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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인칭 시점론 - 2인칭 시점 정립 및 시점의 확장 : 7인칭 시점 및 그 너머 집필 시작

좀좀이 2019. 11. 1.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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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인칭 시점론


- 2인칭 시점 정립 및 시점의 확장 : 7인칭 시점 및 그 너머

- 나, 너, 그, 당신, 우리들, 너희들, 그들




모든 예술에서 다양한 기법과 표현이 발전하고 있다. 기술의 진보는 보다 혁신적이고 새로운 표현 방법의 발달을 촉진시키고 있으며, 예술가들은 새로운 혁명적 방법들이 끊임없이 시도되고 있다.


그러나 소설은 1인칭 시점이 등장한 이후 단 하나도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 수없이 많은 소설이 쏟아져 나왔고, 이제는 기법상 더 이상 새롭다고 할 것마저 없는 상황이다. 지엽적인 것에 열광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져버린 것이다.


새롭고 과감한 형식적인 도전이 불가능해지자 소설은 빠르게 대중들에게 식상하고 고루한 존재로 전락해가고 있다. 문학상은 지극히 정치적인 훈장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독창적이라고 하는 모든 것들이 결국 과거의 어떤 것을 부분 복제한 것들의 재조합에 불과하다는 조소의 대상에서 티끌만큼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소설이 현실 표현조차 제대로 하지 못 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용의 독창성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많으니 뒤로 미룬다고 해도 당장 현대 인간들이 살고 있는 현실 묘사조차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은 과연 '소설'이라는 것이 더 이상 살아있는 예술 장르인지 심각하게 고민하도록 만든다.


정치적 훈장과 자본의 선동의 장난감으로 전락한 화석이 되어버린 소설을 다시 살아있는 예술 장르로 부활시킬 방법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소설의 기본이자 전체 세계의 토대라 할 수 있는 인칭과 시점에서 재생의 영약을 찾아내야만 한다.




목차


1부

1. 소설 시점에 대한 간단한 정의

2. 1인칭 시점에 대한 재정의

3. 3인칭 시점에 대한 재정의

4. 2인칭의 불안정성

5. 2인칭 시점 정의 및 작법

6. 4인칭 시점은 존재할 수 있는가


2부

1. 시점은 인위적인 것인가

2. 시점의 확장 - 복수 인칭 대명사

3. 5인칭 시점 - 우리들 시점

4. 6인칭 시점 - 너희들 시점

5. 7인칭 시점 - 그들 시점


3부

1. 소설의 시점과 인칭대명사의 관계 - 시점은 인칭대명사 수만큼만 존재하는가

2. 시점의 층위 가설 - 7인칭 시점 그 너머




1부


1. 소설 시점에 대한 간단한 정의


소설에서 시점이란 단순히 서술자가 누구인지 만을 결정하지 않는다. 소설에서 시점은 소설의 모든 문체를 결정하고, 여러 작법과 기교를 결정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가에게 있어 소설의 시점은 이야기를 소설로 바꾸는 방법이다. 그리고 독자에게 소설의 시점은 이야기를 보는 방법이 된다. 소설에서 시점을 집필함에 있어 시점은 작가가 이야기를 소설로 바꾸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자 도구가 된다. 그리고 이 창작의 원칙이자 도구가 되는 소설의 시점은 독자에게 있어서 소설을 읽을 때 소설을 읽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자 도구가 된다.


소설의 시점은 크게 1인칭 시점과 3인칭 시점으로 분류된다. 흔히 1인칭 시점과 3인칭 시점에 대해 1인칭 시점은 화자가 1인칭 비복수 대명사 '나'이며, 3인칭 시점은 화자가 3인칭 비복수 시점인 '그'가 된다고 간단히 정의내리곤 한다. 조금 더 정확히 시점에 대해 정의를 내린 것을 보면 서술자가 소설 속 등장인물 '나'일 경우 1인칭 시점, 그렇지 않으면 3인칭 시점이라고 한다. 사실 현재 존재하는 문학에서 이 구분이 아주 틀렸다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실제 현존하는 거의 모든 소설이 이 틀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시점이란 '어떤 각도에서 볼 것인가'와 관련있다. 이야기가 존재하는 세계 속으로 들어가 직접 볼 것인지, 이야기가 존재하는 세계 외부에서 전체를 조망하며 이야기를 따라 세계를 관찰할 지가 바로 시점이다. 그러나 시점은 단순히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소설에서 시점이란 이야기가 존재하는 세계 그 자체와 동일하다.


커다란 상자 하나가 존재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상자 안에 있는 사람이 상자의 벽면을 만져보고 상자 내부를 관찰한 후, '이 상자는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없는 직육면체 종이 상자'라고 판단한다면 이는 1인칭 시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상자 밖에 있는 사람이 똑같은 상자를 바라본 후, 상자를 열어 내부를 확인하고 나서 '이 상자는 직육면체 상자이며, 종이 재질로 되어 있다. 그리고 안에는 사람이 한 명 있다'라고 판단한다면 이는 3인칭 시점이라 할 수 있다.


