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여행기/오늘의 잡담

오늘의 잡담 - 상상 하나 끝 (소설 속 시점의 한계)

좀좀이 2017. 8. 13.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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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밥을 먹으러 이태원 가는 길에 스마트폰으로 영문 위키로 시점 설명을 읽어보았다.


"이거 뭐야? 이게 2인칭 시점인가?"


설명을 보니 가이드북 같은 데에 구절로 사용된다고 했다.


나 이 문장 어떤 건지 알아.


가이드북이나 길 안내문 보면 맨 마지막에 '이렇게 하면 당신은 쉽게 찾을 겁니다' 같은 문장이 종종 있다.


내가 저 문장 보고 길 못 찾은 적이 몇 번인데!


진짜다. 요즘은 외국 여행 가면 유심칩 사서 끼우고 GPS 켜고 구글 지도 사용해서 길 잃어버릴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내가 초기에 외국 여행 다닐 때만 해도 길 잃어버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 당시에는 한국 스마트폰은 유심칩을 끼우지도 못했고,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할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와이파이 자체가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인터넷망이 발달한 우리나라에서조차 노트북에 외장 무선 인터넷 카드 usb를 꽂아야 와이파이를 쓸 수 있던 시절. 그래서 저런 설명 보고 가다가 길 잃어버리기 일쑤였다.


'저런 문장은 1인칭 시점 아냐?'


뭔가 좀 찜찜하기는 하지만 내가 찾을지 못찾을지 니가 어떻게 알아? 내가 그거 보고 못 찾고 헤맨 게 몇 번인지 알아? 내가 '당신은 ~하게 됩니다' 같은 게임 안내문 보고 그거대로 못한 게 몇 번인지 알아?


이태원에서 밥을 먹고 405번 버스를 타고 종각으로 간 후, 종각에서 종로5가 효제초등학교 정거장까지 걸어가서 106번을 타고 의정부 도착하니 자정이 넘었다. 12시 반은 넘지 않아서 체크카드 사용이 막힌 시각.


'24시간 카페 가서 글이나 쓸까?'


의정부역에서 내가 종종 가는 카페를 바라보았다. 내가 애용하는 자리에 누가 앉아 있었다. 그래서 일단 집으로 갔다.


'오늘 카페 갈까, 말까?'


집에 돌아오자마자 옷을 홀라당 벗고 속옷만 입고 바닥에 앉아 카페에 가서 글을 쓸지 말지 고민했다. 카페에 갈 거라면 샤워를 하고 외출용 옷을 다시 입어야 했고, 집에서 글 쓰다 잘 거라면 샤워를 하고 집에서 입는 옷을 입어야 했다. 그렇게 카페에 갈까 말까 고민하다 멍하니 있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갑자기 문득 '4인칭 시점이란 건 존재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이건 된다'는 느낌이 확 왔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 4인칭이 등장해야하는지까지 연이어 바로 떠올랐다. 고민한 시간은 전혀 없었다. 그냥 떠올랐다.


이 생각을 그냥 허공에 날려버리기 아까웠다. 그래서 옷을 챙겨 입고 새벽4시 즈음 내가 가는 24시간 카페로 갔다.


'생각만 후딱 정리하고 소설 써야지.'


글로 쓰기 시작하자 뭔가 틀이 잡혀가기 시작했다. 카페에 올 때만 해도 어렸을 적 보았던 게임북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끝없이 선택지가 나오고 선택지를 고르면 '몇 페이지로 가시오'라는 말을 따라가야 하는 책.


그런데 글을 쓰자 의외로 그렇게 소설의 형식을 파괴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쪽으로 생각이 흘러갔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수학문제 푸는 것처럼. 4인칭 시점은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 소설이 있고, 작가가 소설 내부에 직접 등장해 독자에게 소설에 대한 반응을 직접적으로 요구하는 방식으로 가상의 독자를 구체화시켜나간다. 마치 가이드북 맨 마지막 '당신은 쉽게 찾을 것입니다' 처럼.


