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두 개의 장벽 (2012)

두 개의 장벽 - 21 투르크메니스탄 결산

좀좀이 2012. 8. 30. 03:16
728x90

갑판 위에서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니다 다시 객실로 들어왔어요.


"사람 더 들어올까?"

"글쎄..."

"왠지 안 들어올 거 같지?"

"그렇기는 해."


사람에 비해 객실이 많았어요. 게다가 우리는 외국인에 동양인. 러시아인이라면 투르크메니스탄인, 또는 아제르바이잔인과 섞어버릴 수도 있겠지만 왠지 우리 방에는 사람을 더 집어넣을 거 같지 않았어요. 더 들어온다 해도 상관 없었어요. 둘이 마땅히 할 것도 없었거든요.


2층으로 올라가 시트를 깔고 드러누웠어요.


"자려고?"

"좀 누워 있게."


어제 에어컨에 시달려 몸도 안 좋고 잠도 설쳐서 피곤했어요. 친구는 조용히 자기 할 일을 했어요. 창문으로 바다 냄새가 들어왔어요. 이 얼마만에 맡아보는 바다 냄새냐. 작년 여름에 잠깐 내려갔다 왔으니까 바다 냄새 못 맡은지 이제 1년이구나. 바다 냄새가 친근했어요. 그리고 이 습기. 친구는 벌써 습하다고 투덜대는데 저는 오히려 좋았어요. 너무나 익숙한 느낌이었거든요.




침대에 옆으로 드러누웠어요. 조용했어요. 바다 냄새와 습기. 이제 사실상 투르크메니스탄을 벗어났구나. 묘했어요. 허무하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어요.


4일. 제가 투르크메니스탄에 머문 날이에요. 2012년 7월 1일에 입국해서 7월 4일 투르크멘바쉬에서 배를 탔으니까요. 막판에 일이 극적으로 잘 풀려서 오히려 예정보다 하루 더 빨리 이 나라에서 떠나게 되었어요.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어요. 이것은 위험과 관련 없는 문제였어요. 나가는 방법이 정해져 있는데 나가는 방법이 확정되지 않아 불안해한 여행은 투르크메니스탄이 처음이었어요. 만약 이란으로 나갔다면 이런 경험은 없었겠죠. 투르크메니스탄-이란 국경은 아슈하바트에서 매우 가까우니까요. 게다가 육로 이동이구요. 그런 건 돈으로 해결하면 되요. 천박한 이야기니 여행을 돈으로 해결하려 한다 비난이 아니라 당연한 거에요. 여행 계획은 낭만이지만 여행은 현실이니까요. 멍청하게 돈 아낀답시고 비자 만료일 못 지켜서 아슈하바트에서 벌금을 내고 비행기표 사서 비행기로 출국할 바에는 택시기사에게 100달러라도 쥐어주고 이란 국경으로 달려가는 게 현명한 것이죠. 정말 특별한 목표가 있지 않다면요. 물론 여행 목적 자체가 특별하다면 비자 만료일 못 지키고 벌금 물 수도 있어요. 하지만 투르크메니스탄은 아니에요. 비자 만료일 지키지 못하면 벌금과 함께 비자 갱신이 아니라 아슈하바트 돌아가서 벌금 내고 비행기로 출국이에요. 저는 언제 있는지 아무도 모르고 어쩌다 있다는 배로 투르크메니스탄을 떠나야 했어요. 카스피해를 헤엄쳐서 갈 수는 없으니까요. 오리배 타고 발로 저어서 가는 방법이 있다 한들 출입국 사무소에서 아예 출국심사를 거부했을 거에요. 그래서 이게 가장 큰 문제이자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다른 것들도 변수로 작용하고, 해결하기 위해 골머리 썩힌 문제였지만, 투르크메니스탄에 들어온 후에는 이 '출국 문제' 위에서 있던 부수적 문제였어요. 투르크메니스탄 출국 문제는 원초적, 근본적 문제였어요. 시간만 있다면, 그리고 돈만 있다면 해결 못할 문제들은 없었으니까요.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 생각에서 질문들이 떠올랐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투르크메니스탄 입국 순간부터 여기 이 객실에 드러눕기까지의 일을 차근차근 떠올려 보았어요.


나는 지금 우즈베키스탄에서 벗어난 것인가?


