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뜨거운 마음 (2011)

뜨거운 마음 - 11 아제르바이잔 바쿠

좀좀이 2012. 5. 30.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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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10일. 오늘은 아제르바이잔 나흐치반 자치공화국의 수도 나흐치반으로 가기로 한 날이에요. 바쿠 일정을 꽤 강행군으로 진행한 이유는 바로 오늘 나흐치반 자치공화국에 가기 위해서였어요. 아제르바이잔 도시들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었지만, 나흐치반 자치공화국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었어요. 한국어로 된 정보는 아예 찾지도 못했구요. 영어로 된 정보도 매우 부실하고 부정확했어요.


아제르바이잔 친구도 나흐치반 자치공화국에 대해서는 잘 몰랐어요. 친구가 준 정보라고는 꽤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라는 것이 전부였어요.


우리나라로 치면 딱 제주도 정도 되는 곳이에요. 본토와 떨어져 있어서 반드시 비행기로 가야 해요. 차이점이라면 나흐치반 자치공화국은 이란을 통해 가거나 조지아-터키를 거쳐 육로로 들어가는 방법도 있다는 것이고 제주도에 비해 매우 안 알려져 있다는 것이에요. 자국민이야 이란 하나만 거쳐가면 되지만 외국인 입장에서는 아제르바이잔 비자를 2회 입국 비자로 받아야하는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속 편하게 비행기 타고 가는 게 나아요.


나흐치반 자치공화국에 비행기로 가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바쿠에서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것이고, 하나는 겐제에서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것. 그러나 겐제에서 비행기로 나흐치반으로 들어가는 것은 극악이라고 했어요. 최악도 아니고 극악인 이유는 손님이 별로 없으면 자기들 마음대로 결항시켜 버린다는 것. 현지인들은 이렇게 운영해도 별로 큰 문제가 되지 않아요. 오늘 못 가면 내일 가도 되는 것이고, 무작정 공항으로 갔다가 발걸음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전화로 비행기가 뜨는지 확인을 해 보거든요. 하지만 여행객 입장에서 비행기 안 뜨면 엄청나게 곤란해요.


그래서 겐제, 셰키 일정을 과감히 포기하고 나흐치반 자치공화국에 가기로 한 것이었어요.


짐을 꾸리고 체크 아웃을 하러 갔어요. 오늘은 매니저가 로비를 지키고 있었어요.


"체크 아웃이요."
"예. 택시 서비스 5마나트 있네요."


바쿠에 온 날, 호텔에서 택시를 불러주어서 그 택시를 타고 중심가로 갔는데 그거 불러준 것도 돈을 내야하는 것이었어요. 5마나트를 낸 후 매니저에게 공항에 어떻게 가냐고 물어보았어요.


"공항에는 무슨 일로 가세요? 출국이요?"
"아니요. 나흐치반 가려구요."
"표 샀어요?"
"아니요. 표는 공항에서만 판다고 하던데요?"


시내를 헤매고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지만 시내에서 표를 파는 곳은 없었어요. 아제르바이잔 국영 항공회사인 AZAL에서도 나흐치반행 표를 구입할 수 없었어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물어보아서 알게 된 것은 나흐치반행 비행기표는 반드시 공항에 가서 사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잠깐만 있어봐요. 공항에 표가 있나 전화해 볼게요."


매니저는 혹시 표가 없을 수도 있으니 자신이 공항에 전화를 해 보겠다고 했어요.


"오늘 표 없대요."


뭔 말이야!


"오늘 표 다 팔렸대요."


아...망했네...


너무 안일하게 대처했어요. 저는 서울 김포공항에서 제주도 가듯 공항 가면 표가 널려 있을 줄 알았어요. 하지만 그건 아니었어요.


"어떻게 할래요? 내일 거라도 구입할래요?"


망설이고 있는 우리들에게 직원이 제시한 조건은 꽤 솔깃했어요. 표를 사려면 오늘 공항에 다녀와야 하는데 여권과 비행기표값, 그리고 20마나트를 주면 자기가 아는 사람 시켜서 비행기표를 사다주겠다고 했어요. 다음날 또한 20마나트에 택시를 타고 공항까지 갈 수 있다고 했어요.


