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에서 정신없이 자다 보니 어느새 프라하 역에 기차가 도착했어요.
기차에서 내려보니 전철도 다니지 않는 야심한 새벽 시간이었어요. 샌드위치 가게 한 곳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곳도 문을 열지 않았어요. 정말 전날 부다페스트에서 돈을 약간 환전해 오기를 잘 했다고 생각했어요. 안 그랬으면 중앙역에 갇혀서 환전소가 문을 열 때까지 기다려야 했을 거에요.
일단 짐을 코인 락커에 집어넣으려고 했는데 동전이 없었어요. 그래서 일부러 샌드위치를 사먹고 동전을 만들어서 코인락커에 짐을 집어넣었어요.
"이제 어디 갈 거에요?"
"전철 열리면 버스 터미널에 가서 버스 알아봐야죠."
분명 가이드북에는 부다페스트에서 프라하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고 했어요. 그러나 부다페스트에서는 프라하까지 가는 버스를 찾을 수 없었어요. 하지만 프라하에서 부다페스트까지 가는 버스는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중요한 것은 일단 전철이 다시 다니는 것. 프라하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어디를 어떻게 가야 하는지 전혀 몰랐어요. 믿고 의지하는 것은 오직 가이드북.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버스 터미널에 가는 방법은 전철을 타고 가라고 나와 있었어요. 무작정 나가서 걷자니 춥기도 하고 걸인들도 꽤 보여서 위험해 보였어요.
전철 운행이 시작되자 일단 부다페스트와 마찬가지로 1일권을 구입하고 버스 터미널로 갔어요.
프라하역에 있는 자판기와 전철표 자동 판매기. 1일권도 여기서 사요.
전철 내부에 달린 지하철 노선도. 헝가리 부다페스트는 환승을 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디아크 페렌츠 테르 역으로 가면 되요. 오직 거기서만 환승이 되는데 이 역에서 3개 노선이 전부 만나요. 하지만 프라하는 그것보다는 복잡해요. 그래도 서울 지하철에 비하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에요. 지하철 노선이 단순해서인지 어디에서 내리면 무슨 관광지가 있는지 그림으로 표시해 놓았어요.
역 중에 체르니 역도 있었어요. 설마 그 체르니가 그 체르니? 우리나라에서 피아노를 어디까지 쳤는지 중요한 기준이 되는 바이엘과 체르니. 바이엘을 떼고 체르니 들어가면 그때부터는 어디 가서 '나 어릴 때 피아노 학원 좀 다녔어'라고 말해도 전혀 부끄럽지 않아요. 제가 다닐 때에는 하농도 있고 부르크뮐러도 있고 소나티네 앨범도 있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체르니. 아직도 기억해요. 체르니 100번 다 치면 체르니 30번 치고, 체르니 30번 다 치면 체르니 40번 치는데 학원에서 체르니 40번 친다고 하면 국민학생들 중에서는 한 피아노 치는 애라 음악시간에 오르간 반주도 하고 그랬어요. 개인적으로는 음 늘어지게 하는 페달 밟고 하농 치는 게 제일 재미있었어요. 하지만 이 짓 하다 걸리면 엄청나게 혼났어요. 프라하 지하철 2호선 종점이 바로 체르니 다리. 뭔지도 모르는데 그냥 익숙하고 가보고 싶은 이름이었어요.
"부다페스트행 버스 없어요."
"예?"
"버스 없어요."
버스 대부분은 오스트리아 빈으로 넘어가는 버스. 문제는 오스트리아 빈은 야간 이동이 불가능했어요. 더욱이 유로존이라 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어요. 헝가리 물가도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유로존인 빈의 물가는 뭐 말 다 했어요. 그런 곳에 가서 돈이 줄줄 새는 것을 느끼며 지지리 궁상으로 돌아다니고 싶지는 않았어요. 더욱이 빈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 웬만해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안 가는 곳을 가고 싶었어요.
