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외대 근처에 살 때였어요. 외대 근처에서 혼자 밥을 먹을만한 식당이 몇 곳 있었는데, 항상 어지간하면 5천원으로 먹을 수 있는 식당을 골라가곤 했어요. 그러다 아주 가끔 혼자 있는데 고기가 너무 먹고 싶을 때에는 보쌈 정식을 파는 식당에 가곤 했어요. 당시 가격이 7천원인가 그래서 다른 식당들보다 가격이 있는 곳이었어요. 식당은 낡은 한옥 건물이었어요. 홀에 탁자가 몇 개 있고, 안에 방으로 들어가서 먹는 구조였어요.


외대 근처에서 떠나서 의정부에서 살기 시작한 이후, 그 보쌈 정식 파는 식당이 가끔 떠오르곤 했어요. 왜냐하면 그 동네 살 때 제가 먹은 밥 중 가장 고급이었으니까요. 혼자서 파스타 먹으러 갈 일은 없고, 결국 먹는 거라고는 돈까스, 어쩌다 다른 사람들과 밥 같이 먹게 되면 부대찌개, 그리고 작정하고 고기 맛을 보고 싶어서 가는 식당이 그 식당이었어요.


"어? 어디 갔지?"


위치를 분명히 기억하는데 식당이 보이지 않았어요. 오랜만에 간 곳이기는 했지만 그 위치를 잊어버릴 리가 없었어요. 은주네 식당이 있는 길에서 외대 반대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있는 식당이었거든요. 그 골목 중 식당이 있게 생긴 골목이라고는 하나 뿐이라 그 골목으로 들어가면 되었어요. 그 골목길로 들어갔는데 제가 어쩌다 큰맘 먹고 고기맛 보러 보쌈 정식을 먹던 식당이 안 보였어요.


'거기 망했나? 나름 인기 괜찮은 편이었는데...'


많이 아쉽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아쉬워한다고 해서 사라진 식당이 갑자기 뿅하고 등장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외대 근처에서 살 때 제가 자주 가던 식당들이 여럿 없어졌고 다른 식당들이 많이 생겼어요. 길바닥은 그대로인데 식당만 조금씩 바뀌었어요. 제가 가던 식당 중 남아 있는 식당이라고는 닭터와 그 길가에 있는 왕돈까스 파는 가게 뿐. 지하에 있던 피자 돈까스 팔던 가게도 없어졌고, 러시아 식당인 바보 이반도 없어졌어요. 그리고 제가 살 때는 없었던 베트남 쌀국수집은 있었구요.


골목길을 돌아다니는데 보쌈집이 하나 보였어요.


'이거 보쌈정식 가격이 예전이랑 같은데? 여기로 옮긴 건가?'


식당 이름은 본가 할머니 보쌈이었어요.


외대 식당 - 본가 할머니 보쌈


간판에 붙어 있는 사진이 예전에 제가 먹었던 보쌈 정식과 매우 비슷했어요.


본가 할머니 보쌈


"일단 들어가보자."


안으로 들어갔어요. 홀에서 먹고 싶었지만 홀에 자리가 없어서 좌식 탁자로 갔어요.


"보쌈 정식 하나 주세요."


보쌈 정식 1인분 파는 건 내 기억 속 식당과 비슷한데 여기 맞나? 왠지 맞는 것 같았어요.


밑반찬과 공기밥이 나왔어요.


보쌈 정식 밑반찬


"어? 이거 예전에 그 보쌈집이랑 똑같은데?"


저 마요네즈로 버무린 하얀 당면 같은 것. 저건 정말 잊을 수가 없다. 아직까지도 저건 대체 뭔지 미스테리. 그 당시에도 이것은 대체 정체가 뭔가 하면서 집어먹었어요.


보쌈 정식이 나왔어요.


외대 보쌈 정식


"생마늘 어디 갔어?"


예전에 제가 가던 집에서는 생마늘도 나왔어요. 여기는 생마늘이 안 보였어요. 그거 말고는 그대로였어요.



보쌈정식 1인분인데도 된장찌개도 나왔어요.


반찬맛, 고기맛은 예전에 다른 식당에서 먹었던 보쌈 정식과 맛이 매우 비슷했어요. 고기 양은 그 식당보다 미세하게 더 많은 것 같았어요. 일단 양에서는 참 만족스러웠어요. 역시 대학가로 가면 가성비가 좋은 식당들이 있어요.


단지 김치는 제 입맛에 안 맞았어요. 신맛을 식초로 낸 것처럼 느껴졌어요. 김치 그 자체와 신맛이 잘 어울리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김치가 팍 익은 것은 아니었어요. 김치의 신맛이 제게는 거슬렸어요. 그래서 고기를 김치랑 먹다가 나중에는 김치는 거의 손 안 대고 쌈장에 찍어먹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거 예전 그 식당 같은데?


계산할 때 아저씨께 여쭈어보았어요.


