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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 짐을 찾았어요. 앞뒤로 가방을 메니 숨이 콱 막혔어요. 바로 벗어던지고 싶었어요. 시안 와서 숙소에 체크인을 한 이후 지금까지 계속 이렇게 앞뒤로 가방을 메지 않았거든요. 며칠간 가벼운 몸으로 여기저기 잘 돌아다니다 다시 가방을 짊어메니 업보를 다시 몸에 장착한 기분이었어요. 사실 틀린 것도 아닌 것이, 가방이 무거운 것은 제가 투르판과 카슈가르에서 책을 샀기 때문이었어요. 책이 몸통을 꽉 누르고 조이는 것이었어요. 책을 제외하면 선물이나 기념품을 산 것도 별로 없고, 한국에서는 정말 몸만 덜렁덜렁 오다시피 했기 때문에 무거울 것이 없었거든요.


"하아..."


한숨이 나왔어요. 이제는 적응이 될 법도 한데 적응이 전혀 되지 않았어요. 바로 오늘 이 밤이 마지막 기차 좌석칸 야간 이동. 경험할 수록 요령도 생기고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것은 경험할수록 끔찍하다는 생각만 강해졌어요. 친구는 정 힘들면 도중에 침대칸으로 바꾸어서 타면 된다고 말했어요. 정말 그렇게 할까 진지하게 고민되었어요. 이 기차로 15시간 20분을 이동해야 했어요. 21시 35분 시안을 출발해서 익일 13시 55분 도착 예정이었거든요. 기차에서 자고 다시 맨정신으로 고문을 당해야 할 것을 생각하니 한국에 돌아간 B가 진심으로 부러워졌어요. B는 공항에서 편하게 비행기 타고 돌아갔는데 저는 이 인권 파괴 좌석에 앉아서 밤을 보내야 했거든요. 진짜 이 중국의 좌석은 기본권 침해라고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싶을 지경이었어요.


그래도 어쩔 수 없었어요. 1위안은 1위안의 가치를 한다. 중국이에요. 돈을 아끼기 위해 좌석칸 표를 구입했어요. 이 고통은 등가교환이라고 할 수 있어요? 아니요. 백만번 생각해봐도 그건 아닌 것 같았어요. 이 기차 좌석은 오히려 '앉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면서 돈을 줘도 부족할 수준이었어요. 몸이 무너진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의자니까요. 그런 의자에 앉아 앞으로 15시간 20분동안 고문을 당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 유전무죄 무전유죄였어요.


친구가 왜 여행 계획을 짤 때 걱정했는지 너무나 잘 알게 되었어요. 지금까지 여행 중 교통 수단 안에서 잠을 설쳐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차체와 하나되어 길의 요동이 중추신경계까지 흔들어대는 지굴리 안에서도 너무나 편하게 잘 잤어요. 며칠을 쉬지 않고 야간 버스 이동을 할 때도 침대에서 자는 것처럼 깊게 잤어요. 지금껏 야간 이동에 대해 몸이 고통스러워 잠을 설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그래서 친구와 계획을 짤 때 그까짓 야간 이동 뭐가 대수냐고 했어요. 이제 알아요. 중국 기차 좌석칸. 이것은 아이언 메이든. 겉은 예쁜 여자 모습이지만 속에 들어가면 바늘이 온몸을 찌르는 고문기구였어요.


카프카스 및 중앙아시아를 여행할 때 지굴리와 승합차를 탈 때마다 뭐 이렇게 인체비공학적으로 만들었냐고 소련제를 비웃었던 제 자신에게 분노의 철퇴를 가했어요. 소련제 자동차와 기차를 타며 두 번 놀랐어요. 그렇게 기계 중심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에 한 번 놀랐고, 무식하게 튼튼하다는 것에 두 번 놀랐어요. 소련이 붕괴된지 벌써 10년이 훨씬 넘었어요. 소련은 위대했어요. 소련 제품은 인체비공학적에 무식하게 튼튼해요. 중국 제품은 반인체공학적에 무식하게 부실해요.


반성했어요. 진심으로 반성했고, 격렬하게 반성했고, 참되고 진실한 마음으로 참회했어요. 소련제를 인체비공학적이라고 비난했던 제 자신은 그동안 너무 배가 불렀던 것이었어요. 중국의 반인체공학적 의자에 비하면 소련의 인체비공학적 의자는 포근한 이불 속 안락함을 주는 존재였어요. 1980년에 생산된 소련 기차 좌석과 2016년에 생산된 중국 기차 좌석 중 선택해서 앉아 갈 수 있다면 저는 무조건 전자를 선택할 거에요.


나는 그동안 잊고 있었다. Made in China 에 버금갈 저질 물건 인증 문구는 인류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감히 СССР 를 Made in China 에 비교하려했던 내 자신의 무지와 편협함을 반성해야 한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반성은 나에 대한 기만. 나는 오늘 마지막으로 고통을 끝까지 겪으며 나의 과오에 대해 참회를 할 것이다. 내가 앉은 의자가 폭발하지 않기만을 바란다. 그 정도까지 잘못한 것은 아니잖아.


