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복습의 시간 (2016)

복습의 시간 - 38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쿠차 한족 거주지역

좀좀이 2016. 9. 22.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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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시끄러워?"


잠이 들었다 허리가 아파서 몸을 뒤척이려는 순간,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어요. 복도 건너 대각선 앞쪽에서 나는 소리였어요.


"알슈! 알슈!"


지독한 얼화가 섞인 '알슈'. 입에 사탕 물고 말하듯 얼얼얼 거리며 '20'을 외쳐대고 있었어요. 고개를 옆으로 돌려서 뭘 하길래 계속 20을 외쳐대나 바라보았어요. 도박판이 벌어졌어요. 트럼프를 가지고 하는 도박이었어요. 어떻게 하는 것인지 궁금해서 유심히 살펴보았어요. 카드 3장을 받아서 패 교환 없이 바로 그 패로 승부를 보는 도박이었어요. 얼핏 보면 우리나라 섯다와 비슷했어요.


'얘들 돈 많나? 무슨 한 판에 20씩 걸어? 쪼끄만 것들이 돈은 엄청 많네.'


일단 기본 참가비는 10위안. 패를 확인하고 20위안을 거는 건지, 아니면 패를 확인하는 순간 무조건 20위안을 내야 하는 건지 잘 알 수가 없었어요. 어쨌든 죽지 않으면 무조건 일단 20위안을 또 걸어야 했어요. 즉, 패를 받는 데에 10위안, 한 번 참여하는 데에 20위안, 마지막까지 가면 돈을 또 걸었어요. 어떻게 하는 것인지 궁금했지만 중국어를 모르니 아무리 봐도 룰을 알 수가 없었어요. 중요한 것은 판돈 액수가 상당히 컸다는 것이었어요. 10위안이면 식당에서 간단한 밥 한 끼니까 3천~5천원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런데 자기들 말로는 학생이라는 녀석들이 한 판에 밥 세 끼씩 걸고 있었어요. 어떤 때에는 한 번에 80위안을 걸기도 했어요. 80위안이면 그냥 환율로 계산해도 만원이 넘는 돈.


애들이 요란하게 도박을 하고 있으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한 번씩 꼭 구경하고 갔어요.


누가 하나 보니 아까 잠시 저와 친구가 앉았던 자리 주인인 위구르인 청년들도 학생들과 어울려 도박을 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지독한 얼화는 위구르인들이 사용하고 있었어요. 위구르인들이 알슈 알슈 외쳐대었어요.


'중국어가 모음이 아닌 사람들이 더 얼화를 많이 하나?'


예전에 중국 북방의 지독한 얼화는 만주족의 영향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가만히 여기에서 들어본 중국어를 떠올려보니 한족들보다 위구르인들이 얼화를 심하게 했어요. 얼화를 중국어의 상징적인 발음이라고 생각하나? 왠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런 경향이 있어요. 영어 발음 좋아보이게 한답시고 혀를 말아버리고 영어 발음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할 수 있거든요. 심지어는 영어 하는데 얼얼얼 안 거린다고 발음이 나쁘다고 하는 사람들도 엄청 많아요. '빠다 발음'이 혀 말고 하는 발음인데, 이게 중국어에서는 얼화거든요. 중국어에 대해 모르니 이 가설이 맞는지 틀리는지 전혀 알 수가 없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영어 발음에 대한 환상을 떠올려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도박판은 계속 달아올랐고, 애들은 객차 안에서 담배까지 태워대며 열심히 패를 쪼았어요. 중국 기차 안에서 담배를 태울 수는 있지만 객차 안은 금연이에요. 객차와 객차 이음부에서 담배를 태우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얘네들은 그런 것 전혀 신경쓰지 않고 담배를 뻑뻑 태워대며 열심히 도박을 했어요. 지폐 다발을 손에 움켜쥐고 10위안을 탁자에 내려놓고 알슈를 외쳐대었어요.


