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뜨거운 마음 (2011)

뜨거운 마음 - 12 아제르바이잔 나흐치반 자치공화국

좀좀이 2012. 5. 31.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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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아침이 밝았어요. 오늘은 정말로 나흐치반 자치공화국에 가는 날. 정보가 너무 부족한 곳, 게다가 본토와는 떨어져있는 곳에 간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었어요. 나흐치반 자치공화국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현재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의 아버지이자 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이었던 하이데르 알리예프의 고향. 그리고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 때 아르메니아가 침공했으나 터키가 나흐치반 자치공화국을 공격하면 전면 개입하겠다고 군대를 나흐치반 자치공화국과 터키 국경으로 이동시켜 아르메니아군이 바로 철수했던 곳.


나흐치반 자치공화국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아주 어렸을 때 본 '아시안 하이웨이'라는 다큐멘터리 때문이었어요. 1990년대에 했고, 일요일 저녁 KBS에서 했는데 제일 마지막 편이 이란이었어요. 이란편 맨 마지막이 바로 아제르바이잔인과의 인터뷰였어요. 아제르바이잔이 아르메니아와 전쟁중인데 나흐치반 자치공화국에 물자를 공급해주기 위해 이란을 경유해 트럭을 몰고 가는 아제르바이잔인과의 인터뷰였거든요. 이 인터뷰 후 '이제 이 길은 터키로 이어지고 유럽 하이웨이가 시작됩니다'라는 내용의 멘트를 날리고 끝났어요.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와 인도 등 남아시아편은 큰 관심과 흥미가 없었어요. 그나마 인상적이었던 것은 미얀마에서 아시안 하이웨이라고 나와 있는 길을 따라갔더니 아직 공사중이라고 길이 아예 없어서 다른 길로 돌아가야 했다는 것. 이 다큐멘터리 전체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어서 집중해서 보기 시작한 것은 마지막 편인 이란과 이란 바로 전편인 아프가니스탄 편이었어요. 마지막 편인 이란에서 아제르바이잔이 하필 가장 마지막에 언급되다시피 나왔기 때문에 제게 강한 인상을 남겼어요.


그런 나흐치반 자치공화국에 가는 날. 그리고 바쿠와는 이제 이별할 시간.


"나 자꾸 다리가 아파."
"그냥 피곤해서 그런 거 아니야?"
"그게 아니야!"


친구가 근육이 아픈 게 아니라 피부가 아프다고 했어요. 무언가 닿을 때마다 바늘로 쑤시듯 매우 아프다고 했어요.


"언제부터 아팠는데?"
"그 국경에서 벌레가 문 거 같다고 한 날 있잖아. 그날부터 계속 아프더라구."


환부를 보니 분명 무언가 문제가 있었어요. 그런데 뭔지 알 수가 없었어요. 일단 체크 아웃 시간이 되어서 짐은 로비에 잠깐 맡겼어요. 로비를 지키고 있는 사람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매니저였어요. 매니저에게 택시를 부탁했어요. 매니저가 제시한 가격은 20마나트. 택시비가 무지 비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공항까지 20마나트라면 나름 괜찮은 가격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게다가 짐을 다 끌고 택시를 잡기에는 너무 더웠어요. 땡볕 아래에서 택시 잡으려고 고생해봐야 20마나트보다는 더 나올 것 같았기 때문에 매니저가 제시한 조건은 매우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했어요.


옷에 닿기만 해도 아프다는 친구 때문에 천천히 걸어야만 했어요. 그래도 가만히 호텔 로비에서 뒹굴거리는 것보다는 밖을 조금 걷고 오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서 일단 밖으로 나갔어요.


'New Baku Plan'이라고 도시 여기 저기 다 고치고 있는데 아직 전부 고치고 짓지는 못했어요. 그래서 공사중.

"이 모자이크 꽤 예쁜데?"


바쿠 와서 처음 본 모자이크였어요. 무슨 이야기를 모자이크로 만든 것 같았어요. 모자이크를 하나 하나 순서대로 보면






모자이크를 보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 우리가 그렇게 찾던 찻집이 있었어요. 그래서 차를 한 주전자 시켰어요. 가격은 2마나트.


차를 마시고 호텔로 돌아와 로비 의자에 앉아서 매니저와 이런 저런 잡담을 했어요. 매니저가 나흐치반 표를 구해 주고, 택시도 저렴한 가격에 구해주었기 때문에 고마워서 한국에서 올 때 현지인들에게 선물로 주려고 가져온 색동옷 입은 곰돌이 핸드폰줄을 하나 드렸어요. 그러자 매니저는 고맙다고 하며 전통 모자를 하나 주었어요. 그 전통 모자는 자기가 기도할 때 쓰는 것이라고 했어요.


택시가 오자 택시를 타고 바쿠 국제공항으로 이동했어요.


공항에 갈 때까지는 크게 특별한 것이 없었어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보안검색을 받았어요.


보안검색을 받고 국내선 타는 곳으로 이동했어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잘 몰라서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더니 처음에는 국제선 타는 곳으로 알려주었어요. 그런데 방향을 보니 우루무치, 트빌리시 등 외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는 곳이라 뭔가 이상해서 사람들에게 나흐치반 가려는데 어디로 가냐고 물어보았어요. 그러자 우리가 가던 방향과 정 반대 방향으로 가라고 알려 주었어요.