빠른 결정이 필요한 상황. 일단 오늘 이 숙소에서 나가기로 되어 있었어요. 다른 저렴한 숙소를 책을 들고 돌아다니는 것은 썩 현명한 짓이 아니었어요. 결정적으로 친구 몸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나 아직 완벽히 다 나았다고 볼 상황은 아니었어요. 게다가 비행기표. 체크아웃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어요. 더 머뭇거리다가는 졸지에 체크 아웃 시간 못 지켜서 추가요금 내야할 판.


"오늘 하루 여기서 더 머물게요. 그리고 내일 표 있나 알아봐주실 수 있으세요?"


직원은 공항에 다시 전화를 했어요. 다행히 내일 표는 있다고 했어요. 아직 체크아웃까지 시간이 남아서 하루 더 머무르겠다고 하고 호텔 근처 ATM에서 아제르바이잔 마나트를 인출했어요. 호텔비와 비행기표 70마나트, 구입대행비 20마나트와 여권을 직원에게 건네주고 방으로 돌아왔어요.


"그래도 다행이네? 내일 표가 있어서."


참고로 바쿠발 나흐치반행 비행기표는 아제르바이잔인은 50마나트, 외국인은 70마나트에요. 그래도 우리들이 스스로 하겠다고 했다면 최소 왕복 40마나트가 깨졌을 텐데 직원이 아는 사람에게 시키겠다고 해서 20마나트에 처리했어요. 이러면 나름 꽤 성공한 편. 물론 표가 있었다면 공항 이동 20마나트에 비행기표 70마나트였겠지만 이것은 표가 있을 때 이야기이고, 지금처럼 표가 없을 때에는 공항 왕복 + 공항 이동 60마나트에 비행기표 70마나트.


하루 더 연장했기 때문에 방에 다시 들어왔어요.


"오늘 뭐 하지?"
"그러게...오늘 진짜 뭐하냐?"


바쿠에서의 일정은 계획대로 다 잘 끝냈어요. 그래서 하루의 시간이 더 생겼는데 마땅히 무엇을 해야할지 떠오르는 것이 없었어요. 굳이 하루 일정을 활용한다면 고부스탄에 다녀오는 것 정도가 있는데 거기는 굳이 비싼 돈을 지출하며 다녀오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그냥 시내 구경이나 할까?"


그래서 전철을 타고 구시가지로 가기로 했어요. 그런데 환승을 잘못 해서 Elm Akademiya역에서 내렸어요.


"이거 온 곳 맞아?"


우리가 다녔던 길과 비슷하게 생겨서 걷는데 우리가 알던 곳이 아니었어요.


"그냥 온 김에 보고 가자."


친구가 온 김에 여기나 구경하자고 해서 돌아다녔어요.



문제는 이게 볼 것의 전부. 더 돌아다녀 보았지만 별로 볼 것이 없었어요. 더 돌아다녔다가는 길을 잃어버릴 것 같았어요. 길을 잃어버리는 것은 겁나지 않았어요. 말도 통하는 나라인데다 호텔 근처 (라고 하기엔 매우 멀지만) 지하철 역으로 택시 타고 가면 되었거든요. 문제는 택시비가 엄청나게 비싸다는 것.


그래서 얌전히 전철을 타고 다시 사힐 역으로 갔어요. 선물 구입을 아제르바이잔에서 끝내버릴 생각이었어요.


이체리 샤하르에서 Qız qalası쪽은 호객행위도 심하고 가격이 비싸요. 기념품은 이체리 샤하르 들어가자마자 오른쪽 오르막길로 올라가는 길 - 즉 Şirvanşah saray로 가는 길에 있는 기념품점이 가장 싸고 친절해요.


우리들은 한 번에 왕창 산 것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한 두 개 선물로 줄 것을 구입했기 때문에 주인이 우리 얼굴을 알고 있었어요. 우리를 보자 또 놀러왔냐는 듯 반갑게 맞이해 주었어요.


"이거 얼마에요?"


