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여행기/오늘의 잡담

오늘의 잡담 - 작년 여름 이야기에 이어서

좀좀이 2018. 6. 7.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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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시제와 상은 아예 다른 개념이다. 그냥 다른 거다.


02


작년 8월 초. 재미있는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길을 걷고 있었다. 그날, 나는 인천에 있는 24시간 카페에서 밤을 샌 후 주안역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풀리지 않는 문제였다. 순간 이렇게 풀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 풀렸다고 생각한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틀 후. 결국 풀렸다. 내가 집중했던 문제의 핵심이라 생각했던 것에서 어느 순간 갑자기 탈출하게 되었고, 그러자 푸는 방법이 보였다.


그 문제를 풀자 그간 못 풀 거라 생각했던 것이 줄줄이 풀리기 시작했다. 이건 존재할 수가 없을 거라 생각했던 것들이었다. 정말 경악했다. 그 하나가 풀리자 아주 술술 풀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아예 영원히 안 풀릴 거라 생각했고, 그래서 아예 생각도 하지 않던 것들이 말이다. 하지만 이것에 대한 반응은 보는 사람들 모두 최악이었다. 진지하게 그런 건 현실성이 없으니 지금 하는 거나 잘 하라고 했다.


그 문제와 답은 지금 쓰고 있는 소설에서 써먹을 중요한 소재 중 하나였다. 그런데 모두의 반응이 최악으로 돌아왔던 그 답이 나올 부분을 쓰려면 한참 멀었던 때였기 때문에 방치해두고 있었다. 방법도 다 나와 있었고 쓰기만 하는데 당장 써먹을 부분도 아니고 귀찮기도 하고 내용을 만들어내는 게 훨씬 더 시급한 문제였기 때문에 무작정 뒤로 미루어두고 있었다. 그저 '때 되면 쓴다' 였다. 딱히 걱정되거나 다시 생각해보거나 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답은 다 나와 있는 거였고, 그 답을 이용해 시험작만 만들어내면 되는 거였으니까.


드디어 그 답 중 하나가 등장할 부분을 쓰게 되었다. 쓰는 동안 어렵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솔직히 진짜 많이 힘들었다. 작년에 그 답에 대한 추측과 예상을 미리 작성할 때 이건 혼자서는 상당히 힘들거라 적어놓았다. 그건 정확히 맞았다.


결과물을 지인들에게 보여주었다.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모두가 작년 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모두 경악하며 무의미하고 아주 괴악하고 못 볼 것이 나올 거라 예상했었다. 하지만 결과물인 시험작을 보더니 의외로 그렇게 이상하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지적받은 부분은 그냥 '내가 글을 참 못 쓴다는 점' 뿐이었다. 절반은 예상하고 있었던 결과였다. 왜냐하면 이것은 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모두의 반응과 달리 '현실 세계에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작년 그 답을 내놓을 때, 그 답이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 너머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고 봤다. 그런데 시험작이 나오자 궁금해졌다. 과연 그걸로 끝일까? 더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6월 6일 현충일. 방에서 늦잠을 자고 일어났다. 그것으로 끝일까 생각했다.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아닌데? 그 답이 의미하는 게 복수면 어떡할 건데? 순간 떠올랐다. 그건 끝이 아니었다. 더 있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그건 엄연히 우리들 현실에, 일상에 흔히 존재하는 것이었다. 햇볕을 쬐러 밖으로 나갔다. 햇살이 참 좋았다. 따뜻했다. 여기에서 의문이 들었다. 이분법. 살았으면 살았고, 죽었으면 죽었지, 뭐가 더 있단 말인가. 상당히 중요한 문제였다. 이건 어떻게 넘어갈 것인가. 답은 실상 다 나왔다. 단지 이것이 걸림돌일 뿐.


갑자기 떠오른 답. 여자친구에게 답을 이야기했다. 당연히 경악했다. 이건 뭔 소린가 하는 반응이었다. 그래도 여자친구는 시험작을 보았기 때문에 덜 놀랐다. 그러나 단 한 마디도 이해를 못했다. 그게 어떻게 존재하는지, 어떤 모습일지 이야기해줘도 감도 못 잡았다.


