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서울

서울 종로구 5호선 종로3가역 익선동 한옥마을

좀좀이 2019. 12. 21.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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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비 온다!"


빗방울이 매우 거세졌어요. 우산을 안 쓰면 외투가 다 젖어버리게 생겼어요.


'야식이라도 뭐 먹을까?'


조금 출출했어요. 동대문 문구완구시장을 촬영하고 종로꽃시장으로 오는 길에 치킨 냄새를 맡았어요. 갑자기 치킨이 먹고 싶었어요. 한국통닭 가서 혼자 두 마리 뜯어먹으며 빗줄기가 조금 약해지는지 보기로 했어요.


한국통닭으로 갔어요. 일요일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조금 있었어요. 동대문 한국통닭 안에서 치킨을 먹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동남아시아 사람들이었어요. 저도 후라이드 치킨 2마리를 시켜서 혼자 치킨을 먹었어요. 치킨을 먹으며 비가 조금 잦아들기를 바랬어요. 치킨이 뜨거웠기 때문에 먹는 데에 시간이 조금 걸렸어요. 한국통닭은 닭이 매우 날씬하고 작아서 혼자 2마리 먹는 데에 별 무리는 없었어요.


치킨을 다 먹고 밖으로 나왔어요.


"비 그쳐가네."


빗줄기가 매우 많이 약해져 있었어요. 이 정도라면 이날 제일 중요한 목표인 익선동 한옥마을로 가서 사진과 영상을 촬영하는 데에 아무 문제 없었어요. 비가 많이 내리면 우산을 쓰고 돌아다녀야 해서 사진 찍고 영상 촬영하기 매우 어렵거든요. 그러나 이 정도 빗줄기라면 부담없이 돌아다닐 수 있는 정도였어요. 아마 익선동 도착하면 비가 다 그칠 거였어요.


예상대로 종로 5가를 지나 종로4가쯤 오자 빗줄기가 멎었어요. 우산 안 쓰고 두 손으로 스마트폰 잡고 걸으며 사진을 찍어도 되는 날씨였어요.


'익선동은 사진부터 찍고 동선 정한 후에 영상 촬영해야겠다.'


가회동 한옥마을과 달리 익선동 한옥마을이 어디 있는지 잘 알고 있었어요. 익선동 한옥마을은 종로3가역 5호선 출구로 나가면 있어요. 종로3가역 5호선 출구는 종로대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돈화문로11길에 있어요. 종로3가역 출구 중 지하철 5호선 출구는 3번 출구, 4번 출구, 5번 출구, 6번 출구에요. 이 네 출구 중 아무 데로 나가도 익선동 한옥거리를 갈 수 있어요. 제일 쉽게 찾는 방법이라면 종로3가역 4번 출구로 나와서 맞은편 골목길로 들어가는 방법과 6번 출구로 나와서 바로 골목길로 들어가는 방법이 있지만 꼭 그렇게 안 해도 되요. 지하철 5호선 출구로만 나가면 금방 갈 수 있어요.


익선동 한옥거리 위치는 잘 알고 있었지만 문제는 익선동 한옥거리 내부 골목길에 대해 완전히 꿰고 있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어요. 익선동 한옥거리를 몇 번 가본 적이 있기는 했지만 잘 가는 곳은 아니었어요. 게다가 익선동 한옥거리 갔을 때도 딱 특정한 어느 곳을 가겠다고 간 것이 아니라 별 생각없이 느낌 오는 대로 돌아다녔어요.


사진만 찍으며 돌아다닐 거라면 이렇게 돌아다녀도 상관없어요. 예쁜 장면 보이면 즉흥적으로 사진을 찍으면 되니까요. 거기까지 어떻게 갔는지 과정은 하나도 담겨 있지 않아요. 그렇지만 영상을 찍을 때는 달라요. 영상은 동세가 들어가기 때문에 그렇게 무턱대고 영상을 다 촬영하면 영상 촬영 시간이 엄청나게 길어져요. 돌아와서 영상 잘라내며 편집해야 하는 시간이 추가적으로 매우 많이 들어가는 것은 덤이구요. 일단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동선을 짜고 한 번에 영상을 찍어서 끝낼 계획이었어요.


저는 종로3가역 4번 출구 맞은편 골목길로 들어가서 시작하기로 했어요.


익선동 한옥거리 입구


2019년 12월 1일 새벽 3시 25분. 종로3가역 4번 출구 맞은편 골목길로 들어갔어요. 익선동 한옥거리가 시작되었어요.


