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7박 35일 (2009)

7박 35일 - 53 세르비아 노비사드

좀좀이 2012. 1. 20.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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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한 것 치고는 기차에서 일찍 눈을 떴어요. 기차는 베오그라드에 거의 다 왔어요.


 

창밖에는 쓰레기 더미가 산처럼 쌓여 있었어요.



이 쓰레기 매립장같이 생긴 곳이 바로 집시 마을이에요. 집시에 대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가 바로 집시는 이동하며 사는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거에요. 하지만 거의 모든 집시들은 정착해서 살아요. 그리고 그들이 사는 동네는 말 그대로 빈민굴이에요. 여기가 바로 집시들이 사는 마을이에요. 기차가 빨라서 더 최악인 부분은 찍지 못했어요. 간단히 표현하자면 '쓰레기더미에서 살고 있었어요'.


베오그라드역에 도착하자마자 노비사드에서 부다페스트로 가는 기차 시각을 알아보았어요. 오늘 베오그라드를 또 본다면 베오그라드만 3일째 보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다른 도시에 가서 구경을 하고 부다페스트로 가고 싶었는데 제가 아는 세르비아의 도시는 베오그라드, 노비사드, 니슈가 전부였어요. 게다가 노비사드는 베오그라드보다 더 북쪽에 있고, 베오그라드에서 탄 기차가 노비사드를 거쳐 간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노비사드에 가서 노비사드를 보고 거기에서 바로 기차를 타고 부다페스트로 들어갈 생각이었어요.


기차 시각도 나쁘지 않았고, 베오그라드에서 버스는 니슈 가는 것보다 노비사드 가는 버스가 훨씬 많았어요. 그래서 차를 한 잔 마시고 노비사드행 버스에 올라탔어요.


의자에 머리가 닿자마자 잠이 들었어요. 그러나 얼마 못 자서 금방 깨어나야만 했어요. 베오그라드에서 노비사드까지 버스로 2시간 채 안 걸렸어요. 노비사드에 도착하자마자 기차역에 부다페스트행 기차표를 사러 갔어요. 기차표를 사기 위해 창구에 시각을 물어보려는데 노숙자 한 명이 접근했어요. 노숙자에게서 술냄새가 진동했어요. 점심 즈음이었는데 벌써 술에 절어 있었어요. 노숙자는 손을 내밀고 한 푼 달라고 했어요. 싫다고 했어요. 그러자 이번에는 담배를 달라고 했어요. 역시나 싫다고 했어요. 노숙자에게 돈을 안 주겠다고 딱 잘라서 말하고 기차표를 사기 위해 창구 직원에게 말을 걸려고 하는데 뭔가 낌새가 이상했어요. 뒤를 돌아보니 후배는 멍하니 저를 바라보고 있었고 노숙자는 제 짐을 노리고 있었어요.


"멍 때리지 말고 짐 잘 보고 있어요! 지금 노숙자가 짐 노리고 있잖아요!"


역시나 창구 직원이 영어를 못해서 여행 중 공부한 세르비아어 몇 마디와 불가리아어 몇 마디를 가지고 손짓 발짓하며 시간을 알아보고 표를 사야하는데 가방까지 신경을 쓸 정신이 없었어요. 제 가방도 그랬지만 후배까지 챙겨줄 정신은 아예 없었어요. 그런데 후배가 멍하니 저만 바라보고 있어서 후배에게 정신차리라고 하고 표를 구입했어요.


표를 구입하고 나가려는데 노숙자가 저희를 계속 노려보고 있는 게 느껴졌어요. 속으로는 긴장했지만 겉으로는 무시했어요. 수하물 보관소에 짐을 맡기고 역에서 나오려는데 어떤 놈이 노래를 고래고래 불러대고 있었어요.


"어떤 미친 놈이야!"


매표소 근처에서 노숙자가 어린 불량 청소년들과 어울리고 있었어요. 불량 청소년들이 노숙자 손에 돈을 쥐어주자 노숙자는 춤추고 노래부르고 아주 미친 짓 제대로 하고 있었어요. 아무리 봐도 저건 정상인이 아니었고, 정말 경계해야할 대상이었어요.


밖에 나오니 노숙자 천지였어요. 술 취한 노숙자들도 여럿 보였어요.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가라 데 노르드가 위험한 우범지역이라고 했는데 여기에 비하면 정말 안전한 곳이었어요. 노비사드 역 주변이야말로 진정한 우범지역. 베오그라드 역은 경찰들이 수시로 순찰을 돌았는데 여기는 경찰이 아예 없고 노숙자만 득시글 거렸어요. 그래서 이따 역에 돌아오면 바로 플랫폼으로 나가서 기차를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무리 치안이 안 좋다고 해도 노숙자가 기차역 플랫폼까지 들어오게 할 리는 없으니까요.



