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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 풍경 사진을 찍울 수 없게 되자 심심했어요. 친구는 한족 청년들과 계속 잡담을 하고 있었어요. 저녁으로 라면과 아까 란저우역에서 구입한 빵을 먹고 나니 진짜로 할 일이 없어져 버렸어요. 노트북을 꺼내서 여행기를 쓸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귀찮았어요. 하루종일 객실에 갇혀 있다 보니 아주 빠르게 폐인이 되어가고 있었어요. 만사 귀찮고 할 것은 없었어요. 다시 자리에 드러누웠어요.


눈을 뜨니 깜깜했어요.


"이제 일어났냐? 나 심심해서 혼났잖아."

"뭐가 또 심심해? 중국애들이랑 잘 놀더만."

"중국어로 하루 종일 대화하니까 머리 엄청 아파서 나중에 그냥 멍때리고 있었어."


자고 일어났더니 친구가 제가 자서 엄청 심심했다고 툴툴대었어요. 뭘 그거 가지고 궁시렁거리나 하며 침대에 앉았어요.


"너 이제 어떻게 잘래? 이제 잠 못 잔다."

"잠이야 또 자면 되지. 누워서 자는 게 뭐가 어렵다구."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슬리퍼가 보이지 않았어요. 어둠 속에서 슬리퍼가 어디 있나 살펴보는데 친구가 신고 있었어요.


"야, 슬리퍼 내놔."

"응."


저는 기차 이동이 상당히 많고, 그 이동 하나하나가 상당히 길다는 것을 알고 슬리퍼를 챙겨왔어요. 하지만 친구는 옷은 많이 챙겨왔는데 정작 슬리퍼는 챙겨오지 않았어요. 자고 일어나보니 친구가 제 슬리퍼를 신고 있었어요. 자리에서 일어나기 위해 친구에게 슬리퍼를 다시 달라고 해서 받은 후, 슬리퍼를 신고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어요. 몇 시인지 확인해보니 이제 자정이었어요. 저와 친구를 제외한 같은 객실에 탄 네 명은 모두 자고 있었어요.


"너 안 자냐?"

"이제 자야지. 나도 시장 가서 슬리퍼 사야겠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자고 있었기 때문에 친구와 마음놓고 잡담을 할 수 없었어요. 친구는 드러누웠고, 저는 창가쪽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노트북을 꺼냈어요. 메모리카드 속 사진을 노트북으로 옮겨담고, 여행 기록을 다시 정리해서 남기기 시작했어요. 기차 안에서 크게 특별한 일이 없었기 때문에 여행 기록을 남기는 것은 금방 끝났어요. 이제 할 일은 여행기 쓰기. 일단 중국 여행기를 먼저 지금까지의 일까지 조금씩 써나가기 시작했어요.


그때 마침 맞은편 철로에 기차가 정차했고, 제가 탄 기차도 정차했어요.



"이제 진짜 서역 땅인가보구나."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는 기차 창가에 드리워진 커튼에 그려진 낙타. 드디어 진정한 서역땅에 들어가고 있음이 실감났어요. 이 여행은 길고도 길었던 유라시아 대륙 횡단 여행의 마침표.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되어버린 몇 년간의 조각난 일정들이 만들어낸 대장정이었어요. 2007년 1월 첫 외국여행으로 튀니지, 모로코, 스페인을 다녀온 후, 계속 그보다 조금 동쪽에 있는 국가들로 여행을 떠났어요. 가고 싶던 세네갈, 모리타니, 말리와는 나날이 엄청나게 멀어졌고, 여행을 떠날 때마다 전에 갔던 곳보다 동쪽에 있는 나라들로 갔어요. 이 기차에서 내리는 순간, 유라시아 대륙 횡단의 마지막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었어요. 그 시작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맞은편 기차 창문에 매달린 낙타가 보여주고 있었어요.


자세가 불편해서 노트북을 끄고 자리에 누웠어요. 전날 잠을 엄청나게 자서 막상 깊은 밤이 되니 잠이 오지 않았어요. 잠을 청하려 누워 있었지만 그냥 눈만 감고 있을 뿐. 누워 있으니 피로가 쌓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잠이 오는 것도 아니었어요. 슬슬 화장실을 가야할 때가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어요. 오늘 일정은 낮에 투르판 시내를 구경하고 저녁에 우루무치로 넘어가는 것. 기차에서 볼 일을 반드시 보고 내려야 했어요.


새벽 2시 30분.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일어나자마자 화장실로 갔어요.


"휴지 있다!"


