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영화 내용 스포일러 당연히 있어요.


송강호, 이선균 주연 영화 기생충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총 10명이에요. 재미있는 점은 이 인물들이 닮음, 대비 이룬다는 점이에요.


닮음은 과거와 미래 관계라고 보면 되요. A와 B가 닮음이라면 A는 B의 미래 모습을 보여주고, B는 A의 과거 모습을 보여준다고 이해하시면 되요.

대비는 전혀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에요.


참고글 : 봉준호 감독 영화 기생충 핵심 소재 분석 - 선, 냄새, 계획 https://zomzom.tistory.com/3756



1. 문광-근세 부부 -> 소재 : 기생충


1.1. 문광 (이정은) : 닮음 = 충숙, 대비 = 연교


박사장집 입주 가사도우미 문광은 기택의 아내 충숙과 닮음이에요. 인물 분석에서는 사실 큰 의미 없어요. 집 건물 역사의 산증인이고, 집 구조를 매우 잘 안다는 정도에요. 스토리에서는 중요해요. 그렇지만 인물 특징 분석하고 해석할 것은 없어요. 충숙과 닮음쌍을 이루기 때문에 충숙에 대한 분석과 많이 겹치거든요. 충숙을 분석, 해석하면 문광에 대한 분석, 해석도 자연스럽게 따라나와요.


1.2. 근세 : 닮음 = 기택, 대비 = 박사장


문광의 남편 근세는 기택과 닮음이에요. 역시나 인물 분석에서 큰 의미 없어요. 정말 넘어서는 안 될 최후의 선을 넘은 결과를 보여줘요. '바닥인 줄 알았는데 지하실이 있고, 지옥인 줄 알았는데 거기는 천국이더라'를 보여주는 존재에요. 영화 엔딩을 보면 박사장이 죽은 후 얼마 지나서 그 집에 독일인 가족이 들어와서 살아요. 기택은 박사장을 살해한 후 지하실에서 살고 있구요. 기택이 계속 그 집 지하실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독일인 가족이 잘 되고 오랫동안 살기를 빌 수 밖에 없어요. 얼핏 보면 근세와 기택이 똑같은 처지인 것 같지만 근세는 기택의 미래 모습이에요. 정말로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인 사채에 손을 대어서 지하실에 숨어사는 근세는 자신이 거기에서 오래 살기 위해 박사장이 잘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살인'이라는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어버린 기택 역시 앞으로 계속 그 지하실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독일인 가족이 잘 되고 오랫동안 거기에서 살아야만 하니 근세처럼 그 독일인 가족을 칭송하는 모습으로 바뀌어갈 거에요.


1.3. 소재 : 기생충, 숙주


이 영화 제목이 왜 기생충인지 생각해봐야 해요. 기생충은 숙주 몸 속에서 영양분과 피만 빨아먹을 뿐, 그 어떤 것도 숙주에게 제공해주지 않아요.


기택, 충숙, 기우, 기정 모두 박사장 가족으로부터 돈을 받아요. 그러나 이것은 정당한 노동의 대가에요. 이걸 기생충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대놓고 '가난한 놈들은 전부 쓰레기'라고 대놓고 외치는 거에요. 미치지 않고서는 그러지 못하죠. 기택 가족 구성원이 박사장 가족 아래에서 일하게 되는 과정은 분명히 문제있어요. 그렇지만 과정이 문제일 뿐, 보수에 대한 노동은 똑바로 해요. '노동'이라는 상품을 사고 파는 행위 자체는 정상적이라는 것이에요. 이걸 기생충이라고 한다면 영화에 나오는 모두가 다 기생충이 되어버려요. 기생충 해석 잘못하면 '죄다 구충제 처먹고 죽어버려라' 라는 영화가 되어버린다는 거에요.


기택 가족은 박사장 가족과 공생관계이지 기생관계가 절대 아니에요. 기택 가족이 박사장에게 기생하는 기생충이라고 해석해야 한다면 봉준호 감독은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게 아니라 돌 맞아 죽었을 거에요.


이 영화에서 공생 관계가 아니라 기생 관계인 인물은 딱 한 명 있어요. 바로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근세에요. 사채 끌어다 썼다가 쫄딱 망해서 문광이 일하고 있는 박사장 집 지하실에서 숨어살고 있어요. 예전 집 주인이자 집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가 박사장에게 집을 팔 즈음에 사채 끌어다 썼다 망해서 이 집 지하실로 기어들어가 박사장 가족집에서 기생하며 살고 있는 거에요.


즉, 근세에게 숙주는 박사장이에요. 근세는 박사장에게 아무 것도 제공하지 않아요. 순전히 숨어서 사는 공간과 음식을 얻어먹을 뿐이에요. 기생충처럼 숙주 박사장의 허락 없이 몰래요.


근세와 닮음꼴은 기택이에요. 기택에게 숙주란 박사장이 아니라 박사장 살해당한 이후 그 집에 들어온 독일인 가족이에요. 독일인 가족에게 아무 것도 제공하지 않고 허락 없이 지하실에 몰래 살며 음식을 훔쳐먹으며 살아가니까요.


여기에서 애매해지는 것이 바로 충숙과 문광이 완벽한 닮음인지 아닌지에요.


근세와 기택이 선을 넘은 이후, 문광은 사채업자에게 감시당하며 살고 있어요. 충숙은 경찰들에게 감시당하며 살고 있어요. 하지만 사채업자에게 두들겨맞는 문광과 달리 충숙은 경찰에게 미행당하는 삶 외에는 딱히 달라진 것이 없어요. 잔인하지만 냉정히 이야기하자면 충숙은 오히려 삶이 더 나아졌어요. 백수 식구 두 명 줄었잖아요. 피자 상자 접는 일도 충숙이 받아온 일이에요.


충숙이 기택을 다시 만나는 방법은 오직 하나 뿐이에요. 그 집에 다시 가사도우미로 들어가는 것이에요. 그러나 그게 가능할지 솔직히 의문이에요. 충숙은 기회만 된다면 기택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다시 그 집에 가사도우미로 들어가려 하겠지만 그 집 주인은 이제 독일인 가족이에요. 언어 소통 안 되는 충숙이 그 집으로 다시 들어갈 확률은 극히 낮아요. 더욱이 그 동네 주민들에게 완전히 찍혔을 거구요.


사실상 사기쳐서 박사장 가족에게 노동을 제공하고 보수를 받게 된 기택 가족의 모습을 기생하는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있어요. 그러나 그렇게 지나친 의미 확대를 막기 위해 영화에서는 대놓고 기생충이 뭔지 등장해요. 그 기생충은 바로 근세에요.


2. 박사장 가족


2. 박사장 가족


이 영화에서 눈에 띄는 특징은 박사장 가족 일원이 악하지 않다는 것이에요. 오히려 어떻게 보면 너무나 선해요.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가 칸 국제영화제에서 엄청난 호응을 받을 수 있었던 거라 봐요. 부자가 나쁘다는 식으로 그리는 프로파간다 성격 진한 영화는 흔해 빠졌을 뿐더러 그 영화제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공감받기도 어려울 거거든요.


박사장 가족 구성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 있어요. 바로 이들은 '가난'이 뭔지 몰라요. 원래부터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에요.



2.1. 박사장 (이선균) : 닮음 = 다송, 대비 = 기택


박사장은 회사를 스스로 일군 매우 유능한 사람이에요. 예쁜 아내인 연교, 귀여운 자녀들인 다혜와 다송과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박사장의 성격은 기택의 운전실력을 알아보기 위해 드라이브 가자고 한 후 커피잔을 유심히 보는 장면에서 잘 묘사되고 있어요. 앞에서는 단순히 답답해서 드라이브 가자고 했지만 실제로는 커피잔 속 커피의 흔들림을 통해 기택이 얼마나 운전을 잘 하는지 관찰하고 있었던 거에요. 단지 '감'이 아니라 '컵 속 커피의 흔들림'이라는 객관적 자료로 분석하고 있었다는 거죠.


박사장이 어떤 인물인지 상징하는 소재는 앞서 다룬 선, 냄새가 있어요.


