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두 개의 장벽 (2012)

두 개의 장벽 - 28 아제르바이잔 바쿠 처녀의 탑

좀좀이 2012. 9. 9. 19:04
728x90

2012년 7월 8일 일요일.


느긋한 일요일 아침.


여행 계획을 짤 때 정말 신경 많이 써야하는 부분이 있어요. 저 역시 여행을 처음 할 때에는 이 부분에 신경을 안 썼고, 그로 인해 낭패를 크게 본 적이 있었어요.


일요일을 조심하라.


바로 이거에요. 일요일은 정말 조심해야 해요. 반드시 여행 계획 짤 때 필히 체크해야 하는 부분이에요. 우리나라는 그래도 일요일에 문 여는 가게들이 많지만 그것은 우리나라 이야기. 특히 유럽은 일요일에 당연히 놀아요. 지금 생각해 보아도 몰타에서의 일요일 오후는 정말 최악으로 심심한 시간. 제 인생 전체를 놓고 보아도 몰타에서의 일요일 오후만큼 심심했던 시간은 많지 않아요. 일요일은 뭘 해도 심심하고 흥이 안 나요. 더욱이 환전 문제까지 걸려 있다면 더더욱 최악. 월요일은 문 닫는 박물관들이 있기 때문에 제일 이상적인 계획은 일요일에 쉬고 월요일에 이동하는 것.


빡빡한 여행 일정이었다면 오늘이 일요일이었다는 점이 매우 신경쓰였을 거에요. 특히 다른 나라로 이동해야 한다면 더욱 신경이 쓰였을 것이고, 차라리 다음날 이동할까 고민을 했겠죠. 하지만 이 일요일만큼은 그런 거 없었어요.


나 어차피 환전 문제 없어!


다음날 이동이 있기는 했어요. 하지만 국제 이동이 아니었어요.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아제르바이잔 셰키로 가는 것. 단, 오전 중 할 일이 하나 있었어요. 맡길 짐은 미리 싸서 주인집에 가져다 놓아야 했거든요.


짐 싸기도 귀찮고 내일 다른 곳 가기도 귀찮고 오늘 나가기도 귀찮아.


일어나서 씻기는 했는데 뭐 하나 하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어요. 아무 것도 하기 싫었어요. 그래요. 오늘은 일요일. 모두가 쉬고 노는 날. 친구를 쳐다보았어요.


"너도 귀찮지?"

"응. 왜 이렇게 만사 다 귀찮냐?"


짐을 꾸려서 손님이 없는 백주대낮 시간에 주인집에 가져다 놓아야 하는데 둘이 멍하니 짐만 바라보고 있었어요.


'이러다가는 정말 오늘 아무 것도 못 하겠다.'


오늘 친구랑 가기로 한 곳이 있었어요. 그곳은 바로 처녀의 탑 꼭대기. 작년에 왔을 때 저도 못 가본 곳이었어요. 친구가 오늘 할 것도 없는데 처녀의 탑이나 올라가 보자고 했어요. 분명 맞는 말이었어요. 바쿠에 왔는데 그 유명한 처녀의 탑 꼭대기는 기어 올라가야죠. 하지만 그 전에 짐을 싸야 했고, 내일 어디를 갈지 확실히 결정을 해야 했어요. 저는 아직도 마음이 정해지지 않았어요. 마음은 이미 라흐즈에 가 있었어요. 문제는 라흐즈 가는 게 아주 고약하다는 것. 라흐즈가 좋다고는 하는데 셰키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고...라흐즈를 더 가고는 싶은데 라흐즈를 가려면 먼저 이스마일르에 간 후, 거기서 다시 차를 타고 들어가야 하고...


차를 타서 밖에 나갔어요. 차를 홀짝거리며 곰곰이 고민해 보았어요. 셰키를 갈까, 라흐즈를 갈까...라흐즈는 현지인들도 좋다고 하는 곳이니 믿고 가도 되는 곳. 문제는 바쿠에서 라흐즈까지 바로 가는 버스는 아침 일찍 1대, 점심 즈음에 1대 있다는 것이었어요. 안 그러면 무조건 이스마일르에서 환승. 게다가 셰키는 친구가 가고 싶다고 한 곳.


'그냥 셰키 가자.'


