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두 개의 장벽 (2012)

두 개의 장벽 - 04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파라브 국경 가기

좀좀이 2012. 8. 5.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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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크메니스탄 비자가 늦게 나왔기 때문에 비자가 나온 후부터 여행 가는 날까지 많은 날이 남아 있지 않았어요. 그런데 여행 준비라고 특별히 할 것이라고는 비행기표와 기차표 구입 밖에 없었고, 이것이 너무 쉽게 풀려서 특별한 준비나 준비하기 위해 시간이 촉박하거나 그런 것은 전혀 없었어요.


투르크메니스탄과 아제르바이잔 여행 정보를 계속 찾아보려고 노력했지만 바쿠에서의 Caspian Hostel 외에는 특별한 성과가 아무 것도 없었어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지역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가는 지역이 아니니까요. 투르크메니스탄은 저도 마찬가지이지만 거의 대부분 경유비자 받아서 급히 보고 나가는 국가이니 당연한 것이에요. 그리고 아제르바이잔은 다른 카프카스 국가들인 조지아, 아르메니아에 비해 물가가 엄청나게 비싼 나라라서 사람들이 도망나오기 바쁜 나라에요. 게다가 아제르바이잔은 주변국이 이란, 조지아, 아르메니아처럼 관광으로 유명한 나라들이고, 비자 받기도 까다로운 편에 속하는데다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조지아 셋 다 가려고 하면 동선이 이상해져버리기 때문에 여행자들이 잘 선택하는 나라는 아니에요. 이란이 비자 받기 쉬운 나라이거나 무비자로 방문할 수 있는 나라라면 그나마 괜찮을텐데, 이란도 비자 받기 쉬운 나라는 아니거든요.


사실 관광 자료가 많은 지역들이라면 여행기 제목을 '두 개의 장벽'이라고 붙이지도 않았을 거에요.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카스피해를 건너 아제르바이잔 바쿠로 가는 것은 개인적으로 매우 의미있는 일이어서 다른 제목을 붙일 수도 있었거든요. 비자 받기도 어렵고, 여행 정보 찾기도 어렵고, 좋은 숙소 찾기는 더 어려운 일인데다 이번에는 단순히 여행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두 개의 장벽'이라고 제목을 붙였어요.


'뜨거운 마음'을 쓰며 느끼고 깨달은 점이 참 많았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돌아와서 여행기를 쓰기 위한 자잘한 준비를 두 개 더 했어요.


1. 디지털 카메라 시간을 현지 시각에 맞추어 놓기

- 디카로 찍은 사진은 언제 찍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여행중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부담을 크게 덜어줘요. 그런데 지난 카프카스 여행 때에는 물론이고 평소에도 그냥 한국 시각으로 쓰고 있었어요. 이것이 여행기 쓸 때 문제가 될 줄은 전혀 몰랐는데 여행기를 쓰며 이게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어요. 시차를 계산하면 언제 찍었는지 알 수는 있는데, 시차 계산해서 나온 당시 시각과 사진이 왠지 안 맞는다는 느낌이 드는 경우도 종종 있었거든요. 그때 그때 현지 시각에 맞게 카메라 시계를 세팅해 놓는 것이 여행기 쓸 때 확실히 도움이 많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우즈베키스탄 현지 시각인 '한국시각 -4시간'에 맞추었어요. 왜냐하면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 모두 시차가 '한국시각 -4시간'이거든요.


2. 미리 여행기 써놓기

- 여행 출발 전에 끝난 것들은 미리 여행기를 써놓아야 돌아와서 여행기 쓸 때 편하더라구요. 특히 준비 과정은 돌아와서 쓰려고 하면 매우 귀찮고 지루한 작업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여행 돌아와서 여행기를 쓴다고 하면 보통 '여행에서 있었던 일과 감상'을 쓰고 싶지, 준비 과정을 쓰고 싶은 마음은 안 드니까요. 게다가 시간을 질질 끌 수록 기억과 추억이 희미해져 글쓰기만 더욱 어렵게 되구요. 그래서 준비 과정 - 특히 비자를 얻기 위한 과정은 미리 다 써놓았어요.