친구가 털모자를 가리켰어요. 털모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깔끔하고 작은 모자였고, 하나는 완전 커다란 털뭉치처럼 생긴 모자였어요. 가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요. 하지만 예상과 달리 커다란 털뭉치처럼 생긴 모자가 깔끔하고 작은 모자의 반 값이었어요. 깔끔하고 작은 모자는 어린 양의 털로 만드는 거라 엄청나게 비싸다고 했어요. 우리가 사기에는 커다란 털뭉치처럼 생긴 모자나 깔끔하고 작은 모자나 너무 비쌌어요. 그래서 친구는 아버지 선물로 혼방으로 만든 깔끔하고 작은 모자를 샀어요.


그리고 실크 스카프. 100% 실크 스카프 가격이 15~20마나트 밖에 안 했어요. 주인은 우리가 자주 와서 물건을 사 갔으니 스카프를 10마나트에 주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친구는 어머니 선물로 실크 스카프 한 개를 구입했어요.


저와 친구 모두 가족 선물을 모두 구입한 후 호텔로 돌아왔어요. 계속 돌아다니려고 해도 마땅히 돌아다닐 곳도 없었고, 날이 돌아다니기에는 너무 더웠어요.


"표 어떻게 되었어요?"
"여기요."


직원은 여권과 표를 건네주었어요. 표는 일반 보딩패스가 아니라 종이에 프린트한 것이라 표 같지도 않았어요.


표를 받아들고 방에 들어가서 해가 질 때까지 또 낮잠을 잤어요. 낮에 깨어있어봐야 할 게 없었어요. 우리가 게을러 터져서 낮잠을 잔 게 아니라 낮에는 거리에 사람들이 거의 없었어요. 아제리인들도 낮에는 활동을 하지 않았어요.


우리가 눈을 떴을 때는 밤 9시.


"사힐 갈까?"
"그냥 산책이나 하자."


친구가 산책이나 하자고 했어요. 그래서 무작정 걸어서 바다 쪽으로 갔어요. 바다 쪽에는 새로 지은 듯한 공원이 있었고, 공원 안에는 우리가 그렇게 찾던 찻집이 있었어요. 찻집에서 느긋하게 차를 마시다 한 번 이 바다가 얼마나 긴지 궁금해서 국회의사당까지 걸어 갔어요.

"이제 돌아가자."


그래서 국회의사당까지 걸어간 후 다시 돌아왔어요.

"저거 항구네?"


저 항구가 바로 투르크메니스탄, 카자흐스탄과 연결되는 항구에요. 아제리어로는 '데니즈 바그잘르'. 직역하면 '바다 역'. 마음 같아서는 배를 타고 투르크메니스탄에 가고 싶었어요. 그러나 불가능. 투르크메니스탄은 비자 받기 정말 어려운 나라. 한 번 쯤 아슈하바트에 가 보고 싶었지만 저 항구를 이용해 지금 바로 가는 것은 불가능했어요.

"이 표지판 너무 극적인데?"


표지판을 보며 웃었어요. 무슨 쇼트트랙 결승선 통과의 순간 같았어요.


이제 바쿠를 떠나는 일만 남았어요. 비록 비행기표를 제때 구입하지 못해 위험했지만 어떻게 잘 해결되었어요. 친구와 호텔에 들어가기 전, 포도주를 한 병 샀어요. 아제르바이잔도 와인이 유명하다고 해서 한 번 먹어볼 생각이었어요.


병따개가 없었지만 괜찮았어요. 코르크 마개를 손가락으로 밀어넣으면 되었거든요. 이것을 '겨울강행군'에서 외국인이 하는 것을 보고 알게 되었어요. 처음 보는 사람들은 무슨 괴력으로 집어넣는 줄 아는데 엄지 손가락으로 코르크 마개 밀어 넣는 것은 매우 쉬워요. 어설픈 코르크 마개 따는 병따개보다 손가락으로 밀어넣어 버리는 게 훨씬 쉬워요. 대신 한 번 뜯으면 다 먹어치워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요.


코르크를 밀어넣고 보니 엄지 손가락에서 피가 나고 있었어요. 병 뚜껑 주변에 튀어나온 부분이 있었는데 모르고 하다가 손을 벤 것이었어요. 다행히 크게 벤 것은 아니었어요. 맛은 그냥 그랬어요. 사실 와인 맛은 잘 모르거든요. 그저 달콤한 게 좋은데 좀 떫고 단 맛이 조금 있는 정도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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