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두 개의 장벽 (2012)

두 개의 장벽 - 02 투르크메니스탄 비자 받기

좀좀이 2012. 8. 2.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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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주재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 가는 길



-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


우즈베키스탄에서 투르크메니스탄 비자를 받은 사람은 이 건물을 보기만 해도 신물이 올라올 것이고 앞으로 받을 사람은 이 건물이 끔찍해질 것이다.


1. 지하철 코스모나브틀라르 Kosmonavtlar 역으로 갑니다.


2. 지하철 코스모나브틀라르 역에서 공원쪽 출구가 아니라 공원 반대편 출구 - 즉 큰 길 건너서에 있는 출구로 나갑니다.


3. 쭉 직진합니다. 그러면 하얀 대리석 건물이 보입니다. 이것이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입니다.


4.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 입구는 이 건물 옆 - 즉 왼쪽 주택가로 들어가는 길에 있습니다. 하얀 건물에 도착하면 왼쪽 샛길로 들어가서 담장을 따라 걸으시면 입구와 초소가 나옵니다.


-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 옆에 대한민국 대사관이 있습니다. 즉, 대한민국 대사관 가는 방법대로 가도 상관 없어요. 하지만 지하철 오이벡 Oybek 역에서 내려서 가려고 하면 많이 걸어야 합니다.


첫 번째 방문 - 2012년 5월 25일 금요일


오후 늦게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으로 걸어갔어요.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은 집에서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라서 비자 관련 정보도 얻고 운동 삼아 다녀올 생각이었어요. 참고로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주재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은 지하철 Kosmonavtlar 역 근처에 있어요. 만약 택시 기사가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을 모른다면 '코스모나브틀라르 메트로 베카트'라고 하시면 되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주재 대한민국 대사관 옆에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대사관 가는 방법을 찾아보면 그게 바로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 가는 방법이기도 해요. 전철이나 택시를 이용해서 오실 경우, 기사가 잘 못 알아듣는 경우도 있고 (실제 타지키스탄 대사관의 경우, 친구는 택시로 갔더니 택시 기사가 러시아 대사관으로 가 버림) 경찰이 비슷한 이름을 가진 호텔을 알려주는 경우도 있으므로 저 역으로 가시면 되요.


당연히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 입장은 불가. 투르크메니스탄 들어가는 것도 어렵다고 하지만,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 들어가는 것도 어려워요. 경찰이 다음주 월요일 아침에 오라고 하면서 비자 사본과 사진을 들고 오라고 했어요. 비자 접수 시간은 아침 10시부터 12시까지.


너무나 당연한 말을 들었지만, 애초에 그날 비자 접수할 생각도 없었고 그저 정보나 획득하고 얼마나 주위가 북새통인지 보려고 갔는데 별 거 없었어요.


두 번째 방문 - 2012년 5월 29일 화요일


고난의 시발점


말이 좋아 '고난의 시발점'이지, 실제로는 '고난의 18점'이었어요.


새벽 4시 45분. 집에서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주재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을 향해 걷기 시작했어요.


다른 여행자들과 달리 우리들만이 가지고 있는 이점이라면 오직 두 개 뿐. 현지어를 안다는 것과 일정에 쫓기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리고 집이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에서 걸어서 30분이라는 것은 이점이라고 한다면 이점이라고 할 수 있었어요. 이 외에는 특별할 것이 없었어요.


30분 걸어서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에 도착했어요.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의 위치는 대한민국 대사관 근처에요. 한국 대사관 가는 길이 곧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이에요.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은 엄청 예뻐요. 하얗게 빛나는 건물이 바로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


입구에 있는 경비실로 갔어요. 경비실에는 아무도 없고 종이 쪼가리 하나가 앞에 놓여져 있었어요. 외국인 5명에 투르크멘인 1명의 이름이 올라가 있었어요.


"여기에 그냥 적어도 되나?"


상식적으로 24시간 철통 경비를 해 주어야 하는 대사관에 경비가 하나도 없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경비실 안을 들여다 보았어요.


자고 있네...


경비를 서는 경찰이 경비실 안에서 드러누워 자고 있었어요. 창문이 검게 코팅되어 있었기 때문에 경찰이 안 보였던 거에요. 그러면 그렇지. 지하철도 철통 같이 지키는 이 나라에서 대사관을 그냥 방치해 놓을 리가 없지. 그런데 하도 경찰이 많다 보니 경찰 하나하나는 좀 설렁설렁 일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발에 채이는 돌멩이만큼 경찰복 입고 근무 서는 경찰이 많은 타슈켄트에서 경찰들 하나하나 전부 빡세게 일하면 일반인들은 살 수가 없죠. 솔직히 아침 5시 10분에 대사관에 찾아올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이상한 것이기도 하구요.


창문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자 직원이 일어났어요.


"비자 받으러 왔어요."


직원은 잠깐 기다려보라고 하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어요. 그리고는 30분 기다리라고 하고 다시 들어가 드러누워 자기 시작했어요.


대사관 근처에는 앉아서 쉴 만한 곳이 없었어요. 근처에 앉아서 쉴 수 있는 공원이 있기는 한데, 우리가 없는 동안 누가 와서 자기 이름을 먼저 적으면 그것도 낭패이기 때문에 다른 곳에 가서 쉴 수도 없었어요. 그래서 경비실 벽에 기대어 쭈그려 앉았어요.


동네 주민들이 개를 끌고 산책을 나왔어요.


"왠 거지냐?"


우리들을 바라보는 개의 눈빛이 딱 저랬어요. 개들도 혀를 차는 듯한 눈빛으로 우리들을 쳐다보았어요. 경비실 벽에 기대어 잠과 싸우며 쭈그려 앉아있기는 싫었지만 마땅히 방법이 없었어요.


진짜로 딱 30분 후. 다른 경찰이 왔어요. 우리가 인사를 하자 직원은 다짜고짜 이야기했어요.


"오늘 비자 일 안 해."

"예?"

"6월 4일부터 비자 일 하니까 그때 와. 그때 내가 일해."


인터넷에 나와 있는 대로 차라리 뇌물 5달러 달라고 하는 게 낫지...뇌물 달라고 하면 뇌물로 주려고 달러도 챙겨갔어요. 하지만 경찰은 뇌물을 달라고 하는 게 아니라 아예 오늘은 대사관에서 비자를 주지 않는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일주일 후에 오라고 했어요. 경찰은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증명사진과 여권 복사본이 필요하다고 알려주었어요.


세 번째 방문 - 2012년 6월 4일 월요일


- 이 사진은 2012년 6월 4일 새벽 4시 52분에 촬영한 사진입니다.


새벽 3시 30분. 집에서 나와 타슈켄트 주재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을 향해 걷기 시작했어요. 제가 세운 계획은 다음과 같았어요.


6.4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에 아제르바이잔을 가기 위한 경유비자 신청

6.6 아제르바이잔 대사관에 가서 아제르바이잔 관광 비자 받음

6.11 또는 6.14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에 가서 투르크메니스탄 경유 비자 받음

6.15 거주지등록


이렇게 하면 6월 안에 모든 것을 다 끝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투르크메니스탄 경유 비자를 우즈베키스탄에서 받는 것이 짜증나는 일이기는 했지만 그게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일도 아니고 다른 여행자들 우즈베키스탄에 한 달 짜리 관광비자로 들어와서 잘 발급받는 일이었기 때문에 우리라고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어요. 단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투르크메니스탄 경유 비자 취득 경험담들처럼 그저 매우 짜증나는 일일 뿐이었어요.


도로에는 행인이 없었어요. 경찰도 거의 없었어요. 차도 거의 없었어요. 가끔 차가 우리들을 보고 '택시?'라고 물어볼 뿐이었어요.


대사관에 도착했을 때에는 새벽 4시였어요. 슬슬 동이 터오르고 있었어요. 우리들은 8,9 번째. 종이가 경비실 앞에 놓여져 있었는데 그냥 적어도 되는지 궁금해서 경비실 안을 보았더니 경찰이 잠을 자고 있었어요. 그래서 경찰을 깨워 그냥 종이에 우리들이 알아서 이름을 적으면 되냐고 물어보자 그러면 된다고 했어요. 인터넷에서는 번호에 공란이 많고 뇌물을 쥐어주어야 앞에 쓸 수 있다고 했는데 그런 것은 없었어요. 그냥 순서대로 이름 적기. 이름을 적고 집에 돌아갈까 했지만 대사관에 다시 일찍 와야했기 때문에 대사관 근처에서 시간을 죽이며 기다리기로 했어요. 집에 갔다가 돌아오면 한 시간 넘게 걸어야 했거든요.


시간을 때우고 있는데 외국인 두 명이 왔어요. 그들은 투르크메니스탄 사람이 적는 칸과 외국인이 적는 칸 모두에 자기들 이름을 적고 대사관 근처에서 시간을 때우기 시작했어요.


잠시 후. 우즈벡인 남자와 여자가 와서 기다리기 시작했어요.