"오늘 진짜 힘들면 우리 침대칸으로 자리 옮기게."

"아니. 반드시 이겨낼거야!"


'그냥 앉아 가자'가 아니었어요. 저의 대답은 '이겨낼거야'였어요. 중국 기차 의자에 앉아서 간다는 것 자체가 수난이었어요. 그렇지만 포기할 수 없었어요. 중국 서쪽 끝 카슈가르에서 시안까지 계속 반인체공학적인 중국 좌석칸에서 버티며 왔어요. 마지막 이 구간만 버텨낸다면! 중국 대륙을 기차 좌석칸에 앉아서 횡단하는 것이었어요. 고통은 15시간 20분이지만 비웃음을 살 영광은 영원했어요.


2016년 6월 14일 오후 8시 30분. 시안 기차역에 도착했어요.


중국 시안


"사람 엄청 많네."

"오늘 기차 완전 꽉 차는 거 아냐?"

"오늘도 엄청 달려야겠네."


기차역 안으로 들어갔어요.



친구와 상하이행 열차 대합실로 갔어요.


중국 기차역


중국 시안역


시간이 흘러갈수록 분위기가 고조되어갔어요. 사람들이 슬슬 줄을 섰고, 새치기하려는 사람들이 옆에 알짱거리기 시작했어요.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어요. 왜 기차를 타는데 이러는지 알 수 없었어요. 이래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고 이해도 못하겠지만 점점 긴장되어 갔어요. 이미 곳곳에서 줄에 끼어들려고 하는 사람들과 이를 막으려는 사람들 사이에 권법이 난무하고 있었어요.


이긴다. 이긴다. 이긴다. 이긴다. 무조건 이간다!


저도 친구도 중국에 동화되어버렸어요. 반드시 탁자를 점령해야 한다. 내일 점심까지 우리가 그나마 편하게 가려면 무조건 탁자를 차지해야만 한다. 이놈들에게 탁자를 빼앗길 수 없다. 내가 불편한 것만큼은 절대 참을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중국인의 마인드구나. 나도 이제 똑같이 해주겠다. 양보란 절대 없다. 우리 자리에 있는 탁자는 무조건 우리가 차지한다.


절대 탁자를 빼앗기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드디어 개찰구 문이 열렸어요. 모든 사람이 개찰구를 향해 닥치고 돌진했어요. 줄을 서 있는 사람도, 줄 옆에 앉아 있던 사람도, 줄에 은근슬쩍 새치기하려는 사람도 모두 3년 굶은 아귀들이 먹잇감을 향해 돌진하듯 앞으로 돌격했어요. 친구가 앞사람에게 딱 밀착했고, 저는 친구에게 딱 밀착해 새치기하려는 사람을 방어했어요. 모두가 앞쪽으로 압축되었어요.


상하이에서 우루무치 가는 기차를 탈 때 겪었던 일이지만, 다시 또 경험하니 시작부터 그 열기에 후끈 달아올랐어요. '질서'라는 개념은 이 공간에서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어요. 아니, 그냥 '질서'라는 것 자체가 없었어요. 이것은 만민에 대한 만민의 투쟁. 모두가 일당백의 전사가 되어 격렬하게 싸워서 상대들을 무찌르고 승리해야하는 치열한 생존의 현장.


짐으로 가로막고, 팔로 가로막고, 손으로 밀치고, 어깨로 밀치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하지만 제게 이런 상황은 익숙한 상황이었어요. 제가 어렸을 적만 해도 학교 가는 버스에서 이런 현상은 매일 일어났거든요. 아이들이 서로 먼저 버스에 올라타 친구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밀치고 신발주머니 던지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성인이 되어서는 2003년 영등포역에서 버스를 갈아탈 때마다 이런 일을 겪었어요. 그에 비해 짐을 가득 들은 중국인들과의 경쟁은 오히려 별 것 아니었어요.


가장 먼저 친구를 제쳤어요. 친구를 제치며 저를 잘 따라오라고 소리쳤어요. 개찰구 앞 상황은 변비 환자가 아랫배에 힘주는 모습이었어요. 서로 낑겨서 바둥대다가 간신히 하나 둘 빠져나가고 있었어요. 가뜩이나 모두가 짐이 많다보니 쉽게 빠져나가지도 못하고 있었어요. 사람들의 작은 틈새로 어깨를 밀어넣으며 앞으로 전진했어요. 간혹 뒤에서 뭐라고 하는 중국인이 있었지만 응원처럼 들렸어요. 왜냐하면 그들도 앞서가는 사람을 욕하며 자기들도 열심히 사람들을 밀치고 새치기하고 있었으니까요.


"야! 너라도 먼저 가!"