셰키 가기로 결심했어요. 셰키가 아제르바이잔에서 큰 도시이기도 하면서 아름다운 도시라고 하기도 하니 친구를 믿어보기로 했어요. 셰키에 간다면 숙소는 거의 카라반사라이 호텔. 여기는 1박에 약 30마나트였어요. 카라반사라이 호텔에서 하룻밤 자고 셰키를 돌아다니며 구경하다 바쿠로 돌아오면 끝. 나쁘지 않았어요.


셰키로 가기로 결심하고 방으로 들어왔어요. 드디어 큰 결심을 했어요. 이제부터 짐을 싸야겠다. 사실 짐을 싼다는 게 말만 거창하지, 실제로는 쌀 것도 없었어요. 1박 2일 여행갈 준비만 대충 해서 백팩에 우겨넣고, 나머지는 전부 다른 가방에 쑤셔넣으면 끝이었으니까요. 비행기 탄다면 무게를 맞추기 위해 이래저래 신경쓰며 짐을 정리해야 했지만 지금 비행기를 타기 위해 짐을 싸는 것이 아니었어요. 주인집에 맡기기 위해 짐을 싸는 것. 그러므로 무게 걱정할 것 없이 가방에 다 집어넣기만 하면 되었어요.


짐을 다 싸고 주인 할머니께 가방을 맡기고 싶다고 말씀드리자 집 안에 가져다 놓으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다음날 가져갈 짐만 방에 남겨놓고 전부 주인집 안쪽에 가져다 놓았어요.


"혹시 세탁기 쓸 수 있나요?"


빨래는 오늘 세탁기에 돌리고 셰키 돌아와서 찾아갈 생각이었어요. 이러면 짐이 더 줄어드니까요. 주인 할머니께서는 우리는 오래 머물기 때문에 공짜로 해주시겠다고 하셨어요. 역시 오래 머무르고 주인 할머니와 주인 아저씨, 주인 누나께 잘 보이니 원래 안 맡아주는 것이 규정인 짐도 맡기고, 유료인 세탁기도 공짜. 게다가 우리가 직접 세탁기를 돌리는 것이 아니라 할머니께서 자기가 돌려주시겠다고 하셨어요. 3마나트 내고 사용해야 한다고 했는데 공짜로 해결되어서 금전적 여유가 조금 더 생겼어요.


짐을 맡기고 친구와 가기로 한 처녀의 탑으로 갔어요.


"이거 유료인데 표 어디에서 팔지?"


처녀의 탑 내부에 들어가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것은 유료에요. 그리고 국제학생증이 있으면 할인되요.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매표소가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무작정 안으로 들어갔어요.


"표 사와요."


당연히 처녀의 탑 입구에서 쫓아내었어요. 다시 매표소를 찾아 처녀의 탑 주변을 돌아다니는데 매표소는 없었어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분명 매표소가 있기는 했어요. 하지만 사람들이 알려준 곳으로 가 보아도 매표소는 보이지 않았어요. 사람들은 분명히 매표소가 있다고 하는데 가 보면 매표소가 없는 이상한 상황. 결국 인포메이션 센터에 갔어요.


"처녀의 탑 표 어디에서 사요?"

"여기요."


인포메이션 센터라면 아까 지나갔어요. 그리고 처녀의 탑 옆에 있는 인포메이션 센터라면 이번에 바쿠 오기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정말 등잔 아래가 어렵다는 말이 딱 맞는 상황. 설마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표를 팔겠냐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팔고 있었어요. 처녀의 탑 매표소이자 인포메이션 센터였어요. 물론 당연히 앞에는 '인포메이션 센터'라고만 적혀 있었지만요.


표를 사서 다시 처녀의 탑으로 들어갔어요. 계단은 가파른 편이었고, 좁아서 두 명이 지나가기에도 비좁은 곳도 있었어요. 각 층마다 전시실로 꾸민 곳도 있고, 기념품점도 있었어요. 하지만 전부 크게 인상적이지 못했어요.




오히려 이렇게 아무 것도 없는 층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아무도 없고 아무 것도 없어서 내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살펴보기 좋았어요. 참고로 이 층은 가장 꼭대기 층이에요. 벽에 TV가 걸려 있기는 했지만 작동하고 있지 않았어요.


"다 올라왔다!"


확실히 체력이 저질이 된 것을 느꼈어요. 고작 이 정도 올라오는데도 힘이 들었어요. 우다다다 뛰어서 올라가지는 못할 망정 다 올라왔다고 좋아하다니...역시 올해 등산을 한 번도 안 했더니 체력이 많이 저질이 되었어요. 물론 산에 올라가기는 했어요. 해발 4000미터가 넘는 산을 올라갔어요. 문제는 이게 걸어서 올라간 게 아니라 차로 올라갔다는 것이 문제죠.