도박을 구경하다 다시 잠을 잤어요. 몸을 비틀어대며 전력을 다해 괴로워했어요. 이 의자는 정말 비인체공학적인 의자가 아니라 고문 도구 수준이었어요. 목이 뒤로 젖혀지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어요. 머리가 앞으로 쏠리니 어떻게 자세를 잡아도 자세가 금방 흐트러져버렸어요. 억지로 버티며 자다보면 허리가 아파서 깨어날 수밖에 없었어요. 방구석 벽에 기대어 앉아 조는 것이 더 편하지 않을까 싶을 지경이었어요.


'몇 시지?'


자다가 깨어나서 시계를 보았어요. 새벽 4시였어요. 애들은 그때까지도 도박을 계속 하고 있었어요. 기차가 기차역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갔어요. 도박을 하던 애들 몇몇도 그때 밖으로 나갔어요. 사람들이 다시 탔고, 기차가 출발했어요. 애들은 흥이 사그라들었는지 다시 모이지 않았어요. 이제서야 애들이 슬슬 잠을 청하기 시작했어요.


새벽 5시 45분. 드디어 쿠차역에 도착했어요.


kuqa train station


우리만 내리는 건가?


정말 이상할 정도로 내리는 사람이 없었어요.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쿠차 기차역


일단 기차역에서 나오자마자 표를 발권했어요. 친구가 류위안으로 가는 기차표를 발권받는 동안 주변을 둘러보았어요. 조그만 여행사 비슷한 것들이 보였어요. 저것이 바로 천산신비대협곡을 가는 여행사인가보다. 그런데 우리는 천산신비대협곡 안 가. 여기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겠고, 무엇을 해야할 지도 모르겠다. 친구 말대로 적당히 구경 좀 하다가 돗자리 펼치고 잠 좀 자고 느긋하게 기차역 돌아오면 되겠지. 아마 그러면 될 거야.


친구가 쿠차발 류위안행 기차표를 발권받아서 나오자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이른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역 앞에는 5위안을 외치는 택시가사들이 많았어요.


"걸어가자. 어차피 여기에서 시내 안 멀어. 우리 할 거도 없잖아?"


친구가 시내까지 안 머니 걸어가자고 했어요. 그리고 그 어떤 중국인도 택시를 타지 않았어요. 아무 것도 없는 야심한 밤에 기차역에서 나온 중국인들이 그냥 걸어간다는 것은 시내가 분명히 여기에서 그렇게까지 멀지는 않다는 증거였어요.


库车 火车站


어두워서 제대로 사진을 찍을 수 없었지만 쿠차역 사진을 찍었어요. 카메라가 초점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버벅거렸지만 강제로 셔터를 눌러버렸어요. 이 기차역 사진을 이따 밤에 돌아왔을 때 제대로 찍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거든요. 역 자체는 시골 간이역처럼 생겼어요. 그러나 경비는 삼엄했어요. 무장경찰이 이 역을 지키고 있었어요. 대체 이 볼품없는 역을 왜 이렇게 철통같이 지키고 있나 싶었지만, 그럴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역을 빠져나왔어요.



정말로 조용했어요.



"여기 귀신 나오는 거 아니야?"

"귀신? 진짜?"

"무슨 진짜야. 그냥 그렇다는 거지."


착한 친구는 제가 귀신 나오는 거 아니냐고 농담하자 깜짝 놀라며 진지하게 들었어요. 거리에는 차도 없었고 사람도 없었어요. 그냥 아무 것도 없었어요.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고 하는데 진짜로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어요.


신장위구르자치구 쿠차 과일 시장


"우리 이따가 여기 와서 저녁 먹을까?"

"이따 봐서."


이 시장이 제대로 장사를 하는지조차 의문이었어요. 커다란 입간판에는 중국어로 '쿠차현과품교역시장'이라고 적혀 있었어요. 안에는 시장 상가 천막과 진열대가 보였어요. 그러나 마땅히 진열되어 있는 것도 없었고, 사람도 없었어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어요. 이 과일 시장 앞에 도착했을 때가 2016년 6월 5일 일요일 새벽 6시 20분이었으니까요. 아무리 여기가 카슈가르보다 동쪽이라고 해도 베이징에서 어마무지하게 서쪽이었어요. 신장 시각을 적용하면 새벽 4시 20분이었어요.



