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해는 뜨겁게 내리쬐고 있었어요.
"사진 좀 찍자!"
해를 보고 짜증을 내고 싶었지만 눈이 너무 부셔서 고개를 숙이고 중얼거렸어요.
원래 사진을 잘 못 찍는데 하늘까지 정말 안 도와주는 날. 하늘을 찍으면 건물이 검게 나오고, 건물을 찍으면 하늘이 하얗게 날아가버리는 그런 날. 게다가 시간은 낮 12시 조금 넘어서 해를 피해 사진을 찍을 방법도 마땅찮았어요.
마음 같아서는 저 아저씨가 그리는 그림같은 사진을 찍고 싶은데 현실은
가뜩이나 못 찍는데 더 안 나와...
친구와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많이 오고 가고 있었어요.
앞의 문은 분명히 새로 만든 조형물일텐데 오래된 건물들과 너무 잘 어울렸어요.
관광하러 온 사람도 많고 예배드리는 사람도 많았어요. 사람은 많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돌아다니고 구경하는데 방해될 정도로 많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적당히 많이 있어서 스산하고 버려진 곳을 다닌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아직도 살아있는 지역을 돌아다닌다는 느낌이 들어 좋았어요.
이건 에치미아진 찍은 사진 중 그나마 가장 잘 나온 사진.
에치미아진은 구경할 수 있는 곳도 넓지만 구경할 수 없는 곳도 꽤 있어요.
"저기는 들어가 보아도 되는 곳인가?"
건물로 들어가 계단을 올라가는데 사제분이 여기는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고 해서 밖으로 나왔어요.
"저거 뭐지?"
창문 옆에 쌓여있는 돌멩이들. 왠지 사람이 벽에 기대어 쉬는 것 같아 보였어요.
"센스 있는데?"
다가가서 보니 얼굴도 있었어요. 왠지 만사 귀찮고 그저 푹 쉬는 듯한 모습. 더운 낮, 낮잠 한 숨 푹 자는 듯한 모습을 창문 앞에 만들어놓은 것이 매우 흥미로웠어요. 사제들이 장난으로 만들어놓은 걸까요?
돌아다니는데 더워서 다시 교회 안으로 들어갔어요.
확실히 그늘로 들어오니 시원했어요. 교회 의자에 앉아 쉬다가 케말 아저씨와 만나기로 한 시간이 되어 교회 밖으로 나왔어요.
에츠미아진의 사제분들.
케말 아저씨와 다시 만나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볼 것이 몰려있는 곳에서 조금 더 걸어가면 성 가야네 수도원 St. Gayane Monastery 가 있어요. 여기는 630년에 지어졌고, 1652년 다시 지어진 곳.
이곳을 보고 예레반으로 돌아가기로 했어요. 택시비가 저렴했기 때문에 그냥 귀찮게 마슈르트카 정거장 찾아다니지 않고 바로 택시를 타기로 했어요.
승용차를 한 대 찾았어요.
"얼마에요?"
"5000디람"
"왜요? 우리 여기 올 때 1200디람 냈는데요?"
"저는 택시이니까요."
기사는 차에서 택시 표지판을 차 안에서 꺼내 위에 올려놓았어요. 셋 다 어이가 없어서 안 타겠다고 했어요.
다른 택시를 찾아 돌아다니다 1500디람에 가기로 했어요. 돌아오는 길에는 그냥 쿨쿨 잤어요.
택시가 예레반 블루 모스크 앞에 도착했어요. 케말 아저씨와 같이 돌아다닐까 했는데 케말 아저씨께서는 예레반을 둘러보고 싶다고 하셨어요. 우리는 예레반을 둘러볼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케말 아저씨와 헤어져 지하 상가에서 케밥을 하나 사 먹고 게미니 카페로 갔어요.
차를 마시며 더위를 식히다 헌책방에 갔어요. 역시나 괜찮은 책이 보여서 책을 몇 권 사고 숙소로 다시 돌아왔어요. 물론 책을 읽을 러시아어나 아르메니아어 실력은 전혀 없었지만 그래도 지금 아니면 살 수가 없는 책들이라 일단 구입하고 한국 가서 공부를 한 후 읽을 생각이었거든요.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본 석상. 감기 걸렸나? 입을 가리고 있는데 눈은 웃고 있었어요. 옷을 보니 여자를 조각한 것이었어요.
숙소에 책을 놓고 다시 나왔어요. 공화국 광장으로 가서 우리가 가보지 않았던 길로 한 번 걸어보았어요.
"돌아가자."
특별히 인상적인 것은 없었고, 공화국 광장에서 멀어지니 사람들이 별로 안 보였어요. 그래서 돌아가서 쉬기로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