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복습의 시간 (2016)

복습의 시간 - 70 중국 서안 화각항 化觉巷, 대안탑 大雁塔

좀좀이 2016. 12. 13.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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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족 거리로 오니 역시나 쓰레기통이 있었고, 여기에 버려진 나무 꼬챙이를 재활용하기 위해 주워가는 사람이 보였어요.


"여기도 역시나 나무 꼬챙이 재활용하네."


란저우에서 목격한 장면을 여기에서 또 목격했어요. B에게 저거 보라고 하면서 여기에서는 절대 큼지막한 나무 꼬챙이에 끼워진 거 먹으면 안 된다고 알려주었어요.


거리에서는 회족이 양고기를 해체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었어요.



우리나라라면 어떻게 지저분하게 거리에서 저렇게 고기를 해체하냐고 하겠지만, 여기는 중국이었어요. 저렇게 거리에서 해체하는 장면을 보니 매우 믿음이 갔어요. 고기에 미세먼지 좀 뭍는다고 해서 걱정되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잘 안 보이는 곳에서 이상한 고기 섞어서 팔거나 하는 것보다 차라리 저렇게 대놓고 공개하는 것이 훨씬 믿음이 갔어요. 여기는 '불신'해야만 하는 중국이니까요. 창의력을 뛰어넘은 창조력으로 어떤 짓거리를 할 지 모르는 곳이니까요.



커다란 양꼬치를 대량으로 굽는 기계도 있었어요. 그러나 먹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어요. 애초에 이 거리에서 먹기로 한 것은 만두이기도 했구요.


"여기다."




안으로 들어갔어요. 안은 넓었는데 사람들도 많았어요. 일단 이 정도 인구밀도면 맛집의 확률이 높았어요.



만두 가격은 16원이 보통이었어요.



뱡뱡면 먹은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만두를 두 판만 시켰어요.




"너는 식초 넣을 거?"

"아니. 안 넣을래. 식초 넣으니까 별로였어."


B도 중국 식초를 거부했어요. 그 특유의 역한 냄새가 참 싫었다고 말했어요. 친구는 혼자 간장에 중국 식초를 섞었고, 저와 B는 간장에 식초를 섞지 않았어요. 만두를 간장에 찍어서 먹어보았어요. 맛이 괜찮았어요. 양고기 냄새가 조금 있기는 했지만 괜찮았어요. 양고기 냄새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매우 안 좋아하겠지만요. 느긋하게 만두를 먹은 후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이제 뭐하지?"

"아까 회족거리 입구 옆에 있던 골목 들어가보자. 거기 시장인 것 같더라."


목적지가 없어져서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차에 고루쪽 회족거리 입구 옆에 있는 시장이 떠올랐어요. 딱히 특별할 것은 없겠지만 이미 다 돌아다녀서 흥미가 없고 사람만 바글거리는 회족거리를 무의미하게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차라리 시장 구경하는 것이 낫겠다 생각했어요. 중국하면 짝퉁인데, 도대체 얼마나 많은 짝퉁이 살아숨쉬고 있나 한 번 구경해보고 싶었거든요.


중국이 더 이상 짝퉁이나 쓰레기 제품 안 만든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에요. 단지 우리나라에 그런 조악한 품질의 중국제가 많이 수입되지 않는 것 뿐이에요. 원래 짝퉁도 다 등급이 있어요. A급은 선진국으로 수출되요. 한때 우리나라에 쓰레기 등급의 중국제가 많이 수입되었지만 요즘은 별로 수입되지 않는데, 이유는 간단해요. 우리나라에서 쓰레기 등급은 안 팔리거든요. 반면 후진국을 가보면 아직도 여전히 쓰레기 같은 중국제를 아주 많이 볼 수 있어요.


고루쪽 회족거리 입구 옆에 있는 시장은 화각항 化觉巷 이었어요. 여기에서 항 巷 은 '좁은 길'이라는 뜻이에요.


중국 관광 기념품


중국 전통 의상 - 치파오




"여기도 기념품 팔고 있네!"


서안문 거리에서 파는 것과 똑같은 기념품을 파는 가게가 많이 있었어요. 서안문에서 팔고 있는 모든 종류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거의 대부분은 화각항에서도 팔고 있었어요. 냉장고 자석과 도장 같은 것은 이곳에서 팔지 않았어요. 대신 서안문 거리에서 보기 힘든 의류는 여기에서 많이 팔고 있었어요. 짝퉁 골동품은 두 곳 모두 공통적으로 파는 것도 있었고, 서안문 거리에서만 파는 것도 있고 화각항에서만 볼 수 있는 것도 있었어요.


