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생존과 여행의 갈림길 (2019)

생존과 여행의 갈림길 - 09 제주도 제주시 비양도 비양봉

좀좀이 2019. 4. 19.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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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가 반대편을 보았어요. 붉은 송이흙으로 된 땅이었어요.




해안선을 따라 계속 걸어갔어요.




드디어 비양봉 올라가는 등산로가 나왔어요.


비양봉 등산로


"이제 올라가자."


비양도에 왔으니 비양봉에 올라가야 했어요. 비양도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비양봉이거든요. 한림, 협재 등에서 비양도가 아름답다고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비양봉 때문이에요. 비양도 자체가 비양봉이구요. 비양도 왔는데 비양봉을 안 올라가는 건 돈까스에서 고기는 빼서 버리고 튀김 껍질만 벗겨먹는 것과 다를 게 없었어요. 비양도에 온 것 자체가 비양봉 보러 온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비양도 관광은 우도와 이 점에서 많이 달랐어요. 우도는 섬 면적 자체가 어느 정도 되는데다 평지도 많아서 반드시 꼭 우도봉을 기어올라가야 할 필요가 없어요. 해안가 한바퀴 뱅 돌고 평지에서 놀아도 되요. 그러나 비양도는 비양봉 빼면 남는 것이 별로 없었어요. 평지도 그렇게 많지 않았고, 비양봉 올라가는 것을 제외하면 해안가 보는 것 뿐인데 섬 자체가 그렇게 크지 않아서 해안가만 보는 것으로는 많이 부족했어요.



조금 올라가서 바닷가 쪽을 보았어요. 비양도에는 비양봉 뿐이고, 비양봉 산기슭에 평지 조금 있고 바로 해안가이다 보니 바다가 매우 잘 보였어요. 그러나 날이 좋지 않아서 멀리 제주도가 잘 보이지 않았어요.


"어? 저기 염소 있다!"


비양도 염소


비양봉으로 조금 올라가자 염소 목장이 나왔어요. 전부 흑염소였어요.


흑염소


"야, 염소 싸운다!"


동요 아기 염소에서 염소는 순한 동물로 나와요. 새끼 염소는 귀여웠어요. 그러나 다 큰 염소는 서로 엄청 싸우고 있었어요. 서로 뿔로 들이받으며 싸우고, 다른 염소 쫓아내고, 또 다시 건초 씹어먹고 있었어요. 뿔이 자란 수컷 염소 눈은 전혀 순하게 생기지 않았어요. 아기 염소도 진짜 순한지는 모르겠어요. 아마 아기 염소도 한 성질 할 거에요. 어렸을 적 친척집 가서 아기 염소랑 논 적이 있어요. 아기 염소도 고집은 엄청 셌어요. 덤벼들지는 않았지만 고집 하나는 다른 동물들보다 훨씬 강했어요. 다른 동물들도 고집이야 있겠지만, 염소는 이 고집에 행동력도 있었어요.


"복습의시간아, 어서 올라가자. 우리 이거 끝까지 다 올라가야 해."


재미있게 염소 싸움 구경을 하는 복습의시간에게 다시 비양봉 꼭대기로 올라가자고 했어요.


비양봉 등산로


등산로에 누가 동백 꽃송이를 올려놓았어요.



'아, 진짜 저질 체력 다 되었구나.'


비양봉은 경사가 급하지 않았어요. 높이가 높은 것도 아니었어요. 협재 해변에서 보면 비양봉이 꽤 높아 보이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수평선 위에 있는 섬을 보는 것이라 그래요. 실제로는 동네 뒷동산 수준이었어요. 그러나 얼마 올라가지 못해서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어요. 땀도 났어요. 예전 같으면 그냥 웃으며 걸어올라갈 길이었어요. 하도 운동을 안 했더니 체력이 쓰레기가 되어버렸어요.