아주 놀라운 질문이 머리에 떠올랐어요.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저는 우즈베키스탄에 처음 발을 디딘 2012년 2월초까지 다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했어요.


나는 지금 우즈베키스탄에서 벗어난 것인가? 아니면 우즈베키스탄의 연장선상인가?


정말 쉬운 답. 멍청하게 생각하면 단 1초도 안 걸려 대답할 수 있는 답. 그러나 쉽지 않았어요. 주어진 시간은 5일. 그 중 제가 쓸 수 있는 시간은 불과 4일. 처음부터 4일이었어요. 위에서 말한 대로 출국 문제 때문에 4일+1일이었거든요. 출국을 운에 맡겨야 했기 때문에 5일째에 투르크멘바쉬에 들어가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방법은 정말로 큰 돈이 걸린 도박이었어요. 실제로 배가 4일째에 떴기 때문에 만약 도박을 한답시고 5일째에 투르크멘바쉬에 들어갔다면 저는 당연히 도박에서 졌겠죠. 7월 4일에 배가 떠서 7월 5일에는 배가 없었거든요. 아제르바이잔 가는 배가 두 척 있었는데, 그 두 척이 사이좋게 바쿠로 갔어요. 즉, 5일째에 투르크멘바쉬 항구에는 아제르바이잔 가는 배가 없었다는 이야기죠.


그래서 투르크메니스탄만은 우즈베키스탄과 비교-대조하는 방법으로 보았어요. 원래 이렇게 비교해가며 보는 것을 매우 안 좋아해요. 아무리 비슷하다 하더라도 일단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려고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일단 충분히 느낀 후, 그 후에 기존의 경험과 비교하는 걸 좋아해요. 하지만 투르크메니스탄은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 시간이 없었어요. 그렇게 느끼기 전에 해결해야 하는 것들이 엄청나게 큰 것들이었으니까요. 한가하게 느낄 시간도 없고, 그럴 정신적 여유도 없었어요. 출국 문제만으로도 신경이 잔뜩 쓰이는데 팔지도 않는 교과서를 구해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이 나라만큼은 어쩔 수 없었어요. 바로 옆에 있으며 5개월 머문 우즈베키스탄과 비교-대조하며 보는 수 밖에요.


투르크메니스탄 여행자들의 여행기를 보면 꼭 나오는 표현이 있어요.


중앙아시아의 북한


'나는 우즈베키스탄에서 벗어난 것인가?'라는 질문과 '투르크메니스탄은 중앙아시아의 북한인가?'라는 질문. 이 두 질문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었어요. 첫 번째 질문에 대답을 하면 두 번째 질문은 절반 이상이 풀리는 것이었죠.


그리고 이 질문을 풀기 위해서는 다시 하나의 질문에 대답을 해야 했어요.


해외 여행자에게 필요한, 그리고 해외 여행자들이 갈망하는 자유는 무엇인가?


먼저 '여행자에게 필요한, 그리고 여행자들이 갈망하는 자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을 하면 '나는 우즈베키스탄에서 벗어난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제시할 수 있고, 여기서 얻은 답을 토대로 '투르크메니스탄은 중앙아시아의 북한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는 구조.


해외 여행자에게 필요한, 그리고 해외 여행자들이 갈망하는 자유는 무엇인가?


여행자들은 다양한 꿈을 꾸어요. 100인의 여행자가 있다면 100인 모두 각자의 꿈을 꾸죠. 하지만 그 이전에, 이 꿈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자유가 있어요. 먼저 입국의 자유. 입국을 못 한다면 여행 계획으로 노벨 문학상을 타든 노벨 경제학상을 타든 소용이 없죠. 일단 입국을 해야 여행이 시작되니까요. 이것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당연히 여행자들은 엄청난 불만과 비난을 쏟아내겠죠. 여행하고 싶은데 여행을 개시할 수가 없으니까요.


그 다음은 이동의 자유. 자기가 가고 싶은 곳에 가고 싶은 것은 여행자들이 한결같이 원하는 것이에요. 가기 싫은 곳 억지로 가게 하는 것은 그저 힘만 뺄 뿐이죠. 그리고 즐거울 수도 없구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때문에 즐거운 것이고, 여행은 돌아다니고 구경하는 것인데,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여행에서 하려면 일단 이동의 자유가 보장이 되어야죠. 강제로 딱 정해진 코스 주고 '이것만 보고 이대로 이동하시오'라고 하면 당연히 자기가 하고 싶은 것과 어긋난 행동을 하는 것이니까요.


