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나 아침 8시에 일어났어요. 라오스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 위에 올라서야 하는 2015년 6월 27일이 밝아버렸어요. 아무리 저항해도 대자연의 섭리, 시간의 흐름을 거부할 수 없었어요.
매일 그래왔던 것처럼 바로 씻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다른 날에는 피곤하고 몸이 아파서 침대에 누워 조금 더 쉬기 위해서 그런 것이었어요. 이날은 달랐어요. 출국일이기 때문에 땀을 많이 흘려서 옷을 버려서는 안 되었기 때문에 일찍 나가서 열심히 돌아다닐 수 없었어요. 블로그 지인분과의 점심 약속은 오후 1시. 그 전에 전날 밤에 발견한 베트남 절이나 적당히 다녀올 계획이었어요.
그래도 마지막날에 '베트남 절'이라는 곳이 남아 있어서인지 다른 여행 때와는 달리 그렇게까지 체념하거나 만사 될 대로 되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만약 날씨만 선선했다면 밤을 새서라도 딸랏싸오 새벽 시장을 다녀왔을 거에요. 아니면 공항쪽 큰 길 따라 있는 절을 쭈루룩 들어가보든가요. 하지만 날이 매우 뜨거웠기 때문에 딸랏싸오 새벽시장도, 공항쪽 큰 길 따라 있는 절을 쭈루룩 들어가보는 것도 피해야 했어요. 다녀오면 무조건 땀범벅이니까요.
침대에 누워있었어요. 천장만 바라보았어요.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가고 싶은 나라.'
예전 친한 동생이 태국 여행 다녀온 후 작성한 여행기 마지막 화에 나왔던 문구. 그 문구가 머리 속에서 계속 맴돌았어요. 정말로 감동하며 읽은 여행기였어요. 그 정도로 뛰어난 여행기는 그 이후로도 거의 보지 못했어요. 그 매우 아름다운 여행기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문구에요. 친한 동생과 같이 태국 여행을 간 친구가 친한 동생을 위로해주기 위해 날린 멘트. 저건 영화 대사로 써도 사람들을 감동시킬 명대사로 손꼽힐 거에요. 친한 동생이 지어낸 것이 아니라 친한 동생 친구가 한 말이기는 하지만요.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가고 싶은 나라.'
하얗게 칠해진 천장을 바라보고 있어요. 머리 속에서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가고 싶은 나라'라는 문구가 연못 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물고기가 되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돌아다녔어요. 문구가 헤엄치며 만드는 곡선은 머리 속을 간지럽히는 파동이 되어 조용한 울림을 만들어냈어요. 조용한 울림은 머리뼈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고, 그 가루들은 다시 연못에 떨어져 작은 물고기가 되었어요. 커다란 물고기가 만들어내는 곡선에 작은 물고기들이 휩쓸려 들어가 커다란 물고기를 감싸는 완만한 곡선의 물결이 되었어요. 커다란 물고기는 계속해서 머리 속 연못 안을 유유히, 그리고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었어요. 끝없이요.
친한 동생의 여행기를 읽을 때 저 말에 담긴 느낌에 공감했어요. 그 공감은 반쪽짜리였어요. 머리 속 연못을 헤엄치는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가고 싶은 나라'라는 문구를 하얀 천장 위에 전사하여 한없이 가만히 바라보았어요. 저 문구 속에 담긴 그 의미와 느낌이 이제 반절 남아있던 껍질마저 벗겨지고 순수한 속살이 완벽히 드러났어요. 웃으며 돌아가는 것이, 밝은 표정을 지으며 이 나라에 마지막 인사를 하는 것이 이 나라에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제 마지막 선물이었어요. 비록 죽도록 돌아가기 싫고 1초라도 이 나라에 더 머무르고 싶은 것이 사실이지만요.
'인상 펴자.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가고 싶은 나라 아냐.'
이제 시간이 되었어요. 자리에서 일어나 샤워를 하고 짐을 꾸렸어요. 마지막으로 방정리를 한 후, 짐을 갖고 1층으로 내려가 체크아웃을 했어요. 짐을 맡기고 밖으로 나왔어요.
"베트남 절 가자. 1시에 숙소로 오시기로 했으니 부지런히 움직여야지."
11시 반. 숙소 밖으로 나왔어요.
햇살이 따갑게 쏟아지고 있었어요. 날이 너무 좋았어요. 정확히는 쓸 데 없이 지나치게 맑았어요.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땀이 흐르기 시작했어요.
"뭐야? 여기는 지금도 잠겨 있잖아!"
문이 굳게 잠겨 있었어요. 철창 안으로 카메라 렌즈를 밀어넣고 사진을 한 장 찍었어요.
이제 다음 베트남 절로 갈 차례.
"거기는 문 열었겠지."
11시 반이 넘었는데도 문이 잠겨 있는 것은 아예 폐쇄되었다는 의미일 거에요. 설마 다른 하나도 문이 잠겨 있을까 생각하며 뜨거운 햇살 아래를 걸어갔어요.
"여기는 열었다!"