매우 현대적인 푸른 빛 건물 세 개가 눈에 확 들어왔어요. 저 건물은 아제르바이잔 국장에 그려진 불꽃을 모티브로 디자인한 건물이래요. 참고로 저 건물은 멀리서 보면 완공된 것처럼 보이지만 외장 공사만 끝났어요. 가까이에서 보면 아직도 내부는 공사중인 것이 아주 잘 보여요.




처녀의 탑에서 본 바쿠 시내. 여기는 흙빛 도시에요. 아슈하바트가 흰색 도시였던 것과는 많이 대조적이었어요. 인위적인 흰색과 자연스러운 흙색은 흰색과 검정색처럼 머리 속에서 대비를 이루었어요.



시르반샤 궁전도 보였어요. 저기는 이번에는 전혀 갈 계획이 없었어요. 지난 번에 간 데다 입장료도 생각만큼 싸지 않거든요. 게다가 작년도 지금도 보수중. 작년에 갔을 때 궁전이라고 해서 정말 크게 기대하고 갔는데, 나올 때까지 왜 궁전인지 이해를 못했어요. 한 번 들어갈 만 했지만, 정말 화려한 궁전을 상상한다면 그 상상이 와르르 무너지는 곳. 물론 내부를 잘 복원하고 보수한다면 또 달라지겠지만요.



이것은 테제 피르 모스크. 돔이 워낙 눈에 띄어서 생각보다 찾기 쉬웠어요. 물론 사진은 줌을 해서 찍었지만요.



이 길은 카스피안 호스텔 가는 길. 이 길을 따라 쭉 직진하면 되요. 일요일이라 그런지 더욱 한가해보이는 길.



이것이 이체리 셰헤르에서 가장 유명한 입구. MUM 도 보여요. 이 지역 말로는 '뭄' 아니면 '쑴'.


'만약 5년 뒤에 여기 다시 온다면 그때는 고층 건물이 이체리 셰헤르를 완벽히 포위해 이체리 셰헤르가 공원처럼 보이지 않을까?'


정말 저 만큼 지었으면 이제 많이 지었으니 되었다고 할만도 한데, 아직도 새로운 건물들을 계속 짓고 있었어요. 즉, 내년에 여기 다시 오게 된다면, 그때는 또 풍경이 바뀌어 있겠죠.



이 길은 바쿠의 교통체증이 최고조로 달할 때 찍으면 꽤 볼만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사진으로 찍으니 길이 너무 한산해 보였어요. 이 정도면 무단횡단해도 될 정도. 바쿠에서 무단횡단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 차가 적지 않고 매우 빨리 달려서 무단횡단하기 어려워요. 모든 길을 자유롭게 무단횡단하며 다니는 타슈켄트와는 전혀 다른 곳. 시내에서 차가 안 막히면 시속 100km/h를 가볍게 밟아주시는 분들도 많아요. 멀리서 차가 오는 것 같아서 무단횡단하려고 하면 바로 슝 지나가는 동네가 바로 이곳.



멀리 보이는 깃대와 깃발은 기네스북에 등재된 거에요. 깃발이 펄럭이면 볼만한데 바람이 생각만큼 강하지 않아서 별로 펄럭거리지는 않았어요. 더욱이 화려했던 야경과 비교한다면 정말 조용한 풍경. 바다에 커다란 깃대와 깃발이 있을 뿐이었어요.



이쪽은 바쿠 항구. 우리가 배에서 내린 곳이 바로 저쪽이었어요. 저쪽으로 가면 카자흐스탄 악타우 가는 배와 투르크메니스탄 투르크멘바쉬 가는 배가 있겠죠. 두 나라는 카스피해 외에는 아제르바이잔과 직접 이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배가 다녀요. 러시아쪽과 이란쪽으로 가는 배가 있는지까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조지아 바투미에서는 러시아로 가는 배가 있었는데, 여기도 있는지까지는 안 알아보았거든요.


"오늘도 투르크메니스탄으로 가는 배가 있을까?"


