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2015)

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 51 태국 여행 - 방콕 중앙 우체국, 방콕-치앙마이 기차 침대칸 야간 이동

좀좀이 2017. 1. 17.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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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언제 어디에서 내리라는 거야? 이러다 후아람퐁역까지 가는 거 아니야? 혹시 내가 버스 방향을 반대로 탔나?'


진짜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차장 아주머니는 계속 앉아서 기다리라고만 할 뿐이었어요. 설마 후아람퐁역에서 버스로 고작 한 정거장 밖에 안 되는 거리였던 걸까? 아니면 7번 버스 반대 방향 종점쪽에 있는 걸까? 버스가 달려갈 수록 점점 차이나타운 및 숙소는 계속 가까워져갔어요. 계속 차장 아주머니를 쳐다보았어요. 차장 아주머니는 제게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어요.


'설마 까먹은 거 아냐?'


버스는 차이나타운으로 들어왔어요. 차장 아주머니가 버스에서 내리라고 알려주었어요. 버스에서 내렸어요.


"여기 대체 어디에 중앙 우체국이 있다는 거야?"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았지만 우체국 비슷하게 생긴 건물조차 보이지 않았어요. 길거리 사람들을 잡고 우체국이 어디인지 물어보았어요. 사람들은 모두 제각기 다른 길을 알려주었어요. 일관되게 한 방향을 알려주어야 그 길을 따라 걸어가보기라도 할 텐데, 방향이 다 다르니 어떻게 섣불리 움직일 수도 없었어요. 우체국은 그렇게 계속 나타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어요.


"가게 주인은 알겠지."


길거리 행인이야 여기 동네 사람 아닐 수도 있으니 모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가게 주인은 이 지역에서 계속 있는 사람이니 최소한 우체국이 어디인지는 알 것이다. 우체국이 아주 최근 들어서 급하게 이주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길거리 사람들 백 명 잡고 물어보았자 전부 말이 다를테니 차라리 이 지역에서 계속 있었던 가게 주인에게 가서 물어보는 것이 그나마 믿을 만 하겠다.


어느 가게를 들어갈까 두리번거리다 그냥 아무 가게나 하나 골라서 불쑥 들어갔어요.


"우체국 어디인가요?"


쪽지를 보여주며 물어보았어요. 가게 점원은 영어를 잘 하지 못했어요. 뭔가 방향을 알려주는데 잘 알아들을 수 없었어요. 몇 번 버스를 타고 가야 하냐고 물어보았어요. 1번 버스를 타라고 알려주었어요. 길 건너지 말고 바로 근처 정류장에서 타면 된다고 이야기해주었어요. 고맙다고 인사를 한 후 정류장으로 갔어요.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1번 버스가 왔어요. 차장에게 쪽지를 보여주면서 우체국 가냐고 물어보았어요. 차장은 타라고 했어요.


태국 방콕 중국 절


창밖을 보니 중국식 절이 있었어요.


"저거 모스크 아니야?"


태국 방콕 모스크


태국은 불교의 나라. 그런데 모스크 보는 것이 의외로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요. 모스크가 있는 길을 우연히 골라가는 것인지 진짜 모스크가 여기저기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유타야에서도 모스크를 보았고, 방콕에서도 이렇게 모스크를 보았어요. 처음에는 힌두교 사원 아닌가 했지만 아무리 보아도 저건 영락없는 모스크였어요. 버스에서 내려서 들어가볼까 했지만 일단 우체국 가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에 일단 지나쳤어요.






버스에서 창밖을 보고 있는데 이 버스가 아까 7번 버스를 타고 갔던 길로 가다가 다른 쪽으로 빠졌어요. 잠시 후. 차장이 제게 다 왔다고 내리라고 알려주었어요.


"여기는 또 어디야?"


여기 또한 주변에 우체국처럼 생긴 것은 아무 것도 없었어요. 두 눈을 비비고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역시나 우체국은 없었어요. 이 정도면 정말 악몽 속에 갇힌 수준이었어요. 갈 수록 뭔가 계속 꼬여만 갈 뿐이었어요. 이대로 더 가면 또 짜오프라야 강변으로 가버릴 것이 분명했어요. 미로에 갇혀서 같은 자리로 계속 돌아오는 꿈같은 현실에 좌절해버렸어요. 대체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어요.


