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2015)

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 83 라오스 비엔티안 왓 옹뜨, 왓 하이쏙, 왓 미싸이, 라오스 국립 도서관

좀좀이 2017. 7. 15.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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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 인펭에서 나오니 앞에 왓 옹뜨가 있었어요.



"이 근처에 서점 하나 있지?"


지도를 보니 이 근처에 서점이 하나 있었어요.


"서점부터 가서 본 다음에 왓 옹뜨 가자."


이러다 왓 옹뜨가 왜 자꾸 간만 보냐고 화내는 거 아냐?


왓 옹뜨를 계속 지나가고 있는데 정작 들어가지는 않았어요. 들어갈까 말까만 하다가 안 들어가고 있었어요. 제대로 왓 옹뜨를 간보고 있었어요. 왓 옹뜨가 그만 간보라고 화낼 정도로 계속 주변만 맴돌고 있었어요. 일부러 간을 보려고 한 것은 아니었어요. 왓 옹뜨 위치가 그렇게 생겼어요. 일단 서점을 가본 후 왓 옹뜨를 보고, 셋타틸랏 거리를 따라 왓 씨싸켓으로 가기로 했어요.


"서점 이쯤에 있어야 하지 않나?"


구글 지도를 보며 찾아가는데 서점 위치에 서점이 없었어요. 이 근처에 하나 있어야 하는데 보이지 않았어요. 어떻게 간신히 서점 하나를 찾아내었어요.




온통 영어로 된 책이었어요. 영어로 된 책조차 아주 시원찮았어요.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라오어판 같은 것은 아예 존재할 수 없는 서점이었어요. 아예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자체를 몰랐어요.


'라오어로 된 책 자체가 없는데 뭘 바라겠냐.'


포기하고 왓 옹뜨로 갔어요.



드디어 이 문을 통과해 왓 옹뜨 안으로 들어가는구나!



안으로 들어가자 귤색으로 칠한 대법전 뒷모습이 보였어요.



나무 아래에는 불상들이 있었어요.



슬레이트 지붕이 달린 전각 안에 모셔진 불상도 있고, 그냥 모셔진 불상도 있었어요. 통일성을 찾기 어려웠어요. 우주 삼라만상의 다양성을 표현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통일성 찾기 어려운 불상 4기가 나무 한 그루 아래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어요. 그 앞에는 벽돌이 쌓여 있었어요. 참 정신 산만하게 만드는 풍경이었어요. '아름다움'이라는 잡념을 떨쳐버리고 오직 불심에만 집중할 수 있는 모습이었어요.



절 안에는 커다란 2층 건물이 있었어요. 2층 건물 앞에는 나무 표지판이 있었어요.



왓 옹뜨는 라오어로 ວັດອົງຕື້ 에요. 라틴 문자로는 Wat Ong Teu 라고 써요. 이 절은 싸이쎄타 왕이라고도 불리는 라오스 란나 왕조의 왕 중 한 명인 쎗타티랏 왕 재위 시절인 16세기에 지어진 절이에요. 그러나 이 절 역시 시암 군대에 의해 파괴되었고, 19세기와 20세기에 다시 지어졌다고 해요. 프랑스 지배 시절 재건된 후, 왓 옹뜨는 상좌부 불교 학교로 사용되었대요. 그리고 현재 왓 옹뜨는 라오스의 국립 불교 연구 센터 기능을 하고 있다고 해요.


법당 안으로 들어갔어요.



법당 안에는 '프라 옹뜨 불상'이 모셔져 있었어요. 이 불상은 비엔티안에서 가장 큰 청동 불상이라고 해요. 이 불상 이름이 '프라 옹뜨'인 이유는 이 절의 이름이 '옹뜨'이기 때문이라고 해요.



불상에 삼배를 드리고 사진을 찍은 후 밖으로 나왔어요.


왓 옹뜨에도 종과 북이 매달린 건물이 있었어요.



왓 옹뜨를 다 보고 밖으로 나왔어요.