생각을 쭉 적었기 때문에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 예문도 대충 떠오르는대로 막 적었다. 그러다보니 '이 글을 본다, 안 본다' 등등 그 글을 보는 사람 불쾌하게 할 표현이 꽤 들어가버렸다.


4인칭 소설이 어떤 식이 될 지 머리속에서는 떠오르는데 이게 정확히 독자와 소설 사이에 뭐가 있는지 똑바로 분간은 되지 않았다.


'어? 뭐지?'


어쨌든 생각이 계속 나와서 신기했다. 내 자신이 신기했다. 생각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쭉 나왔다. 생각은 결국 끝까지 갔다. 그러자 얼마 전 지인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문학에서 5인칭 시점이든 6인칭 시점이든 1590인칭 시점이든 있을 수 있지만 작법이 정립되지 않았고 그 아이디어로 집필된 작법이 없기 때문에 허무맹랑한 소리로 존재할 뿐이다.'


그러면 5인칭 소설은 뭐지? 대충 어떤 모습일지 상상을 해보았다. 연극 장면이 떠올랐다. 4인칭 시점이 관객이 직접 참여하는 것이라면 5인칭 시점은 아예 관객에게 대본만 던져주고 니들이 알아서 다 하고 니들이 서로 구경하라는 장면. 그래서 일단 그렇게 적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는 가변적일 거라 상상했다.


대학교 4학년때 교양수업으로 문학 관련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아마 독일에서 만들었을 거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4x4 형태였을 거다. 각 칸마다 뒤에 문장이 하나씩 있었다. 마우스로 클릭하면 문장들이 하나씩 나와서 이야기 하나가 완성되는 구조였다. 이러면 이것만으로 무한의 이야기 조합이 나온다고 했다. 경우의 수를 따지면 16 x 15 x 14 x 13 x 12 x 11 x 10 x 9 x 8 x 7 x 6 x 5 x 4 x 3 x 2 x 1 이 나올 거다. 그 당시 나는 수업이 끝난 후 강사님께 메일을 보냈다. 그거 누가 그 경우의 수 다 하냐고, 적당히 눌러보고 자기 나름대로 이야기 하나 만든 후 끝내지. 이렇게 적어서 보냈었다. 그게 떠올랐다. 그러나 이것은 소설의 기본 양식을 떠난 '게임'이잖아. 저건 아무리 봐도 소설이 아니야.


한편 저것 외에 다른 모습이 있을까 잠깐 고민했다.


'나', '너', '그'까지 나왔는데 다시 돌려봐?


5인칭 시점 위에 6인칭 시점이 있고, 그 위에 7인칭 시점이 있는 무한의 층위가 아니라 5인칭 시점에서는 아직 등장하지 않은 대명사를 사용한다고 해봐?


글을 적당히 마무리짓고 끝내려 했는데 이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간단히 하단에 적었다.


어느덧 동이 텄다. 아마 새벽 6시 반쯤 되었을 거다. 화장실에 가서 볼 일 보고 손을 씻는데 순간 뭔가 번뜩 떠올랐다.


'아직 등장하지 않은 대명사를 사용하면 다시 1,2,3인칭 구조가 되잖아?'


아직 사용하지 않은 대명사는 '우리들', '너희들', '그들'. 이것들을 놓고 보면 '그들'로 표현되는 세계 안에 '우리들'로 표현되는 세계와 '너희들'로 표현되는 세계가 들어가 있을 거다.


어? 뭐지? 나 미쳤나?


진심으로 이때 나는 내가 미친 것 아닌가 고민했다. 그냥 미쳐서 이상한 생각을 이상한 논리로 계속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잠깐 생각하는 것만으로 계속 뭔가 길 같은 게 튀어나왔다.


5인칭 시점이 '우리들' 시점이라면?