"아, 한옥집? 거기는 없어진지 한참 되었어. 거기 내 처남이 하던 가게야. 여기랑 거기 같다고 해도 돼."


외대 근처에서 7천원에 보쌈 정식 먹고 싶으면 본가 할머니 보쌈으로 가면 되요.



Posted by 좀좀이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비밀댓글입니다

    2017.07.21 19:13 [ ADDR : EDIT/ DEL : REPLY ]
  2. 보쌈 1인분에 7천원. 가격도 좋은데 보쌈 양도 푸짐해요. 이정도면 한사람이 먹기 정말 좋겠어요.
    고기가 잘 삶아진 게 보들보들 해 보이구요. 보쌈은 김치가 맛있어야 좋은데 그점은 아쉽네요.
    그런데 사진으로 보면 김치가 아주 맛있어 보여요. ^^
    된장찌개까지 나오니까 진짜 보쌈 정식 맞네요. 먹고 싶어요. ^^*

    2017.07.22 07:4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대학가라 그런지 양도 푸짐하고 가격도 착하더라구요. 예전 한옥집에서 먹었을 때 김치맛과 다른 점이 조금 아쉬웠지만요. 그 신맛의 정체가 대체 뭔지 궁금해요. 일부러 신맛을 내려고 한 거 같았는데요...ㅎㅎ;

      2017.07.22 17:24 신고 [ ADDR : EDIT/ DEL ]
  3. 보쌈을 1인분씩 먹을 수 있는건 정말 좋은 것 같아요.
    혼자서 고기 생각날 때 집밥처럼 먹을 수 있겠네요^^

    2017.07.22 11:3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보쌈을 1인분씩 먹을 수 있어서 참 좋아요. 혼자 식사로 먹고 나올 수 있어서요 ㅎㅎ

      2017.07.22 17:29 신고 [ ADDR : EDIT/ DEL ]
  4. 오~~ 푸짐하니 좋네요! 아마 미스테리 당면의 정체는 천사채일 꺼에요~ 독특한 식감으로 샐러드 해먹으면 맛있죠!ㅎㅎ 추억의 맛이었을 것 같아요~

    2017.07.22 14:0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저 당면 같은 것이 천사채 라는 것이었군요. 천사채도 처음 들어봐요 ㅎㅎ;; 김치 빼고 전부 추억의 맛이었어요^^

      2017.07.22 17:30 신고 [ ADDR : EDIT/ DEL ]
  5. 없어진 곳도 친척이 하는 곳이었군요.
    근데 저기도 외관이 오래되어 보이던데, 전엔 미처 못봤나 봐요.
    보쌈정식 예전에 런치타임으로 몇 번 먹었는데, 체인보단 이런 곳이 더 좋은 듯요.^^

    2017.07.22 16:2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저기는 그렇게까지 막 오래된 곳은 아니에요. 저 자리에 원래 다른 식당이 있었거든요. 폐업이 많은 요즘 기준으로는 오래된 식당이긴 하겠지만요 ㅎㅎ 저도 겨울뵤올님 말에 동의해요 ^^

      2017.07.23 02:55 신고 [ ADDR : EDIT/ DEL ]
  6. 으악 은주네 식당!!!!! 제가 살던 쪽과는 방향이 달랐지만 그래도 알아요 ㅋㅋㅋ 보쌈집은 생각 안나는데 그건 아마 제가 보쌈을 안 좋아해서 그랬던 거 같고... 은주네 식당이란 단어 하나에 갑자기 옛날 그쪽 살던 기억이 퐝퐝 터지네요

    2017.07.22 22:2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은주네 식당은 여전히 있더라구요. 이번에 가서 재미있었던 것이 그 동네에 게스트하우스들이 생겼더라구요. 고시원도 게스트하우스 겸업을 하고 있구요. ㅎㅎ

      2017.07.23 03:01 신고 [ ADDR : EDIT/ DEL ]
  7. 저 하얀 당면 천사채일거예요! 라고 하려고 보니 윗분이 댓글을ㅋㅋㅋ
    호주 한인마트에서도 저거 판매하는데, 외국인이 막 엔젤 뭐시기 누들 사고 싶다고 그러는 걸 들은 적이 있어요. (빵터짐ㅋㅋㅋㅋㅋㅋㅋㅋ)
    처남 가게면 정말 같은 곳 맞네요 ㅋㅋㅋ

    2017.07.23 21:0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천사채가 뭔지 몰라서 찾아보았더니 다시마로 만든 것이었네요. 회 아래 깔아주는 그 당면 비슷한 거요...여태 뭔지도 모르고 먹어대었어요 ㅋㅋ;;; 그런데 엔젤 뭐시기 누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천사들은 밥을 저걸로 먹는군요 ㅋㅋㅋㅋㅋㅋ 김치맛이 다르긴 했지만 나머지는 같더라구요 ㅎㅎ

      2017.07.24 18:50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