이런 공장이 하나 있었고, 무슨 군인과 관련된 시설이 하나 나왔어요.



드디어 사람 사는 곳 같은 곳이 나왔어요.


"우리 식당 문 열은 곳 있으면 아침 먹자. 너 핸드폰도 충전해야 하잖아."


전날 저녁을 안 먹었어요. 기차에서 먹은 것도 없었어요. 평소라면 아침을 안 먹는 것에 전혀 신경쓰지 않았을 거에요. 어차피 의정부에서 자취하며 아침을 챙겨먹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이날만큼은 달랐어요. 하루 종일 모든 짐을 짊어지고 걸어야 했어요. 쉴 곳이 과연 있을지 의문이었어요. 하루 종일 걷고 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침을 먹어야 했어요. 게다가 친구 핸드폰 배터리도 문제였어요. 기차에서 충전할 수가 없을 테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기에서 최대한 핸드폰을 충전해놓아야 했어요. 다음날 기차를 하루 종일 타야 했어요. 류위안에 도착한다고 끝도 아니었어요. 류위안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둔황에 있는 숙소까지 가야 했어요. 그 이전에 전날 오후에 충전하고 지금까지 충전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당장 오늘을 버틸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어요.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곳에 뚝 떨어져버린 상황이었기 때문에 친구의 핸드폰은 그만큼 더 중요했어요.


쿠차 한족 거주지역


库车县


슬슬 욕이 나오려고 하고 있었어요. 위구르어가 중국어와 같이 적혀 있기는 했지만 여기는 한족이 사는 곳이었어요. 누군가 쿠차는 한족들이 사는 곳이라고 적어놓은 것을 읽었었는데 그게 맞는 것 같았어요. 한족 따위에는 눈꼽만큼도 관심이 없었어요. 아니, 한족은 보기 싫었어요. 그냥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괴로웠어요. 여기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 여기에 살고 있는 한족들은 중국 정부가 이곳을 완벽히 점령하기 위해 이주시킨 사람들이었어요.



"우리 저 안쪽으로 가보자. 혹시 문 열려있는 곳 있을 수도 있잖아."



친구와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가 보았어요. 식당 한 곳이 열려 있었어요. 주인과 직원 모두 한족이었어요. 판매하는 것은 만두 밖에 없었어요.


"가자. 또우장 파는 곳 있으면 거기서 먹자."


한족과 그들이 파는 만두를 보니 식욕이 뚝 떨어졌어요. 어차피 여기는 한족이 사는 곳이라 생각하니 그렇다면 한족들이 아침에 먹는다는 또우장이나 먹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아무 것도 없고 한족들만 바글대는 곳이라면 굳이 열심히 다닐 필요도 없었어요. 쉴 만한 곳을 찾으면 거기에서 적당히 하루 종일 잠이나 자다 떠나야겠다. 한족들 구경해서 뭐하냐. 어차피 내일부터 한족들 질리게 볼 텐데. 또우장이나 먹고 어디 공원 보이면 기어들어가서 푹 쉬어야지. 열심히 다닐 의욕이 아예 없어져버렸기 때문에 또우장 파는 곳을 찾아보자고 친구에게 말하고 가게를 나왔어요.



정말 아무 것도 없었어요. 한족들이 사는 건물. 그리고 텅 빈 차도.




이미 입에서 욕이 쏟아져나오고 있었어요. 아무 것도 볼 것이 없었어요. 그냥 한족들 사는 동네였어요. 이러니 천산신비대협곡 외에 정보가 아무 것도 없지. 이런 거지 같은 곳에서 오늘 하루를 보내야 하다니! 대체 오늘 뭘 해야 하지? 그보다 왜 벌써 한족들 사는 곳에 들어와 있는 거야? 여기 신장 위구르 자치구잖아! 한족들 보기 싫다구! 어차피 내일부터 한족들 사는 곳으로 갈 건데 왜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한족들 몰려 사는 곳에 내가 와 있는 건데! 심장에서부터 분노가 머리 끝까지 쫙쫙 올라가 입으로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왔어요.



