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우리나라 중부권에 있는 24시간 카페를 100곳 가 보았어요.
이건 3년 후에나 다시 해야지.
아직도 안 가본 24시간 카페가 많이 남아 있었어요. 특히 서울의 남동부는 아예 건드려보지도 않았어요. 여기는 24시간 카페가 매우 많은 곳인데요. 제가 열심히 저 멀리 천안, 청주, 춘천에 있는 24시간 카페를 찾아다니면서도 강남을 포함한 서울 남동부에 있는 24시간 카페에 가지 않았던 것에는 이유가 있었어요. 일단 강남을 제가 잘 모르고, 의정부에서 가기도 불편했어요. 게다가 24시간 카페 100곳을 채우는 것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계속 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하나도 안 급했어요. 아주 나중에 100곳 다 채우고 시작해도 충분할 것 같았어요. 솔직히 24시간 카페 100곳 채우는데 강남쪽 포함시키면 난이도가 매우 쉬워지는 것도 있었구요. 음료 시켜서 그걸 다 마시는 게 문제지, 가는 것만 한다면 꽤 많이 다닐 수 있었어요.
현재 서울의 사회, 문화, 경제의 도심은 강남. 완벽히 바뀌어버렸어요. 눈 뜨고도 코 베인다는 서울은 강남이지 더 이상 명동, 종로가 아니에요. 그래서 거기 있는 24시간 카페도 가볼 필요가 있기는 했지만, 갈 의욕이 하나도 없었어요. 왜냐하면 거기는 앞으로도 계속 번영할 동네니까요. 강남 집값은 조정은 거치겠지만 죽어도 폭락은 못해요. 왜냐하면 그러면 경기도도 망하거든요. 여기저기 다녀보니 알겠더라구요. 전국의 24시간 카페가 다 없어진다 해도 강남에는 거의 마지막까지 남아 있을 거에요. 그래서 거기야 나중에 가지 하고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어요. 그러다 100곳 채우니 올해는 쉬고 3년 뒤에나 다시 24시간 카페를 돌아다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올해는 제가 안 가본 24시간 카페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고 있었지만 새로운 곳을 안 가고 있었어요.
"카페 가서 글 써야겠다."
한밤중. 너무 더웠어요. 덥기만 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어요. 방바닥에 앉아 밥상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글을 쓰려니 집중이 하나도 안 되었어요. 글을 쓰기는 써야했기 때문에 이렇게 멍하니 있어서는 안 되었어요.
할리스 커피나 갈까?
야심한 시각에 죽치고 있으며 책 보고 글쓰기에는 할리스커피가 좋은 편이에요. 모든 지점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이렇게 책 보고 글 쓰며 오랜 시간 보내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놓거든요. 그때 마침 떠오른 것이 있었어요.
종로에 있는 24시간 카페 갈까?
심야시간에 글 쓰러 24시간 카페 갈 때는 고려할 점이 두 가지 있었어요.
먼저 가는 길이 너무 힘들어서는 안 되요. 이러면 카페 가서 멍때려요. 특히 여름에 그런 곳 가면 가는 길에 육수를 쫙 빼버리기 때문에 카페 들어가면 잠이 마구 쏟아져요.
두 번째로 너무 멀어서도 안 되요. 카페에서 집에 돌아올 때는 어쨌든 피곤한 상태에요. 이 피곤한 상태로 집에 돌아오는 것도 고려해야 해요. 특히 환승은 없을 수록 좋아요.
종로에 있는 24시간 카페는 이런 점에서 제가 밤에 책 보고 글 쓰러 갈 수 있는 최고로 먼 곳이었어요. 의정부에서 108번 버스를 타고 종로5가 효제초등학교 정류장에서 내려 조금 걸어가면 되니까요. 돌아올 때 정 피곤하면 지하철 1호선 타고 집에 돌아오면 되구요.
게다가 종로3가 쪽에는 24시간 식당이 하나 있었어요. 여기에서 밥을 먹고 카페 가서 책 보고 글 쓰다 아침에 집으로 돌아오면 딱 맞을 거였어요.
집에서 나왔어요. 108번을 탔어요. 여기까지는 좋았어요.
버스에 김치와 초장 냄새를 지독하게 풍기는 아저씨가 올라탔어요. 이때 저는 눈치를 채고 버스에서 내렸어야 했어요. 그러나 눈치없이 버스를 타고 계속 갔어요.
글을 쓰러 가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많이 걸을 필요가 없었어요. 최대한 종로3가에 가까운 정류장에서 내려야 했어요. 108번 버스 기준으로 그 정류장은 바로 종로5가 효제초등학교 정류장이에요. 그런데 뭔가 느낌이 왔어요. 그래서 동대문에서 내렸어요. 맞아요. 그 느낌이란 이 일정이 망할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이때만 해도 그 느낌이 뭔지 모르고 그냥 동대문에서 내려버렸어요.