기차를 탈 때 휴지를 구입하지 않았어요. 다행히 한국에서 가져온 티슈가 있기는 했지만, 친구와 제가 화장실 한 번 가면 끝날 만큼만 남아 있었어요. 그래서 휴지를 써야 하는 상황에서도 최대한 휴지를 사용하지 않고 버티고 있었어요. 저와 친구에게 단 한 번 - 화장실에 가야할 때를 위해서요. 그런데 화장실에 휴지가 있었어요. 혹시 휴지가 부족하지 않은지 살짝 잡아당겨보았어요. 휴지는 충분히 있었어요. 슬슬 신호가 오고 있었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변기 위에 쭈그려 앉았어요. 중국 화장지는 한국 화장지보다 훨씬 두껍고 질겼어요.


기분 좋게 볼 일을 보고 창가 옆 자리에 앉았어요. 누워봐야 잠도 오지 않았고, 조금 있으면 신장-위구르 자치구역 첫 기차역이 나올 것이었어요. 다음날 일정을 생각해보니 노트북으로 여행기를 쓰며 노트북을 충전하다가 신장-위구르 자치구역 첫 역이 나오면 그때 사진을 한 장 빨리 찍고 카메라 배터리를 충전하면 충전 문제는 얼추 해결될 것 같았어요. 투르판에서 카메라 배터리가 다 떨어지면 보조배터리를 꺼내야 하는데, 호텔에 콘센트가 하나만 있으면 가장 급한 친구의 핸드폰 충전 때문에 쓸 데 없이 AA배터리를 돈 주고 구입해야 했거든요.


커튼을 뒤집어쓰고 창밖을 보니 별이 보였어요. 아쉽게도 은하수는 보이지 않았어요. 과연 타지키스탄, 라오스에서 보았던 그 별이 쏟아지는 하늘을 볼 수 있을까? 기차 내부에 불빛이 있었기 때문에 창밖으로 별이 많이 보이지 않았어요. 신장-위구르 자치구역 첫 기차역에서 제발 번쩍번쩍 빛나는 검은 비단이 하늘 위에 깔려 있기를 바랬어요. 황량함은 이미 시작되었어요. 그 황량함을 덮어줄 번쩍이는 암흑을 볼 수 있을지 궁금했어요. 빛나는 밤, 사막에서 밤을 새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거든요.


새벽 3시 12분. 외부 온도는 16.9도라고 기차 복도 전광판에 떴어요. 건조기후답게 상당한 일교차를 보여주고 있었어요. 새벽 3시 28분. 류위엔 역에 도착했어요. 이 역은 둔황에 가기 위해 내려야하는 역. 새벽 3시 45분이 되자 외부 온도가 14.9도라고 기차 복도 전광판에 떴어요. 기차 안에 있으니 그 일교차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지만, 밖에 있었다면 분명히 춥다고 느끼며 접어놓은 외투 소매를 펼쳤을 거에요. 류원역 다음역은 하미역. 류원역과 하미역 사이에 신장 위구르 자치구 경계가 있어요. 하미역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첫 기차역이었어요.


여행기를 집중해서 쓰는데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어요. 확실히 글은 꾸준히 써야 잘 써지는 것이에요. 한동안 여행기를 거의 쓰지 않았더니 머리가 멍해지며 글이 나오지 않았어요. 일단 바로 며칠 전 일인 중국 여행기를 후딱 쓰려고 했지만 잘 쓸 수 없었어요. 그 며칠 전 기억이 안개 너머 저편에 있었어요. 아무리 무슨 일이 있었나 곰곰이 생각해보아도 잘 떠오르지 않았어요. 사진을 보며 하나 둘 떠올려내서 글로 쓰려고 하면 글이 나오지 않았어요. 국민학생 시절 밀린 일기를 몰아서 쓸 때 정말 쓸 게 없어서 '나는 놀았다' 한 줄 딱 적어버리고 끝냈던 그 수준의 문장만 나왔어요. 문장 자체가 원래 볼품없었어요. 이제는 그 볼품없는 문장이 나락까지 떨어졌어요.


마음은 벌써 태국 여행기를 쓰고 있었어요. 중국 여행기는 이미 다 끝났어요. 밀린 여행기를 써나가며 '숙제 좀 덜어내는구나' 하고 있었어요. 현실은 반대였어요. 가방 속에 들어 있는 무거운 태국 가이드북을 꺼낼 일이 전혀 없었어요. 태국 여행기는 고사하고 불과 며칠 전 일조차 제대로 못 쓰고 있었으니까요. 일단 중국 여행기를 이 시점까지 끝내놓는 것이 먼저였어요. 중국 여행기에서 저는 아직 비자도 발급받지 못한 상태였어요.