"우리 저 사람들이랑 잡담이나 하면서 시간 때울까?"


가만히 기다리기엔 너무나 긴 시간. 그래서 우즈벡인 부부에게 다가갔어요.


"시계 있으세요?"


친구가 물어보았어요. 그들은 친절하게 대답을 해 주었고 그 사람들과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어요. 그 사람들은 우즈베키스탄 카라칼팍스탄에 사는 투르크멘인들이었어요. 누쿠스에서 버스로 타슈켄트에 왔고, 지난주까지 비자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바뀌는 바람에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이 일을 하지 않았다고 알려주었어요.


우즈벡인 부부는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책에 매우 큰 관심을 보였어요. 투르크멘어 교재를 보여주자 읽으면서 우즈벡어로 해석까지 해 주었어요. 우즈벡인 부부는 자기들은 투르크메니스탄에 살고 있는 친지 방문이라서 3일까지는 비자가 필요없고 대사관에 8달러만 내면 된다고 알려주었어요.


슬슬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자 목이 말랐어요. 그래서 콜라 500cc 5개를 사와서 같이 잡담하던 우즈벡인 부부와 대사관을 지키는 경찰에게 하나씩 드리고 콜라를 마시기 시작했어요. 대사관을 지키는 경찰은 지난주 우리에게 다음주 오라고 알려주었던 그 경찰이었어요.


우즈벡인들과 잡담하며 시간을 때우다 10시가 되자 드디어 대사관 직원이 명단을 적기 시작했어요. 하나하나 호명하는데 사람들이 우루루 달려왔어요. 아무리 경찰이 하나하나 호명하니 그때 대답만 하면 된다고 소리쳐도 소용이 없었어요.


우리 이름이 정상적으로 올라가자 또 지루한 기다림. 그때 한 일본인이 왔어요. 이름을 적었는지 확인하려고 하는데 러시아어도 우즈벡어도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경찰들과 손짓발짓하는데 처음에는 농아인 줄 알았어요. 일본인이 그늘에 가서 쭈그려 앉아있는데 한 경찰이 가서 담배를 달라고 손짓 발짓으로 말했어요. 그러자 일본인이 담배를 주고 둘이 손짓 발짓만으로 대화하기 시작했어요. 그걸 보고 사람들이 다 애써 웃음을 참으려 하는데도 웃음이 터져나와 큭큭 웃어대기 시작했어요.


대사관 앞에서 순서가 오기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대사관 직원이 외국인들 다 들어오라고 했어요. 대사관에 들어가려는데 경찰이 '너희 운 좋다'고 했어요. 핸드폰을 경찰에게 맡기고 대사관 안에 들어갔어요.


"비자는 20일 후에 나와요."


같이 들어간 외국인들이 급행은 안 되냐고 물어보자 영사 직원이 단칼에 급행은 안 된다고 했어요. 영사 사무실에 들어온 사람들 모두 20일 후에 받는 것에 동의하자 영사 직원은 전부 이란으로 가냐고 물어보았어요.


"아제르바이잔이요!"


사무실에 들어온 사람들 중 오직 우리들만 아제르바이잔 때문에 투르크메니스탄 경유 비자를 신청하러 온 것이었고, 나머지는 전부 이란 때문에 투르크메니스탄 경유 비자를 신청하러 온 것이었어요. 우리가 아제르바이잔으로 간다고 하자 영사 직원이 비자 사본 가져왔냐고 물어보았어요.


"비자 사본이요?"

"비자 사본 없으면 신청 안 되요."

"신청만도 안 되나요?"

"안 되요. 비자 받아온 후 다시 오세요."


분명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사람들의 투르크메니스탄 경유 비자 획득 방법에는 비자 사본은 신청 단계에서 필요 없다고 되어 있었어요.


"우즈벡어 아세요?"

영어로 이야기해야 하는데 급하니 영어가 뒤죽박죽으로 나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우즈벡어를 아냐고 물어보았어요.

"알아요."


그래서 우즈벡어로 물어보았어요.


"저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투르크메니스탄을 경유해서 아제르바이잔에 가고 싶어요. 경유 비자를 위해서도 비자 사본이 필요한가요?"

"예. 필요해요."


다른 외국인들이 수근대기 시작했어요. 저 사람들 어디 말 하는 거야, 우즈벡어 한다 등등등. 영사 직원은 우리가 아제르바이잔 비자 사본 없이 왔다고 하자 비자 신청조차 안 된다고 하고는 다른 사람들에게 비자 사본 가져왔냐고 물어보았어요. 다른 외국인들은 모두 이란 비자 사본을 받아왔어요.


아침 내내 기다렸는데 쫓겨나는 데에는 불과 5분 채 걸리지 않았어요. 새벽 4시부터 기다려서 5분도 안 걸려 서류미비로 쫓겨났으니 당연히 짜증은 솟구치고 온몸에 힘은 쭉 빠져버렸어요. 우리가 우즈벡어 허탈해하며 나오는데 우리와 잡담하며 시간을 보냈던 우즈벡인 남자가 우리들에게 잘 되었냐고 물어보았어요.


"절차 바뀌었대요. 비자 사본 있어야 한대요."


그저 허탈할 뿐이었어요. 우즈벡인 남자는 우리에게 잘 될 거라고 했고, 우리는 우즈벡인 남자에게 인사를 한 후 집으로 돌아왔어요.


집에 돌아가는 길. 생각해보니 우즈베키스탄 비자가 있었어요. 그걸로 신청해서 아제르바이잔에서 돌아올 때 투르크메니스탄을 경유해서 올 걸 그랬나? 하지만 어차피 우즈베키스탄 비자 사본이 없었어요. 그거 만들면 다음날 오라고 할 게 분명했어요. 결정적으로 그렇게 해 봐야 대답은 '아제르바이잔 비자 내놔 봐' 일 것 같았어요.


집에 돌아오는데 짜증이 제대로 났어요. 경유 비자 하나 받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20일. 그런데 정확히 20일 후에 나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우즈베키스탄 비자 갱신 문제 때문에 반드시 여행을 7월 1일에 시작해야 하는데 6월 7일에 서류 접수하면 20일 후가 6월 26~27일. 정확히 이날 나오지 않으면 그것도 문제였어요. 왜냐하면 기차표를 못 살 확률이 매우 높아지기 때문이었어요. 우즈베키스탄도 기차표가 인기가 좋아요. 버스로 가는 방법도 있지만 이건 정말 최악이라고 보시면 되요. 버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당연히 쾌적한 버스가 다닐 리 없죠. 게다가 우즈베키스탄에서 한밤중에는 버스 운행을 법적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먼 곳은 길에서 자고 넘어가요. 타슈켄트에서 부하라까지 버스를 타고 가려면...생각만 해도 끔찍했어요. 그나마도 버스를 놓치면 택시를 타고 가야하는데 부하라까지는 엄청나게 먼 거리에요. 기차표를 사는 것 역시 이 여행의 주요 관건이자 핵심 변수였어요. 비자만 빨리 나온다면야 기차표 사는 것이 아무 문제가 안 되겠지만, 7일날 신청해서 한참 뒤에야 나온다면 그건 진짜 문제가 되는 상황. 그렇게 된다면 기차로 가는 것은 포기해야 하고, 여행 경비는 엄청나게 뛰어요. '그나마 조금 덜 피곤하고 큰 돈을 써서 택시로 가느냐, 아니면 여행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엄청난 피로를 끌어안게 될 것을 각오하고 버스를 타고 가느냐' 라는 둘 다 최악인 선택지 중 하나를 차악이라고 골라야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었어요. 게다가 부하라행 기차표는 전에 한 번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다가 못 산 적이 있었어요.


"아우...그냥 관광비자 신청해?"


생각해보니 관광비자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았어요. 나머지 구간은 전부 통과하고 아슈하바트에 머무르는 것은 똑같고, 감시원으로 따라다닌다는 가이드에게 투르크멘어 교과서 구하는 것 도와달라고 하는 것도 괜찮은 생각이었어요. 팔지도 않고 학기가 끝날 때 싸악 걷어가 버린다는 교과서를 구하려면 아무래도 현지인의 도움이 있어야 할 거라는 것이 제 추측이었어요. 만약 못 구한다고 한다면 얼마쯤 쥐어주고 복사라도 해서 갈 생각이었거든요.


그래서 인터넷을 검색해 투르크메니스탄 관광 비자 초청장을 대행해준다는 우리나라 여행사에 메일을 보냈어요.


결과는 참담했어요. 대부분 여행사가 자기들도 어느 여행사의 도움을 받아 초청장을 받아주고 있어서 모르겠다고 했는데, 그 도움을 준다는 여행사 측에서는 자기들도 작년부터 이유 및 설명 없이 일방적으로 거부당하고 있어서 초청장 발급을 도와줄 수 없다고 했어요. 그리고 그나마 투르크메니스탄 관광 비자 초청장을 도와줄 수 있다고 한 여행사가 딱 한 곳 있었는데, 그 여행사에서는 일단 투어 패키지 예약 후에나 견적이 나온다고 한데다, 결정적으로 비자 신청서 검토가 12~15일 걸린다고 답장을 보내왔어요.