길을 건너자 새로 건물을 지어올리고 있는 것이 보였어요. 여기에 대체 뭐가 있길래 건물들은 또 지어올려? 여기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꺾어서 걸어갔어요.



앞에 아침 식사를 판매한다는 입간판이 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어요.


"저기 한 번 들어가보자."


아까 그 만두 판다는 식당 외에 문을 연 식당이 단 한 곳도 없었어요. 문이 닫힌 식당만 계속 보다 드디어 문이 열린 식당이 나온 것이었어요.


"또우장 팔아요?"

"예, 있어요."


친구가 중국어로 또우장 파냐고 물어보자 한족 아주머니가 또우장 판다고 대답했어요. 여기 역시 모두 한족이었어요. 친구와 자리에 앉았어요. 또우장 2그릇과 만두 2개를 시켰어요. 친구는 아주머니와 무언가 계속 대화했어요. 우리들이 한국에서 왔고 여행중이라고 하는 것까지는 알아듣겠는데, 그 다음부터는 무슨 말을 주고 받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어요.


"야, 잡담하지 말고 핸드폰 충전해도 되냐고 물어봐."

"내가 지금 잡담하냐? 여기 뭐 있는지 물어보고 있잖아!"


친구가 성질을 버럭 내었어요.


"알았어. 그러니 이제 핸드폰 충전해도 되냐고 물어봐."


친구가 성질을 낸 것이 이해는 되었어요. 제가 여기 와서 절망하고 분노하는 것을 보고는 여기에 무엇이 있는지 한족 아주머니에게 계속 물어보고 있었어요. 이때 친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오늘 무엇을 하느냐였고, 저는 친구와 아주머니의 중국어로 된 대화를 알아들을 수 없었어요. 반면, 저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던 것이 친구의 핸드폰 충전 상태였어요. 친구는 자신의 아이폰이 배터리가 상당히 오래가기 때문에 제가 걱정하는 것만큼 자주 충전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호언장담하고 있었어요. 친구의 이런 호언장담에 마땅히 반박하거나 따질 수 없었어요. 저는 친구가 사용하고 있는 아이폰을 사용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제가 사용해본 아이폰이라고는 아이폰 3GS가 전부였어요. 하지만 오늘 핸드폰을 보아야할 일이 꽤 많을 것이고, 다음날 B와 연락을 위해야 할 일도 있을 것이며, 둔황 숙소 예약도 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어요. 만약 오늘 갑자기 친구 핸드폰 배터리가 뚝 떨어져버리면 그 자리에서 날벼락 세 개 연속으로 맞는 것과 맞먹는 충격이 가해질 것이었어요. 오늘만 문제가 아니라 내일도 문제였어요.


중국 또우장


또우장에 설탕을 부어서 마셨어요. 베지밀 같았어요.


"또우장 맛있냐?"

"두유 같고 좋네."


뜨겁지만 않았다면 더 좋았을 거에요. 밖에서 만두가 기계 속에서 찌어지고 있었어요.


중국 만두 찜기


안에서는 열심히 만두를 빚고 있었어요.


중국 만두


만두가 나왔어요.



"나도 이제 카메라 충전 조금 해야겠다."


저도 카메라 배터리를 충전시키기 시작했어요. 조금이라도 더 충전해야 했어요. 최소한 둔황에 있는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지금 갖고 있는 배터리로 버텨야 했어요.


친구와 또우장과 만두를 먹으며 오늘 어떻게 할 지 이야기했어요.


"아주머니 말로는 외지인들은 천산신비대협곡 좋다고 하는데 자기가 가봤을 때는 별로였대."

"하긴, 우리 기차 타고 오면서 비슷한 풍경 실컷 봤네."

