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20일 오전이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글을 쓰다 어딘가 가고 싶어졌어요. 바람도 쐬고 걷고 싶었어요. 이상하게 날이 참 추워질 때만 되면 오히려 밖으로 나가고 싶어졌어요. 날이 따스해서 걷기 좋은 날에는 오히려 하루 종일 집에만 있어도 답답한 느낌이 없구요. 다른 따스한 날에는 계속 집에 있으며 글 잘 쓰고 있었는데 날이 추워지자 집에 있기 매우 싫어졌어요.
'심야시간 풍경 영상 촬영하러 나갔다 올까?'
마침 심야시간 풍경 영상 촬영하는 데에 재미를 붙였기 때문에 이따 밤에 심야시간 풍경 촬영하러 한 번 나갔다 오고 싶었어요. 밤에 걸어다니면서 길거리 풍경 영상 촬영하고 사진 찍어서 글도 쓰기로 마음먹었어요. 나가고 싶은데 억지로 참아봐야 되는 것은 하나도 없고 집에서 시간만 날리거든요. 날씨가 춥든 말든 일단 나가서 서울 돌아다니고 보기로 했어요.
'어디 가지?'
서울을 다녀오기로 마음먹었지만 어디 가고 싶다고 떠오른 곳은 없었어요. 그냥 막연히 서울로 놀러갔다와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었어요. 서울에 가기로 마음먹고 나서 어디 갈 지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지금까지 서울에서 심야시간 풍경 동영상을 촬영한 곳들을 쭉 떠올려봤어요. 대체로 서울 도심권에 집중되어 있었어요. 허름한 동네라 해도 서울 도심권에 있는 허름한 동네였어요. 제일 멀리 간 것이 대림동, 가리봉동, 영등포역 정도였어요. 그 외에는 대부분 108번 버스를 타고 가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한 곳들이었어요. 일단 아는 동네부터 다니고 있었거든요.
'서울역 뒷편 한 번 가볼까?'
문득 서울역 뒷편을 한 번 가보고 싶어졌어요. 서울역 뒷편은 중림동, 만리동, 서계동, 청파동이 있어요. 이쪽은 제가 거의 안 가본 곳이었어요. 중림동은 그래도 중림성당도 있고 중림시장도 있어서 가봤지만 만리동, 서계동, 청파동 같은 곳은 갈 일이 아예 없었어요. 거기는 진짜로 뭐 없는 동네거든요. 달동네라고 부를 수 있는 동네들이기는 하지만 매우 허름한 달동네까지는 아닌 곳들이에요. 딱히 일부러 찾아갈 만한 동네는 아니에요. 그 동네들을 직접 가서 다 돌아본 것은 아니지만 그 동네들 앞에 있는 길은 매우 만히 지나다녔거든요. 이 동네들 앞으로 지나는 서울역 뒷편 큰길은 갈현동, 남영역, 용산역 등으로 이어지고, 쭉 가면 마포, 공덕까지 이어져요. 더 가면 마포대교 건너서 여의도가 나오구요. 그래서 이 동네들을 직접 가본 적은 없지만 용산역에서 서울역까지 걸어가며 많이 지나가보기는 했어요.
'어차피 가고 싶은 곳 확 떠오른 데도 없잖아.'
서계동, 만리동 등은 심야시간 골목길 풍경 촬영하러 갈 기회가 무지 많았어요. 그러나 여태 안 가고 있었어요.
첫 번째 이유는 조금 아껴두고 있는 동네들이었어요. 이 동네를 가기 위해서는 서울로 7017을 걸어서 서울역 뒷편으로 넘어가든가 서울역을 관통해 뒷편으로 가든가 해야 했어요. 서울로7017 영상을 촬영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동네들은 서울로 7017 촬영할 때 한 번에 같이 촬영할 계획이었어요.
두 번째 이유는 이 동네에 대체 뭐가 있는지 몰랐다는 점이었어요. 요즘 은근히 관광지로 띄워주려는 움직임이 보이기는 하지만 여기가 관광지가 될 만한 곳인지 진지하게 의문이었어요. 서계동, 만리동, 청파동은 그냥 사람들 사는 곳이거든요. 중림동은 중림성당이라도 있지, 서계동, 만리동, 청파동은 진짜 아무 것도 없는 동네였어요.
'일단 가보자.'
이번에는 카메라를 들고 저녁에 가서 동네 돌아다니며 사진 찍은 후 밤에 다시 와서 심야시간 영상을 촬영하기로 했어요.
2020년 1월 20일 오후 5시 30분. 서울역 뒷편으로 나왔어요.
서울역 뒷편으로 나와서 국립극단 소극장판 옆 골목길로 들어갔어요.