이 교회는 Црква имена Маријиног (The Name of Mary Church) 에요. 이 교회 앞이 바로 자유광장.


노비사드 시내까지 그렇게 멀지는 않았어요. 시내에 도착하니 너무 더웠어요. 이렇게 더운 날 유럽 거리를 걷게 될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상상을 하지 못했어요.


"우리 아이스크림이나 하나씩 먹으며 가요."


후배 얼굴을 보았는데 후배가 불만에 가득찬 얼굴이었어요.


"무슨 문제 있어요?"

"아까 멍때리고 있지 않았어요! 계속 감시하는데 그 자식이 우리쪽에서 계속 어슬렁거려서 오빠 부르려고 했던 거란 말이에요!"


후배는 아까 역에서 계속 노숙자를 감시하고 있었다고 했어요. 제가 창구 직원과 표를 사기 위해 이야기하는 동안 그 미친 노숙자는 저희 가방을 훔쳐가기 위해 계속 주위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고, 후배가 저를 부르려고 할 때 저와 눈이 마주쳤다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다짜고짜 멍때리지 말라고 해서 기분이 상한 거라고 했어요. 그래서 바로 미안하다고 했어요. 제가 정말 잘못했다고 하자 후배 기분이 풀렸어요.



정말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고 있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반팔을 입고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정말 4월초 날씨가 맞나 싶을 정도였어요. 앞에 보이는 건물이 바로 노비사드 시청이에요.



이렇게 노천 카페에 사람들이 붐비는 것도 처음 보았어요. 유럽에 가면 노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많다는 말은 들었는데 이렇게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어요. 지금이 봄인지 여름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어요.



베오그라드와 노비사드는 느낌이 달랐어요. 여기는 보이보디나 자치공화국의 수도. 원래는 헝가리 영토였던 곳이에요. 베오그라드가 웅장하고 힘이 느껴진다면 여기는 무언가 우아하고 부드러운 느낌이었어요.



이것은 Saint George 세르비아 정교 대성당 (Саборна црква у Новом Саду)이에요.



이 교회 뒷길로 가는데 서점이 하나 있었어요.


"에휴...비록 크로아티아에서 좋은 추억 하나 없고 우표도 못 샀지만 한국 가면 크로아티아어 사전 못 사니까 여기서 하나 사서 가야겠다."


서점에 들어가서 포켓 크로아티아어-영어 사전을 하나 구입했어요. 혹시나 해서 연금술사 크로아티아어판이 있냐고 물어보았더니 세르비아어판을 보여주며 똑같은 거라고 했어요. 그런데 세르비아어판은 제가 이미 구입한 것과 똑같아서 구입하지 않았어요.



길을 걷다 보니 한쪽 벽에 해골이 장식되어 있었어요. 이 동네에서는 해골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나? 슬로베니아 류블라냐에서도 해골을 장식한 것을 본 적이 있었어요. 여기는 벽에 해골이 새겨진 돌을 세워 놓았어요. 말만 통한다면 저게 무슨 의미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여기도 말이 잘 안 통하는 것은 마찬가지였어요.



노비사드 중심가 바로 뒤에 있는 거리에요. 확실히 베오그라드와는 많이 다른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니슈보다는 훨씬 볼 게 많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풀밭 오른쪽에는 꽤 큰 호수가 있었어요.



비록 여름 같은 봄이었지만 너무 걷기 좋은 날이었어요. 문제는 피로. 확실히 예전보다 피로가 더 많이 느껴졌어요.


멀리 거대한 성채가 보였어요.


"우리 저기까지만 가요."

"저기요? 저거 한참 올라가야 할 거 같은데요."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저건 보고 가야죠."


일단 커 보이니까 가보기로 했어요. 그래서 다뉴브강을 넘어 성을 향해 걷기 시작했어요.


 


강을 건너서 바로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것은 안 되었어요. 요새가 얼마나 큰지 요새쪽 골목에서는 요새가 보였어요.



이렇게 해서 간 곳이 페트로바라딘 요새. (Petrovaradin fortress, Петроварадинска тврђава)


일단 다리 위에서 보았을 때에는 이렇게 생겼어요.




멀리서 보면 정말 아름다웠어요. 정말 지금 이 봄 날씨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건물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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