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무슨 길 건널 때 목숨을 걸어야 하나?"
바로 불만이 터져나왔어요. 친구 말로는 자기가 상하이에서 처음 일할 때만 해도 상하이도 이랬다고 했어요. 오랜만에 무단횡단 몸풀기를 했어요. 차 꽁무니에 옷깃이 스친다는 느낌으로 한 차선씩 건너가는 무단횡단 기술을 펼치며 길을 건넜어요. 난이도가 꽤 있었어요. 중요한 것은 제가 무단횡단을 하지 않았다는 것! 멀쩡한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무단횡단을 하는 기술을 발휘해야 했어요. 사람이 길을 건너든 말든 전혀 신경쓰지 않았어요. 아주 들이받히려면 들이받혀보든가 하는 태도였어요.
길을 건너며 의외였던 것은 친구가 저보다 정작 이 길을 잘 건너지 못한다는 것이었어요. 중국에서 이런 것 꽤 경험해보았을텐데 길을 잘 건너지 못했어요. 어쨌든 길을 일단 잘 건넜기 때문에 길을 건넌 이유였던 뭔가 있어보이는 건물 앞으로 갔어요.
"설마 입장료 받나?"
가장 먼저 입장료를 받는 곳인지 살펴보았어요. 입장료 내는 곳은 없었어요.
입장료 받는 것이 없고 사람들이 그냥 막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안으로 들어갔어요.
입구에서 향을 수북히 쌓아놓고 팔고 있었어요.
"여기 꽤 큰 절인가봐!"
안에 들어가자마자 멋진 풍경이 나왔어요.
친구는 이런 것을 안 좋아했기 때문에 시큰둥했어요. 그러나 친구의 반응은 무시했어요. 친구가 그냥 종교 시설 자체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거든요. 친구가 원하는 대자연의 풍광은 여기에서 아까 본 황하 말고는 그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었어요. 오늘은 뭘 하더라도 친구의 반응이 좋을 리 없는 날. 괜히 친구의 반응 의식해봐야 둘 다 기분만 안 좋아질 거라 친구가 어떤 반응을 보이든 별로 신경쓰지 않았어요.
안에서는 사람들이 향에 불을 붙이고 있었어요.
나무에는 빨간 천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어요.
"여기 진짜 뭔가 있어보인다!"
둔황에서 중국식 절을 보기는 했지만 이 절은 그 절과 느낌이 많이 달랐어요. 그리고 둔황의 절은 새로 짓고 있는 중이었지만 여기는 새로 지은 티가 별로 안 났어요.
"여기는 관우상이 모셔져 있네?"
"중국 불교는 우리랑 완전 많이 다르네."
건물을 찬찬히 살피며 걷는데 우리나라 절과는 너무나 달랐어요. 둔황에서 본 뇌음사도 우리나라 절과는 조금 달랐어요. 둔황에서 본 뇌음사는 영화에서 본 자금성과 비슷한 모습이었어요. 우리나라의 고즈넉한 절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어요. 이 절은 뇌음사와는 또 달랐어요. 기와 지붕에 벽돌집인 것 자체가 우리나라 절과 다른 점이었는데, 우리나라 절에서 많이 보이는 불상이 여기에서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어요.
"부처님 불상은 어디 있지?"
부처님 불상 앞에 절을 드리고 가고 싶은데 부처님 불상이 이 절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어요.
분명히 절인데 구경을 할 수록 점점 더 절 같지 않아 보였어요. 그러고보니 여기 이름의 마지막 한자가 寺가 아니라 觀이었어요. 중국도 절은 寺를 쓸 텐데 왜 觀을 썼는지 의문이었어요. 처음에는 제가 정문이 아닌 쪽문 같은 것으로 들어온 것 아닌가 생각했어요. 그런데 들어온 문이 정문이든 쪽문이든 간에 불상이 하나도 안 보인다는 것 자체가 매우 이상했어요.
'이거 뭐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계속 둘러보았어요.
촛농은 물에 떨어져 꽃잎 모양이 되었어요. 불상 앞에 절을 드리고 가려고 건물 하나 하나 안을 살펴보는데 그 어디에도 불상은 보이지 않았어요. 관우상과 신선 같은 모습을 가진 것만 보일 뿐이었어요.
"우리 이거 언제까지 볼 거? 나 피곤해."
"여기에서 잠깐 앉아서 쉬다 갈까?"
친구가 덥고 힘들다고 칭얼거리자 건물 옆 그늘에 주저앉아 잠시 쉬기로 했어요.
이거 도교 사원 아니야?
