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0일. 서울역 고가도로를 재활용해 만든 서울로 7017 이 개장했어요. 이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은 개장 전부터 인터넷에서 말이 꽤 많았어요. 공사 사진이 나오면서 상당히 많은 악평이 나왔거든요.
개장 후, 뉴스에서는 엄청나게 찬양해대었어요. 그리고 댓글은 거의 다 욕하고 있었어요.
'이거 가볼까, 말까?'
일단 뉴스에 나온 사진을 보니 절망적이었어요. 그냥 답이 없어 보였어요. 중국 같이 다녀온 친구에게 그 사진을 보여주자 친구가 말했어요.
"명동 중국인+서울역 노숙자+인스타 페북족 성지가 되겠군. 만남의 장소냐? 무슨 북핵 6자회담도 아니고. 중국인, 노숙자, 인스타 우루루 와서 3자회담."
저도 친구 못지 않게 말했어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궁금했어요. 사실 서울 사람이 보는 것과 지방 사람이 보는 것은 다르거든요. 예전 청계천 때 확실히 봤고, 지금도 기억해요. 그 당시 저는 서울에서 있었기 때문에 청계천이 정말 고마웠어요. 그 전에 거기는 정말로 잠깐 갔다와도 옷 칼라가 까매지는 곳이었고, 그 이전에 서울에서 숨통이 트일만한 곳이 아예 없었어요. 기껏해야 종로쪽에서는 덕수궁 정도 있었어요. 그 외에는 그냥 매연 먹으면서 돌아다니든가 실내로 기어들어가든가 해야 했어요. 그런 와중에 청계천은 그나마 도심에서 숨 좀 쉴만한 공간이었어요.
공원과 도서관이 막 개장했을 때 구경하며 신경써야 할 점이 있어요. 그것은 바로 이들은 처음부터 100% 완성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도서관은 앞으로 계속 책을 들여와야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장서 100%로 꽉 채워버리면 얼마 안 가 금방 장서 개발 및 관리에서 문제가 생겨요. 공원은 식물이 자라나기 때문에 처음부터 마구 빽빽하게 나무를 심어놓으면 안 되요.
유지비가 얼마가 들어가든 그딴 건 관심 없어요. 그냥 제대로 된 공원 형태를 갖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그리 돈 들어가는 게 신경쓰이고 경제적인 게 좋다면 서울의 공원 싹 다 밀어버리고 서울시립 고층 고시원이나 잔뜩 지으라고 하세요.
친구와 사진 보며 신나게 욕하며 놀기는 했는데 진짜 욕할 만한 것인지 궁금해서 직접 가보기로 했어요.
서울로 7017 은 지하철 4호선 회현역 4번 출구로 가면 되요.
뭐 이 정도면 괜찮네.
콘크리트 화분이기는 했어도 이 정도면 괜찮았어요. 길가에 나무가 조금 더 늘어났으니까요. 자라나면 그늘도 생기고 공기도 조금은 더 맑아지겠죠.
서울로 안내소도 마련되어 있었어요.
그리고 나는 몰랐다. 이 길이 절망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는 걸...
일단 처음 보이는 문제점은 바로 유리벽.
유리벽은 양날의 칼. 먼지가 끼기 시작하고 비까지 오면 급격히 더러워져요. 회현에서 만리동까지는 서울에서 공기가 참 더럽기로 유명한 곳. 이 유리벽은 벌써 먼지가 좀 끼어 있었어요. 이 먼지와 매연 창궐하는 길에 유리벽이라...지금은 투명해서 전망을 쉽게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이 장점이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였어요.
드디어 고가도로로 올라왔어요.
이 나무들이 과연 빨리 커줄까?
콘크리트 화분의 미관에는 관심 없어요. 뭐 취향은 존중해줍시다. 저게 예쁜 사람도 있겠죠. 중요한 건 저 화분에서 나무가 얼마나 잘 자랄 수 있느냐의 문제. 느리게 자라도 좋아요. 크게만 잘 자라주면 언젠가는 괜찮아지겠죠. 그런데 과연 잘 자랄까 의문이었어요. 나무 뿌리 뽑아내는 거 보면 저기에서 나무가 크게 자라기는 어려울 거라는 거 금방 알 수 있는데요.
"아, 더워!"
그늘이 하나도 없었어요. 얼마 걷지 않았는데 진짜 더웠어요.
아...이건 절망적이다.