서울 종로구


골목길을 따라 걸어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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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ro


익선동 한옥 마을에는 10평에서 30평 규모인 작은 한옥이 100여 채 이상 모여 있는 곳이에요. 익선동 한옥마을에 있는 한옥은 가회동 북촌 한옥마을에 있는 한옥들과 달리 작고 소박한 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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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3가


Jongno3ga


익선동 한옥 거리는 1930년대에 형성된 한옥 마을이에요. 서울에 남아 있는 1930년 이전에 형성된 유일한 한옥 마을이라고 해요.


일본 강점기가 시작되고 서울 인구가 증가하면서 서울에는 주택난이 발생했어요.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당시 서울 사진을 보면 판잣집, 토굴 사진도 간혹 보일 때가 있어요. 일본인들이 토지를 매입했고, 국유지와 공동 소유지가 증가하면서 개인 소유지는 줄어들었어요. 1917년 당시에 조선땅에서 국유지는 절반 이상이었고, 일본인 소유 토지가 35%, 조선인 개인 소유 토지는 28% 밖에 안 되었다는 통계도 존재한다고 해요.


서울 인구가 증가하자 서울에서는 주택 공급이 서울 인구 증가를 아예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대요. 당시에 무슨 고층 아파트 같은 것이 있었던 것도 아니니 더욱 그랬어요.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10층 짜리 아파트 대신 거기 있는 집이 모두 1층 단독 주택으로 펼쳐져 있다고 상상해보면 주택단이 얼마나 더 가중될 지 쉽게 상상할 수 있어요. 일제 강점기에는 지금처럼 고층 아파트를 쭉쭉 지어올리던 때가 아니었기 때문에 인구가 조금만 빠르게 증가해도 주택난은 필연적이던 시절이었어요.


이 시절, 조선인들이 살던 대부분의 기존 주택은 초가집이었어요. 초가집은 생활의 불편과 비위생 같은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는 주택이었어요. 그래서 서울 거주 일반 서민들을 위한 저렴한 가격의 주택 공급이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했어요.


1920년대에 한국 최초 근대 건축가인 정세권씨가 자신의 회사를 통해 익선동 관할 토지를 대량으로 매입해서 분할한 후 평균 30평의 한옥을 지어서 공급했다고 해요.


이 시기에 주택을 많이 소유한 일본인들은 일본식 주택을 건설했어요. 오늘날 우리나라 도처에 몇몇 남아 있는 일본식 주택을 보면 일본식 주택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 대충 파악할 수 있어요. 이런 일본식 주택은 일제강점기가 끝난 후 '적산가옥'으로 분류되어 한국인들 소유가 되었지만 한국전쟁을 거치고 여기저기 재개발되며 많이 사라졌어요.


조선인 지식인과 부유층은 이 당시 '문화주택'이라 불리는 서양식 주택을 선호했다고 해요. 요즘은 찾아보기 어려운 말이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양옥집'이라는 말이 있었어요. 지금은 죄다 '단독주택'이라고 부르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한옥'과 '양옥'을 구분해서 부르곤 했었어요.


정세권씨는 종로에 일본식 건물이 들어서는 것을 원하지 않았어요. 정세권씨는 종로에는 한옥이 적합하다고 생각했어요, 단, 완전히 전통적인 한옥은 종로에 여러 조건상 부적합한 점이 존재하기 때문에 개량형 한옥이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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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 정세권씨가 익선동에 지은 한옥 마을에 있는 한옥은 일제강점기 시기에는 상당히 파격적인 한옥이었다고 해요. 수도와 전기가 들어왔고, 전통적인 한옥 구조가 아니라 편리한 생활을 위해 공간을 재배치했다고 해요. 또한 더위와 추위를 피할 수 있도록 대청마루에 유리문을 달았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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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선동 한옥마을은 처음부터 서울의 일반 서민들에게 주택을 보급하기 위해 정세권씨 개인적인 노력으로 형성된 마을이에요.


익선동 한옥거리


서울 한옥 거리


서울 감성


이후 익선동은 한동안 주목받지 못했어요. 꽤 오랜 기간 '서울의 평범한 동네 1'로만 존재했어요.


야경


서울 야경 사진


익선동은 마이너한 쪽에서나 조금 알려진 곳이었어요. 왜냐하면 돈화문로11길 일대가 서울의 게토 중 하나였거든요.


게토 ghetto 는 소수 인종이나 소수 민족, 또는 소수 종교 집단이 거주하는 도시 내부의 특정 구역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원래는 중세 유럽 시기 형성된 유대인 강제 거주 지역을 의미하던 표현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유대인 강제 거주 지역이라는 원래 의미에서 벗어나 도시 내부의 사회 격리 구역을 의미해요. 당연히 이런 게토 대부분은 빈민가를 형성하고 사회적 및 경제적인 압박을 받아요.


