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7박 35일 (2009)

[크로아티아 여행] 7박 35일 - 24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플리트비체

좀좀이 2012. 1. 5.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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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대망의 크로아티아행!


크로아티아가 정말 눈부시게 아름답다는 말은 진짜 하면 잔소리에요. 크로아티아 아름답다는 말은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에 구질구질하게 설명하지 않을께요. 저 역시 이 여행에서 크로아티아 여행을 가장 기대하고 있었어요. 발칸 반도와 헝가리, 체코 여행한다고 하니까 모든 사람들이 프라하와 크로아티아가 그렇게 아름답다고 칭찬하며 꼭 가보라고 했어요. 특히 일정 짤 때 크로아티아 일정은 반드시 충분하고 넉넉하게 잡으라고 했어요. 크로아티아 일정을 짧게 잡으면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운 광경을 뒤로 하고 급히 떠나야해서 정말 후회한다고 했어요.


크로아티아 입국할 때까지 정말 별 일 없었어요. 국경 심사도 별 것 없었어요. 우리가 탄 버스는 스플리트행 버스. 스플리트도 매우 아름답기로 유명한 도시였어요.


여행 중 만나 우리를 도와주신 한국분 두 분 모두 플리트비체를 권하셨어요. 두브로브니크, 스플리트는 많이 가는데 플리트비체는 사람들이 잘 가지 않고 아직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하셨어요. 하지만 플리트비체야말로 크로아티아에서 반드시 꼭 가보아야할 곳이라고 하셨어요. 자그레브는 별로 볼 것 없는 도시이니 자그레브에서 오래 머물며 구경하겠다고 하는 것은 썩 좋은 계획이 아니라고 알려 주셨어요. 물론 포드고리차보다야 낫지만 크로아티아 역시 수도 보다는 수도 외의 지역이 훨씬 아름답고 좋다고 하셨어요.


결론부터 간단히 말하자면 아주 기본적인 유럽 여행 계획시 주의사항을 몰랐기 때문에 정말 멍청한 일정을 보낸 하루가 되었어요.


버스가 스플리트에 도착했어요. 이때 시각은 새벽 3시 30분.



스플리트의 새벽. 바닷바람이 거세고 무섭게 몰아치고 있었어요. 도저히 밖에 나갈 수 없었어요. 모스타르에서 버스를 타고 온 모든 승객이 버스 대합실로 도망갔어요. 저희도 버스 대합실로 도망갔어요. 일단 바람을 피해야 했어요.


새벽 거리를 걸어보려고 했으나 날씨가 정말 최악의 거지같은 상황이라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아주 바람이 사람까지 날려버릴 기세였어요. 유리창이 안 깨지는 게 신기했어요.


콰과광 덜컹덜컹


바람이 유리창을 거칠게 때려대었어요. 사람들 모두 너무 춥고 바람이 거세서 문을 알아서 잘 닫았어요. 문틈으로 차가운 바닷바람이 계속 새어 들어왔어요. 사람들이 히터 근처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어요.


버스 시간표를 보았어요. 오늘 일정은 새벽에 스플리트 보고 점심에 플리트비체 본 후 두브로브니크로 넘어가는 것. 유럽의 도시들은 크지 않고 볼 곳은 대체적으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두브로브니크까지 열심히 보면 밤에 자그레브나 부다페스트로 넘어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스플리트에 도착할 때까지 저는 두 개의 계획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이 두 계획 모두 한심하고 멍청하기 그지 없었다는 것. 크로아티아 지도도 없었을 뿐더러 프리슈티나-스코페처럼 될 줄 알았던 것이 큰 오산이었어요. 프리슈티나-스코페처럼 하루에 두 곳을 보는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일단 두 도시가 크게 볼 것이 없는 도시였는데다 버스도 많고 버스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두 도시를 다 보기엔 시간이 빠듯하지는 않았지만 애매했어요. 그런데 세 곳을 하루에 보겠다는 것은 정말 미친 짓. 당시 계획은 다음과 같았어요.


1. 스플리트를 새벽에 봄 -> 두브로브니크 (오전) -> 오후 (약 3시 정도?)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 -> 자그레브로 가서 헝가리로 나감.

2. 스플리트를 새벽에 봄 ->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 (오전) -> 오후 두브로브니크 -> 밤에 자그레브로 가서 헝가리로 나감.


이 계획 자체가 상당히 멍청한 계획이었어요. 아래 지도를 보시면 알 수 있어요.