2.1.1. 소재 : 냄새


박사장은 가난해본 적이 없어요. 왜냐하면 기택의 냄새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거든요. 그가 만약 가난하게 지내본 적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기택의 냄새가 가난한 동네, 가난한 집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임을 바로 알았을 거고, 그랬다면 박사장 성격상 기택의 냄새에 대한 언급이나 행동은 최대한 피했을 거에요. '냄새=가난'이라는 것을 아니까요. 아내인 연교에게 굳이 기택은 다 좋은데 냄새가 너무 싫다고 이야기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거에요. 자기 차 운전기사 하는 사람이 부자일 리 없는데, 기택에게서 나는 냄새가 가난해서 나는 냄새인 걸 알면 굳이 그걸 연교에게 냄새가 싫다고 말해야 할 이유가 없죠. '나는 내 운전기사가 가난해서 싫어'라고 불평하는 꼴이 되어 버리니까요. 이 영화에서 냄새와 가난은 동의어에요. 그렇지만 박사장은 그걸 인지하지 못해요. 왜냐하면 가난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기택 귀에는 '나는 기택이 가난해서 싫어'라는 의미가 정확히 들리지만, 박사장은 전혀 그런 의도로 이야기한 게 아니에요. 가난이 뭔지 모르니까 가난하기 때문에 풍길 수 밖에 없는 냄새가 뭔지 모르고 기택에게서 나는 냄새가 싫다고 말한 것 뿐이에요.


2.1.2. 소재 : 선


박사장은 그러면 어떻게 성공했는가? 바로 넘지 말아야할 선은 안 넘었다는 것이에요. 도전은 하지만 무모한 짓은 안 한다는 거죠. 무모해보이는 도전을 했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그렇게 회사를 일궜겠죠. 그러나 그 무모해보이는 도전이 사실은 선을 안 넘은 거에요. 마치 폭우 속 다송이 펼치고 들어간 텐트처럼요. 자신이 칼 같이 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은 다송 생일파티때 기택을 주말 추가 근무 비용을 주고 불렀다는 점에서도 나와요. 심란한 기택에게 같이 인디언 분장하고 파티에 참여하자고 한 것이 선을 넘은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으나, 박사장은 주말 추가 근무 비용을 두둑히 챙겨줌으로써 선을 지켰다고 하려 했을 거에요.


2.1.3. 소재 : 커피잔


박사장은 기택의 운전실력을 확인하기 위해 커피가 들어 있는 커피잔을 들고 자기 차에 올라타요. 기택과 이런 저런 대화를 하며 계속 커피잔 속 커피의 흔들림을 지켜봐요. 커브를 돌 때 커피잔 커피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을 보고 기택에게 코너링 실력이 좋다고 진심으로 칭찬해줘요.


커피잔은 박사장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소재에요. 박사장에게 면접 보러 온 기택은 운전기사로 지원했어요. 운전기사의 기본은 좋은 운전 실력이에요. 아무리 길을 다 외우고 있고 탑승객을 편안하게 해주는 화술을 갖고 있다 해도 기본인 운전실력이 형편없으면 아무리 인간적인 끌림이 있다 해도 뽑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에요.


인상이 좋으면 점수를 더 후하게 줄 수 밖에 없고, 정말 평가해야 하는 운전실력은 제대로 평가하기 어려워져요.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이 정말 제대로 평가해야 할 판단을 망쳐버린다는 거에요. 그래서 박사장은 일부러 커피가 들어 있는 커피잔을 들고 차에 타서 커피잔 속 커피의 흔들림을 보고 기택의 운전 실력을 판단했어요. 코너링에서도 흔들림이 별로 없는 잔 속의 커피를 보고 그제서야 객관적인 평가사항에서 주관적인 평가사항으로 넘어갔어요.


박사장의 커피잔은 기우의 수석과 완전히 대비되요. 그리고 왜 박사장은 성공해서 부자가 되었고 기택은 실패해 망했는지 매우 잘 보여줘요.


박사장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판단했어요. 그 다음이 주관적인 판단이었구요. 그래서 '냄새'를 제외한 모든 것이 너무 만족스러운 기택을 뽑았어요. 박사장이 계속 기택의 냄새에 불만을 갖고 있는 이유는 그 냄새가 너무나 싫기도 하지만, 그 냄새 빼고는 나머지 전부 매우 만족스러워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어요. 다른 것도 못 마땅했다면 기택을 해고했겠죠.


하지만 기우의 수석은 아니에요. 기우는 수석 때문에 성공한 것이 아닌데 수석이 돈을 불러왔다고 믿어요. 완전히 비과학적인 방법인 감정, 순간의 느낌, 미신, 자의적 해석을 통해 부여한 객관적 상관관계 전혀 없는 상징, 주관적 판단 등으로 때려맞추고 있는 거죠. 기택이 대왕 카스테라 장사를 결정했을 때 기우가 수석 때문에 성공했다고 믿는 것과 비슷한 논리 전개로 결정했을 거라 쉽게 유추할 수 있어요.


이 차이는 박사장의 번창하는 회사와 기택의 쫄딱 망해버린 대왕 카스테라라는 엄청난 결과의 차이로 발전했어요.



2.2. 연교 (조여정) : 닮음 = 다혜, 대비 = 충숙


연교는 '트로피 와이프' 모습을 보여줘요. 트로피 와이프란 남자가 재력으로 획득한 예쁜 아내를 말해요.


하지만 연교는 이 영화 스토리 전체적으로 너무 잔인하게 희생당했어요. 솔직히 연교 역을 열연한 조여정 배우님이 불쌍할 지경이에요. 영화 전반부인 기우, 기정, 기택, 충숙이 차례로 사기쳐서 박사장 집에서 일하게 되는 과정이 너무 짧아요. 단순히 영화 시간 분배적인 이야기가 아니에요. 전반부 내용을 보면 처음 기우가 영어 과외교사로 채용되는 날부터 마지막으로 충숙이 가사도우미로 채용되기까지 며칠 안 걸려요. 그것도 알아보고 말고 없이 기우, 기정, 기택 말을 곧이 곧대고 믿고 바로 감정적, 즉흥적으로 결정해버려요. 영화 소개에서는 성격이 심플하고 순진하다고 하지만, 이건 멍청한 수준을 뛰어넘어 그냥 뇌가 없는 수준이에요. 이게 인간이 맞나 싶을 정도에요. 이 영화의 유일한 흠이라고 할 수 있어요.


연교 또한 가난을 모르고 세상 물정 전혀 깜깜한 부잣집 따님 출신임을 너무 쉽게 알 수 있어요. 부잣집 따님 출신 정도가 아니라 부잣집 공주님 출신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거에요.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했던 적이 없었을 거에요. 주변에는 전부 자신과 비슷한 부잣집 왕자님, 공주님들 뿐이었을 거구요.


그러면 공부는 못 했을까요? 이건 또 아닐 거에요. 공부도 나름대로 잘 했을 거에요. 머리 자체도 좋고 좋은 사교육 받아서 무난하게 좋은 명문대학교 진학했을 거에요.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외국 유학 보내서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거의 못 받았거나요.


이런 분석이 가능한 이유는 다음 세 가지 이유 때문이에요.


먼저 열등감이 보이지 않아요. 오히려 '공부'라는 영역에서조차 자신감을 보여요. 이걸 어디에서 알 수 있냐 하면 기우의 첫 과외시간때 자기가 직접 참관하겠다고 따라들어가고 기정의 첫 미술수업 (미술 수업 이후에 다송의 정신상태가 이상하다고 말해서 미술심리치료수업으로 바뀌어요)에도 따라들어가겠다고 해요. 그리고 말할 때 자연스럽게 영어를 섞어 쓰는 모습을 보여주고, 바스키아 등등 미술에 대해서도 아는 모습을 보여줘요. 이것은 단순히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와 자녀들에 대한 걱정으로 해석하기 보다는 모든 부분에서 너무나 순탄한 인생을 걸어왔다고 해석하는 게 맞아요.


두 번째로 기택 가족에게 쉽게 흔들리는 너무나 멍청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상류층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줄 때가 있어요. 바로 윤기사와 문광을 해고할 때 적당히 빌미, 핑곗거리 만들어서 조용히 해고하는 것이에요. 이런 인력 관리 기술은 관리자급 올라가지 않는 한 못 배워요. 당하기만 하죠. 하류층으로 갈 수록 문제를 직접 지적하고 바로 '너 나가!'라고 외쳐요. 연교가 순진함을 뛰어넘어 멍청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연교가 사회 활동을 하며 이런 대인 기술을 배웠을 리 없어요. 어려서부터 집에서, 주변에서 보고 자랐기 때문에 그런 거죠. 만약 직장 생활을 통해 배웠다면 애초에 기우, 기정, 기택 말을 그렇게 쉽게 믿었을 리도 없죠.