12~15일이면 그냥 경유 비자 받고 말지...


비자 발급에 걸리는 시간을 줄여보려고 관광 비자를 알아보았는데 관광 비자나 경유 비자나 큰 차이가 없었어요. 15일이나 20일이나 그놈이 그놈이었어요. 그냥 비교해보면 5일이나 차이나지만, 어차피 초청장 나오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있으니까요. 오히려 섣불리 관광 비자 준비하다가 일만 제대로 망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투르크메니스탄은 모든 일정을 확정해야 관광 비자 초청장이 나와요. 그런데 솔직히 모든 일정을 확정할 정도의 정보가 있다면 미지의 나라가 아니죠. 어떻게 보면 당연하겠지만, 답장에서 알려준 내용은 Lonely Planet Central Asia 편에 나와 있는 투르크메니스탄 관광 비자 취득 방법과 큰 차이 없었어요. 즉, 호텔 알아보고 초청장 신청하는 것이 그냥 얌전히 경유 비자 신청하는 것보다 돈은 당연하고 시간까지 더 걸릴 수 있었기 때문에 관광 비자 획득은 그냥 포기했어요.


그리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관광 비자라고 해도 아침에 가서 그 짓을 해야 하는 것은 똑같았어요.


"내일 아제르바이잔 대사관 가서 비자 받기만을 빌자..."


네 번째 방문 - 2012년 6월 7일 목요일


- 경찰이 아침 일찍 올 필요 없다고 해도 사람들이 아침 일찍 와서 이렇게 이름을 적습니다. 대체 얼마나 악명이 높았으면 경찰 말대로 일찍 올 필요도 없는데 사람들이 새벽에 와서 알아서 종이를 꺼내 이름을 적기 시작할까요?


드디어 아제르바이잔 비자를 획득했어요. 이제 남은 것은 투르크메니스탄 비자를 획득하는 것. 새벽 4시. 또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을 향해 걸어갔어요. 이번에는 몸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이름만 적고 바로 집에 돌아와 쉬다가 오전 10시 전에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에 지하철로 갈 계획이었어요.


'우즈벡 비자로 투르크메니스탄 경유 비자를 신청해볼까?'라는 생각은 좀 더 진화해서 '경유 비자 2개를 받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으로 발전했어요. 아제르바이잔 비자가 있으니 아제르바이잔으로 가는 경유 비자를 받고, 우즈베키스탄 비자가 있으니 아제르바이잔에서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투르크메니스탄을 경유해 돌아오는 것이었어요. 이게 성공한다면 투르크메니스탄에 총 10일 체류할 수 있어요.


이번에는 7,8번째였어요. 이름을 적고 날이 조금 밝아지기를 기다렸다가 바로 집에 돌아왔어요.


아침 9시 10분. 지하철을 타고 Kosmonavtlar 역으로 갔어요. 지하철에서 출구를 잘못 나와서 잠시 헤매기는 했지만 별 문제 없이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에 갔어요. 만약 Kosmonavtlar역에서 나왔는데 조형물과 조그만 광장이 보인다면 공원 쪽 - 조형물 뒤에서 앞쪽으로 쭉 걸어가세요. 헤매느라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9시 50분에 무사히 도착했어요. 만약 헤매지 않았으면 금방 도착했을 거에요. 경찰에게 길을 물어보았더니 엉뚱한 호텔을 알려주어서 길을 헤매었어요. 다행히 그 동네에 있는 조형물은 몇 달 전에 와 본 곳이라서 다시 돌아가서 길을 찾을 수 있었어요.


"우리 말고 몇 명이나 적었을까?"


외국인 순번은 25번까지 올라가 있었어요. 종이를 확인하는데 경찰이 우리를 보고 웃었어요. 이 경찰, 벌써 세 번째 만나요. 경찰이 비자 받아왔냐고 해서 비자 받아왔다고 했어요.


"설마 그 '리'라는 사람 또 왔을까?"


전에 왔을 때 이상하게 '리'라는 사람과 '킴'이라는 사람이 최상위권에 적혀 있었어요. 둘은 분명히 한국인. '리'야 다른 나라 사람일 수도 있지만 '킴'은 한국인 성씨에요. 그래서 종이를 보았더니 5월 29일부터 맨 위에 '리'라고 적힌 사람이 없어지고 대신 6월 4일에 '킴'이라고 적혀 있는 사람이 또 3등으로 적혀 있었어요.


"이 사람 한국인이에요?"


다른 한국인 이름이 올라가 있는 것이 신기해서 경찰에게 물어보았어요. 경찰은 우리처럼 한국인인데 그 사람들은 회사 때문에 항상 그렇게 적어놓는다고 했어요. 그리고 경찰은 우리가 7,8번째인 것을 확인하더니 오늘 가장 먼저 들어갈 거라고 했어요. 다른 사람들이 말한 것처럼 '뇌물 받고 적어주는 공란'은 없었어요. 하지만 고정적으로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사람들은 있었어요.


아침 10시가 조금 넘자 대사관에서 직원이 나와 종이에 적힌 명단을 받아 적었어요. 우리는 그늘에 정신 놓고 앉아서 명단 확인하는 것을 못 듣고 뒤늦게 갔지만 이미 세 번이나 보고 한 번은 콜라를 가져다드린 경찰 아저씨 덕분에 별 문제 없었어요.


이번에는 외국인 우대가 없었어요. 가장 먼저 들어가는 사람들은 투르크메니스탄인들. 그 다음 투르크메니스탄인이 아닌 사람들이 차례대로 들어갔는데 경찰 아저씨 말대로 조금 기다리자 금방 차례가 돌아왔어요.


대사관 안에 들어가자 한 남자가 우리에게 반갑게 인사했어요. 얼굴을 보니 지난 번 사무실에서 바로 쫓겨나던 날 사무실에서 보았던 사람이었어요. 그 사람은 영어를 조금 할 줄 알았어요. 우리에게 비자 받아왔냐고 물어보아서 비자 받아왔다고 했어요.


비자 접수대는 유리로 막혀 있는데 투르크메니스탄 여권을 들고 있는 여자와 영사 직원이 서로 소리치며 싸우고 있었어요. 러시아어로 싸우고 있어서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영사는 뭔가 계속 안 된다고 말하고 있었고, 여자는 왜 안 되냐고 따지는 것 같았어요. 이런 경우, 승자는 이미 정해져 있어요. 당연히 승자는 영사 직원. 영사 직원을 힘으로 눌러버릴 인맥이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 안에 있다면 이 시각에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에 직접 찾아와 영사와 싸우고 있지도 않죠. 영사는 머리 끝까지 화가 나서 안으로 들어가 버리고, 여자는 계속 투덜대며 밖으로 나갔어요.


한 번 받기도 어려운 경유 비자를 두 개 신청하려고 하는데 시작부터 분위기가 안 좋았어요. 잠시 후, 영사 직원이 나오더니 우리에게 비자 받아왔냐고 물어봤어요. 그래서 받아왔다고 하자 비자를 보여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비자 사본과 여권에 붙어 있는 비자를 보여주자 비자신청서를 주었어요.


우리를 도와주는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영사 직원에게 경유 비자 2개 받을 수 있냐고 물어보았는데 단칼에 거절당했어요. 여기에서 두 개 다 찍어줄 수는 없고, 그렇게 하고 싶다면 하나는 아제르바이잔 가서 받아야 한다고 했어요.


서류 작성을 하는데 아저씨가 계속 도와주셔서 금방 적어서 제출했어요. 저는 아저씨의 도움을 받으며 여권 서류를 작성하며 옆의 친구가 쓰는 것을 봐 주었어요.


"야, 그거 Travel이라고 적으면 안 돼!"

친구가 방문목적에 당당히 아주 또박또박 예쁘고 크게 '여행'이라고 적었어요.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계속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우리의 방문 목적은 어디까지나 경유. '아제르바이잔을 위해 투르크메니스탄을 지나가는 것'이었어요. 당연히 '관광'이라고 적으면 비자 접수조차 안 되요. 아저씨께 설명을 들으며 비자 신청서를 작성하고, 친구에게 어떻게 적는지 알려주었어요. 투르크메니스탄 비자 신청서는 다른 나라의 비자 신청서와는 생긴 게 조금 다른데다, 목적 자체가 경유라서 매우 신경쓰였어요.


신청서에 경유 경로를 어디에 적으라는 말이 없었어요. 그래서 아저씨께 여쭈어보자 아저씨께서는 영사 직원에게 물어보았어요. 아저씨 덕분에 다행히 경유 경로를 적었어요. 우리가 적은 경로는 부하라 근처에 있는 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 국경인 파라브 Farab 로 들어가서 투르크메니스탄의 항구인 투르크멘바쉬 Turkmenbashi 로 나가는 것이었어요.