친구가 비장하게 외치며 인파 속으로 사라졌어요. 중국인 떼거지에 파뭍혀 버렸어요. 친구의 마지막 외침을 듣고 뒤를 돌아볼 수 없었어요. 친구는 이미 낙오자 패잔병이 되어가고 있었어요. 친구의 손을 잡아끌고 앞으로 갈 수 없었어요. 거친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친구에게 마음 속으로 후일을 기약하며 결연한 마음으로 사람들 틈으로 어깨를 비집어 넣으며 앞으로 나아갔어요.


이것은 좀비 재난물이야!


뒤로 낙오되면 좀비들에게 물어뜯겨 잡아먹히는 거다. 좀비들에게 잡아먹히기 싫다면 무조건 앞사람을 제치고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나의 바로 뒤에 지옥의 아수라장이 펼쳐져 있다. 친구의 희생을 헛되이 할 수 없었어요. 이 좀비 떼거지로부터 살아남아 객차에 빨리 올라타서 탁자를 차지해야만 이 상황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었어요. 이미 친구가 희생당한 이상 저라도 살아야 했어요.


뒤돌아보지마!


자신을 희생해서 저를 앞으로 보낸 친구는 중국 좀비떼에게 잡아먹히고 있었어요. 비명 소리 없이 친구는 그렇게 좀비들 사이로 사라졌어요. 머리에서 눈물 같은 땀이 뚝뚝 떨어졌어요. 친구의 최후를 끝까지 목격하고 싶었지만 뒤를 돌아볼 수 없었어요. 뒤를 돌아보는 순간 누군가 저를 좀비떼를 향해 밀어버릴테니까요. 좀비 떼거지야, 이거나 실컷 먹어라! 사람을 뒤로 밀쳐내 좀비의 먹이로 던져주며 앞으로 나아간다. 이것은 최강 인류를 선발함과 동시에 지구에 너무 많은 중국인들의 수를 줄이기 위한 미친놈들의 계획인가. 나는 반드시 살겠다. 이 땀과 악취가 튀기는 생존을 위한 사투 속에서 끝까지 살아남겠다! 정신차리자. 뒤에서 좀비들이 내는 소리는 나를 응원하는 짜요우 加油 소리다! 뒤돌아볼 필요 없어. 친구는 이미 좀비가 되었겠지. 너의 숭고한 희생을 잊지 않겠다. 너에게 약속한다. 반드시 이들을 다 무찌르고 최후의 생존자가 되어 너의 몫까지 탁자와 짐칸을 점령할께.


탁자는 괜찮아. 하지만 짐칸만큼은 절대 양보 못해!


탁자를 차지하면 보다 쾌적하게 갈 수 있어요. 그래도 물통 하나 정도 올릴 공간은 서로 양보해주니까 꼭 차지 못해도 아주 불편한 정도까지는 아니었어요. 문제는 짐칸. 이 사람들이 짐이 많기 때문에 짐칸을 많이 차지해요. 짐칸이 꽉 차 버리면 자기 자리에서 떨어진 짐칸 빈 자리에 낑겨넣든가 발 아래 깔고 품에 안고 가야 해요. 그냥 앉아서 가는 것도 괴로운데 발 아래 짐을 깔고 가면 진짜로 불편할 것이었어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제쳤는지 몰라요. 몇십 명 제쳤어요. 대륙의 허풍이 아니라 진짜로 몇십 명 제쳤어요. 양손이 자유로웠기 때문에 왼쪽 어깨도, 오른쪽 어깨도 자유롭게 쓸 수 있었어요. 영등포에서 버스를 타며 갈고 닦은 기술을 마음껏 펼쳤어요. 짐칸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일념 하나로 제치고 또 제쳤어요. 끼어들고 밀치는 행위는 분명히 부끄러운 행위에요. 그러나 이 자리에서는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어요. 모두가 그렇게 하니까요. 아니, 모두가 그래야만 하니까요. 혼자서 고상하게 양보하면 그 앞으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끼어들어와요. 자기는 천국 갈 지 모르겠지만, 뒷사람들은 영문도 모르는 채 자기들 앞으로 새치기하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아야만 해요.


선두권으로 치고 올라가 개찰구 근처까지 왔어요. 그나마 존재하는 질서라면 의자 위를 달려서 개찰구로 돌진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 뿐이었어요. 개찰구 근처로 와서 보니 역무원이 표를 검사하고 있었고, 표 검사를 받은 사람만이 개찰구를 통과할 수 있었어요. 역무원 머리 속에 순서, 질서 같은 것은 없어보였어요. 그저 자기가 바라보는 쪽에서 자기에게 가장 가까운 표를 받아 검사하고 있었어요. 표를 쥔 오른손을 앞사람들 어깨 너머로 쭉 뻗어 역무원에게 건네었어요. 역무원이 제 표를 받아들고 표를 검사한 후 표를 돌려주었어요. 표를 받자 제 앞에 있던 사람들이 개찰구를 향해 순순히 비켜주었어요.


