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복습의 시간 (2016)

복습의 시간 - 40 중국 쿠차 청나라 성벽 유적 库车县 清城墙遗址

좀좀이 2016. 9. 26.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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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족이 하나도 안 보이니 속이 시원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분이 이상하고 불안했어요. 우루무치에서는 당연히 한족이 많이 보였고, 카슈가르 구시가지만 해도 최소한 한족 관광객들이 보였어요. 여기는 정말 한족이 하나도 안 보였어요. 아까 그 황량한 풍경, 산으로 가던 길이 무슨 분계선 같이 와닿기 시작했어요. 앞으로 걸어나갈수록 이 길을 가도 되는 것인지 더욱 망설여졌어요. 아까 깜깜할 때 기차역에서 나와 걸을 때에는 그냥 아무 것도 없었을 뿐이었지, 걸어나가는 것 자체가 망설여지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지금은 달랐어요. 이렇게 가는 것 그 자체가 망설여졌어요.


'그래도 친구랑 같이 있으니 별 일이야 없겠지.'


친구는 중국어를 알고, 저는 우즈베크어를 안다는 것이 이렇게 엄청난 안도감을 줄 줄은 몰랐어요. 지금까지 여행을 할 때마다 그 지역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조금씩 공부해서 갔어요. 그 행위를 일종의 여행자 보험처럼 여겼어요. 최소한 글자 읽는 법이라도 제대로 알고 있으면 불필요한 체력 및 시간 낭비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으니까요. 지금은 그 정도가 아니었어요. 왠지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고, 그때 제가 우즈베크어로 어떻게 이야기하면 무난히 잘 해결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분명 안전한 곳이 확실한데 계속 무언가 꺼름찍하고 불안했어요.


Kucha


화려한 색으로 칠해진 주변 가옥들을 구경하며 계속 앞으로 걸어갔어요.



길 건너편에서는 난을 파는 가게에서 위구르인들이 난을 사가고 있었어요.


위구르인 문화


"그래도 여기 생각보다 괜찮지 않냐?"

"응. 좀 괜찮네."


친구에게 여기가 우리 예상보다 괜찮지 않냐고 물어보자 친구도 그렇다고 대답했어요. 왜 자꾸 내심 무슨 일이 생길 거 같다는 불안감이 드는지 모르겠지만, 그것만 없다면 여기도 아직까지는 볼 만한 곳이었어요. 우루무치, 카슈가르와는 다른 분위기였어요. 두 곳에서 본 위구르인 거주지역은 흙빛 마을이었지만, 여기는 화려한 색깔을 자랑하고 있었거든요.



"우리 이따 저거 태워달라고 할까?"

"저 오토바이 수레?"

"저거 타고 역까지 가면 좋겠다."

"한 20위안 달라고 하지 않을건가?"


위구르인 오토바이 수레


아직까지 쉴 만한 곳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서로 농담을 주고 받을 정도로 체력이 회복되기는 했어요. 그 잠깐 공원에서 쉬고 버스에 앉아서 쉰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게다가 거리 풍경이 지금껏 보아온 풍경과는 달라서 새로운 곳을 돌아다니고 있다는 느낌이 확 들었어요. 그 새벽 암울했던 순간에 비하면 정말 복권 당첨된 급의 풍경이었어요. 이렇게나마 구시가지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어요. 새벽에는 '여기서 하루 종일 무엇을 해야 하나' 걱정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그런 걱정은 없었어요. 이제 쉴 만한 곳만 찾아낸다면 오늘 하루를 매우 만족스럽게 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어요.


"저 앞에 저거 뭐지?"


중국 쿠차 왕궁


"저거 무슨 유적인가?"


길 끝에 모스크 입구 비슷하게 생긴 건물 입구가 있었어요. 현판에 걸려 있는 한자를 읽어보았어요. 库车王府 '쿠차왕부' 라고 적혀 있었어요. 한자 위에는 위구르어가 적혀 있었고, 한자 아래에는 King palace in Kuqa 라고 적혀 있었어요. 영어를 보면 이것은 왕궁. 이것이 아까 한족 아주머니가 말했던 무슨 왕족 묘지 같은 거구나! 이제 이거 보고 시장 가서 밥 먹고 시장 구경하면 오늘 여기에서 볼 만한 것은 다 보는 건가?


