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월요일에 가자 (2012)

월요일에 가자 - 07 우즈베키스탄 레가르 국경

좀좀이 2012. 5. 21.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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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여행다닐 때 현지인 집에서 하룻밤 신세지는 것은 철저히 피한다는 나름의 원칙이 있어요. 그 이유는...


입맛이 쓰다


우리나라보다 못 사는 나라에서 현지 사정을 알면 현지인에게 신세지고 싶다는 생각이 싹 사라져요. 왜냐하면 다음날 그 집에서 나오며 돈을 굳혔다는 즐거움이 느껴지는 게 아니라 가난한 집에 민폐를 끼쳤다는 뱉어낼 수 조차 없는 쓴 맛이 계속 맴돌거든요. 어쩌다 남는 음식에 숟가락 올리거나 차 한 잔 얻어 마시는 정도라면 몰라도 남의 집에 신세지며 손님을 위해 일부러 차린 저녁 푸지게 얻어먹는 것은 현지 사정 알면 못 하겠더라구요.


하지만 지금은 이 저 만의 원칙이 중요한 때가 아니었어요. 빗방울이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고, 빛이라고는 오직 자동차 헤드라이트 뿐. 게다가 노면 상태가 엉망인 길을 한참 달려서 모두가 피곤한 상태. 그리고 결정적으로 차로 가고 있지만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상태.


더욱이 지금 시간에 국경을 가는 것은 국경에서 노숙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었어요. 두샨베가 안전하다고는 하고 친구 두 명과 같이 돌아다니는 것이라고는 하나 타지키스탄 자체가 마약 루트로 악명이 높은 곳. 더욱이 그 안전하다는 우즈베키스탄도 요즘은 치안 상황이 예전보다 많이 안 좋아졌다고 했기 때문에 타지키스탄 두샨베의 치안도 마음 놓고 믿어도 될 지 의문이었어요. 만약 지금 국경을 간다면 가장 안전한 선택지는 국경에서 잠을 자는 것. 그런데 금방 간다고 한 국경이 가까워질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가다가는 정말 자정 되어서 국경 가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야, 너희들 생각은 어때?"
"이거 너무 민폐 아닌가...?"


친구들도 현지인 집에서 하룻밤 신세지는 것은 양심에 걸리는 것 같아 보였어요. 하지만 도로 상태가 너무 안 좋았고 다시 비가 온다면 앞서 수르한다리오에서 보았던 그 사태를 또 겪을 수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사 할아버지께서 우리들이 가만히 있고 무조건 국경으로 가자고 하는데 하룻밤 손님으로 와서 자고 가라고 하신 거는 분명히 할아버지께서도 지금 국경까지 가고 싶지 않으신 거야...


그래서 하룻밤 신세 지기로 했어요. 기사 할아버지 댁은 데나우 근처 올튼 소이에 있었어요. 기사 할아버지 말씀으로는 여기에서 국경까지는 약 한 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셨어요.


기사 할아버지 댁은 괜찮게 생긴 우즈벡 농촌 집이었어요. 우리가 집에 들어가자 집안 사람들이 전부 나와서 구경 나왔어요. 우리는 손님방에 들어갔어요.


여기는 손님 응접실


여기는 손님 숙소.


우즈베키스탄 전통에 의하면 언제든지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대요. 손님 방을 따로 하나 마련해 놓고 집에서 가장 좋은 것들을 손님 방에 비치해 놓는대요. 음식도 마찬가지로 정말로 좋은 음식들은 손님에게 제공한다고 해요.


일단 방에 짐을 풀었는데 정전이 되었어요. 타슈켄트에서도 툭하면 정전이 되더니 여기에서도 정전이 되었어요. 그리고 정말 딱 타이밍을 맞추어서 비가 또 억수같이 퍼붓기 시작했어요.


"정말 하룻밤 신세지기로 결정하기를 잘 했다."


비가 내리는 하늘을 보며 사이좋게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이렇게 길이 나쁜 상황에서 불빛 없고 비까지 내리는 상황 속에서 국경까지 간다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매우 위험한 짓이었거든요. 우즈벡인들이 왜 장거리 이동을 싫어하는지 다시 한 번 깨달은 밤이었어요. 수르한다리오 와서 비 때문에 유실된 도로, 포장한지 오래 되어서 포장 도로라고 보기 어려운 길을 가다 보니 야간 이동 자체가 이 나라에서는 꽤 위험한 짓이라는 것을 체득했어요.


