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생존과 여행의 갈림길 (2019)

생존과 여행의 갈림길 - 11 제주도 제주시 제주시청 밤 풍경과 제주도 여행 첫날밤

좀좀이 2019. 6. 15.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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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비양도를 떠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어요. 어디 멀리 갈 수 없었어요. 저와 친구가 타고 나가야 하는 배는 오후 2시 배였어요. 조금만 더 기다리면 곧 배가 올 거였어요. 남은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비양도 항구 근처에서 머무르며 배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 뿐이었어요. 특별히 아쉽거나 더 돌아보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었어요. 비양도 전체를 다 돌아봤거든요.


'날씨만 더 좋았으면 딱이었을 건데...'


하늘이 흐리고 가시거리가 짧아서 예쁜 사진을 찍지 못했어요. 그래도 그렇게 크게 아쉽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천만다행이었어요. 비 온다는 소리가 있었거든요. 하늘은 계속 흐려서 언제 비가 와도 이상하지 않을 하늘이었구요. 아직까지 비가 안 와준 것에 고마워해야 할 상황이었어요. 비양도를 다 둘러보기 전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면 정말 엉망인 비양도 여행이 되었을 거에요.


"너 제주도 그냥 놀러 온 거?"

"아니. 뭐라카네가 출판사 만든다고 하길래 그거 이야기 좀 해볼까 해서. 제주도 안 와본 지도 오래되었구."

"그래? 걔 출판사 만든대?"

"어. 그렇다고 하더라구. 내가 예전에 쓴 글 책으로 내도 되냐고 물어보길래."

"너 그러면 이제 작가 되는 거?"

"작가는 무슨."


블로그 하나 운영하며 여행기 쓰고 판타지 소설도 써서 올리고 있어요. 작가라고 한다면 작가라고 할 수 있을 거에요. 그렇지만 제가 작가라는 생각은 안 하고 있어요. 뭐라카네가 출판사 만든다고 했어요. 걔한테 책 만들어달라고 하면 책도 낸 작가라고 할 수는 있을 거에요. 그러나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제가 작가라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니까요.


"이따가 뭐라카네 만날까?"

"이따? 밤에?"


복습의시간이 이따 밤에 뭐라카네 시간 되면 같이 만나서 놀자고 했어요. 복습의시간도 글 쓰는 것을 좋아해요. 그래서 뭐라카네가 출판사 만든다는 소리를 듣자 그거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어요.


"어. 너 괜찮으면."

"나야 괜찮지. 오늘 밤에 우리 할 것도 없잖아."

"그러면 전화해봐봐."


뭐라카네에게 전화했어요. 뭐라카네가 받았어요. 저야 놀러왔기 때문에 시간이 아주 많았어요. 그래서 뭐라카네와 복습의시간에게 둘이 알아서 언제 어디에서 만날지 정하라고 했어요. 복습의시간은 신제주에서 살고 있고, 뭐라카네는 구제주에서 살고 있었어요. 제주시에서 밤에 만나서 놀 만한 곳이라면 구제주 제주시청과 신제주 제원사거리 쪽 뿐이에요. 이 두 곳이 번화가거든요. 탑동은 회 먹으러 가는 곳인데 친구들끼리 모여서 비싼 회를 먹을 생각은 별로 없었어요.


복습의시간이 뭐라카네와 전화로 이야기하며 약속 장소와 약속 시간을 정했어요. 저녁 7시에 제주시청 버스정류장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전화를 끊은 후 비양도 선착장으로 갔어요.


비양도 선착장


아직 배가 오지 않았어요.




배가 오기를 기다리며 사진을 찍었어요.



조금 기다리자 배가 왔어요.



배에 올라탔어요. 복습의시간은 선실 안으로 들어갔어요. 저는 이번에도 갑판 위에 있을 생각이었어요.




"여기 구명조끼 안 입고 있으면 와서 뭐라고 해요."


아까 제가 타고 왔던 배였어요. 비양도 올 때는 선실에 사람들이 있어서 사진을 못 찍었어요. 이번에는 거의 1등으로 탔어요. 선실에 아직 아무도 없을 때 선실 사진을 찍고 배 후미로 갔어요.


배 후미에서 바다를 보고 있는데 아저씨 한 분이 와서 제게 구명조끼를 입으라고 하셨어요. 아저씨는 제게 구명조끼를 입으라고 말한 후 자신이 입을 구명조끼를 골라 입었어요. 저도 아저씨를 따라 구명조끼를 입었어요. 구명조끼가 작아서 몸에 꽉 꼈어요.