개찰구를 통과했어요.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어요. 이제 플랫폼으로 뛰어야 하는데 도저히 뛸 수가 없었어요. 뒤에서 사람들이 추격해오고 있었기 때문에 계속 빠르게 걸었어요. 사람들을 계속 제치며 드디어 플랫폼에 도착했어요. 제 객차는 2번 차량. 기차에는 14번 차량만 표지가 달려 있었어요. 기차 앞뒤를 살펴보았지만 보이는 것은 오직 14번 차량 번호판 뿐이었어요. 역무원에게 다가갔어요. 마음은 달려가고 있었지만, 몸은 걸어서 다가갔어요.


"칭원이샤."


중국 여행하며 친구가 하는 말을 많이 들어서 따라할 수 있게 된 말을 역무원에게 했어요. 역무원이 바라보자 아무 말 없이 표를 보여주었어요. 역무원은 오른쪽으로 가라고 알려주었어요.


14호 차량 외에는 그 어떤 차량도 번호판이 달려 있지 않았어요. 앞으로 계속 걸어가는데 과연 이게 맞는 방향인지 계속 의문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어요. 만약 역무원이 엉뚱한 방향을 알려준 것이라면 이 모든 사투가 허무하게 사라져버려요. 사투가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으로 끝나면 좋겠지만, 이미 땀에 절어버린 제 옷은 되돌릴 수 없어요. 이 축축함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짐칸과 테이블 모두 사수해야 했어요.


"칭원이샤."


다른 역무원이 보이자 또 물어보았어요. 역시나 오른쪽으로 가라고 알려주었어요. 그때부터 빨리 걸어가기 시작했어요.


아무리 걸어도 2호 차량은 보이지 않았어요. 객차에 번호판을 아직 달지 않은 상태라 뭐가 몇호차인지 알 수 없었어요. 2호차면 앞에서 2번째. 기차 끝이 보일 때까지 계속 걸었어요. 드디어 3호 차량이 나타났어요. 제가 3호 차량 앞에 도착했을 때 승무원이 3호 차량 번호판을 입구에 달았어요. 드디어 2호차 앞에 도착했어요. 사람들이 모여 있었지만, 아무도 아직 들어가지 않고 있었어요. 드디어 문이 열리고, 2호차 번호판이 매달렸어요. 여기에서도 사람들은 서로 먼저 타기 위해 카오스의 공간을 탄생시켰어요. 사람들 틈에서 팔을 쭉 내밀어 승무원에게 보여주었어요. 이것은 쇼트트랙처럼 발이 먼저 계단에 오른다고 이기는 것이 아니에요. 육상처럼 가슴이 먼저 입구에 들어가야 이기는 것이 아니에요. 승무원에게 표를 먼저 보여주어서 확인하게 해야 이기는 경기에요.


잽싸게 승무원을 향해 팔을 내뻗어 표를 확인받고 객차로 올라탔어요. 탁자에 물을 올려놓고 짐칸에 가방을 던져올렸어요. 가쁘게 숨을 내쉬며 땀을 닦았어요. 내가 흘리는 땀이 머리에서 나는 땀인지 승리의 눈물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어요. 온몸에서 땀이 죽죽 흘러내렸어요. 너무 더워서 바로 자리에 앉을 수 없었어요. 한참 뒤에야 친구가 객차에 올라타 친구와 재회할 수 있었어요. 친구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어요.


왜 이 여행에서 기차를 탈 때마다 이 짓거리인지 궁금한 사람들이 꽤 많을 거에요. 꼭 저럴 필요 없고, 혼자 그렇게 오버하는 거라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거에요. 그런데 이건 이러지 않을 수가 없어요. 일단 질서 자체가 없어요. 비행기와 버스 타는 것과는 달라요. 기차는 개인수하물을 모두 객실로 들고 타요. 조금만 아차하면 농민공들이 빈 공간 아무데나 커다란 마대 자루와 페인트통을 우겨넣어요. 한두 시간이면 가방을 발 아래 두고 어떻게 갈 수 있지만, 15시간 기차 이동해야 하는데 계속 발 아래에 가방을 깔고 갈 수는 없어요. 15시간동안 의자에 어정쩡하게 쪼그리고 가다가는 허리도 끊어지고 무릎도 끊어져요. 스스로 일제강점기 일본 순사들이 독립투사들을 비좁은 궤짝에 우겨넣은 고문이 얼마나 괴로운지 체험하고 싶다면 느긋하게 아수라장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기차에 올라타면 되요. 모두가 달리는 이유는 사실 짐칸을 차지하기 위해서에요. 짐칸은 무슨 표든 상관 없이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거든요.


드디어 기차가 출발했어요.


"야, 저거 나왔다! 내가 말했지?"


승무원이 잡다한 것을 파는 수레를 끌며 오고 있었어요. 그 승무원이 판매하고 있는 물품 중 하나는 바로...


목욕탕 의자였어요.


목욕탕 의자 1개 10위안.