"저거도 절 아니야?"



왓 옹뜨에서 바로 왓 미싸이로 넘어갈까 했는데 절이 하나 더 있었어요.


'저거 왓 옹뜨랑 같은 절인가?'


길 건너에 있기는 했는데 길 때문에 왓 옹뜨가 두 곳으로 갈린 것인지 원래 다른 절인지 애매했어요. 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다른 절 같아보였어요. 길을 건너서 문으로 갔어요. 라오어를 떠듬떠듬 읽어보았어요. 일단 '왓 옹뜨'라고 적혀 있지는 않았어요. 이 절은 왓 하이쏙 ວັດຫາຍໂສກ 이라는 절이었어요. 라틴 문자로는 Vat Haisoke 라고 표기해요. '왓 하이쏙'을 '왓 하이쏘케'라고 적어놓은 이유는 불어의 영향 때문인 것 같았어요.


안으로 들어갔어요. 들어가자마자 대법전 건물이 보였어요.


wat haisoke in Vientiane, Laos


절에는 3층으로 된 종루가 있었어요.



커다란 나무 아래에는 요일별 불상이 모셔져 있었어요.



한쪽 구석에는 부도탑 같은 작은 탑들이 모여 있었어요.



이제 법당 안에 들어갈 차례였어요.



법당 지붕에는 이런 조각이 붙어 있었어요.



법당 안으로 들어갔어요.


"여기는 꽤 괜찮네. 꽤 큰데?"


라오스 비엔티안 절 - 왓 하이쏙


절 안에는 역시나 불상이 많이 모셔져 있었어요. 여기는 커다란 불상을 중심으로 불상 3기가 일렬로 앉아 있었어요.



삼배를 드린 후 위를 쳐다보았어요. 여러 이야기가 담긴 벽화가 그려져 있었어요. 아쉽게도 이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인지는 전혀 알 수 없었어요. 무언가 고행과 관련된 이야기 같았어요.



한쪽 구석에는 소반이 여러 개 놓여 있었어요.



밖으로 나왔어요. 동자승들이 놀고 있었어요.


라오스 동자승


절을 천천히 한 번 더 둘러보았어요.




"이건 조금 너무했다. 깜짝 놀랐네!"



불단 안에 사람 머리 모양이 모셔져 있었어요. 저것이 왜 저기 모셔져 있는지 모르겠어요. 불상의 얼굴 같게 생기지 않았어요. 게다가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어요. 쓸 데 없이 눈동자까지 있었어요. 뭔가 참 그로테스크했어요. 저 안에서 사람이 고개만 들이밀고 밖을 쳐다보는 것 같았어요. 안에 갇혀서 바깥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구경해보려고 고개를 내밀어보려 노력하는 모습이었어요.


이제 드디어 왓 미싸이를 갈 차례.



힘차게 왓 미싸이로 걸어갔어요. 원래 목표를 다 달성할 수만 있다면 삼배가 아니라 삼천배라도 드릴 생각이었어요. 이건 '독기'이자 '악'이었거든요. 욕심을 버리고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지라고 이러는 건가 싶기도 했지만, 그럴 수록 욕심과 번뇌는 더욱 강해질 뿐이었어요. 내가 이기나 라오스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는 마음이었어요. 아무 것도 없다는 비엔티안. 제 목표를 이룰 수 있는 것이 정말로 아무 것도 없는지 꼭 확인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왓 미싸이에 도착했어요.



"확실히 루앙프라방의 절과는 다르구나."


라오스 비엔티안 절 - 왓 미싸이


딱 보자마자 이 절은 루앙프라방에 있는 절과 많이 달랐어요.