"그리고 이쪽은 한족들이 사는 곳이고, 우리가 걸어온 방향의 반대편으로 쭉 가야 위구르인들 사는 지역 나온대."

"그래? 그러면 거기 가보자. 한족들 사는 거 봐서 뭐하냐? 그런데 거기에 뭐 있대?"

"거기에 총 바자르 있고, 왕과 왕비가 묻힌 무슨 표 같은 게 있다더라. 여기에서 2번 버스 타고 가다가 버스 한 번 갈아타야 한대."

"일단 천천히 먹고 너 폰 배터리 충전 좀 되면 나가자. 오늘 너 폰 배터리 떨어지면 우리 진짜 큰일난다."


또우장과 만두를 먹으며 느긋하게 쉬었어요. 급할 것이 아무 것도 없었어요. 급해야할 이유도 없었어요. 위구르인들 사는 마을과 총 바자르만 보면 끝이었어요. 그거 다 보는 데에 몇 시간 안 걸릴 것이 뻔했어요. 중요한 것은 쉬는 것이었어요. 기차에서 목과 허리가 끊어지는 줄 알았고, 기차에서 나오자마자 짐을 메고 계속 걸었어요. 오늘은 어떻게든 쉬어야 했고, 어떻게든 반드시 조금이라도 누워야했어요. 내일 류위안까지 가는 기차 이동도 만만찮은 이동이었거든요.


"이제 슬슬 일어날까?"

"너 핸드폰 충전 많이 되었어?"

"응. 꽤 되었다."

"그러면 가자."


카메라 배터리를 카메라에 다시 끼우고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식당에서는 튀긴 만두를 만들고 있었어요. 아주머니께 고맙다고 인사드린 후 식당 밖으로 나왔어요.


"이제 2번 버스 타고 위구르인 사는 마을 가자. 거기 가서 후딱 구경하고 누워서 잠 좀 자자."


저도 피곤하고 친구도 피곤했어요. 기차에서 내린 시각이 새벽 5시 45분이었고, 식당에 들어갔을 때가 새벽 6시 50분이었어요.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의자가 주는 고통에 뒤척이다가 기차에서 나오자마자 한 시간을 걸었어요. 식당에 들어갈 때 이미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어요. 카슈가르에서 허리가 조금 좋아졌다 싶었는데 다시 허리가 안 좋아졌어요. 진짜로 졸렸고, 조금이라도 눕고 싶었어요. 그래도 여기에서 누워서 쉬는 것은 아니었어요. 위구르인 마을을 둘러보고 나서 쉬어야 했어요. 그래야 마음 놓고 푹 쉴 수 있으니까요.


"우리 오늘은 진짜 이따가 쉬어야돼."

"알았어. 얼른 구경하고 이따 2시쯤 제일 뜨거울 때는 어디 괜찮은 곳 찾아서 돗자리 깔고 쉬자."


친구가 제게 이따가 꼭 쉬자고 했고, 그런 친구에게 2시경에 무슨 일이 있어도 쉬자고 대답했어요. 친구는 자기가 쉬자고 이야기하지 않으면 제가 안 쉬고 하루 종일 돌아다닐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나 그것은 완벽히 틀린 생각이었어요. 저도 여기에서 어떻게든 반드시 누워서 쉬다가 갈 생각이었어요. 허리에서 전해지는 고통 때문에 걸어가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어요. 앞으로 숙이면 통증이 조금 덜 할 것 같은데 앞으로도 가방을 메고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숙일 수도 없었어요. 친구 앞에서 아픈 것을 티내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당장 주저앉고 싶을 지경이었어요. 앞으로 메고 있는 가방을 옆으로 멜 수도 있기는 했지만, 그러면 일시적으로 덜 고통스러울 수 있겠지만 허리에 더 큰 무리를 주어서 훨씬 더 큰 고통을 당할 것이었어요. 그래서 저도 오늘은 무조건 조금이라도 누워서 쉴 생각이었어요.


2번 버스가 서는 정류장에 도착했어요. 의자에 앉았어요.