'조금이라도 끝내놓아야 하는데...'


20박 21일의 일정. 이것을 통째로 다 밀리면 정말 대책없었어요. 이것까지 다 밀려버리면 남은 올 한 해 내내 여행기만 써도 여행기를 다 쓸 수 있을지 미지수였어요. 전문 여행작가도 아닌데 왜 여행기 쓰는 것에 이렇게 집착할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스스로 억겁의 번뇌를 쌓아가는 것 같았어요. 가뜩이나 집에 쌓여 있는 외국 교과서도 끝도 없는데, 여기에 여행기까지 쌓이고 있었어요.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다시 창밖을 쳐다보았어요. 여전히 어두웠어요. 여행기 진도만큼 깜깜했어요. 일단 지금 이 상황에 대해 쓰기로 했어요. 특별할 것이 전혀 없었어요. 기록에 남길 만한 내용이라고는 창밖을 보았는데 별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는 것과 밖의 온도가 매우 낮았다는 것 뿐. 이것을 글이 아니라 여행기로 쓰는데 의외로 시간이 꽤 걸렸어요. 그나마 모두가 자고 있어서 아무 방해 없이 집중해서 쓸 수 있었기 때문에 딱 이 내용에 대해서만 글을 쓸 수 있었어요. 그 이상은 무리였어요. 글을 쓸 수록 머리가 멍해졌어요. 결국 노트북을 끄고 카메라 배터리를 갈아끼운 후, 카메라 배터리 충전기를 꽂아놓고 객실로 들어와 드러누웠어요.


잠깐 누워있다 해가 서서히 떠오르는 것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에 앉았어요.


6시 13분. 드디어 신장 위구르 자치구 첫 기차역인 하미 哈密 Hami 에 도착했어요.


신장 웨이우얼 자치구 기차역


하미역에서의 정차 시간은 8분이었어요.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먹거리를 파는 상인들이 보이지 않았어요. 그저 여기에서 내리는 사람들이 기차에서 내려 출구로 걸어갈 뿐이었어요. 여기에서 기차로 올라타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이 하미는 바로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가장 유명한 멜론 '하미과'의 원산지인 도시에요. 혹시 역에 멜론 조형물이라도 하나 있나 살펴보았지만 그런 것은 없었어요.


哈密


"위구르어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 하미


위구르어 문자를 보자 드디어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들어왔다는 것이 느껴졌어요. 기차역에 있는 사람 거의 다 한족이라 그 어디에서도 여기가 신장 위구르 자치구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거든요. 아랍 문자를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위구르어 문자를 보면 대충 읽을 수 있어요. 위구르어 문자는 모음까지 다 써주기 때문에 아랍어보다 읽기 더 쉽구요. 표지판에 적혀 있는 것을 더듬더듬 따라읽어보았어요.


먼저 앞에 出站口 exit 라고 적혀 있는 표지판의 위에 적혀 있는 위구르어는 '베캐트틴 치키쉬 에기지'였어요. '애기지'가 무엇인지 잘 알 수 없었지만, '베캐트틴 치키쉬'는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어요. 이것은 '정거장에서 나감' 이라는 뜻이었어요.


"여기는 우즈베크어보다 자음조화 많이 하나보구나!"


우즈베크어에서는 '베카트단' bekatdan 이에요. 위구르어에서는 dan의 d도 동화되어서 t로 갔어요. 우즈베크어와 위구르어는 튀르크어족의 하위 분류에서 같은 분류에 들어가는 가까운 말이에요. 우즈베크어와 위구르어는 튀르크어족 카를룩어파 Qarluq languages 에 속해요. 이 카를룩어에서 우즈베크어는 서부 그룹에, 위구르어는 동부 그룹에 들어가구요. 이게 얼마나 가까운 정도냐 하면 원어민들은 특별한 공부 없이도 그냥저냥 서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이에요. 단, 우즈베크어는 소련이 인위적으로 표준 우즈베크어를 정할 때, 일부러 튀르크 언어의 공통적 성격이 많이 사라진 사마르칸트 방언을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에 자음조화가 거의 없고, 모음조화는 아예 없어요. '~로부터'를 의미하는 조사가 위구르어에서 'din'을 쓴다는 것이 신기했어요. 터키어, 아제리어, 투르크멘어, 카자흐어, 키르기스어, 우즈베크어 모두 '~로부터'를 의미하는 조사는 기본적으로 'dan'이거든요.


그 뒤에 哈密站 Hami Railway Station 위에 적힌 위구르어를 읽어보았어요.