왓 미싸이는 라오어로 ວັດມີໄຊ 에요. 이 절 이름의 뜻은 '승리의 절'이에요. 왓 미싸이는 16세기 란나 왕조의 왕 Sai Setthathirat 왕이 버마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절이에요. 이 절은 1900년 초기에 중부 태국 양식의 절로 개축되었어요. 그래서 루앙프라방의 절과는 확실히 그 모습이 많이 달라요. 단, 이 절 이름이 '승리의 절'이기는 하나, 그 승리가 란나 왕조가 버마군을 이긴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에요. 이 절 이름 속 '승리'는 부처님이 부처님의 불굴의 의지를 시험하기 위해 찾아온 악마 마라에 굴하지 않고 승리했다는 설화를 의미해요.



"이 절은 왜 문 잠겼어!"


조금 전 서점 때문에 분노했는데 이 절의 대법당 문도 굳게 잠겨 있었어요.


이 절의 옆은 학교였어요.


라오스 교실



'여기 안에 들어갈 방법 없을 건가?'


대법당 건물을 멍하니 바라보았어요.



'이제 다음 갈 곳으로 가야 하나? 여기는 안에 못 보고?'



그때였어요. 스님 한 분이 보였어요. 달려갔어요. 아주 공손하게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확실히 굽히며 인사드렸어요. 스님께서 인사를 받아주셨어요. 스님께 대법당 안에 들어가고 싶다고 손짓 발짓 해가며 영어로 말했어요. 스님께서 잠시 기다리라고 하시더니 어디론가 가셨어요. 잠시 후, 열쇠를 들고 돌아오셨어요. 열쇠로 대법당 문을 열어주셨어요.


"이 절도 내부 괜찮은데?"


라오스 비엔티안 절 - 왓 미싸이


대법당 내부 공간이 넓지는 않았어요. 커다란 불상이 모셔져 있고, 그 앞에는 비슷하게 생긴 작은 불상이 모셔져 있었어요. 그 양옆으로 보다 작은 불상 2기가 모셔져 있었구요. 벽은 본존불 의 양 다리에 닿을락 말락했어요.



삼배를 드렸어요. 제발 이 여행을 잘 끝내게 해달라고 빌었어요. 이 말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었어요. 돌아갈 때까지 사고 안 나기를, 그리고 목표를 완벽히 달성 못해도 좋으니까 저 스스로 납득할 수준으로 달성할 수 있기를 비는 의미가 '제발 이 여행을 잘 끝내게 해주세요' 라는 말에 내포되어 있었어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부처님께 아무리 절하고 빌어보아야 생길 리가 없죠. 하지만 저 스스로 확실히 단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랬어요. 나중에 귀국한 후에 '그거 딱 그 서점에서만 팔아요'라는 속 뒤집힐 말을 접하지 않도록요.


대법당 내부를 구경하고 나왔어요. 목종이 매달린 건물이 하나 있었어요.



사진 속 나무 옆 빨간 기둥처럼 생긴 것이 나무종이에요.



이 건물 옆에 있는 학교가 어떻게 생겼나 보러 학교 건물로 다가갔어요.



이 건물은 1963년에 지어졌나봐요. 벽에 부조로 적혀 있는 글자 중 읽을 수 있는 것은 '1963' 뿐이었어요.


건물에는 교실이 여러 개 있었어요. 사회주의 국가라서 그런지 문 위에 별이 그려져 있어어요.



"쟤들 너 공부하고 있는 거 공부하는 거 아니야?"

"어디?"

"칠판에 글자 적혀 있잖아. 쟤들도 글자 공부하나본데?"


라오스 라오어 글자 수업


칠판을 바라보았어요.


"쟤들이 나보다 훨씬 뒤의 것 배우는 거 닮다."


저는 라오스의 1학년 라오어 교과서 중 '마 미 빠' ນາມີປາ (논에 물고기가 있습니다) 를 보는 수준이었어요. 제게 라오스의 라오어 교과서를 선물로 보내주신 블로그 지인의 정성에 답하기 위해 열심히 보려고 했지만 저거 이상 볼 수가 없었어요. 라오어 성조 문제도 있었고, 사전도 이상했어요. 심지어는 구글 번역기조차 라오어는 이상하게 해석했어요. '마 미 빠' 이후 총체적 난국에 빠져서 더 이상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었어요. 칠판에 적혀 있는 것은 제가 공부한 '마 미 빠'보다 훨씬 뒤에 나오는 것들이었어요.