농담이 아니에요. 진짜로 목욕탕 의자 1개를 10위안에 판매하고 있었어요. 친구가 전에 기차에 목욕탕 의자 깔고 앉아 가는 사람도 있다고 했을 때 별 또라이 다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건 별 또라이가 아니라 대놓고 그러라고 승무원이 의자를 판매하고 있었어요. 저걸 사는 사람이 있나 싶었는데 진짜 사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역시 무엇을 떠올리든 그보다 더 이상한 것이 있는 중국 대륙이었어요.


"야, 우리 저거 살까? 3개 깔면 바닥에 누워서 자겠네!"


친구의 농담이 농담 같지 않았어요. 중국에 충분히 적응한 친구라면 그러고도 남을 것 같았어요.


"얘들은 혼란하면 통제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무질서를 조장한대니까!"


친구의 감정이 폭발했어요. 친구의 심정이 이해가 갔어요.


"저기 콘센트 있다!"


제 뒷쪽으로 맞은편 자리에 콘센트가 있었어요. 자리마다 콘센트가 있는 것은 아니었고 객차 맨 앞에만 콘센트가 있었어요. 친구가 충전기를 끼워보았어요. 충전이 되었어요. 친구는 그 콘센트에 충전기를 연결해 자신의 스마트폰을 충전시켰어요.


친구가 처음 중국 기차에 대해 설명할 때 해주었던 것들이 모두 사실이었어요. 시안 올 때까지 보이지 않았던 목욕탕 의자 파는 승무원과 객차 안 콘센트 모두 존재했어요.


다행히 기차에 사람이 많지는 않았어요. 잡상인 같은 승무원이 계속 물건을 팔러 돌아다니는 것 외에는 그냥저냥 괜찮았어요. 처음에는 승무원이 목욕탕 의자를 10위안에 판매하는 것이 웃겼지만, 자꾸 돌아다녀서 복도로 다리를 뻗을 수 없게 만들자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어요.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번에는 농민공도 별로 없고 사람도 아주 꽉 들어차지 않아서 짐칸이 그나마 정상적으로 가득차 있었고, 객차 복도 바닥에 드러누운 사람도 없었다는 것이었어요. 입석 표를 구입한 사람들이 킬리만자로의 하이에나처럼 호시탐탐 빈자리를 노리고 있었어요. 자리를 비우면 순식간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어요. 그렇게 앉아 있다가 원래 자리 주인이 돌아오면 자리를 비켜주었어요. 원래 앉아 있던 사람이 돌아왔는데 그냥 서 있으면 그 사람은 원래 입석 기차표를 구입한 사람이었어요.


중국 입석 기차


중국 기차


창문에 기대어 자려고 하는데 자세가 불편해 도저히 잘 수가 없었어요. 왜 침대칸으로 바꾸지 않았을까 후회가 되었어요. 그러나 견뎌내어야 했어요. 광활한 중국 대륙을 오직 기차에 앉아서 횡단하기 위해서는 참아야만 했어요. 사실 이것은 변명이었어요. 실제로는 돈이 없어서 바꿀 수가 없었어요.


"우리 결산해야지."

"아, 맞다."


친구가 지금까지 기록한 공금 지출 내역을 가지고 결산했어요.


"내일은 어떻게 할 거?"

"내일은 그냥 각자 내게."

"숙박비도?"

"어. 숙박비도 그렇게 하자. 나 이거 위안화 다 쓰고 가려구. 공금 빈 것은 지금 위안화로 줄께."


기차 타기 직전까지 공금으로 지출한 것을 계산해 보았어요. 얼마나 많이 비었느냐가 관건이었어요. 일단 목표했던 금액보다 초과한 것은 확실했어요. 16일 귀국을 제외하면 하루 남았기 때문에 이날은 그냥 개인적으로 돈을 쓰기로 했어요. 100달러 환전한 것을 마음껏 쓰기 위해서는 먼저 친구에게 공금 부족분을 위안화로 주어야 했어요. 친구와 같이 계산을 맞추어보며 결산을 내었어요. 총 지출이 거의 3600위안 넘게 나왔어요.


"아...돈 예상보다 훨씬 더 썼네."


친구가 시무룩해졌어요. 그러나 그것은 잠시였어요. 왜냐하면 저와 친구가 열심히 사치하고 호화스럽게 여행해서 예상을 벗어난 것이 아니라 B가 합류하면서 크게 벗어난 것이었거든요. 친구는 어디에서 예상을 크게 벗어났는지 확인해보았어요. B와 같이 노는 일정 때문에 경비가 예상보다 크게 많이 나왔어요. 병마용 150위안, 화청지 150위안, B를 데리러 가고 데려다 주는 비용 100위안 - 이것만 해도 벌써 400위안이었으니까요. 이 사실을 확인한 B는 다시 기분이 밝아졌어요.


 친구에게 부족분 400여 위안을 건네주니 남은 돈은 고작 185위안. 다음날 숙박비도 이 돈으로 내어야 했어요. 게다가 15일, 16일 이렇게 이틀을 이 돈으로 버텨야 했어요. 그렇다보니 침대칸으로 옮길 돈이 아예 없었어요.


