정도로는 바꿔줘야 해요. 그러나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원작에서는 내가 간다고 한 번 외치고 끝인데 여기는 두 번 외쳐요.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 투르크메니스탄 투르크멘어 버전은 처음에는 이런 게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에 놀랐고, 그 다음에는 문장을 비교하면서 웃었어요.


만약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 투르크메니스탄 투르크멘어 버전이 진짜 실물 책이 있다면 한 번 구해보고 싶어요. 이 정도로 번역을 해놨다면 정식 출판되었을 것 같기도 하거든요. 물론 투르크메니스탄에 가는 것 자체가 엄청 힘들어서 앞으로 다시 갈 일이 있을지 아예 모르지만요.


Posted by 좀좀이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안녕하세요

    투르크메니스탄하고 아제르바이잔에 가고 싶어서 이거저거보다가 좀좀이님 블로그를 발견했었어요. 쓰신글들 보면서 포기하자 이 글들을 보면서 만족하자라고 생각했었죠ㅎㅎ

    2020.06.14 10:1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라리어트님께서는 투르크메니스탄과 아제르바이잔 가고 싶으셨군요! 아마 지금도 투르크메니스탄은 비자 여전히 어려울 거에요 ㅋㅋ;;

      2020.06.22 22:02 신고 [ ADDR : EDIT/ DEL ]
  2. 여행 중에 그 나라의 서점을 꼭 방문해보신다니 뜻깊은 여행 습관이시네요. 여러 언어로 번역된 같은 작품을 모으는 것도 멋있어요!

    2020.06.14 14:3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외국 여행 가면 책 구하려고 서점 꼭 가보곤 해요. 같은 작품도 비교해보면 번역이 달라서 꽤 재미있어요 ㅎㅎ

      2020.06.22 22:06 신고 [ ADDR : EDIT/ DEL ]
  3. 저는 여행가면 스타벅스 머그컵을 모은답니다

    2020.06.14 17:0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