얌전히 지도 보고 걸어가자.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켜고 우체국을 찾아보았어요. 아주 멀지 않은 곳에 우체국이 있었어요. 지도를 보며 우체국을 향해 걸어갔어요.


"우체국이다!"


태국 우체국


드디어 진짜 우체국처럼 생긴 건물이 나왔어요.


태국 방콕 중앙 우체국


오후 4시. 드디어 우체국에 도착했어요.



우체국 정문으로 갔어요.


Grand Postal Building in Bangkok


입구에는 Grand Postal Building 라고 적혀 있었어요.


우체국 안으로 들어갔어요.


태국 방콕 우체국


우체국 들어가자마자 우표 판매하는 창구로 가서 우표를 사고 싶다고 말했어요. 그러자 직원이 수집용 우표를 파는 창구로 가라고 안내했어요.


"저는 보통 우표를 사고 싶어요."


기념 우표보다는 보통 우표를 구입하고 싶었기 때문에 보통 우표를 보여달라고 했어요.


미안합니다. 수집 우표 판매 창구로 갈께요.


보통 우표는 국왕 초상화였어요. 태국에서 국왕이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념품으로 국왕 얼굴이 그려진 우표를 구입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제가 원하는 것은 태국의 전통 의상, 음식 등이 그려진 우표였거든요. 그런 우표는 기념 우표를 판매하는 창구로 가야 구입할 수 있다고 했어요. 보통 우표 중 구입하고 싶게 생긴 디자인이 하나도 없어서 기념 우표 판매 창구로 갔어요.


여기도 마음에 드는 우표 없어. 왜 이렇게 국왕 우표가 많은 거야?


마음에 드는 기념 우표가 있나 살펴보았는데 기념 우표 종류 자체가 별로 없었어요. 어떤 우표를 살까 한참 고민하다 아세안 국가 전통의상을 입은 캐릭터들이 그려진 어린이날 우표와 라오스 전통 의상을 입은 여성과 태국 전통 의상을 입은 여성과 양국의 국화가 그려진 태국-라오스 수교 60주년 기념 우표를 구입하고 밖으로 나왔어요.


우체국 본관 입구는 따로 있었어요. 그쪽으로 가서 경비원에게 허락을 받고 사진을 한 장 찍었어요.



우체국 앞에는 작은 팻말 하나가 있었어요.



여기는 주말에 와야 하는 곳이었구나!


당연히 주말에는 우체국 영업을 하지 않을 테니 우체국에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그것이 실수였어요. 정작 여기는 주말에 와야했던 곳이었어요. 토요일과 일요일에 방콕 중앙 우체국 앞에서 우표 시장이 열린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어요. 오늘은 평일이므로 당연히 우표 시장이 열릴 리가 없었어요. 이런 내용은 가이드북에 나와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전혀 몰랐어요. 매주 토요일, 일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우표 시장이 열린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저는 여기에 한 번은 충분히 올 수 있었어요.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을 되돌릴 수 없었기 때문에 그저 아쉬움만 엄청나게 많이 남을 뿐이었어요.


"이제 후아람퐁역으로 돌아가야겠다."


어쨌든 우체국은 왔어요. 밍기적거리다 1시에야 출발해서 한참 길을 헤매다 오후 4시에야 우체국에 도착하기는 했지만요. 지도를 보니 우체국에서 후아람퐁역까지 절대 먼 거리가 아니었어요. 2km 가 조금 넘는 거리였어요. 걸어가려고 하면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어요. 애초에 그냥 거리 구경한다고 생각하고 걸어갔다면 훨씬 이전에 우체국에 도착했을 거에요. 괜히 땀 안 내려고 버스 타고 가보겠다고 하다가 오히려 몇 시간 동안 푹푹 찌는 버스 안에서 몇 시간을 공쳤어요. 덕분에 태국 방콕 외진 곳까지 구경하게 되었고, 걸어다니는 것보다는 어쨌든 땀을 덜 흘리기는 했지만요.