"어? 이건 왜 이렇게 다르지?"


여기 역 이름이 하미니까 위구르어로는 얼추 '하미 베키티' 정도여야 했어요. 그런데 위구르어로 적혀 있는 것은 하미와 아예 다른 이름이었어요. 위구르어로 '쿠물 베키티' 라고 적혀 있었어요. '쿠물'과 '하미'는 아예 다른 발음. 이것은 귀머거리가 아닌 이상 다른 소리에요. 하미과로 유명한 하미가 위구르어로는 하미가 아닌 '쿠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기차에 다시 올라탔어요.


타클라마칸 사막 아침


이제 타클라마칸 사막에 해가 뜨고 있었어요. 사막의 새벽을 바라보며 컵라면에 물을 받아와 혼자 끓여먹었어요. 친구는 해가 뜨든 말든 개의치 않고 계속 자고 있었어요. 기차에서 아침부터 컵라면을 끓여먹으니 중국인에게 동화되어가는 기분이 들었어요. 라면을 먹고 있는데 한족들이 하나 둘 컵라면을 들고 나와 온수를 받을 수 있는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어요.


تەكلىماكان قۇملۇقى


塔克拉玛干沙漠


'저기를 걸어서 지나가라고 하면 죽고 싶었을 거야.'


끝없는 사막. 옛날 사람들은 낙타를 타거나 걸어서 건너가야 했어요. 아무리 걷는 것을 좋아하는 저라 해도 이건 아니었어요. 이것을 걸어서 건너가는 것은 죽음에 이르는 것 같았어요. 당장 기차 차창을 뚫고 들어오는 자외선이 강했고, 밖은 분명 뜨거울 것이었어요. 뜨거운 것까지는 좋아요. 그런데 거리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어요. 기차로 이렇게 질리도록 가는데도 끝이 보이지 않았어요.


Desert in China


친구가 부스스 일어났어요.


"야, 창밖 풍경 진짜 멋져!"


친구는 별 반응이 없었어요. 잠이 덜 깬 상태였어요. 혼자 계속 차창 밖을 쳐다보았어요.




중국 건조기후지역


Taklamakan Desert


창밖 풍경은 계속 바뀌었어요.


건조기후지역



تكلامكان


Désert du Taklamakan


タクラマカン砂漠



"너 아침 안 먹어?"

"괜찮아."

"진짜로 괜찮아?"

"응. 이따 알아서 끓여먹을께."


친구에게 컵라면 안 끓여먹냐고 물어보자 친구는 나중에 끓여먹겠다고 대답했어요. 창밖으로 멋진 풍경이 계속 흘러갔어요.


'얼마전에 비가 내렸었나?'


Teklimakan



투루판은 강수량보다 증발량이 많은 지역. 극도로 건조한 지역이에요. 투루판에서 비를 만난다면 그건 벼락맞을 확률로 제가 재수없다는 뜻. 창밖 검은 땅에는 물이 흘렀던 자국이 있었어요. 사막 및 건조기후지역에 비가 내리면 꽤 무서운 풍경이 펼쳐져요. 물이 순식간에 불어나버리거든요. 사막에서는 물이 크게 불어나고, 도시는 배수시설이 썩 잘 되어 있지 않다보니 물이 넘쳐요. 저 거대한 물이 흐른 자국은 아마 비가 왔을 때 만들어진 후, 그대로 마르며 굳은 것일 거에요.



타클라마칸 사막에 있는 높은 산의 눈은 만년설이었어요. 6월에 눈이 쌓여 있으니 당연히 만년설이지요.


객실을 보니 친구도, 한족 청년 두 명도 일어나 있었어요.



풍경은 서서히 인간이 사는 땅으로 바뀌어갔어요.



'저거 포도밭인가?'



산 아래 건물이 있고, 초록색 나무들이 있었어요. 관개수로로 물을 끌어와서 여기에서 농사를 짓는 건가?


"오! 물이 있다!"



기차에서 이제 곧 샨샨 북역에 도착한다고 방송이 나왔어요.


"너 내릴래?"

"여기 2분 밖에 안 서. 나갔다가 기차 떠나면 큰일나."

"내려가서 사진만 찍고 올 건데, 뭐."


친구는 어지간하면 샨샨역에서는 기차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했어요. 그러나 저는 내릴 생각이었어요. 샨샨역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두 번째 역이었어요.


8시 27분. 샨샨역에 도착했어요.


鄯善北站


이 역에서 내리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바람도 쐬고 사진도 찍기 위해 내리자마자 역무원이 손짓을 하며 올라가라고 했어요.