평소, 여행을 간다고 하면 '여행 다니면 아무래도 힘드니까 미리 체력을 쌓아야 된다'는 핑계로 푸지게 잘 먹어요. 하지만 이때는 이렇게 잘 먹지도 못했어요. 투르크메니스탄 비자 문제로 그렇게 잘 먹을 마음이 없었거든요. 하지만 투르크메니스탄 비자를 받는 과정에서 밖에서 밥을 잘 사 먹기는 했어요. 하도 화나고 지쳐서 집에서 밥을 해 먹을 기운도 없어서 밖에서 잘 먹고 집에 와서 바로 자버렸거든요. 그리고 투르크메니스탄 비자를 받으니 여행 갈 날은 코 앞. 그래서 일주일간 푸지게 먹으며 살을 찌우는 짓은 하지 못했어요.


여행 출발 당일인 2012년 6월 30일. 이제 짐 꾸리는 것은 전혀 시간이 걸리는 일이 아니에요. 게다가 이번에는 캐리어를 끌고 가지도 않기 때문에 더욱 짐을 쌀 필요가 없었어요. 들고 가는 가방은 카메라 가방, 기내에 메고 탈 수 있는 크기의 백팩, 그리고 책 때문에 짐이 늘어갈 수 있기 때문에 들고 가는 텅 빈 이민 가방이었어요. 짐 꾸리는 데에 걸린 시간은 약 20분. 사실 이제 가방 싸는 것보다 가방을 싸고 나서 집을 정리하고 청소하는 게 더 어렵고 시간도 훨씬 많이 걸려요. 빨래를 세탁기에 돌리고 집을 다 치우고 청소도 끝내고 세탁기 다 돌아가자 빨래 꺼내서 옷걸이에 걸어놓고 나서 타슈켄트역 (북역, Shimoliy Vokzal)으로 가기 전까지 한 일은 지난해 다녀온 카프카스 여행에 대한 여행기인 '뜨거운 마음'을 쓴 것이었어요. 원래 목표는 여행 출발 전에 '뜨거운 마음'을 다 쓰고 가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여행 출발 직전까지 열심히 썼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다 못 쓰고 집에서 나왔어요.


버스를 타고 타슈켄트역으로 갔어요. 우리가 타고 갈 기차는 저녁 8시 10분 출발하는 기차였어요. 부하라 도착 예정 시간은 아침 6시 45분.


버스가 어떤 때는 빠르게 가고, 어떤 때는 이유 없이 느리게 가는 데다 버스 정거장에서 이유 없이 멍하니 차를 세워놓는 경우도 있어서 일찍 집에서 나왔어요. 그런데 이날 기차역에 가기 위해 탄 버스는 빨리 가는 버스였어요. 그래서 예상보다 훨씬 일찍 타슈켄트역에 도착했어요.


"우리 밥이나 먹고 타자."


그래서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갔어요. 타슈켄트역 근처에 우즈베키스탄 국수인 '라그몬'을 맛있게 하는 집이 하나 있거든요.




타슈켄트역에서 왼쪽으로 가면 기차표 판매 사무실이 있어요. 사진 속 Temir Yo'l Kassalari 라고 적혀 있는 곳이 바로 기차표 판매 사무실이에요.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우리나라처럼 기차역에 들어가 표를 사는 게 아니라 기차표 판매 사무실에 가서 표를 사야 해요. 그리고 검문소에서 기차표를 보여주어야만 기차역에 들어갈 수 있어요.



이 기차표 판매 사무실 앞을 지나 계속 걸어가면 옆에 주차장이 나오고, 주차장 끝에 이런 건물들이 보여요. 뒤에 보이는 것은 EMS를 부칠 수 있는 우체국이고, 우체국 앞의 2층 건물에 라그몬을 맛있게 하는 집이 있답니다.



2층 건물에 식당이 한 개만 있는 게 아니에요. 라그몬이 맛있는 집은 중국집 바로 옆에 있는 저 할아버지가 그려진 간판이 있는 가게랍니다.