다음에 또 중앙우체국 가게 된다면 그때는 무조건 얌전히 후아람퐁역에서 걸어가겠다.


이런 경험은 한 번으로 아주 충분했어요. 두 번 겪을 일은 절대 아니었어요. 2km 를 3시간 걸려서 온 거니까요. 포복으로 기어가도 2km면 3시간 안에는 갈 거에요. 무슨 비포장에 험한 산길을 가는 것도 아니구요. 진짜 오늘은 시간을 경제적으로 낭비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그냥 웃어넘길 수 있는 일이었지, 만약 시간이 빠듯했다면 진심으로 짜증이 많이 났을 거에요. 아마 7번 버스 타고 바로 후아람퐁역으로 돌아가버렸겠지요.


우체국에서 후아람퐁역으로 걸어가는데 우표상이 하나 보였어요. 안으로 들어가보았어요.


"우표 파나요?"

"저 가게 가봐요."


우표 가게 주인이 맞은편 길에 있는 다른 우표 가게로 가보라고 알려주었어요.


태국 방콕 우표상


가게 주인이 알려준 다른 우표 가게로 갔어요. 안에 사람이 있는데 문이 굳게 잠겨 있었어요. 문을 두드리자 주인이 문으로 다가와 제가 누구인지 보고는 문을 열어주었어요.


'대체 여기는 강도가 얼마나 많길래 문을 이렇게 해놓았지?'


수집 우표 및 기념주화가 매우 비싸기는 하지만 보안을 위해 반드시 안에서 확인해야만 안에서 문을 열어줄 수 있게 된 문을 설치해놓은 것을 보니 기분이 묘해졌어요. 아마 보안 시설이 잘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문을 철저히 잠그고 있는 것이겠지? 우리나라 우표 가게에서 이렇게 낮부터 철저히 잠가놓고 있는 경우는 보지 못했어요. 우리나라 우표 가게의 문이 영업 시간 중 열려 있는 이유는 우리나라가 안전한 것도 있겠지만, 보안 시설이 잘 되어 있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안으로 들어가서 최근에 발행된 태국 전통 의상 우표 및 음식 우표가 있냐고 물어보았어요. 최근에 발행된 것은 없다고 하면서 태국 우표 도감을 보여주었어요. 제가 원하는 태국 문화가 물씬 느껴지는 우표는 1990년대에 발행되었어요. 최근에 발행된 우표 중에는 마음에 드는 도안이 하나도 없었어요. 최근에 발행된 것을 고집한다면 구입할 우표가 없었고, 1990년대 우표를 사자니 요즘 우표가 아니라 진짜 '수집용' 우표를 구입하는 기분이 강하게 들었어요.


그냥 고집을 꺾자.


아무 수확 없이 후아람퐁역으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그래도 비록 1990년대에 발행된 우표라도 예쁜 우표를 사는 것이 훨씬 낫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1990년대에 발행된 태국 음식 우표를 구입했어요.


우표를 구입하고 우표상에서 나왔어요. 우표상 주인은 제가 나가자 문을 다시 걸어잠갔어요.


후아람퐁역까지는 그다지 먼 길도 아니었고, 운하를 따라 쭉 걸어가면 되었어요.



"이런 데에서 살면 말라리아 걸리는 거 아니야?"


후아람퐁역으로 가까워지자 다시 운하 물이 더러워졌어요. 이 운하 물을 보니 여기에는 모기가 아주 바글거리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어요. 그런데 바로 옆에도 집이 있었어요. 모기 하면 말라리아, 말라리아 하면 모기. 일본 뇌염도 창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동남아시아 여행 갈 때 말라리아 조심하라는 말은 여러 번 접했어요. 예전에 연예인 한 명이 라오스 오지에서 방송 촬영하고 귀국한 후 말라리아로 사망한 사건도 있었으니까요. 저 집에서 살면 말라리아에 걸리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너무나 당연한 인과관계처럼 자연스럽게 바로 떠올랐어요.



운하이기는 한데 이것이 운하인지 열대 밀림 개울인지 분간이 안 되는 장면이었어요. 이것은 방콕 외곽의 풍경도 아니고 후아람퐁역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운하 모습이었어요.