"너도 저기 들어가서 같이 수업 들어."

"쟤들이 나보다 훨씬 수준 높은데 어떻게 같이 들어. 나는 새학년 시작하면 그때쯤?"


친구와 웃으며 말했어요. 외국어를 공부할 때, 어지간히 공부해서는 공부하는 외국어가 모국어인 애들보다 수준이 많이 떨어져요. 그나마 그 어린이들보다 낫다고 자부한다는 것이 문법적 정확성, 그리고 글자를 보다 잘 쓸 수 있다는 것 정도에요. 외국에서 어학연수 1년 모든 것을 쏟아가며 공부해도 회화는 현지 초등학교 1학년 애들에게 그냥 발려요. 그런데 저는 라오어 글자도 아직 제대로 못 읽는 수준. 성조는 고사하고 글자도 간신히 떠듬거리며 읽고, 잘 못 읽는 글자들도 있었어요. 당연히 저 초등학생 글자 배우는 수업은 제게 수준이 너무 높아서 제가 감당할 수 없는 레벨이었어요.


"이 근처에 서점 하나 더 있어."

"거기도 가자. 진짜 이 나라 책이 뭐가 있는지 한 번 다 봐보든가 해야지."

"그래."


지도를 보니 서점이 하나 더 있었어요. 왓 씨싸켓 가는 길에 있었기 때문에 가는 길에 들르기로 했어요.


서점을 향해 걸어가는데 작은 풀빵 비슷한 것을 파는 가게가 보였어요.


라오스 음식 - 카눔 콕


이것은 '카눔 콕'이라는 라오스 음식이었어요. 속에 설탕이 들어간 것도 있고, 돼지고기가 들어간 것도 있었어요. 맛은 빈대떡과 비슷했어요.


"저기는 뭔가 있어보여!"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가 떠올랐어요. 타슈켄트에서 새 책은 주로 샤르크 지요코르 Sharq Ziyokori 서점에서 팔았어요. 새책을 구할 때는 관공서에서 운영하는 서점처럼 생긴 샤르크 지요코르로 갔고, 그것과는 별도로 좋은 책을 구하기 위해 헌책방을 들쑤시며 다녔어요. 중요한 것은 헌책방이 아니라 일반 서점에서 우즈베크어로 된 책은 Sharq Ziyokori에서 '독점적'이라 해도 될 만큼 유독 많이, 그리고 다양하게 팔았어요. 나머지 서점들은 러시아어 서적이 대부분이었구요.


"그래, 저기 가면 뭔가 되겠다!"


서점 안으로 들어갔어요.


'서점으로 될 일이 아니구나.'


절망을 넘어섰어요. 이제 심연으로, 나락으로 떨어졌어요. 서점에 책이 참 없었어요. 라오어로 된 책은 거의 전부 선전물 같이 생긴 책이었어요. 요리책도, 전래동화책도 없었어요. 한숨만 나왔어요. 서점을 돌아다닌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어요.


'이 나라에 대체 이 나라 말로 된 책이 뭐가 있는지부터 확인해야겠다.'


왓 씨싸켓으로 가는 길에 라오스 국립 도서관이 있었어요. 원래 도서관에 갈 계획은 전혀 없었어요. 연구자료를 구하러 라오스 온 것이 아니었거든요. 제 여행계획에서 도서관은 보이면 가고 안 보이면 안 가는 곳 정도였어요. 서점과 달리 도서관에는 관심이 거의 없거든요. 라오스도 마찬가지였어요. 서점을 돌아다니며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구입할 계획이었고, 도서관은 보이면 구경해볼지 생각은 해보겠다는 정도였어요. 이제 바뀌었어요. 서점을 돌아다녀봐야 나올 게 없었어요. 이제 심연의 밑바닥까지 떨어졌어요.


