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두 개의 장벽 (2012)

두 개의 장벽 - 30 아제르바이잔 바쿠 하즈 술타낼리 모스크

좀좀이 2012. 9. 12.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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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쿠에 있는 러시아 교회를 보고 나니 갈 곳이 없어졌어요. 일단 발길 가는 대로 돌아다니기로 했어요.




마음을 비웁시다.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어요. 여기는 아제르바이잔 바쿠. 투르크메니스탄이 아니야. 시간에 쫓기지 않아. 우즈베키스탄과 비교하며 보려는 태도는 이제 필요 없어. 예전에 했던 것처럼 그냥 보고 느끼면 돼. 그런데 저건 우즈베키스탄에서 보던 구멍가게랑 다를 게 없잖아!


여기는 아제르바이잔이야. 언제나 그래왔듯 내게 여행이란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을 확인하는 것이 일차적 목표. 확인을 하고 느끼며 다니면 돼. 그런데 지금 내 머리 속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건 우즈베키스탄이고, 지난 여행에서 느꼈던 아제르바이잔이야. 다를 게 없잖아!


모든 걸 다 잊고 돌아다닐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그게 쉽지가 않았어요. 아무리 같은 곳이라 하더라도 어디에서 왔느냐가 사실 중요해요. 만약 올해도 작년처럼 한국에서 왔다면 지금 걷고 있는 이 길 자체가 매우 다르게 느껴지고 신기하게 느껴졌을 거에요. 하지만 저는 중앙아시아에 있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왔어요. 그것도 단순히 관광으로 우즈베키스탄을 갔다가 온 게 아니라 우즈베키스탄에서 긴 시간 머무르다 왔어요. 새로운 것을 보고 느끼고, 알고 있던 것이 맞는지 틀린지 확인도 해가는 강한 자극을 느끼고 싶은데 자극들이 그렇게 강하지 못했어요.


발 가는 대로 걷다가 큰 길로 나왔어요. 물을 한 통 사서 마시며 그늘로 찾아가 앉았어요.



별 생각 없이 앉아서 쉬었어요. 어차피 오늘은 시간 많아요. 일찍 들어가서 쉬기로 하기는 했지만 아직 오후 4시도 채 안 되었어요.


차라리 숙소 들어가서 쉴까?


이렇게 할 일이 없을 때에는 그냥 들어가서 시간이나 죽이는 것도 한 가지 방법. 그러나 그렇게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이럴 때에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늘에서 쉬며 곰곰이 생각했어요.


미지근하고 부드러운 바람. 여기는 바쿠.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이라고는 오직 저것 밖에 없었어요. 딱히 생각나는 것도 없었고, 생각할 것도 없었어요. 그냥 멍때리고 있었어요.


'에휴...그냥 걷자. 돌아다니다 보면 알아서 되겠지.'


정말 간단한 결론. 뭐 별 거 있나요. 답이 없으면 없는 대로 가는 거죠. 걷다 보면 답이 나올 거라 생각했어요. 물론 친구가 이 생각을 알게 된다면 아주 기겁하겠지만요. 앞으로의 일정을 어떻게 할까 따위의 고민을 더 할 필요도 없었어요. 할 게 없으면 걸어다니면 되는 것이고, 걷기 싫으면 호스텔에서 주인 누나, 주인 아저씨와 잡담하며 놀면 되는 것이고, 주인 누나, 주인 아저씨가 안 계셔서 말동무가 없다면 혼자 아제르바이잔어 공부를 하든, 이번에 사온 책을 읽기 위해 낑낑대든 하면 되니까요. 일이야 만들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것.


더 이상 무엇을 할 지 고민하는 것은 저 답지도 않고 멍청한 짓이라고 생각했어요. 알아서 해결될 것. 어차피 시간을 갈 거고 16일에는 우즈베키스탄 돌아갈 것. 이런 멍청한 생각에 사로잡혀 남은 시간을 쓸 데 없는 고민과 함께 보낼 수는 없었어요. 차라리 걸으며 본 거 또 보고 외워가는 게 낫죠.