'우리들'. 절대 현존하는 소설에서 존재할 수 없는 시점. 모든 화자가 '나'인데 '우리들'이 된다. 모든 것이 한 덩어리가 된다. 그리고 '우리들'이 말하는 것은 참과 거짓을 분간할 수 없다. 누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다. 이야기를 보고 어떻게 분류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완전한 구분인지조차 애매해진다. 서로 딴 소리를 하고 있지만 그 모든 소리가 '우리들'의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화자들 각각이 전부 '우리들'로만 표현되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참이면서 거짓인 것이다. 4인칭 시점이 독자와 소설의 경계가 애매해진다면, 5인칭 시점에서 독자는 '우리들'과 '우리들이 하는 이야기 속의 4인칭 소설 속에서의 너'가 된다.


5인칭 시점에 대해 상상해보았다. 여러 명이 모여서 릴레이 소설을 쓴다. 릴레이 소설을 쓰면서 자기 이야기도 쓴다. 자기 이야기는 무조건 '우리들'로 나온다. 또한 릴레이 소설은 각자 쓰고 싶은 대로 이어서 써내려간다. 그래서 누가 썼는지에 따라 문체도 달라지고 인물들의 성격, 스토리의 배경도 달라진다. 그리고 각자 자기 방식으로 소설 속에 직접 등장해 독자에게 이야기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라고 요구하며 각자 가상의 독자 모습을 구체화해간다. 이러면 5인칭 시점과 많이 비슷해지지 않을까.


더 황당한 건 글을 쭉 써가는데 예시가 술술 나왔다는 것이다.


5인칭 시점이 나오자 6인칭 시점, 7인칭 시점은 자연스럽게 따라나왔다.


5인칭 시점, 6인칭 시점, 7인칭 시점은 여러 이야기가 한 덩어리로 되어 있다.


1인칭 시점, 2인칭 시점, 3인칭 시점은 하나의 스토리 - 즉 선이 중심이 된다. (줄거리 : 이야기)

4인칭 시점은 두 개의 스토리 - 즉 면이 중심이 된다. (줄거리 : 가상의 독자와 이야기의 관계)

5인칭 시점, 6인칭 시점, 7인칭 시점은 여러 개의 스토리 - 즉 입체가 중심이 된다. (줄거리 : 이야기가 존재하는 세계)


"나 진짜 미쳐버린 거 아냐?"


나 스스로 놀랐다. 솔직히 나도 3인칭을 넘는 건 절대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4인칭 시점이라고 어떻게 상상해보자 5인칭 시점, 6인칭 시점, 7인칭 시점까지 나와버렸다.


'이 이상 더 생각이 뻗어나갈 수 있을까?'


7인칭 시점이란 말 그대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야기 같은 것. 모든 것이 다 한 덩어리인 상태.


곰곰히 생각해보니 못 넘을 것은 없었다. 다시 한 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선을 넘어버린다면. 그러나 문제가 발생했다. 독자가 중심을 어디에 둘 지 모른다면 모든 것은 다 무너진다. 대체 독자는 어디까지, 몇 번까지 자기의 위치를 바꾼단 말인가. 게다가 7인칭 시점을 넘어버리면 정말로 인지 가능 영역 자체를 넘어버리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신의 영역'.


7인칭 시점까지 나름대로 그림판을 이용해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야기가 소설이 되는 과정을 그 그림에 대입해 보았다.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았다.


1인칭 시점 : 내가 보는 세상

2인칭 시점 : 너가 보는 세상

3인칭 시점 : 그가 보는 세상

4인칭 시점 : 너 (독자)가 보는 세상

5인칭 시점 : 우리들이 보는 세상

6인칭 시점 : 너희들이 보는 세상

7인칭 시점 : 그들이 보는 세상


7인칭 시점 :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야기

5인칭 시점 :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야기 중 우리들의 이야기

4인칭 시점 :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야기 중 우리들의 이야기 중 우리들이 직접 관련된 이야기

3인칭 시점 :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야기 중 우리들의 이야기 중 우리들이 직접 관련된 이야기 중 작가의 이야기 전체

1인칭 시점 :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야기 중 우리들의 이야기 중 우리들이 직접 관련된 이야기 중 작가의 이야기 전체 중 '나의 이야기'


인간의 능력으로는 7인칭 시점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말인가!