이건 정말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이었어요. 지금까지 일정을 강행군으로 다니다 보니 예상보다 너무 빨리 프라하에 도착했어요. 대략적인 계획은 프라하까지 오는 것까지만 세워 놓았어요. 가장 큰 이유는 제가 귀국하는 비행기가 프라하발 인천 도착 비행기였거든요. 그런데 날짜가 너무 많이 남아 버렸어요. 이날은 3월 24일. 제 비행기는 4월 13일. 아직 거진 20일 더 남았어요. 원래 계획은 알바니아 지로카스트라도 가 보고 크로아티아 여러 곳을 돌아다녀볼 생각이었어요. 그러나 알바니아에서는 언어의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바로 코소보 프리슈티나로 나올 수 밖에 없었고, 크로아티아에서는...할 말이 없네요. 이건 정말 이 여행 일정 중 최악의 오점이에요. 베오그라드야 거주지 등록 때문에 그랬다고 하지만 너무 준비 없이 여행을 시작한데다 생각보다 도시들이 크지도 않고 계속 야간 이동을 했기 때문에 예상보다 너무 계획했던 일정을 빨리 끝내버렸어요.
"프라하 보고 어디로 가지?"
마땅히 떠오르는 곳이 없었어요. 위로 올라가면 폴란드였고 옆으로 가면 슬로바키아였어요.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는 야간이동이 나오지 않았고 폴란드는 그다지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폴란드를 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던 이유는 결정적으로 날씨가 너무 추웠어요. 3월 말 날씨라고 하기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추운 날씨였기 때문에 프라하에서 더 위쪽으로 올라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어요. 지금도 추운데 프라하보다 훨씬 북쪽에 있는 바르샤바나 크라코프에 가면 지금 입은 옷으로는 도저히 견딜 수 있을 거 같지가 않았어요. 게다가 바르샤바나 크라코프까지 기차표 가격이 만만한 가격이 절대 아니었어요.
"우크라이나 갈까요?"
우크라이나가 우리나라 국민들에 대해 일방적으로 무비자 입국을 허용했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났어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는 우크라이나 키예프까지 가는 기차가 있었어요. 문제는 이 기차가 몰도바를 지나가느냐의 여부였어요. 헝가리와 우크라이나는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기차가 루마니아를 거쳐 몰도바로 들어가 우크라이나로 갈 수도 있었어요. 루마니아를 거쳐 가는 거야 별 문제 없었지만 진짜 문제는 몰도바. 몰도바는 반드시 비자가 필요한 나라에요. 잘못해서 몰도바를 경유해 우크라이나로 가는 기차를 타면 진짜 낭패였어요.
중요한 것은 일단 야간 이동이나 숙박 둘 중 하나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
"차라리 오늘은 야간 이동하고 내일 부다페스트 가서 결정할까요? 어차피 우리 부다페스트도 다 못 봤잖아요."
"그래요. 드디어 침대에서 자겠다! 이게 며칠만이야!"
후배는 야간 이동 때문에 엄청 피곤해하고 있었어요. 저야 기차를 타면 머리도 감고 세수도 하고 발도 씻고 양말도 빨아 널 수 있었어요. 물론 이게 해서는 안 되는 짓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야간 이동이 너무 많아서 이렇게 안 하면 도저히 다닐 수가 없었어요. 괜히 제목이 7박 35일이 아니에요. 진짜로 35일 여행하며 딱 7번 숙소에서 잤어요. 벌써 3번 숙박을 했기 때문에 (알바니아, 터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남은 일정간 딱 4번 숙소에서 잤다는 거에요. 이렇게 다닐 수 있었던 이유는 비수기여서 기차에 승객이 항상 거의 없었고, 날이 추웠다는 것이었어요. 여름이라면 땀냄새 때문에 절대 이렇게 다니지 못해요. 하지만 후배는 여자라서 간단한 세면과 양치만 할 수 있었어요. 숙소에 안 들어가서 쌓이는 피로와 스트레스가 제가 받는 것에 비해 훨씬 컸어요. 후배는 다음날 숙소에서 일단 쉰다고 하자 당연히 매우 좋아했어요.