이 집 라그몬이 맛있는 이유는 국물이 쇠고기 국물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국물 맛이 매우 친근해요. 한국에서 먹던 쇠고기 국밥 맛이랍니다. 국물이 걸쭉하고, 고춧가루가 탁자 위에 놓여 있어서 이걸 적당히 섞어 먹으면 한국에서 먹던 맛과 비슷하게 먹을 수 있어요. 가격은 4500숨이에요. 빵을 국물에 찍어먹어도 매우 맛있기는 한데, 빵이 혼자 먹기에는 많아요. 빵은 1000숨이에요. 단, 고수를 잘 못 드신다면 고수를 다 걷어내시고 드셔야 하실 거에요. 그리고 이 집 라그몬은 국물이 맛있는 것이지, 면이 맛있는 것은 아니랍니다. 주문하면 그제서야 면을 뽑고 삶아 주는 집은 절대 아니에요. 운이 좋으면 갓 뽑은 면을 먹게 되고, 운이 없으면 맛없는 면을 먹게 되요. 솔직히 맛집이라고 할 수는 없고, 한국에서 먹던 음식과 비슷한 친숙한 맛을 4500숨에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알려드리는 것이랍니다.


밥을 먹고 나오니 오후 6시 20분. 기차역은 기차 출발 한 시간 전에 들어가면 되므로 기차역 앞 공원에 앉아 친구와 잡담을 하며 시간을 보냈어요.



공원에는 이런 조형물이 있어요. 손이 들고 있는 것을 보면 해가 있어요. 그리고 그 해를 잘 보면 해가 아니라 우즈베키스탄 전통 빵인 '논'이에요.



저 건물이 바로 타슈켄트역. 만약 택시기사가 무슨 역이냐고 되물어 본다면 '쉬몰리 보크잘'이라고 말해주세요. 앞서 언급했듯이 타슈켄트에는 남역과 북역이 있거든요. 대체로 타슈켄트역이라고 하면 북역으로 가는데, 가끔 무슨 역인지 물어보는 택시기사가 있어요.



저녁 7시가 되었어요. 그래서 이제 타슈켄트역으로 들어가기로 했어요. 타슈켄트역이 바로 앞에 있었지만 옆으로 돌아가서 검문소를 통과해야만 역 안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지하도를 통과해 역 옆쪽 검문소로 갔어요.


우리가 역 검문소에 도착하기 직전 갑자기 한 무리의 아이들이 우루루 역 검문소 앞으로 몰려왔어요.


"쟤네들 뭐지?"


인솔자로 보이는 어른이 두 분 계시고, 나머지는 전부 아이들이었어요. 재미있는 것은 한 아이가 1.5리터 물을 들고 간다는 것. 다른 어른들도 이 아이들과 같이 왔는데 관계자들 같았어요. 아이들이 단체로 왔기 때문에 무질서에 정신 없고 너무 늦어지는 것 아닌가 걱정했는데 아이들이 꽤 질서정연하게 서 있었어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에서 줄을 질서정연하게 서는 것은 아니구요. 자기들끼리 하나로 뭉쳐서 길다란 그룹을 만들고 있었어요. 그리고 너무 시끄럽지 않게 떠들며 놀고 있었어요. 아이들은 열심히 떠드는데 검문소 입구에서는 검문소 직원과 어른들이 무언가 열심히 이야기하고 표를 보여주고 있었어요. 검문소 직원은 안 된다고 하고 어른들은 무언가 이야기하며 사정 좀 봐달라고 하고 있었어요. 그것으로 보아 관계자 몇몇이 같이 들어가려고 하는데 기차표가 없어서 검문소 직원은 통과가 안 된다고 하고, 관계자들은 애들 때문에 잠깐 들어갔다 나오는 것이니 봐달라고 하는 듯 했어요.


이 문제로 애들의 기차역 입장이 늦어지자 관계자들과 검문소 직원은 뒤에 있던 다른 일반 승객들에게 먼저 통과하라고 했어요. 그래서 기차표를 보여주고 아이들보다 먼저 검문소를 통과했어요.


"빨리 걷자!"


빨리 뛰자는 말은 못 했어요. 기차 시간이 많이 남은 것도 아닌데 괜히 뛸 필요는 없었거든요. 하지만 빨리 가야하는 이유가 있었어요. 그 이유는...


