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가본 절은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외대앞역 한국외국어대학교 근처에 있는 절인 관불사에요.
"여기 절이었어?"
한국외국어대학교 옆에는 천장산이 있어요. 천장산 기슭을 돌아다니다 보면 커다란 불상이 지붕 위에 올라간 건물이 하나 있어요. 이것까지는 상당히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거기가 절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보기는 했어요. 그렇지만 아무리 봐도 그곳이 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그래서 경희대 근처에 있는 연화사는 가봤지만, 외대 근처에 있는 이곳은 안에 들어가볼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인터넷에서 서울의 절을 검색하던 중, 그곳이 진짜 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저는 지금까지 그곳이 당집 중 하나인 줄 알았어요. 아무리 봐도 그럴 거 같았거든요. 그러나 아니었어요. 당집이 아니라 엄연한 불교 절이었어요. 이름은 관불사였어요. 이걸 알고 많이 놀랐어요. 만약 그게 절이라는 사실을 진작에 알았다면 몇 번을 찾아갔을 거에요. 천장산 근처는 여러 번 갔거든요. 천장산 근처에 절이 없나 찾아보았지만 나오는 곳이라고는 관불사 뿐이었고, 관불사는 아무리 봐도 절 같지 않아서 계속 안 가고 있었어요.
'이번에 가봐야지.'
카메라를 들고 어디를 갈까 고민하던 차에 정말 잘 되었어요. 이번에 한 번 가보기로 했어요. 그동안 계속 궁금해하던 곳이었는데 진짜 절이었으니까요.
2019년 4월 17일. 카메라를 들고 외대앞역으로 갔어요. 길은 다 알고 있었어요. 이쪽에서 살았던 적이 있거든요. 게다가 이문동 달동네로 사진 찍으러 갔던 적도 여러 번 있고, 그 달동네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참 익숙한 길이었어요.
역시나 한국외국어대학교 근처는 변한 것이 거의 없었어요. 이건 경희대, 한예종 둘 다 마찬가지였어요. 이쪽은 10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거의 없는 시간이 멈추어버린 동네에요. 눈을 감고도 길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어요. 약간의 변화가 있기는 했지만, 그 미세한 변화는 무시해도 될 정도였거든요. 거의 모든 것이 다 그래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어요.
"이 동네 왜 이래? 드디어 재개발 들어가나?"
한국외국어대학교 후문을 넘어 천장산 쪽으로 가는 길이었어요. 이문삼성래미안1차 아파트를 넘어가자 풍경이 갑자기 바뀌었어요. 원래 이문삼성래미안1차 아파트를 넘어가면 풍경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이전에 보던 풍경과 확실히 다른 점이 있었어요.
천장산 기슭에 가까워지자 가장 먼저 저를 맞이해준 것은 다름 아닌 현수막이었어요.
찢겨진 현수막. 현수막에는 이문3재개발사업구역 정식 이주기간에 모두 제때 이주해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어요.
거리에 사람이 없었어요.
시간이 부서져버린 동네였어요.
일단 관불사부터 가기로 했어요.
거리에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어요. 사람 사는 동네가 아니었어요. 폐허였어요.
멀리 지붕 위에 올라가 있는 커다란 불상이 보였어요. 바로 관불사였어요.
사람들이 떠나간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는 길이었어요.
이제 계단을 올라가면 관불사였어요.
관불사 올라가는 길 옆으로도 마찬가지였어요. 사람은 없었어요. 모두 떠나버렸어요.
관불사 앞에 다다랐어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어요.
스님 한 분께서 나오셨어요. 스님께 인사를 드렸어요. 법당 내부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여쭈어보았어요. 스님께서 그러라고 하시며 불을 켜주셨어요.
천천히 사진을 찍었어요.
"차 한 잔 같이 하시겠어요?"
"예."
스님께서 제게 차 한 잔 같이 하지 않겠냐고 물어보셨어요. 그래서 스님과 커피 한 잔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관불사는 약 40여년 전에 여기에 생긴 절이었어요. 한국외국어대학교 학생들도 간간이 찾아왔었고, 불교 신자인 교수님도 찾아오던 절이라고 하셨어요. 근래에는 중국인, 베트남인 유학생들도 이 절을 찾아오곤 했구요.
