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혹시 안 된다고 하면 어쩌나 하며 호텔 아래로 내려갔어요. 잭키 할아버지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어요.
"친구분께서 동의하셨어요?"
"응. 친구가 동의했어요. 이스칸다르 쿨 거쳐서 후잔드까지."
"후잔드 말고 이스타라브샨이요. 우루 테파."
"아! 우루 테파까지."
그런데 친구분의 2003년식 무쏘가 보이지 않았어요.
"친구분은 어디 계세요?"
"친구는 세차하러 갔어요. 잠깐만요."
잭키 할아버지께서는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니 차에 타라고 하셨어요. 친구분과 만나기로 한 곳까지 공짜로 데려다주기로 하셨어요.
잭키 할아버지 차를 타고 장소를 옮겼어요.
"저 차에요."
거리에 지프 한 대가 서 있었어요. 막 세차를 해서 그런지 새 차 같았고 왠지 믿음이 갔어요. 우리를 후잔드까지 데려가줄 기사 아저씨는 덩치가 매우 좋았어요. 그런데 말투가 아주 나긋나긋하고 부드러웠어요. 왠지 거친 말투를 내뱉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게 생기신 분이 아주 나긋나긋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이야기하셔서 어색할 정도였어요.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오직 러시아어와 타지크어만 아신다는 것. 그래서 이날 기사 아저씨와 저의 대화는 거의 없었어요. 있다 하더라도 친구들이 통역을 해 주었어요. 이날 일정에서 기사아저씨의 말은 친구들이 해석해준 말들이에요. 나머지는 당연히 못 알아들었어요.
차는 바르조브로 들어갔어요.
"여기 사진 안 찍어요?"
"어제 왔었어요."
기사 아저씨께서 바르조브에서 차를 세워달라고 하지 않자 왜 세워달라고 하지 않냐고 물어보았고, 친구가 어제 왔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어요.
즉, 좋은 기사와 차를 구해 두샨베에서 후잔드로 간다면 굳이 두샨베에서 바르조브를 갈 필요는 없다는 거에요. 물론 두샨베에서 바르조브만 간다면 보다 더 많이 놀고 맛있는 것도 먹고 올 수 있겠지만 적당히 보고 즐길 것이라면, 그리고 러시아어나 타지크어에 자신이 있고 좋은 기사와 차를 구해서 두샨베에서 후잔드로 갈 거라면 굳이 두샨베에서 일부러 후잔드에 갈 필요는 없었어요.
이날 바르조브에서 찍은 사진은 이게 전부에요. 전전날 와서 중요한 곳은 다 보았기 때문에 특별히 사진을 찍지는 않았어요. 우리가 이스칸다르 쿨을 들렸다 이스타라브샨에 가는 험한 일정이라서 바르조브는 최대한 빨리 통과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거든요.
"폭포네?"
바르조브의 끝에는 폭포가 있다고 했어요. 그래서 친구에게 딱 한 마디 - '세워주세요'를 배워서 아저씨께 차를 세워달라고 했어요.
"안 되요."
아저씨께서는 한참 앞에 가서 차를 세워주셨어요.
차를 못 세워서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폭포를 찍으러 뛰어갔어요.
폭포 사진을 찍고 있는데 아저씨가 급히 차를 몰고 제게 왔어요. 아저씨가 저를 찾아 급히 달려온 것을 보아 차에 타라고 하는 것 같아 차에 탔어요. 아저씨께서는 제가 뭐라고 했는데 러시아어여서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었어요. 친구 말로는 폭포 맞은 편에 대통령 다차가 있어서 그 지역에서 사진 찍다가 걸리면 그 자리에서 카메라를 압수당한다고 했어요. 친구들은 제가 사라진 것을 안 기사 아저씨께서 제가 어디 갔냐고 물어보시더니 자기들에게 타라고 하지도 않고 급히 차를 몰아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고 했어요.
톨게이트를 통과했어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안조브 Anzob 로 들어가는 것이에요.
기사 아저씨께서 높은 곳 가면 아픈 것 없냐고 물어보셨어요. 그래서 없다고 했어요. 기사 아저씨는 우리가 가는 곳이 최고 해발 3600m라고 하셨어요. 책에는 해발 3300m 대로 나오는데 책이 맞든 경찰 출신의 기사 아저씨께서 맞든 어쨌든 백두산보다는 높은 곳을 가는 것이었어요.
길을 하는데 주변에 하얀 것들이 보였어요.
'발포 석고로 산사태 방지 시설이라도 해 놓았나?'
처음에는 발포 석고로 무언가 해 놓은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일부러 해 놓은 것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일관성도 없고 있는 곳과 없는 곳이 뒤죽박죽 섞여 있었어요.
"저거 뭐에요?"
"눈."
아저씨는 눈이라고 했어요. 잘 보니 확실히 눈이 맞는 것 같았어요. 그러나 갑과 을은 전혀 믿지 않았어요.
"저기에서 차 세워주세요."
제가 차를 세워달라고 하자 아저씨께서 차를 세워주셨어요.