중요한 것은 가격. 서안문 거리보다 화각항이 가격이 더 저렴했어요.



기념품을 구경하면서 좁은 시장 골목을 돌아다녔어요.




'저거 모스크 아니야?'



그 유명한 시안 청진대사 입구가 여기에 있었어요. 입구를 알려주는 팻말 오른편에는 'Ticket office' 라고 적혀 있었어요. 유료였어요.


'저거 들어가자고 할까?'


사실 들어가자고 한다면 들어갈 수는 있었어요. 친구가 게거품 물고 발광하기는 하겠지만 B는 아직 모스크를 본 적이 없었어요. 게다가 이것은 전형적인 모스크가 아니라 얼핏 보면 중국 전통 건물 유적 같은 곳이었어요. 어차피 특별한 일정 없이 돌아다니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에 들어가고 싶다고 한다면 들어갈 수는 있었어요. 중요한 것은 바로 저의 마음.


돈 내고 들어가기는 싫다.


중국에 더 이상 내 피 같은 돈을 쓰고 싶지 않다. 먹는 것이라면 돈을 쓸 생각이 있지만 이런 관람료로 내 돈을 쓰고 싶지 않다. 이것이 위구르인의 모스크라면 모르겠지만 여기는 회족 모스크. 딱히 땡기는 것이 없었어요. 25위안을 내고 들어가야 할 이유를 전혀 찾을 수 없었어요. 실크로드에 열광한다면 여기를 반드시 들어가보아야겠지만, 실크로드에 관심없는 제게 여기는 중국에 돈 바치고 들어가야하는 무수히 많은 곳 중 하나에 불과했어요.


애초에 모스크에 들어간다는 것 그 자체로 경기를 일으키는 친구에게는 뭔 짓을 해도 소용이 없지만, B를 즐겁게 해주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 같았어요. 실크로드에 대한 망상은 엄청나게 많이 접했기 때문에 어떤 상상을 하는지도 알고 있거든요. 적당히 퇴폐적이고 몽환적인 엉터리 이야기 좀 섞어서 입 좀 놀려주면 한 번은 재미있어해요. 그런데 당장 돈 내고 들어가려니 모스크 구경 좋아하는 제가 입장료로 내는 돈이 아까웠어요.


중국 시안 청진대사 모스크


혹시 슬쩍 들어가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입구를 보았더니 입구에서 저렇게 지키고 있었어요.



돈 내고 모스크를 들어갈지 말지는 제 의지의 문제였어요. 진짜 친구가 도를 넘어선 수준으로 반대한다면 친구 입장료를 제가 내주어버리면 되니까요. 그러면 옆에서 계속 궁시렁대기는 하겠지만 들어가기야 하겠죠. 1인당 25위안이니 3인이면 75위안. 정말 제가 들어가고 싶다면 까짓거 75위안 제가 내고 둘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도 있었어요. 75위안이 적은 돈은 아니지만 친구 두 명에게 한국에서 차 한 잔 산다고 생각하면 되는 액수이기도 하거든요. 원래 친한 친구들이니 둘에게 차 한 잔 사는 것이 돈 아까운 일도 아니구요. 게다가 당장 오늘 100달러를 환전해서 651위안이 손에 들어왔기 때문에 위안화를 사용하는 데에 여유도 있었어요.


즉, 이 모스크를 들어갈지 말지의 문제는 전적으로 제 의지에 달린 것이었어요. 그런데 저 자신이 25위안 내고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벽에 있는 아랍 문자만 사진으로 찍고 뒤돌아섰어요. 친구에게 여기 25위안 내야 들어갈 수 있는 유명한 모스크 있다고 말해주자 친구는 바로 게거품 물고 경련을 일으켰어요. 그렇게 모스크에 발광하는 친구를 보자 확 가자고 끌고 가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나 그러기에는 돈도 아깝고 B도 그렇게 흥미있어 하는 것 같지 않아서 그냥 말았어요.



좁은 골목길을 계속 돌아다녔어요.



오바 마오!