"여기도 이름이 다르네?"


중국어로 鄯善北站, 영어로 Shanshanbei Railway Station 이라고 적혀 있었어요. 그러나 중국어 위에 적혀 있는 위구르어를 읽어보니 'Pichan shimaliy bekiti' 라고 적혀 있었어요. shimaliy 는 '북쪽의', 'beket' 는 '역'. 즉 北站 이 shimaliy beket 였어요. 鄯善 은 Pichan 이었구요. 영어로는 샨샨이었지만, 위구르어로는 피찬. 영어로만 이상하게 적힌 것은 분명 아니었어요. 아무리 제가 중국어를 몰라도 善 은 우리나라에서 '선'이니 중국어 발음으로도 '선'과 비슷한 발음이 날 거라는 것은 예측할 수 있었거든요. 샨샨현은 1995년 인구조사 당시 187,100 명이 살고 있었고, 이 가운데 위구르인이 67.63%, 한족이 27.24%였다고 해요. 중국이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한족을 마구 이주시켜서 이 지역을 중국에 동화시키려는 정책을 펼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아마 한족 비율이 더 높아지지 않았을까 해요.


기차가 다시 출발했어요. 이제 다음 역은 드디어 저와 친구가 내려야할 투르판 북역이었어요. 친구는 한족 청년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정리해서 제게 다시 한 번 이야기해주었어요.


먼저 한족 청년들이 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에서는 절대 양꼬치를 먹지 말라고 충고했다고 알려주었어요. 그 이유는 가히 충격적이었어요. 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에서 한족들이 하는 양꼬치 가게에서 쥐고기를 판다는 것이었어요. 쥐고기를 양 피, 양 오줌 등에 넣어서 양고기 냄새가 나게 만든 후 구워서 팔기 때문에 절대 먹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했어요. 친구도 양꼬치 대신 쥐꼬치를 판다는 이 소문에 대해 알고는 있었어요. 그런데 우루무치에 살고 있는 한족들이 그것이 사실이고, 웬만하면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만 양꼬치를 먹는 게 좋으며, 정 베이징, 상해 등에서 양꼬치를 먹고 싶다면 위구르인들이 구워서 파는 곳으로 가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어요.


두 번째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먹어야할 음식들이었어요. 먼저 양꼬치.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는 면양을 먹고, 그 외 지역은 다른 양을 먹기 때문에 맛이 다르다고 알려주었대요.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양꼬치를 따라갈 양꼬치가 중국에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자신했대요. 왜냐하면 먹는 양 종류가 다르니까요.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먹는 호주산 양, 뉴질랜드산 양이 면양 - 그 하얗고 털 북슬북슬난 양털을 생산하는 양이에요.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만 파는 Wusu 맥주가 있는데, 이 맥주는 빨간색과 초록색이 있대요. 빨간색 Wusu 맥주와 초록색 Wusu 맥주 중 빨간색이 맛있고, 이 우수 맥주는 칭따오 따위와 비교할 바가 아니라고 말했대요. 양꼬치와 빨간 Wusu 맥주와 더불어 꼭 먹어야할 것으로는 '따판지' 라는 음식과 '피따이멘'이라는 면이 있다고 알려주었다고 했어요.


세 번째로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꼭 가볼만한 비경으로는 카나스와 천산신비대협곡이 있다고 정보를 주었대요. 특히 카나스는 반드시 가야 한다고 강력히 추천했다고 했어요.


네 번째로 신장 위구르 자치구는 베이징 시각보다 약 2시간 느리기 때문에 신장 시간을 따로 쓴대요. 그러므로 시간을 물어볼 때 이것이 베이징 시각인지 신장 시각인지 확인해보아야 한다고 알려주었대요.


마지막으로 중국인 고등학생들도 대학입시 스트레스를 상당히 심하게 받기 때문에 담배를 많이 태운대요. 술은 어려서부터 조금씩 마시기 시작하구요. 담배는 자기들끼리 몰래 태우는 것이지만, 술은 부모님이 어려서부터 조금씩 준다고 했어요.


친구의 정리가 끝났을 때, 마침 멀리 설산이 보였어요.



드디어 투르판 북역에 곧 도착할 거라는 방송이 나왔어요. 짐을 꾸리고 한족 청년들과 작별 인사를 한 후, 객차 문으로 걸어갔어요. 승무원이 객실증을 다시 기차표로 바꾸어주었어요.



투르판 쉬말리 베키티...투루판베이짠...드디어 내리네.


Turpan


천천히 주변을 살피며 투르판역을 걸어나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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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좀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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