일주문에 라오어로 ວັດ ບາງ ລອງ, 베트남어로 CHÙA BÀNG-LONG 이라고 적혀 있었어요. 반 렁 사원이었어요.
경내로 들어갔어요.
안으로 들어가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독특한 모양으로 세워진 불탑이었어요.
참파꽃이 떨어져서 어린 부처가 걸어가는 길이 정말로 꽃길이 되었어요.
하얀 불상은 관음보살상 같았어요.
확실히 지금까지 보아온 태국, 라오스의 절과는 매우 많이 달랐어요. 이 지역 건축 양식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도 보자마자 '이 절은 확실히 다른데?'라는 말이 나오게 생긴 모습이었어요. 무엇을 보든, 어디를 보든 모든 것이 달랐어요.
바닥에는 라오스 국화인 참파꽃이 예쁘게 떨어져 있었어요. 이 사랑스럽운 참파꽃도 오늘이 마지막이라니 슬퍼졌어요. 저 색과 모양이 변하지만 않는다면 한 송이 들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방에 장식을 하고 두고두고 바라보며 이 여행을 떠올리고픈 마음이 가득했어요.
"오늘 아주 사진 찍으라고 햇볕도 도와주네."
사진을 찍으니 색이 매우 쨍하고 강렬하게 잘 나왔어요. 마지막에 웃으며 가래요. 그럴 거에요.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가고 싶은 나라' 라는 말을 떠올리며 웃으며 마지막에 작별인사를 할 거에요. 그리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탄식을 내뱉겠죠. 괜찮아요. 한국에서 내뱉는 저의 아쉬움 가득한 한숨 소리는 여기까지 들릴 리가 없으니까요.
"베트남 사람들 한자 모르는데 대법당은 대웅보전을 한자로 적어놓았네."
베트남 여행 중 베트남 친구와 같이 후에 황성에 갔을 때 제가 베트남 친구에게 한자를 읽어주었어요. 베트남인들 중 중국어, 일본어를 공부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한자 몰라요. 한자 교육 자체에 별 관심이 없더라구요. 일주문에는 전부 라틴 문자로 써놓았는데 대법당 현판은 한자로 대웅보전이 적혀 있는 것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대웅보전 안으로 들어갔어요.
대웅보전 안에 모셔진 불상도 태국, 라오스 불상과 확실히 달랐어요. 우리나라 불상과도 차이가 있지만, 태국과 라오스 불상에 비해서는 우리나라 불상과 훨씬 많이 닮았어요. 베트남 부처님은 라오스 부처님들 몰래 뭘 그리 잘 드셨는지 살이 많이 찌셨어요.
대웅보전 안에는 용이 세워진 커다란 기둥이 지붕을 받치고 있었어요.
삼배를 드리고 대웅보전 내부를 구경하고 사진을 찍고 있는데 나이가 있으신 비구니분께서 들어오셨어요. 절에서 일하는 청년 한 명도 같이 들어왔어요. 둘은 베트남어로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스님께서 제게 따라오라고 손짓했어요. 따라갔어요. 왜 따라오라고 손짓했나 가보았더니 불당 안에 있는 것을 대웅보전 불단 뒷편에 있는 창고로 나르는 것을 도와달라는 것이었어요. 도와달라고 하셔서 도와드렸어요. 창고로 나르는 것을 마치고 다시 법당 내부를 구경했어요.
법당에서 나왔어요. 스님께서 저와 친구를 부르셨어요.
스님께서는 이 음식을 먹으라고 하셨어요. 라오스의 베트남인 음식인지는 잘 몰라요. 스님과 청년이 베트남어로 이야기를 주고 받은 것으로 보아 베트남 음식이 아닐까 추측해볼 뿐이었어요. 스님께서 먹고 가라고 하셔서 먹었어요. 맛이 달콤하고 부드러웠어요.
"깜 언."
오랜만에 베트남어로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렸어요.
라오스 비엔티안에 있는 베트남 절인 방 렁 사원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어요.
"이제 숙소 가서 쉬자."
더 돌아다니고 싶었지만 멀리 갈 수 없었어요. 벌써 12시 20분이었거든요. 숙소로 돌아가서 숙소 앞 의자에 앉아 땀을 식히며 앉아서 시간을 보냈어요. 블로그 지인분께서 숙소로 오셨어요.
지인분께서 저와 친구를 데려가신 식당은 컵짜이더였어요. 지인분께서는 귀뚜라미 먹어본 적 있냐고 물어보셨어요. 메뚜기까지는 먹어보았는데 귀뚜라미는 못 먹어보았어요. 지인분께서 한 번 먹어보겠냐고 하셨어요. 그래서 먹어보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라오스 대표 음식인 땀막훙도 시켜주셨어요.
이것이 바로 귀뚜라미 요리에요.
"이거 맛있어요!"
메뚜기보다 훨씬 부드럽고 고소했어요. 건새우보다 더 맛있었어요. 이건 생긴 모습에 지나치게 신경쓰지 않으면 매우 맛있었어요.