배가 한림향을 향해 출발했어요.



구명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배 뒷편 갑판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어요. 후미로 할아버지 한 분이 오셨어요. 후미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구명조끼를 입고 있는 것을 보자 껄껄 웃으셨어요.


"이번에는 다 알아서 구명조끼 입고 있네요."


할아버지께서는 배 갑판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구명조끼를 입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매우 만족해하셨어요.







이번에도 별 일 없었어요. 금방 한림항에 도착했어요. 몇 시인지 확인했어요. 2019년 3월 2일 오후 2시 32분이었어요.


한림항


비양도와 한림항을 왕복하는 여객선인 비양호에서 내렸어요.


비양호


"우리 점심 어디에서 먹지?"

"아까 그 칼국수집에서 먹기로 했잖아."

"거기 말고 다른 곳 또 맛집 없을까?"


복습의시간이 점심을 어디에서 먹냐고 물어봤어요. 그래서 아까 칼국수 먹기로 하지 않았냐고 했어요. 복습의시간은 거기 말고 다른 맛집 없는지 물어봤어요. 저도 제주도 한림에 무슨 맛집이 있는지 몰랐어요. 제주도 살 때 한림은 어쩌다 놀러오는 곳이었어요. 게다가 저는 제주도 안 와본지 꽤 되었어요. 한림 안 가본지는 더 오래 되었구요. 아까 봐놓은 칼국수집으로 가면서 맛집처럼 생긴 식당이 또 있는지 보기로 했어요.


비양도 가는 배 선착장에서 아까 봐놓은 칼국수집까지 가는 동안 맛집처럼 생긴 식당이 보이지 않았어요. 결국 처음 계획대로 칼국수집으로 갔어요.



칼국수집은 점심 시간이 지났는데도 사람들이 있었어요. 줄을 서서 대기해야 했어요. 대기를 하면 카카오톡으로 앞에 몇 명 남았는지 메세지가 왔어요. 대기 시간이 길지는 않았어요. 금방 저와 친구 차례가 되었어요. 두 명이 먹을 것이었기 때문에 보말칼국수와 영양보말죽을 시킨 후 가운데에 놓고 나눠먹기로 했어요.



'보말이 제주도 사투리였네?'


지금까지 보말이 제주도 사투리라는 것을 전혀 몰랐어요. 보말은 당연히 표준어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보말 설명을 보니 바다고둥의 제주도 사투리라고 되어 있었어요.


음식은 금방 나왔어요. 먼저 보말 칼국수가 나왔어요.


'이거 면발 완전 지렁이인데?'


면발 굵기가 꽤 굵었어요. 여기에 녹색의 옥수수 수염처럼 가늘은 녹조류가 면발에 엉켜 있었어요. 맛을 보았어요. 시원한 해조류 맛이었어요. 해조류 향이 역하지 않았어요. 해조류가 들어가 있었지만 미멱국 맛과는 많이 달랐어요. 면발도 괜찮았어요.


그 다음 나온 것은 영양보말죽이었어요.


"야, 이거 맛있다!"


눈 감고 먹으면 전복죽과 분간 못할 맛이었어요. 짝퉁 전복죽이었어요. 죽 속에 있는 보말 덩어리는 고소하고 쫄깃했어요. 죽 색깔은 초록색이었어요. 보말 내장까지 갈아넣어서 죽 색깔이 초록색이 되었을 거에요.


음식을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고 밖으로 나왔어요.


"이제 어디 가지?"

"일단 집으로 가자."


복습의시간이 비올 것 같으니 일단 제주시 자기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어요. 복습의시간 차가 주차해있는 곳으로 걸어갔어요.


"아, 비 온다!"


빗방울이 하늘에서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정말 딱 맞춰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요. 비양도 다 돌아보고 밥까지 다 먹고 복습의시간 차로 되돌아갈 때 비가 내리기 시작했거든요. 밥 먹으러 가는 길에 비가 왔다면 정말 재수없는 날이라고 둘이 사이좋게 툴툴대었을 거에요. 아직 비가 많이 퍼붓지는 않았어요. 급히 복습의시간 차로 돌아간 후 제주시로 돌아갔어요.


"나 이마트 가야돼."

"어. 거기로 가자. 나도 집에 간식 거리 조금 사들고 가야지."


제 디지털카메라인 후지HS10은 AA배터리 4개가 들어가요. 보통 4개 2조를 들고 다니는데 그 중 한 조가 맛이 갔어요. 그래서 AA 충전지 4개를 사야 했어요.


제주시 이마트 근처까지는 금방 왔어요.