키작은 관목, 풀이 많이 심어져 있었어요. 이건 10년이 가도 절대 그늘을 만들 수 없어요. 이런 게 한두 개가 아니라 대부분이 이랬어요.
주변은 이랬어요. 열심히 매연과 미세먼지가 올라오고 있었어요. 미세먼지가 아주 입에 짝짝 붙었어요. 이거 디자인한 놈 얼굴로 유리창에 낀 먼지를 닦아버리고 싶었어요. 그리고 외치고 싶었어요.
"다시는 대한민국을 무시하지 마라!"
이것이 바로 그 인터넷에서 최대 논란이 된 슈즈 트리.
발꼬랑내는 안 났어요. 하지만 확실히 고무 냄새는 났어요.
아직 작업중인 곳도 있었어요. 참고로 아래 사진을 보면 '서울역 화장실을 이용해주세요'라는 멘트가 적힌 표지판을 붙이고 있어요. 서울역은 이 길에서 웃으며 갈 거리는 아니에요.
여기는 그나마 희망이 보이는 구간.
이건 화분이에요. 진짜 생각없이 언젠간 크겠죠 하지 마세요. 일반 가로수야 나무 뿌리가 아래에서 퍼지고 들어가지만, 저건 딱 보이는 원통형이 끝이에요. 그래도 저기는 희망이 보였어요. 아주 조금이기는 하지만요. 서울역쪽은 진짜 절망 그 자체.
차라리 서울역이 더 희망이 보였어요.
저 나무들이 잘 자라준다면 저기가 훨씬 공원같고 공기도 좋고 쉴만할 거에요.
아놔, 이놈들 아랍어 또 개떡같이 써놨어.
아랍어로 '환영합니다' 라고 '아흘란 빅'을 써놓았는데 글자 다 깨졌어요. 이딴 표지판 하나 제대로 못 만드냐? 저건 그냥 외대 가서 아랍어과 학생에게 '이거 글자 맞게 된 건가요?'라고 물어보면 돈 안들이고 해결할 수 있는 일.
그리고 이곳이 아주 개떡같고 절망적인 진짜 이유.
동선이 엉망진창이었어요. 뭔 생각으로 이런 동선을 구상했는지 모르겠어요. 여기 좁아요. 절대 안 넓어요. 그런데 화분을 지그재그 불규칙으로 배치했어요.
치사하고 역겹게 장애인 팔아먹지 않을께요. 일반인이 다녀도 거지같아요. 일단 직진이 안 되요. 게다가 사진처럼 갑자기 좁아져서 사람들이 엉켜 병목현상이 일어나는 구간이 많았어요. 저는 월요일 정오 전에 갔어요. 사람이 별로 많지 않았는데 저런 병목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간에서는 쓸데없이 사람들이 엉키고 미어터졌어요. 진짜 많아서 미어터지는 것이 아니라 몇 없어도 막혀버리는 구간이 여럿이었어요.
차라리 트럭 호로를 위에 씌우지 그랬냐?
우리나라 기후 몰라? 저 동네에 뭐가 필요한지 몰라?
차라리 인조 덩쿨이랑 담쟁이랑 섞어서 초록색 터널을 만들지 그랬냐? 그게 훨씬, 1000만배 나았을 거에요. 동선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화분들 말고 화분은 다 양 옆으로 몰아놓구요. 두 발로 멀쩡히 걸어다니는데 카트라이더 실사판 하는 줄 알았어요.
서울 - 특히 저 동네에 필요한 것은 녹색 터널이에요. 서울시민들이 원하는 것은 녹색 공간, 그리고 미세먼지를 그나마 피할 수 있는 공간이에요. 저기는 쓸데없이 동선 엉망진창 개떡같은 화분들 배치할 게 아니라 덩쿨을 이용한 터널을 만들어야 했어요. 이건 서울의 기후, 그리고 서울시민들이 뭘 필요로 하는지 전혀 고려를 하지 않은 엉터리였어요. 나무요? 기적적으로 순식간에 엄청 큰다고 합시다. 그런데 콘크리트 화분 때문에 이상하게 생긴 동선은 어쩔 건가요? 사람 별로 없는 월요일 오전에도 툭하면 엉키던데요.
미세먼지가 아주 맛있었어요. 너무 더워서 땀이 잘 나왔어요. 덕분에 다이어트가 되는 거 같았어요. 사막의 미라 체험장으로 딱 좋았어요.
이건 그냥 망작. 절망. 세금낭비, 총체적 난국. 좋게 봐줄 구석이 없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