지인분께서 주문하신 다른 음식들 모두 맛있었어요. 메콩강 유역에서 채취한 민물 미역을 건조해 만든 것도 맛있었고, 돼지 껍데기 튀김도 맛있고, 닭구이도 맛있었고, 모닝글로리 볶음도 맛있었어요.
하지만 땀막훙만큼은 조금 어려웠어요. 라오인들에게 라오스 음식 먹었다고 말하면 꼭 땀막훙 ຕຳໝາກຮຸ່ງ 먹어보았냐고 물어봐요. 이 음식이 태국의 쏨땀과 비슷한 음식이에요. 우리나라 음식에서 김치 정도 되는 것 같아요. 태국에서 쏨땀을 그럭저럭 나쁘지 않게 먹었기 때문에 땀막훙도 별 무리없이 잘 먹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건 맛이 독했어요. 지인분께서 이것은 외국인들 위해서 순하게 만든 것이고, 라오스 현지인들이 먹는 땀막훙은 훨씬 더 비리고 맵다고 알려주셨어요. 하지만 제게 이것은 충분히 많이 비리고 땀나게 매웠어요. 마지막에 지인분께서 땀막훙을 사주시기 전까지 땀막훙을 안 먹은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땀막훙도 다 먹었어요.
식사를 마치고 카페로 이동했어요. 카페에서 지인분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3시 40분쯤 카페에서 나와 지인분과 헤어져 숙소를 향해 걸어갔어요.
"하늘이 뭔가 불안하다?"
아침에 베트남 절 갈 때만 해도 그렇게 과다하게 햇볕이 쏟아지더니 날이 점점 꾸물꾸물해지기 시작했어요. 스콜이 쏟아질 때가 다가오고 있었어요.
'제발 내가 공항 도착한 후에 쏟아져라.'
스콜이 아무리 소나기라지만 우습게 볼 정도로 가늘게 내리는 비가 아니었어요. 진짜로 위에서 양동이로 물 쏟아붓는 것처럼 쫙 퍼부었어요. 공항 갈 때 스콜이 퍼부으면 정말 대책없어져요.
'아직 부처님 행운 포인트가 남아 있을 거야. 설마 어제 친구 사귀고 베트남 절 찾았다고 다 써버렸을라구. 내가 그동안 간 절이 몇 개고 절한 횟수가 몇 번인데.'
제발 마지막으로 운이 따라주기를 바랬어요. 그 운은 바로 공항 갈 때 스콜을 만나지 않는 것이었어요.
"우리 이제 낍 털러 갈까?"
공항 픽업 서비스 비용은 체크아웃할 때 지불했어요. 이제 낍을 전부 다 써도 상관 없었어요. 남은 낍을 털기 위해 마트로 갔어요.
지인분꼐서 라오스도 커피가 괜찮다고 알려주셨어요. 인스턴트 커피 중 다오 커피 Dao coffee 가 라오스 커피라고 알려주셨구요. 그래서 먼저 다오 커피가 있는 쪽으로 갔어요.
"커피 종류 많네?"
그냥 종류가 많은 것이 아니라 딸기 커피, 오렌지 커피 같은 것도 있었어요.
'저걸 한 번 사 봐, 말아?'
일단 매장을 둘어보며 과자 같은 것 중 살 것이 있는지 보고난 후 결정하기로 했어요.
"뭐야? 다 태국산이잖아?"
다오 커피와 비어 라오를 제외한 대부분이 태국 제품이었고, 일부가 그 외 국가에서 수입해 온 것이었어요. 라오스 것이라고는 정말로 다오 커피와 비어 라오 뿐이었어요.
"과일 커피나 사야겠다."
처음 들어왔을 때 매장이 커서 혹시 낍이 부족하면 어쩌나 걱정했어요. 그러나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었어요. 라오스 간식과 커피를 구입하고 싶어서 들어온 것이었는데 라오스 제품이라고는 다오 커피와 비어 라오 뿐이었거든요. 돈이 남아서 다오 커피 캔커피 두 종류도 샀어요.
숙소로 돌아와 커피를 홀짝이고 있는데 우렁찬 천둥 소리가 들렸어요.
"앗, 스콜이다!"
빗방울이 지표면을 뚫고 멘틀까지 돌파하려는 기세로 떨어지고 있었어요. 얼핏 보면 이게 비인제 우박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빗방울 알이 참 실했어요.
"왜 하필 공항 갈 시간 다 되어서 스콜이야!"
이대로 나의 행운은 다 끝나버리는 건가! 이제 라오스는 나를 저버리는 건가? 오늘 라오스 절 안 가고 베트남 절만 가서 그 댓가를 치루는 거야?
공항으로 출발하기로 한 시간이 넘었는데도 스콜은 멈추지 않았어요. 아저씨는 계속 저와 친구에게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했어요.
잠시 후. 스콜 빗줄기가 가늘어졌어요. 아저씨는 그제서야 차에 타라고 손짓했어요.
공항으로 가는 동안 가늘은 빗방울이 힘없이 툭툭 떨어졌어요.
2015년 6월 27일 오후 5시 15분. 드디어 라오스 비엔티안 왓따이 국제공항에 도착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