운하를 따라 후아람퐁역으로 돌아왔어요. 이제 어디 더 돌아다닐 시간이 없었어요. 저녁 먹고 짐 찾아서 기차역 가면 시간이 딱 맞게 생겼어요.


'아무 식당이나 괜찮아보이는 곳 들어가서 먹어야지.'


지금 저녁을 먹는 이유는 다음날 아침을 못 먹기 때문이었어요. 치앙마이에서 뭐가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저녁을 굶어버리는 것은 썩 좋지 못한 선택이었어요. 굶는 것도 다음 일정이 널널할 때 하는 것이지, 다음 일정이 힘든데 식사까지 굶어버리면 정말 진빠지게 힘들거든요. 허기 때문에 이것저것 자꾸 주워먹다보면 돈은 돈대로 많이 들구요.


식당이 몰려 있는 차이나타운 쪽으로 갔어요.


태국 방콕 차이나타운


뭔가 확 땡기는 곳이 보이지 않아서 적당히 깨끗해보이고 그나마 사람들이 있는 식당 안으로 들어갔어요.



여기는 다행히 음식 사진이 있었어요.


태국 식당 메뉴판


글자를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지만 워낙 다양한 태국어 폰트를 다 읽을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었어요. 제가 읽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정자체에 해당하는 폰트 뿐이었어요. 그것도 힘겹게 읽고, 그나마도 못 읽는 것들이 있는데 아예 다른 폰트로 써놓은 것은 당연히 아예 읽지 못했어요. 메뉴는 제가 모르는 폰트로 적혀 있었으나, 사진이 있어서 사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음식을 주문했어요.


태국 음식


똠얌은 진짜 어려웠습니다. 정말로요.


똠얌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맛이었어.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니 이것이 맛있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겠지. 그러나 정말로 내 입맛에는 아니었어. 나에게 이상한 식당 가서 먹었기 때문에 이상하다고 하는 사람 분명히 많을 거라는 거 알아. 그렇지만 원래 고급 식당 가면 음식 다 맛있어. 특히 외국인 상대로 하는 가게라면 더더욱 그래. 내가 똠얌이 내 입맛에 안 맞는다는 것을 알면서 기를 쓰고 또 똠얌을 시킨 이유는 사람들이 워낙 똠얌 맛있다고 해서 내가 계속 재수없게 맛없는 곳만 골라간 것 아닌가 하는 일말의 의심이 있었기 때문이야. 그런데 확실히 알았어. 나 똠얌 안 좋아해. 길거리에서 사먹든 식당에서 먹든 항상 맛있는 베트남 쌀국수와 인도네시아 나시 고렝과 달리 태국 똠얌은 누구에게나 추천하는 것은 도저히 못 하겠어. 당장 나부터도 똠얌 별로 안 좋아하는 걸.


똠얌과 팟타이를 시켰는데 맛은 그냥 저냥 먹을만하다는 정도였어요. 고급 식당 가서 먹으면 맛있을 거에요. 그렇지만 일반 가게에서 먹은 것은 전부 별로였어요. 솔직히 이쯤 가면 왜 태국 음식이 맛있다고 그렇게 사람들이 열광하는지 그 자체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어요. 어디서 먹어도 왜 열광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어요. 정말로 고급 식당 가서 먹어야만 진짜 태국 음식의 맛을 알 수 있는 건가? 그런데 어차피 요리 잘 하는 고급 식당에 가면 개떡 같은 메뉴도 맛있게 만들어 내놓잖아. 대체 태국 음식에 대한 제 생각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 지 고민이었어요.


사람들 혀가 다 이상할 리는 없으니 문제는 간단해. 내 취향과 태국 음식은 뭔가 안 맞는 거야. 잘 맞을 것 같은데 묘하게 참 안 맞는 사람처럼.