세 번째로 사진 촬영의 자유. 이제는 사진 찍는 것은 많이 보편화 되었어요. 간단히는 핸드폰 카메라로 찍을 수도 있고, 제대로 무거운 카메라와 렌즈 들고 다니며 사진 찍을 수도 있어요. 사진을 찍는 것은 추억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하는 욕구죠. 기억은 자연스럽게 흐려지고 잊혀지는데 그게 싫으니까요.


마지막으로 탈출의 자유. 들어왔으니 나가는 것은 당연하죠. 자기가 원할 때 나갈 수 있다는 것은 자기가 원하는 만큼 있을 수 있다는 것이에요. 이것은 여행자가 자신의 시간을 다스릴 자유를 의미하기도 해요. 일정이 틀어지면 더 있고, 마음에 들면 더 있고, 마음에 안 들면 떠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가고 싶은 대로 갈 수 있는 이동의 자유와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죠. 오직 출구가 하나라면 그 출구로 가기 위해 어느 정도 이동의 자유를 포기해야 하니까요. 내가 정말 그 출구로 가기 싫은데 출구가 거기 밖에 없다고 하면 어쩌겠어요. 거기로 가야지.


그 외에도 다양한 자유가 있지만 이것 네 개가 해외 여행자들에게 필요한, 그리고 해외 여행자들이 갈망하는 자유라고 답했어요. 들어가서 돌아다니고 추억을 기록하다 나오고 싶을 때 나오는 것. 세 번째인 사진 촬영의 자유는 가장 기본적인 자유라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지만 사진기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는 것은 이제 흔한 행위이지만, 제재를 하는 경우가 많고, 드러나는 행동이므로 집어넣었어요.


그렇다면 이 네 가지 자유를 가지고 '나는 우즈베키스탄에서 벗어난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해 보기로 했어요.


먼저 투르크메니스탄은 비자 받는 것이 매우 어려워요. 관광 비자를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이 경우에는 모든 일정과 호텔 예약을 전부 마치고 가이드를 대동해서 여행을 해야 해요. 가격은 당연히 비싸죠. 그리고 우즈베키스탄의 경우 비자 받으러 가서 대기하는 것은 똑같다고 해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당연하구요. 그래서 대부분의 여행자가 경유 비자를 받아가요. 제가 비자를 받을 때에는 관광객은 실상 비자를 못 받게 만들어서 매우 한산했어요. 예전처럼 힘들게 기다리고 그럴 필요가 없었고, 일처리 속도도 나쁘지 않았어요. 예전 여행자들 글을 보면 하루에 다섯 명 처리했다, 경찰이 뇌물 요구한다 등등 매우 부정적 이야기가 많았는데 제가 갔을 때 그런 것은 없었어요. 온 사람들 다 들어가고, 경찰이 뇌물을 요구하지도 않았어요. 경찰에게 뇌물을 주어야할 이유가 없으니 경찰도 당연히 뇌물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죠. 아주 간단한 원리. 이건 우즈베키스탄과 비교할 수 없는 것. 우즈베키스탄은 초청장은 여행사에 맡겨버리면 되고, 초청장 있으면 비자 받기 쉬워요.


이동의 자유. 투르크메니스탄은 관광 비자로 들어올 경우 이동의 자유가 크게 제한되나, 경유 비자로 들어오면 이동의 자유는 똑같아요. 단, 경유 비자는 길어야 5일 줘요. 문제는 투르크메니스탄 영토가 크다 보니 5일에 다 돌기는 빠듯해요. 그나마 다행이라면 볼 게 없다는 것 정도. 경유 비자로 들어오면 우즈베키스탄과 크게 다를 것은 없어요. 단지 시간에 쫓기기 때문에 시간의 제약을 받을 뿐이죠.