"여기 언제 이렇게 바뀌었지?"


이마트 길 건너편 제주일고쪽도 번화가가 되었어요. 예전에 이쪽에 왔을 때는 아직 노형동 주민센터만 있고 시골 같은 분위기였어요. 그러나 이번에 와서 보니 완전히 다 바뀌어 있었어요.


"여기 바뀐지가 언제인데."

"나 마지막으로 왔었을 때는 이렇지 않았어."


그리고 시작된 주차 전쟁. 차로 온 것까지는 좋았어요. 문제는 주차였어요. 저만 내리는 것이 아니라 복습의시간도 같이 차에서 내릴 것이었어요. 그래서 반드시 주차를 해야 했어요. 처음 간 주차장에는 자리가 아예 없었어요. 두 번째 간 주차장도 차가 꽉 들어차 있었어요. 길 모퉁이에도 다 차가 들어차 있었어요. 도저히 차를 세워놓을 자리를 찾을 수 없었어요.


"아, 주차장 자리 더럽게 없네."

"제주도 차 왜 이렇게 많냐?"

"차 진짜 엄청 많아. 주차할 곳이 없어."


예전에는 분명히 안 이랬는데...


제가 제주도를 마지막으로 갔을 때만 해도 이렇게 차가 미어터지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이번에 와서 저를 맞이해준 것은 다름 아닌 주차 전쟁이었어요. 주차할 만한 자리는 다 자동차가 세워져 있었어요. 길에도 자동차가 득시글했어요. 자동차 없는 곳이 아예 없었어요. 길이 자동차로 터져나가고 있었어요. 과장 하나 안 보태고 서울보다 더 주차 지옥이었어요. 정말로 서울이 주차할 공간이 더 많았어요. 골목이고 주차장이고 전부 자동차로 꽉 차 있었거든요.


간신히 주차할 수 있는 자리 하나를 찾아 차를 세웠어요.



이마트로 갔어요. 다행히 AA충전지 4개를 판매하고 있었어요. 망설이지 않고 바로 구입했어요. 이건 정말 급했거든요. 복습의시간은 과자와 콜라를 구입했어요. 후딱 계산하고 복습의시간이 살고 있는 동네로 갔어요.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어요. 집 안으로 들어갔어요. 복습의시간 어머니께 인사를 드린 후 복습의시간 방으로 들어갔어요.


"아직 시간 좀 남아 있으니까 쉬었다 나가자."

"여기서 시청까지 금방 가지?"

"버스로 금방 가."


복습의시간이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을 하는 동안 저는 제 노트북을 꺼냈어요.



일단 아침에 마신 제주 까망 라떼 글을 후딱 썼어요. 글 밀리면 나중에 골치아프거든요. 외국 여행 다닐 때는 틈틈히 여행 기록을 남겼어요. 그러나 여기는 한국. 게다가 제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제가 살았던 제주도. 여행 기록을 굳이 일일이 다 쓸 필요가 없었어요. 어디 갔는지, 뭐 했는지 다 쉽게 기억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먹은 것에 대한 것만은 아니었어요. 아침에 먹은 것을 글로 써놓는 것은 일종의 여행기록이기도 했구요. 나중에 의정부 자취방 돌아가서 먹은 것도 글 쓰고 여행기도 글 쓰고 하려면 정신없기 때문에 일단 먹은 것만 빨리 글을 썼어요.


스타벅스 제주 까망라떼 글을 다 쓰자 복습의시간 집에서 나가 제주시청으로 가야 할 때가 되었어요. 둘이 복습의시간 집에서 나왔어요.


"여기서 시청은 버스 뭐 타고 가?"

"여기? 버스 많아."


복습의시간이 버스 몇 번을 타고 가야하는지 이야기했어요. 신제주로타리에서 제주시청 가는 버스는 많아요. 이건 예전부터 많았어요. 제가 모르는 것은 제주도 시내버스 노선과 번호가 꽤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몇 번 버스를 타고 가야하는지였어요. 당연히 제주도에서 살고 있는 복습의시간은 이것을 잘 알고 있었어요. 복습의시간이 버스 번호를 알려주었어요. 버스 정류장 사진을 찍을까 했지만 비가 내리고 있는데다 어두워서 사진을 찍을 수 없었어요.


버스는 금방 왔어요. 버스를 탔어요. 안에 사람이 많았어요.


"이거 맞게 탄 거 맞아?"

"어. 이거 보건소쪽으로 가. 이게 빨라."