결국 시점에 대한 나의 상상은 그 끝에 다다르고 말았다.


8월 13일 아침 8시 30분. 블로그에 쓴 글을 마지막으로 수정했다. 새벽 4시부터 시작했으니 4시간 반동안 글을 썼다.


제목에 '추측'이라고 확실하게 붙였다. 나 역시 이것이 정확히 맞는지 모른다. 아마 틀렸을 확률이 상당히 높다고 본다. 그리고 글을 읽으며 75억 전세계 인류중 그 글을 읽고 이해할 사람이 몇이 될 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이 상상을 두 번 해보라고 한다면 못했을 거다. 글로 적으면서 정리해놓았기 때문에 기억할 뿐이다.


맞는지 틀리는지 나도 모른다. 그래도 어쨌든 끝에 가 보았잖아. 그게 맞는 길의 끝인지 틀린 길의 끝인지 모르지만.


하늘을 나는 꿈을 꾸면 기분이 좋다. 꿈 속에서 하늘을 날 때 끝도 없는 자유를 느낀다. 모든 이동의 제약에서 벗어나는 느낌이 든다.


맞았는지 틀렸는지도 모르고 그냥 되는 대로 끝까지 가 보았다. 그리고 결국 끝에 다다랐다. 이것이 제대로 된 끝인지 틀린 끝인지는 모르겠지만. 높이 날아서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본 거다. 그리고 상상의 끝을 보았다. 인간의 상상이 무한하다고 하는데 그 끝을 한 번 본 거다.


여자친구와 중국 다녀온 친구에게 글을 보여주자 모두 이해불가. 당연했다. 4인칭 시점이라는 것을 내가 명확히 못 만들어냈기 때문이었다. 어떤 식이 될 지는 알겠는데 그것을 명확하게 보여줄 글을 제대로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 머리 속에서 상상의 끝을 보았다는 것에 너무 기쁘고 가슴이 벅찼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무한대로 뻗어나가는데 이건 그렇게 뻗어나가닥 정확히 그 끝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시점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1인칭 시점에 대해 말로 정리할 수 있게 되었고, 이를 토대로 2인칭 시점에 대한 아이디어를 만들어내었고, 2인칭 시점 아이디어가 구체화되자 드디어 3인칭 시점 너머로 가는 길이 보였다. 8월 6일부터 10일까지 5일간 2인칭 시점에 대해 고민하고 만들어갔고, 8월 13일 불과 9시간만에 4인칭 시점부터 7인칭 시점까지 쭉 나갔다. 맞는지 틀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머리 속에서.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계속 떠올랐고, 한편으로는 2인칭 시점에 대한 아이디어가 '참'이라는 것이 입증되어가는 과정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결국 상상의 끝에 다다랐다.


정말 멋지고 빛나고 황홀하고 가슴 벅찬 상상이었다.


그리고 얻은 것도 매우 많은 상상이었다. 내 글에서 부족한 부분들에 대해 상당히 많이 발견했다. 부족한 부분들을 많이 찾아냈다고 당장 내 글이 좋아질 리는 없을 거다. 그러나 이 부분들을 채워가려고 연습하다보면 보다 많이 좋아지겠지. 어디가 구멍인지도 모르고 목적없이 여기저기 노력을 처바르는 것이 아니라 이제 최소한 어디가 구멍이고 어느 구멍을 메워야하는지 많이 알게 되었으니까.


이제 더 이상 시점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을 안 할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감동적인 상상을 할 수 있게 처음부터 도와준 분께 진심으로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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