아직도 눈이 그대로 쌓여 있는 안조브. 친구들이 보고도 믿지 않아서 제가 손으로 파 보았어요.
"봐! 눈 맞잖아."
제가 눈을 손으로 파서 보여주자 친구들이 눈을 파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모두 놀랐어요.
"이 날씨에 눈이 있어?"
주위 풍경은 봄이었어요. 초봄이 아니라 그냥 봄에서 늦봄~여름으로 넘어가는 사이였어요. 그런데 아직도 눈이 그대로 있었어요. 대체 해발 고도가 얼마나 높다는 거야? 5월에 눈을 보다니 그저 신기할 뿐이었어요.
앞으로 넘어가야할 곳. 다행이라면 도로 상태가 매우 좋다는 것이었어요. 차는 매우 신나게 잘 나갔어요.
아저씨께서 터널 입구에서 차를 잠깐 세우고 사진을 찍으라고 하셨어요. 이 도로를 건설한 나라는 중국. 터널도 중국이 공사하고 길도 중국이 닦았대요.
조그만 터널 몇 개를 지나자 확실히 매우 높은 지역에 왔다는 것이 실감났어요.
기사 아저씨께서는 우리가 안조브 산 정상까지 간다고 하셨어요. 물론 당연히 차가 산 정상까지 갈 리야 없겠죠. 산 정상 근처까지 올라간다는 것.
멀리서 보았을 때 한없이 높고 눈이 쌓여있던 봉우리들이 이제는 바로 옆에 있었어요.
"이제 들어갈 터널은 길이가 5km가 넘어요."
이 터널은 원래 이란이 뚫었는데 워낙 안 좋아서 중국이 다시 뚫었대요. 그리고 길이는 5km가 훨씬 넘는다고 했어요. 기사 아저씨께서는 창문을 닫으셨어요. 보이다시피 입구 일부를 눈이 가로막고 있어요. 그리고 터널 내부에도 눈이 쌓여 있었어요. 입구에 눈이 쌓여 있는 거야 내린 눈이 쌓여서 안 녹았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터널 내부에 쌓여 있는 눈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터널 내부.
터널의 노면은 아주 안 좋았어요. 바닥에 물이 엄청나게 많이 고여있었고, 아직도 내부가 공사중이라 중장비가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또한 구덩이가 많이 있어서 잘 피해다녀야 했어요. 우리 차가 빠진 구덩이에서 가장 깊은 구덩이는 지프 타이어의 1/3 정도가 잠기는 깊이였어요. 정말 물이 촤아악 튀겼어요.
"어제 비라도 왔나?"
터널이 5km가 넘는데 환풍구가 하나도 없어서 환기 시설 공사가 진행중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5km가 넘는 터널 내부 바닥에 구덩이가 많은 거야 아직 완벽히 건설이 끝나지 않아서라고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데 물이 많은 것은 이해할 수 없었어요.
게다가 교통체증. 도로 포장, 환기 시설 설치 등 모든 공사가 완벽히 끝나서 개통한 것이 아니라 일단 차가 다닐 수 있게 만들어서 개통한 후 계속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라서 교통체증이 발생하는 구간들이 있었어요. 앞차도 아마 후잔드로 가는 차이겠죠. 저렇게 가득 타고 넘어갔다면 아마 벌써 피곤해졌을 수도 있어요. 그나마 다행이라면 셋이 타서 아주 넓고 편하게 갈 수 있었다는 것.
비밀은 밝혀졌다!
빗물이 전혀 들어올 수 없는 위치인데도 온통 물바다인 이유가 밝혀졌어요. 그 이유는 공기 정화를 위해 계속 물을 뿌려대고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물을 뿌려서 공기 중 먼지를 물로 가라앉히고 있었기 때문에 바닥이 온통 물바다였던 것이었어요.
터널을 빠져나오자 정말 오랜만에 햇볕을 보는 기분이었어요. 터널에서만 30분 있었어요.
이렇게 높은 곳에도 마을이 있었어요.
한참 가다가 잠시 바람을 쐬기 위해 내렸어요. 앞으로는 급경사 내리막길이 보였어요.
이제 우리가 가야할 길이었어요.
"저 길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야 해요."
또 험한 산길을 기어올라가야 한다고 했어요. 그리고 지금 것은 도로 포장이 잘 되어 있어서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셨어요.
산 한 쪽에서는 길을 닦고 있었어요. 도로 건설하는 현장도 매우 위험해 보였어요. 저기까지 중장비가 기어올라간 것이 신기했어요.
경사로를 내려와 평지를 달리기 시작했어요. 재미있는 길을 갔다는 생각에 의자에 몸을 기대었어요.
강 건너 옆 산에 폭포가 보여서 차를 세워달라고 했어요.
기사 아저씨께서는 저 폭포가 이스칸다르 쿨에서 나오는 물이라고 하셨어요. 우리는 일단 큰 것 하나는 넘겼다고 생각하며 다음 목적지인 이스칸다르 쿨을 향해 가기 시작했어요.
이제 오늘 일정 가운데 큰 것 하나는 끝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