조금 가자 다시 보안검색. 보안검색을 받는데 직원이 제 캐리어를 열어보라고 했어요. 왜 그런가 하고 엑스레이 화면을 보니


너무 각을 잘 잡았다


평소에는 대충대충 우겨넣고 각 잡는 것과는 정말 거리가 멀지만 여행갈 때 만큼은 정말 신경써서 짐을 꾸려요. 이래야 최대한 많이 우겨넣을 수 있거든요. 구석구석을 잘 활용하기 위해 각 잡듯 짐을 잘 집어넣고 공간이 나면 거기에 다른 짐을 우겨넣으면 짐이 많이 들어가요.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옷을 잘 개야 한다는 것. 당연히 캐리어에 짐을 잘 정리해서 차곡차곡 예쁘게 집어넣었고, 하필 이때 책도 예쁘게 집어 넣었어요. 그래서 엑스레이 결과를 보니 커다란 직사각형 네 개만 찍혀 있었어요. 당연히 매우 수상하게 생긴 엑스레이 결과. 그래서 짐을 그 자리에서 뜯어서 검사를 받았어요. 짐을 몇 개 꺼내보고 손을 쑤셔넣어 보더니 별 게 없음을 확인하고 가라고 했어요. 하도 차곡차곡 잘 집어넣어서 직원이 뒤지는 것도 쉬웠고, 제가 정리해서 다시 가방을 닫는 것도 쉬웠어요.


이제 제대로 된 표를 발권받고 수하물을 부칠 차례. 가방을 다 올렸더니 저와 친구의 짐을 합쳐서 총 16kg 초과였어요.


'망했다...'


그런데 추가 요금은 불과 4.8마나트. 깎아준 게 아니라 정가가 4.8마나트였어요. 16kg 초과 치고는 너무 싸서 깜짝 놀랐어요. 그래서 4.8마나트를 지불하고 짐을 부친 후 티켓을 발급받아 마지막 보안검색대 앞에 섰어요. 벌써 세 번째 보안검색.


삐익


카메라 가방을 통과시키는데 갑자기 경보가 울렸어요. 직원은 가방을 열어보라고 했어요. 제 카메라 가방에는 걸릴 것이 없었어요. 걸릴 게 있었다면 이미 통과한 두 번의 보안검색에서 무사히 통과하지 못했겠죠. 하지만 두 번의 보안검색에서 카메라 가방은 무사히 통과했어요. 직원은 카메라 가방을 열어보더니 배터리를 빼서 압수했어요.


'배터리를 왜 압수하지?'


배터리가 압수당한 것은 처음이었어요. 참고로 압수당한 배터리는 AA 니켈-수소 충전지 4개. 제가 사용하는 카메라인 후지필름 HS10은 AA 배터리 4개를 집어넣어야 사용할 수 있어요. 그래서 보조배터리로 중국제 저렴한 AA 충전지 4개를 들고다녔는데 이게 걸린 것이었어요.


직원은 다시 카메라를 검색대에 집어넣었어요. 역시나 소리가 났어요. 당연했어요. 제 카메라 안에 충전지 4개가 들어 있었으니까요. 직원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두어 번 검사하다가 보내주었어요.


"뭔 배터리를 압수하냐?"


그냥 배터리를 빼고 검사한 것이 아니라 배터리는 기내반입 금지품목이라고 압수. 배터리를 기내에 반입 못하게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일단 규정이 그렇다고 했으니 어쩔 수 없었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부치는 짐 안에 보조배터리를 집어넣는 것이었는데 깜빡한 것이 화근이었어요. 하지만 배터리가 문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부치는 짐에 배터리를 집어넣어야 한다는 사실은 생각도 하지 못했어요.


보안검색대를 통과하고 비행기에 탔어요. 공항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고 서로 먼저 통과하려고 해서 엄청 혼란스러워서 당연히 비행기 탈 때와 좌석에 앉는 것도 무질서할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어요. 사람들이 줄도 잘 섰고, 자기 지정좌석에 잘 앉았어요.


비행기 안에서는 특별할 것이 없었어요. 기내식도 평범했고, 비행기에 대한 악평이 있기는 했는데 그럭저럭 탈 만 했어요. 소음은 생각보다 심하지 않았어요. 단, 기체가 작아서 흔들리는 것이 심하기는 했어요. 갑자기 뚝 떨어졌다가 올라갔다가 하기는 했어요. 그렇다고 해서 죽음의 공포를 느낄 정도는 아니었어요. 그냥 예민한 사람은 조금 멀미할 수 있을 정도. 간단히 요약하자면 싼 값을 해요.


창밖에 아제르바이잔 나흐치반 자치공화국의 수도 나흐치반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비행기가 무슨 계단 내려가듯 푹 떨어지고 조금 가다 푹 떨어지고 조금 가다 또 푹 떨어지는 것을 반복해 매우 거칠게 착륙했어요. 비행기가 착륙하자 사람들이 모두 환호하며 박수쳤어요. 저희도 쳤어요. 위험하지는 않지만 정말 스릴이 넘치는 비행기였어요. 롯데월드, 에버랜드 갈 필요 없이 이 비행기 한 번 타면 짜릿함을 느낄 수 있어요.


이렇게 아제르바이잔 나흐치반 자치공화국의 수도 나흐치반에 도착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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