이 셔츠를 보는 순간 정말 진심으로 격하게 구입하고 싶었어요. 저런 건 너무 중국스러웠어요. 미국 대통령을 저렇게 중공 인민으로 만들어버리는 발상에 한 번 놀랐고, 흑인 대통령을 백인으로 만들어주는 저 짝퉁스러움에 두 번 놀랐어요. 단순히 중국스러워서 구입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국제 관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저것이 정말 강하게 와닿을 거에요. 저 사람 지지자들은 물 만난 세슘 덩어리처럼 격렬하게 반발하겠지만요.


B가 누군가와 계속 메시지를 주고 받더니 말했어요.


"여기에서 차 살 수 있어?"

"왠 차?"

"부모님께서 보이차 사다달라고 하셨어."

"차?"


갑자기 어려운 문제 등장. 500mL 패트병에 들어 있는 밀크티라면 제가 추천해줄 수도 있었어요. 왜냐하면 중국 와서 종류별로 보이는 대로 다 마셔보고 있었거든요. 밀크티를 입에 달고 살았기 때문에 제 눈 앞에 보이는 밀크티 500mL 패트병 제품은 거의 다 마셔보았어요. 하지만 친구가 말한 것은 이런 밀크티 500mL 패트병 제품이 아니라 무려 '보이차'라는 것이었어요.


저는 솔직히 이때 보이차가 뭔지도 몰랐어요. '차'라는 것은 아는데 보이차가 대체 어떤 차인지 아예 본 적도 없었어요. 주워들은 것은 있어서 운남성에서 생산하는 차라는 것은 아는데, 그 이상의 지식은 없었어요. 보이차를 마셔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어떻게 우려서 마시는지도 몰랐어요. 친구를 보니 친구도 보이차에 대해 썩 잘 아는 것 같지 않았어요.


어쨌든 차를 사러 가기로 했어요.


"백화점에 가면 차 파는 매장 하나는 있지 않을 건가?"


일단 백화점을 먼저 가기로 했어요. 백화점으로 가기 위해서는 다시 고루 쪽으로 가야 했어요.



고루 쪽으로 나와보니 누가 연을 날리고 있었어요.



이렇게 거리에서 기념품도 팔고 있었어요.



이것이 뱡뱡면의 '뱡' 자에요. 이것은 기념으로 하나 사갈까 잠깐 고민했지만 그냥 말았어요.



이것은 멜론처럼 생긴 것인데 매우 가벼웠어요.



하늘에 연이 날아다니는 것을 보며 백화점으로 갔어요. 백화점에는 운남성에서 생산된 차를 전문적으로 파는 매장이 있었어요.


"보이차 이렇게 비싸?"


당연히 보이차에 대해 모르니 보이차 가격을 보고 기겁할 수 밖에 없었어요. 나중에야 알았어요. 보이차는 비싼 차더라구요. 이 당시에는 그것을 몰랐기 때문에 보이차 가격을 보자마자 기겁했어요. 셋 다 보이차 가격을 보고 기겁했는데...딱 거기까지였어요. 저와 B는 친구를 바라보았어요. '그래도 너는 중국에서 오래 있었으니 차에 대해 우리보다 잘 알겠지'라는 눈빛을 보냈어요. 그런데 친구도 차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어요. 일단 둥그런 원반 모양 덩어리가 보이차라는 것은 알겠는데, 전부 종이로 포장되어 있었어요. 직원이 보여주어서 속을 보기는 했는데 죄다 시커먼 마른 풀떼기였어요. 해초 냄새가 나지 않았을 뿐이지, 시장에서 파는 김무침용 김 눌러놓은 것과 다를 게 하나도 없어 보였어요.


가격이 가격인만큼 함부로 살 수 없는 상황. 게다가 여기는 사기의 왕국 중국. 친구가 스마트폰으로 보이차에 대해 검색해보더니 보이차 가지고 사기치는 놈들 많다고 이야기했어요. 차에 대해 잘 모르면 이건 그냥 시커먼 말린 풀떼기이다보니 사기치고 바가지씌우기 딱 좋은 품목이라는 것이었어요. B의 부모님께서 사오라고 하셨으니 구입은 해야 하는데 뭐가 뭔지는 전혀 모르겠고, 그냥 아무 거나 막 사자니 이게 가격이 상당히 비싸서 아무 거나 막 살 성질의 것이 아니었어요.