예전에 제가 신제주에서 시청으로 버스 타고 갈 때 버스는 항상 신제주입구교차로를 지나 오라오거리를 통과해 제주시외버스터미널 앞으로 갔어요. 그런데 복습의시간이 타야 한다고 한 버스는 그 노선과는 다르게 갔어요. 버스 안은 침침했어요. 밖은 깜깜했어요. 사람들도 많았어요. 저와 복습의시간은 서서 가고 있었어요. 그래서 정확히 어떻게 가고 있는지 확인하지 못했어요.


제주시청


2019년 3월 2일 저녁 6시 58분. 제주시청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어요. 제주시청 버스 정류장도 달라졌어요. 무려 '버스 전용차선'이라는 것이 생겼어요. 서울에서야 예전부터 흔히 보던 것이었지만 제주도에서 이걸 보니 신기했어요. 제주도에 이런 것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어요. 이것이 생겼다는 것은 시청 근처는 자동차 지옥이라는 것을 의미할 거였어요.


뭐라카네가 버스정류장으로 왔어요.


"오랜만이다."


인사를 하고 3초 후.


저 여자는 뭐야?


뭐라카네와 손 잡고 있는 여자. 저 여자는 대체 뭐지? 저와 복습의시간은 뭐라카네와 약속을 잡았어요. 뭐라카네는 여자를 데려온다는 말을 하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그냥 이 근처에서 여자 만날 일 있어서 헤어지고 저와 복습의시간을 만나는 건 줄 알았어요. 아니었어요. 이 둘은 손을 꼭 잡고 있었어요. 뭐라카네와 손을 잡고 있는 여자의 정체에 대해서는 들은 것이 아무 것도 없었어요.


"얘 누구?"

"얘? 내 애인님."


응?


완전 어색해졌어요. 뭐라카네가 자기 여자친구를 데리고 나올 거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거든요. 복습의시간을 쳐다봤어요. 복습의시간도 충격 좀 받은 표정이었어요.


넷이 모여 밥을 먹으러 갔어요. 돈까스를 먹었어요. 제가 뭐라카네를 보러 온 이유는 출판사 이야기 때문이었어요. 출판사 이야기를 몇 마디 주고 받다가 뭐라카네 여자친구 표정을 봤어요. 재미없어하는 표정이었어요.


'아, 지금 현금 없는데...'


아무 준비도 못 하고 나왔어요. 그렇다고 네 명 밥값을 혼자 계산할 수는 없었어요. 현금이 있어야 복습의시간에게 돈을 주든가 할텐데 현금이 하나도 없었어요. 여행 오면서 오직 체크카드만 들고 왔어요. 보안카드, OTP 모두 의정부 집에 두고 왔어요. 네 명 밥값을 혼자 계산하기에는 금액이 적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복습의시간에게 같이 나눠서 뭐라카네와 뭐라카네 여자친구 밥값 내자고 하고 제가 카드로 긁은 후 복습의시간한테 나중에 돈 달라고 하는 것도 이상했어요. 애초에 복습의시간과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말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어요. 게다가 저는 뭐라카네 집에서 신세질 거였고, 복습의시간네 집에서도 신세질 예정이라 둘한테는 밥을 사줄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밥을 사줄 생각이었는데 뭐라카네 여자친구까지 끼어들자 계산이 이상해져버렸어요.


'몰라, 오늘은 더치페이로 하자고 해야지.'


밤을 새고 제주도 와서 계속 돌아다니고 놀고 있던 상태였어요. 졸리지는 않았지만 약간 멍했어요. 네 명 것 다 내주는 것은 무리였어요. 그렇다고 복습의시간에게 돈 내고 이따 돈 보내준다고 할 수도 없었어요. 보안카드, OTP 모두 의정부 자취방에 있었거든요. 어차피 신세지는 입장인데다 바로 송금도 못 해주기 때문에 제가 먼저 내고 나중에 알아서 하라고 하는 것이 편했어요. 하여간 머리 속에서 돈계산이 꼬였어요.


"여기 더치페이로 할까?"


그러자 복습의시간이 살짝 당황했어요.


"아냐, 이건 내가 살께."


복습의시간이 자기가 여기 밥을 사겠다고 했어요. 순간 뭔가 느꼈어요. 미묘한 공기의 흔들림이 있었어요.


"그러면 우리가 2차 살께."


뭐라카네가 자기가 2차를 산다고 했어요.


