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2015)

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 79 라오스 루앙프라방 여행 - 푸시산, 왓 탐 푸시, 왓 탐모타야람, 루앙프라방 야경

좀좀이 2017. 6. 30.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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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오후 6시가 되어가고 있었어요. 몽족 야시장은 이미 열렸어요.


몽족 야시장


몽족 야시장을 지나가다 푸시산으로 올라가는 길로 올라갔어요.


라오스 루앙프라방


"여기도 절 하나 있을 건데?"


계단을 올라가다 오른쪽을 바라보았어요. 아주 허름한 오래된 건물이 하나 있었어요. 그 건물로 갔어요.


왓 빠훅


이 건물이 바로 절이었어요. 절 이름은 '왓 빠훅'이었어요. 문이 잠겨 있었어요.


"내일 오자."

"내일?"

"응. 우리 내일 절 꼭 가야 해! 우리 치앙마이에서 넘어올 때 절 안 갔다가 사고난 거 잊었어?"


제 말에 친구가 불만가득한 표정이 되었지만 딱히 반박은 하지 못했어요. 치앙라이 왓 롱쿤에서 절하기 귀찮다고 안 했다가 그날 밤 사고가 났거든요. 다행히 태국에서 쌓아놓은 부처님 마일리지 덕분인지 제가 탄 버스가 사고가 난 것은 아니었지만, 교통사고로 길이 막히는 바람에 돈을 추가로 더 내고 다음날 오후에야 루앙프라방에 도착했어요. 물론 부처님 마일리지는 농담이에요. 그러나 뭔가 인과관계가 있어보였기 때문에, 더 정확히는 반박할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친구는 가만히 있었어요. 어차피 다음날 일정 자체가 큰 것이 없었기도 했구요. 다음날은 왕궁 박물관을 가야 하는데, 왕궁 박물관이 바로 이 절 맞은편에 있었어요. 특별히 더 걷고 말고 할 것도 없었어요.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어요.



"진짜 덥네."


얼마 올라가지도 않았는데 땀이 좍좍 흐르기 시작했어요. 그렇다고 안 올라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어요. 다음날 올라간다면 지금 이 순간과 똑같이 땀을 흘리고 그 상태로 슬리핑 버스를 타야 했어요. 선택지가 없었어요. 무조건 열심히 기어올라가야 했어요. 그나마 위안이 되는 점이라면 저 혼자 땀을 찔찔 흘리며 올라가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어요. 모두가 덥다고 땀을 흘리고 있었어요.


'이거 은근히 사람 진 빼는 코스네.'


높은 것도 아닌데 더운 것이 문제였어요. 검은색 긴 바지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땀 때문에 바지가 축축하게 젖은 것이 티나지는 않았어요. 그 대신 바지가 다리에 찰싹 달라붙어서 걷기 불편했고, 검은색이라 햇볕을 꾸역꾸역 먹어대고 있었어요.


'바지 확 걷어버릴까?'


마음같아서는 바지를 무릎 위로 걷어올리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건 불특정 다수에 대한 시각 테러. 참았어요. 평화로운 루앙프라방에서 사람들이 '오 마이 아이즈' 외치며 정신적 테러를 당하게 할 수는 없었어요. 그 정도로 제 면상이 철면피는 아니었어요.



올라가다보니 탑이 하나 나왔어요.



드디어 입장권을 구입하는 곳이 나왔어요. 입장권을 구입했어요.


라오스 루앙프라방 푸시산 표


입장권을 구입하자 물 한 통을 주었어요.


"우리 조금 쉬었다 가자."


물을 받아서 꼭대기까지 올라가며 천천히 마실 생각이었어요. 예, 딱 생각 뿐이었어요. 물을 마시며 '이거 들고 꼭대기까지 올라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다시 올라가기 위해 발걸음을 한 발짝 떼었을 때 이미 물은 다 마신 상태였어요. 그래서 바로 올라가지 않고 매표소 옆에 있는 쓰레기통을 향해 걸어갔어요. 텅 빈 패트병을 귀찮게 들고 올라가야 할 이유는 없었거든요.


빈 패트병을 버리고 계단을 올라갔어요.



멀리 루앙프라방 공항이 보였어요.


루앙프라방 공항


"다 올라왔다!"


오후 6시 10분. 드디어 산 꼭대기로 다 올라왔어요. 산 꼭대기에는 탑이 있었고, 그 아래에 전망대가 있었어요. 거기는 메콩강과 루앙프라방의 일몰을 보기 위해 올라와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바글거리고 있었어요. 전망대 바로 아래에는 법당이 하나 있었어요.


루앙프라방 푸시산 절


법당 안으로 들어갔어요.



라오인들이 매우 정성스럽게 절을 하고 있었어요. 저도 그러고 싶었어요. 아까 물을 마실 때와 마찬가지로 그것은 어디까지나 생각 뿐이었어요.


'나도 라오인들처럼 앉아서 허리만 까딱까딱까딱하고 일어날까?'