친구와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입구로 갔어요. 입구에는 보안검색대가 있었어요. 보안검색대를 통과하려는데 한족이 나와서 표를 구입해야 한다고 했어요. 친구가 중국어로 표가 얼마냐고 물어보았어요.


1인당 60위안!


지금 장난해? 이게 뭐 얼마나 대단한 거라고 60위안을 내라는 거야? 아무리 중국 유적 입장료가 날강도 수준이라지만 여기 들어가는 데에 60위안 내라니 어이가 없었어요. 중앙아시아 여기저기를 돌아다녀보았기 때문에 이 유적이 얼마나 볼만한지는 이미 계산이 된 상태. 입구의 규모만 보아도 사실 답이 나왔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 코칸드 칸국, 부하라 칸국, 히바 칸국의 왕궁을 보았거든요. 게다가 만약 여기 관람이 정말 60위안의 가치가 있다면 저와 친구가 쿠차에 대해 '천산신비대협곡'만 알고 있을 리가 없었어요. 인터넷에서 검색도 해보고, 카슈가르 신화교육서점에서 신장위구르자치구 가이드북도 찾아서 읽어보았지만 저 왕궁에 대한 정보는 여기 와서 처음 접했어요. 이것이 정말 볼 만한 곳이었다면 어떻게든 여기 오기 전에 한 번은 여기에 이것이 있다는 정보를 접했어야 했어요.


그러나 이것을 안 들어간다면 여기에서 걸으며 거리 풍경을 구경하는 것 말고 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을 것이었어요. 친구는 대책없이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고 에브리바디 웆주 삼라만상 다 싫고 그냥 쉬고 싶다고만 하고 있었어요. 그러나 이런 친구의 태도에 저까지 동조할 수는 없었어요. 아무 것도 하기 싫고 아무 데도 들어가기 싫다면 필연적으로 많이 걷게 된다는 결론으로 귀결이 나버리거든요. 자리도 봐 가면서 누우라고 하는데, 이것은 사실 그냥 속담이 아니라 과학이에요. 돈은 지금 한 푼이라도 더 아껴야하는 상황이고, 드러눕기는 고사하고 앉아서 쉴 곳조차 마땅히 없는 상황에서 이것저것 다 싫다고 해버리면 멍하니 서 있거나 걷는 수밖에 없어요.


이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간단히 시내로 나갔다고 생각해보면 되요. 친구와 시내에서 만나서 돌아다니다 쉬고 싶다면 어딘가 들어가야 해요. 그런데 친구가 그 어떤 곳도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해요. 주변에 공원도 없어요. 마땅히 어디 걸터앉아 쉴 만한 곳도 없어요. 이러면 어떻게 할 건가요? 서 있든가 걷든가 밖에 남지 않아요.


사실 제 머리 속에는 이미 이 동네에서 누워서 쉬기는 고사하고 앉아서 쉬기도 힘들겠다는 계산이 섰어요. 돗자리 펴고 드러누울 만한 자리가 보이지 않았고, 설령 있다 해도 알 수 없는 꺼름찍함 때문에 과연 누워서 제대로 쉴 수 있을까 진지하게 생각을 해보아야만 했어요. 그래서 뭐라도 하나 더 들어가야만 했어요. 어딘가 들어가야 최소한 이 뜨거운 뙤약볕이라도 피하니까요.


입장료가 20위안이라면 고민하지 않았을 거에요. 여기에서 볼 만한 것이 사실상 이거 하나였으니까요. 여기 와서 계속 거리만 걷고 싶지는 않았어요. 게다가 안에 들어가면 어쨌든 밖에서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덜 힘들어요. 무거운 가방은 입구에 맡겨버리면 되니 일단 가방의 무게에서 해방될 수 있어요. 안에 앉아서 쉴 만한 곳이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이 길을 걸어오면서 찻집을 단 한 곳도 보지 못했어요. 만약 입장료가 20위안이라면 15위안은 입장료, 5위안은 그냥 카페 들어가서 커피 한 잔 마시며 쉬었다고 생각하면 되요. 그러나 입장료는 60위안.