아제르바이잔 비자 사본과 여권 사본, 그리고 비자신청서를 제출하자 영사가 25일에 다시 오라고 했어요. 25일 아침에 와서 비자 발급 여부를 확인하고, 만약 비자 발급이 승인이 되었다면 35달러와 여권을 제출하고 4시에 와서 비자와 여권을 받아가면 된다고 했어요.


겨우 서류접수에 성공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헉! 출생지에 고향 이름만 적었다!"


이런 멍청하고 한심한 실수를 저지르다니! 비자신청서를 작성하는데 별 생각 없이 죽죽 썼어요. 온통 신경은 7월 1일에 Farab 국경으로 들어가서 7월 5일에 Turkmenbash로 나오는 일정과 경로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어요. 그래서 출생지 적는 칸에 제가 태어난 도시명만 덜렁 쓰고 나왔어요.


급히 대사관으로 돌아가 직원에게 사정을 설명했어요. 그러자 직원은 어차피 본국에서 허가가 나와야 비자가 나오는 것이고 신청서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돌려 보냈어요.


"아...망했다!"


이제 모든 건 대사관 직원의 관용에 따라 달렸어요. 사실 큰 실수는 아니에요. 출생지를 제 고향을 적는 게 맞기는 한데, 그게 어디인지 잘 알 수가 없으므로 대충 국가를 쓰는 게 대부분이에요. 그리고 여권 사본도 제출했으므로 이런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요. 여권이 한국인이라고 되어 있으므로 '경유'와 '입출국 날짜 및 지점'만 제대로 적으면 나머지는 여권 보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 하지만 직원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이것 하나 가지고 트집잡아 거절해 버릴 수도 있어요. 안 그래도 운을 믿어보아야 하는데 더더욱 운을 믿어보아야 하는 상황.


갑과 식당에서 점심을 같이 먹다 비자 작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했어요.


"투르크멘 비자는 신기하게 여권번호 적으라는 칸이 없더라?"

"아니야. 있었어."


"악!"


순간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쫙 굳어버렸어요. 다른 생각 하나도 안 들고 그저 '망했다'는 생각 뿐이었어요. 아...미친...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친구에게 다시 물어보았어요.


"어디에 여권 번호 쓰라는 칸이 있었어?"

"그 여권 종류 체크하는 칸 있잖아. 거기에 여권 번호도 쓰라고 되어 있었어."


친구 것 봐주며 쓰다가 정작 제 비자 신청서를 엉망으로 적었어요. 고향을 적은 것도 모자라 비자 신청서에 여권 번호도 적지 않았어요.


이제 모든 건 운에 달렸어요. 사실 비자 신청서에 여권 번호를 안 적은 것은 어떻게 보면 고향을 적어놓은 것보다는 작은 실수. 왜냐하면 비자 신청할 때 당연히 제 여권 사본도 제출하므로 제 여권 번호 확인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하지만 이건 정말 운에 따른 거에요. 직원이 정말 깐깐하다면 이거 하나를 트집잡아 바로 비자 발급을 거부해 버릴테고, 직원이 착하고 관대하다면 제 여권 사본을 보고 여권 번호를 기입해 줄 거에요. 이제는 그저 로또.


다섯 번째 방문 - 2012년 6월 25일 월요일


- 우리 같이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 건물을 감상합시다.


직원이 오라고 한 날이 되었어요. 그간 이사를 갔기 때문에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 가기 더욱 나빠졌어요. 예전에는 대사관이 걸어서 30분 거리였는데 이제는 대사관까지 걸어서 2시간 거리. 정확한 건 아니고 지금 사는 곳에서 Amir Temur Hiyoboni까지 1시간 반 정도 걸리고, Amir Temur Hiyoboni에서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까지 약 30분 걸려요. 아마 쉬지 않고 걸으면 2시간은 훨씬 넘을 거리.


새벽 3시 반. 사는 곳에서 전철역도 멀고, 새벽에 택시가 많이 있을 리 없어서 여차하면 걸어갈 각오로 집에서 나왔어요.


"제발 비자 나와라...제발 비자 나와라..."


저는 이제 운에 모든 것을 맡겨야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계속 주문처럼 '제발 비자 나와라'만 중얼거리며 걸었어요. 계속 중얼거리며 거리를 걷다보니 어느새 시장에 도착했어요. 시장에서는 꽃을 파는 상인이 벌써 장사를 할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차가 많이 다니는 큰 길로 나와 계속 걸어가며 승용차가 지나가면 차를 잡기 위해 손을 내밀었어요. 하지만 차는 그저 빠르게 달릴 뿐이었어요.


30분쯤 걷다가 드디어 차를 잡았어요. 택시를 타고 쭘 ЦУМ (우즈벡어로는 MUM)까지 가서 대사관까지 걸어갔어요. 대사관에 도착하니 4시 30분.


대사관 경비실에는 경찰도 없고 이름을 쓰는 종이도 놓여있지 않았어요. 예전에는 경비실 안에서 경찰이 누워 있을 수 있게 되어 있었는데 내부를 들여다보니 불편한 철제 의자 하나만 놓여 있었어요. 24시간 지켜야할 대사관 입구를 아무도 안 지키고 있는 황당한 상황. 친구도 저와 비슷하게 대사관에 도착했어요. 저는 제가 입구에서 지키고 있을테니 친구에게 한 번 대사관을 둘러보고 오라고 했어요.


대사관 입구 경비실 앞에 쭈그려 앉아있는데 아무도 오지 않았어요. 당연히 새벽 4시 반이니 올 사람도 없었어요. 잠시 후. 친구가 왔어요.


"왜 벌써 왔냐는데?"

"응?"

"아침 8시에 오면 된대."


무슨 소리야?


여기는 비자 받기 그렇게 힘들다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주재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 순위권에 못 들어가면 허탕치고 다음날 또 와야한다고 악명이 높아서 새벽부터 부리나케 달려가서 종이에 이름적고 대기해야 하는 곳이에요. 그런데 경찰이 8시에 오면 충분하다고 했다고 했어요. 이 경찰이 여기 처음이라서 잘 모르나? 왜 그렇게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다른 쪽 - 즉 직원들 출입구를 지키는 경찰은 대사관 입구 경비실을 지키는 경찰이 아침 7시에 올 거라고 알려주었다고 했어요.


"종이도 없는데 그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야 하나?"


종이에 이름을 쓰면 대사관 직원이 10시에 나와서 종이에 적힌 이름을 일일이 불러서 왔는지 확인하고 수첩에 이름을 적어가요. 그 종이에 적힌 순서대로 대사관 안에 들어가서 일을 보는 거에요. 그런데 종이가 없었어요. 우리가 마음대로 만들어도 되는지, 아니면 경찰이 주는 종이에 써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우리에게는 종이도 없었어요.


대사관 입구에서 쭈그려 앉아서 경찰이 오기를 기다리는데 5시가 되어서야 우즈벡인 일반인 2명이 왔어요. 그래서 우리가 종이에 이름을 적고 기다려야 하는데 경찰도 없고 종이도 없다고 하자 A4 용지 한 장을 꺼내 선을 가운데에 긋고 왼쪽에는 우즈벡인, 오른쪽에는 투르크멘인이라고 적었어요. 그리고 우리가 먼저 왔으므로 우리에게 먼저 이름을 쓰라고 했어요. 드디어 저와 친구가 1,2등을 했어요.


대사관 입구 근처에 앉을 자리라고는 다 부서진 의자 한 개가 전부. 그래도 두 명이 앉을 수 있는 의자라 의자에 가서 앉았어요. 우즈벡인 2명은 우리에게 서류를 복사해서 오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9시까지는 오라고 알려주었어요. 대사관 직원이 보통은 10시 즈음에 나와서 명단을 적어가는데 그때 반드시 꼭 자리에 있어야 하거든요.


이제부터 지루한 기다림의 시작. 제 핸드폰이 고장났기 때문에 계속 켰다 껐다를 반복했어요. 집에서 완충해 왔는데 하도 껐다 켰다 해서 배터리가 31%가 되자 그때부터 3G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어요. 지루한 시간을 때우기 위해 사람들와 열심히 카카오톡으로 채팅을 했어요. 한국이 우즈베키스탄보다 4시간 느려서 가능한 일이었어요.


겨우 3G가 작동되어서 채팅을 하는데 배터리가 슬슬 바닥이 나고 있었어요. 그래도 배터리를 아낄 이유가 없었어요. 어차피 맛이 간 핸드폰이라 작동될 때 배터리를 써야지, 안 그러면 전기 낭비니까요.


배터리가 3% 남자 이번에는 MP3로 노래를 듣기 시작했어요. 책을 보려고 책도 들고 왔는데 당연히 책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어요. 머리 속 생각은 온통 '제발 오늘 비자 나와라' 뿐이었어요. 진짜 정문에서 영사 직원 앞까지 포복으로 기어가면 비자 준다고 한다면 기어가고 싶을 정도였어요. 노래를 들으니 시간은 가만히 있는 것보다 잘 가기는 하는데, 어차피 시간이 지지리 안 흘러가는 것은 마찬가지였어요.