진지하게 그러고 싶었어요. 차마 그럴 수가 없었어요. 라오인들이야 원래 그렇게 했기 때문에 괜찮아요. 저는 일어났다 앉았다하는 절을 계속 해왔어요. 라오인들 따라서 앉아서 절하는 것은 솔직히 경건한 마음, 라오인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자세와는 아무 상관없었어요. 덥고 피곤하고 지치니까 털썩 주저앉아 허리만 까딱이고 싶었던 것이었어요.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어요. 그건 기만 행위였어요. 그럴 바에는 다른 관광객들처럼 절 안 하고 나가는 게 더 나을 거에요.


세로로 세운 나무토막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처럼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았어요. 허리는 머리 무게로 인해 푹 꺾였어요. 머리를 땅에 쾅 박았어요. 불심 충만이 아니라 불심 부족으로 온몸을 내던지는 오체투지가 되어버린 아이러니한 상황. 그렇게 삼배를 드리고 밖으로 나왔어요.


"여기 뒤쪽도 길이 있는데?"


법당 뒤로도 길이 있었어요.


"저 길 내려가보자!"

"싫어. 피곤해."

"그러면 너 여기서 쉬고 있을래? 나 내려갔다 올께."

"그래."


친구는 피곤해서 계단을 안 내려가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친구에게 저는 내려갔다 올테니 위에서 쉬고 있으라고 했어요. 친구는 그러겠다고 했어요.


버려진 대공포 포대가 있었어요.




계단을 따라 쭐쭐쭐 내려가기 시작했어요.



"여기 진짜 신성한 곳인가 보다. 불상이 여기저기 막 있네?"



여기저기 사방팔방 불상이 있었어요. 불상을 보며 계속 아래로 걸어내려갔어요.




페인트로 그려진 그림 속에는 여기가 왓 탐 푸시 ວັດ ຖ້ຳພູສີ 라고 적혀 있었어요.


'아...여기는 '왓 탐 푸시' 라는 절이구나.'


계단이 있어서 따라가본 것 뿐이었는데 절이 하나 더 있었던 것이었어요. 무언가 횡재한 기분이었어요. 이 절을 그냥 갈 수 있을 거라 생각을 전혀 안 했거든요.


부처님 발자국이 있다는 표지판이 보였어요.



부처님 발자국을 보러 들어갔어요.



부처님은 원래 거인이셨나?


부처님 발자국이 있다고 해서 크게 기대하고 들어갔어요. 그런데 이것은 아무리 보아도 부처님 발자국을 인공으로 새겨놓은 것 같았어요. 발자국 크기가 너무 컸어요. 이건 평범한 인간이 가질 수 없는 발의 크기였어요.


"어? 뭐야? 다 내려왔잖아!"


주변에 불상이 있어서 불상들을 하나씩 보며 계단을 따라내려가다보니 맨 아래까지 내려와버렸어요. 입구에서 운동복을 입은 라오인들이 푸시산 꼭대기를 향해 힘차게 달려올라오고 있었어요. 그 사람들은 목적이 운동이라 위로 올라가는 것이었어요. 저는 운동할 마음이 하나도 없었어요. 오히려 조금이라도 체력을 더 아껴야하는 상황이었어요. 밤을 새고 지금까지 돌아다니는 것이었거든요. 그런데 저도 졸지에 푸시산을 한 번 더 기어올라가야 되게 되어버렸어요.


'에휴...이왕 이렇게 된 거, 입구 사진이나 찍고 가자.'


맨 아래로 내려와서 푸시산 입구를 관리하는 직원에게 갔어요.


"입구 사진 찍으로 산 아래까지 내려갔다 다시 올라와도 되나요?"

"표 샀어요?"

"예."


맞은편 매표소에서 구입한 입장권을 보여주었어요. 그러자 맨 아래까지 갔다가 와도 된다고 했어요. 허락을 맡고 맨 아래까지 내려갔어요.



"뭐야? 아까 그 표지판이랑 이름 다르잖아?"


맨 아래쪽 입구에 있는 표지판에는 왓 탐모타야람 - 라오어로는 ວັດ ທັມໂມທະຍາຣາມ 라고 적혀 있었고, 라틴 문자로는 WATH THAMMOTHAYARAM 이라고 적혀 있었어요.


'둘이 같은 절이야, 다른 절이야?'


둘이 같은 절인지 다른 절인지 알 방법이 없었어요. 이런 곳은 절이 많아서 그 경계가 매우 모호할 때가 종종 있거든요. 왓 탐모타야람을 왓 탐 푸시라고 부르는 것 같기도 한데, 아닌 것 같기도 했어요. 어지간하면 같은 절이라 생각할텐데, 왓 탐모타야람의 '탐'과 왓 탐 푸시의 '탐'이 달랐어요. 게다가 왓 탐 푸시의 '탐'은 '동굴'이라는 뜻. 만약 왓 탐모타야람과 왓 탐 푸시가 다른 절이라면 절을 두 곳 더 가는 거고, 같은 절이라면 절을 한 곳 더 가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이 문제는 아직까지도 풀지 못했어요.