복습의시간도 마찬가지였어요. 같이 밤새 인체비공학적 중국 기차 좌석에 앉아 중국 대륙을 횡단하던 그때 그 시절 체력은 다 거짓말 같았어요. 사이좋게 거친 숨을 헉헉 몰아쉬며 올라갔어요. 둘 다 너무 심한 체력부족이었어요. 저 자신이 용서가 안 될 지경이 아니라 진짜로 용서가 안 되었어요. 이게 무슨 한라산, 설악산 등산하는 것도 아니고 진짜 아무 것도 아닌 뒷동산 같은 거 올라가는 건데 고산병 걸린 것처럼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었으니까요.


'이러다 마지막 날 밤에 24시간 카페 세 곳 다 못 돌아다니는 거 아냐?'


이런 최악의 저질 체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했어요. 누가 봐도 욕할 체력이었어요. 여행을 안 다녔더니 몸이 아주 엉망이 되어버렸어요. 기우가 아니라 진지하게 마지막 날 24시간 카페 세 곳 돌아다니는 것이 걱정되기 시작했어요. 비행기를 타러 김포공항 갈 때까지만 해도 제 체력이 이렇게 거지 같은 체력 상태일 줄은 몰랐어요. 별 것 아닌 비양봉 올라가기 시작하자 본전이 드러났어요.



"저기까지만 가면 되겠다!"


멀리 등대가 보였어요. 저 등대가 비양봉 정상일 거였어요.



비양봉 분화구를 바라보았어요. 분화구로 내려가는 경사는 꽤 급한 편이었어요.


비양도 비양봉 등대


2019년 3월 2일 12시 20분. 드디어 비양도 비양봉 정상을 정복했어요. 둘이 무슨 한라산 백록담 정복한 것 마냥 힘들어했어요. 지금까지 복습의시간과 여행을 다니면 둘이 서로에게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사이좋게 지능 저하가 일어났어요. 그러나 이번에는 저와 복습의시간 모두 제주도에서 자랐기 때문에 아무리 둘이 만나 같이 논다고 해도 지능 저하가 일어나지는 않았어요. 대신 그에 대한 보상효과로 둘 다 체력이 엉망이었어요.


정상에서 주변을 둘러보았어요.




"한라산 하나도 안 보인다."



사진을 찍어서 확대해보니 아주 흐리게 한라산이 보이는 것 같았어요. 신기루에 가깝게 보일까 말까 했어요. 허상이 찍혔다고 해도 될 정도였어요.


"이제 분화구 한 바퀴 돌자."


분화구를 따라 한 바퀴 돌 수 있게 길이 정비되어 있었어요. 정상까지 올라왔으니 분화구 한 바퀴 돌고 내려가기로 했어요.



"우리 내려가자."

"어, 도중에 내려가는 길 있으면 내려가게."


분화구 한 바퀴 돌려고 했던 처음 계획은 저질 체력이 싹 불싸질러주었어요. 아주 재도 안 남게 태워버렸어요. 반도 채 못 돌아서 복습의시간은 제게 다른 쪽 길이 있으면 내려가자고 했고, 저도 찬성했어요. 비양봉 분화구 한 바퀴 도는 것이 의외로 쉽지 않았어요. 올라가는 것은 쉬웠지만 분화구 주변 높이는 들쭉날쭉했어요. 급경사도 있었어요. 등산로에 비해 분화구 한 바퀴 도는 길은 그렇게 정비가 잘 되어 있지도 않았어요.


그러나 한 바퀴 다 돌아버렸어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어요. 그래야만 했어요.


도중에 내려가는 길이 없어!


퇴로가 없었어요. 복습의시간과 도중에 내려가기로 한 지점은 절반 조금 못 와서였어요. 등대까지는 매우 가파랐어요. 게다가 이미 절반 정도 와버린 후였어요. 계속 도중에 내려가는 길이 있나 살피며 분화구를 돌았어요. 분화구 한 바퀴 다 돌 때까지 내려가는 길은 나오지 않았어요. 내려가는 길은 올라가는 길과 똑같았어요. 딱 하나 뿐이었어요. 전혀 원하지 않았지만 강제로 분화구 한 바퀴를 돌았어요.



"다 내려왔다!"


별 것 아닌 오름이었지만 참 힘든 길이었어요. 이제 다시 순탄한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어요. 평지를 걷게 되었다는 점이 너무 신났어요.







시각을 확인해 보았어요. 12시 45분이 되어가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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