일단 우리가 도착한 도시는 스플리트. 두브로브니크는 크로아티아 최남단에 있어요.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은 크로아티아 중부에 있어요. 자그레브는 크로아티아 북쪽에 있어요. 스플리트에서 플리트비체를 본 후 두브로브니크에 가서 밤에 자그레브나 그 너머에 있는 부다페스트로 가겠다는 것은 진짜 최악의 멍청한 계획.


우리나라 목포로 들어온 외국인이 '저는 새벽에 목포를 보고 첫차로 부산에 간 후, 오후에 영월 가서 동강 보고 밤에 막차 타고 서울로 갈 거에요'라고 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계획이었어요. 한국인이 우리나라 여행 일정을 저 따위로 짰다가는 '이 멍청한 놈아, 지도 좀 봐라. 목포랑 부산이랑 영월이 서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옆동네인줄 아냐?'라는 소리 들으며 엄청 혼날 거에요. 외국인이 여행 계획을 저렇게 짠다면 답은 하나죠. '절대 저렇게 못하니 계획 바꾸세요. 영월을 빼던지 부산을 빼던지요...'.


원래 계획으로 돌아가 검토해 보면 두브로브니크나 플리트비체 중 한 곳을 빼면 안 되는 것은 아니에요. 한 곳에 대한 욕심을 버리면 가능해요. 단, 전제조건이 하나 있어요.


일요일은 피해라!


크로아티아는 현지화인 쿠나(kuna)를 써요. 유로 통용? 그딴 거 없어요. 무조건 현지화를 써요. 환전을 하거나 ATM에서 현지화를 찾아서 쓰지 않는 한 여기는 답이 없는 국가에요.


유럽 국가들은 휴일 의식이 매우 투철해요. 일요일은 무조건 쉬어요. 우리나라와는 이 점이 크게 달라요.


하지만 이날은...


2009년 3월 22일 일요일!


저는 일요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어요. 달력을 확인하며 날짜만 세고 있었지만 아직 여행 일정이 엄청나게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별 신경을 안 쓰고 있었어요. 이게 이번 여행에서 '최악의 참사'라 불러도 될 일을 불러왔어요.


버스 시간표를 보니 스플리트에서 플리트비체 가는 버스는 아침 7시30분에 있었어요. 스플리트에서 플리트비체 가는 버스 자체가 거의 없을 뿐더러 가는 데에만 3시간 걸린다고 벽에 적혀 있었어요. 플리트비체를 가던지 두브로브니크를 가던지 한 곳은 포기해야 했어요. (스플리트행 버스 및 스플리트발 버스 시간표 : http://www.ak-split.hr/EN/vozni.red/index.html)


"두브로브니크는 사람들 많이 가는 곳인데 가지 말죠. 일단 플리트비체부터 간 후에 시간 되면 두브로브니크 가요."

"예."


후배도 사람들이 정말 많이 와서 너무 잘 알려진 두브로브니크보다는 이때까지만 해도 잘 알려지지 않은 플리트비체를 더 가고 싶어했어요. 그래서 두브로브니크는 일단 플리트비체를 보고 나서 결정하기로 했어요. 크로아티아가 정말 마음에 들면 일단 프라하까지 간 후 남는 일정을 크로아티아에서 보낼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두브로브니크를 안 가는 것에 대해 크게 아쉬움이 있거나 그러지는 않았어요.


추워서 졸 수도 없었어요. 버스 터미널에 문을 연 가게는 아무 곳도 없었어요. 벌벌 떨고 있는데 드디어 매표소가 문을 열었어요.


"플리트비체 2장이요."


돈을 결제하려는데 유로로 지불하려고 하자 안 된다고 했어요. 여기는 현지화폐인 쿠나만 사용할 수 있다고 했어요. 문제는 플리트비체행 버스는 아침 일찍 출발하고, 그 이후 버스는 너무 늦게 있었기 때문에 반드시 아침에 있는 버스를 타야 했어요. 이 버스를 놓치면 플리트비체에서 1박 하고 다음날 구경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만 했어요. 환전소를 찾아 보았지만 당연히 환전소는 문을 열지 않았어요. 환전소는 빨라야 아침 8시에나 문을 열 거라고 했어요.


"아...망했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이 두브로브니크로 가야 하나? 하지만 이미 플리트비체에 꽂혀 버렸기 때문에 플리트비체를 포기하고 두브로브니크로 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그래도 다행히 방법이 있었어요. ATM으로 인출하기! 문제 해결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어요. ATM으로 현지화를 인출하자 간단하게 문제가 해결되었어요.