'이대로 서점을 더 찾아다니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겠다'


일단 라오스에 라오어로 된 책이 대체 뭐가 있나부터 보는 것이 우선이었어요. 도서관에 가서 라오어로 된 책이 무엇이 있는지 확인부터 하기로 했어요. 지도에 나오는 서점들을 몇 곳 가보았지만 모두 그 결과가 참담했어요. 이런 식으로 돌아다니면 시간과 체력만 계속 소모할 뿐이었어요. 서점 한 곳 들어갈 때마다 그 서점 안에 있는 책만큼 절망이 돌아왔고 나락으로 떨어져갔어요. 지도에는 헌책방, 서점 다 싸잡아서 '서점'이라고 나와 있었어요. 이래서는 며칠 안 되는 비엔티안 일정에서 답을 얻을 수 없었어요. 게다가 저 혼자 다니는 것도 아니고 친구와 다니고 있었어요. 핸드폰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둘이 같이 다녀야만 하는 상황. 가이드북 지도와 구글 지도까지 합쳐도 엉망인데 이 둘 모두 친구에게만 있었어요. 그래서 둘이 같이 다녀야만 하는 상황이었는데, 며칠을 친구를 데리고 계속 서점만 찾으러 다닐 수는 없었어요. 친구도 이 나라의 서점을 보고 크게 놀랐어요. 친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어요.


다행히 도서관도 왓 씨싸켓 가는 길에 있었어요. 그래서 일단 도서관에 가서 이 나라에 이 나라 말로 된 책이 뭐가 있는지 보고 책을 구할 확률을 가늠해보기로 했어요.



길을 따라가다보니 분수대가 나왔어요. 분수가 가동되고 있지 않았어요.


오후 2시 47분. 국립 도서관에 도착했어요.


라오스 비엔티안 국립도서관


"여기 맞지?"

"응. 지도가 여기래."


이거 사회주의 국가니까 사유재산 인정 안해서 국립도서관이라는 거지? 그런 거라고 믿고 싶었어요. 들어가기 전부터 '나는 여기 들어가는 순간 나락의 바닥이라고 서 있던 땅조차 무너져버릴 것이다'라는 것을 직감했어요. 그래도 왔으니 안으로 들어갔어요. 그런 지레짐작으로 판단하고 지나칠 수 없었거든요. 한 번 지나간 기회는 다시 오지 않으니까요. 이 도서관을 지나치면 이 일정 중 언제 여기를 다시 올 지 몰랐어요. 언젠가 라오스를 또 오면 그때 간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 따위는 믿지 않았어요. '언젠가'는 '안 한다'는 의미니까요.


믿기 싫었지만 'BIBLIOTHEQUE NATIONALE' 라고 적혀 있었어요. 불어였어요. 국립도서관 맞았어요. 불어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원망스러웠어요. 불어를 몰라서 '국립도서관'이 아니라 '동네도서관'이라고 읽고 싶었어요. 그러나 불어를 공부한 적이 있어서 저게 '국립도서관'이라는 것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어요.


안으로 들어갔어요. 당연히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같은 것은 있을 리 없었어요. 그것은 부처님께서 왕자로 태어나셔서 깨달음을 얻었을 때부터 지금 제가 이 도서관에 들어온 그 순간까지 존재하지 않았어요. 아예 없는 것이었어요. 부처님 행운 포인트? 그걸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어요. 이 나라 사람들이 '그런 것은 태국어로 읽으면 되요'라는 생각을 고치기 전까지는, 또는 갑자기 이 나라에 파울로 코엘료 열풍이 불기 전까지는 존재할 수가 없었어요.


도서관은 도서 카드를 사용하고 있었어요. 허락을 받고 안을 둘러보았어요.


라오스 국립도서관


답이 나와버렸어요. 서점을 돌아다니는 것은 정말 의미없는 일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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