세 번째로 기우의 첫 영어 과외 수업에서 기우의 박력에 큰 호감을 보였다는 점이에요. 이 점은 바로 아래 다혜 부분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할께요.


2.3. 다혜 (정지소)  닮음 = 연교, 대비 = 기우


2.3. 다혜 (정지소) : 닮음 = 연교, 대비 = 기우


다혜 또한 가난이 뭔지 몰라요.


2.3.1. 소재 : 첫 영어 과외 수업 영어 24번 문제


이 부분은 단순한 박력에 반했다고 넘겨버리기 매우 쉬운 장면이에요. 그러나 이 장면에서 다혜와 연교가 가난에 대해 무지하다는 점이 드러나요.


다혜는 영어 문제를 쭉 풀어가다가 다시 24번 문제로 돌아와요. 그러자 기우는 '기세'를 언급하며 기세를 타고 끝까지 쭉 밀고 가는 게 중요하다고 해요.


이걸 이제 사업, 일에 적용해보면 이 장면의 의미가 드러나기 시작해요.


사업 또는 일을 추진하고 있어요. 추진 과정에서 분명히 잘못하고 넘어간 부분이 있어요. 그런데 그거 무시하고 기세 탄답시고 끝까지 쭉 밀어붙이는 것이 맞을까요, 아니면 뒤로 돌아가서 그 부분을 점검하고 고치는 게 맞을까요? 기세 타령 하며 그냥 무조건 밀어붙이다가는 십중팔구 집안 말아먹어요. 이것은 영화 초반 피자 상자 접는 장면에서도 나와요. 기택이 빨리 하겠다고 대충대충 접다가 1/4가 불량 판정 나버렸어요. 기우와 기정 아니었으면 10% 까이는 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충숙과 피자집 사장이 대판 붙어서 그나마 입에 풀칠이라도 하던 피자상자 접는 일조차 날아갔을 거에요.


기우는 다혜 손목을 잡고 시험은 기세를 타고 쭉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요. 다혜와 연교는 기우의 이 박력있는 모습에 반해버려요.


진짜 빈곤을 모르는 사람들일 수록 빈민층, 하류층에 대한 이상한 환상이 있어요. 그들이 너무나 아름답고 인간적이며 사람 냄새 나는 삶을 살고 있다는 환상을 갖는다는 것이에요. 이것은 중류층도 예외는 아니에요. 빈곤이 어떤 건지 모르면 하류층들을 이상하게 아름답게 보려고 하고 거기에 매력을 느껴요. 그리고 그걸 자기들이 이해한 방식으로 왜곡시켜서 추구해요.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자신들에게 없는 특징에 호기심이 발동하고 그게 진짜 뭔지 모르니까 자기들 기준으로 아름답게 해석해버리는 것이에요.


기우가 다혜 손목을 잡고 시험은 기세가 중요하다고 하는 장면에서 기우의 무모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요. 이 장면 이전에 연교는 기우에게 다혜가 기우 친구인 민혁을 엄청나게 좋아했다고 해요. 기우는 잃을 게 없어요. 민혁은 잃을 게 있어요. 이 차이가 다혜에 대한 태도에서 차이를 야기하는 것이에요. 기우는 어차피 퇴짜 맞아봐야 다시 0으로 돌아가는 것 뿐이에요. 그러니 그냥 저지르고 보는 거에요. 이런 행동 방식은 잃을 게 많은 연교와 다혜가 보지 못하던 거죠. 그래서 다혜는 기우의 무모함에 반해버려요. 정말 많이 좋아했다던 민혁을 차버리구요. 지킬 거 지키는 민혁의 밋밋한 태도 보다가 무모한 기우의 태도 보니까 아주 짜릿하고 뿅 가는 거죠. 그리고 연교, 다혜 둘 다 사이좋게 이것을 왜곡해서 해석해요. '박력있고 추진력 있는 모습'이라구요. 박사장의 결단력, 추진력과 기우의 무모함은 전혀 다른 것이에요. 겉모습은 똑같이 밀어붙이는 것이지만 내용은 아예 달라요. 그러나 연교와 다혜는 이 차이를 전혀 인지하지 못해요. 왜냐하면 가난을 모르거든요.


해석이 너무 나간 것 같다구요? 그러면 연교를 보세요. 연교는 왜 기우의 그 모습에 뿅 가버렸을까요? 연교는 그게 무모한 것이라는 것을 몰라서 - 즉 가난을 모르기 때문에 박력있고 추진력 있는 남편 모습과 같은 모습이라 오판해버린 거에요.



2.4. 다송 : 닮음 = 박사장, 대비 = 기정


다송은 아이 그 자체보다는 다송이 열광하는 '인디언'이라는 소재가 더 중요해요. 박사장이 어렸을 적 다송처럼 고집 세고 활동적이었을 거에요. 그리고 똑같이 미술하는데 집에서의 지원은 일절 기대할 수 없어 미술을 때려쳐야 할 위기 상황인 기정, 집에서 지원 팍팍 받는 다송은 대비를 이뤄요.


2.4.1 소재 : 인디언


이 영화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탈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인디언이라고 봐요. 인디언의 의미는 이 영화에서 매우 중요해요. 그리고 인디언을 선택했기 때문에 얻은 효과도 어마어마하구요.


2.4.1.1. 영화 속 인디언 의미 : 다른 세계와의 소통 능력


인디언은 자연과 소통하는 사람들이라는 이미지가 있어요. 이 이미지는 꽤 오래, 그리고 확고한 이미지에요. 캐빈 코스트너가 제작, 감독, 주연을 맡아 만든 영화이자 제63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감독상, 촬영상, 각색상, 편집상, 음악상, 음향효과상 수상작인 '늑대와 춤을' 영화가 대표적이에요. 이 영화가 뭔 내용인지 몰라도 일단 제목을 보고 인디언 이미지 보면 '인디언은 자연과 소통하는 사람들이구나'라는 이미지를 갖기 매우 쉬워요. 꼭 이 영화 제목 뿐만 아니라 여러 영화, 만화 등 문화산업에서 인디언은 대자연 및 영적인 존재와 소통하는 신비로운 인간 이미지가 강해요.


다송이 컵스카웃 활동을 하며 인디언에 푹 빠지게 된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에요. 다송은 초등학교 1학년때 자신의 생일날 밤 집에서 '다른 세계의 존재'인 근세를 보고 경기를 일으켰어요. 근세의 정체에 대해 모르니 귀신 - 즉 초자연적인 것을 접했다고 생각해버린 것이에요.


다송은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에요.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판단할 능력이 없어요. 집 아래에서 뭔가 기어올라오는 것을 보기는 했지만 그게 뭔지 분석하고 파악하지 못해요. 그래서 나름대로 아는 것을 동원해 논리적으로 이 실제 발생한 현상을 해석한 것이 '다른 세계와의 접촉'이에요. 귀신 같은 거요. 그래서 컵스카웃 활동을 하며 인디언의 이미지에 빠져버린 것이에요. 인디언이 영토를 빼앗겼다든가 하는 건 다송이 이해할 나이가 아니에요. 그건 어른들 눈으로 본 해석이죠. 컵스카웃이 무슨 프롤레타리아 역성 혁명을 부르짖는 단체가 아니잖아요.


2.4.1.2. 빈곤을 모르는 사람들의 빈곤에 대한 왜곡된 이해와 미화 - 다송의 텐트


인디언은 위에서 말한 가난을 모르는 사람들이 가난의 특성에 대해 왜곡시켜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대표적 사례 중 하나에요. 미국 인디언 보호구역에 사는 인디언들이 정말 지금도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요? 인디언들은 빈곤에 시달리고 있어요. 왜곡되어 미화된 이미지와 현실이 정반대인 사례로 세계적으로 손꼽혀요.


이런 것은 일단 뒤로 미루더라도 영화 기생충에서 인디언은 빈곤을 모르는 사람들의 빈곤에 대한 왜곡된 이해와 미화,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진짜 빈곤한 사람들의 심정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요소로 작용해요.