그리고 탈출의 자유. 투르크메니스탄을 경유 비자로 신청할 때 입구와 출구를 정해야 해요. 영사 외교관의 재량이 있다고 하는데, 비자에 입구와 출구가 찍혀 나와요. 비자에 찍인 입구로만 들어갈 수 있고, 비자에 찍힌 출구로만 나갈 수 있어요. 게다가 관용 따위란 없어요. 무조건 정해진 기한 내에 출국을 해야 해요. 그 정해진 기한이 5일이에요. 재수 없으면 3일 나오는 경우도 있다고는 하는데 이 경우는 이란으로 간다고 할 때 가끔 발생한다고 했어요. 이 역시 시간이 짧고 절대 관용이 없다고 하므로 우즈베키스탄보다는 매우 적다고 할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사진 촬영의 자유. 저는 여기에 주목했어요. 단순히 비자 안 주니 짜증이 나서 '중앙아시아의 북한'이라고 한다? 물론 중앙아시아를 여행할 때 투르크메니스탄이 교통의 요지에 위치해 있어서 여기를 반드시 가야 하는 사람들이 조금 있기는 해요. 예를 들어 자전거, 자동차 등 육로로 여행중인데 이란에서 우즈베키스탄으로 올라가는 사람, 또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이란으로 내려가는 사람이요. 하지만 여기 비자 안 준다고 짜증나면 우즈베키스탄에서 카자흐스탄으로 빠져나가도 되요. 카자흐스탄 악타우로 간 후, 배를 타고 아제르바이잔으로 가는 방법이 있죠. 투르크메니스탄이 너무나 좋은 길목에 위치하기는 했지만 피해가려면 충분히 피해갈 수 있어요. 단순히 비자를 주지 않는 것 때문에 '중앙아시아의 북한'이라고 할까요? 당연히 그것은 아니겠죠. 무언가 여행자에게 직접적인 제재가 많이 가해졌기 때문에 투르크메니스탄을 '중앙아시아의 북한'이라고 표현하는 데에 거침이 없는 것이겠죠.


과연 여행자에게 직접적인 제재가 많이 가해진 부분은 무엇일까? 저는 그게 사진이라고 답했어요. 담배야 흡연자가 아니면 별로 상관 없는 것이고 거리에서 태워도 되는지 안 되는지 잘 모르죠. 그냥 들어서 알 뿐, 자기가 담배를 못 태워 괴로워한 것도 아니고 그냥 그렇구나 하는 것이죠. 그리고 이런 제재라면 투르크메니스탄보다 훨씬 더 악명 높은 국가가 있어요. 바로 싱가폴! 그런데 그 누구도 싱가폴 보고 '동남아시아의 북한'이라고 하지는 않아요.


투르크메니스탄 여행기를 보면 아주 높은 확률로 한 번은 읽게 되는 에피소드가 있어요. 바로 사복경찰 (비밀경찰)과 관련된 글이죠. 그리고 놀랍게도 이 사복경찰과의 접점이 발생하는 원인은 한결같이 사진이에요.


그 이유는 투르크메니스탄 - 특히 아슈하바트에 사진 촬영 금지 구역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에 있어요. 투르크메니스탄에서 관공서는 사진 촬영 금지 구역이에요. 그렇다면 관공서가 딱 티가 나느냐? 아니에요. 어디 한 곳에 다 몰려 있느냐? 그것도 아니에요. 그래서 자꾸 사진 때문에 사복경찰과의 접점이 생겨버리는 거에요. 길을 걷다 보면 어떤 건물은 사진 촬영 건물인데 바로 옆 건물은 사진 찍어도 되는 경우가 있어요. 거기 사람들이야 구분하겠지만 관광객 입장에서는 모르죠. 다 하얗게 대리석으로 발라버린 건물들인데요. 그렇다고 디자인에 무슨 일관성이 있는 것도 아니구요. 그러다보니 사진 촬영 금지 구역이 아닌 곳을 찍는데 사복경찰이 제재를 하기도 하고, 모르고 찍으려는데 사복경찰이 제재하기도 하는 거에요. 이것으로 끝이냐? 천만에요. 아슈하바트에서 그나마 가장 사진 찍을만하게 생긴 곳이라면 대통령궁과 관공서가 모여있는 사거리에요. 거기가 가장 찍을만 해요. 그런데 거기는 정작 사진 촬영 금지 구역이에요. 아니, 아예 그 길은 걷는 것도 금지에요. 대통령궁과 관공서가 모여있는 사거리에서 사진 촬영이 가능한 곳은 오직 대학교 쪽. 사거리에서 말이 좋아 180도 사진 촬영 금지이지, 실제로는 180도가 넘어요. 이러니 여행자 입장에서는 자신이 감시당하고 있음을 철저히 느끼게 되는 것이죠. 한 번은 사복경찰이 와서 사진 찍지 말라고 하고, 심하면 카메라 검사하고, 압수하고 그러니까요.


