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뜨거운 마음 (2011)

[아르메니아 여행] 뜨거운 마음 - 24 아르메니아 귬리

좀좀이 2012. 6. 14.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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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악몽이야!



이거 꿈이지? 나 지금 악몽을 꾸고 있는 거지!


볼 것이 몰려있다는 이곳은 정말 볼 것이 없었어요. 게다가 갑자기 비가 무섭게 퍼붓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은 다들 비를 피하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지만, 우리들은 일단 숙소를 찾아야 했어요. 론니플래닛에 나온 정보에 의하면 푸슈킨 거리에 숙소가 두 곳 있었어요.


억수 같이 퍼붓는 비를 피하며 일단 길을 가는데 소년들이 우리들을 보고 웃으며 중국인이라고 그랬어요. 그래서 불러서 우리는 한국인이라고 한 후, 푸슈킨 거리가 어디냐고 물어보았어요. 소년들은 우리가 걷는 길이 푸슈킨 거리라고 했어요.


이게 어디를 봐서 푸슈킨 거리냐?


포장도로라고 절대 봐 줄 수 없는 도로에 길가에 늘어선 집은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집들. 숙소가 있다고 나왔는데 숙소가 있게 생기지를 않았어요. 지도를 보고 방향을 잘못 가고 있는 거 아닌가 했지만 분명히 방향이 맞았어요. 비는 엄청나게 퍼붓는데 길이 숙소가 있게 생기지를 않았어요. 정말 이게 제대로 된 동네인지 달동네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 그나마 다행이라면 '푸슈킨 거리'라는 팻말을 보기는 했다는 것이었어요.


결국 원래 머무르려고 했던 홈스테이는 포기했어요. 도저히 찾을 방법이 없었어요. 날이라도 좋으면 어떻게 물어가며 찾아갈텐데 비가 퍼부어대서 어떻게 할 방법이 전혀 없었어요. 갈수록 비가 그치는 게 아니라 더 거세졌는데 예레반에서 날이 워낙 좋아서 우산을 놓고 왔기 때문에 돌아다니며 찾는 것은 불가능. 그래서 사람들이 보이면 무조건 호텔 어디냐고 물어가며 길을 돌아다녔어요.


비를 맞아가며 사람들에게 무조건 '호텔 어디 있냐'고 물어가며 걸었는데 그나마 도로 상태가 괜찮은 길이 나왔어요. 그리고 비가 조금 많이 약해졌을 때 극적으로 호텔 한 곳을 찾았어요. 5성급 호텔이었고 이름은 Varatur hotel이었어요. 가격은 무려 1박에 25000 디람. 엄청나게 비싼 가격이었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옷은 땀과 비로 흠뻑 젖어서 빨리 말려야 했어요. 1박만 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가져온 것도 없었거든요. 게다가 호텔이라고는 여기 하나밖에 없었어요. 주변을 둘러보고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지만 호텔이라고는 오직 Varatur hotel 뿐이었어요.


호텔에 들어가자마자 다시 비가 무섭게 퍼붓기 시작했어요.


"잠이나 잘란다."


할 것은 아무 것도 없었어요. 5성급 호텔이라 좋은 것은 아침 제공과 더불어 세면실이 정말 너무나 좋았다는 것. 샤워를 하고 바로 침대에 누워 잤어요.


얼마나 잤는지 몰라요. 친구가 저를 깨웠어요.


"비 와?"


눈을 뜨자마자 친구에게 물어본 것은 날씨였어요.


"이제 그쳤어. 저녁 먹어야지."


이미 마음은 패잔병. 그래도 몸은 아직 패잔병까지는 아니었기 때문에 저녁을 먹으러 나왔어요. 아침 8시에 호스텔에서 아침을 먹은 거 외에는 제대로 먹은 게 아무 것도 없었거든요. 기껏해야 음료수 정도 마셨어요.


하지만 정말 재수가 없는 날은 모든 것이 안 된다고, 처음 간 곳은 호텔 리셉션에 있는 아주머니께서 알려주신 호텔 옆에 있는 Vanatur 식당. 10시까지 한다고 했는데 우리가 나온 시각은 이미 9시가 넘은 때였어요. 식당에 달려갔는데 안된다고 했어요. 호텔 옆 연회장에서 결혼식이 있었는데 경찰들이 바글바글 몰려와 있었어요. 아마 동료 경찰의 결혼식이 있고, 그거 때문에 식당을 통째로 빌려 하객을 받는 듯 했어요.  그나마 몇 없는 다른 식당들은 문을 다 닫았고, 거리에는 사람들이 없었어요. 한참 걸어서 겨우 발견한 식당. 그나마도 문을 닫으려고 하는 찰나에 우리가 들어갔어요. 우리가 자리에 앉아 음식을 주문한 후, 다른 손님들이 들어왔는데 그 손님들은 영업 끝났다고 돌려보냈어요.


우리가 시킨 것은 카밥과 포카차. 포카차는 양 끝이 툭 튀어나온 타원형 빵 위에 날계란을 올린 빵이에요. 날계란 아래에는 다진 양고기가 있고, 날계란은 빵과 양고기의 열기로 익어요. 양고기와 비벼서 먹어도 되고, 그냥 먹어도 되요.


"이거 정말 맛있다!"


정말 감격의 포카차. 우리 때문에 식당 문을 닫지 않고 기다려주는 그분들께 정말 감사했고, 너무나 맛있고 신기한 포카차에 감동했어요. 우리가 먹는 동안 청소와 정산이 진행되고 있었어요. 가게에 음료수도 남아 있지 않아서 급히 빵만 먹고 계산하고 나왔어요. 너무 배가 고픈 것도 있었고, 가게가 문 닫을 시간이 넘었는데 우리 때문에 문을 못 닫고 있는 것도 미안했거든요.