관우상이 많이 보이고 불상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어요. 불교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래도 이게 절인지 아닌지 분간은 대충 해요. 이것은 아무리 보아도 절이 아니었어요. 건물들 하나씩 다 둘러보았지만 불상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어요. 아무리 진신사리를 모셔놓은 적멸보궁이라 해도 그 안에 불상이 아예 하나도 없지는 않아요. 그리고 불교에서는 관우를 모시지 않아요. 관우를 모시는 종교는 도교에요.
이거 도교 사원이구나!
만약 제가 인터넷을 이때 사용할 수 있었다면 뭔가 이상해서 이곳이 무엇인지 바로 검색해보았을 거에요. 그러나 저는 중국 와서 유심 개통을 하지 않았어요. 와이파이가 지원되지 않는 곳에서는 오직 친구만 인터넷을 할 수 있었어요. 안에 불상이 없고 관우상 및 신선상이 있는 것을 거의 마지막 건물까지 내부를 보고 확인한 후에야 이것이 도교 사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나 도교에 대해 아무 것도 몰라.
진짜로 도교에 대해서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어요. 도교라고는 중학교 2학년 사회 시간, 고등학교 3학년 세계사 시간때 제자백가 중 노자와 장자가 만든 도가가 있었고, 이 도가가 후에 노장사상이 되었으며, 이 노장사상은 위진남북조 시대때 남조에서 유행했어요. 그리고 이 노장사상이 도교가 된 것처럼 배워요. 하지만 이것은 정확한 것은 아니고, '오두미교' 라는 종교에 도가 사상이 덧붙여진 것이에요. 오두미교는 삼국지에도 살짝 나오며, 오두미교의 형제뻘 되는 종교가 태평교인데, 태평교가 삼국지의 시작인 황건적의 난을 일으켰어요. 당연히 황건적의 난은 진압되었고, 남은 태평교 신도들은 오두미교에 흡수되었대요.
그러나 교리 같은 것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어요. 그냥 '신선은 도교' 라고만 알고 있을 뿐이에요.
이 사원은 1837년 지어진 도교 사원이라고 해요. 한족들이 도교를 많이 믿는다고 듣기는 했지만 실제 중국 땅에 와서 도교 사원을 본 것은 처음이었어요. 우연히 얻어걸린 것이라 행운이기는 한데, 문제는 제가 이 행운을 만끽할 능력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어요. 도교에 대해 뭘 알아야 하나라도 더 자세히 볼 텐데 도교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신선과 관우 뿐이었으니까요.
사원 곳곳에서 향과 초가 타오르고 있었어요.
친구가 정말 재미없어하고 저도 신기하기는 하지만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도교 사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이후에는 대충 휙 둘러보고 나왔어요.
"어디 가지?"
"글쎄...어디 찻집 없을 건가?"
아까 먹은 란저우 라면은 아직도 배에 남아 있었어요. 이제 정오. 점심을 먹을 때가 되었지만 여전히 무언가를 먹을 배가 아니었어요. 보통은 점심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겠지만, 지금 무언가 또 먹는다면 쉬는 게 아니라 고문이 될 몸이었어요. 친구도 란저우 라면을 질리게 먹었기 때문에 배고파하지는 않았어요. 그저 어디 앉아서 조금 쉬고 싶을 뿐이었어요. 밥 먹는 것 대신 차를 마시고 싶었어요.
거리에서는 사람들이 장기를 두고 있었어요.
도교 사원 근처라 그런지 종교와 관련된 무언가를 파는 사람도 보였어요.
거리에서는 사람들이 면 요리를 먹고 있었어요.
보자마자 분노가 확 올라왔어요. 아까 먹은 그 란저우 라면이 아직도 뱃속에 있었어요. 이제 면 요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분노할 지경이었어요. 란저우 라면은 단순히 맛없는 정도를 뛰어넘었어요. 이제 제게 란저우 라면은 트라우마 같은 것이었어요. 란저우 라면 때문에 앞으로 귀국할 때까지 그 어떤 면 요리도 꼴도 보기 싫을 거에요. 여행중 잠시 잊고 있던 방구석에서 돈 아끼려고 끓여먹던 라면에 대한 기억을 완벽히 떠올려버렸거든요. 한국 돌아가면 라면 또 기약없이 한동안 질리게 끓여먹어야 하는데 지금부터 면 요리를 먹고 싶지는 않았어요. 어차피 귀국하면 좋든 싫든 질리게 먹어야 하는 라면이니 최소한 여기에서만큼은 맛있는 것 먹어야겠다고 굳게 다짐했어요. 중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만 골라먹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러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온통 면요리. 면요리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도 아까 란저우 라면 먹은 것 다시 떠올라 화나는데 설상가상으로 그 중국의 썩은 빙초산 같은 식초 냄새까지 났어요. 비유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로 속이 뒤집어질 거 같았어요. 싫은 것 두 개가 복날에 개 패듯 저를 후두려패고 있었어요.