다행히 기차에 사람이 많지는 않았어요. 잡상인 같은 승무원이 계속 물건을 팔러 돌아다니는 것 외에는 그냥저냥 괜찮았어요. 처음에는 승무원이 목욕탕 의자를 10위안에 판매하는 것이 웃겼지만, 자꾸 돌아다녀서 복도로 다리를 뻗을 수 없게 만들자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어요.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번에는 농민공도 별로 없고 사람도 아주 꽉 들어차지 않아서 짐칸이 그나마 정상적으로 가득차 있었고, 객차 복도 바닥에 드러누운 사람도 없었다는 것이었어요. 입석 표를 구입한 사람들이 킬리만자로의 하이에나처럼 호시탐탐 빈자리를 노리고 있었어요. 자리를 비우면 순식간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어요. 그렇게 앉아 있다가 원래 자리 주인이 돌아오면 자리를 비켜주었어요. 원래 앉아 있던 사람이 돌아왔는데 그냥 서 있으면 그 사람은 원래 입석 기차표를 구입한 사람이었어요.


원래 저는 창가쪽, 친구는 복도쪽 자리였어요. 그런데 별 이유 없이 저는 복도쪽에 앉고, 친구는 창가쪽에 앉았어요. 제 맞은편은 시커멓게 탄 남자, 친구 맞은편은 덩치 작은 여자였어요. 비좁은 중국 객차 좌석에서는 창가 좌석보다 복도 좌석이 압도적으로 좋아요. 복도쪽에 앉으면 최소한 한 다리는 뻗을 수 있어요. 맞은편 사람과 공생이 잘 되면 서로의 가랑이에 한 다리를 집어넣어 둘 다 다리를 펴고 갈 수 있어요. 운이 나빠도 일단 복도쪽으로 한쪽 다리는 뻗을 수 있어요. 그러나 창가쪽 및 가운데 좌석은 보통 다리를 90도로 굽히고 가야 해요. 이것은 이론이고, 실제로는 한 명이 다리를 펴고 한쪽은 굽히는 모습이 종종 연출되요. 무슨 초등학교 시절 책상에 금 그어놓고 넘어오면 공격하는 것도 아니고, 다리 편 각도가 90도를 넘으면 견제해야 해요. 중국 기차 좌석에 앉아가는 것에 비하면 비행기 이코노미 클래스 앉아가는 것은 우아한 사치에요.


맞은편 남자와 사이좋게 공생하며 다리를 폈어요. 잠시 후. 친구가 도저히 더워서 못 앉아있겠다고 해서 제가 제 원래 자리인 창가쪽 좌석으로 돌아갔어요. 앞의 덩치 작은 여자는 계속 다리를 꼬았다 풀었다 하며 혼자 바닥 공간의 2/3을 차지하려고 했어요. 얌전히 다리를 꼬았다 풀었다 하는 게 아니라 자꾸 제 다리를 발로 툭툭 쳤어요. 다리를 바꿔서 꼬아앉을 때마다 제 다리를 쳤고, 다리를 꼬고 앉아 발을 까딱거리며 또 자꾸 제 다리를 쳤어요. 가뜩이나 불편해 죽겠는데 발로 계속 정강이를 차대자 가볍게 상대의 발을 발로 툭 건드렸어요. 그러자 여자는 얌전히 다리를 90도로 굽혔어요.


창문에 기대어 자려고 하는데 자세가 불편해 도저히 잘 수가 없었어요. 왜 침대칸으로 바꾸지 않았을까 후회가 되었어요. 그러나 견뎌내어야 했어요. 광활한 중국 대륙을 오직 기차에 앉아서 횡단하기 위해서는 참아야만 했어요. 사실 이것은 변명이었어요. 실제로는 돈이 없어서 바꿀 수가 없었어요. 기차에서 친구와 이번에 사용한 경비를 최종적으로 결산했어요. 16일 귀국을 제외하면 하루 남았기 때문에 이날은 그냥 개인적으로 돈을 쓰기로 했어요. 100달러 환전한 것을 마음껏 쓰기 위해서는 먼저 친구에게 공금 부족분을 위안화로 주어야 했어요. 결산을 내어보니 총 지출이 거의 3600위안 넘게 나왔어요. 친구에게 부족분 400여 위안을 건네주니 남은 돈은 고작 185위안. 다음날 숙박비도 이 돈으로 내어야 했어요. 그렇다보니 침대칸으로 옮길 돈이 아예 없었어요.


"우리 과일 사먹을까?"

"별로."


기차 승무원이 마지막 떨이로 과일을 싸게 팔고 있었어요. 친구는 과일을 사먹지 않겠냐고 물어보았어요. 과일을 먹고 싶지 않았어요. 식욕이 그다지 없었어요. 아까 저녁을 배부르게 먹어서 딱히 뭔가 먹고 싶지도 않았고, 과일 상태도 썩 좋아보이지 않았어요. 친구는 과일을 보며 입맛을 다셨어요. 저는 덥고 지쳐서 그저 물만 마시고 싶을 뿐이었어요.


"너 배 안고파?"

