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이태원에 갔을 때였어요. 이때는 열심히 우리나라에 있는 모스크를 찾아 돌아다니던 중이었어요. 이때 아주 모처럼 - 정말 너무나도 오랜만에 아랍 및 이슬람 세계 문화에 대해 관심이 다시 살아났어요. 한동안 이쪽은 아예 잊다시피 하며 살고 있었거든요. 2014년 베트남 여행, 2015년 인도네시아, 태국, 라오스 여행을 다녀오면서 제 관심은 동남아시아로 치우쳐져 있었어요. 2016년에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여행을 다녀오면서 잠깐 관심이 다시 중앙아시아와 이슬람 세계 문화로 향했어요. 그러나 이 여행기를 다 쓴 후, 2015년 다녀온 인도네시아, 태국, 라오스 여행에 대한 여행기를 쓰면서 다시 관심은 동남아시아로 돌아가버렸어요. 동남아시아에서도 특히 불교 문화권으로요. 그러다 2017년에 외국 여행을 안 가면서 국내에서 뭔가 재미있는 것이 없을까 머리를 굴리며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해서 찾은 것이 바로 우리나라 수도권 여기저기 숨어 있는 모스크 찾아다니기였어요. 모스크를 찾아다니다보니 자연스럽게 관심이 다시 아랍 및 이슬람 세계 문화로 되돌아갔어요.
이태원이야 자주 가는 곳 중 하나지만, 이태원에 있는 외국 식료품점은 저 혼자 갈 경우 잘 가지 않아요. 신기해서 이것저것 사왔다가 먹지 않고 방치중인 것이 아직까지도 방에 엄청 많이 있거든요. 이걸 다 먹어 치우는 것이 하나의 인생의 과제가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에요. 유통기한 지나서 먹는 것도 많고, 방 정리 하다가 '이건 또 언제 사온 거야?'라고 놀라게 만드는 것도 있어요. 이것은 현재까지도 진행형. 그래서 어지간하면 '방에 있는 것부터 어떻게든 해치우자'는 생각에 그런 식료품점 자체를 잘 가지 않고 있어요.
그렇지만 이날은 정말 모처럼 이태원에 간 김에 외국 식료품 상점에 가보았어요. '오랜만에 왔더니' 라고 하고 싶었지만 변한 건 별로 없었어요. 거의 다 예전에 보았던 것들이었어요. 혹시 차 쪽에 뭔가 새로운 것이 들어왔나 가보았어요. 솔직히 차 자체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어요. 제 관심사는 바로 밀크티였어요. 가끔 외국 밀크티가 들어오는 경우가 있거든요. 정말 아주 가끔요.
기대했던 밀크티는 새로운 것이 보이지 않았어요. 차도 딱히 특별해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았어요. 러시아, 폴란드 차는 가볍게 무시해주었어요. 그거 말고 뭔가 말초신경을 자극할만한 뭔가 있나 찾아보았어요.
'이건 파키스탄 것인가?'
하얀 종이상자. 그 위에 써 있는 아랍 문자. 파키스탄 거라도 나쁠 건 없었어요. 상자를 들고 어느 나라 제품인지 살펴보았어요.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서 홍차를 많이 마시는 건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녹차를 즐겨 마신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어요. 아랍 지역 갔을 때 녹차를 마셔본 적도 없구요. 사우디아라비아 녹차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신기했어요. 그래서 구입했어요.
그런데 나 차 별로 안 좋아해.
문제는 바로 이것. 저는 차를 안 즐겨요. 차 자체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요. 제가 좋아하는 것은 바로 인스턴트 커피. 당연히 구입한 후 방에서 개밥의 도토리처럼 굴러다니기 시작했어요. 매일 보기는 했지만 언제나 저의 선택은 맥스웰 하우스 커피 믹스.
"이제는 좀 마시자."
라마단도 시작했어요. 라마단 기념으로 사우디아라비아 녹차를 마실 때가 되었음을 느꼈어요.
사우디아라비아 녹차는 이렇게 생겼어요.
빨간 삼각형 안에 적혀 있는 아랍어는 '샤이 라비이'에요. '봄 차'라는 뜻이에요.
상자에 적혀 있는 초록색 아랍어는 '아크다르 타비이' - '자연적인 초록'이라는 뜻이에요. 그 아래 검은색 아랍어는 '인티아쉬 비타으미 라이이' - '훌륭한 식품으로 회복'이라는 뜻이에요.
상자 뒷면에는 영어가 적혀 있었어요.
영어로는 Tea Rabea 의 natural green 이라는 차래요. Refreshing Great Taste 라고 적혀 있어요.
재미있는 점은 아랍 제품이기 때문에 차를 우리는 순서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인쇄되어 있다는 점이에요. 물을 끓여서 200ml 당 티백 하나 넣고 2분 우리래요.
이 녹차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생산되었고, 이집트와 시리아로 수출하는 것인가 봐요. 보따리로 들어온 차 같아요.
종이 상자를 뜯었어요.
은빛 비닐을 조심스럽게 찢었어요.
아, 망할...여기에서 터져나온 아랍의 인심.
위에서 말했듯 저는 차를 안 좋아해요. 별로 안 즐겨요. 저는 이것이 질소 포장이기를 바랬어요. 그러나 봉지를 뜯는 순간 확인한 것은 아랍의 푸짐한 인심이었어요. 그제서야 다시 한 번 종이상자를 확인했어요. 티백 25개가 들어 있다고 작게 인쇄되었어요.
"이거 언제 다 마셔치우냐?"
제가 차를 우려서 마시는 일은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일. 솔직히 티백 25개면 제가 25년 먹을 분량. 망했다는 생각만 들었어요. 그래도 뜯었으니 마셔치워야 했어요.
그냥 막 팍팍 우려 마시자.
원래 설명에는 물 200ml에 티백 1개 넣어서 우리라고 되어 있었어요. 그러나 저는 물 200ml 정도에 티백 2개 집어넣었어요. 그리고 2분이 아니라 아주 푹푹 우렸어요. 애초에 뜨거운 차를 매우 싫어하기 때문에 차라리 독하게 우린 후에 찬물 타서 마실 생각이었거든요.
차는 매우 신나게 잘 우러나왔어요. 정말 잘 우러나왔어요. 아주 잘 우러나온 것을 확인한 후, 여기에 찬물을 부어서 물을 두 배로 불렸어요.
오이껍질 같아.
처음에는 그냥 녹차같았어요. 평범한 녹차의 향과 씁쓸함이 느껴졌어요. 그러나 마시다보니 느낌이 조금 달라졌어요. 풋풋한 향이 오이향처럼 느껴졌고, 맛은 오이껍질에서 느껴지는 씁쓸함 같았어요.
이거 녹차 라떼 만들어서 해치울까?
왠지 잘 하면 녹차 라떼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일단 쉽게 잘 우러나니까 독하게 우리기 좋았어요. 여기에 우유와 설탕만 적당히 잘 섞으면 괜찮은 녹차 라떼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이렇게 해도 중요한 것은...한 번에 두 개씩 우려 마신다 해도 앞으로 11번은 더 우려 마셔야 한다는 사실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