"내가 다른 곳 있나 찾아볼께. 백화점은 물건 비싸."


친구가 스마트폰으로 차를 파는 매장이 있는지 검색해 보았어요. 두 곳 있다고 나왔어요. 둘 다 고루 가까이에 있었어요. 그래서 백화점에서 나와 고루로 갔어요.


"여기 맞는데?"


회족 거리 입구 쪽에 차를 파는 곳이 두 곳 있어야 했어요. 하나는 아예 보이지도 않았어요. 일단 보이는 하나부터 들어가보기로 했어요.


"여기 맞냐? 너 잘못 찾은 거 아니야?"

"아니야. 봐라, 여기 맞잖아."


바이두 지도에서는 지금 저희가 있는 곳에 차를 파는 매장이 있다고 나왔어요. 그러나 저희가 온 곳은 그냥 식당이었어요. 여기에서는 보이차 덩어리를 팔지 않았어요.


"다른 곳 가보자."


친구의 바이두 지도를 보며 회족 거리 입구를 계속 돌아다녔어요. 주변을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차를 파는 매장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어요.


"그냥 백화점 가서 사자. 보이차 사기 많이 친대메? 차 파는 매장보다 백화점이 사기는 덜 치겠지."

"그러게. 백화점이니 그래도 어느 정도는 믿을만 하겠지."


백화점에서도 사기를 친다는 중국이라지만 아까 갔던 백화점 안에 있는 차를 파는 매장은 제대로 된 곳 같았어요. 우리로 치면 백화점 안에 있는 정관장 같은 모습이었어요. 가격이 설령 바가지라 하더라도, 최소한 물에 집어넣었더니 보이차가 아니라 김국이 탄생하는 사기를 치지는 않을 거라 믿었어요. 믿으면 안 되는 중국이지만 아까 그 백화점 안의 차 전문 매장 외에는 차를 구입할 곳이 근처에 아예 없었어요.


백화점으로 돌아가 다시 보이차를 골랐어요. 봐도 전혀 몰랐기 때문에 B를 도와줄 수 없었어요. B는 230위안짜리를 골랐어요. 1위안을 우리나라 돈 180원으로 계산하면 4만원 조금 넘는 것이었어요.


B가 보이차를 구입한 후, 백화점에서 나왔어요.



"이제 대안탑 가자."

"대안탑? 거기 꼭 가야해?"


친구는 대안탑 가기 싫다는 티를 팍팍 내고 있었어요. 시안 여행은 B에게 맞추어주기로 한 것은 이미 안드로메다 어딘가에 있을 블랙홀에 집어넣어버렸어요. 계속 유로 2016 이야기만 하고 있었어요. 그러나 제 생각은 아주 달랐어요. 저나 B나 유로 2016은 보면 좋고 아니면 마는 것이었어요. 솔직히 이 경기는 열광하며 볼 만한 경기가 아니었어요. 승패가 너무 뻔했거든요. 스페인이 이길 확률이 너무 높았고, 둘 다 요즘 경기력이 별로니까 무승부가 날 확률도 없지 않았어요. 공이 둥글기 때문에 체코가 이길 수도 있겠지만 그럴 일이 발생할 확률은 너무 적었어요. 포르투갈이라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보는 재미라도 있지, 스페인과 체코는 그것마저도 없었어요.


셋이서 재미있게 놀기는 했지만 의외로 시안에서 본 것이 없었어요. 기껏 간 것들 다 합쳐야 시안성 안에 있는 회족거리, 병마용, 화청지가 전부였어요. 시안 성벽을 자전거로 한 바퀴 도는 것은 날이 너무 더워서 못했고, 화산은 B의 일정이 짧아서 못 갔어요. 청진대사는 유료에 친구가 모스크라면 아주 학을 떼어서 안 갔어요. 여기에 아직 시안의 상징과 같은 대안탑도 못 간 상태였어요. 이 정도면 솔직히 너무 심했어요. 아무레 셋이 어울려 노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더라도 여행은 여행이니까요.


"어. 여기에서 상징적인 곳인데 거기 꼭 가야지. 나중에 그거 보러 여기 또 올 거 아니잖아."