폭우가 무섭게 쏟아지던 다송이의 생일날 밤, 다송이는 굳이 정원에 텐트를 치고 자겠다고 해요. 그리고 그 텐트는 엄청난 폭우 속에도 멀쩡해요. 박사장 가족이 모두 잠든 시각에 몰래 박사장 집을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가보니 동네는 홍수났고 반지하 집은 물에 잠겨서 실상 모든 걸 잃어버렸어요.


기택 가족들에게도 집은 가장 소중한 공간이자 가장 가치 높은 재산이에요. 직설적이로 이야기하자면 아무리 반지하 방이라지만 이들이 갖고 있는 가장 비싼 재산이라는 거에요.


기택, 기우, 기정 모두 신나게 박사장 집에서 놀다 도망쳐서 온 반지하 집이 홍수 때문에 물에 잠긴 것을 보고 정신이 나가버려요. 이를 노골적으로 행동으로 보여준 사람은 기정이고, 제일 정신이 깨져버린 사람은 기택이에요.


그 전까지는 그래도 집 대 집의 비교였어요. 박사장의 대저택과 기택의 반지하 집 비교였어요. 그런데 폭우가 쏟아지는 밤, 기택이 발로 걷어차면 날아가고 부서지게 생긴 텐트 쪼가리는 멀쩡한데 자기가 갖고 있는 재산 중 가장 가치 있는 재산인 반지하 집은 개판되었어요. 여기에서 그동안 집 대 집이었던 대비는 이제 박사장 아들 장난감 대 집으로 바뀌어버려요. 그리고 그나마도 박사장 아들 장난감에 불과한 텐트 쪼가리의 완승으로 끝나버렸어요.


기택이 왜 박사장을 순간 울컥해서 칼로 찔렀을까요? 앞서 이 영화에서 '냄새'란 '가난, 빈곤' 같은 단어로 바꿀 수 있다고 했어요. 기택 관점에서 보면 부잣집 애새끼 장난감 텐트만도 못한 집 같지도 않고 쓰레기 같은 반지하 집이라는 참담한 현실을 직접 목격해 버렸어요. 여기에 집이 침수되어서 이재민이 되었기 때문에 앞으로 막막해요. 가뜩이나 실패 뿐인 인생인데 인생 좀 피나 싶더니 집이 날아가버렸어요. 그런데 박사장네는 다송이 생일파티하니 도와달라고 불러서 냄새와 관련된 행동을 계속 보여요. 이 행동은 지금 정신이 멀쩡할 리 없는 기택 앞에서 '가난한 놈 혐오스러워'라고 면전에서 계속 외쳐대고 있는 거에요. 기택은 계속 그렇게 받아들여요. 여기에서 기택을 더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차 안에서 연교가 두 발을 앞좌석에 올려놓고 있는데 기택이 수해구호품으로 받은 옷에서 나는 냄새를 못 견디고 인상을 쓰고 창문을 열어버린다는 거에요. 연교의 발냄새는 당연히 박사장 집에서 제일 더럽고 쓰레기인 것을 의미해요. 그런데 기택의 냄새가 더 역겹다는 행동을 보여요. 그렇지 않아도 넋 나가고 정신줄 부여잡기 힘든 충격을 받은 기택에게 '너는 가난한 놈, 우리집 쓰레기만도 못해'라는 메세지를 보낸 셈이에요. 연교는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겠지만 기택에게는 그렇게 받아들여졌죠. 그래서 마지막에 박사장이 악취 때문에 코를 쥐어막자 기택이 눈 돌아가서 우발적으로 박사장을 찔러버리게 된 거에요.


2.4.1.3. 기택의 과거 실마리 중 하나


기택의 과거에 대해서는 '대왕 카스테라'만 언급될 뿐이에요. 그렇지만 아들인 기우도 컵스카웃 활동을 했다는 사실이 나와요. 이로 미루어보았을 때 기택은 처음부터 그렇게 못 살던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 아래로 데굴데굴 굴러떨어져서 거기까지 굴러떨어졌음을 유추해볼 수 있어요.


2.4.1.4. 엔딩에 대한 개연성


맨 마지막, 기택은 근세가 했던 것처럼 센서등을 켰다 껐다 하며 모스 부호로 메세지를 밖으로 보내요. 센서등이 제멋대로 켜지고 꺼지는 것이 근세가 모스부호 보낸답시고 그랬던 것이었다는 사실은 오직 기택만 알아요.


기택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박사장을 찔러죽인 후 몰래 지하실로 숨어들어가 기생충 생활을 시작했어요. 기택이 외부 가족들과 연결될 방법은 아무 것도 없어요. 그런데 지하실에서 기택이 기생충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려면 근세가 했던 것과 똑같이 센서등을 이용해 모스 부호를 보내는 수밖에 없어요. 문제는 이걸 누가 보고 이해하냐는 거죠.


그런데 기우는 컵스카웃을 했다고 나와요. 단순히 비위 맞추느라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 정말로 했어요. 그래서 기우는 제 멋대로 깜빡이는 센서등이 모스 부호라는 것을 알아봐요.


2.4.1.5. 인디언으로 얻은 효과


인디언은 영화 기생충에서 매우 중요해요. 상징하는 것, 의미하는 것, 그리고 스토리에서 모두 중요해요.


인디언으로 얻은 가장 큰 효과라면 인디언에 대해 꼭 설명하지 않아도 서양인들이 보고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다는 점이에요. 한국인이 보든 외국인이 보든 똑같이 해석할 수 있어요.


다송이 초등학교 1학년때 생일날 밤 자기 집 지하에서 기어올라오는 근세를 보고 경기를 일으킨 후 인디언에 집착한다는 설정은 황금종려상 수상에 매우 큰 역할을 했을 거에요. 인디언은 정말 잘 찾아내었어요.


3. 기택 가족


3. 기택 가족


3.1. 기택 (송강호) : 닮음 = 기우, 대비 = 박사장, 닮음 = 근세


기택은 박사장과 상당히 대조적인 인물이에요. 인생 계획도 없고 건성으로 살아요.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가 있어요. 과연 기택이 원래 그렇게 살았냐는 거죠.


제가 봤을 때, 기택은 원래부터 그렇게 살지 않았어요. 오히려 열심히 노력하고 계획 세우고 계획대로 착실히 이행해갔는데 그럴 수록 망해서 그 지경까지 간 거에요. 수해 대피소 바닥에 누워 기우에게 무계획이 최고의 계획인 이유는 계획을 세우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는 말은 기택의 개똥철학이 아니에요. 그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은 일의 줄거리에요.


이를 유추해볼 수 있는 두 가지 요소는 바로 기우가 컵스카웃 활동을 했다는 점, 그리고 기우와 기정의 미묘하게 반대되는 성격이에요.


먼저 기우는 어렸을 적 컵스카웃 활동을 했어요. 기우가 어렸을 적 기택 가족은 부유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중산층~서민층 수준의 삶은 영위하고 있었을 거에요.


기우는 작중 나이가 25살 정도에요. 기정은 작중 나이가 20살로 추정되구요. 둘 사이 나이차는 5살이에요. 기우는 그래도 계획이라는 것을 세우려고 노력해요. 그리고 조심스럽고 신중한 모습을 보여요. 반면 기정은 막 나가는 모습을 보여요. 이렇게 둘이 성격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기정이 사춘기 시절 집이 망해가는 꼴을 겪고 있었다고 볼 수 있어요. 그 이전부터 망해가고 있었을 수도 있구요.


기택과 관련된 소재는 여러 개 있어요. 그러나 대부분 기택 식구들과 겹치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기택만의 특징으로 볼 수 있는 소재를 다루도록 할께요.


3.1.1. 소재 : 대만 대왕 카스테라


기택의 과거를 직접적으로 알려주는 소재는 대만 대왕 카스테라 파동이에요.


2016년 하반기, 타이완 먹거리 열풍을 타고 타이완 대만 카스테라 가게가 문을 열었어요. 이것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순식간에 점포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어요. '생겨났다'는 표현은 전혀 안 어울려요. 창궐했다고 해야 맞을 거에요.