우즈베키스탄 주재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의 업무 시작은 오전 10시. 저는 새벽 4시 반에 왔어요. 5시간 반을 멍하니 대사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해요. 진짜 10분이 1시간 같았어요. 무엇을 해도 시간이 가지 않았어요. 아침 8시가 되어서야 경찰이 대사관 앞을 스윽 훑어보고 지나갔어요. 그리고 8시 반 즈음, 우리 바로 다음으로 온 우즈벡인 여자 2명이 돌아와서 우리가 앉는 의자에 같이 앉았어요. 4명이 일렬로 앉지는 못하기 때문에 서로 등을 마주대고 둘이 절반씩 앉았어요. 그렇게 앉아있는데 불편해서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전에 투르크멘인들과는 재미있게 대화하며 시간을 잘 보냈는데 오늘은 서로 말이 없었어요. 대화를 하려고 해도 말이 그다지 길게 이어지지 않았어요. 단편적인 말 몇 마디를 주고받고 한동안 침묵. 진짜 시간을 비자를 위해 바치는 기분이었어요. 머리 속은 이제 두 가지 생각. '시간 더럽게 안 가네', 그리고 '제발 오늘 비자 나와라'. 아제르바이잔 대사관 앞에는 그래도 제대로 된 의자라도 있는데 여기는 의자도 부서진 의자에요. 정확히 표현하자면 '의자의 철제 다리 위에 각목을 세 개 이어서 위에 올려놓은' 것이 맞아요. 앉아 있으면 엉덩이 엄청 아프고, 그렇다고 안 앉아 있자니 서 있거나 쭈그려 앉아 있기에는 긴 시간을 버텨야하기 때문에 안 앉을 수도 없는 이래도 최악, 저래도 최악인 조건이에요. 다른 곳은 전부 먼지와 흙투성이라 앉으면 옷이 다 버려요.


어떻게 10시까지 버텼는지도 모르겠어요. 그저 한없는 지루함과의 싸움이었어요. 그리고 그 시각 내내 저는 오직 '시간 더럽게 안 가네'와 '제발 오늘 비자 나와라'만 생각했어요.


드디어 10시. 직원이 나와 경비실 입구에 놓여 있는 종이를 보며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어요. 한참 이름을 부르는데 그제서야 경찰이 왔어요. 경찰이 하는 일이란 사람들이 대사관 문에 달라붙지 못하게 하기. 대사관 입구 맞은편 그늘로 사람들을 쫓아내는 게 경찰이 하는 일이었어요.


우리는 1등. 둘이서 당당히 맨 처음으로 대사관에 들어갔어요.


"안녕하세요."


무뚝뚝한 표정으로 영사 직원이 우리를 쳐다보았어요.


"우리는 6월 7일에 서류 제출했어요. 비자 받으러 왔어요."


영사 직원은 서류철을 뒤지기 시작했어요. 처음 것에서 우리들 것이 없자 신경질적으로 덮어버리고 다음 것을 뒤지기 시작했어요. 일단 우리 서류 위에 자체 결제 서류 같은 게 붙어 있었어요. 영사 직원은 우리들 것을 가지고 영사 직원실 안에 있는 전화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어요.


전화 통화 후. 심장은 미칠 듯 뛰고 있었어요. 최대한 내색을 안 하려고 했지만 심장은 제 통제를 벗어났고, 제 두 눈은 영사 직원의 얼굴을 향해 고정되었어요. 딱 수능 성적표 받는 그 순간의 기분이었어요.


제발 오늘 비자 나와라...

제발 오늘 비자 나와라...

제발 오늘 비자 나와라...

제발 오늘 비자 나와라...

제발 오늘 비자 나와라...


영사 직원은 딱 굳은 표정으로 유리창 앞으로 돌아왔어요. 표정이 더 굳어있었어요.


"내일 다시 와!"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시시시시시시시시시시

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


이 미친 짓을 내일 또 해야 해!


이유는 본국에서 결재가 내일 나기 때문이라고 했어요. 내일 비자가 나오냐고 물어보자 그건 모른다고 했어요. 그리고 대사관 직원이 우리를 영사실에서 빨리 나가라고 소리치며 쫓아냈어요. 빨리 나가라고 아예 문까지 열어주었어요. 쫓겨나기 전, 영사가 손에 들고 있는 서류를 얼핏 보았어요.


내 이름 있는 것 같아!


얼핏 보았는데 볼드 처리 된 이름이 2개 있는 것 같았어요.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하나는 분명히 친구의 성이었고, 그 아래에 볼드 처리된 이름 비슷한 것이 하나 더 기재되어 있었어요.


아무 난리도 소동도 치지 않았는데 영사실에서 쫓겨나 대사관에서 나왔어요.


내일 이 짓을 또 해야 한다는 생각에 눈 앞이 깜깜했어요. 대사관 문에서 나와 경찰에게 물어보았어요.


"종이에 이름 몇 시부터 적을 수 있어요?"


인터넷에서 투르크메니스탄 비자 받은 사람들 이야기 보니까 뇌물 주면 먼저 들어갈 수 있다고 했어요. 진짜 뇌물을 주고 싶었어요. 이건 정말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어요. 꼭두새벽에 집에서 나와서 꼭두새벽부터 대사관 앞에서 멍하니 죽치고 앉아 대사관이 일할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꼭두새벽에 집에서 나와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낮에 미리 잠을 자 놓아야하고, 이제는 택시를 타고 가야 해서 돈까지 들어가요. 지금까지 이 짓을 4번 했어요. 이건 더 할 짓이 못 되요.


"8시에 와. 사람들 맨날 일찍 와서 종이에 이름 적는데 왜 그렇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 여기 온 사람들 다 들어가. 10시에 업무 시작해."


응?


20명이 넘어가도 다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인가? 분명 6월 초에 왔을 때만 해도 윗 순위에 적었는데 경찰이 보더니 '음...너희는 오늘 들어갈 것 같다'라고 했어요. 웬만하면 들어가겠지만 못 들어갈 수도 있다는 말이었어요. 그런데 6월 말이 되자 상황이 달라진 건가? 확실한 것은 경찰이 바뀌었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경험 부족으로 그런 말을 하나? 6월 7일 서류접수한 후 처음 오는 것이라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명단에 올라간 사람이 6월 초보다 엄청나게 많이 줄었다는 것이었어요.


친구와 5시 반에 대사관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버스에 올라탔어요. 버스에 타자 잠이 쏟아져왔어요. 그래서 잠깐 눈을 붙이는데 온몸에서 땀이 소나기 내리듯 쏟아졌어요. 얼굴 위로 땀이 줄줄 흘러 잠을 몇 번 깨다가 겨우 정신 차리고 일어나 버스에서 내렸어요.


집에 들어가자마자 옷을 벗고 바닥에 누웠어요. 씻지도 않고 그대로 뻗어버렸어요. 내일 또 이 짓을 해야 한다는 짜증에 피로도 겹쳤고, 버스에서 긴장이 풀려서 더위를 전부 온몸으로 들이마셨더니 그냥 빨리 자고 싶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어요. 버스에서 온몸으로 더위를 실컷 들이켰기 때문에 이불을 대충 배만 덮고 잤어요.


여섯 번째 방문 - 2012년 6월 26일 화요일




- 자꾸 똑같은 건물 사진이 올라와 짜증나셨다면 진심으로 타슈켄트에서 투르크메니스탄 비자 획득 시도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밤 9시. 잠에서 깨어났어요. 11시부터 잤으니 10시간 푹 잤어요.


"어...추워."


콧물이 줄줄 흐르고 속이 울렁거렸어요. 감기 걸렸어요.


"오늘 기온이 확 올라가야 할텐데..."


여기는 일교차가 크기 때문에 여름 감기라고 해도 의외로 잘 낫더라구요. 낮의 뜨거운 햇볕을 잔뜩 쐬면 감기는 치료되요. 문제는 요즘 낮이 그렇게 덥지 않다는 것. 2주째 계속 하루에 한 번씩 꼭 비가 내리고 있었어요. 비가 내리면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고, 밤이 되면 22도까지 확 떨어져서 쌀쌀하다고 느껴질 정도였어요. 낮 최고 39도에 적응했더니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져서 이런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겪고 있었어요.


자는 동안 잠을 몇 번 깼어요. 6시에는 잠이 다 깨었어요. 그러나 억지로 잠을 다시 자서 9시에 일어난 것이었어요. 이때부터 밀린 여행기를 다시 쓰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핸드폰과 MP3를 완벽히 충전시켰어요.


원래는 4시 반에 나갈 생각이었는데 하필 나갈 시간이 가까워지자 본격적으로 여행기가 잘 써지기 시작해서 1분 2분 미루다보니 결국 5시가 되어서야 집에서 나왔어요. 비장한 각오를 하고 집에서 나와 큰 길로 나가려는데 차가 제 앞에 멈추어섰어요. 갑자기 제 앞에 차를 세우기에 손가락으로 차 안을 가리켰어요. 기사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래서 전날과 달리 별로 힘들이지 않고 택시를 탔어요. 비장한 각오를 하고 힘찬 발걸음을 내딛지도 못하고 바로 택시로 대사관행.


