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일진이 사나운 날이었어요. 출발 예정 시각보다 지하철 플랫폼에 일찍 도착했는데 전철은 제멋대로 출발해버리고, 108번 버스는 일부러 기어가면서 신호등이란 신호등은 죄다 걸려서 N15번 심야버스 첫 차에 역전당해 놓치는 기적이 일어났어요. 이것도 모자라서 지도 보고 내방역에서 서초역으로 가는데 지도에 나와 있는 길이 2019년 완공 예정이라고 해서 구두 신고 흙길 언덕 산책로를 기어올라갔어요.
'오늘 불운은 이제 더 이상 없다.'
아무리 쉽지 않은 길일 거라 예상한 사당역, 이수역, 교대역 24시간 카페 돌아보는 길이었지만 이건 정말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도에 나와 있는 길에 작게 '2019년 완공 예정'이라고 적힌 것을 보지 못한 것은 제 잘못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내방역과 서초역이 딱 절단되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마지막 목적지에 도착해서 글을 쓰는데 2층에 있던 대학생들이 썰물때 바닷물 빠지듯 쫘악 빠졌어요. 2층에 저 혼자 남았어요.
'드디어 악운은 끝났구나!'
2층에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사진을 제대로 못 찍었는데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사진을 다시 찍을 수 있었어요. 밀크티도 제가 좋아하는 맛이었어요. 모든 것이 좋아졌어요.
10시 넘어서까지 열심히 글을 썼어요. 그동안 글감 밀린 것이 너무 많아서 좀 빨리 써서 올려야할 것들이 있었어요. 이것들을 다 쓰고 밖으로 나왔어요.
'오늘 아마 밤 11시에 친구 만나러 홍대 가야할 건데...'
밤 11시? 그러면 집에서 밤 10시에만 나오면 되잖아?
저녁 약속이 있으니 빨리 집에 가서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아직 시간적 여유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정에 없는 서리풀 공원 언덕 산책로를 올라가기는 했지만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요. 오히려 이렇게 걷고나서야 다리가 풀렸어요. 쓸 데 없이 몸에 힘이 넘쳤어요.
'고속터미널 꽃시장이나 구경하고 갈까?'
고속터미널로 가면 7호선을 탈 수 있었어요. 3호선을 타고 종로3가에서 환승해서 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이왕이면 영웅호걸 난리치는 양산박 같은 1호선보다 몇십 배 더 쾌적한 7호선을 오래 타고 1호선은 조금만 타고 싶었어요. 그래서 고속터미널로 가기로 했어요. 게다가 거기에는 꽃시장도 있었으니까요.
플라워카페를 가면 기분은 매우 좋아요. 하지만 플라워카페에는 한계가 있었어요. 이 채워지지 않는 시각적, 후각적 욕망을 채우려면 욕망을 회피할 것이 아니라 정면돌파해야 했어요. 그것은 바로 고속터미널 화훼상가. 여기는 아주 예전에 딱 한 번 가보았어요. 사실 지금은 잘 기억나지도 않아요.
교대역에서 고속터미널역까지는 걸어갈만 했어요. 가운데에 오르막길이 하나 있기는 했지만 깜깜한 서리풀 공원 언덕을 핸드폰 후레시에 비추어가며 힘차게 성큼성큼 내딛던 것에 비하면 너무 평탄했어요.
드디어 고속터미널에 도착했어요.
이 얼마만에 오는 고속터미널이야!
가끔씩 일이 있어서 청주에 내려갈 일이 있어요. 예전 서울에서 살 때는 고속버스터미널로 와서 고속 버스를 타고 청주를 가곤 했어요. 그런데 의정부로 자취방을 옮긴 후, 의정부 시외버스터미널에도 청주행 버스가 널널하게 여러 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다음부터 단 한 번도 고속버스터미널은 가지 않았어요.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꽃시장을 가려면 경부선으로 가야 해요. 지하철 출구는 고속버스터미널역 1번 출구에요. 이것만 기억하시면 되요. 고속버스터미널역은 상당히 복잡해요. 복잡하기만 한 게 아니라 크기까지 엄청커요. 게다가 방향 잘못 잡으면 엉뚱한 다른 7호선 역까지 쭐쭐쭐 가버릴 수도 있어요. 그러므로 '경부선', 그리고 '1번출구' 이것 두 개만 기억하세요.
고속버스터미널 건물 3층에 화훼상가가 있는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못 가요. 반드시 엘리베이터를 타야 해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을 가면 이렇게 꽃시장이 시작되요.
고터 꽃시장은 생화는 오후 1시에 문을 닫고, 조화와 소품은 오후 6시에 문을 닫아요. 그리고 일요일은 휴무에요. 꽃은 월, 수, 금요일에 들어온다고 해요. 꽃이 들어오는 월, 수, 금요일에는 정신없고 매우 바쁘다고 하니 목적에 따라 요일을 잘 결정해서 가세요. 시장의 북적임을 구경하거나 싱싱한 꽃을 구입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월, 수, 금요일이 좋고, 느긋하게 꽃시장 구경할 목적이라면 화, 목, 토요일이 좋겠죠.
"오, 여기 정말 아름다워!"
플라워카페와는 아예 비교가 되지 않았어요. 인공적으로 꽃으로 장식한 곳 중에서는 여기가 가장 아름다웠어요.
여기는 꽃만 파는 것이 아니라 소품 및 조화도 판매하고 있었어요.
당연히 꽃도 많이 팔고 있었어요.
이 시장에서 안 팔린 꽃의 최후는 이랬어요.
시장 한쪽 구석에서 이렇게 갈려서 분리수거 봉투에 담겨지고 있었어요.
장미에도 종류마다 다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왼쪽부터 레드이글, 리바이벌, 실루엣.
왼쪽부터 카렌쟈, 부루트, 푸에고.
왼쪽부터 붐바스틱, 샤만트, 클립니카
반드레오
핑크뷰티, 카렌자, 그레이스, 미니햇살
제일 왼쪽은 마르샤, 오른쪽에서 두 번째 것은 페퍼, 제일 오른쪽은 썸머파티. 하단 검붉은 것은 레드나오미.
가운데 보라색 장미는 나이팅게일. 오른쪽 주황색 장미는 와일드카드.
왼쪽 쉐도우, 오른쪽 자나, 아래 카탈리나.
상단 : 카탈리나, 바닐라크림, 썬세아
하단 : 핑크벨벳, 아이스 윙
상단 : 쉐도우, 핑크벨벳
중단 분홍색 : 햇살
하단 가운데 보라색 : 돌세도
이것은 그 외 사진들이에요.
꽃을 안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가면 반할 만한 곳이었어요.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장소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