이런 거리를 지나고
화약탑에 도착했어요. 멀리 보이는 것은 바로 프라하성과 바투스 교회. 목적지가 확실히 잘 보였기 때문에 지도가 없어도 길을 찾는데 큰 무리가 없었어요. 무조건 프라하성과 바투스 교회쪽을 향해 걸었어요.
도나우강까지 왔어요.
"카를교다!"
왜 유명한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카를교에 도착했어요. 여기는 관광객도 많고 소매치기도 많다고 했는데 매우 한적한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사진조차 못 찍을 정도로 붐비지는 않았어요. 역시 비수기의 힘.
이 사진은 구시가지 어느 성당 내부 사진이에요.
구시가지 구경을 하며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돈을 내야만 관람이 가능한 성당들도 꽤 많았어요. 아니, 제가 간 성당 모두 유료였어요. 이왕 온 거 다 보고 가자는 마음에 돈을 내고 들어가서 보았지만 지금 여기 사진을 찍어 올려놓은 곳 외에는 그다지 큰 감흥이 없었어요.
프라하성 정상 근처에서 내려다본 프라하에요.
지붕이 붉은 계통의 색이었어요. 크게 아름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너무나 많은 것이 유료이고 가격도 비싸서 슬슬 짜증이 나려고 했어요. 발칸 유럽에 비하면 정말 물가는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해가 뜨고 오르막길을 걷다보니 목이 말랐어요. 그래서 생수 500cc 한 통을 샀어요. 이것도 매우 비싸게 느껴졌어요.
"아우...맛 진짜 더럽게 없네!"
비싼 돈 주고 생수를 샀는데 그 맛은 우리나라 예전 수돗물 맛보다도 더 맛이 없었어요. 염소 냄새 풀풀 나던 우리나라의 예전 수돗물이 생수보다 훨씬 맛있었어요.
"진짜 이딴 거를 돈 받고 팔아먹냐!"
제가 물맛 가지고 화를 내자 후배가 생수를 받아서 한 모금 마셨어요.
"이거 수돗물 아니에요?"
이건 수돗물 마시는 것보다 더 최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와 후배가 딱 한 모금씩 마시고 바로 버려버렸어요. 무슨 물 맛을 세밀하게 따지는 것도 아닌데 이건 도저히 마실 수가 없었어요. 왠지 끓이면 석회질이 티스푼 하나는 나올 것 같았어요.
이제 프라하성을 들어갈 시간. 그런데 경찰들이 입구를 막고 관광객 입장을 막고 있었어요.
"여기 왜 못 들어가지? 출입금지 지역인가?"
의장대가 도열해 있는 프라하성 입구. 그 이유는 바로...
빅토르 유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 프라하 방문!
그래서 프라하성 전면 통제!
가는 날이 장날이 아니라 가는 날이 망한 날이었어요. 하필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프라하 방문해 프라하성 전면 통제하는 날에 아주 잘 맞추어서 프라하에 왔어요. 진짜 푸른 빛에 얽은 곰보 얼굴을 가진 류셴코 대통령을 보았어요. 그러나 저는 류셴코 대통령을 보러 온 것이 아니라 프라하성과 바투스 대성당을 보러 온 것이었어요! 더욱이 우리는 오늘 프라하를 떠나 부다페스트로 갈 예정!
의장대의 행사가 끝났어요.
잘 보면 잡담하는 군인도 보여요.
행사 끝나고 돌아가는 군인들.
역시 행사장과 관광객들로부터 멀어지자 각이 빠르게 풀어지기 시작했어요.
정작 보고 싶었던 프라하성은 못 보고 의전 행사만 구경했어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일정이었어요. 저야 출국 때문에 다시 프라하로 와서 보면 된다고 하지만 후배를 보니 좀 안타까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