60위안 내고 여기를 들어갈 거라면 그냥 천산신비대협곡을 갔어요. 천산신비대협곡 입장료가 아마 60위안보다는 적을 거에요. 친구와 함께 입장료 흥정을 시도해 보았어요. 그러나 흥정이 되지 않았고, 들어가고 싶다면 1인당 60위안을 내야 한다고 했어요. 1위안을 대충 200원으로 계산하면 1인당 12000원. 아무리 어디 하나라도 더 들어가서 최대한 체력 소모를 줄여야 한다지만 약 1만원 돈 되는 입장료 내고 이거 안에 들어갈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이것이 입장료 60위안의 가치를 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둘 다 정말 잘 알고 있었거든요.


쿠차 왕궁 옆길로 돌아가려는데 왕궁 맞은편에 이런 선전물이 있는 것이 보였어요.



붉은색 큰 한자는 어렵지 않아서 거의 다 읽을 수 있었어요. 공정, 민주, 평등, 자유 보고 웃었어요.


"왕궁 옆쪽으로 가면 대충 안에 있는 건물 보일걸?"



왕궁 담을 따라 걸어갔어요. 담에는 윤형 철조망까지 쳐져 있었어요. 저 철조망은 일반 철조망보다 더 뚫기 어려운 철조망이에요. 왜냐하면 가시가 역사다리꼴 모양이라서 서로 반대되는 방향으로 박히거든요. 한쪽 방향으로 빼내려고 할 때 다른 방향은 더 박히는 방향이 되는 거에요. 여기 찾아오는 사람 자체가 없을 거 같은데 여기 담장 위에 이렇게 윤형 철조망까지 쳐놓을 필요가 있을 건가?


주변에 마땅히 높은 곳이 없었기 때문에 왕궁은 밖에서 딱 이 정도 보아야 했어요. 이 정도면 충분했어요.



벽에 매달린 흑판에는 분필로 위구르어가 빽빽하게 적혀 있었어요. 무슨 내용인지 읽어보려 했지만 잘 읽을 수 없었어요. 대충 읽어보니 모범적인 시민의 태도에 대해 적어놓은 것이었어요.


이번에는 골목길을 통해 처음 내렸던 버스정거장 조금 전에 있는 다리까지 걸어가보기로 했어요.



"너 좋아하는 포도 덩굴이다."


아무 의욕 없는 친구에게 조금이라도 흥 좀 내라고 주변을 보며 이런 저런 말을 했어요. 이렇게 친구의 흥을 돋구워주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이따 쉴 만한 장소가 있나 계속 유심히 주변을 살펴보았어요.



이런 골목길에 돗자리 깔고 드러누울 수는 없잖아.


계속 앞으로 걸어가는데 거리에 화덕 같은 것이 있었어요.



저것이 바로 아까 60위안 내기 싫어서 안 들어간 쿠차 왕궁이에요.


king palace in kucha


대문 옆에 누렇고 긴 종이가 붙어 있었고, 그 위에 위구르어로 무언가 적혀 있었어요. 무슨 내용인지 읽어보려 했지만 이것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어요.



"이거 유적인가?"


쿠차 자성 남문


낡은 표지판에는 한자로 子城南门 이라고 적혀 있었어요. 이것이 과거 쿠차 왕궁을 감싸고 있던 성 중 내성의 남문이에요.


신장위구르자치구 쿠차 성벽


성벽은 이렇게 그 형태가 남아 있었어요. 길을 건너 계속 왔던 방향으로 되돌아갔어요.


库车县 清城墙遗址


성벽이 계속 나왔어요.



녹이 슬어 알아보기 힘든 표지판에는 위구르어로 ching deviridiki sheher sebili xarabisi 라고 적혀 있었고, 그 아래에 중국어로 清城墙遗址 라고 적혀 있었어요. 이 성은 청나라때 건설된 도시 성벽 유적이었어요.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청나라 성벽


이 유적이 잘 관리되고 있다는 느낌은 전혀 받을 수 없었어요. 성벽을 화려하게 다시 재건축하든가 볼만하게 복원해놓지 않아서가 아니었어요. 이 성벽 이름에 대한 표지판은 녹슬어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어요. 게다가 바로 위의 사진에서 오른쪽 하단에 있는 것이 이 성벽의 설명을 붙여놓은 입간판 같았는데 이 역시 너무 낡아서 뭐가 적혔는지 읽을 수가 없었어요. 어지간하면 사진으로 찍은 후 나중에 컴퓨터로 사진을 확대해 보며 무슨 내용인지 알아보려고라도 할텐데 이것은 너무 상태가 안 좋아서 아예 특별히 사진을 찍지 않았어요.