이렇게 여행자에게 사진으로 인해 사복경찰과의 접점이 생기고, 그로 인해 자신이 민간인이라 생각하던 사람들이 민간인과 사복경찰이 섞인 무리라는 것을 알고 그 속에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에요. 최종적으로 자신이 철저히 감시당하고 있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죠.


그래요. 저는 우즈베키스탄에서 벗어난 것이 맞아요. 벗어난 정도가 아니라 투르크메니스탄도 이제 거의 빠져나왔어요. 사진도 마음대로 찍고 태우고 싶다면 담배도 마음껏 태울 수 있어요. 하지만 그 느낌...우즈베키스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느낌에서 자유로워진 것은 배에 탄 그 순간이었어요. 아무리 기억을 되돌려 보아도 배에 타기 직전까지 우즈베키스탄에 머문 것 아닌가 싶었어요.


이 답을 가지고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과연 투르크메니스탄은 '중앙아시아의 북한'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가?


일단 니야조프의 말도 안 되는 막장 정책들과 폐쇄 정책은 모두 사실이에요. 그것은 확실히 인정하고 들어가야 해요. 그런데 이것도 보면 무언가 이상해요. '중앙아시아의 북한'이라는 표현을 거리낌없이 쓰는 이유는 1. 폐쇄적이고 2. 풍경이 너무 북한스러우며 3. 철저한 독재이며 4. 감시가 지독하다는 거에요.


폐쇄적인 것은 인정해요. 이것은 닮았다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철저한 독재와 지독한 감시...이건 분명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였어요.


풍경이 북한스럽다? 이건 솔직히 옳다 그르다를 따지기 어려워요. 제가 평양을 본 적이 없으니까요. 다른 곳은 많이 비슷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북한도 소련도 사회주의였으니까요. 이건 발칸 유럽, 중부 유럽도 마찬가지였어요. 아파트는 무슨 ctrl+c, ctrl+v 해놓은 것 같았어요. 아파트 뿐만 아니라 건물, 기념비, 조각 등등 사회주의 국가 시절의 유산들 전부요. 이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인데, 아슈하바트의 하얀 대리석 건물들이 북한 닮았다? 글쎄요...하얀 것은 그냥 이 동네 튀르크 민족들이 좋아하는 것이구요. 앞서 말했듯 타슈켄트의 나보이 거리도 그렇게 바뀌어가고 있어요. 돈이 넘치면 아마 이 동네 튀르크 민족들 다 그렇게 하지 않을까 해요. 돈이 없으니까 그냥 놔두거나 대리석을 못 붙이는 거죠. 중요한 것은 그 건물들이 모여 어떤 모양을 만들고 있느냐였어요. 건축 양식이 비슷하다 이런 건 의미 없어요. 그러면 소련의 영향을 받은 모든 나라가 다 비슷한데요. 핵심은 바로 건물들이 모여 어떤 모양을 만들고 있느냐인 것이었어요. 아슈하바트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건 무언가 큰 틀을 짜고 거기에 맞추어 도시를 건설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풍경이에요. 대체 무슨 생각을 가지고 도시를 만들었는지 알 수가 없어요. 정말 균형, 조화, 통일 따위는 보이지도 않아요. 왜 대학교는 쓸 데 없이 높을까요? 주변 건물들 중 가장 높은데 말이죠. 누가 보면 국회의사당인 줄 알게 생겼어요. 기차역은 왜 그렇게 놀이동산처럼 생겼을까요? 다른 건물들은 칼각 잡고 있는데 혼자 곡선 지붕에 파란색이에요.




이게 서로 어울린다고 생각하세요? 아파트 단지를 지어도 저렇게 서로 안 어울리게 짓지는 않아요. 이건 어린아이가 자기 좋아한다고 마구 가져다 놓은 듯한 풍경.