조금 걸어가자 관광지처럼 꾸며진 구멍가게 하나가 나왔어요.
계속 골목길을 따라 걸어갔어요.
'여기 재개발 될 건가?'
서계동을 걸으며 여기가 과연 재개발될 수 있을지 궁금해졌어요.
서울 용산구 서게동은 서울역 뒷편 구릉지에 형성된 주거지역 동네에요. 여기는 교통편이 워낙 좋아서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는 서울 재개발 후보지 중 하나에요. 서울역 바로 뒷편이다보니 주택지로 조성해도 괜찮고 상업지역으로 재개발해도 괜찮거든요. 쉽게 말해서 뭘 해도 되는 자리에요. 동네가 지저분하냐면 그렇지도 않아요. 남대문로5가라든가 동자동 같은 곳은 쪽방촌이 있어서 동네가 지저분한 편이에요. 그렇지만 여기는 쪽방촌까지는 없어요.
서울 용산구 서계동은 2007년에 뉴타운 후보지로 지정되었어요. 그렇지만 서울시는 2012년에 도시정비법에 의거해 '서계동 일대 지구단위계획 구역 지정 및 지구단위계획 결정안'을 통과시켜버렸어요.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역작이자 최대 망작인 서울로7017도 서계동 재개발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에요. 서울로 7017은 원래 서울역 뒷편 중림동, 서게동 등지와 남대문, 명동 등을 연결하기 위해 무리하게 인도로 조성된 고가도로에요. 이때 내세운 명분 중 하나는 중림동, 서계동 등이 낙후되고 도심과 단절된 지역이기 때문에 이쪽 재개발을 위해서는 보행도로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었어요. 서울역 일대는 지하철 노선이 1호선, 4호선, 공항철도가 들어와 있고 추가로 지하철 노선이 들어올 예정이에요. 여기에 지상으로는 일반 철도가 있구요. 그래서 지하로 통행로를 뚫기도 어려우니 지상에 서울로 7017을 만들어 보행로를 확보하고 서계동, 중림동의 도심과의 단절성을 해결하자고 했어요.
웃긴 것은 박원순 서울 시장이 이렇게 주장하며 많은 반발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서울로 7017 조성을 강행해놓고는 정작 서계동, 중림동 등지 재개발은 엎어버렸다는 거에요. 그 결과 서울로 7017은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쓰레기 흉물 덩어리가 되어버렸어요. 근처 직장인들이 점심 때 산책 코스로 이용한다고 하기는 하더라구요.
박원순 서울시장의 도시재생사업은 완전히 실패한 사업이라고 확정되었어요. 그거 해서 제대로 된 동네가 없어요. 부작용만 엄청 심하구요. 서울 집값 폭등 원인 중 도시재생사업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어요.
이와는 별개로 서계동은 재개발 방식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동네이기도 해요. 워낙 입지 조건이 좋아서요. 상업지역으로 개발해도 매우 좋은 자리이고, 주거지역으로 개발해도 매우 좋은 자리거든요. 구릉지라 해도 서울역 너머 맞은편 후암동에 비하면 경사가 매우 완만해요. 후암동은 진짜로 남산 등산하며 올라가야 하는 곳이지만 서계동은 그런 동네까지는 아니거든요.
요즘 보면 서계동을 관광지로 만들려고 하는 움직임도 있어요. 이게 도시재생사업의 한 부분이에요. 그런데 관광지로 키울만한 곳인지는 진지하게 의문이에요. 가장 큰 문제는 여기가 일반 거주지역이라는 점이에요.
벽화 조성 사업의 대표적인 문제점이 바로 관광지화되어서 기존 거주민들의 불편과 불만이 폭증하게 되었다는 점이에요. 사람들이 선호하고 좋아하는 관광산업은 일반인들 대부분이 생각하는 직장의 조건과 똑같아요. 출퇴근 개념이 있는 모습이에요. 관광지로 출퇴근하는 관광산업을 원하지, 자기 집이 구경거리가 되는 걸 원하지 않아요. 일반인들한테 회사 안에서 집세 내며 살면서 일하라고 하면 엄청 싫어하잖아요. 똑같아요.
저는 언제나 똑같이 주장해요. 집 문제는 집으로 보상하라구요. 서계동은 분명히 재개발해야 하는 곳 맞아요. 대신 보상해줄 때 여기 사는 사람들에게 돈이 아니라 집을 보상해주라는 거에요. 상업지구로 개발하든 주거지역으로 개발해서 고급 고층 아파트를 짓든 간에요.
슬슬 어둠이 깔리고 있었어요.
위 영상은 2020년 1월 21일 새벽 1시 23분에 촬영한 서계동 심야시간 풍경 영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