친구 때문에 짜증이 솟구치고 있었어요. 자기가 시안 와 보아서 시안 잘 안다고 하는데 시안에 대해 잘 아는 게 아니라 시안을 와봤으니 만사 귀찮다는 것이었어요. 친구가 란저우에서 한 행동이 있었기 때문에 이 상황에서 짜증이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는 상황이었어요. 여행 준비 안 한 것은 그렇다 치고, 란저우 라면이 그따위일 줄은 자기도 몰랐을테니 그것도 그렇다 치고, 입장료 있는 곳은 돈 아까우니 안 들어가는 것도 그렇다 치지만, 눈 앞에 뻔히 보이는 입장료 무료인 것조차 자기 귀찮고 관심 없다고 무조건 안 가겠다고 떼쓰고 징징거리는 데에 화가 안 날 수가 없었어요. 다른 계획을 세워와서 싫다고 하면 이해라도 하는데, 이것은 아무 대안이고 나발이고 없이 자기 귀찮고 관심없으니 싫다는 것이었어요.


친구가 중국어 못하는 둘을 끌고 다니느라 고생한 것에 대해서는 참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시안에 대해 자기가 잘 안다고 큰소리 뻥뻥 쳐놓고 지나치게 무책임하게 행동하는 것에 대해서는 화가 안 날 수가 없었어요. B는 지금 적지 않은 돈을 들여서 시안에서 같이 여행하고 놀겠다고 찾아왔어요. 진짜 B에 맞추어줄 것이라면 기본적인 곳은 그래도 다 데리고 다녀야 될 일이었어요. 마치 프랑스 파리 가면 알든 모르든 일단 루브르 박물관, 에펠탑, 개선문, 노트르담 성당은 가보는 것처럼요.


이 문제는 B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제게도 해당되는 문제였어요. 저 역시 시안은 처음이고, 두 번 다시 여기 올 생각이 없었어요. 물론 저야 다음날 밤에 시안을 떠나니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대안탑을 굳이 오늘 꼭 안 가도 되기는 했어요. 다음날은 정말 할 거 없는 날이니까 느긋하고 널널하게 친구와 둘이서 대안탑 다녀오면 되기는 했어요. 그런데 이러면 B가 대안탑을 못 봐요. 지금 축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B의 이 여행에 시안 여행의 기본적인 구성은 갖추어주는 것이 중요했어요.


게다가 대안탑 또한 입장료가 있는 곳인데, 친구가 입장료 내는 것 진짜로 싫어해서 그것 때문에 대안탑 야경 보러 가는 것이었구요. 백화점 안에서 즉흥적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축구 이야기 나오기 전에 이미 다 끝난 이야기인데 자기 가기 싫다고 저렇게 징징거리니 화를 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이 되었어요.


'그래도 참자.'


확 한 마디 할까 하다가 그래도 지금까지 계속 많이 고생했을텐데 그냥 참기로 했어요. 시간이 애매해서 택시를 타고 가기로 했어요.



길이 많이 막혔어요.


"길 엄청 막히네."

"후반전 보면 되지."


셋이 이런저런 잡담을 하다가 축구 경기 결과를 가지고 내기를 하기로 했어요. 가위바위보로 결정하는 것은 재미없고 어떻게 결정할지 셋이 곰곰이 생각했지만 뭔가 딱 떠오르는 것이 없었어요. 전자 시계가 있으면 끝자리로 섯다 족보를 만들어서 결정하면 되는데 셋 다 타임 워치가 되는 전자 시계가 아니었어요. 어떻게 결정해야 재미있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택시가 대안탑에 도착했어요.



"여기 굉장한데?"

"빨리 와!"


B와 여기 의외로 볼만하겠다고 이야기하며 구경하려는데 친구가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어요.



육교를 건너서 대안탑을 향해 갔어요.


중국 시안 대안탑 공원


"오, 여기 괜찮네!"


중국 서안 대안탑 공원


아까는 거기 가기 싫다고 하던 친구도 막상 와보니 의외로 괜찮게 잘 조성되어 있는 것에 기분이 좀 풀린 것 같았어요.




"여기 야경 볼만하다고 하던데 진짜였구나!"


숙소에서 대안탑에 대해 알아볼 때 여기는 야경이 괜찮다는 글을 읽었었어요. 그래서 입장료 내는 것 싫다면 차라리 예쁜 야경이나 보자는 생각에 오늘 일정을 계획할 때 일부러 야경을 보는 일정으로 잡았어요. 제가 본 그 정보는 정확했어요. 낮에 왔다면 분명히 친구는 볼 거 없다고 툴툴대었을 거에요. 저도 담벼락 너머로 탑만 보고 가야하기 때문에 할 말이 참 없었을 거고, B는 대안탑을 보고 실망했을 거에요. 그렇지만 야경을 보러 오니 확실히 볼 만 했어요.