니야조프의 막장 정책들도 마찬가지에요. 이게 국민은 굶어죽든 말든 나 혼자 잘 살면 된다고 치밀한 계산하에 한 정책인지 별 생각 없이 감정적으로 한 것인지 대체 분간이 되지 않는 것이 많아요. TV에 나온 가수의 금니가 보기 싫다고 TV에 나오는 사람들 금니 못하게 한 건 계산된 행동일까요? 수도 잘 꾸며놓고 병원은 수도에 있으니 지방 병원 다 없애고 수도로 와서 치료받으라고 한 것이 과연 계산된 행동일까요? 자기 몸에 해롭다고 전국에 금연령 내리고 거리 더러워진다고 해바라기씨 금지한 게 치밀한 계산 하에 이루어진 행동일까요? 정치적으로 계산된 행동들도 물론 많고, 그렇게 해석될 수 있는 행동들도 물론 많아요. 하지만 금니 하고, 담배 태우는 것과 정치가 대체 무슨 관계인가요? 이건 러시아 및 러시아인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한 것도 아니에요. 한 마디로 어린애가 자기 하고 싶은대로 막 했다고 밖에 말할 수 없어요.


철저한 독재는 투르크메니스탄 뿐만이 아니에요. 카자흐스탄도 마찬가지고, 우즈베키스탄도 마찬가지에요. 그래서 이 지역에서 사람들에게 정치에 대한 토론을 하자고 하는 것은 돌 맞아 죽어도 싼 짓이에요. 자기야 재미있게 시간 때우고 가 버리면 되는 일이지만, 상대방은 생사의 기로에 서는 일이에요. 농담 같으신가요? 이쪽은 정치에서 자비란 없어요. 카자흐스탄도 철저한 독재이고, 우즈베키스탄도 철저히 독재에요. 그런데 사실 여행자는 이런 거랑 별 관계가 없죠. 그냥 듣고 읽은 투르크메니스탄 사파르므라트 니야조프 전 대통령의 막장스러운 정책과 그저 웃음만 나오게 만들어 버리는 아슈하바트의 풍경이 비자 문제와 합쳐져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는 것이죠.


그리고 철저한 감시. 이건 당연한 거에요. 이 지역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거라 언급할 가치조차 없어요.


나의 우즈베키스탄은 그렇지 않다구요?


타슈켄트 경찰 깔려 있는 것에 비하면 아슈하바트는 엄청 드물게 보이는 거에요. 만약 단 하루라도 타슈켄트에서 경찰을 한 번도 보지 않는다면 그건 아예 그날 집에서 나가지 않았다는 거에요. 사복경찰이요? 우즈베키스탄도 깔리고 깔린 것이 사복경찰이에요. 저도 직접 보았어요. 어디서요? 그렇게 관광객들 득시글한 사마르칸트 레기스탄 광장에서요. 사진 촬영 금지 구역이요? 우즈베키스탄도 많아요. 아미르 테무르 공원과 이어진 브로드웨이 거리에도 사진 촬영 금지 구역 있어요.


우즈베키스탄도 감시 엄청나게 심한 나라에요. 모든 전화는 도청해서 현지인들은 절대 전화통화할 때 달러 이야기를 안해요. 이건 일종의 금기에요. 사진 촬영 금지 구역 뒤지면 많이 나와요. 사복경찰이요? 깔렸다니까요. 여행자와 접점이 발생할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모르고 지나갈 뿐이에요. 일단 여기는 밖에서 관공서를 찍는 것은 거의 금지가 아니에요. 그리고 타슈켄트의 경우 관광객들이 가는 아미르 테무르 공원, 국회의사당, 나보이 거리, 초르수 바자르에는 사진 촬영 금지 구역이 없어요. 국회의사당 근처 - 즉 브로드웨이 거리 거의 끝쪽에 사진 촬영 금지 구역이 있는데 여긴 워낙 무시하고 지나가게 생긴 곳이라 모르고 지나가죠. 관광객이 갈 일이 없는 곳에는 사진 촬영 금지 지역 꽤 있어요. 그런데 관광객이 거기 갈 일이 없고, 관광객이 가는 곳에는 일단 외관을 찍는 것까지 제재하는 곳이 없으니 그들과의 접점이 발생할 수가 없죠. 얼마나 철권을 휘두를 수 있냐구요? 우즈베키스탄 최대 통신사 MTS가 하루 아침에 훅 날라갔다니까요. 정말 갑자기 다음날 눈 뜨고 나니 MTS는 전부 먹통. 초 대기업도 한 방에 휙 보내버려요. 투르크메니스탄에서 느꼈던 그 제재? 거리에서 담배 못 태우게 하고 해바라기씨 못 까먹게 하는 거 빼면 우즈베키스탄이라고 다를 거 없어요. 카자흐스탄은 정확히 잘 모르지만 거기도 비슷하겠죠. 거기도 만만찮으니까요.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은 소련 붕괴 후 단 한 번도 대통령이 바뀐 적이 없어요. 이런 사전 경험과 지식 때문에 전혀 놀랄 것이 없었어요. 다른 여행자들의 호들갑과 달리 '대체 뭐가 우즈베키스탄과 다른 거야?'라고 느낄 수밖에 없었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 사고 안 치고 살면 별 거 없어요. 하지만 오래 머무르다보면 이것 저것 알게 되는 것이죠.