위 비유에서 상자를 이제 '세계'로 바꿔보자. 상자를 관찰해가는 과정은 작가가 소설을 창작하는 과정이며, 관찰 과정과 결과를 글로 옮기면 그것이 소설이 된다. 즉, 시점이란 단순히 서술자의 위치, 화자를 표현하는 대명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 - 이야기가 존재하는 세계 그 자체까지 포함하고 있는 개념으로 봐야 한다.


시점을 선택하는 순간 소설 속에서 존재할 수 있는 것과 존재할 수 없는 것이 명확히 결정된다. 소설 속 주인공이 무한함 그 자체가 아닌 이상 소설에서 시점을 결정하는 순간 소설 속에서 존재할 수 없는 암흑의 영역이 설정되게 된다. 아무리 3인칭 시점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이 한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리고 소설 중 매우 잘 사용되지 않지만 존재한다고는 하는 '2인칭 시점'이라는 것이 있다. 2인칭 시점 작법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특별히 정해진 것이 없고 실험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간간이 주인공을 '너'로 설정해 2인칭 소설이라고 들고 나오는 경우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 소설들이 과연 진정한 의미에서 2인칭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지 항상 논쟁이 발생하곤 한다.


2인칭 시점 작법이 발달하지 못한 이유는 현재까지 사용중인 1인칭 시점과 3인칭 시점에 대한 정의, 그리고 그 정의를 토대로 세워진 작법 자체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1인칭 시점과 3인칭 시점에 대해 새롭게 정의를 내리면 자연스럽게 2인칭 시점 정의 및 작법을 도출해낼 수 있다. '나'와 '너'가 존재하는 세계 밖에서 바라보는 것이 바로 3인칭 '그'이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시점은 단순히 어느 각도로 볼 지에 대한 문제로 한정되지 않는다. 서술자가 이야기가 존재하는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 그 자체가 시점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에서 시점이란 이야기가 존재하는 세계의 범위를 규정한다. 또한, 이와 같은 특성으로 인해 소설 작법에서 시점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한 일상 잡담부터 막대한 상상력을 동원해야 하는 환상 문학까지 모두 표현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시점이라 부를 수 있다. 이 점이 바로 시점이 다른 글쓰기 기교와 다른 점이다.


단순히 소설 속 화자가 '나'이면 1인칭 시점, '너'이면 2인칭 시점, '그'라면 3인칭 시점이라는 구분은 완벽히 틀린 구분이다. 또한, 소설에서 시점이란 단순히 서술자의 위치와 관련된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 시점이 서술자의 위치와 관련된 것이라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점을 '작가가 이야기가 존재하는 세계를 건설해가는 방법', 또는 '독자가 이야기가 존재하는 세계를 알아가는 방법'이라고 정의내릴 때, 시점이 갖고 있는 근본적 의미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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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좀이의 추측 - 4인칭 시점 소설의 형태 및 인칭 확장의 한계

https://zomzom.tistory.com/2381


오늘의 잡담 - 상상 하나 끝 (소설 속 시점의 한계)

https://zomzom.tistory.com/2383


2017년 8월. 답을 찾았다. 그 후 항상 이걸 정리해서 글로 써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글을 쓰지 않았다. 솔직히 귀찮았다. 머리 속에 전부 들어 있지만, 그것을 글로 쓰는 것은 별로 필요한 행동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 중 이 주제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도 글 쓸 의욕을 0으로 만들었다. 솔직히 이 주제를 듣고 내용을 이해한 사람을 지금까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사실 큰 노력 기울이고 얻은 것도 아니고 며칠 좀 고민해서 발견한 것이었기 때문에 의욕적으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안 한 것도 있었다. 글로 써서 정리할 필요성도 딱히 못 느꼈다. 머리 속에 다 있는 것을 굳이 불필요하게 글로 표현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어차피 볼 사람도 없을텐데 말이었다.


친구 중 하나가 출판사 등록을 해서 그 친구에게 만약 내가 이걸로 책을 쓰면 출판해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둘 다 돈이 없으니 전자책으로 출판해서 수익은 둘이 좋게 나눠갖는 거 어떠냐고 물어봤다. 친구가 그러자고 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출판사 등록만 하고 출판 일은 아예 안 하고 있고, 나도 계속 이 내용으로 글 쓰는 것을 미루고 있었다.


그렇게 머리 속에만 푹푹 묵혀놓은지 2년이 넘었다. 이제서야 슬슬 저걸 글로 써볼까 하는 마음이 생겼다. 이것도 일종의 인생의 숙제 중 하나니까. 밀린 여행기 다 쓰고, 이것도 다 쓰고, 소설도 다 쓰면 조금 홀가분해지겠지.


도입부는 저렇게 된다.


가끔 조금씩 계속 써나가야겠다. 집중해서 쓰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겠지만 그럴만한 여유가 없다.


p.s. 순전히 내 생각으로 만든 것이니 참고문헌에는 '내 머리'라고 써야 하나? 아니면 학창시절 배웠던 국어책? 참고문헌이 아예 없다. 무슨 자료들 뒤적여가며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끝없이 스스로 자문자답하며 발견해낸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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