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7박 35일 (2009)

7박 35일 - 56 체코 프라하

좀좀이 2012. 1. 25.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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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혼자 하는 여행. 이제 목표는 오직 하나, 무사 귀환이었어요. 이때만 해도 프라하 성은 입장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내일 바로 공항에 가서 하룻밤만 노숙할까?'


프라하에서 더 돌아다니고 싶다는 생각도, 체력도 없었기 때문에 공항에서 노숙하고 바로 떠나는 방법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어요. 하지만 문제는 비행기 시각이 너무 늦게 있다는 것. 보나마나 다음날 새벽에 도착할텐데 비행기는 프라하 도착한 다음날 저녁. 공항에서 노숙이 가능할지도 의문이었지만 결정적으로 노숙을 할 만큼 체력이 되느냐도 문제였어요. 그나마 다행이라면 전날 부다페스트에서 하루 종일 잠만 잤다는 것이었어요.


혼자 기차를 타고 야간이동을 하려니 확실히 귀찮고 신경쓰였어요. 씻으러 화장실에 가는데 카메라 가방을 들고 가야 했어요. 캐리어에는 중요한 것이 아무 것도 없고 진짜 중요한 것은 카메라 가방과 목걸이 지갑에 모두 들어 있었거든요.


씻고 불을 끄고 의자 위에 드러누웠어요. 잠시 후. 한 관광객이 저 혼자 있는 객실로 들어왔어요.


"어디로 가세요?"

"프라하요."

"저도 프라하요."


그 사람이 제게 어디로 가냐고 물어보았어요. 그래서 프라하로 간다고 하자 자기도 프라하로 간다고 했어요. 딱 이렇게 서로 어디까지 가는지만 확인한 후 대화가 끊겼어요. 그는 잠시 불을 켜고 자기 짐을 짐칸에 올려놓고 불을 끄고 저와 마찬가지로 의자에 벌러덩 드러누웠어요.


"Good night."

"Good night."


잘 자고 있는데 누가 흔들어서 저를 깨웠어요. 누가 깨우나 눈을 떠 보니 그가 저를 깨운 것이었어요.


"프라하!"


창밖을 보니 프라하역이었어요. 급히 모자를 쓰고 짐을 챙겨 밖으로 나갔어요.


밖은 깜깜했어요. 역에 사람들이 거의 없었어요.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35분. 공항으로 가든 숙소를 찾아 돌아다니든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움직이기엔 너무 이른 시각이었어요.


'코인락커에 짐을 집어넣고 돌아다니다 밤에 공항으로 갈까?'


역을 나오며 주변을 둘러보았어요. 아무 것도 없었어요.


"이상하네...전에 왔을 때에는 이것 저것 분명 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어요. 그래서 다시 역을 확인했어요. 프라하역이 맞았어요. 그런데 왜 이렇게 다 바뀌었지? 설마 역에 출구가 여러 개인데 내가 이상한 곳으로 나왔나? 하지만 그것은 아니었어요.


그러면 대체 뭐야?!


내부가 휑한 것은 리모델링 때문에 싹 비웠다고 볼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역 내부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은 둘째치고 역의 구조가 아예 달랐어요. 설마 그 한 달 사이에 역을 다 때려부수고 다시 지었을 리는 없고...분명 프라하역은 맞는데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내가 아직도 꿈꾸고 있나?"


그러나 꿈은 아니었어요. 분명 이것은 현실. 그러나 머리로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 자판기에서 커피를 한 잔 뽑아 마시며 동이 트기만을 기다렸어요. 지난번 왔었던 프라하역에 비해 매우 안전하기는 했어요. 정말 아무 것도 없어서 노숙자조차 없었거든요. 쌀쌀한 새벽 바람 때문에 몸을 잔뜩 움츠리고 커피를 홀짝였어요.


동이 트자마자 밖으로 나왔어요. 아무 것도 없는 프라하역에서 시간을 보내다 나왔더니 너무 피곤했어요. 게다가 짐을 코인락커에 넣지도 못했어요. 공항에 가서 노숙하는 것은 정말 무리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다페스트에서 분명히 하루 종일 잠을 잤기 때문에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건 그거고 이건 이것이었어요.



동네 주민이 개를 데리고 산책하고 있었어요. 저는 짐을 끌고 산책하고 있었어요. 저는 절대 길을 헤매는 게 아니에요. 지금 맑은 프라하의 아침 공기를 마시며 짐을 끌고 산책하고 있는 중이에요. 제 짐도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산책을 해야죠. 그런데 이놈의 짐들은 왜 제가 끌고 가지 않으면 움직이려고 하지를 않을까요.



"저거 본 거 같은데..."


대충 감으로 찍으며 걸었는데 제가 가려고 하는 곳에 맞게 가고 있다고 확신했어요.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어디로 갈 것인지' 제대로 정하지 않고 무작정 걷고 있었다는 것이었지만요.



뭔지 모를 탑.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제가 어디를 갈지 확실히 결정하지 않았다는 것이었어요. 두 번째 문제는 일요일이라 거리에 사람이 없다는 것. 세 번째 문제는 프라하 지도가 없다는 것이었어요. 지도가 있어야 지도를 보면서 대충이라도 어디를 갈지 결정하고 현재 위치를 찾아라도 볼텐데 길을 물어볼 사람도 없었고 지도도 없었어요.


"지도라도 사진으로 찍어올걸!"


그러나 후회막급. 디지털 카메라의 1GB 메모리의 용량 확보하기에만 급급했지 지도를 찍어오고 후배 노트북을 이용해 프라하의 민박집 정보를 알아볼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 후배가 지도 사진이라도 찍어가고 민박집 정보라도 몇 개 찾아가라고 했지만 그때만 해도 진심으로, 그리고 진지하게 프라하 공항에서 노숙할 생각이었어요.



모아이, 너는 왜 나와!


새벽의 프라하역에 이어 프라하에서의 황당함 제 2탄이었어요. 여기는 이스터섬도 아니고 이스터섬 근처도 아니고 이스터섬과는 정말 엄청나게 멀리 떨어져 있는 중부유럽에 위치한 '체코'라는 나라의 수도 프라하에요. 그런데 저게 왜 나와!


사람이 없는 거리에서 모아이를 만나니 하나도 안 반가웠어요. 여기가 학교라면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여기는 학교도 아니고 정말 평범한 일반 주택가였어요. 우리나라 장승처럼 여기는 모아이를 세워서 잡귀를 쫓아내는 건가?



멀리 보이는 것은 분명히 프라하 구시가지에 있는 그 성당이었어요. 그런데 보는 각도도 이상했고, 왜 여기는 저렇게 흙을 잔뜩 쌓아놓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보다 지금 제가 어디에 있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어요.


이게 다 모아이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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