공원에는 기념품도 이것저것 팔고 있었어요.




"이제 가자."


친구가 이제 축구 보러 숙소로 돌아가자고 했어요.




때마침 조금 떨어진 곳에서 분수쇼가 시작되었어요. 분수가 하늘 높이 솟구쳐오르고 알록달록한 조명이 분수를 비추었어요. 사람들이 열광하며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어요. 분수쇼 조금 감상하다 돌아가면 딱 좋은 마무리였어요. 대안탑 야경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분수쇼인데 시간을 절묘하게 딱 맞추었어요. 이제 분수쇼만 보면 시안 여행은 대충 잘 했다고 마무리지을 수 있었어요.


"우리 내기는 어떻게 할 거?"

"선치기로 하자."


친구가 승패 내기를 어떻게 정할 거냐고 물어보자 제가 동전을 선 가까이에 던지는 선치기로 정하자고 했어요. 동전이 벽 맞고 튕겨나오면 아웃이고, 동전을 던져서 벽에서 제일 가까운 선에 떨어트리면 이기는 중학교 시절 가끔 하던 내기였어요. 가위바위보로 누가 먼저 던질지 정했어요. 친구가 가장 먼저 던지고, 그 다음 제가 던지고, 마지막으로 B가 던지기로 했어요. 이 내기에 사용될 동전은 1위안짜리 동전이었어요.


친구가 자기가 맨 먼저 던진다고 좋아하며 동전을 던졌어요. 동전은 너무 앞에 떨어졌어요. 느긋하게 친구의 동전보다 앞에 동전을 떨어뜨렸고, B가 선에 가장 가깝게 동전을 떨어뜨렸어요.


"앗싸! 나 스페인 승!"

"그러면 나는 무승부!"

"이거 다시 해! 나 이거 안 해봤단 말이야!"


친구가 물려달라고 졸라대었어요. 친구가 하도 졸라대자 첫 판은 연습경기로 하고 다시 순서를 정해 던지기로 했어요. 선치기를 시작하자 지나가는 중국인들이 다 저희를 쳐다보았어요. 저희를 쳐다보는 중국인들의 시선을 느끼며 다시 순서를 정하기 위해 가위바위보를 했어요. 그리고 동전을 던졌어요.


"앗싸! 나 스페인 승!"

"그러면 나는 무승부!"

"이거 다시! 다시 하게! 나 잘 안 보인단 말이야!"

"뭘 다시 해? 한 번 다시 해줬잖아?"


이건 물려주고 말고가 없었어요. 이미 한 번 물려주었으니까요. 자기가 이길 때까지 계속 하자고 들 것이 뻔한데, 그러면 이건 내기가 아니라 대놓고 승부조작이죠. 그렇다면 승패 맞추기 내기를 할 이유 자체가 없었어요. 물론 스페인 대 체코가 승패가 워낙 뻔한 경기이기는 했지만요. 선치기에서 반칙을 하거나 친구가 동전을 던질 때 방해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어요.


"야, 빨리 가자! 축구 전반전 다 끝났겠네!"


친구가 화를 버럭 내었어요.


"야, 후반전 보기로 했잖아! 너 지금 내기 졌다고 성질내냐?"

"너가 축구를 알아?"


이때 진짜 머리 끝까지 화났어요. 제대로 이 자리에서 화를 낼까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만약 B가 없었다면 당연히 엄청나게 화를 내었을 거에요. 솔직히 자기가 내기에서 져서 성질내는 거 다 알고 있었어요. 친구는 축구 핑계를 대고 있었지만, 그것은 구실에 불과하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친구가 축구광이기는 해요. 하지만 애초에 만사 귀찮고 싫어서 대안탑 가기 싫었던 것이 진짜 원인이었어요. 거기에 마침 축구가 있으니까 대안탑 가지 말고 축구 보고 싶다고 해대는 것이었고, 그래서 택시 타고 가면서 후반전 보기로 했는데 이번에는 자기가 내기 지니까 성질내는 것이었어요.