그렇게 생각하니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었어요. 이제 태국 음식에 대해 그 어떤 기대도 안 해도 되니 마음이 아주 평화로워졌어요.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린 것이라는 원효 대사 해골물의 깊은 가르침을 깨달았어요. 저와 태국 음식의 관계는 참 미묘하고도 미묘한 것이었어요. 가끔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어요. 가까워지고 싶어서 서로 다가가는데 뭔가 묘하게 안 맞아서 가까워지지 못하는 관계요. 딱히 싫거나 크게 부딪히는 뭔가가 있는 것은 아닌데 이상하게 뭔가 참 안 맞는다는 느낌이 드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가까워지고 싶고 친해지고 싶은데 막상 다가가면 삐끗하는 느낌이 들고, 가까워지려 할 수록 오히려 관계가 묘하게 살짝살짝 틀어져가는 그런 것이요. 아예 처음부터 입에 정말 안 맞았다면 시원하게 태국 음식 더럽게 맛 없다고 욕을 한 바가지 퍼붓고 태국 음식에 대한 기대에서 오는 번뇌에서 가볍게 해방되었을 거에요. 그렇지만 이것이 뭔가 입에 맞을 것 같으면서 딱 꼬집어서 말하지 못할 참 뭔가 안 맞는 것이 있어서 계속 가까워지려 노력했던 것이었어요. 이제 이 번뇌에서 해방되었어요.


칼로리가 높다고 하지만 양은 무지 적어서 저 혼자 저렇게 2개 시켜 먹어야 식사한 느낌이 들었어요. 이것은 저만 유독 많이 먹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어요. 식당에서 밥 먹는 태국인들을 보면 두 개 시켜서 먹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어요. 이렇게 한 끼에 두 그릇 먹는다면 섭취하는 열량이 양에 비해 상당히 많을 거에요. 그래서 그런지 뚱뚱한 태국인이 참 많이 보였어요.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가서 짐을 찾은 후, 로비에서 땀 좀 식히다 후아람퐁역으로 갔어요.


태국 방콕 후아람퐁역


매표소 앞은 한가했어요.


후아람퐁역 매표소


그러나 치앙마이 가는 표는 매진이었어요.


태국 방콕 후아람퐁역


괜히 태국 여행할 때 열차표는 미리 끊어놓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특히 치앙마이 가는 기차표는 반드시 미리 구입하라고 해서 방콕에 도착한 다음날 바로 기차표를 구입했는데, 정말 그러기를 잘 했어요. 만약 치앙마이로 떠나는 오늘 기차표를 구하려 했다면 기차표가 매진되어서 구하지 못했을 거에요. 그랬다면 모든 동선이 다 엉망이 되고 꼭 가보고 싶었던 치앙마이는 포기해야 했을 거에요.



오후 7시 12분. 기차를 타러 갔어요.


'기차에서 태국인이 옆에 앉으면 태국어 좀 공부해야지.'


태국 침대칸 기차


기차 안에는 서양인만 바글대었어요. 그리고 제 옆에는 중국인이 앉았어요. 그냥 침대칸에 태국인 자체가 거의 보이지 않았어요. 태국어 공부 의욕이 바로 뚝 떨어졌어요. 교재 mp3 파일이 들어 있는 스마트폰을 분실해서 태국어 공부 의지가 0이 되어버렸어요. 성조가 있는 언어를 공부하는데 교재 음성 파일이 없다는 것은 치명적인 문제거든요. 오늘은 그래도 야간 이동하니까 옆 좌석 태국인에게 물어봐가며 발음과 성조 교정을 받으며 태국어 공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그 기대는 완벽히 무산되었어요.


학습 의욕이 0이 되었기 때문에 책을 집어넣고 멍하니 의자에 앉아 있었어요. 잠이 솔솔 밀려왔어요. 오늘 딱히 힘들 것이 없었는데 그냥 졸렸어요. 꾸벅꾸벅 졸았어요. 졸다가 깨어났는데 기차는 출발하지 않고 있었어요. 또 졸았어요. 한참 졸았어요. 졸았는지 진짜 깊게 잠들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어쨌든 눈을 감고 내면의 까마득한 어둠 속에 잠겨 있다가 기차가 움직이는 것을 느끼고 눈을 떴어요. 창밖을 보니 기차가 이제야 출발하고 있었어요. 시계를 보니 오후 8시 20분이었어요. 원래 기차 출발 예정 시각은 7시 35분이었어요. 출발부터 거의 50분 지연이었어요. 이게 중간에서 연착이 아니라 시작부터 지연이었기 때문에 엄청난 연착이었어요. 가는 동안 연착이 한 번 발생할 때마다 기차 도착 시간은 계속 지연될 테니까요. 인도네시아에서는 기차가 정시 출발에 정시 도착이었는데, 태국은 기차 두 번 탔는데 둘 다 연착이었어요.