그 다음에는 지인에게 이야기했다. 이때 나는 답을 쓰는 것에만 온 신경이 쏠려 있었다. 그래서 최대치로 이야기했고, 저 위에 언급한 이야기를 했다. 이분은 시험작을 안 읽은 분이었다. 전에 내가 제시한 답을 보았을 때도 아마 이해 하나도 못 했을 거다. 그런데 그보다 더한 것을 들고 왔으니 이해가 되는 게 신기한데, 나는 최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해하는 게 신기한 거다. 이해했다면 내 머릿속을 문자 그대로 '읽고 있다'는 거니까. 내게 SF 소설을 읽어보라고 조언해주셨다. 하지만 SF소설을 읽는 것은 전혀 쓸모없는 것이었다. 이것은 무슨 세계관이니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분은 이걸 '발명'의 관점으로 보려고 하고 있었고, 나는 이것을 '발견'의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작년에 찾아낸 것이나 이번에 찾아낸 것이나 전부 없는 것을 지어내는 것과 관련된 것이 아니었다.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옮기기' 위한 것이었다. 구성이니 묘사니 기법이니 발상이니 하는 문제와 아무 상관없는 것이었다. 이것은 우리의 일상에 있는 것을 찾아내는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말'이 필요했지, 그런 것들은 전혀 쓸모없는 것들이었다. 독특한 생각이니 하는 건 전부 전혀 도움 안 되는 필요없는 것이었다. 오히려 모두에게서 흔히 찾아지는 것들이 필요한 문제였다. 굳이 비유하자면 나는 지금 '시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지인은 '상'에 대해 찾아보라고 한 것이었다.


이야기를 하면서 이 지인분은 나에 대해 글쓰기 자체보다는 실험과 도전과 연구와 새로운 것 만들고 찾아내기에 더 매혹되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혀 아닌데. 오히려 정반대다. 이건 지금 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이기도 하고 순간 떠올라서 생각하고 답을 정리하는 것일 뿐, 오히려 대부분은 그 어떤 것도 신경쓰지 않고 이야기 그 자체만 집중한다. 그러니 당장 저 위에 작년에 얻은 답도 거의 1년이 되도록 시험작 만드는 것을 끝없이 미루어두었지. 작년 여름의 그 날들, 그리고 올해 초여름 이 하루가 오히려 지극히 비정상적이고 이례적인 며칠에 불과하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도움이 되었다. 이야기를 하고 곰곰이 생각하는 과정에서 내 생각을 보다 더 다듬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무슨 말인지 이해 못했을 거고, 대화 나누는 것 그 자체가 정말 괴로웠을 거다. 그래서 정말 진심으로 고마웠다.


사실 내가 머저리같이 이야기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였다. 그분은 작년 답에 대한 시험작을 안 읽어봤고, 그 답에 대해 제대로 이게 뭔지 몰랐을 거다. 그런데 그거보다 더 한 것을, 그것도 최대치로 이야기했으니...아마 진짜 괴로우셨을 거다. 진짜 미안했다.


저녁도 먹고 바람도 쐴 겸해서 밖으로 나왔다. 저녁을 먹고 친구에게 아주 간단히 이야기했더니 말이 없어졌다. 작년에도 그랬지. 일단 숫자가 주는 압박이 너무 클 거다.


전철을 타고 서울로 나갔다. 길을 걷다 어떻게 해야 그나마 이해할까 하다가 현실적으로 써먹을 수 있는 방법으로 이야기하면 그래도 덜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까지 계속 답을 정리하기 위해 최대치로만 이야기하고 있었다. 당연히 이러면 죄다 기겁하지. 하지만 현실적으로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은 분명히 존재했다. 그렇게 허황된 게 아니라 우리들 일상에 흔히 존재하는 거니까. 그걸 그대로 옮길 방법을 생각해본 것이었다. 그래서 여자친구에게 현실적으로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해보았다. 그러자 그럴 수도 있겠다고 대답했다. 아까 숫자를 들었을 때랑 이거 들었을 때 어떻냐고 물어보자 숫자로 들었을 때는 기겁했다고 했다.


아무도 이것을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것 안다. 장담컨데 그나마 좋게 봐준다면 무의미하다고 생각할 거고, 보통은 감도 못 잡을 거고 아주 기괴하고 쓸모없는 것이라 상상할 거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이게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정확히 나까지 포함해서 최대 다섯 명 뿐이다. 나머지는 읽어도 뭔 내용인지 모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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