동대문에서 내렸어요. 종로3가까지 걸어갔어요. 뜨뜻미지근한 공기가 제 얼굴을 감쌌어요. 제가 가려던 24시간 식당은 문을 닫았어요. 망했어요. 밥부터 먹어야 했어요.
종각에 있는 24시간 식당 갈까?
종각에 제가 간간이 가던 식당이 하나 있어요. 거기도 24시간 식당이에요. 그래서 거기를 향해 걸어갔어요. 땀이 흐르기 시작했어요. 땀이 나기 시작하자 금새 소나기처럼 쏴아아 흘러내리기 시작했어요. 무지 더웠어요. 밥이고 나발이고 일단 시원한 공기를 쐬고 싶었어요. 편의점으로 들어갔어요.
뭔 얼어죽을 밥이야?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골라서 까먹었어요. 밥알을 아그작 아그작 씹어먹고 반찬을 후루룩 후루룩 들이마셨어요. 진짜 그렇게 먹었어요. 뭘 먹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냥 후딱 먹어치웠어요. '에어컨 바람 쐬고 밥을 그렇게 먹으니 정신이 돌아왔어요'가 아니었어요. 뭐에 홀린 것 마냥 종로에 있는 24시간 카페 말고 얌전히 노원에 있는 24시간 카페를 가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종로에서 노원을 가려면 동대문까지 가서 심야버스를 타야 했어요. 심야버스는 편성 자체가 매우 적기 때문에 종로에서 동대문까지 다시 걸어가야 했어요. 바로 직전에 동대문에서 종로까지 걸어오며 완전 땀범벅 갓 건져낸 샤브샤브 고깃조각처럼 되었는데 그 길을 다시 걸어가기로 결심한 것이었어요. 결심했기 때문에 걸어갔어요. 동대문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어요. 심야 버스 노선을 살펴보았어요. N13 버스를 타면 노원역으로 갈 수 있었어요. 두타쪽 정류장에서 건대 입구 가는 심야버스를 타기 때문에 당연히 노원 가기 위해서는 거기에서 버스를 타도 될 거라 생각했어요.
한참 기다렸어요. 검은 히잡을 걸친 아랍 여자들과 아랍 남성이 자기들끼리 아랍어로 떠들며 자기들끼리 장난치고 있었어요. 동대문 야시장을 다녀온 모양이었어요. 그 아랍인들도 저와 같이 버스를 한참 기다리다 N13 심야버스가 오자 버스에 탔어요.
몇 정거장 지나갔어요. '약수역' 이라는 안내방송을 듣는 순간 유리창에 붙어 있는 버스 노선을 보았어요.
"어? 이거 강남 가는 버스잖아!"
저는 두타쪽 정류장이 아니라 DDP쪽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야 했어요. 버스 방향이 완전 반대였어요.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버스에서 내리는 것이 정상이에요. 그러나 이때는 심야시간.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동대문도 아니고 약수역에서 붕 떠버려요.
24시간 카페의 존재를 몰랐을 때였다면 진짜로 약수역에서 뛰쳐내려 한밤중에 서울의 밤거리를 걸었을 거에요. 아마 첫 차가 열릴 때까지 의정부를 향해 걷고 또 걸었을 거에요. 그러나 이제 '24시간 카페'라는 것을 알아요. 강남이면 24시간 카페가 많이 있어요. 아무 카페나 하나 들어가서 첫 차가 열릴 때까지 죽치고 있다가 첫 차 타고 노원역으로 가기로 했어요.
이때까지만 해도 이 글을 쓸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한밤중에 거리를 걸어다니는 것보다는 얌전히 카페 들어가서 시간 죽치고 보내다 첫차 열렸을 때 원래 가려던 카페 가서 글 쓰고 책 보다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 뿐이었어요.
논현역 버스 정류장 쪽에 24시간 카페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강남역 버스정류장에서 내렸어요. 강남역 버스정류장 근처에 있는 것이라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아니었어요. 강남역 버스 정류장 근처에 제가 알고 있던 24시간 카페가 안 보였어요. 버스 타고 오면서 분명히 환히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논현역을 향해 걸어올라가기 시작했어요.
당연히 글 쓸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새벽 3시 반 강남역에서 논현역으로 이어지는 밤거리 풍경 사진을 단 한 장도 찍지 않았어요. 이때 머리 속에서 든 생각이라고는 오직 지난번에는 이태원에서 버스 잘못 타서 강남역 갔는데 이번에는 동대문에서 버스 잘못 타서 강남역 갔다는 것 뿐이었어요.
카페 입구도 사진을 안 찍었어요. 글 쓸 생각이 없었으니까요.