"별로. 너 배고프구나!"

"그냥 좀 출출하네."

"라면 먹어. 너 상하이에서 출발할 때 구입한 라면 아직도 들고 다니잖아."

"그럴까?"


친구는 가방에서 컵라면을 꺼냈어요. 이 컵라면은 상하이에서 투르판으로 가는 기차를 탈 때 구입한 라면이었어요.


"이 라면 진짜 평생 보관할까 했다. 이거 신장 위구르까지 다녀온 라면 아니야."


친구는 라면 봉지를 뜯었어요.


"나도 그 아줌마들처럼 기름 스프 그냥 넣고 끓여볼까?"

"어? 진짜 하게?"

"어. 환경 호르몬의 맛을 느껴보자."


친구는 고체가 된 기름 스프 봉지를 찢어서 컵라면 안에 집어넣고 뜨거운 물을 받아왔어요.


"맛있냐?"

"환경 호르몬 맛이 아주 끝내준다. 한 입 먹을래?"

"아니, 됐다."


친구가 먹는 모습을 보며 깔깔 웃었어요. 전에 기차에서 중국 아주머니들이 기름 스프 봉지를 잡아 찢어서 컵라면 안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서 익히는 것을 보고 대륙의 창의력이라 감탄했어요. 중국 라면의 기름 스프는 굳어서 고체 상태에요. 그러다보니 손으로 짜서는 깔끔하게 나오지 않아요. 중국 아주머니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창의력을 발휘해 컵라면을 익힐 때 기름 스프 봉지를 찢어서 그대로 집어넣어 익혀버렸어요. 그것을 친구가 그대로 따라할 줄은 꿈에도 상상 못했어요.


친구가 라면을 다 먹은 후 이런 저런 잡담을 하다 눈을 감았어요.


'중국이 아편 전쟁 때문에 마약사범에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구? 그냥 자기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음을 알아서 그런 것 아닐까?'


중국에서 마약사범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유명해요. 이에 대해 아편 전쟁에 대한 기억 때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과연 그 옛날 일 때문에 지금도 그러고 있나 항상 의문이었어요. 중국 와서 보니 그것 때문이 아니라 중국 정부가 중국인들을 통제하기 어려워서 그런 것 아닌가 싶었어요. 중국 정부가 나름 통제하고 규칙을 세우려 하는 모습은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었어요. 음식 낭비하지 말라는 포스터도 붙어 있었고, 신호등도 있었고, 식당마다 위생 등급이 붙어 있었어요. 하지만 제대로 완벽히 통제되고 있어 보이지는 않았어요. 이유는 간단해요. 땅이 넓고 인구가 무지막지하게 많으니까요. 마약이 한 번 퍼지기 시작하면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에 아예 씨를 말리려고 하는 것 아닐까?


우리나라에는 인터넷상에서 '원룸의 연뽕술사'라 불린 사건이 있었어요. 화학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는 우리나라 사람 2명이 독학 끝에 원룸에서 일반 종합 감기약을 가지고 몰래 조금씩 필로폰을 제조해 판매를 시도하다 검거된 사건이에요. 이 사건이 보도되자 인터넷상에서 그 기발함과 근성, 창의력에 감탄하여 유명 일본 만화 제목 '강철의 연금술사'를 패러디해 '원룸의 연뽕술사'로 불렀어요. 중국인들의 쓸 데 없고 잉여로운 창의력이라면 원룸의 연뽕술사보다 더한 놈들이 무지막지하게 쏟아져나올 거에요. 게다가 위도 아래도 안 보이는 까마득한 빈부격차를 보면 정말 마약이 빠르게 퍼지기 좋은 환경이에요. 중국에 마약이 제대로 퍼지기 시작한다면, 중국 정부가 과연 마약을 잡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 보고 들은 모든 것을 통해 짐작해 보았을 때 엄청 어려울 거에요. 북한 고난의 행군 시절 동북3성에 필로폰이 퍼졌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이 본격적으로 남서진하기 시작한다면 중국이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그 확산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 깜빡 잠이 들었어요.


이미 여러 번 했던 중국 기차 좌석에서 잠자기였지만 이날따라 더욱 힘들었어요.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숨이 턱턱 막혔어요. 잠을 자다 숨쉬기 어려워서 자꾸 깨어났어요. 머리를 뒤로 젖힐 수만 있어도 이렇게 괴롭지는 않을텐데, 머리는 제 아무리 뒤로 젖혀보아야 허리와 수직이었어요. 잠을 자는 건지 눈을 오래 감고 멍때리는 건지 분간 못할 시간이었어요.


새벽이 되자 친구에게 사정해서 복도쪽 자리에 앉았어요. 진짜 3-2 좌석 중 친구와 제가 2명 좌석에 앉은 것은 커다란 축복이었어요. 창가에 앉았을 때에는 질식해 죽을 것 같았는데, 복도쪽에 앉자 숨이 꽉 막히는 느낌은 없어졌어요. 물론 허리와 허벅지, 허벅지와 정강이를 90도로 만들어야만 하는 의자가 주는 고통은 그대로였지만요. 그냥 다리가 덜 아플 뿐이었어요. 아크로바틱하게 몸을 배배 꼬고 빙빙 돌려보았지만 잠자기 편한 자세는 전혀 찾을 수 없었어요.