대왕 카스테라 체인점은 한탕 해먹고 빠지려는 냄새가 상당히 강했어요. 먼저 카스테라 제조 방법이 특별할 게 없었어요. 누구나 금방 따라 만들 수 있는 아이템이었어요. 카스테라가 진귀하고 특별한 거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어요. 동네 빵집에서 파는 카스테라와는 맛이 조금 다르다고는 하나, 솔직히 그게 그렇게 줄 서서 먹을만한 것인지는 진지하게 의문이 드는 사업 아이템이었어요. 게다가 후속 아이템을 내놓았냐 하면 딱히 그런 것도 없었어요. 기껏해야 속에 생크림, 커스터드 크림, 잼 등을 넣어서 파는 정도였어요. 이것도 누구나 조금 배우면 다 할 수 있는 것이었어요.


프랜차이즈 업체들 자체가 한탕 해먹고 빠지기로 작정하고 만든 아이템이라는 것이 현재 정설에 가까워요. 만약 카스테라 정보를 조금만 알았다면 이걸로 창업해보겠다고 나서지 않는 게 정상 - 즉 선을 넘지 않는 행위였다는 거에요.


그렇지만 기택은 그 당시 망한 다른 사장님들처럼 그런 정보는 얻지 못하고 여기에 모든 걸 걸어버렸어요.


대만 카스테라 열풍은 곧 꺼질 운명이었어요.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흔하고 쉬운 아이템이었고, 후속 아이템 개발도 없었거든요. 독창적인 아이템 자체가 아니었어요. 어떻게 광풍이 계속 이어졌다 한들 여기저기서 다 따라해서 결국은 여러 곳 망할 운명이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2017년 3월, 그 유명한 채널A 먹거리X파일에서 '대왕카스테라 그 촉촉함의 비밀'이라는 방송이 나갔어요. 이 방송은 아직도 논란이 많은 방송이에요.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내용이 여전히 논란거리라는 것이 아니에요. 빠져나올 새도 없이 폭삭 망해버렸다는 것이 문제였어요.


언젠가 터질 거품이기는 했어요. 이 거품이 서서히 꺼지느냐 갑자기 펑하고 터져서 꺼지느냐 문제였어요. 이 경우는 후자였어요. 방송이 나가자마자 가게마다 매출은 폭락했고 어떻게 손 써 볼 틈도 없이 망해버렸어요. 마치 갑자기 홍수가 나서 기택네 가족 반지하 집이 순식간에 물에 잠겨버린 것처럼요.


기택은 모든 것을 이 대왕 카스테라 프랜차이즈 지점에 걸었지만 시원하게 망해버렸어요. 그래도 기택은 반지하로 기어들어가는 걸로 마무리되었지만, 근세는 사채까지 끌어썼다가 기생충 인생을 살게 되어버렸어요.


여기에서 대왕 카스테라가 시사하는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어요.


첫 번째는 정보력의 차이에요.


기택에게 제빵사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대왕 카스테라에 안 뛰어들었을 확률이 높아요. 인터넷 검색만 신중하고 꼼꼼하게 했어도 피했을 수 있어요. 하지만 기택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었어요. 나날이 부각되고 힘을 얻고 있는 빈부격차의 양상이자 근본적 원인에 대한 주장은 바로 '정보 격차'에요. 정보 획득 능력에 따라 빈부 격차가 발생한다는 거에요. 이것은 스마트폰 보급률, 인터넷 이용률만으로 측정하기는 어려운 개념이지만, '중요한 것을 몰랐기 때문에 뛰어들었다가 망하는 경우'가 너무 흔해빠졌기 때문에 설득력 있는 주장으로 여겨지고 있어요.


두 번째는 갑작스러운 외적 충격에 대한 대응 능력이에요.


대왕 카스테라는 AI (H5N6형 조류독감) 사태로 인한 계란 파동, 먹거리X파일 보도로 인해 대왕 카스테라는 어떻게 손 쓸 새 없이 무너져버렸어요. 외적 충격에 너무나 취약한 모습을 보여줬어요. 어떻게 다른 빵을 개발해서 팔든가 다른 거 주워와서라도 팔든가 하며 버텨보지도 못하고 망했어요. 결국 권리금까지 싸그리 다 날려버렸다는 거에요. 일단 복덕방에 가게 내놓고 악으로 깡으로 버티다 그 자리에 다른 거 한다고 들어오는 사람이라도 있다면 권리금 얼마는 건져서 나올텐데 그냥 와르르 무너져버렸다는 거죠. 이것은 '넘지 말아야할 선'의 의미와 통해요. 도박판에서 올인 계속 하면 그 끝은 오링이에요. 대왕카스테라는 기택이 망하고 망하다 마지막에 선택한 올인이에요.


개인적으로 대왕 카스테라가 상당히 중요한 소재라 봐요. 그런데 이것을 외국인들이 보고 잘 이해했을지 의문이에요. 이해 잘 못 했다 하더라도 인디언으로 획득한 점수가 꽤 커서 충분히 만회되고도 남았을 거에요.


3.1.2. 소재 : 전화기


영화에서 기택 가족들은 전화조차 끊겼어요. 그나마 와이파이 훔쳐서 카카오톡으로 메세지 주고 받는 식으로 다른 사람들과 연락을 취하고 있었는데 그것마저 끊겨버려요. 다행히 인근에 새로 생긴 카페 무료 와이파이를 잡아서 어떻게 다시 카카오톡을 사용할 수 있게 되기는 했지만, 이 또한 언제 끊길 지 몰라요.


전화기가 의미하는 바는 왜 기택이 그 따위로 살고 있냐는 것에 대한 답을 줘요. 기택은 운전도 잘 하면서 아무 것도 안 하고 집에서 백수로 지내고 있어요. 대리기사라도 뛰면 영화 초반부 저녁식사랍시고 각자 맥주캔 하나에 과자 한 봉지 놓고 먹는 것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었을 텐데요.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대리기사를 하려면 기본적으로 전화기가 있어야 해요. 전화마저 끊겼으니 대리기사도 못 뛰는 거에요.


게다가 기우가 피자상자 접는 방법이라고 찾아온 방법을 기택이 맹목적으로 따라하는 것도 이 전화기 문제와 연결해서 보면 상당히 의미심장한 장면이에요. 인터넷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기우가 찾아온 피자상자 빨리 접는 방법이 제대로 된 정보인지 아닌지조차 확인할 수 없어요. 그냥 있는 정보를 무조건 맹신할 수 밖에 없어요. 그 결과는 기택이 접은 피자박스가 죄다 불량이라 전체 작업량 중 25%가 불량이라는 대참사가 발생했어요.


단절된 전화기는 기택 가족이 왜 반지하 집에서 절망적으로 지내고 있었는지에 대한 명쾌한 답을 제시해요.


위에서 정보 격차를 이야기했어요. 가난할 수록 정보 획득 능력이 엄청나게 떨어져요. 정보 획득 방법도 크게 제한되구요. 똑같이 인터넷을 검색한다고 해도 찾아내는 정보의 질이 천지차이에요.


하류층을 보면 유독 '인맥의 중요성을 엄청나게 강조해요. 그리고 때로는 너무 계산적이고 이기적이라 느껴지기도 하는 부유층과 달리 인심 좋은 모습을 보여줘요. 왜 하류층으로 갈 수록 인맥의 중요성을 엄청나게 강조하고 인심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지 둘을 연관지어서 냉정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인맥은 정보 소개 -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돈 벌 기회를 획득할 수 있는 경로 중 하나에요. 하류층으로 갈 수록 정보 격차가 커지기 때문에 인맥을 통한 정보 획득의 중요성은 엄청나게 커져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 주변을 적대적으로 대하고 싶어도 섣불리 그럴 수 없는 거에요. 쿨하게 살고 싶어도 그랬다가 주변 사람들에게 평판이 낮아지면 돈 벌 기회가 확 줄어들어버려요. 그렇기 때문에 하류층으로 갈 수록 인맥 그 자체가 엄청나게 중요한 재산이자 능력이 되요.


기택 식구네 전화기가 끊기고 인터넷 훔쳐 써서 간신히 카카오톡 연락만 취한다는 것은 이들이 눈 뜬 장님이 되어버렸다는 소리에요. 최소한 지인한테 연락해서 일거리라도 물어볼텐데 그것조차 할 수 없다는 거니까요. 그러면 이들에게 돈 벌 기회는 거의 없어요.