다시 위로 기어올라가기 시작했어요. 사실 조금 뺑 돌아가기는 하지만 정상까지 안 올라가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 있기는 했어요. 그 길로 가고 싶었어요. 야시장 구경을 또 할 필요도 없었고, 해가 강으로 퐁당 떨어지는 장면도 아니니 굳이 꼭 일몰을 감상할 것까지도 없었어요. 하지만 다시 정상으로 올라가야만 했어요. 친구가 거기 있었거든요. 산에 왜 오르냐구요? 거기에 친구가 있어서요. 전화로 숙소에서 보자고 하면 간단히 해결될 일. 그런데 제게 전화가 없었어요.






다시 주변을 둘러보며 천천히 위로 올라갔어요.







'저게 왓 탐 푸시인가?'



문이 잠긴 건물이 하나 있었어요. 저것이 왓 탐 푸시인지, 아니면 일반 승방인지 알 수가 없었어요. 일단 친구가 위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기 때문에 위로 계속 올라갔어요.



와불이 한 기 있었어요.




상당히 큰 '싸우지 마라' 불상이 나타났어요. 이 불상은 두 손을 들고 있었어요.



'싸우지 말라는 거야, 확 밀어서 떨어뜨려버린다는 거야?'


뚝뚝 떨어져내리는 땀을 땀에 푹 절어버린 팔로 문질러 닦으며 싸우지 마라 불상을 잠시 바라보았어요. 다시 위로 올라갔어요.



이렇게 곳곳에서 불상이 이 산을 지키고 있었어요.


위로 올라와 쉬고 있는 친구와 다시 만났어요.


"너 동굴 봤어?"

"무슨 동굴?"

"여기 부처님 발자국이랑 동굴 있잖아."

"나 동굴 못 봤는데?"

"내려가봐."

"같이 가자."

"싫어. 귀찮아. 너 혼자 갔다 와."

"야, 내가 지금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올라왔는데 동굴 못 봤어. 동굴 어디 있다는 건데?"


친구는 무성의하게 알아서 갔다오라고 말했어요. 친구의 말투에 짜증이 확 났지만 참았어요. 제가 밑바닥까지 내려갔다 다시 올라오며 두 번 산을 자세히 살펴온 것을 친구가 알 리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친구에게 동굴까지 같이 가달라고 부탁했어요. 두 번이나 주변을 싹싹 둘러봤지만 동굴은 발견 못 했다고 이야기했어요. 친구는 제가 두 번이나 이 산 남쪽 사면을 자세히 둘러보며 다녔지만 동굴은 못 봤다는 말에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친구가 데려간 곳은 제가 본 곳이었어요. 동굴이라고 하기에 참 민망한 곳이었어요.


다시 위로 올라갔어요. 드디어 일몰이었어요.



푸시산 정상의 쩨디가 빛나고 있었어요.



오늘 일정을 시작했던 왓 빠폰파오가 보였어요. 왓 빠폰파오는 황금빛 산티 쩨디 때문에 쉽게 찾을 수 있었어요.



하늘이 붉어져갔어요. 메콩강도 붉은색을 벌컥벌컥 들이켰어요. 산과 나무도 붉은색을 배터져라 부어라 마셔라 하고 있었어요.





메콩강의 노을 별 거 없네.


오늘 하루 종일 절을 돌아다닌 것에 비해 노을은 시시하다고 할 정도로 별 거 없었어요. 고향에서 신물 나오도록 질리게 보던 노을보다도 더 평범하고 감흥이 없었어요. 아쉽게도 그냥 해지는 것 뿐이었어요.


푸시산 아래로 내려왔어요.






"여기 야경이 훨씬 멋지다!"


푸시산 위에서 바라본 노을보다 푸시산 입구에서 바라본 루앙프라방 야경이 훨씬 더 예쁘고 아름다웠어요.


야시장을 둘러보았어요. 전날 보지 못한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았어요.


"너 안 피곤해?"

"응?"


딱히 졸리지는 않았어요. 속에서 전선이 끊어진 이어폰의 소리처럼 정신이 끊어졌다 돌아왔다를 반복할 뿐. 멍하니 걷다가 정신이 돌아오고, 그러다 정신이 끊어진 채 또 걷고 했어요. 친구게 제게 안 피곤하냐고 물어본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어요. 친구와 같이 멀쩡히 걷고는 있는데 정신줄을 잡았다 놨다를 반복하고 있었거든요. 몇 시간을 안 잤는지 알 수 없었어요. 시계를 보니 밤 8시가 넘었어요. 전날 아침 8시쯤 일어났으니 36시간 넘게 안 잔 상태. 그 36시간 동안 뙤악볕에서 열심히 돌아다닌 이틀간 일정이 모두 들어 있었어요.


"숙소 돌아갈까?"

"그러자. 오늘은 자야겠다."

"응. 쓸 데 없는 짓 하지 말고 가자마자 자."


숙소로 돌아오니 9시가 넘었어요. 샤워를 하고 바로 침대 위에 쓰러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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