新疆库车县清城墙遗址


"저 위는 어떻게 올라가지?"


성 위에도 건물이 있었어요. 저 위에 올라가면 쿠차를 시원하게 내려다볼 수 있어보였어요. 여기 자체가 높은 건물이 별로 없었고, 왕궁이 있는 쪽이 하천이 있는 곳보다 고지대였거든요. 혹시 올라갈 수 있는 곳이 있나 둘러보았지만 근처에서 보이지는 않았어요. 더욱이 친구가 계속 옆에서 피곤하고 힘들고 쉬고 싶다고 칭얼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이 성벽 위로 올라가는 길을 찾으러 멀리까지 가볼 수도 없었어요.


계속 골목길을 따라 걸어갔어요.


신장위구르자치구 위구르인 마을


위구르인 골목길


위구르 마을 풍경


"나 힘들어."


친구가 계속 옆에서 힘들다고 말했어요.


"쉴 만한 곳 찾아보고 있잖아. 저기 나무 아래 흙바닥에 주저앉아서 쉴래?"


쉴 만한 곳이라고는 나무 아래 그늘이 전부였어요. 친구가 조용해졌어요. 그러나 잠시 후 또 힘들다고 징징거리기 시작했어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어요. 저도 앉아서 쉴 만한 곳이 있으면 앉아서 조금 쉴 생각이었어요. 그것과 더불어서 이따 누워서 쉴 수 있는 자리가 있나 계속 주변을 살펴보며 가고 있었어요. 정말로 앉아서 쉴 만한 곳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걸어가고 있는 건데, 친구는 계속 옆에서 찡찡거리고 있었어요. 자기가 봐도 쉴 만한 곳이 없는 것 뻔히 보이는데 대책없이 자꾸 이러고 있으니 점점 더 짜증이 날 수 밖에 없었어요.


"저 커다란 덩어리도 유적인가보네."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쿠차 봉화대 유적


커다란 흙덩어리 앞으로 가보니 표지판이 있었어요.


克黑墩烽火台


이 유적의 이름은 중국어로 克黑墩烽火台 이었고, 위구르어로는 qighdong tur 였어요. 봉화대였어요. 봉화대를 한 바퀴 돌면서 자세히 보고 설명도 읽어보려는데 친구가 또 계속 빨리 가자고 징징거리기 시작했어요.


봉화대 주변은 모두 평범한 민가였어요.


위구르인 여성


멀리 무언가 볼 만한 것 같은 높은 건물이 하나 보였어요.



이때 친구는 진짜 심했어요. 쉬자고 조르고 보채는 것도 적당히 해야 하는데 정말로 성질을 돋구고 있었어요. 쉴 만한 곳이 있는데 안 쉬고 가자고 해서 쉬자고 조르는 거라면 이해하는데, 진짜 흙바닥에 털썩 주저앉지 않으면 쉴 수 없는 길이었거든요. 설령 흙바닥에 주저앉는다 쳐도 좁은 길에 수레가 매달린 오토바이 및 그냥 오토바이가 지나다녀서 최대한 구석에 달라붙어야 했고, 저 오토바이 및 수레가 매달린 오토바이가 지나갈 때마다 먼지가 풀풀 일어났어요. 게다가 저도 이때는 진짜로 앉아서 조금 쉬고 싶었어요. 빨리 가자고 보채는데 대체 어디를 가자는 건지 알 수 없었어요. 친구가 특별히 쉴 만한 곳을 알고 있는 것은 전혀 아니었거든요. 어차피 둘이 같이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둘이서 똑같은 곳을 지나왔어요. 저와 친구가 지나온 길에 흙바닥에 주저앉는 것 외에 앉아서 쉴 만한 곳이 없었어요.


'아, 참자.'


확 그만 좀 하라고 소리칠까 하다가 참았어요. 어차피 그렇게 소리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어요. 누구는 지금 안 피곤하고 쉴 만한 자리 안 찾아보고 있냐고 소리치면 덥고 피곤한데 서로 감정까지 상할 것이 뻔했어요. 친구가 이러는 것이 하루 이틀 그러는 것도 아니었으니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는 것이 상책이었어요. 물론 짜증은 계속 나겠지만요.


grape in kuqa, china


xinjiang


위구르 나무심기


계속 길을 따라 걸어갔어요.



이제 조금전 멀리서 볼 만해 보이던 건물이 진짜 가까워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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