'돌아가서 여행기 쓸 때 엄청 고생하겠다.'


"왜 웃어?"

"아니야."


여기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어요. 어쨌든 시간은 가니까요. 하지만 여행기에 '나는 오늘 호스텔에서 쉬다 잤다. -끝-'이라고 달랑 한 줄 적을 수는 없어요. 물론 국민학교때 일기 밀리면 '나는 놀았다.' 라고 한 줄 쓰고 넘어가는 짓을 무수히 많이 하기는 했어요. 하지만 그것은 억지로 하는 거라 그렇게 한 거고, 여행기를 쓰는 것은 제가 기억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억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에요. 그런 이유로 쓰는 여행기에 달랑 한 줄 - '나는 오늘 호스텔에서 쉬다가 잤다'라고 쓸 수는 없었어요. 하지만 강렬한 자극이 없는 여행을 가지고 여행기를 쓴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 그렇다고 제가 감수성이 너무나 풍부해 작은 일 하나만 가지고도 엄청난 감정의 기복을 보이며 책 한 권을 써내는 그런 사람도 아니구요. 그래서 혼자 웃었어요.


"가자."


발걸음 가는 대로 가다 보니 석상이 하나 나타났어요.



석상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왠지 밤이 되면 우리나라 초등학교의 이순신 동상 이야기처럼 다리 두드리며 앉아서 쉴 것 같았어요.


'그런데 만약 이런 로타리에 동상을 세우고, 동상 눈에 단속 카메라를 설치해 놓으면 어떻게 될까?'


석상 사진을 줌으로 당겨 찍어서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 아마 운전자들이 무지 싫어하는 석상이 되지 않을까요? 어쩌면 석상 제목이 '너를 지켜보고 있다'라고 붙고 은근히 관광 명물이 될 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했어요. 그렇게 하면 분명 그 앞에서 일부러 교통법규 어겨 보는 사람 나오겠지?



발길 가는 대로 걸었더니 어느새 니자미 역까지 왔어요.



니자미 역 주변에 있는 동상.



니자미 역 주변에서 본 큰 길. 여기는 나중에 다시 오게 된다면 또 모습이 변할 거에요. 아직 공사중이니까요.


'론니플래닛 만드는 사람들, 이 나라 엄청 욕할 거야.'


아제르바이잔은 몇 년째 공사중. 그래서 풍경이 자꾸 바뀌어요. 작년과 지금의 풍경이 많이 다르고, 지금도 공사중이니 지금과 내년 이맘때의 풍경은 또 다르겠죠. 이렇게 자꾸 변하면 관광 정보도 당연히 달라지기 마련이에요. 이렇게 자꾸 변하는 지역의 여행정보는 당연히 본의 아니게 틀리기 일쑤에요. 여행정보를 책으로 내거나 글로 써서 올렸는데 그 후 얼마 지나 또 달라져 버리니까요.


돌아가는 길은 뒷골목 쪽으로 가기로 했어요. 큰 길은 가 보았기 때문에 이제 안 가 본 골목을 가볼 차례. 골목길로 들어가서 얼마 걷지 않아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있었어요.



"저거 어제 본 모스크다!"


전날 본 모스크는 테제 피르 모스크와 이맘 후세인 모스크. 이것은 전날 간 모스크가 아니라 전날 본 모스크였어요. 이맘 후세인 모스크를 보고 큰 길로 올라가 바쿠를 내려다보는데 비취색 돔이 보였어요. 당연히 누가 뭐래도 그것은 모스크. 왠지 괜찮은 모스크 같아 보였지만 시간도 늦었고, 많이 걸어야할 것 같아서 관두었어요. 게다가 친구가 모스크 가는 것을 안 좋아했구요. 나중에 정말 할 게 없으면 가 볼까 생각했던 곳이었는데 이렇게 정말 얻어 걸렸어요.