어떻게 보면 기택은 단순히 연이은 실패로 인해 무기력감에 빠진 게 아니라 하류층들에게 있어 최후의 정보원인 인맥조차 다 끊겨버렸기 때문에 뭘 할래야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볼 수 있어요. 기택이 일하기 싫어서 놀고 있다는 게 아니라는 거에요.


3.2. 충숙 (장혜진)  대비 = 연교, 대비 = 기정, 닮음 = 문광


3.2. 충숙 (장혜진) : 대비 = 연교, 대비 = 기정, 닮음 = 문광


충숙은 기생충 인물 구도에서 매우 재미있는 인물이에요.


3.2.1. 소재 : 은메달


영화 맨 초반부, 기택 가족이 살고 있는 반지하 집을 천천히 비쳐줄 때 은메달과 상장이 나와요. 충숙은 헤머 던지기 선수였어요.


스포츠는 '넘지 말아야할 선'을 지킬 것을 가장 엄격히 요구해요. 경기 규정상 '넘지 말아야할 선'이 일일이 다 꼼꼼히 정해져 있어요. 이걸 어기면 파울, 경고, 실격, 퇴장당해요. 게다가 체력 관리를 위해 일상생활에서도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지 말 것'을 엄격하게 요구해요.


이 관점에서 보면 충숙의 태도가 이해되요. 충숙이 넘지 말아야할 선을 안 넘기 위해 노력하는 것 보다는 충숙이 무심코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어버렸을 때가 확 튀어요. 박사장이 다송 생일을 맞아 캠핑간 날 기택 가족들이 박사장 집을 제 집처럼 여기고 노는 것도 충숙이 선을 넘은 행동을 한 거에요. 왜냐하면 충숙은 거기에서 입주 가사도우미로 일하고 있거든요. 기택, 기우, 기정에게 문을 열어주고 들어와서 마음껏 놀라고 한 것은 결국 충숙이에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기택 가족이 파멸을 맞이하게 한 선 넘기 또한 충숙이 저지른 것이에요. 빗속에 찾아온 문광을 연교 허락 없이 문 열고 안으로 들여주니까요.


돈까지 주며 남편 근세가 계속 지하실에서 살 수 있게 해달라는 부탁을 매몰차게 거절하는 장면은 선을 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충숙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 중 하나에요.


이 부분을 보고 같은 못 사는 사람끼리 너무 야박하게 군다고 해석할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근세가 계속 지하실에 머물게 해주면 충숙도 선을 넘어버려요. 문광과 근세에게 약점 잡힌다는 것이죠. 문광은 이미 쫓겨났어요. 처음에는 돈 주고 남편 근세가 머물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지만,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순간 이제 근세를 숨겨주는 사람은 충숙이 되어버려요. 문광과 근세가 이 사실을 모를까요? 문광은 잃을 게 없는 사람이에요. 이판사판으로 같이 죽자고 충숙에게 충숙이 지하에 자기 남편을 숨겨주고 있다는 사실을 연교에게 고자질하겠다고 협박할 수 있어요. 모든 걸 잃은 사람이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충숙이 모를 리 없어요. 아무리 선을 지키려 노력한다지만 충숙도 하류층이거든요. 당장 충숙이 들어온 방법이 상당히 악랄한 방법이었구요.


또한 한 가지 눈여겨볼 점은 충숙이 완력으로 기택을 제압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이 가족이 가족간의 정이 있는 이유는 그나마 일감이라도 구해오는 충숙이 기택이 막나가는 것을 완력으로 막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만약 충숙이 연교처럼 힘 없고 맹했으면 이 집은 이미 콩가루 집안 되었어요. 사업 망한 기택은 맨날 술 취해서 주정 부리고 행패부릴 거고, 기우와 기정은 이 망할 놈의 집구석 맨날 외치며 집 밖을 배회했겠죠.


재미있는 점은 이 영화에서 기택-기우, 박사장-다송, 연교-다혜가 닮음쌍인데 충숙-기정은 대비를 이룬다는 점이에요. 넘지 말아야할 선을 굳건히 지켜온 충숙의 삶과 그딴 거 아예 머리 속에 없는 기정의 삶은 대비를 이루어요. 충숙이 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크게 두드러지지 않아서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요.


3.3. 기우 (최우식)  닮음 = 기택, 대비 = 다혜, 대비 = 기정


3.3. 기우 (최우식) : 닮음 = 기택, 대비 = 다혜, 대비 = 기정


기우는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이라 할 수 있어요. 기우는 나름대로 계획도 세우고 성공하려고 노력해요. 그래서 얼핏 보면 기택과 대비인 것처럼 보여요. 그렇지만 아니에요. 기택은 젊은 시절 계획도 세우고 노력도 했어요. 비록 직접 언급되는 것은 반지하로 굴러떨어지게 된 계기인 대왕 카스테라만 나오지만, 여기저기에서 기택이 처음부터 그런 인간은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것들이 있어요. 기우의 미래가 기택이고, 기택의 과거가 기우에요.


3.3.1. 소재 : 수석


수석은 오직 기우만을 위한 소재가 아니에요.


영화 초반, 친구 민혁은 할아버지가 기우네 집에 갖다주라고 했다면서 수석을 들고 와요. 민혁은 기우의 부자 친구에요.


기택은 민혁이 준 수석을 보고 수석 볼 줄 아는 시늉을 해요. 그리고 민혁이의 할아버지가 수석을 갖다주라고 한 것으로 보아 기택은 민혁이네 할아버지와 안면이 있음을 알 수 있어요. 이것도 기택이 처음부터 무계획 인생을 살던 사람이 아님을 암시해요. 만약 처음부터 무계획 인생을 살고 사람만 좋은 사람이었다면 민혁이네 할아버지가 '선을 그어버렸겠죠.' 수석 안 줬을 거에요. 그 수석은 갖고 있으라고 주기는 했지만, 돈이 급하다면 팔아서 급전으로 써도 되기는 해요. 가치가 있는 수석이라는 거에요. 물론 그 수석을 팔 수 있을지는 위에서 언급한 전화기 문제 때문에 어렵겠지만요. 설령 판다고 해도 제 값보다 훨씬 못한 값 받고 팔아넘겼을 거에요. 물론 영화에서 기택 가족은 수석을 팔아치우지 않아요.


기우는 홍수로 집이 물에 잠겨갈 때 수석을 챙겼어요. 그리고 이걸 근세에게 주려고 해요.


기우의 이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신이 뭔지 알아야 해요. 미신이란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아는 것을 동원해 과학적 방법으로 설명한 것' 할 수 있어요. 조금 더 쉽게 이야기하자면 어떤 현상이 있어요. 이 현상이 왜 일어났는지 설명을 해야 하는데 자기가 구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동원해도 설명이 불가능해요. 그래서 자기가 구할 수 있는 정보를 총동원해서 나름대로 인과관계를 만드는 것이에요. 이 과정은 재미있게도 과학적인 연구 방법과 비슷해요. 단지 진짜 인과관계가 증명되었냐, 그냥 그럴싸하게 만들어내었냐의 차이일 뿐이에요.


가난한 사람일 수록 정보 획득이 어렵다고 했어요. 그래서 빈민층일 수록 이런 미신과 상징에 열광하고 맹목적으로 믿는 모습이 나타나요. 아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것이 말도 안 되는 헛소리지만, 미신과 상징에 열광하고 맹목적으로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게 나름대로 과학적 방법을 통해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는 것이거든요. 점집, 무당집이 왜 빈민가일 수록 많은지도 이것으로 간단하고 명쾌하게 설명되요. 무당이 가난하기 때문에 그 동네 사는 것도 있지만, 미신을 열광적으로 믿는 계층은 주로 하류층이거든요.


기우가 홍수로 집이 물에 잠겨갈 때 수석을 챙긴 것, 그리고 이걸 근세에게 주려고 하는 것 다 이 때문이에요.


인과관계를 따져보자면 기우가 박사장 집에 영어 과외교사로 들어갈 수 있었던 근본적 이유는 기우가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는 인생을 살았고 평소 행실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기정, 기택, 충숙이 순차적으로 그 집에 들어가 일하며 별 탈 없었던 이유 또한 그들이 행실이 나쁘지 않고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는 인생을 살았기 때문이에요. 들어간 과정을 떠나서 들어간 후 맡은 일은 잘 해내고 있었으니까요. 연교가 가난에 대해 너무 무지한 것도 있지만, 기택 가족이 성실하고 행실 바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면 결국 쫓겨났을 거에요.