코스모나브틀라르 Kosmonavtlar 지하철 역까지 택시로 가서 역에서부터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까지 걸어갔어요.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에 가장 편하게 가는 법은 코스모나브틀라르 역으로 가서 기념비 반대쪽으로 쭉 걸어가는 것이거든요. 엉뚱한 오이벡 역으로 갈 필요가 없어요.


대사관 앞에 도착하니 오전 5시 반. 친구도 저와 거의 비슷한 시각에 대사관 앞에 왔어요. 오늘도 어제처럼 경찰도 없고 종이도 없고, 우리들에게도 종이가 없었어요. 새벽이라 날씨가 쌀쌀해 조금 따뜻한 것을 마시고 싶었지만 그딴 거 없었어요. 아무리 주변이 밝아도 지금 시각은 엄연히 새벽 6시도 안 된 시각.


오전 6시. 우즈벡인 아저씨께서 종이에 이름을 적기 위해 오셨어요. 아저씨께서 경비실 안에 누가 있나 들여다보는 것을 보고 비자를 받으러 온 우즈벡인이라고 추측했어요. 친구에게 의자에 앉아 있으라고 한 후, 우즈벡인 아저씨께 다가갔어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비자 받으러 오셨어요?"

"예."


제가 상황을 설명했어요. 이제 5번째 이 짓을 하니 대충은 다 알아요. 아저씨께 경찰은 없고 7~8시에나 오며, 종이에 이름을 써야 하는데 우리들에게 종이가 없어서 종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어요. 그러자 아저씨께서 종이를 한 장 꺼내셨어요. 종이에 세로로 한 가운데에 줄을 주욱 긋고 왼쪽에는 우즈벡이라고 적고, 오른쪽에는 투르크멘이라고 적었어요. 그리고 저와 친구의 이름은 우즈벡에 적었어요. 투르크멘은 투르크메니스탄 여권 소지자가 적는 칸이고, 나머지는 전부 그냥 우즈벡에 적으면 되거든요. 아저씨께서는 자기 이름을 종이에 적으셨어요.


"같이 기다리시겠어요? 저 의자에 앉으세요."


아저씨와 잡담을 나누며 시간을 때울 생각이었는데 아저씨께서는 괜찮다고 하시며 가게 쪽으로 가서 서서 기다리기 시작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의자로 돌아와 앉았어요. 그리고 다시 맛이 간 제 핸드폰과 씨름을 하기 시작했어요. 다행히 오늘도 어떻게 하니 3G가 작동했어요. 그래서 카카오톡으로 잡담 시작. 정말 저와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에게 너무 고마웠어요. 카카오톡으로 채팅을 하다가 핸드폰 배터리가 다 떨어지자 노래를 듣기 시작했어요. 그때 한 우즈벡 아주머니께서 오셨어요. 그래서 그 아주머니와 잡담을 하며 시간을 보내려고 했지만


이 아주머니 우즈벡어 잘 못 해.


이 아주머니께서는 계속 러시아어로 이야기하셨어요. 우즈벡어를 아시는 거 같은데 러시아어로 이야기하려고 하셨고, 우즈벡어로 이야기하더라도 러시아어 단어를 엄청나게 많이 섞어 써서 무슨 말을 하시는 건지 잘 알아들을 수 없었어요. 계속 한국에서 일하고 싶으니 도와달라고 하는 것은 덤. 아무리 우리가 도와줄 수 없다고 해도 계속 '한국 가서 일하고 싶다, 한국 가게 도와달라'고 해서 그 아주머니와는 별로 대화를 나누지 않았어요.


아침 7시. 소나기까지 퍼부었어요. 다행히 많이 오지는 않았지만 그냥 멍하니 앉아있어도 짜증이 급속도로 높아지는 판에 이건 짜증을 제곱으로 더 많이 늘려주었어요. 그나마 다행이라면 의자가 많이 젖지 않았다는 것 정도였어요. 비가 그치자 하늘이 맑아지고 기온이 올라가기 시작했어요.


노래를 들으며 시간을 때우는데 전날보다는 시간이 잘 간다는 것 같았어요. 진짜 채팅과 MP3로 노래듣기 없었으면 어떻게 기다렸을지 모르겠어요. 게다가 오늘은 전날보다는 조금 기다려도 되었기 때문에 고통의 기준이 전날이어서 전날보다는 참을만 했어요.


아침 10시가 되었는데도 대사관에서 직원도 안 나오고 경찰도 오지 않았어요. 경찰이 안 오는 것은 정말 왜 안 오는지 의문이었어요. 이제 될 대로 되라는 건가? 직원이 안 나오는 이유를 알 수는 없었지만 오히려 이게 우리에게 유리한 상황이라는 느낌이 왔어요. 전날 종이에 제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을 얼핏 보았고, 영사 직원이 아침에 전화를 걸어 승인이 났는지 확인을 하는 것을 보았어요. 즉, 시간이 지체된다는 것은 아마 안에서 우리 비자 때문에 뭔가 확인을 하느라 늦어지는 것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날에는 10시 되자마자 1등으로 들어갔는데 오히려 일찍 들어가서 일찍 쫓겨나는 바람에 점심 먹기도 애매한 시간에 다음날 다시 와야 하는 상황이 되었어요. 오래 걸린다는 것이 반드시 나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계속 머리 속으로 이 생각만 했어요.


오늘 꼭 비자 나와라...

오늘 꼭 비자 나와라...

오늘 꼭 비자 나와라...

오늘 꼭 비자 나와라...

오늘 꼭 비자 나와라...


계속 비자 나오기만을 빌며 종이를 보았어요. 오늘은 외국인이 우리 밖에 없었어요. 나머지는 전부 우즈벡인 아니면 투르크멘인.


10시 반 즈음 되어서 직원이 나왔어요.


"어제까지 매일 왔다갔다하던 그 성질 안 좋은 직원이 아니네?"


직원이 바뀌었어요. 분명 아침에 그 성질 안 좋은 대사관 직원이 출근하는 것을 보았는데 다른 직원이 대사관 정문으로 나왔어요. 저 직원은 어제도 보았어요. 꽤 친절한 직원이었어요. 직원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인사를 했어요. 직원은 웃으며 목례로 받아주었어요.


당연히 우리가 1등일 줄 알았으나 오늘은 투르크멘인 우선. 그래도 3등으로 들어갔어요. 1등으로 적는다고 반드시 1등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꼴등으로 적었다고 해서 반드시 꼴등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에요. 외국인과 투르크멘인의 경우 랜덤이에요. 처음에 외국인들 몰아서 다 집어넣는 경우도 있고, 투르크멘인들을 몰아서 집어넣어 버리는 경우도 있고, 순서대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어요.


영사 직원이 있는 방에 들어갔더니 영사 직원이 어제처럼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있었어요. 우리를 따라 들어온 대사관 직원이 다른 직원에게 '나 쟤네들 알아. 쟤네들 어제도 왔어'라고 이야기했어요. 이제 우리 얼굴은 이 대사관 안에서 매우 유명할 듯. 보통 아침에 두 번, 오후에 한 번 와서 끝내는 것을 아침에만 다섯 번째, 그리고 이 영사 직원이 있는 방에는 네 번째 들어왔어요. 보통 이 지경이 되면 여행자들이라면 당연히 포기해야 해요. 비자 만료가 코앞이니까요. 투르크메니스탄 비자에 목숨 걸다가 우즈베키스탄 불법 체류자가 되는 수가 있어요. 앞서 말한대로 우즈베키스탄은 육로 탈출구가 없는 나라. 하지만 우리는 현지 거주자. 그래서 근성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었어요.


전화가 끝난 후, 첫 번째인 부부와 무언가 러시아어로 대화하기 시작했어요. 점점 살벌해지는 분위기. 서로 고성이 오가기 시작했어요. 러시아어가 그다지 유들유들한 언어는 아닌데 여기 와서 느낀 것이 희안하게 사람들이 러시아어로 대화하기 시작하면 싸우는 듯 퉁명스럽게 말하는 경우가 좀 있어요. 그래서 별 거 아닌데 언성이 높아지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현지어로는 '도,레,미,파,솔,라,시,도'로 언성이 높아져서 말싸움이 시작되는데 러시아어로는 '도,미,솔,도'로 언성이 높아져 말싸움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 역시나 서로 퉁명스러운 말투로 러시아어를 이야기하다 문제가 생기자 바로 언성이 높아지고 말싸움 시작. 물론 싸워서 이기는 것은 당연히 영사 직원.


이거 데자뷰 아니야?