많은 여행자를 고생시키고 울리는 투르크메니스탄. 작년에는 기분이 달랐어요. 바쿠 항구를 보며 '투르크메니스탄에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어요. 만약 그때 투르크메니스탄에도 갈 수 있었다면 여행 경로는 크게 달라졌을 거에요. 만약 투르크메니스탄을 갈 수 있었다면 카프카스 3국을 다녀오는 것이 아니라 아제르바이잔, 이란, 투르크메니스탄 3국을 다녀왔을 거에요. 그러나 당연히 그때 투르크메니스탄을 갈 방법이 없었어요. 그래서 카프카스 3국을 다녀왔어요. 카프카스 3국을 다녀오기로 결정하면서 당연히 이란은 빠졌어요. 지금 그때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여행사 통해서 이란 초청장을 받고, 조지아에서 시작해 원을 그리며 조지아로 돌아가 나가는 경로로 다닐 거에요. 하지만 그때는 정말 믿을 거라고는 론니플래닛 밖에 없었기 때문에 조지아와 아르메니아를 보기 위해 정말 많은 시간이 필요할 줄 알았어요. 막상 가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린다면 오래 걸리는 곳이고, 빨리 보려면 빨리 볼 수 있는 그런 곳이었는데요.


하지만 이번에는 그냥 웃었어요. 이미 투르크메니스탄을 다녀왔거든요. 그리고 그 나라를 또 비자 받느라 고생하면서 다시 기어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비자는 개시되었는데 배가 없어서 비자만 날려버릴 수 있다는 불안함을 느끼고 싶지도 않았구요. 우즈베키스탄에서 투르크메니스탄 들어가는 거야 육로로 들어가니 비자가 개시되었는데 그날 입국을 못해서 비자를 날려버리는 참사를 겪을 일은 없어요. 하지만 아제르바이잔에서 배 타고 투르크메니스탄 들어가는 건 배가 없으면 아예 입국도 못할 수 있으니 전혀 다른 이야기죠.


이란은 비자 받기 귀찮아서 안 간 것도 있지만, 투르크메니스탄 비자 받기 힘든 것이 더 컸고 결정적 이유였어요. 이란까지 이번 여행에 집어넣었다면 동선 상으로는 그렇게 문제될 것까지는 없었어요.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이란으로 간 후, 이란에서 아제르바이잔 들어가고, 그 이후 경로는 지금 계획과 똑같이 가면 되니까요. 하지만 이걸 시도했다면 비자 받는 과정에서 제 정신이 먼저 여행을 떠나버렸겠죠. 아니, 그 이전에 여행 준비 자체가 엉망진창 쓰레기가 되었을 거에요. 아제르바이잔은 그래도 운이라도 따라주어서 초청장 없이 비자를 빨리 받았고, 그 덕분에 투르크메니스탄 비자를 얻을 시간적 여유가 생겼어요. 하지만 이란 비자까지 시도했다면 동선이고 일정이고 완벽히 엉망진창될 수도 있었어요. 이란은 초청장도 받아야 하고, 비자도 받아야 하고, 그 비자를 받아야 투르크메니스탄 비자 받기를 시도해볼 수 있으니까요. 초청장이 있어서 비자만 후딱 받아 실행하는 거라면 별 상관 없지만, 저처럼 일이 제대로 꼬이는 와중에 이란 비자까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요.


그래서 항구를 보며 시원하다는 기분과 묘한 기분이 동시에 들었어요. 배만 정기적으로 잘 뜨고 비자만 쉽게 나온다면 다시 투르크메니스탄에 가서 남아 있는 것 싹싹 긁어서 보았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정말 그런 기적이 일어난다 해도 다시 갔을지는 그때나 여행기를 쓰는 지금이나 확신이 없어요. 투르크메니스탄에 또 가고 싶다는 소망도 없었어요. 여행도 자기가 좋아야 여행이지, 억지로 감흥도 관심도 없는 것을 '끝냈다'는 말 한 마디 하려고 가는 것은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이미 앞에서도 말했듯, 저의 투르크메니스탄에 대한 감상은 '언어와 사람들 외모 외에는 우즈베키스탄과 다를 것 없다'였어요. 억지로 투르크메니스탄 경유 비자 받고, 볼 것도 없는 곳 싹싹 돌아다닐 바에는 그 시간과 돈으로 우즈베키스탄을 더 많이 돌아다니고, 우즈베키스탄에 대해 더 많은 공부를 할 거에요. 이것이 제 투르크메니스탄 여행에 대한 소감. (관련글 : http://zomzom.tistory.com/419) 그때 기적이 일어나 투르크메니스탄을 다시 갔다면 그 이유는 오직 경비 절감의 목표 때문이었을 거에요. 비행기값이 배삯보다는 훨씬 비싸거든요.


