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7박 35일 (2009)

7박 35일 - 50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좀좀이 2012. 1. 19.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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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을 뒤로 하고 기차에 올라탔어요. 베니스에서 베오그라드로 가는 기차 역시 침대칸만 있다고 해서 침대칸에 탔어요. 우리가 탑승하자 승무원이 여권을 걷어갔어요. 베오그라드까지 국경심사를 두 번 받아야 하는데 승무원이 여권을 걷어가 대신 국경심사를 받아준다고 했어요. 도중에 일어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상당히 좋은 점이었어요. 일반 객실과 침대칸의 결정적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기차표를 보니 자그레브에서 기차를 갈아타야 했어요. 그래서 승무원에게 자그레브에서 기차를 갈아타야 하냐고 물어보았어요. 승무원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어요.


기차 내부는 낡고 후줄근했어요. 발칸 유럽에서 타고 다니던 그 기차였어요. 씻으러 화장실에 갔어요. 화장실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아마 세르비아 기차인 것 같았어요. 낡고 후줄근한 기차 내부를 보니 이제 발칸 유럽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실감이 났어요.


침대를 펴고 드러누웠어요. 우리가 받을 국경심사는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 국경과 크로아티아-세르비아 국경. 보스니아에서 슬로베니아 갈 때도 크로아티아를 통과해서 크로아티아 보지도 않고 크로아티아 도장 2개를 모았는데 이번에도 크로아티아를 보지도 않는데 크로아티아를 통과해서 도장 2개를 받을 예정이었어요.


잘 자고 있는데 갑자기 기차가 멈추어서 잠에서 깨었어요. 복도가 시끄러웠어요. 사람들이 우루루 내리고 있었어요. 승무원이 방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깨우고 있었어요.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보았어요. 자그레브역이었어요.


"여기서 내려야 하나요?"

"어디 가는데요?"

"베오그라드요."

"그냥 있어요."

"여권은요?"

"걱정 말아요. 내일 아침 돌려줄게요."


복도가 어수선하고 사람들이 짐을 가지고 모두 내리기에 급히 승무원을 찾아서 물어보았어요. 승무원은 걱정 말고 안에 들어가서 잠을 자라고 했어요. 지금 자그레브역이고 베오그라드 도착하려면한참 남았으며, 여기에서 우리가 탄 객차는 다른 기차에 연결될 거라고 알려주었어요. 지금 내리는 사람들은 자그레브에서 내리는 사람들이고 우리는 베오그라드까지 갈 사람들이기 때문에 내릴 필요가 없다고 했어요.


'곧 출발하겠지.'


다시 눈을 감았어요. 흔들림이 느껴지지 않았어요. 복도도 조용해졌어요. 대신 창밖이 시끄러웠어요. 사람들이 한 무더기 우루루 내리고 창밖도 조용해진 후, 한참 지나서야 '텅' 하고 객차가 흔들렸어요.


'이제 다른 기차에 연결되나 보구나.'


잠시후. 기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기차가 다시 움직이고 우리 여권을 가져간 승무원도 보였어요. 그래서 안심하고 다시 잠을 청했어요.


눈을 뜨니 아침. 우리가 일어나 침대를 접고 자리에 앉아있는 것을 본 승무원이 우리에게 여권을 돌려주었어요. 여권을 확인해 보았어요. 크로아티아 도장이 2개 찍혀 있었어요. 세르비아입국도 별 문제 없이 잘 되었어요. 여권을 돌려받은 후, 후배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나갔어요.


후배가 화장실에서 돌아오더니 제게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었어요.


"오빠, 앞칸 기차 완전 좋던데요? 방도 엄청 깔끔하고 딱 봐도 새 거에요. 방에 콘센트도 있고 화장실도 매우 좋아요!"

"에이...설마...어제 앞칸도 엄청 후줄근했잖아요."

"오빠가 가서 봐요!"


후배가 앞 칸하고 우리 칸하고 너무 차이나게 좋다고 호들갑을 떨어서 씻을 도구를 챙겨 앞칸에 가 보았어요.


나는 새로운 세계를 보았어!


이건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었어요. 정말 낙후된 후진국에서 살다가 최첨단 세련된 국가를 처음 간 느낌이었어요. 30년을 뛰어넘는 기분이었어요. 무슨 예전 '러브하우스' 프로그램에서 개조 전과 후를 비교하는 것 같았어요. 객실마다 설치된 콘센트, 적당히 딱딱해서 앉으면 '파삭' 부서지는 느낌이 살짝 드는 새 의자, 깔끔한 복도와 실내, 밝은 조명까지! 게다가 화장실에서는 온수도 나왔어요. 발로 버튼을 밟으면 찬물이 졸졸졸 나오는 세면대가 아니라 정말 정상적인 온수가 나오는 세면대였어요. 변기도 새 것. 보자마자 그냥 앉기엔 더러워서 거부감이 느껴져 휴지로 닦고 앉아야 하는 화장실 변기가 아니라 어서 빨리 앉아보고 싶은 새 변기였어요.


처음에는 우리 바로 앞이 1등칸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좌석 수를 세어보니 객실 하나에 좌석 6개가 들어가 있었어요. 그렇다면 여기는 2등칸. 같은 2등칸인데 우리가 탄 곳은 후진국, 앞칸부터는 선진국.



그때 너무 충격을 받아서 남긴 기록이에요. 포인트는 '화물 하나 추가요~!'.