서류 접수에 성공했던 네 번째 방문과 비슷한 상황이었어요. 외국인이 우리만 온 것이나, 영사 직원은 우리보다 앞에 온 사람들과 싸우는 것이나 그때와 비슷했어요.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이 이번에는 대사관 방문한 부부가 영사 직원과 타이틀 매치를 벌이는 상황까지 안 가고 적당히 마무리짓고 나갔다는 것이었어요. 네 번째 방문 때에는 어떤 여자가 영사 직원과 타이틀 매치를 벌여서 여자는 쫓겨나고 영사 직원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분을 삭히러 잠깐 자리를 비웠었거든요.


부부가 나가자 영사 직원은 우리에게 손짓을 하더니 여권을 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여권을 드렸어요.


"돈은요?"

"돈은 이따 여권 찾으러 올 때 주면 돼."


여권을 드리고 몇 시에 찾으러 오냐고 물어보았어요. 4시에 오라고 했어요. 드디어 여권을 집어넣는 것까지 성공했다는 기쁨에 고맙다고 인사를 몇 번 하고 영사 직원이 있는 방에서 나왔어요.


사람들을 대사관 안으로 데려가는 직원에게 4시까지 오면 되냐고 물어보자 딱 4시에 오면 되고, 절대 늦지 말라고 당부했어요. 그리고 4시에 와서 대사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된다고 했어요.


일곱 번째 방문 - 2012년 6월 26일 화요일


여권을 집어넣기까지는 했지만 아직 돈을 내지 않았어요. 마지막까지 방심할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간절히 빌던 것을 3배 더 간절히 빌기 시작했어요. 이제는 입으로도 중얼중얼. 이번에 틀어지면 저는 비행기 타고 아제르바이잔 가야 해요. 그리고 투르크메니스탄은 정말 언제 갈 수 있을지 영원히 기약을 할 수가 없어요. 관광비자 받는 건 극도로 어렵고, 그렇다고 해서 경유비자를 받자니 이 경우는 다른 나라 비자 2개가 필요했거든요. 하지만 이란, 아제르바이잔,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모두 비자 받기 그다지 만만한 국가는 아니었어요. 더욱이 투르크메니스탄 경유 비자를 받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20일. 우즈베키스탄 30일 관광비자를 받아서 들어온다고 해도 도착하자마자 바로 투르크메니스탄 경유 비자 접수를 성공시키지 못하면 사실상 비자 받는 것은 실패라고 봐야 해요.


일부러 서점에 다 들어다니다가 재미있게 생긴 책이 있어서 두 권 사고 점심을 먹으러 무료로 와이파이가 제공되는 식당에 갔어요. 식당에 도착하니 딱 정오였어요. 이제 이 식당에서 3시간 버티는 것이 목표. 건물 밖에 앉아서 점심을 시켰어요. 음식이 맛있는지 맛없는지도 모르고 그냥 먹었어요. 머리 속은 그저 '오늘 제발 비자 나와라' 뿐.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었어요.


핸드폰은 배터리가 다 되어서 MP3로 쓰고 있는 아이팟 터치로 인터넷을 했어요. 갑자기 뭔가 생각나서 달력을 보았어요.


"우리 오늘이 비자 접수한지 딱 20일째다."


결국은 영사 직원 말대로 20일째가 되어서야 비자 승인이 나왔어요. 무슨 이유로 25일에 오라고 한 지 미스테리. 분명 저희도 20일 후에 나온다고 해서 25일에 오는 거 맞냐고 몇 번을 확인했고, 영사 직원은 25일에 오라고 했어요. 하지만 영사 직원의 말대로 25일에 갔다가 결재가 다음날 난다고 쫓겨났고 결국 20일째인 오늘 여권을 대사관에 집어넣었어요.


점심을 다 먹었는데 고작 30분 밖에 지나지 않았어요. 그래서 1리터 패트병을 시켰는데 남은 사이다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어요. 오후 1시가 되었어요. 사이다도 다 마셨어요. 친구와 커피를 시켰어요.


시간이 하도 안 가고 구름낀 하늘에 해가 뜨면서 등이 뜨겁게 달구어지기 시작했어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친구와 잡담을 나눈 주제는 '왜 갑자기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에 일찍 올 필요가 없어졌느냐' 였어요.


이제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에 미친 듯이 일찍 갈 필요는 없어요. 아마 한동안 이 현상은 지속될 거에요. 혹시 모르니 아침 7시쯤 가면 될 거에요. 저희가 본 결과 아침 8시 넘어서 와도 잘만 들어가서 볼 일을 볼 수 있었어요. 일처리 못하고 돌아가는 사람 없었어요. 뇌물 받는다는 경찰도 없었고,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경찰이 입구를 지키고 있지도 않았어요.


이렇게 된 이유는 결정적으로 경유 비자는 무조건 20일 소요로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봐요.


확실히 우즈벡인, 투르크멘인들은 빨리 빨리 일처리를 해요. 투르크메니스탄에 사는 친지 방문을 위해 대사관에 온 우즈벡인들은 대사관 업무 시작 전에 서로 물어보고 도와가며 서류 준비를 완벽히 다 끝내요. 그리고 이 사람들은 비자를 받지도 않아요. 8달러 내고 도장 받아가는데 당일날 다 끝난대요. 앞에서 만난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투르크멘인 아저씨가 알려준 것이니 이것만큼은 확실해요. 그 아저씨께서는 이번에도 그렇게 하셨고, 투르크메니스탄 가시는 날 우리들에게 투르크메니스탄 간다고 문자메시지도 보내주셨어요. 하지만 외국인은 달라요. 외국인은 제대로 된 비자를 받아야 하고, 비자 신청서는 반드시 안에서 받은 후 작성해야 해요. 외국인 하나 처리하는 시간이 엄청나게 오래 걸리고, 사무실에서 사람이 나가야 다른 사람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외국인은 비자 업무에 막대한 지장을 주는 존재에요. 막대한 지장 정도가 아니라 거의 과부하에 가까운 존재에요. 게다가 여기 오는 관광객들이 모두 우즈벡어나 투르크멘어, 러시아어를 잘하는 사람들도 아니구요. 매우 불친절한 직원 - 대사관 안으로 들여보내주는 직원이 영어를 할 줄 알고 나머지는 영어 몰라요.


더욱이 우즈베키스탄은 교통의 요지. 중앙아시아 여행 경로를 짜다 보면 우즈베키스탄을 거쳐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러려면 주구장창 카자흐스탄만 다녀야 해요. 만약 러시아나 카자흐스탄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려면 우즈베키스탄을 거치게 되요.


거기에 우즈베키스탄은 중앙아시아 최고의 관광국가이자 역사와 문명이 가장 발달된 곳. 중앙아시아에서 자연경관을 볼 것이 아니라면 볼 것은 우즈베키스탄에 다 몰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래서 단순히 유라시아 횡단이 목표라면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든지, 아니면 카자흐스탄만 주구장창 달려 악타우에서 배를 타고 아제르바이잔으로 건너갈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비자값 더 들여가며 우즈베키스탄으로 들어와 투르크메니스탄 경유비자를 받기 위해 애를 쓰는 것이죠.


그렇다고 우즈베키스탄 주재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이 우즈베키스탄 주재 아제르바이잔 대사관처럼 사람이 없어서 아무 때나 가도 되는 널널한 곳은 아니에요.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은 접경국가라서 친지 방문 때문에 투르크메니스탄에 가려는 우즈베키스탄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항상 많이 있어요. 대사관 근무 시간은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이나 아제르바이잔 대사관이나 비슷해요. 그런데 아제르바이잔 대사관은 악명이 높지 않고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만 악명이 높았던 것은 이렇게 원래 수요가 많은 곳에 외국인까지 끼어들어서 발생한 현상. 수요가 없으면 암시장도 발생하지 않는 법이에요. 아무리 여기 경찰이 부패해서 뇌물 받고 먼저 들여보내주고 한다 하더라도 어차피 대사관에 오는 사람이 적으면 뇌물을 주고 들어가는 일 자체가 발생하지 않아요.


예전에는 투르크메니스탄 경유 비자가 빨리 나왔기 때문에 더욱 더 우즈베키스탄에서 투르크메니스탄 경유 비자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많았을 거에요. 하지만 지금은 급행이고 뭐고 없고 무조건 20일 소요. 한 달 짜리 관광비자 받아서 온 사람들은 사실상 받지 못하게 바꾸어 버린 거에요. 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 국경은 타슈켄트에서 제일 가까운 국경이 부하라 근처에 있는 파라브 Farab 국경이에요. 타슈켄트에서 부하라까지 아침에 있는 기차로는 8시간, 밤에 있는 기차로는 11시간 걸려요. 더욱이 우즈베키스탄은 육로 탈출구가 없으므로 투르크메니스탄 비자를 노리고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어요. 자동차나 자전거로 이동하는 여행자들에게는 더욱 최악인 조건이에요. 타슈켄트는 우즈베키스탄의 동북쪽에 치우쳐져 있어요. 비자 신청하고 다른 곳을 구경하고 다시 타슈켄트에 돌아와야 하는데 동북쪽에 치우쳐져 있기 때문에 동선이 아주 짜증나게 바뀌어요.


