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본능적으로 원하지 않았지만 두뇌가 판단을 거부하는 바람에 헤매는데 더욱 큰 문제가 생겼어요.
화장실!
다행히 큰 일은 아니었어요. 방광에 슬슬 자극이 오기 시작했어요. 기차에서 내리기 전에 화장실을 들려서 소변이라도 보고 내리곤 했는데 이날은 급히 내리느라 화장실은 당연히 못 갔고 세수도 못했어요. 기차역에서는 제 기억과 전혀 다른 기차역이라서 화장실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어요.
게다가 중요한 것은 여기는 돈 내고 화장실 가야하는 나라. 우리나라에서라면 일단 화장실 들려서 물이라도 조금 빼고 가자는 식이지만 여기서는 정말 급할 때 아니면 절대 화장실 안 가는 게 좋아요. 괜히 물이나 빼고 가자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돈을 지출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더욱이 무슨 10원, 20원 던져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화장실 사용료가 은근히 아까워요. 대충 화장실 한 번 이용할 때마다 500원씩 낸다고 생각하면 체감 화장실 사용료와 거의 비슷해요.
그래서 일단 공원으로 갔어요. 공원에는 화장실이 있을 것 같았어요. 주변을 둘러보았어요. 최소한 하나라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없어!
아직은 옷에 지릴 정도로 급한 게 아니라서 정신줄을 놓지 않고 있었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도 없었어요. 그래서 주변을 둘러보았어요. 사람들이 없다면 풀숲에 조용히 처리할 생각이었어요.
왜 꼭 한 명은 있는 건데?
차라리 사람들이 많이 공원을 돌아다니면 체념을 하겠어요. 하지만 작전을 실행하려고 하면 꼭 한 명이 있었어요. 그 사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그 사람이 지나가서 다시 작전을 시도하려고 하면 또 한 명이 왔어요.
오려면 차라리 떼거지로 오든가!
하지만 노상방뇨는 절대 자랑할만한 일도 아니고, 법을 잘 지키고 공중도덕을 잘 지키는 사람이 하는 짓은 아니에요. 더욱이 사람 뻔히 있는 것을 아는데 그 사람에게 보라고 자랑하며 할 짓은 더더욱 아니에요. 그래서 작전을 수행할만한 지역을 물색하며 공원 안을 돌아다녔어요.
사공이 많으면 산으로 간다고 했어요. 그런데 왜 나는 산으로 가고 있지?
도나우강과 프라하 시내가 내려다보였어요. 전망 하나는 끝내주는 곳. 그러나 여기까지 모든 짐을 짊어지고 끌고 오느라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결심했어요.
구시가지 가서 민박을 찾자.
한국인이 운영하는 민박에 가면 샤워도 할 수 있고 밥도 줄테고 저렴한 가격에 숙박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항에서의 노숙은 진짜 무리였어요. 공항에서 노숙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도 모르는 상황인데다 모든 짐을 다 끌고 생리현상 참으며 여기까지 오니 그냥 침대에 누워 쉬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어요.
정말 피곤한 상태가 되자 머리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어요. 구시가지에 가서 민박을 찾자는 아이디어는 정말 훌륭한 아이디어 같았어요. 더욱이 언덕에 올라와서 보니 방향도 보였어요. 아까처럼 방향을 찍을 필요가 없었어요. 언덕에서 내려다본 프라하는 제가 지난 번 왔을 때 갔던 곳들이었어요.
저 멀리 시커먼 다리가 분명 카를교였어요.
뒤를 돌아보았어요. 아무도 없었어요. 인기척조차 없었어요. 앞을 보았어요.
앞은 물론이고 언덕 아래에도 사람이 없었어요.
작전 개시!
최대한 민폐를 안 끼치기 위해 풀숲에 볼 일을 보았어요. 작전을 수행하고 나니 드디어 아름다운 프라하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이 얼마나 아름다운 프라하인가!
따사로운 봄 햇살을 맞으며 프라하 거리를 걸었어요. 콧노래가 저절로 나왔어요.
이제 거의 다 왔다!
힘을 내서 열심히 걸었어요. 빨리 구시가지에 들어가 민박을 찾고, 민박집에 짐을 풀고 푹 쉬고 싶었어요. 정말 침대에 10분만이라도 드러눕고 싶었어요.