저 역시 투르크메니스탄에 짧은 시간 머물렀어요. 하지만 거기서 여행자를 놀라게 하고 짜증나게 하고 감시받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들은 투르크메니스탄 고유의 것은 아니었어요. 단순히 그것 때문에 투르크메니스탄을 '중앙아시아의 북한'이라고 한다면 중앙아시아에서 북한 아닌 나라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키르기즈스탄과 타지키스탄? 키르기즈스탄은 혁명으로 불안정하다고 하고, 타지키스탄은 내전을 한쪽의 승리로 종결지은 것이 아니라 합의로 종결지은 것이니까요. 이 변변찮은 두 국가를 제외하고 투르크메니스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은 그럼 다 중앙아시아의 북한인가요? 결론은 그랬어요. 투르크메니스탄에 장기간 체류하며 그 나라만의 문제를 느끼고 그런 표현을 쓴다면 모를까, 단순히 여행자로 지나가며 짜증나니까 그런 표현을 쓴다는 건 옳지 않다구요. 여행자가 느끼는 짜증은 투르크메니스탄만의 것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흡연 문화.


이것은 투르크메니스탄 입국하며 하나의 연구과제로 설정했어요. 그리고 이제 그 연구과제의 결과를 보여드릴 시간. 먼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투르크메니스탄은 담배 엄청 태워대는 국가에요. 아마 앞으로 투르크메니스탄 여행을 계획중이신 흡연자분들은 눈이 번쩍 뜨일 정보이겠죠. 금연국가에서 어떻게 담배를 뻑뻑 태워댈 수 있는가에 대한 정보이니까요.


일단 이 나라는 실내에서 엄청나게 태워요. 호텔 방에서 열심히 태우세요. 방에서 태우는 건 아무도 뭐라고 안 해요. 단, 복도에서는 웬만해서는 태우지 마세요. 이럴 때는 여기 저기 똑같이 적용되는 아주 좋은 방법이 있지요. '현지인 할 때 같이 해라'. 호텔에서 방 밖에서 태워도 되는지 궁금하다면 물어보세요. 또는 현지인이 태울 때 같이 태우세요. 무단횡단도 현지인이 할 때 같이 하고 흡연도 현지인이 할 때 같이.


파라브 국경에서 아슈하바트 입구까지는 흡연이 꽤 자유로운 편이에요. 특히 경찰이 없다면 낮에도 밖에서 뻑뻑 잘 태워요. 어차피 감시하는 사람 없으니까요. 단, 검문소 지나갈 때 조심하세요.


차를 타고 태울 때 아래와 같은 표지판이 보였다? 빨리 담배 끄세요.



PÝGG


경찰이 있다는 뜻이에요. 표지판 보이면 빨리 끄세요. 냄새 나는 걸로는 안 잡아요. 사실 경찰들도 다 태우거든요.


이제부터 아슈하바트. 사실 가장 문제가 되는 곳이 아슈하바트에요. 실내에서 태우는 것은 기본이지만, 사실 밖에 있을 때 태우고 싶은 게 문제죠. 인간은 배터리가 아니니까요. 이건 투르크멘 사람들도 똑같은 문제. 투르크멘 사람들은 몸에 니코틴 저장고가 있어서 미리 저장했다가 태우고 싶을 때마다 조금씩 빼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이들 역시 이 문제에서 전혀 자유로울 수가 없어요.


먼저 기차역에서 대통령궁이 있는 길은 무조건 금연이에요. 여기서 괜히 뭐 해보겠다 하면 바로 20달로 훅 날라가는 수가 있어요.


아슈하바트에서 바깥에서 담배를 탈 수 있는 방법은 제가 찾아내기로는 두 가지였어요. 먼저 첫 번째. 택시를 탑니다.