"버스 곧 오겠지?"


버스는 오지 않았어요.


"우리 버스 정류장 잘못 찾아온 거 아니야?"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았어요. 버스 정류장을 잘못 찾아온 것이 아닌가 싶었어요. 그때 마침 한족 여자 하나가 버스 정류장으로 와서 버스를 기다리기 시작했어요.


중국 신장위구르 아침 풍경


청소부가 거리를 쓸고 있었어요. 이제 자동차가 하나 둘 거리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어요. 차가 달려오는 방향을 한없이 바라보았어요. 버스처럼 생긴 것조차 보이지 않았어요. 잠이 몰려왔어요. 가방을 꼭 껴안고 가방에 턱을 대고 눈을 감았어요. 그렇게 잠깐 선잠이 들었다가 큰 차가 오는 소리가 들리면 눈을 떠서 차가 달려오는 방향을 바라보았어요. 버스는 오지 않았어요. 버스가 안 오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눈을 감았어요. 다시 선잠을 잤어요.


"헉! 너무 잤다!"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옆을 쳐다보았어요. 한족 여자가 여전히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옆을 보니 친구도 졸고 있었어요.


'대체 버스 언제 오는 거야?'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 멀리 버스가 오나 가만히 바라보았어요.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지 한 시간이 되어서야 2번 버스가 왔어요.


버스를 타고 가는데 교복을 입은 위구르인 어린이들이 버스에 올라탔어요. 아이들은 버스 카드를 찍고 버스를 탔어요. 그렇게 버스를 타고 쭉 갔어요. 직진하던 버스는 오른쪽으로 커브를 돌았어요.


"야! 우리 내려야할 정거장 지나갔다!"

"어?"

"빨리 내려야해!"


마침 버스가 정류장에 섰어요. 자리에서 일어나 버스에서 내리려는데 한족 할아버지가 위구르인 어린이들을 잡고 무슨 연설을 해대며 출구를 가로막고 있었어요. '뛔부치'라고 말하고 지나가려 해도 계속 비키지 않고 출구를 막았어요. 당장 내리지 않으면 버스가 문을 닫고 출발할 것이었어요. 할아버지를 밀치고라도 내려야 했어요. 할아버지를 밀치고 내리려는데 어떤 여자가 옆으로 메고 있던 가방에 왼팔이 긁혔어요.


"아, 진짜 짜증나는 한족이네. 버스에서 뭔 위구르 애들 잡고 헛소리 연설질이야? 연설을 할 거면 출구에서 비켜나서 하든가."


가방에 긁힌 팔을 보았어요. 상처가 길게 생겼어요. 다행히 상처가 깊지는 않았지만, 딱지가 앉게 생겼어요. 흉터가 남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딱지가 앉으면 1년 정도는 거무튀튀하게 흉터처럼 상처의 흔적이 남을 거였어요. 이 흉터 비슷한 것이 없어지려면 최소 겨울을 한 번 보내야 할 거에요. 그 전까지는 칼자국처럼 보기 싫게 자국이 남아 있을 거구요. 친구가 제 상처를 보더니 놀랐어요.


"너 그거 왜 그래?"

"아까 한족이 애들 잡고 뭔 소리 하면서 계속 출구 막고 있었잖아. 한족 밀치고 내리는데 어떤 여자 가방에 긁혔어."

"너 괜찮아? 그거 상처 큰 거 같은데?"

"괜찮아. 이거 깊은 거 아니야. 그냥 딱지 생기고 아물 거야."


상처에서 피가 나지는 않았어요. 그냥 피부가 긁힌 것이었어요. 그러나 상당히 길게 긁혔기 때문에 누가 보면 심하게 다친 것처럼 보이기 딱 좋게 생겼어요.



"이왕 잘못 내린 거 골목이나 둘러보고 가자."


아주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골목이나 둘러보고 가자고 했어요.


위구르 어린이 등교길


골목에는 학교가 있었고, 아이들이 교복을 입고 등교하고 있었어요.