드디어 카를교에 도착했어요. 이때가 아침 9시. 정말 이른 시각인데도 사람들이 있었어요.
사람들이 있기는 했지만 많지는 않아서 짐을 끌고 카를교를 건너며 사진을 찍는 데에는 전혀 무리가 없었어요. 개인적으로 카를교가 아름답다는 생각은 안 하고 있어요. 그냥 조각이 많은 다리일 뿐이었어요. 더욱이 이때는 짐을 끌고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카를교를 건너는 것이 힘들었어요. 캐리어가 심하게 덜덜 떨리면 그 진동이 전부 팔로 전해져서 팔을 더욱 아프게 만들었거든요.
아직 이른 시각이어서 이제야 노점상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대낮에는 이렇게 한가하게 사진찍을 수가 없는 다리였지만 이른 아침의 힘으로 카를교를 느긋하게 감상할 수 있었어요. 사실 원하지 않았지만 느긋하게 감상할 수밖에 없었어요. 정말로 어깨도 많이 아프고 팔도 많이 아팠거든요. 사진이라도 찍으며 쉬엄쉬엄 가지 않으면 팔이 끊어질 것 같았어요.
카를교의 조각. 사진 찍는데 제 앞을 지나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다리 위에 사람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서로 사진 찍을 때에는 배려를 하며 다니고 있었어요. 저 역시 다른 관광객이 사진을 찍고 있으면 피하며 다녔어요.
전에 왔을 때에는 정신 없어서 조각들을 잘 보지 못했지만 지금은 조각 하나하나 꼼꼼히 다 보며 걸었어요.
사진을 찍으며 느긋하게 카를교를 건너가고 있는데 사람들이 하나 둘 다리로 몰려오기 시작했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여기에서나 베오그라드에서나 부다페스트에서나 한결같이 흐르고 있는 도나우강.
얼핏 보기에는 유속이 그다지 빠른 것 같지 않았지만 가만히 보니 유속이 느리지는 않아 보였어요.
제가 유럽 여행을 다녔을 때 카를교에 사람이 미어터졌던 이유는 복구 공사중이었기 때문이었어요. 오른쪽 석상은 하얗고 왼쪽 석상은 새까매요. 그 이유는 오른쪽 석상은 목욕을 해서 때를 박박 밀었고 왼쪽 동상은 아직 목욕을 못해서 때를 못 밀었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새까만 석상이 하얀 석상보다 더 멋있어 보였어요. 검은 석상이 흰 석상보다 프라하 구시가지 모습과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았거든요. 특히 정상의 성 비트 대성당이 검은 색이라 하얀 석상과 성 비트 대성당은 뭔가 안 어울리는 조합인 것 같았어요. 아래에서 위를 올려보았을 때 점점 밝아져야 무언가 멋있어 보인는데 위로 올라갈수록 시커매지는 것은 좀 아닌 것 같았어요. 이것은 어디까지나 저의 주관적 느낌.
구시가지에 도착하자마자 구시가지를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목표는 민박 찾기. 한참을 돌아다녀서 민박을 하나 찾아냈어요.
여기 계단 왜이리 좁아!
후배가 있었다면 후배에게 아래에서 짐 좀 봐달라고 하고 저 혼자 휙 올라갔다 왔을 거에요. 그런데 문제는 저 혼자. 짐을 다 들고 민박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계단밖에 없었어요. 그 계단도 너무 좁고 가파라서 캐리어를 앞으로 들고 올라가야 했어요. 낑낑대며 민박에 도착했어요.
"여기 자리 있나요?"
"예."
"가격은 얼마에요?"
"20유로요."
여기까지는 좋았어요.
"식사 주나요?"
"아니요...저희는 식사는 안 줘요."
민박집에 머무르는 사람들이 모두 나간 건지 민박집 안에 얼핏 보이는 손님은 오직 일본인 한 명. 주인은 한국인이어서 주인 아저씨께 여쭈어 보는데 식사는 제공 안 된다고 했어요. 민박에서 밥을 안 준다고? 그래서 일단 다른 곳도 돌아보고 오겠다고 하고 다시 짐을 들고 좁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왔어요.