친구는 변명을 해보고 싶었겠지만 변명의 여지가 1나노그램도 없었어요. 만약 이 스페인 대 체코가 진짜 흥미진진한 빅매치라면 자기가 체코 승을 골랐다 해서 성질을 낼 이유가 없었어요. 스페인이 이길 것이 뻔한 경기였어요. 이 경기의 관심사는 체코가 이기느냐가 아니라 스페인이 너무 못해서 체코와 비겨버리느냐였어요. 자기가 1등 해서 '스페인 승'을 고르지 못해서 화를 내고 있는 것이었어요.


"그래, 가! 진짜 개같네. 분수쇼 졸라 아름답구만!"


숙소 가자고 화난 목소리로 소리쳤어요. 이때 진짜 B 때문에 참았어요. 제대로 화가 났지만 분위기 엉망으로 만들기 싫어서 참았어요.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택시를 탔어요.




B가 스마트폰으로 축구 중계를 켰어요. 스코어는 0:0 이었어요. 과일과 맥주를 사고 숙소로 돌아왔어요. 숙소에 돌아오니 전반전이 끝나가고 있었어요. 축구는 쉬는 시간이 15분. 당연히 분수쇼 구경하고 왔어도 충분히 후반전을 볼 수 있었어요. 사실 후반전도 친구가 보자고 해서 보는 것이었어요. 정말 흥미가 떨어지는 경기였거든요. 저는 계속 화를 꾹 눌러서 참고 있었고, 친구는 숙소 돌아와서 TV를 켜서 축구 중계하는 곳으로 채널을 맞추고는 자기가 저를 진심으로 분노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유로 2016 스페인 대 체코 후반전이 시작되었어요. 경기는 0:0 상황.


"스페인 진짜 못하네."


경기가 진짜 재미없었어요. 친구가 제게 15배로 미안해질 정도로 지루하고 볼 것 없는 경기였어요. 맥주를 마시며 보는데 졸려서 하품이 나왔어요. 어느 부분에서 재미있다고 해야할지 감도 못 잡을 경기였어요.


"골!"


후반전 거의 끝나갈 때 스페인이 간신히 한 골을 넣었어요. 그래서 B가 10위안을 땄어요.


"다음 경기는 어떻게 결정할 거?"


이 다음 경기는 스웨덴 대 아일랜드. 이 경기 역시 결과는 거의 정해져 있었어요. 내기에서 1등한 사람은 무조건 '스웨덴 승'을 고를 거고, 2등한 사람은 무조건 '무승부'를 고를 뻔한 경기였어요. '아일랜드 승'이 현실화될 확률은? 공은 둥글다는 것을 믿는 수밖에 없었어요. 선치기는 이미 한 데다 친구가 난동을 부린 탓에 또 할 수도 없었어요. 선치기 말고 딱히 할 만한 것이 없었어요.


그때였어요. TV에서 복권 당첨 방송이 나왔어요.


"저걸로 쌈치기 하자!"

"어떻게?"

"끝번호 맞추기!"


복권 마지막 자리를 짤짤이로 맞추기로 했어요. 세 명이니까 1,2,3 고르면 되는 쌈치기가 딱이었어요. 가위바위보로 누가 먼저 숫자를 고를지 정하고 복권 당첨 번호 마지막 숫자가 나오기를 기다렸어요. 역시나 B가 또 이겼어요. B가 당연히 '스웨덴 승'을 골랐어요. 이제 저와 친구가 남은 두 가지 경우를 가지고 골라야했어요. 이건 그냥 가위바위보로 정하기로 했어요. 제가 이겼어요. 당연히 '무승부'를 골랐어요. 친구가 또 난동을 부리려 했어요. 하지만 그런 친구를 보고 다시 화가 나려는 저와 눈이 마주친 친구는 얌전히 있었어요.


스페인 대 체코 축구 경기가 끝나자 짐을 꾸렸어요. 다음날 B는 바로 공항으로 가야 했고, 저와 친구는 B를 공항에 바래다준 후 다시 숙소로 돌아와 바로 체크아웃해야 했거든요. 스웨덴 대 아일랜드 경기가 시작하려면 조금 기다려야 했어요. 침대에 누워서 스페인 대 체코 경기 하이라이트 장면을 보았어요. 정말 볼 것이 없었어요. 슬슬 잠이 밀려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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