쿠차 모스크


"우리 뭐 하나 마시자. 슬슬 목마르다."


학교 앞 문방구가 보이자 그쪽으로 갔어요.



문방구에서는 음료수를 팔고 있었어요. 사과맛 음료수를 고른 후, 계산을 하고 나오려는데 순간 번뜩 떠오른 것이 있었어요.


'그러고보니 위구르어가 적힌 내 기념품은 아직 하나도 못 샀지! 아까 애들 버스 카드 찍던데 버스 카드에는 위구르어가 적혀 있지 않을까?'


만약 위구르어가 적힌 버스 카드를 구한다면 꽤 괜찮은 기념품이 될 거였어요. 일단 크기가 지갑에 쏙 들어가는 크기이니 지갑에 넣고 다닐 수 있고, 위구르어가 적혀 있으니 이 지역을 여행한 확실한 기념품이 되구요. 우즈베크어로 문방구 아가씨에게 물어보았어요.


"버스 카드 어디에서 구입할 수 있어요? 여기에서 구입할 수 있나요?"

"아니요. 버스 카드는 은행 가서 만들어야 해요."


매우 예쁘게 생긴 위구르인 아가씨의 말투에 속으로 깜짝 놀랐어요. 신장 위구르 자치구 오기 전 보았던 위구르 방송에서 여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말하는 말투와 똑같았어요. 억지로 그런 말투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자연스럽게 그 말투를 사용하고 있었어요. 지금까지 위구르어를 들으면서 위구르어에 대한 인상이 아주 좋지는 않았어요. 우즈베크어가 우리나라 말투 같고 위구르어는 마치 조선족이나 북한 사람 말투 같다는 느낌을 상당히 많이 받았어요. 게다가 위구르인들은 말을 상당히 빨리 한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이 여자의 말을 들어보니 위구르어도 상당히 아름다운 말 같았어요. 마음 같아서는 위챗 아이디를 교환하고 싶었어요. 위구르어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위구르인 친구가 필요했거든요. 하지만 중국 와서 심카드를 구입하지 않았고, 제 위챗 아이디가 제대로 검색되지 않는 것을 직접 겪었기 때문에 그냥 가게에서 나왔어요. 친구에게 이것까지 부탁할 수는 없었어요.


"야, 저런 말투라면 위구르어 공부할 만 하지 않냐?"

"나 진짜 위구르어 배우고 싶어!"


친구에게 저 아가씨 말투라면 위구르어 상당히 아름답지 않냐고 하자 친구가 위구르어를 진심으로 배우고 싶다고 했어요. 친구는 또 다시 제게 위구르어를 알려달라고 했어요. 친구에게 위구르어를 알려주고 싶었지만 제가 알고 있는 것은 우즈베크어였지 위구르어가 아니었어요. 속으로 정말 아쉬웠어요. 이제 위구르어가 조금씩 되려고 하는데 오늘이 신장 위구르 자치구 마지막 날이었어요. 여기를 벗어나는 순간 위구르어는 이제 머나먼 곳에 존재하는 언어가 되어버릴 거에요. 혼자서 독학으로 공부하려고 하면 공부야 할 수 있겠지만 여기에서 사람들과 우즈베크어와 위구르어로 대화하는 것만큼 재미있지는 않을 거에요. 오히려 꽤 지루한 공부가 될 거에요.



"여기 그래도 나름 발전했네? 건물도 깨끗하구."


아직 한족 마을에서 완벽히 벗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아직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은 건물들이 보였어요. 도로 상태도 괜찮았어요. 만약 이런 풍경이 계속 이어진다면 여기도 나름 괜찮은 도시일 거에요. 중요한 것은 한족 마을은 확실히 신도시라는 것이었어요. 이제 건물들이 막 올라가고 있었어요. 도로 상태도 괜찮았고, 건물도 나름 깔끔했어요. 우루무치처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살기에 그럭저럭 괜찮은 수준으로 보였어요.



친구와 골목에서 벗어나 다시 맞는 방향을 향해 걸어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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