화장실에서 양치하고 세수하고 머리를 감은 후 방에 돌아왔어요. 그리고 후배와 '밀입국'을 감행하기로 했어요. 빈 방이 있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짐을 다 싸들고 크로아티아에서 매달린 최신식 객차로 갔어요. 버튼을 누르자 문이 부드럽게 열렸어요.


방에 들어가자마자 콘센트에 충전기를 꼽았어요. 고작 2등칸에서 2등칸으로 옮겼을 뿐인데 마치 2등칸에서 1등칸으로 옮긴 느낌이었어요.



오늘도 맑은 날씨. 이제 성수기인 4월이에요. 봄이 왔어요. 영원히 흐릴 것 같은 하늘이 맑게 빛나고 있었어요. 앙상한 나무들에 새 잎이 돋아났어요.


베오그라드역 수하물 보관소에 짐을 맡기고 나왔어요. 다른 도시로 갈까 했지만 바로 생각을 접었어요. 그동안 유로존에서 찌질찌질하게 지냈어요. 오늘은 휴식 시간. 여기는 물가 싼 베오그라드! 유로존에 비하면 거저인 베오그라드!


이제 일정이 얼마 남지도 않았어요. 후배는 4월 11일에 터키로 돌아가야 했어요. 저는 4월 13일 프라하에서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타야 했어요. 오늘은 4월 6일. 이제 멀리 가려고 해도 갈 수가 없었어요. 일정을 계산해 경로를 짜 보았어요. 사실 이때가 마지막으로 크로아티아를 둘러볼 기회였지만 이때 크로아티아는 정말 가기 싫었어요. 경유하는 것조차 싫었어요. 플리트비체-자그레브의 악몽의 충격이 생생했거든요. 알바니아 티라나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사라예보도 다시 가고 싶지는 않았어요. 이번 여행에서 벌써 두 번 다녀온 곳이에요. 일단 두 번 다녀온 곳은 전부 제외했어요. 마지막으로 우크라이나에 다녀올까 생각도 했지만...경비도 너무 많이 들고 시간도 촉박했어요. 이제 우크라이나를 간다면 정말 키예프만 보고 와야 했어요. 더욱이 유로존에서 돈을 엄청나게 빨려 버려서 과감히 우크라이나까지 다녀올 경제적 여유도 없었어요.


이래서 안 돼, 저래서 못 해...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추리고 추리다보니 남는 것은 불가리아 소피아와 루마니아 부쿠레슈티를 다시 가는 것 외에는 선택할 수 있는 경로가 없었어요. 소피아, 부쿠레슈티를 보고 베오그라드로 와서 부다페스트까지 간 후, 부다페스트에서 1박 하고 못 본 지역을 다 둘러본 후 후배와 헤어지기로 했어요.



날이 따스해지니 거리에서...백주대낮부터 맥주 마시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모스크바 호텔. 이것도 맑은 하늘 아래에서 보니 꽤 괜찮아 보였어요.



국회의사당을 지나 우체국에 가서 우표를 샀어요. 역시나 절대 쉽지 않았어요. 봄이 와서 원래 너무 매력적이었던 베오그라드가 더욱 더 강한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어요. 그러나 이렇게 뜨거운 매력을 뿜어내는 모습으로 베오그라드가 바뀌었어도 우체국 직원 아주머니가 영어를 못 하시고 저를 계속 수집용 우표 파는 창구로 보내 버리시려고 하는 것은 여전하셨어요.



"이거 그때 그 교회 맞죠!"


나뭇잎이 돋아나고 꽃이 피자 전혀 다른 분위기의 교회가 되어 버렸어요.



으잉? 너 산타 아니야? 지금 몇 월인데 아직도 선물 배달중이야?



여기는 표지판에 학교 있으니 주의하라고 잘 써놓았네요. 더욱 리얼리티가 살아 있어요.


"저거 세빌리 분수 아닌가?"



저건 아무리 봐도 사라예보에 있는 그 세빌리 분수가 맞았어요. 저 분수가 대체 왜 여기 와 있는 거지? 여기도 혹시 물이 나오나? 그런데 물이 나오지는 않는 것 같았어요.



사라예보와의 친선을 위해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건 물이 나오는 곳은 없었어요. 그냥 사람들 쉴 수 있게 만든 의자였어요. 즉, 업그레이드판이 아니라 다운그레이드판이에요.




예쁘장하게 생긴 교회를 보고



투박한 교회도 보았어요.


우리가 이쪽으로 내려온 이유는 바로 중앙시장을 보기 위해서였어요. 길을 물어보는데 한 아주머니께서 영어로 길을 잘 설명해 주셨어요. 그 아주머니께서는 시장은 아침에 크게 열리고 지금은 가도 별 볼 일 없을 거라고 하셨어요. 아주머니께서 알려주신 대로 갔더니 시장이 있었어요.





아주머니의 말씀대로 시장은 거의 끝나가는 분위기였어요.





정말 아름다운 꽃의 도시로 변신한 베오그라드!


눈부시게 변신한 베오그라드를 보며 하루를 정말 편안히 보냈어요. 한 것만 보면 특별할 것 없는 조용한 하루였어요. 하지만 충분히 강한 충격이 있었어요. 계절이 바뀌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발칸 유럽을 보았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놀랄만 했어요.


오늘 타는 구간은 처음 이용하는 구간인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 불가리아 소피아 구간. 기차가 별 거 있겠냐고 생각하며 기차에 올라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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