투르크메니스탄의 승용차는 뒷좌석은 밖에서 아예 보이지 않게 선팅을 해놓았어요. 택시를 잡고 뒷자리에 타서 외곽으로 가자고 한 후 후다닥 한 대 태우는 것이죠. 응용도 있어요. 경찰 안 보이는 곳에 세워달라고 한 후 뒤에서 뻑뻑 태우고 가는 것이죠. 투르크멘인들이 차에서 잘 태우는데 이렇게 태우는 방법이 있어요.


두 번째. 조기 흡연 교육을 받은 분들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매우 슬기롭게 해쳐나가실 거에요. 담배에 굶주린 흡연자는 매의 눈과 개의 코, 그리고 민첩한 분석력을 보유하고 있죠. 거기에 본능까지 발동! 알아서 태울만한 곳을 찾아 갈 거에요. 옛날의 추억을 더듬으면서요. 그런데 이렇게 몰래 숨어서 태우는 곳이 반드시 으슥한 곳에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길에서 보이지 않는 곳이라면 있어요. 바로 앞이 공원이고 사람들 돌아다니는데 뒤에 있는 길을 조그만 가게들이 막아주고 있으면 사람들이 태워요.



이게 매너 담배 잡기.


한국에서 잡듯 담배를 잡으면요?


이놈, 팀킬할 놈일세!


저렇게 잡는 이유가 있어요. 흡연자는 다 아시겠지만 비흡연자를 위해 설명드릴게요. 먼저 저렇게 잡으면 담배를 손 안에 감출 수 있어요. 당연히 불은 새끼 손가락쪽에 가 있죠. 그리고 저렇게 잡으면 연기를 숨기기 좋아요. 담배 연기가 위로 쭉 올라가면 멀리서도 담배 연기가 잘 보이죠. 저렇게 잡으면 연기가 손 안에 고여서 나가기 때문에 위로 많이 올라가지 않아요. 담배는 연기로 잡는 것이랍니다. 연기가 보이면 현장을 덮쳐서 잡을 수 있지만, 냄새만으로는 자꾸 둘러대니까요. 게다가 야외이구요. 담배가 전면금지도 아니고 사실상 실외흡연 금지인데다 경찰들도 담배 태우기 때문에 냄새로 잡기는 어려워요.


일단 쭈그리고 앉습니다. 일어서서 태우는 것은 자기가 담배 태우고 있다고 광고하는 것이니까요. 앉아서 태워야 연기가 높이 올라가지 않고 아래에서 퍼지죠.



이런 모습이에요. 서로 마주보며 태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한 방향을 주시하며 경찰이 오나 감시하죠. 그리고 연기는 당연히! 위로, 그리고 세게 뿜지 않습니다. 천천히, 부드럽게 자신이 맡은 방향을 주시하며 뿜죠. 만약 멀리 경찰이 보이면 빨리 담배불을 땅에 문질러서 빼고 발로 밟아버립니다. 그리고 경찰이 가면 담배불을 끈 담배가 장초면 다시 불을 붙여 똑같이 태우죠. 재미있는 것은 경찰도 몰래 태우러 와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이런다는 것입니다.


가끔 경찰이 거리에서 몰래 담배를 태우는 것도 보았어요. 손 모양은 위와 똑같았어요. 안 태우는 척 하는데 왜 손을 저렇게 쥐고 입에 갖다 대었다 빼었다 할까요? 그냥 담배가 땡겨서? 당연히 그럴 리가 없죠. 다 아는데 경찰이니까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였어요.


해바라기씨는 더 쉬워요. 이건 호주머니에 넣고 하고 싶을 때마다 입에 한 개 가져가고 껍질은 풀숲에 휙 던졌어요. 이건 대통령궁 가는 큰 길가에서 보았어요. 길에 나와서 하는 것은 아니고 나무 아래 그늘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이렇게 하고 있더군요.


내심 투르크메니스탄에 들어오며 '금연의 나라'라는 말에 기대를 많이 했었어요. 그런데 실제 본 것은 그냥 웃기다고 해야할지 어이없다고 해야할지 불쌍하다고 해야할지 분간이 가지 않았어요.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이야!


간단히 정리하자면 우리나라에서 조기 흡연 교육 이수중인 사람들이나 하는 짓을 이 나라에서는 일반 성인 흡연자들이 하고 있다는 것이죠.


이렇게 생각들을 정리하며 눈을 감았어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