식당에서 나와 2차를 갔어요. 2차는 호프집이었어요. 저는 술을 안 마시기 때문에 콜라를 마셨어요. 나머지 셋은 맥주를 마셨어요. 졸리지는 않았지만 점점 머리가 멍해지고 있었어요. 술집에 있으니 정신이 더 산만해졌어요. 대화 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어요. 뭐라카네의 여자친구는 입시제도에 대해 잘 알고 있었어요.


'무슨 교사인가?'


어두침침해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어요. 사실 뭐라카네 여자친구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별 관심도 없었어요. 시끄럽게 울려퍼지는 TV소리와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잡담, 침침한 조명. 그쪽으로 신경이 더 쏠렸어요. 뭐라카네 여자친구가 입시 제도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것으로 봐서 교사일 거라 추측했어요. 딱 거기까지였어요. 뭐라카네가 호구조사 질문을 안 좋아해서 물어볼 게 없었어요. 학원 강사 그만둔 지 이제 몇 년 되어서 교육제도에 별 관심이 없었어요. 입시와 교육제도에 대해 셋이 떠드는 동안 저는 안주만 맛있게 집어먹었어요.


뭐라카네랑은 나중에 이야기하면 되지.


주제를 바꾸려고 하지 않고 대화에 별로 참여하지도 않았어요. 일단 술집이라 시끄러워서 셋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제대로 들리지 않았어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저는 뭐라카네 집에서 하룻밤 신세지기로 했어요. 뭐라카네와 나눌 이야기는 그때 둘이서 이야기하면 되었어요. 급할 게 하나도 없었어요. 둘이 대체 어떻게 하다 사귀게 되었는지 궁금했어요. 뭐라카네가 자기한테 여자친구 생겼다는 말을 제게 한 적이 없었거든요. 갑자기 뜬금없이 뿅 하고 나타난 거라 더욱 당황스러웠어요. 상관없었어요. 그런 건 나중에 뭐라카네 집에서 하룻밤 신세질 때 물어보면 될 일이었어요.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너네는 어떻게 갈 거?"

"우리는 걸어가야지."


복습의시간에게 선택지를 주지 않았어요. 시청에서 복습의시간 집까지 걸어갈 거라 대답했어요. 비양도 가서 느낀 게 있었어요. 저나 복습의시간이나 근성을 충전시켜야 했어요. 이건 간단한 워밍업 수준에도 못 들어가는 거였어요. 저는 예전에 시청에서 신제주까지 종종 걸어다녔어요. 몸이 기억하는 길이었어요. 바로 집으로 들어가기는 아쉽고 제원사거리 가서 늦은 밤에 할 것도 없었기 때문에 복습의시간과 걸으며 잡담이나 나누고 싶었어요.


뭐라카네, 뭐라카네 여자친구와 헤어져 신제주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어요.


"여자친구 데려와서 깜짝 놀랐네. 체크카드 밖에 없는데 계산 어찌 해야 하나 혼란스럽더라."

"야, 아무리 걔가 남녀평등 이야기해도 그렇지, 아까 너 더치페이하자고 하니까 여자친구 얼굴 표정 별로 안 좋더라."


그때였어요.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갑자기 웃음이 빵 터져나왔어요.


복습의시간은 여자친구 없어. 뭐라카네는 제일 여자친구 안 사귈 거 같은 녀석이 여자친구 생겼어.


엄청 웃었어요. 이 이해 전혀 안 되는 상황. 우리들은 뭐라카네는 절대 여자친구 안 사귈 거라 믿었어요. 하지만 정작 뭐라카네는 여자친구를 저와 복습의시간 앞에 데려왔어요. 복습의시간은 여전히 혼자였어요.


"야, 저건 뭔데!"


복습의시간은 엄청나게 충격받았어요. 저도 만약 여자친구가 없었다면 엄청나게 충격받을 일이었어요.


"너 진짜 뭐라카네한테 여자 심리학이라도 배워야 하는 거 아냐?"

"여자 안 사귈 것처럼 하는데 여자는 또 사귀고 있어!"

"야, 어쨌든 결과는 걔는 여자친구 있고 너는 솔로잖아. 너 진짜 걔한테 진지하게 여자 사귀는 스킬 배워야 한다니까."

"아, 짜증나네."


엄청 웃었어요. 간간이 차만 쌩쌩 지나가는 어둠 속 제주시 밤거리. 모처럼 깔깔 웃으며 걸었어요.


"어? 벚꽃 벌써 피었네?"



벚꽃이 벌써 피어 있었어요. 2019년 3월 2일이었는데요.


복습의시간 집에 도착했어요. 모처럼 고등학교 졸업앨범을 같이 보며 이런 저런 잡담을 나누며 놀다가 잠을 청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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