더욱이 예전과 달리 무조건 목적지 국가의 비자도 필요하기 때문에 예전처럼 우즈베키스탄에서 투르크메니스탄 경유 비자와 이란 또는 아제르바이잔 비자를 해결할 시간이 없어요. 최소한 이란 또는 아제르바이잔 비자가 있어야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에 가서 경유 비자를 신청해볼 수 있어요. 투르크메니스탄 경유 비자가 20일 걸리는데다 본국의 결제가 나와야만 찍어주는 시스템이라 대사관 직원들을 아무리 재촉한다 해도 답이 없어요. (우리나라도 불법체류자로 유명한 중국,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등은 이런 시스템으로 비자를 발급해요) 이란이나 아제르바이잔 비자가 있고, 우즈베키스탄 비자가 막 개시된 상황이라면 투르크메니스탄 경유 비자를 신청해볼 만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아예 불가능하게 된 거에요.


즉,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에서 무조건 20일 소요로 바꾼 것은 우즈베키스탄에 와서 투르크메니스탄 경유 비자를 받으려는 여행자들을 다 쫓아내버리는 신의 한 수라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여행자들이 다 쫓겨나면서 업무 처리도 어느 정도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되었구요.


외국인들이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의 비자 접수 시간을 크게 잡아먹으며 여러 문제가 발생했는데 이게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에서 무조건 20일 소요로 바꾸어버리면서 외국인들이 거의 오지 않게 되었고, 이로 인해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되었다는 것이 제 생각이었어요.


사실 우즈베키스탄에서 인접국 비자 받는 것은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만 어려운 게 아니에요. 여기가 좀 극악으로 악명이 높아서 그렇지, 다른 곳도 다 마찬가지에요. 지루하게 대기해야 하고, 카자흐스탄 대사관은 경찰이 뇌물을 받는다고 해요. 타지키스탄 대사관은 아침 일찍 가서 종이에 이름을 적는 게 의미없는 대신 난장판에 아수라장이구요.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우즈베키스탄 와서 인접국 비자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과 우즈베키스탄에 인접국에 친지가 사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 외국인을 제외한 자체적인 수요도 많다는 거에요.


커피 한 잔 마시고 아이팟 터치로 인터넷을 하다 보니 드디어 3시가 되었어요. 계산을 하는데 총 41010숨이 나왔어요. 그래서 41200숨을 주고 나왔어요. 당연히 190숨 거스름돈은 없었어요. 100숨짜리 지폐가 있었으면 41100숨을 주었을텐데 100숨이 없어서 200숨짜리 지폐를 주었어요. 3시간 동안 밥 먹고 커피를 마시며 노닥거렸기 때문에 190숨은 그냥 팁이라고 생각했어요. 자리가 없어서 돌아가는 사람이 있었다면 당연히 3시 이전에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겠지만 그렇게까지 사람들이 많이 오지는 않아서 다행이었어요.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 앞에 도착한 시각은 3시 40분. 아침만 해도 멀쩡했던 의자 위에 놓여 있던 각목 세 개 이어 만든 것이 반으로 부서져 있었고, 그 위에는 수성 페인트가 굳어 있었어요. 누가 수성 페인트가 묻은 붓을 의자 주변에서 털은 것 같았어요.


4시가 가까워오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안에서는 그 누구도 나오지 않았고, 당연히 경비실에 경찰이 없었어요.


4시가 넘었는데도 대사관에서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어요. 저는 대사관 입구 앞에 쭈그려 앉았어요.


4시 5분이 되었어요.

4시 10분이 되었어요.

4시 15분이 되었어요.

4시 20분이 되었어요.

4시 25분이 되었어요.

4시 30분이 되었어요...


절대 늦지 말라고 했는데 30분이나 지났는데도 아무도 오지 않았어요. 대사관 안에서도 아무도 안 나왔고, 경찰도 오지 않았어요.


'우리 것 때문에 늦어지고 있나?'


시간이 흘러갈수록 우리 비자 찍느라 늦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대사관 앞에 모인 사람은 우리까지 다 해서 열 명 남짓. 좋게 생각하며 간절히 빌었어요. 제발 내 투르크메니스탄 비자 오늘 나와라! 영사 직원이 별 말 없이 여권을 받아간데다 종이에 제 이름이 적혀 있는 것도 보았어요. 마지막 단계에서 미끄러지지만 않으면 되요. 일찍 나와서 거부당하고 집에 돌아가는 것보다는 저녁 8시까지 기다려서라도 받는 게 당연히 나았어요. 이 비자 때문에 억지로 밤을 새고 낮에 쓰러지듯 자는 생활도 이제 좀 그만 하고 싶었어요. 주침야활도 놀다가 해야 재미있고 하고 싶은 것이지, 이렇게 억지로 하라고 하면 그것도 고통스러워요. 억지로 생활리듬을 바꾸는 것은 누구든 꽤 힘든 일이니까요. 그리고 저 역시 생활리듬이 쉽게 바뀌지만 억지로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려워하고 있구요.


진짜 대사관 문 앞에서 삼천배하면 비자 준다고 한다면 3천배라도 할 각오가 되어 있었어요.


4시 40분. 드디어 직원이 나왔어요. 불친절한 직원이 아니라 아침에 만난 그 친절한 직원이었어요. 친절한 직원에게 인사를 하자 직원은 웃으며 미안하다고 했어요. 그리고 우리를 제일 먼저 들여보냈어요.


심장 박동은 다시 빨라졌어요.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 영사 직원에게 인사를 했어요.


"쏘리."


이 아저씨, 웃을 줄도 알아!


매일 챔피언 타이틀 매치를 벌이는 선수처럼 인상이 딱 굳어 있었던 아저씨께서 활짝 웃으시며 우리에게 여권을 건네주셨어요. 여권 사이에는 종이가 꼽혀 있었어요. 그 종이는 영수증이었어요. 비자 20불, 경유 비자 초청장 10불, 그리고 무슨 비용 5불. 합계 35불. 돈을 드리고 비자를 확인해 보았어요. 7월 1일부터 5일까지, 파라브 국경으로 들어가서 투르크멘바시로 나가는 비자였어요.


"감사합니다!"


허리를 45도 굽혀서 인사했어요. 웃음이 입에서 떠나지 않았어요. 드디어 받아냈어요. 투르크메니스탄 비자! 남들 아침에 2번만 가면 받는 것을 우리는 5번 가서, 그리고 영사 직원 사무실에만 5번 가서 받았어요. 근성의 승리였어요. 5월 25일부터 투르크메니스탄 비자를 받기 위해 노력했으니 32일만에 획득한 것이었어요. 타슈켄트 살지 않았다면 절대 받지 못했을 거에요. 감격이 밀려왔어요.


그리고 영수증은 입국할 때 들고갈 필요가 없다고 친절한 직원이 잘 설명해 주었어요. 더욱 놀라운 것은 타지키스탄이나 아제르바이잔이나 비자를 손으로 써서 주었는데 투르크메니스탄은 타이핑된 비자를 주었다는 것이었어요.



이 영수증이 입국할 때 꼭 필요하냐고 물어보자 필요 없다고 했어요. 그냥 비자비 내었다는 영수증이라고 했어요.


이 영수증에서 매우 재미있는 점은 투르크멘어의 ş를 제대로 표시하지 못해 ş가 ?로 표시되어 있다는 거에요.


그리고 이게 그렇게 받기 어려웠던 투르크메니스탄 비자에요.



사진에는 잘 나와 있지 않지만, 홀로그램 안에는 말이 그려져 있어요.


"이제 이 대사관 더 안 와도 된다!"


원래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이 있는 쪽은 심심할 때 가끔 놀러가던 곳이었어요.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 근처에 헌책방 거리도 있고, '굼마'라고 속에 양고기가 들어 있는 기름에 튀긴 고로케 비슷한 것을 정말 맛있게 하는 가게도 있었거든요. 참고로 굼마는 대충 고로케 비슷한데 양고기를 쓰고 야채는 안 들어 있어요. 이 굼마가 1개에 500숨인데 현지인들도 줄 서서 사 가는 집이에요. 그래서 이쪽에 와서 굼마도 먹고 헌책방도 둘러보곤 했는데 투르크메니스탄 비자를 받는 과정에서 새벽에 이 거리를 지나다니고 허탈한 발걸음으로 이 거리를 지나다니다 보니 이 거리까지도 생각만 하면 신물이 올라올 지경이 되었어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주재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이요? 절대 가고 싶지 않아요. 지금도 생각만 하면 속이 울렁거릴 거 같아요.


정말 확실히 깨달았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 비자 3개를 받았어요. 혼란과 북새통에 난장판인 타지키스탄 대사관, 처음에 지하철 출구 한 번 잘못 나오면 사고다발지역에서 무단횡단해야 하는 아제르바이잔 대사관, 그리고 비자 받기 정말 어려운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여행객이라면 그냥 우즈베키스탄에서 주변국 비자 안 받는 것이 제일 좋은 선택이라는 사실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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