보통 '게토'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는 두 가지 의미가 동시에 충족되는 경우에요. 첫 번째는 몰아넣고 격리시키려는 움직임이 있어야 해요. 두 번째는 문화적으로 뚜렷한 차이가 존재해야 해요. 서울 강남구, 송파구, 서초구에 판자촌, 슬럼가가 존재하기는 하나 여기는 게토라고 부르는 경우가 거의 없는 이유가 바로 두 번째 이유 때문이에요. 단순히 가난한 사람들이 격리되다시피 한 것이지, 이들이 문화적으로 뚜렷한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도시 내부에서 문화적으로 몰아넣고 격리시키는 공간'을 게토라 표현한다고 보면 되요.


종로3가 돈화문로11길은 서울에서 동성애자들이 모이는 곳으로 그쪽 세계에서는 유명한 곳이에요. 또한 돈화문로11길 옆에는 서울 5대 쪽방촌 중 하나인 돈의동 쪽방촌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에요. 원래 익선동 한옥 마을도 한옥 쪽방촌이 여기 저기 있던 곳이었어요. 여기에 익선동 인근 지역은 노인 문화를 몰아넣고 격리시키는 공간이에요. 대표적인 곳으로 탑골공원, 락희거리 등이 있어요.


그런 면에서 익선동이 있는 돈화문로11길은 동성애 문화, 노숙자 문화, 노인 문화를 몰아넣는 게토 공간이었어요.


'어떻게 여기는 이렇게 확 달라지냐.'


그래서 익선동은 갈 때마다 웃겼어요. 특히 백주대낮에 가면 돈의동 쪽방촌 및 탑골공원 같은 곳은 아직도 게토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데 익선동 한옥 거리는 서울의 새로운 번화한 상권으로 기능하고 있었거든요.


ソウル 夜景 写真


首尔



익선동 한옥 거리가 트렌디한 상권으로 부각된 지는 몇 년 안 되었어요. 2015년 이후 일로 기억해요.


서울 여행 사진


서울 지하철 5호선 종로3가역


돈화문로11길


가회동 한옥마을이 확 뜨면서 서울에서 한옥 마을을 찾아서 관광지로 만들자는 분위기가 생겼고, 여기에 SNS의 발달로 상인들이 입지 선정 문제에서 약간 자유로워지자 그때부터 익선동 한옥마을이 독특한 상권화되어가기 시작했어요.


만약 SNS가 발달하지 못했다면 익선동 한옥 거리는 지금처럼 완전히 다른 곳으로 탈바꿈하지 못했을 거에요. SNS를 통한 홍보가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면서 이미 발달되어 있는 상권에만 머물러야 할 필요가 많이 감소했기 때문에 익선동도 뜰 수 있었어요.만약 SNS가 발달하지 않았다면 익선동에 아무리 예쁜 한옥 카페가 들어섰다고 해도 서울을 잘 아는 많은 사람들은 알 방법이 없었을 거에요. 그리고 어디인지 위치를 알게 되면 일단 '아, 거기!'라고 하며 인상을 찌푸렸을 거에요.


그리고 지금은 완전히 다른 곳이 되었어요.


종로 야경


한겨울 벚꽃


서울 심야시간 여행


길을 따라 걸어갔어요.


trip


손금 기계


夜景


photography


익선동


간혹 이쪽으로 오는 사람이 있기는 했어요.


서울 관광


Exit4


ikseon-dong


가회동 한옥마을과 익선동 한옥마을을 비교해보면 매우 재미있어요.


일단 한옥마을로 널리 알려진 곳은 가회동 한옥마을이에요. 그렇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해 동네 자체가 완전히 상업지구화 된 곳은 익선동 한옥마을이에요.


서울


한국


저 프랑스 국기는 뭐지?


프랑스 삼색기가 걸려 있었어요.


韓屋村


韓国の夜景


ソウル旅行


사진을 찍으며 계속 걸어갔어요.


"여기가 제일 예쁜 곳이네."


韓国旅行


ソウル


서울 종로구 5호선 종로3가역 익선동 한옥마을


익선동 한옥 거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었어요. 정말 신경 써서 잘 꾸며놨어요. 이곳 사진만 보면 누구나 혹 해서 한 번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생겼어요.


イッソンドン


鍾路


익선동 한옥마을


길을 따라 계속 걸어갔어요.


韩国


한옥마을


チョンノ


益善洞


사진을 찍으며 익선동 한옥 거리 길을 따라 걸었어요. 종로3가역 3번 출구쪽으로 나왔어요.



위 영상은 이날 찍은 서울 종로구 5호선 종로3가역 익선동 한옥마을 심야시간 야경 영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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