"하...망했네."
한 시간 넘게 돌아다녀 겨우 찾은 민박에서 밥을 안 준다고 했어요. 밥은 안 주는데 가격은 20유로...갑자기 온몸에서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꼈어요.
"확 그냥 공항으로 돌아가버려?"
이것은 매우 안 좋은 생각. 순간 피씨방에 가서 정보를 찾은 후 민박집에 무조건 가 보기로 했어요. 인터넷에 분명히 프라하에 있는 민박 정보는 있을 거라고 믿었어요. 제가 군대 있을 때 방영했던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 때문에 더 이상 프라하는 우리나라에서 몇몇 배낭여행객들이 가는 도시가 아니었어요. 이제 프라하는 프랑스 파리만큼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한국인들이 관광으로 많이 가는 유럽 도시가 되었어요. 이제 고급 레스토랑에서 옆에 연주자들에게 연주시키고 칼질하는 도시가 아니에요.
인터넷 카페를 찾아 다니는데 또 한참 걸렸어요.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겨우 한 곳 찾았어요.
한글을 왜 못 읽니!
진짜 울고 싶을 지경이었어요. 별 짓을 다 해봐도 한글을 못 읽었어요. 게다가 컴퓨터 윈도우 XP는 체코어로 설치되어 있었어요. 어떻게 그림을 보며 제어판에도 들어가보고 인터넷을 뒤져 한글을 읽게 해 보려고 했지만 한글은 계속 깨져서 나왔어요. 한글이 아예 지원되지 않는 컴퓨터였어요.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 윈도우 씨디를 넣고 한국어 자판을 설치하는 것 뿐이었어요.
돈만 날렸다고 생각하며 카운터에 가서 계산을 했어요.
"나는 한국어 사이트에 접속하고 싶은데 컴퓨터가 한글을 못 읽는다. 만약 네가 컴퓨터에 한글을 설치해주면 더 사용하고 싶다."
영어를 지지리 못하지만 저 말을 영어로 하는 것은 의외로 쉬워요. 유치원생 수준의 단어들만 가지고 한국의 현대사와 남북관계를 설명하는 것에 비하면 정말 누워서 잠자기. (누워서 떡먹기가 원래 속담인데 어렸을 때 누워서 떡 먹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한 번 해 봤어요. 절대 안 쉬웠어요. 특히 고물이 붙어있는 떡이면 누워서 밥 퍼먹기보다 더 어려워요. 어려서 경험을 통해 체득한 거라 맞는 표현을 알지만 차마 못 쓰겠네요.)
그러자 직원이 한글을 깔아주겠다고 윈도우 씨디를 꺼냈어요. 직원이 컴퓨터에 윈도우 씨디를 집어넣고 마우스를 몇 번 깔짝깔짝 누르더니 제게 제가 접속하려고 하는 한국어 사이트에 한 번 접속해 보라고 했어요. 한글이 잘 읽혔어요.
필기구가 없었지만 괜찮았어요. 디카가 있었거든요. 화면을 찍었어요. 제 예상이 맞았어요. 프라하에 있는 한인 민박집 정보가 인터넷에 많이 있었어요. 어느 집을 갈까 고민하다가 일단 가장 가기 쉬운 민박집을 가기로 했어요. 이때 간 민박은 http://www.prahast.com/ 에요.
이제 새로운 길찾기가 시작되었어요. 민박집이야 '오시는 길'을 사진으로 전부 촬영했기 때문에 별로 걱정되지 않았어요. 그리고 민박집을 찾아가기 전,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길찾기가 있었어요. 바로 전철역 찾기!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전철역을 찾아갔어요.
매우매우 불친절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갔어요. 한국에서 와서 바로 이 에스컬레이터를 탔다면 적응이 안 되었겠지만 바로 전날 부다페스트에서도 이용한 불친절한 에스컬레이터라 에스컬레이터의 불친절이 매우 자연스럽게 느껴졌어요. 이 아름다운 높이! 흔들림과 속도가 사진에 안 나오는 것이 아쉬울 뿐이에요.
이 역에서 전철을 타고 민박집이 있는 중앙역(Hlavní Nádraží)으로 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