하지만 기우는 엉뚱한 해석을 해요. 수석이 진짜 돈을 불러온다고 믿는 거죠. 기우는 자기 가족이 거기에서 일할 수 있음이 자기 본분에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임을 몰라요. 그걸 알 능력 자체가 없어요. 뭐가 진짜 소중하고 중요한 건지 파악이 안 된다는 거에요. 그걸 할 능력도 없구요. 단지 수석이 진짜 행운을 불러왔다고 믿을 뿐이에요. 그게 기우 기준에서는 제일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설명이에요.


이 믿음은 수석을 근세에게 갖다주려는 행동에서도 나타나요. 근세에게 갖다줘야 하는 것은 수석이 아니라 음식이에요. 하지만 기우는 근세도 그 돌을 받으면 일이 잘 풀릴 거라 믿어요. 그 대가는 근세한테 그 돌로 머리를 두 방 처맞고 머리에 문제가 생겨 약을 먹으며 살아야하는 인생이 되었다는 것이에요.


3.4. 기정 (박소담)  대비 = 충숙


3.4. 기정 (박소담) : 대비 = 충숙


이 영화의 중심에는 기정이 있어요. 기정은 기우와 달라요. 막 사는 인생이에요. 그게 과격한 비행, 탈선으로 나타나지만 않을 뿐이죠.


기우는 군대를 다녀와서 그렇다는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을 거에요. 분명히 있겠죠. 그러나 이 영화에서 기우가 군대 다녀온 것은 대학 입학 못 하고 25살 정도까지 최종학력 고졸에 백수로 살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언급될 뿐이에요. 그 외에는 아무 의미 없어요.


기우는 그래도 더 나아지려는 희망을 갖고 나름대로 계획도 세워서 실천해보려고 해요. 하지만 기정에게는 그딴 거 없어요. 기껏 계획 세운다는 게 당장 눈 앞에 뭔가 있으면 그것을 얻기 위한 방법 찾기 정도에요.


바로 이 대비되는 두 성격에서 기택의 과거를 유추해볼 수 있어요. 기정은 성장기에 계획하고 노력하면 된다는 걸 본 적도 겪어본 적도 없어요. 그래서 '넘지 말아야할 선'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어요. 반면 기우는 좋았던 유년시절이 있어요. 캅스카웃 활동했던 때는 좋았을 거에요. 집안 분위기 자체가 좋았겠죠. 이런 서로 다른 유년기의 경험이 두 인물 성격에 큰 차이를 야기하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기정이 미대에 떨어진 후 백수로 지내고 있다는 점도 기정과 기우의 성격차이를 두드러지게 만들어요. 아무래도 예술 계열은 일반인들보다 더 감성적, 감정적이고 즉흥적이며 순간의 영감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집중하는 경향이 있어요. 또한 '선을 넘는 것'이 어느 정도 권장되기도 하구요. 이를 우리는 '파격', '독창성'이라고 하죠. 선을 절대 넘지 말 것을 크게 강조하는 운동선수 출신 충숙과 선을 넘을 것을 크게 강조하는 예술계열 기정은 대비를 이룰 수 밖에 없어요.


기정은 처음부터 매우 위태로운 모습을 보여줘요. 기우 재학증명서 위조를 아무렇지 않게 해줘요. 여기에서 기정은 혼자 선을 넘는 짓을 해요. 바로 PC방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태우는 장면이에요. 기우, 기택, 충숙은 아직 선을 넘지 않았는데 기정은 이미 아무렇지 않게 혼자 선을 두 번 넘어버렸어요. 자신이 선을 넘는다는 것에 대한 특별한 생각 없이요.


기정은 윤기사를 쫓아내고 기택을 그 자리에 꽂아넣기 위해 박사장 차 안에 자신이 입고 있던 팬티를 벗어서 일부러 떨어뜨려놨어요. 기우, 기택, 충숙 모두 '인간이 갖고 있는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켜요. 하지만 기정은 아니에요. 과감히 속옷도 벗어서 던져버려요. 그리고 그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해요.


영화에서 기택 가족들이 한 번 선을 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점점 넘으면 위험한 선을 과감히 넘게 만드는 사람은 바로 기정이에요.


박사장 집에서 가족들이 술을 먹던 날, 이 장면에서도 기정은 가장 과격한 모습을 보여줘요. 남들은 그래도 얌전히 잔에 따라서 마시는데 기정은 혼자 위스키 병나발을 불어요. 박사장 집에서 놀고 잘 도망쳐야 하는데 기정은 그런 생각을 못 하는 거죠. 그냥 지금 술이 마시고 싶으니까 술을 마시는 거에요.


그리고 이 장면에서 꽤 중요한 장면이 등장해요. 기택이 자신들 때문에 쫓겨난 윤기사와 문광에 대해 걱정하자 기정은 자기 좀 봐달라고 소리쳐요. 만약 기우가 공부를 잘해서 기택과 충숙이 모두 기우만 바라봤다면 기우와 기정 사이는 매우 나쁠 거에요. 기정은 기우에 대한 열등감과 질투에 시달렸겠죠. 그러나 영화 중 그런 장면은 없어요. 오히려 기우와 기정은 둘이 사이좋게 잘 지내요.


이로 미루어봤을 때 기정이 어렸을 적부터 기택 가족은 경제적으로 어려웠다는 거에요.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으니 기택과 충숙 둘 다 기정에게 신경쓸 틈이 없었던 거에요. 영화 속 시간은 2018년 정도로 추정되요. 채널A 먹거리X파일 프로그램에서 대왕 카스테라를 비난한 방송은 2017년 3월에 방영되었어요. 마지막으로 대왕 카스테라가 망한 후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기정이 갑자기 막 나가는 인생관으로 바뀌었다? 이건 억지에요. 즉, 감독이 의도했든 안 했든 해석이 부드러우려면 이 집은 처음부터 못살 던 것은 아니었어요. 꽤 긴 시간에 걸쳐 기택이 노력할 수록 망해가는 과정을 거쳤던 거에요. 기정이 본 가족들은 망하는 모습 뿐이구요. 아버지는 뭐 해도 다 잘 안 되고 오빠는 대학을 4번이나 떨어졌어요. 기택, 충숙, 기우 모두 자기들 바빠서 기정한테 신경 못 써줬어요. 이것이 기정이 보고 자란 환경이에요.


이러한 성장환경 차이는 홍수로 집이 물에 잠긴 날과 그 다음날 태도에서도 기택, 기우와 차이를 보여줘요.


기정은 오물이 역류하는 변기 위에 쪼그려 앉아 담배를 태워요. 변기에서 오물이 역류하고 있는 것을 막아야 하니 그 위에 올라간 것이고, 기분은 당연히 더럽겠죠. 아무 것도 건지지 않아요. 그냥 체념한 모습이에요. 뭐라도 하나 더 건져보려고 발악하는 기택, 유일하게 건질 것이라 판단해 소중히 수석을 들고 나오는 기우 모습과 크게 대조되는 장면이에요.


다음날 박사장 집에서는 전혀 반대가 되요. 기정은 지하실 근세에게 무엇을 갖다 줘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어요. 바로 음식이었어요. 기정은 엄마인 충숙과 문광-근세 부부와 잘 타협해보자고 하며 분위기 완화를 위해 먹을 것을 들고 지하실로 내려가려고 해요. 이것이 실패하기는 했지만요. 전날 제일 정신 붕괴한 것 같은 모습을 보이던 기정이 다음날이 되자 지독한 악몽을 꾸고 일어난 것처럼 멀쩡하게 행동해요.


그러나 기택과 기우는 전날밤과 달리 박사장 집에 와서 정신이 나가버린 모습을 보여줘요. 전날밤 나름대로 이성적으로 행동하려 했던 기우는 다혜에게 자기가 정원 속 사람들과 어울리냐고 물어보지를 않나, 근세한테 수석을 가져다줘야 한다고 지하실로 내려가버리지를 않나 아주 이상한 모습을 보여요.


기택은 정신나간 상태에서 '냄새'로 인해 아예 눈이 뒤집혀버렸구요.


반지하 집이 침수된 날과 그 다음날인 다송 생일파티 날에 기정이 기택 및 기우와 아예 다른 모습을 보여준 이유는 간단해요. 위에서 언급했듯 기정에게는 이렇게 망하는 게 이 가족의 일상이거든요. 그냥 'X같은 일 또 일어났네'로 받아들이는 거에요.