보안검색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타슈켄트역은 검문소에서 여권과 표 검사를 받아야 건물에 들어갈 수 있어요. 검문소에서 표만 검사할 때도 있고 여권도 검사할 때도 있어요. 이렇게 검문소를 통과하면 타슈켄트역 건물 안에 들어갈 수 있는데, 건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보안 검색을 받아야 해요. 이게 생각보다 오래 걸려요. 기차는 수하물 제한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짐을 많이 들고 타고, 그 짐들을 전부 엑스레이 돌려서 검사를 하기 때문에 오래 걸려요. 그리고 여기 보안 검색은 절대 허투루하지 않아요. 꽤 꼼꼼하게 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려요. 그런데 아이들이 우리보다 먼저 보안검색 받으면 한참 기다려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최악의 경우 기차 시간보다 한 시간 전에 와서 시간이 빠듯해질 수 있거든요.


그러면 보안검색으로 끝이냐하면 그것도 아니에요. 마지막으로 거주지등록 확인을 받아요. 여권과 표를 제출하면 이렇게 표 뒷장에 도장을 찍어주어요.



처음 기차표를 사면 기차표는 2장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이 중 뒷장에 도장을 찍어주고, 이 도장 찍힌 부분은 나중에 기차에서 뜯어가요. 이것까지 다 하는 데에 빠르면 15분 조금 넘게 걸리고, 오래 걸리면 30분 걸려요. 타지키스탄 갈 때에는 검문소에서 시작해 표에 도장받기까지 30분 정도 걸렸거든요. 그래서 시간에 맞추어 기차역에 들어가는 것은 절대 권장하지 않아요. 보통은 1시간 전에 역에 들어가기 시작해요.


다행히 이 날은 사람들이 아직 별로 없었어요. 하지만 맞은편 검문소를 보니 거기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어요. 그래서 빨리 걸어가서 보안 검색을 받았어요. 보안 검색은 짐검사와 신체검사 둘 다 받기 때문에 모든 것을 카메라 가방에 우겨넣고 수하물 검색대에 올려놓은 후 여권과 표만 들고 재빨리 신체 검색대를 통과했어요.


"이거 뭐야?"

"카메라 가방이요."


보안검색에서 카메라 가방이 잡혔어요. 그래서 카메라라고 하자 가라고 했어요. 그래서 후다닥 표 검사를 받고 자리를 피했어요. 보안 검색 제대로 잡히기 시작하면 진짜로 피곤하거든요. 생각이 바뀌어 다시 잡히면 그때는 엄청나게 까다롭게 짐을 다 뒤져보는 수가 있기 때문에 가방을 열어보지도 않고 보내줄 때 빨리 통과해서 사라져버리는 것이 상책이었어요.


보안검색과 거주지등록 확인 받고 잠깐 짐을 정리하는데 아까 그 아이들이 우루루 몰려왔어요.


"너희들 어디 가니?"

"부하라요."


제가 애들에게 어디 가냐고 물어보자 부하라에 간다고 했어요. 얘네들 견학가는구나! 그리고 애들은 우리와 같은 기차를 타고 가는 것이었어요. 우리도 부하라이고 애들도 부하라인데, 이 시각에 부하라 가는 기차는 한 대 밖에 없었으니까요.


기차를 찾아갔어요. 표를 읽을 줄 알면 기차 타는 게 쉬운데 표를 읽는 것이 어려워서 경찰에게 부탁했어요. 경찰 아저씨는 친절하게 우리들을 플랫폼까지 데려다 주었어요.


7시 40분. 기차를 탔어요.



이것이 침대칸 내부에요. 2층 구조였어요. 얼핏 보아서는 좋아 보이지는 않지만 한 칸에 4명만 자기 때문에 나름 좋아보이는 기차였지만 실제는...


살려줘!


너무 더웠어요. 그냥 뜨거운 게 아니라 이상할 정도로 습해서 푹푹 찌는 더위였어요. 건식 사우나에서 40도면 그럭저럭 참을만 한데, 이건 안개 사우나 40도. 아마 40도 넘었을 거에요. 계속 데워지고 있었으니까요. 가만히 앉아 있는데 땀이 좍좍 폭포와 같이 쏟아졌어요.


아제르바이잔 악몽이 떠오른다.