다시 한 번 깨었을 때, 기차에 사람이 가득했어요. 어느 역에선가 사람들이 엄청나게 탔어요. 그것을 얼핏 보고 다시 정신을 잃었어요.


다음에 눈을 떴을 때에는 난징이었어요. 여기에서 사람들이 우루루 내리고, 또 우루루 탔어요. 다리를 꼬고 앞사람 괴롭히던 여자가 내리고, 모범생처럼 생긴 여자가 창가쪽에 앉았어요. 이제 친구도 잠에서 깨어났어요. 친구와 쓸 데 없는 잡담을 하는데 창가쪽 여자가 계속 친구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어요.


"야, 저 여자 너한테 관심있나보다."

"뭐? 너 또 여행기에 이상한 거 쓰려고 그러지?"

"뭔 소리야? 진짜 저 여자가 너 유심히 쳐다보고 있구만."

"그런 것은 그 드라마녀 하나로 충분하다."


친구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지긋히 바라보던 창가쪽에 앉은 여자는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기 시작했어요. 친구는 창가쪽 여자가 중국어로 통화하는 것을 유심히 들었어요.


"저 여자 지금 면접보러 가나보다."

"그래?"


창가쪽 여자는 전화를 끊었어요. 잠시 후. 창가쪽 여자에게 전화가 걸려왔어요. 친구는 또 그 통화를 유심히 들었어요.


"이야, 진짜 대륙의 패기네!"

"왜?"

"지금 저 여자 어디 면접가나봐. 그리고 방금 온 전화는 다른 회사로부터 면접보라고 연락 온 거인데, 회사에 오늘, 내일 자기 일 있으니 3일 후에나 시간 된다고 당당히 통보하더라. 일말의 꿇림도 없어!"

"진짜?"

"우리나라면 있는 약속 당장 다 취소하고 달려간다고 할 건데 역시 대륙의 패기네."


친구와 조용히 웃었어요.


'어서 내 자취방 돌아가고 싶다.'


한국에서 일 때문에 중국인들을 많이 만나며 중국인들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어요. 친한 동생은 제게 중국 이제 많이 좋아졌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지금. 중국과 중국인이 정말 싫어졌어요. 왜 동생이 중국이 많이 좋아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자기만 좋으면 되는 이기주의와 남을 못 믿는 분위기가 정말 싫었어요. 우리나라가 매우 좋은 나라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어요. 우리나라가 중국보다 못한 점도 여러가지지만, 그렇다고 둘이 같은 수준은 절대 아니었어요. 이건 마치 운동을 잘 못하는 전교 최상위권 학생과 학교 수업을 거의 듣지 않는 운동부 학생 중 누가 공부를 더 잘하냐고 물어보는 것이었어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여행중 한국으로 일찍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어요. 여행할 때마다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여행을 더 하고 싶었어요. 그러나 지금. 진심으로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경비를 아끼려 해서 육체적으로 피곤해서가 아니었어요. 이 나라와 이 사람들의 분위기 자체가 매우 싫었어요. 아름다운 전통과 문화 같은 것은 없었고 Made in China 만 있었어요. 한편으로는 이런 놈들이 중화사상에 쩔어있다는 것이 참 웃겼어요. 중국 전통 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는 타이완인들이 중화사상에 쩔어있다면 이해하겠지만요. 하긴, 그러니 Made in China죠. 정작 중화민족의 전통과 문화를 잘 간직하고 있는 타이완의 국민들은 중화사상이 별로 심하지 않은데 Made in China 인간들이 오히려 중화사상에 쩔어있어요. 이해해요. Made in China 니까요.


친구가 또 출출하다고 했어요. 마침 B가 남기고 간 신라면 컵라면이 있었어요. 친구에게 제것까지 다 먹으라고 했어요. 친구는 신라면 컵라면을 먹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보기 힘들지만, 예전에 제가 어릴 적만 해도 외국에 오래 체류한 해외동포들에게 한국의 전통 공연 및 음식을 전달해드리는 모습이 종종 나왔었어요. 그때마다 고령의 해외동포들은 눈물을 흘리며 고향의 맛과 향기라 눈물을 흘리셨어요. 친구가 신라면을 먹는 모습은 그 모습이었어요.


"너도 먹어! 역시 신라면은 한국 것이라니까!"

"됐다. 나는 한국 돌아가면 돈 없어서 이제 매일 라면 끓여먹어야 하는데."


친구에게 B가 제것으로 들고온 것도 가져가서 끓여먹으라고 했어요.



이제 다시 상하이였어요.


중국 상하이역


2016년 6월 15일 오후 2시 2분. 기차에서 내렸어요. 이제 이 여행의 마지막 일정이 시작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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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좀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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