넘지 말아야할 선에 대한 개념이 매우 희박한 기정의 결말은 당연히 사망이에요. 인생 막 살면 그 끝은 비명횡사라고 하잖아요.


3.4.1. 소재 : 팬티


기정은 태생부터 하류층인 인물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기택, 충숙, 기우와 달라요. 문제작 중 가장 문제적인 인물이지만 이게 과장된 게 아니라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하고 의미가 큰 인물이에요. 태어났을 때에는 그토록 가난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사춘기 시절 들어가기 전에 기택네 가족 모두 노력하고 계획 세워봤자 망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격이 아예 태생부터 하류층인 인물로 굳어버렸어요.


이것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윤기사를 해고시키기 위해 과감히 팬티를 벗어 차에 놓고 내리는 장면이에요. 기택, 충숙, 기우도 이 정도로 선을 넘지는 않아요. 부자고 가난하고 떠나서 정신없이 뛰쳐나가도 속옷은 챙겨입고 나가잖아요. 아무 데에서나 속옷을 벗을 생각 자체를 못 해요. 그런데 기정은 아무렇지 않게 속옷을 벗어던졌어요. 이는 기정에게 '최소한의 선'이라는 개념 자체가 희미하다는 거에요. 성공하려면 뭔 짓을 해도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다는 것이구요. 기정 본인도 미대 입시에 실패했고, 가족들이 실패하는 꼴만 계속 봐왔으니 이렇게 된 것이에요. 정해진 대로 해서는 답이 없으니 성공을 위해서는 나쁜 짓 가리지 않고 뭐든 하겠다고 하는 것이에요. 하류층에서 엄청나게 많이 보이는 생각이에요. 그걸 실행에 옮기냐 못 옮기냐의 차이이지, 진짜 엄청나게 많이 보여요. 왜냐하면 성공한다는 방법대로 해봤지만 해본 족족 실패한 경험 뿐이거든요.


당연히 박사장과 연교는 이게 기정의 짓이라고 생각할 수 없어요. 영화에서 박사장이 팬티를 발견하기 전에 기정이 팬티를 던져놓는 장면이 나왔으니 다 아는 것이지, 만약 이게 생략되었다면 영화를 본 사람들 모두 기정의 팬티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거에요. 박사장이 연교에게 윤기사가 마약 빨은 여자와 관계 가진 것 아니냐고 한 말은 너무나 당연한 말이에요. 그건 기택, 충숙, 기우라도 마찬가지였을 거에요.


영화 기생충 관람 연령 때문에 시끄러운 바로 그 장면. 박사장은 그 싸구려 팬티가 있으면 더 흥분될 거라고 해요. 연교는 자기는 마약이라고 외치구요. 이 장면은 박사장과 연교에게 몰입했을 때 해석과 탁자 아래 기택 가족에게 몰입했을 때 해석이 아주 다르게 나와요.


박사장과 연교는 선을 지키는 게 몸에 베어 있는 사람들이에요. 마약 하고 차 뒷좌석에서 스릴 넘치는 뜨거운 관계를 갖는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에요. 시도도 못 하죠. 하지만 너무나 궁금해요. 자신들은 선을 넘을 수 없는데 선을 넘어버린 그것에 대한 동경심도 생기구요. 그들은 그걸 직접 실행해볼 충분한 돈이 있어요. 그러나 할 수가 없어요.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부럽기까지 해요. 연교와 다혜가 첫 영어 과외 수업에서 다혜 손목을 덥썩 잡은 기우에게 홀딱 넘어간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박사장과 연교의 그 행위는 나름대로 자기들이 상상한 팬티 주인과 윤기사의 행위를 흉내낸 것이라 볼 수도 있어요. 텐트 문 열고 다송이 고개를 내밀면 바로 들켜버려요. 그래서 그런 식으로 스릴을 느끼며 관계를 가지며 팬티를 언급한 것으로 볼 수 있어요. 빈곤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빈곤에 대한 왜곡된 이해와 미화, 재해석과 비슷한 구조라 해석 가능해요.


빈곤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들 눈으로 보았을 때 막 사는 사람들이 도덕, 양심, 규칙, 질서, 법 같은 선을 무시하고 막 살며 느끼는 '무한한 자유'에 대해 부러워해요. 하지만 실제 막 사는 사람들은 무한한 자유를 누리는 게 아니죠.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사는 거죠. 그러나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어서 그렇게 산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무한한 자유를 누리는 삶'이라고 왜곡하고 미화하고 재해석해버리는 거에요. 폭우 속 다송의 텐트와 그 텐트 앞에서 아들 몰래 관계를 갖는 박사장 부부 장면은 의미하는 바가 상당히 깊어요.


하지만 기택, 기우, 기정 귀에는 이게 어떻게 들렸을까요? 박사장과 연교는 그 팬티가 기정 것임을 모르지만 기택, 기우, 기정은 그게 기정 것이라는 것을 알아요. 기택 귀에는 박사장 말이 '네 딸 기정이랑 한 번 뜨겁게 자보고 싶어. 진짜 죽일 거 같아'로 들릴 거고, 연교 말이 '너네 딸 진짜 미친X이야. 마약 빨고 있는 거 아냐?'로 들린다는 거에요.


관람 연령 때문에 시끄러운 장면은 박사장과 연교에 몰입해서 본다면 야하게 보여요. 그렇지만 기택, 기우, 기정에 몰입해서 본다면 정말 피가 거꾸로 솟고 너무나 치욕스럽고 수치스러운 장면이에요.


그나마 그 자리에서 기택이 눈 뒤집히고 뛰쳐나가지 않은 이유는 간단해요. 먼저 박사장 집에 몰래 들어와 진탕 놀다가 숨어 있는 처지였기 때문이에요. 두 번째로 아직 정신줄 놓을 충격적인 사건(기택의 반지하 집 침수)을 겪기 전이라 저들이 그게 기정의 팬티라는 걸 모른다는 사실을 잘 기억해내고 있다는 점이에요.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연기력이 가장 빛난 배우는 바로 기정 역을 맡아 열연한 박소담 배우라고 생각해요. '넘지 말아야할 선 개념 자체가 희박한 모습'을 너무 잘 연기했어요. 만약 기정 연기가 이상했다면 이 영화 전체가 다 망했을 거에요. 기정은 문제작인 이 영화에서 최고로 문제작다운 인물이거든요. 가난, 빈곤, 몰락을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자연스럽게 인정하고 있는 태생부터 하류층 모습을 정말 잘 보여줘요.


기택, 충숙, 기우를 보면 약간의 지원이 있다면 다시 재기하고 밝고 적극적인 마음 되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나 기정은 아예 마음 속 뿌리까지 하류층이다보니 대체 어디부터 도와주고 손대야할지 감도 안 잡혀요. 게다가 기정은 스토리로 봐도 가장 핵심 인물이구요.


이렇다보니 이 영화의 완성도는 기정 역할을 맡은 박소담 배우의 연기력과 직결되어 있었어요. 그리고 박소담 배우는 이 역할을 완벽히 잘 소화해내었어요.


Posted by 좀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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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와~ 인물 분석을 엄청 잘 하셨어요.영화를 안 본 사람이라 감독의 의도를 알 수 없지만 좀좀님 해석이 상당히 깊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살면서 느끼는 점이기도 하구요. 지독하게 가난해 본 적도 상류층인 적도 없지만 내 스스로나 다른 사람들 행동이나 생각하는 걸 보면 보이는 게 있어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좀좀님처럼 이해하지 않는 듯 해요. ㅡ.ㅡ;;

    2019.06.08 14:2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냥 제가 특이하게 보는 거 아닐까 싶기도 해요 ㅎㅎ;;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2019.06.29 23:34 신고 [ ADDR : EDIT/ DEL ]
  2. 대단하시네요...블로그내 다른글까지 찾아서 읽게만드시는 필력이세요ㅋㅋ두시간째 블로그 읽다 뒤로가기누르니 이리오네요 잘보고 갑니다 ㅎ

    2019.08.19 02:2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제가 쓴 글들 좋게 보아주셔서 매우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욱 좋은 글 쓰도록 많이 노력할께요!!!

      2019.08.19 11:00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