기사 할아버지께는 새벽 6시에 출발하자고 말씀드렸어요. 같이 새벽 5시 반에 일어나서 준비하고 6시에 레가르 국경으로 출발하기로 약속하고 다시 방에 들어갔어요.


집 주인 아저씨 - 즉 기사 할아버지의 아드님께서 아내에게 손님 접대 준비를 시키셨어요. 손님 접대는 간단했어요. 응접실에 보자기를 깔고 그 위에 차와 논, 사탕과 초콜렛, 과자들을 올려 놓으셨어요. 준비가 끝나자 빵을 찢어 카드 돌리듯 한 사람 앞에 두 조각씩 놓아 주셨어요.


차를 마시며 수르한다리오의 논을 맛보았어요. 우즈베키스탄에는 정말 다양한 논이 있고, 지역마다 논의 맛과 생김새가 다 달라요. 수르한다리오의 논은 윤기가 좔좔 흐르고 형태가 매우 단순했어요. 그리고 맛은 짠 맛이 매우 강했어요. 타슈켄트 논이 담백하고 향신료 향이 강하다면 수르한다리오 논은 깨 때문에 고소한 맛이 강하고 짰어요. 확실히 타슈켄트 논보다 꾸밈이 없는 맛.


우즈베키스탄이 한국에 매우 우호적인 나라라서 분위기도 좋았어요. 아저씨께서는 아이들을 불러 가족을 소개시켜 주었어요. 아이들은 아버지 말씀을 잘 들었어요. 그리고 이어진 아저씨의 말씀. 지금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한 달 수입이 미화 100 달러라는 것이었어요. 지금 확실히 기억나는 것은 이 이야기 밖에 없어요. 밤을 새고 출발해 기차와 차에서 잠깐 눈 붙인 것 밖에 없어서 졸음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거든요. 손님 접대 하시는 아저씨 앞에서 꾸벅꾸벅 조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 정신력으로 어떻게든 안 자고 버텨보려고 노력했어요. 당연히 주인 아저씨의 우즈벡어가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어요.


얼마나 대화했는지 몰라요. 친구들은 주인 아저씨와 대화를 하는데 저는 졸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잠과 싸우며 눈을 뜨고 있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아저씨께서 밤이 늦었으니 자라고 하시고 방에서 나가자마자 쓰러져 잠들었어요.


"야, 어서 일어나!"


갑이 저를 흔들어 깨웠어요.


"몇 시인데?"
"5시."
"우리 5시 반에 일어나기로 했잖아."
"아저씨께서 5시에 출발하자고 하셨어."


우리들은 기사 할아버지께 같이 5시 반에 일어나서 6시에 출발하자고 했는데 기사 할아버지께서는 5시 반에 출발하자고 이해하셨던 것이었어요. 잠에 절어서 보이지 않는 눈으로 밖을 보았어요. 기사 할아버지께서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후다닥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어요.


하늘에 구름이 잔뜩 껴서 이제야 날이 밝아오르고 있었어요.


우리들이 하룻밤 신세졌던 집.


5시 반. 드디어 다시 출발하기 시작했어요. 지금 이 택시로 갈 길은 데나우 Denau와 사리오시요 Sariosiyo를 거쳐 레가르 국경으로 가는 길.


아침부터 양치기들이 양을 우루루 몰고 도로를 검거해 가고 있었어요. 기사 할아버지는 경적을 빵빵 울리시며 서행하셨어요. 이러면 양치기가 양을 한쪽으로 몰고 양들도 알아서 잘 비켜주어요.


그런데 앞에 정말로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떼가 길을 가로막고 있었어요. 기사 할아버지께서는 역시나 또 경적을 빵빵 울리시며 서행하셨어요. 그 결과



갇혔다.


보통은 비켜주던데 양들도 잠이 덜 깬 건지 어젯밤에 풀을 발효시켜 알코올 성분 쪽쪽 빨아드셔서 숙취가 덜 풀리셨는지 비켜줄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어떻게 어떻게 서행을 해서 앞으로 가나 싶었는데 결과는 양떼 속에 갇혀 버렸어요. 아무리 빵빵 경적을 울려대도 양떼는 비킬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한 두 마리면 옆으로 빠지기라도 하는데 차가 완전 양떼에 포위당한 상태라 차가 빠질 곳도 없었어요. 경적을 울리든 말든 길가 풀 뜯어먹고 서로 낑겨서 앞으로 가지도 못하고 엉켜서 자기들끼리도 밀고 끼어들고 하고 있었어요.