환전할 방법이 없어서 플리트비체에 가서 환전하기로 했어요. 후배는 ATM에서 플리트비체행 버스비와 약간의 여비를 인출했어요. 나머지는 플리트비체 가서 환전할 생각이었어요.


다행히 무섭게 불던 바람이 멎어서 계획대로 스플리트를 돌아다니기로 했어요.



아주 조용한 거리.



정말 거리는 조용했어요.




"오빠, 이제 버스 터미널로 돌아가요. 이러다가 버스 놓치겠어요."


후배가 돌아가자고 해서 대충 아주 조금 둘러보고 버스 터미널로 가서 버스를 기다리다 버스를 탔어요.



아침이 밝아왔어요. 날이 밝자 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펼쳐졌어요. 버스가 시내를 지나가는데 주위 풍경이 꽤 아름다웠어요.


그러나 버스를 타며 본 스플리트의 모습은 그 다음 펼쳐질 장관에 비교하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어요. 버스가 스플리트에서 벗어나 속력을 내기 시작했어요.


"오빠! 저거 봐요! 풍경 정말 눈부셔요!"


버스 창가로 펼쳐진 아름다운 아드리아해의 모습. 이건 정말 비경 중에서도 비경이었어요. 너무 눈부시게 아름다워서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버스 유리창이 너무 더럽고 버스가 엄청나게 빨리 달려서 사진을 찍지는 못했어요. 그러나 정말 눈에 담아오고 싶은 풍경이었어요. 밤에는 무서운 날씨라 오늘 분명히 날씨 때문에 고생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걱정은 정말 기우였어요. 날씨도 햇볕이 쏟아지는 정말 맑은 날이었어요. 여행 시작 후, 마케도니아 스코페 이후 이렇게 맑은 날씨는 처음이었어요.


버스는 해안가를 달리다 산 속으로 들어갔어요. 버스가 디나르 알프스 산맥으로 들어가자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아드리아해의 풍경은 끝났어요. 버스가 플리트비체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눈 쌓인 것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11시 반. 휴게소에 도착했어요.



휴게소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소변기. 우리나라 소변기와 달리 아래에 턱이 없다는 것이 매우 신기했어요.


그리고 12시. 드디어 플리트비체에 도착했어요. 플리트비체는 버스 터미널이 아니라 '버스 정거장'이 있었어요.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어요.


짐을 맡기고 구경을 해야 하는데 쿠나가 부족했어요. 다행히 체크 카드 결제가 된다고 해서 후배가 체크 카드로 결제했어요.


버스 시간을 물어보니 6시에 버스가 있는데 그 전에 지나가는 버스 잡아서 타면 된다고 했어요. 관광객들 대부분 6시까지 버스를 기다렸다 타지 않고 지나가는 버스를 잡아서 탄다고 알려 주었어요. 그리고 환전을 하려면 호텔에 가야할 거라고 했어요.


오늘은 즐거운 일요일. 모두가 너무 즐거웠는지 기념품점도, 안내소도 문을 닫았어요. 그나마 매표소가 문을 열어놓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모든 것이 다 문을 닫았어요. 짐을 락커에 집어넣고 버스 시간표를 보았어요. 16시 45분에 자그레브행 버스가 있었어요. 그 이전에는 12시 50분 자그레브행 버스가 있었어요. 일단 목표는 12시 50분 자그레브행 버스 타고 자그레브 가서 자그레브를 보고 부다페스트를 가는 것이었어요.



아직 겨울이라 눈이 쌓인 플리트비체. 보자마자 탄성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웠어요.



"여기 정말 환상적이구나!"


저는 좋아하는데 후배는 얼굴이 편해 보이지 않았어요. 그도 그럴게 물이 엄청나게 깊어 보이는데 난간이 없는 좁은 길을 걸어가며 구경해야 했거든요. 제가 미는 척 팔을 쭉 펴면 후배는 그때마다 '으에엑!'하고 소리쳤어요.



겨울인데도 이렇게 아름다운 플리트비체. 왜 여기를 꼭 가라고 추천했는지 확 느껴졌어요.



정말 한없이 맑은 물. 계곡 깊은 곳의 바닥도 그냥 다 보였어요. 이거야말로 명경지수구나!



눈 덮인 주변 풍경 때문에 더욱 힘이 느껴지는 폭포.



이렇게 정말 가까이에서 폭포를 볼 수 있었어요.



이번에는 작은 폭포.