카페 안으로 들어가서 음료를 주문했어요. 자리를 잡고 앉았어요. 새벽 4시였어요. 라디오를 들으며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앉은 자리가 너무 추웠어요. 냉방을 조금만 줄여주면 안 되겠냐고 직원에게 물어봤어요. 직원은 원격제어라 제가 있는 곳만 끌 수는 없고 끄려면 전체를 꺼야 하는데, 그러면 다른 고객들이 항의할 거라 했어요. 그러면서 제게 에어컨 바람이 가지 않는 다른 자리로 옮기는 것은 어떻겠냐고 물어보았어요. 콘센트가 있는 좌석 중 에어컨 바람 없는 자리가 있냐고 물어보았어요. 직원이 알려주었어요. 그 자리로 옮겼어요.
'이왕 온 거 여기도 글 써?'
전혀 계획에 없던 24시간 카페 돌아다니기. 하지만 어쨌든 아주 야심한 시간에 와버렸어요. 단 한 번도 심야시간에 안 가본 카페였어요. 이때서야 이 카페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숙명까지는 아니지만 의도치 않게 24시간 카페 새로운 곳을 하나 오게 되었어요. 설마 아까 동대문에서 내릴 때 느꼈던 그 느낌은 다시 24시간 카페 돌아다니는 걸 시작하라는 느낌이었던 걸까? 아니에요. 그건 이날 제 일정이 아주 더럽게 꼬일 거라는 것을 경고하는 느낌이었어요.
이건 분명히 의정부 자취방에서 출발해 여기까지 올 때 계속 듣던 노래가 문제였던 거야.
의정부 자취방에서 출발해 할리스커피 신논현역점까지 오는 동안 The Killers 의 Spaceman 이라는 노래를 무한반복으로 들으며 왔어요.
That was the turning point
그래. 종로에서 밥 먹고 뜬금없이 동대문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돌렸지.
That was one lonely night
나 홀로 밤거리를 땀 뻘뻘 흘리며 걸었어.
...
The star maker says, "It ain't so bad"
그래. 나쁘지 않은가?
The dream maker's gonna make you mad
카페 가서 밤새 글 쓰는 꿈을 꿨다가 나는 미쳐버렸지.
The spaceman says, "Everybody look down
우주인은 경고했어. 동대문에서. 바로 그 느낌으로.
It's all in your mind"
나 혼자 결정하고 벌인 짓. 그 결과는 전혀 계획에 없던 엉뚱한 신논현역 24시간 카페에 앉아서 나는 왜 여기 있는지 의문인 나.
이렇게 해서 이번에 가본 24시간 카페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 지하철 9호선 신논현역에 있는 24시간 카페인 할리스커피 신논현역점이에요. 할리스커피 신논현역점에서 지하철 7호선 논현역은 걸어서 갈 수 있어요. 그리고 논현역에 24시간 카페가 없기 때문에 신논현역에 있는 24시간 카페도 논현역에 있는 24시간 카페라 봐도 되요.
할리스커피 신논현역점 주소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강남대로 478 제우빌딩 1, 2층이에요. 지번 주소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논현동 200 이에요.
여기 들어갈 때 직원이 저를 보자마자 바로 인사를 했어요. 제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새벽에 오는 모든 손님들에게 다 들어오는 것을 보자마자 인사를 했어요. 다른 손님의 주문을 받는 중에도 손님이 계단을 올라오는 것을 보면 매우 좋은 타이밍에 바로 인사를 했어요. 근무태도가 매우 좋은 직원이었어요.
내부는 이렇게 생겼어요.
매장 계산대를 기준으로 오른쪽에는 책 보고 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어요.
오른쪽은 이렇게 수다를 떨기 보다는 각자 할 거 하며 시간 보내기에 어울릴 것 같은 공간이었어요. 할리스 커피의 장점 중 하나에요.
계산대 왼쪽에는 이렇게 잡담하고 앉아서 노닥거리기 좋은 자리들이 모여 있었어요.
할리스커피 신논현역점은 2층에 위치해 있고, 단층 구조에요. 내부에는 흡연실이 있어요.
흡연실에서 아쉬운 점이 하나 있었어요. 의자처럼 사용하는 쇠기둥 두 개 모두 너무 벽에 바짝 붙어 있었어요. 그래서 매우 불편하게 앉아야 했어요. 한 뼘 정도 더 안쪽으로 당겨서 설치했으면 훨씬 나았을 거에요. 매우 어정쩡하게 기대어 앉아야 했어요.
위 사진은 입구에서 2층 매장으로 올라가는 계단이에요.
입구에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렇게 할리스 커피의 광고 멘트가 네온사인으로 설치되어 있었어요.
서울 강남 논현역 및 신논현역에서 24시간 카페를 찾는다면 할리스커피 신논현역점이 있어요.
p.s.
그리고 이 글은 24시간 카페 탐방기 시리즈 중 최초로 카페에서 쓴 글이 아니라 카페에서 다 나와서 집에 돌아가는 길에 버스에서 쓴 글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