저녁을 먹고나서 시계를 보니 10시가 넘었어요. 그래도 그냥 들어가기는 아쉬워서 조금 구경이나 하고 가자고 했어요. 그래서 다시 Azatutyan 광장까지 갔지만 아무 것도 없었어요. 정말 과장 하나 안 보태고 볼 게 아무 것도 없었어요.


그나마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이라면 그 야심한 시각에 한 여성이 교회에 기도를 드리기 위해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는 것이었어요. 그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깊은 신앙심이 느껴졌어요. 폐허 같은 이 도시에서 밤 늦게 기도를 드리기 위해 교회로 들어가는 여성의 모습은 소설 속 한 장면 같았어요.


호텔로 들어가 잠을 청하고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났어요.



호텔에서 바라본 귬리. 실제로는 이것보다 더 심해요. 대체 왜 이런 곳이 아름답다고 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어요.


다행히 아침에는 날이 맑았기 때문에 빨리 아침을 챙겨먹고 밖으로 나왔어요.


"빨리 돌아가자."


친구가 빨리 돌아가자고 했어요. 저도 같은 생각이었어요.



교회는 아침에 본다고 화려해지지 않았어요.



지진탑 주변, 보이시나요? 1988년에 지진이 발생했는데 아직도 폐허에요.


그래도 온 게 아까워서 다른 길을 돌아다녀 보기로 했어요.




이놈들의 미적 감각은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귬리가 아름답다구요? 인상적이기는 했어요. 지진 때문에요. 한국에서는 지진의 피해를 직접 보기가 어려워요. 그런데 귬리는 정말 1988년에 발생한 지진이 마치 박물관 속 박제처럼 그대로 남아 있었어요.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는 아마 아름다웠을 거에요. 지금 이 정도라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과거에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보여주는 것이겠죠. 그러나 지금은 전혀 아름답지 않아요. 거기 가서 본 것은 '지진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였어요. 그리고 '아르메니아는 얼마나 가난한 나라인가'였구요. 1988년에 발생한 지진으로 인한 피해를 아직도 제대로 복구하지 못한 곳이 바로 귬리에요. 그때 지진이 얼마나 심했는지 정말 잘 볼 수 있어요. 지진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느끼기에는 참 좋은 도시죠. 아무리 구 소련 도시들이 스산하고 음침하다 해도 그건 겨울의 이야기. 여름에는 그렇지 않아요. 하지만 해가 쨍쨍 뜨겁게 내리쬐는 아침에 조차 귬리는 스산하기 그지 없었어요. 마치 무슨 폐허를 걷는 기분이었어요. 아니, 폐허를 걷는 게 맞죠. 아직도 복구중이었으니까요.


아제르바이잔에서는 사람들이 벌떼 같이 모여서 일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귬리에서는 큰 건물 하나 보수하는데 사람 둘 셋이 달라붙어 있었어요. 그러니 당연히 복구가 더딜 수밖에 없죠. 제대로 된 건물이라고는 딱 하나 보았네요. 시청이요. 그 외에는 전부 부서지고 낡은 건물 뿐이었어요. 낡기만 한 게 아니라 지진으로 부서지기까지 했어요. 정말 너무 아름다워서 빨리 떠나고 싶다는 마음만 간절히 들게 만드는 도시. 대체 이게 어디를 보아서 아르메니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라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차라리 그리 아름다운 것을 아르메니아에서 못 찾았다면 예레반에서 조지아 국경까지 걸어가라고 하고 싶네요. 아르메니아에 아름다운 곳 정말 많아요. 여행 책자에 나오지 않은 아름다운 풍경들 흔하고 흔해요. 그냥 발길에 채이는 돌멩이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널려있는 나라가 아르메니아에요. 하지만 귬리만은 아니에요. 여기는 풍경이 특별히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도시가 예쁘고 매력적인 곳도 아니에요. 굳이 남 자연재해로 망한 꼴 보고 싶다면 가 보아도 상관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전혀 갈 곳이 아니에요. 그저 아르메니아에서 큰 도시들 중 하나라는 것 정도? 그 이상 관광으로써의 의의를 두기 어려워요.






길을 가다 본 인형극 안내. 이것 조차 사람 할 말을 잃게 만드는 힘이 있어요.



무너져버린 교회 옆에는 하얀 양털이 널려 있었어요. 이것은 이곳도 사람이 산다는 증거. 지진이 나도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죠. 놀라울 것 없어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귬리는 아르메니아에서 큰 도시 중 하나니까요.


차를 타기 위해 시장으로 가는 길에 사진을 찍을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왜냐하면 정말 찍을 게 없었으니까요. 친구가 빨리 가자고 조르는데 그래도 온 김에 시장까지는 보고 가자고 했어요.








시장을 보고 바로 버스 터미널에 가서 예레반으로 가는 마슈르트카에 올라탔어요.


지진의 참상을 보았어요. 뜨거운 여름 속에서 거센 비가 멎고 쌀쌀한 밤 공기를 마셨어요. 야심한 밤, 폐허가 된 교회로 기도를 드리러 들어가는 여자를 보았어요. 그 장면 하나하나가 합쳐져 소설 같은 장면을 머리 속에서 그리고 있었어요.


이번 여행 최악의 코스였던 이곳. 이곳을 떠나는 차 안에서 창밖을 보며 다짐했어요.



다시는 여기 안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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