스님께 여기 재개발에 대해 여쭈어보았어요. 스님께서는 얼마 전까지 거리에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는데, 뉴스에 보도가 되며 하루만에 쓰레기 싹 치워서 지금 이 정도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지금 여기에 남은 사람은 몇 없다고 하셨어요. 다 겨울에 떠나갔다고 했어요. 이 절도 재개발과 맞물려 사라질 거라 하셨어요. 스님께서는 석가탄신일까지 이 절에서 보내시고 원주 소림사로 옮겨가실 예정이라고 알려주셨어요.
이 절을 정면으로 보았을 때 오른쪽에 있는 집은 과거 중앙정보부의 별채처럼 사용하던 집이었다고 알려주셨어요. 그 집도 역시 허물릴 예정이었어요.
스님께서는 이 동네에 대해 매우 잘 알고 계셨어요. 이문동 달동네는 무거하 건축물이 엄청 많아요. 그래서 재개발이 꼭 필요한 지역이기는 한데, 여러 문제가 있었어요. 도로가 좁아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올 경우 교통 지옥이 펼쳐질 게 뻔했어요. 가뜩이나 한국외국어대학교 근처는 상습 정체구간으로 악명 높았어요. 지금은 그래도 외대앞역 지하차도가 만들어져서 조금 나아진 거지, 예전에는 버스도 밀리는 악명 높은 곳 중 하나였어요. 그래서 재개발을 하려면 도로도 넓혀야 하는데 도로를 넓히는 공사를 하자니 보상 문제가 만만찮았어요. 게다가 무허가 건물이 많은 동네라서 재개발 들어가면 건물은 보상 못 받고 토지 보상만 받는 경우가 많은데 집 한 채당 토지가 넓은 것도 아니라 그 돈 받고 서울 다른 곳에서 집 구해 살 엄두도 나지 않았어요. 집들이 7~8평 수준이었으니까요. 거기에 토지 보상 과정에서 사기 당하는 사람도 있고, 그 몇 푼 안 되는 돈 뜯어먹고 갈라먹자고 달려드는 사람들에 난리도 아니었대요. 평당 1200만원 쳐준다고 해도 안 팔던 사람들이 결국 보상 받을 때에는 평당 800만원 정도 받았던가 했대요. 당연히 재개발 비리도 있었고, 비리에 연루된 조합장 하나는 감옥 갔대요.
이제 이런 이야기는 다 과거 이야기가 되었어요. 이 동네 전체를 부수고 재개발한다고 하니까요.
스님께 불교 이야기도 듣고, 이 동네 이야기도 들었어요.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벽에는 벽보 두 장이 붙어 있었어요.
벽보 하나에는 아래와 같이 적혀 있었어요.
부탁합니다.
11월 11일 (일요일) 아침 7시 50분 이삿짐 차가 들어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다른 벽보에는 이런 내용이 인쇄되어 있었어요.
이주 최고문
이문3재정비촉진구역 내 거주자 여러분께 고지드립니다.
- 2018년 5월 10일 관리처분계획인가고시
- 이주예정기간(자진이주기간) 2018년 12월 29일 종료
- 조속재결신청자에 관한 손실보상금공탁 완료
위 사항에 해당하는 건축물의 점유자들은 현재 '불법 점유자'에 해당됩니다. (소유권 여부와 관계없이 현재 거주중인 모든 거주자 포함) 따라서 지체 없이 점유부동산을 이문3구역 조합에게 인도하고 이주하셔야 합니다.
관계법령에 따른 이주 및 인도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당 조합은 의무불이행자를 상대로 아래와 같은 절차를 포함한 이주를 촉진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1. 미 이주로 인하여 발생한 막대한 재산상의 손해에 관한 배상 청구 [대법원도 2018.7.12 선고한 2014다88093 판결에서 행정소송을 이유로 이주를 거부한 점유자(조합원)에게 손해배상책임을 인정]
2. 권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용 수익함으로써 얻은 부당이득의 반환 청구
3.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 제95조의 2 별칙 규정에 기한 형사고소
점유자 여러분께서는 위와 같은 사실을 감안하시어 지체 없이 점유부동산의 인도의무를 이행하심으로써 조합과의 불필요한 소송 및 고소 조치 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적극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
2019년 2월 20일
이문3재정비촉진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
나무는 아는지 모르는지 올해도 푸른 이파리를 새로 돋아냈어요.
길을 따라 계속 걸어갔어요.
2019년 4월 17일 오후 1시 17분. 이문동 달동네 입구 앞에 도착했어요.
"이문동 달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