"저거 목욕탕 아니야?"


게다가 모스크 옆에는 목욕탕도 있었어요. 비록 트빌리시 구시가지에 있는 것에 비하면 참 초라하기는 했지만 목욕탕인 하맘도 있었어요. 이 목욕탕의 이름은 아쿤드 하마므 Axund Hamamı. 이체리 셰헤르 안에도 하맘이 두 군데 있다고 하는데 이런 느낌은 아니었어요. 이건 우리나라에서 가운데에 커다란 뜨거운 탕이 있는 구식 목욕탕을 찾은 기분이었어요. 찜질방 목욕탕도 좋고, 최신 목욕탕도 좋지만 가끔은 가운데 커다란 온탕이 있고 그 주위에 앉아서 뜨거운 물 끼얹으며 씻을 수 있는 옛날 목욕탕에 가서 추억을 느끼고 싶기도 해요. 딱 그 목적으로 옛날 목욕탕을 찾아갈 때 그 느낌이었어요. 안에는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이건 정말로 동네 목욕탕.


작고 예쁘게 생긴 모스크와 하맘은 정말 잘 어울렸어요. 무슬림들은 기도 전 몸의 청결에 특히 신경을 많이 써요. 그래서 아주 작은 모스크라도 최소한 간단히 몸을 씻게 수돗가는 반드시 있어요. 목욕탕이 있는 정말 큰 모스크도 있구요. 무슬림의 예배 방법을 알고 보면 모스크와 하맘은 정말 잘 어울리는 조합.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저 모스크 안에 수돗가가 없을 리는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어요. 기도 전 몸을 씻는 '우두'를 위한 장소는 모스크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니까요.



모스크로 다가갈 수록 알 수 없는 기대감이 밀려왔어요. 가기 전 이미 알고 있었어요. 저 모스크에 볼 거 없어요. 인상적이라고 할 거 없어요. 그 정도는 저도 알아요. 저 크기의 모스크에서 기대할 거라는 것은 없어요. 건물 내부가 화려할 리도 없으며, 반드시 보아야 할 무언가가 있을 리 없었어요. 하지만 무언가 괜찮은 것을 하나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은 점점 커졌어요.



드디어 모스크 안으로 들어왔어요.



2층에 보이는 파티마의 손. 저 손이 2층에 있다는 것은 2층이 여자 기도실이라는 의미에요. 저기는 제가 들어갈 수 없는 곳.


당연히 모스크 내부는 볼 것이 없었어요. 사진을 찍을 것도 없었어요. 정말로 평범한 예배당. 외관이 분위기 있는 것과 달리 내부는 많이 허름했어요.


모스크를 보고 나오는데 입구에도 파티마의 손이 있었어요.



파티마의 아래 걸려 있는 깃발.



يا حسين


이렇게 적혀 있었어요. '야 후사인'. 이게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여기는 시아파 모스크. 이 나라도 아슈라 기간에 많이 살벌할 건가? 시아파 아랍 국가에서 아슈라 기간이 되면 TV에서는 사람들이 고행하는 모습을 틀어주어요. 이 기간은 시아파 무슬림의 신앙심과 감정이 모두 폭발하는 때라서 조심해야 해요. 그런데 여기는 이슬람 국가이면서 구 소련 연방을 구성했던 국가. 이 나라에서의 아슈라의 날은 어떨지 궁금해졌어요.



나는 잡귀 아니니까 들어가도 괜찮지? 그런데 이미 들어갔다 나왔어.



모스크 한 쪽에 있는 조그만 분수. 물은 아주 약하게 졸졸 흘러나오고 있었어요.




소련 시절 키릴 문자를 쓰던 아제르바이잔어와 라틴 문자를 쓰고 있는 현재의 아제르바이잔어를 동시에 볼 수 있었어요.