처녀의 탑에 올라갈 때만 해도 그냥 처녀의 탑에 올라갔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멀리서 배를 타고 오며 보았을 때 하도 새로 지은 고층 건물이 많아서 처녀의 탑은 숨은 그림 찾기였거든요. 이 탑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여기서 전망 보기 좋다는 것과 옛날에 죄인들을 처녀의 탑 꼭대기에서 밀어서 죽였다는 것 정도. 그런 저의 기대와는 반대였어요. 180도 반대까지는 아니고 160도 반대였어요. 처녀의 탑에서 보는 바쿠 전망은 정말 볼 만 했어요. 한 가지 너무 아쉬운 점이라면 밤에는 문을 닫기 때문에 처녀의 탑에서 바쿠 야경을 볼 수 없다는 것. 여기서 바쿠 야경을 본다면 정말 환상적일텐데 여기는 밤에 문 닫거든요.


조금 더 구경하고 머무르고 싶었어요. 하지만 도저히 머무를 수가 없었어요. 사람들이 북적여서 때문이거나 관람 제한 시간이 있어서는 아니었어요. 사람도 많지 않고 한산해서 천천히 구경하기도 좋았고, 오래 있는다고 쫓아내는 것도 없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오래 못 있었던 것에는 전혀 다른 이유가 있었어요.


햇볕의 어퍼컷.


아무리 아슈하바트보다 햇볕도 약하고 덥지 않다고 해도 우리나라보다는 훨씬 강한 한여름의 햇빛. 이게 위에서만 쏟아지면 참을 만 해요. 문제는 이게 반사되어서 아래에서부터 올라오는 햇빛 또한 강하다는 데에 있었어요. 아니, 반사되어서 올라오는 햇빛이 오히려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햇빛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어요. 위에서 내려오는 햇빛이야 우리 주변에 항상 있는 것이니 그러려니 하지만, 아래에서부터 올라오는 강한 햇빛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단순히 강도만 놓고 보면 위에서 내려오는 햇빛이 강했어요. 이건 당연한 것. 하지만 정작 제 눈을 괴롭히는 것은 아래에서 올라오는 햇빛이었어요. 햇볕이 강하면 손으로 눈 위를 가리는 게 일반적인데, 이때는 아래에서 반사되어 올라오는 햇볕이 강해 손으로 눈 아래를 가렸어요. 그게 훨씬 눈이 아픈 것을 덜 느끼게 해 주었어요.


그렇다고 위에서 내려오는 햇볕은 견딜 만 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어요. 개인적으로 여행다닐 때 선글라스 끼고 풍경을 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서 항상 여행갈 때 챙기기는 하지만 눈을 감고 다닐지언정 웬만해서는 안 쓰고 다녀요. 지금까지 여행을 다니며 선글라스를 낀 적은 손으로 꼽아요. 이때는 공통점이 있었어요. 위에서 쏟아지는 햇볕도 강하고 하필이면 햇볕을 엄청나게 잘 반사하는 곳 (대리석 등) 위를 걷고 있어 도저히 맨눈으로 눈을 뜰 수 없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꼈던 거에요. 하필 이 날은 선글라스를 안 들고 나왔어요. 물론 '하필 이 날'이 아니라 '이 날도 당연히'가 맞는 표현. 눈을 가리고 보고, 눈을 감기도 하고 했지만 오래 있기 힘들었어요.



계단을 타고 내려갔어요. 다 내려오니 꼭대기에서처럼 눈이 부시지 않았어요.


"위에서 눈 안 아팠어?"

"뭐가 아프다구."


저는 정말 눈이 너무 시려서 견딜 수가 없었는데 친구는 별 것도 아닌 거 가지고 그런다고 했어요. 저는 풍경을 보며 멋있어서 어쩔 줄 몰라 했던 것이 아니라 정말로 눈이 너무 시려서 어쩔 줄 몰라 했던 것인데...


처녀의 탑에서 나와서 분수 광장으로 가기로 했어요. 뵤육 칼라 문을 지나는 순간 생각이 났어요.


처녀의 탑 위에서만 사진 찍고, 정작 처녀의 탑 사진 찍는 것은 까먹었구나!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