양치기가 긴 나무 막대기로 양떼를 길 옆쪽으로 몰아 찻길을 내주려 했지만 양떼가 하도 많은데다 어기적 어기적 기어가고 있어서 길이 쉽게 나지 않았어요. 그렇게 몇 분 양떼 속에 갇혀 있다가 드디어 풀려났어요.


양떼에서 풀려나자 기사 아저씨께서는 다시 차를 몰기 시작하셨어요. 국경이 가까워질 수록 점점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설레는 만큼 긴장되기 시작했어요.


레가르 국경에서 짐 다 까 본다는 정보는 애시드울프님의 블로그를 통해 획득했어요. (http://www.acidwolf.net/) 저는 다시 타슈켄트 들어와야했기 때문에 없는 달러 있는 달러 다 긁어서 들고 왔어요. 그 이유는 우즈베키스탄 입국시 적는 달러보다 많은 달러는 반출하지 못하기 때문이었어요. 입국신고서보다 적은 달러를 들고 나가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지만 입국신고서보다 많은 달러를 들고 나가는 것은 문제가 되었기 때문에 처음 우즈베키스탄에 들어올 때 쓴 달러보다 적지만 최대한 있는 달러 없는 달러 다 긁어모아서 들고 가고 있었어요. 짐도 경찰이 뒤지기 좋게 쌌어요. 일주일 여행가는 거라 짐을 많이 꾸리지도 않았어요. 짐을 다 까 보아서 사람 귀찮게 한다는 것 외에는 특이사항이 없는 것 같았기 때문에 짐 검사는 크게 두려울 것이 없었지만 국경심사때마다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어요. 조용히 넘어간 적도 많지만 무슨 각서에 서명하고 입국한 적도 있어요. 중요한 것은 여기는 과거 소련권 국가. 더욱이 이미 주 타슈켄트 타지키스탄 대사관에서 한 번 아수라장을 본데다 우즈베키스탄 주변 국경은 한결같이 악명이 자자했어요. 인터넷 뒤지다보면 솔직히 왜 이 나라 국경은 그렇게 악명이 자자한지 궁금할 지경. 더욱이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의 관계가 안 좋기 때문에 무슨 트집을 잡을지 몰랐어요. 범죄 뉴스라고는 전혀 나오지 않는 우즈베키스탄 TV 뉴스에서 가끔 타지키스탄에서 마약 밀수하려다 잡혔다는 뉴스는 나온다는 것은 양국 관계가 얼마나 안 좋은지 잘 보여주는 증거 중 하나라고 할 수도 있어요.


타지키스탄에 무사히 입국한다 해도 걱정이 끝은 아니었어요. 숙소 문제를 제대로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두샨베 가서 길을 헤매야 했어요. 평을 보니 정말 온통 극악의 레벨에 욕 투성이였어요. 다른 건 다 참을 수 있지만 호텔에 물이 안 나온다는 불만이 엄청나게 많았어요. 물이 끊긴다는 것은 화장실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해요.


먹는 것은 식당 가서 사 먹어요. 씻는 것은 세수와 양치는 식당 화장실서 해결하고 발은 물이 나올 때 씻는다고 해요. 머리는 물이 나올 때에 후다닥 감고 아침에 만약 물이 안 나온다면 모자를 푹 눌러쓰고 나가고, 샤워는 과감히 일주일간 포기하구요. 하지만 싸는 일은? 먹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싸는 것. 우즈베키스탄에서 거리에서 화장실을 찾아 가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에요. 물론 식당에서 밥 먹고 식당 화장실에서 해결하는 방법도 있지만 밥 시간과 배설 시간이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어려운 일. 더욱이 세 명이 다 비슷한 시간대에 배설 욕구를 느끼지 않으면 여행이 졸지에 화장실 찾기 게임으로 전락할 수도 있었어요.


기사 할아버지께서는 열심히 밟더니 드디어 다 왔다고 하셨어요.



국경에 와서 주변 사진을 찍고 있는데 기사 할아버지께서 이제 국경이니 사진 촬영을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셨어요. 그래서 국경은 카메라로 찍지 않고 아이폰으로 촬영했어요.




흐릿하게 보이는 허름한 건물이 바로 데나우 국경이랍니다. 이제 저 곳을 넘어가면 타지키스탄 들어가는 것이죠. 그리고 제일 뒤에 보이는 게이트가 바로 타지키스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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