"태국에서 기차 타지 마. 기차 정말 안 좋아. 미니밴 타."

"왜?"

"태국 기차 연착 너무 심해."

"항상 그래?"

"거의 그래. 고질적인 문제야."


태국 친구가 태국 기차는 아주 상습적으로 연착하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절대 타지 말라고 조언해주었던 것이 생각났어요.


기차 출발 후 표 검사를 받고 또 졸다가 시끄러워져서 잠에서 깨어났더니 이번에는 승무원이 사람들 모두 하나씩 다 자리에서 일어나게 하고 침대를 만들어준다고 시끄러워진 것이었어요. 직원이 제 침대를 만들어주자 2층으로 기어올라갔어요.


2층으로 올라가보니 2층은 잠 자는 것 외에 정신을 팔 것이 아예 없는 칸이었어요. 창밖을 볼 수 없었어요. 기차 천장도 낮아서 눈을 뜨고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답답했어요. 가뜩이나 2층 자리가 좁은데 귀중품이 들어 있는 노트북 컴퓨터 가방을 껴안고 누우니 좁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짐칸에 올라가 자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그래도 괜찮았어요. 이미 너무 졸려서 계속 졸고 있었거든요. 눈을 감고 바로 잤어요.


정말 정신없이 잤어요. 매우 잘 잤어요. 눈을 떠보니 벌써 아침이었어요.


태국 철도


기차에서 2015년 6월 16일 아침을 맞이했어요. 시각을 확인해보니 7시 40분이었어요.


'기차표에는 9시 55분 도착이라고 되어 있었지만 정오쯤이나 되어서야 도착하겠지?'


전날 출발에서부터 거진 50분 지연되었으니 정오에 도착해도 잘 도착한 것이라 생각했어요. 계속 누워 있다가 친구가 누워 있는 1층으로 내려와 앉았어요. 그렇게 1층으로 내려와 멍하니 앉아 있는데 승무원이 자리를 정리하고 의자로 바꾸어주었어요. 의자에 앉아 또 멍하니 있었어요. 잠깐 노트북 컴퓨터를 꺼내 여행 기록을 조금 정리한 후,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았어요. 기차는 무성한 열대 수풀을 가로지르며 달리고 있었어요.


드디어 치앙마이역에 도착했어요.


태국 치앙마이 기차


이거 뭐지?


분명히 출발할 때 50분 지연되었는데, 치앙마이역에는 9시 50분에 도착했어요. 기차표에 나와 있는 도착 예정시간보다 무려 5분이나 일찍 도착했어요.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상식적으로 본다면 이 기차는 밤에 엄청나게 내달렸을 거에요. 다른 기차들은 이 기차를 보내기 위해 많이 정차했을 거구요. 기차가 마구 달렸다면 딱히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어요. '한 시간 내에 갔다 와야 하는 곳이 있는데 가는 데에 한 시간 걸렸다. 돌아올 때는 몇 시간 걸려야 왕복 한 시간이 걸릴 것인가?' 라고 물어보는 문제 같은 것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제 기분은 딱 저 문제 속에 제가 있는 기분이었어요. 기차가 무슨 시간과 공간의 터널을 뚫고 통과해서 치앙마이에 도착한 것 같았어요.


얼떨떨해하면서 기차역에서 빠져나왔어요.



"여기가 치앙마이구나."


태국 치앙마이 기차역


치앙마이에서 라오스 루앙프라방으로 가는 길은 버스를 이용해서 갈 계획이었기 때문에 이 기차역에서 볼 일이 없었어요. 다른 관광객들을 따라 치앙마이 기차역 건물에서 일단 빠져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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