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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에 인도네시아, 태국, 라오스 여행을 다녀온 이야기인 '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에필로그를 오늘 블로그에 올렸다. 블로그에 올리고 나서 '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폴더를 '2015 길고도 길었던 이야기'로 이름을 바꾸었다.


에필로그까지 다 해서 여행기 자체는 7월 17일에 다 썼지만 블로그에 올리는 것까지 해야 끝나는 거라 오늘 끝났다.


매번 여행기를 하나 완결할 때마다 느끼지만, 에필로그 쓸 때의 감정과 에필로그 업데이트할 때의 감정은 참 많이 다르다.


여행기 마지막화를 쓸 때는 최고 흥분 상태. 그 길었던 글쓰기 하나가 끝난다는 생각에 엄청나게 흥분된다. 등산으로 치면 정상이 코 앞인 느낌.


마지막화를 마치고 에필로그를 쓸 때는 기분이 많이 차분해진다. 항상 마지막화를 쓰자마자 바로 에필로그를 이어서 쓴다. 마지막화의 흥분이 가라앉으면서 이제 하나 끝냈다는 시원한 느낌이 든다. 내일부터는 이제 글을 무엇을 쓸까, 잠시 쉬는 시간 좀 가질까 하는 생각도 들고. 이번에는 그 감정이 특히 컸다. 작년 6월말 중국 여행기부터 시작해서 신물나게 여행기를 써왔으니까. 아직 밀린 여행기를 다 작성한 것은 아니지만 복습의 시간, 길고도 길었던 이야기는 정말로 컸다.


하지만 마지막 에필로그를 업데이트할 때 느낌은 많이 다르다. 오히려 섭섭하달까. 정말로 여행의 추억과 작별하는 느낌이 든다. 여행기마저 끝나면 여행의 기억을 그렇게 강렬히 떠올려야할 일이 실상 없다. 어쩌다 이야기하게 될 때 간간이 떠올리는 정도. 그래서 더욱 그런 느낌이 든다. 여행기 에필로그를 블로그에 올림으로써 그 여행이 끝나버렸다는 느낌. 한국어로는 이 느낌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 불어라면 복합과거가 단순과거로 바뀌는 것이고, 영어라면 현재완료가 과거로 바뀌는 느낌이라 할텐데. '나는 스님을 보았다'가 에필로그를 업데이트하면서 J'ai vu un moine bouddhiste 에서 Je vis un moine bouddhiste 으로 바뀌는 거랄까. 여행에 대한 기억이 현재와 연관이 있는 과거에서 현재와 연관이 없는 과거로 바뀌는 순간이 에필로그를 업데이트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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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을 쓸 때 시각에 상당히 많이 의존한다. 머리 속에 장면을 뚜렷히 떠올리고 그 장면을 보면서 글을 쓰는 편이다. 그림을 그릴 때는 이 장면이 종이 위로 올라가면 싹 사라져서 아무 것도 못 그리지만 다행히 글은 쓰는 동안 머리 속에 떠오른 영상이 계속 살아 있다. 단지 필력이 매우 부족해서 그 장면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뿐. 한편 소리, 촉각, 냄새, 맛 같은 것은 거의 떠올리지 않는다. 그다지 잘 떠오르지도 않고.


에필로그 올릴 때의 느낌도 하나의 영상으로 선명하게 떠오른다. 단지 글로 제대로 표현을 못할 뿐이다. 그래서 저렇게 쓰기는 했지만 참 아쉽다.


2년간 나를 따라다니던 그 여행의 기억. 사람의 형태를 만들어간다. 내가 만드는 것과 끊임없이 대화한다. 그 무게에 참 고통스러워하기도 하고, 그 존재에 기운을 내기도 한다. 투명하고 형태가 없던 것이 점점 형태를 갖추어간다. 에필로그가 올라가는 순간 그 형태가 완벽하게 완성되고, 이와 동시에 이 형태에서 혼이 빠져나가 다른 차원으로 날아가고 그 자리에 육체였던 회색 석상만 덩그러니 남는다. 뭐 이런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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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을 쓰다니 내가 그 글을 참 많이 아끼고 그 글 완성에 참 많이 시달렸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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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좀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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