Һаҹы султанәли мəсҹиди

Hacı Sultanəli Məscidi


여기는 의외로 만족스러웠어요. 둘러보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어요. 작지만 인상적인 것들이 오밀조밀 모여있었어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내부가 정말 별 볼 일 없었다는 것. 하지만 여기도 언젠가는 내부도 볼 만한 모스크가 되겠죠.



모스크에서 나와 호스텔 쪽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어요. 얻어 걸려서 온 것 치고는 정말로 볼 게 많았어요. 이 모스크가 만약 이체리 셰헤르 안에 있었다면 나름 주목받는 모스크가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처녀의 탑 근처에 있는 쥐메 모스크 Cümə Məscidi 는 이름만 거창할 뿐 실속은 별로 없는 모스크였거든요. '주므아', '주마', '쥐메', '쥬메' 등 동네마다 언어마다 부르는 방법이 다르기는 하지만 이렇게 불리는 모스크는 큰 모스크에요. 이 단어는 아랍어 جمعة 즉 '금요일'이라는 뜻인데, 금요일은 무슬림들이 기독교인이 일요일에 교회 가듯 모스크 가서 예배보는 날이에요. 제대로 무슬림들이 기도하는 장면을 보려면 금요일에 금요일 모스크 가면 볼 수 있어요. 이체리 셰헤르에 있는 쥐메 모스크는 분명 오래되고 중요한 모스크인데 이 하즈 술타넬리 모스크 (하즈 술탄 알리 모스크) 보다 너무 평범한 모스크였어요. 이 모스크가 동네 모스크에 불과하다는 것이 아쉬울 정도. 하지만 다른 관광객에게 추천할 정도까지는 아니었어요. 다른 관광객에게 이 모스크를 소개하라고 한다면 저 역시 '비취색 돔이 눈에 띄므로 사진 찍기 좋은 모스크' 정도로 소개할 테니까요.



이제 돌아가는 길.





길을 걷다 뒤돌아보았어요.



주변의 허름한 풍경과도, 뒤의 높은 건물과도 잘 어울리는 하즈 술타넬리 모스크.


다시 앞을 보며 걸었어요.



길가에 빵집이 있었어요. 가격은 30~50 개픽. 30개픽이면 약 500원 정도.


정말 바쿠 사람들 먹고 살기 팍팍하겠구나.


바쿠에서 집을 빌려 살려면 한 달에 100만원은 들어요. 물론 정말 외곽 허름한 곳이라면 가격이 많이 떨어지겠지만, 50만원 가지고 방을 구할 수 있냐고 하면 피식 웃어버리는 동네가 바쿠에요. 거기에 빵 한 개 가격이 30~50 개픽. 이 정도면 여기 사는 사람들에게도 만만한 물가는 절대 아니에요. 한국인인 제가 한국 물가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에도 저렴하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데 여기 현지인들은 오죽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번화한 큰 길과 허름한 골목길의 경계.


다시 목적지 없이 걸었어요. 생각 없이 걷다가 지하 보도로 내려갔어요.


"저거 함사 내용이야."

"어떤 거?"


친구가 벽을 가리키며 벽에 있는 부조들은 아제르바이잔의 위대한 시인 니자미 겐제비의 유며한 작품 함사 내용이라고 설명해 주었어요.







확실히 아제르바이잔은 관광을 키우고 문화 강국으로 나가기로 결심한 것 같았어요. 아직도 부족하기는 했지만, 제가 가 본 구소련 국가들 가운데 자기들의 문화를 홍보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나라였어요. 정말 물가만 어떻게 잡으면 바쿠는 카프카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석이 될 텐데...대통령이 물가를 잡기 위해 노력중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하지만 물가 잡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고, 아제르바이잔의 석유는 소련이 하도 뽑아써서 이미 소련 시절부터 소련의 주요 석유 생산지는 시베리아였지, 바쿠는 아니었어요. 이 나라는 정말 물가가 결정적으로 아쉬웠어요. 여행자도 현지인도 모두 물가 때문에 각박해진다는 느낌이 여기 도착한 이후 계속 들었거든요. 그리고 그 느낌은 바쿠에서 머무는 시간이 흘러갈 수록 점점 구체적인 생각이 되어 가고 있었어요.