'뜨거운 마음'에서 조지아-아제르바이잔 국경에서 버스에서 잠을 잔 적이 있었어요. 그때 푹푹 쪄서 혼났어요. 그런데 그때보다 더 더웠어요. 그럴만도 한 것이 그때는 한밤중에 선선해져서 버스를 탔고, 지금은 백주대낮 땡볕에 푹푹 익을 대로 익은 기차 안이었으니까요. 창문을 열 수 있어서 열기는 했는데 바람도 안 들어왔어요.


우리가 탄 객실에 우즈벡인 두 명이 들어왔어요. 어머니와 아들 같았어요. 어머니는 살이 많이 찐 전형적인 우즈벡인 아주머니. 왠지 우리에게 자기는 몸이 무거우니 1층에서 자면 안 되겠냐고 물어볼 것 같아 러시아어도 우즈벡어도 모르는 척 했어요. 이 우즈벡인들은 부하라 사람들이었고, 자기들끼리 우즈벡어로 이야기하는데 o'발음을 단모음 '외' 처럼 발음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두 사람은 일부러 2층을 선택했다는 것.


우리가 탄 객차에 아까 본 어린이들은 없었어요. 그 애들은 다른 객차에 탄 것 같았어요. 푹푹 찌는 객차 안에서 더위와 싸우며 앉아 제발 기차가 출발하기만을 기다렸어요. 기차가 출발해야 객차 안으로 바람이라도 들어올 것이고, 그래야 객차가 조금이라도 시원해질테니까요.


이 우즈벡인들이 알려준 재미있는 사실은 1층 침대이자 기차 좌석을 들어보면 수납 공간이 있다는 것이었어요. 카메라 가방 같은 것은 여기에 집어넣으면 밤새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게 되어 있었어요.


8시 10분. 기차가 출발했어요. 검표원이 와서 기차표에서 도장이 찍힌 부분을 뗴어가고, 잠시 후 차장이 와서 이제 에어컨을 켤 것이니 창문을 모두 닫으라고 했어요. 그래서 창문을 닫았어요. 당연히 엄청나게 더웠어요. 에어컨이 나오기는 했지만 너무 약해서 객실의 열기를 식히는 데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우즈벡인 소년이 버티다 버티다 창문을 열었어요.


9시쯤 되어서 모두 누웠어요. 우즈벡인 아주머니께서는 육중한 몸으로 윗 칸으로 쉽게 올라가셨어요. 자리에 눕자 왜 그들이 일부러 2층을 선택했는지 알 수 있었어요. 1층으로는 시원한 바람이 하나도 안 들어와서 엄청나게 더운데, 2층은 창문으로 바람도 들어오고 에어컨 바람도 나오고 있었거든요. 기차 창문이 2층 구조인데 아래쪽은 열 수 없고 위에만 조금 열 수 있어요. 그래서 2층은 창문을 열면 바람이라도 들어오고, 에어컨도 2층에 달려 있어서 에어컨 바람도 나와서 시원한데 1층은 그런 게 전혀 없어서 더운 공기가 마지막까지 머무르는 구조였어요.


화장실 가기 편하다는 이유로 1층을 권한 친구들이 정말 미웠어요. 그깟 화장실, 어차피 밤에 한 번이나 두 번 가요. 배탈이 나지 않았다면요. 그런데 자는 것은 몇 시간이에요. 그까짓 화장실 한 번 가기 힘들다는 이유로 1층에서 더위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헥헥대느니 차라리 한 번 화장실 가는 것 불편해하고 밤새 시원하게 잘 자는 게 훨씬 낫죠.


저는 더위를 잘 안 타요. 여름에 제가 에어컨을 켜는 일은 여기서나 한국에서나 거의 없어요. 여기는 그래도 한국보다 많이 더워서 대낮에 한 시간, 자기 전 한 시간 정도 켜고 말아요. 한국에서는 아예 안 켜구요. 조지아-아제르바이잔 국경에서도 덥고 푹푹 찌기는 했지만 잘 잤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너무 더워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그래도 어떻게 잠을 자기는 했어요. 잠을 잔 것인지, 더위에 지쳐 쓰러져버린 것인지 모르겠어요. 널부러져 있다가 더워서 뒤척이다 다시 널부러져 있다가 더워서 앉아 있다가 다시 널부러져 있다가 손바닥으로 부채질을 하다가...그러다 어느새인가 잠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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