거리에는 라면 먹는 사람과 라면 만드는 사람 동상이 있었어요.
"저 동상은 영원히 란저우 라면에 고통받겠네. 저거 완전 인권탄압 아니야?"
제 말에 친구가 어이없어서 웃었어요.
길거리 가게에서 난을 팔고 있었어요. 만약 속이 괜찮았다면 저 난을 사서 먹었을 거에요. 그러나 속이 매우 참 안 좋았어요.
사람들은 빨간 국물 면요리를 열심히 먹고 있었어요. 친구는 저 면요리가 한 번 맛보고 싶은 것 같았어요. 그러나 저는 저 면요리가 꼴도 보기 싫었어요. 제 눈에 저것은 제가 방에서 끓여먹는 대형 마트에서 파는 가장 싼 인스턴트 봉지 라면으로 보였어요. 앞으로 며칠 후면 자취방으로 돌아가 아주 질리도록 먹을 그 라면으로 보였어요. 그 정해진 미래에서 최대한 거리를 두고 싶었어요.
"저 사람들 저 면요리 열심히 먹는다."
"나 앞으로 중국 떠날 때까지 면요리 절대 안 먹을 거야. 면요리라면 이제 꼴도 보기 싫다."
친구가 저 면요리 먹어보고 싶은지 은근슬쩍 저를 떠보았어요. 저는 바로 앞으로 면요리는 절대 안 먹겠다고 딱 못을 박았어요.
"저건 뭐지?"
팻말을 읽어보니 란저우 공인 문화궁 蘭州工人文化宮 이라고 적혀 있었어요. 저기 또한 뭔가 있어보여서 뭔지 모르지만 일단 들어갔어요.
이곳에서 본 란저우의 모습은 이랬어요.
크게 인상적인 것은 없는 풍경이었어요. 풍경을 사진으로 찍은 후 계속 안을 돌아다녔어요.
이것이 뭔지도 모르겠고, 특별히 인상적인 것도 없었어요. 대충 둘러보다 다시 한 번 배가 아파서 화장실을 갔어요. 도교 사원이 제게 자비를 베풀어주었어요. 도교에 어떤 신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감사했어요. 왜 화장실에서 볼 일 본 것을 그렇게 감사하냐고 생각하는 사람들 분명 있을 거에요. 저는 폭식을 해서 속이 꽉 막힌 상태였어요. 화장실 가서 배설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몸 속 아랫부분에 공간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해요. 이렇게 화장실에 갔다왔다고 바로 위장에 있던 란저우 라면이 바로 대장으로 내려가지는 않겠지만 위장도 대장도 꽉 차 있는 것보다 고통이 덜하기는 해요. 게다가 황하 강변을 따라 걸을 때가 아니라 이렇게 화장실 있는 곳에서 신호가 왔어요. 어려움 없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었어요. 그 질이 좋지는 않았지만 중국에서 바랄 것을 바래야겠지요. 란저우 라면 먹고 욕심을 버렸어요.
이곳 뒤로 넘어가봐야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황하 강변으로 돌아가기로 했어요.
"저 모스크 진짜 큰데?"
"나 모스크 싫어!"
친구가 란저우 라면 참사를 일으킨 것에 대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지만 모스크만큼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완강한 태도를 보였어요. 친구도 자기가 잘못한 것을 알고는 있었어요. 전날 기차에서 제 말 안 듣고 스마트폰으로 신나게 채팅하다가 배터리 날려먹었고, 란저우 여행에 대해 아무 것도 알아보지 않았어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첫 번째 란저우 라면이야 그렇다 치지만 두 번째 란저우 라면은 친구가 조금만 신경썼어도 충분히 막을 수 있는 대참사이자 완벽한 인재였어요. 그래서 제가 들어가자는대로 따라가기는 하고 있었지만, 모스크만큼은 절대 안 가겠다고 버티고 있었어요.
친구와 다시 길을 건넜어요. 이번에도 마이클 잭슨이 문워크 하며 살살 걸어가듯 차 뒤꽁무니에 옷깃이 닿는 느낌으로 살살 한 차선씩 건너갔어요. 왜 무단횡단 하는 것이 아님에도 무단횡단하는 것처럼 건너야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야만 살아서 무사히 길을 건널 수 있었어요. 길을 건너는 친구를 보니 뭔가 위태위태해 보였어요. 친구 혼자 길을 건너라고 하면 중국인들이 건널 때 뭍어서 같이 건너거나 혼자 건너다 사고나지 않을까 싶었어요.
황하 강변에서는 사람들이 놀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어요. 시계를 보니 오후 1시 10분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