거리를 돌아다니다 바닷가로 갔어요.


"아까 보니까 서점 열었던데?"

"응."


친구는 별 반응이 없었어요.


"그 4권 짜리 아제르바이잔어 문법책 살까?"


서점에서 4권 짜리 Müasir Azərbaycan Dili 라는 책을 보았어요. 이 책은 아제르바이잔어 문법책들. 음운론, 형태론, 통사론 등 문법이 깔끔하게 아제르바이잔어로 다 정리되어 있었어요. 문제는 이 4권이 35마나트. 그래서 사고 싶기는 했지만 계속 망설일 수 밖에 없었어요.


"셰키 갔다 와서 돈 남는 거 보고 결정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오늘 샀다가 셰키 가서 돈 없으면 곤란하잖아."

"그렇게 해야겠다."


친구 말이 맞았어요. 이미 짐은 주인집에 맡겼고, 셰키 다녀오는데 돈이 얼마나 들지도 몰랐어요. 일단 셰키를 다녀와서 돈 남는 것 보고 결정해도 되는 문제였어요.


친구와 별 말 없이 바닷가에서 바람을 쐬다가 호스텔에 돌아와 오랜만에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했어요. 먼저 메일을 확인하는데 제가 가르쳤던 애들 중 친하게 지내는 애로부터 메일이 와 있었어요. 메일을 보니 제가 보낸 엽서를 받았다는 내용이었어요. 설마 타지키스탄에서 보낸 엽서가 이제 도착한 건가? 타지키스탄에서 엽서를 써서 보내주기는 했는데 도착했다는 소식이 없어서 그냥 엽서가 납북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한국으로 보낸 편지나 엽서가 북한으로 가는 일이 간간이 있다는 것은 옛날 외국인과 편지를 주고 받는 펜팔을 사람들이 많이 할 때부터 널리 퍼진 이야기. 엽서 도착했다는 소식이 없어서 도중에 분실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야 도착했다는 메일이 왔어요. 하지만 어디에서 보낸 엽서인지는 적혀 있지 않았어요. 투르크메니스탄에서 보낸 엽서가 벌써 도착했을 리는 없을 테니 이건 보나마나 예전 5월에 타지키스탄에서 보낸 엽서.


"참 빨리도 도착했다."


그 외 내용은 기말고사 수학 시험 망쳤다는 내용. 그 외에 아무 내용도 없었어요. 답장을 써서 보내고, 다른 메일 중 읽고 답장쓸 것이 있나 보았어요. 친구한테서 온 메일이 있었어요. 여행 가기 전에 주소 알려주면 엽서 한 통 보내주겠다고 했는데 메일 확인이 늦어서 답장이 늦게 와 있었어요. 원래는 투르크메니스탄에서 보내주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기 때문에 나중에 셰키에서 돌아와서 엽서를 보내주기로 하고 주소를 옮겨 적었어요. 친구가 보낸 메일의 내용은 역시나 타지키스탄 여행과 관련된 것이었어요. 예전에 친구에게 타지키스탄 샤흐리스탄에서 표지판 반대로 달려 있어서 정말로 큰 사고날 뻔 했다고 메일에 적어서 보냈어요.


이시키 진짜 영화처럼 죽을뻔 했네.

표지판 거꾸로 다는 바보같은 놈이 진짜로 있구나


이 말 읽고 정말 깔깔 웃어대었어요. 친구의 목소리가 정말 귀에 들리는 듯 했어요. 친구에게도 답장을 쓰고 남은 메일들을 보았어요. 나머지 메일들은 불필요한 메일들. 메일을 정리하고 인터넷으로 무엇을 할까 하는데 할 게 없었어요. 그래서 일찍 침대에 드러누웠어요. 내일은 아침 일찍 움직여야 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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