얘는 사람을 하도 많이 봐서인지 우리를 보고 도망갈 생각은 안 했어요. 우리쪽으로 뒤뚱뒤뚱 걸어오더니



구석으로 가서 혼자 고독을 씹기 시작.


한참 걷다보니 배를 타고 건너가는 구간이 나왔어요.



계곡이 너무 잔잔해서 정말 배가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갔어요. 배를 탔는데 흔들림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어요. 물을 헤치는 소리만 조금 들릴 뿐 사람도 별로 없어서 매우 고요했어요. 지금 배를 탄 건지 그냥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인지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배는 조용하게 계곡을 건너갔어요.



다시 폭포.



또 폭포.



플리트비체는 계곡 바로 옆을 걷다가 배를 타고 넘어간 후 계곡 위를 걸어 나오는 코스였어요. 위에서 아래를 쳐다보았어요. 아까 우리가 걸었던 길. 저 다리 건널 때 생각보다는 긴장되었어요. 다리 옆에 그 어떤 안전장치도 없어요. 발 삐끗하면 옆 계곡으로 바로 빠질 수도 있어요.


다 보고 나오니 오후 2시 반. 생각보다 매우 큰 곳이었어요. 계속 눈부시게 아름답다고 좋아하며 계곡을 돌아다니는 동안 원래 우리가 타기로 했던 자그레브행 버스는 지나갔어요. 이제 타야하는 버스는 빨라야 오후 5시 버스.


기념품점이 열지 않았을까 기대하며 입구로 가 보았지만 역시나 문을 열지 않았어요. 늦게 여는 게 아니라 일요일이라서 아예 닫은 것이었어요.


짐을 찾으려고 락커 앞에 서는 순간, 한 가지 잊고 있었던 것이 생각났어요.


"아...맞다...환전 안 했지!"


후배가 가지고 있는 크로아티아 쿠나로는 버스비가 부족했어요. 그러고보니 어차피 일찍 보고 나왔어도 버스를 탈 수 없었어요. 현지화인 쿠나가 부족했으니까요. 호텔에 환전소가 있다고 했기 때문에 일단 호텔을 찾아가기로 했어요. 


플리트비체 입구 맞은편에는 숙소들이 몰려 있어요. 그래서 거기 숙소에 들어가서 환전 되냐고 물어보았어요. 그러나 환전이 안 된다고 하며 위로 올라가면 호텔이 하나 있는데 거기라면 큰 호텔이니 해줄 수도 있을 거라고 했어요.


'설마 그 한참 전에 있던 호텔?'


거기만은 아니기를 바랬어요. 플리트비체 입구에서 왼쪽 길로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 즉 스플리트에서 플리트비체 오는 길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호텔이 2개 있었어요. 하나는 조그만 호텔이었고, 그거보다 더 전에 큰 호텔이 있었어요. 큰 호텔까지는 꽤 먼 거리. 게다가 눈 쌓인 진창길. 어느 부분은 눈이 많이 쌓여있었고, 어느 부분은 눈이 녹아 진창이었어요.


어쨌든 환전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적인 문제였기 때문에 길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어요. 한참 걸어서 작은 호텔에 도착했어요.


"여기서 환전 가능한가요?"

"아니요. 오늘 일요일이라서 안해요. 혹시 위쪽 호텔이라면 모르겠네요."


정말 절망적인 상황. 그래도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어요. 또 한참 걸어 올라가서 큰 호텔에 도착했어요.


"여기서 환전 가능한가요?"

"예."

"살았다!"


자그레브에서 쓸 돈과 부다페스트행 기차표 가격까지 다 해서 50달러 정도면 충분할 거 같았어요. 그래서 50달러만 환전하고 호텔에서 나왔어요.


"어휴...이 길 어떻게 다시 돌아가냐..."


그러나 플리트비체 버스 정류장까지 돌아가는 것 역시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이건 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무조건 해야 하는 것. 그래서 겨우 돌아갔어요.


버스 정류장에 뛰어왔어요. 그 이유는 짐을 다시 찾아야했기 때문이었어요. 매표소에서 4시까지는 돌아와야 짐을 찾아갈 수 있다고 했어요. 그나마 한 가지 다행이라고 할만한 것은 돌아올 때에는 내리막길이었다는 것이었어요. 열심히 뛰어내려와 짐을 찾고 버스 정류장으로 갔어요.


이제부터 지나가는 버스 잡아타기.


버스 정류장에 처음 도착했을 때에는 우리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갈수록 버스 정류장에 관광객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어요.


'이거 불안한데...'


예상이 맞았어요. 지나가는 버스 잡아타고 가면 된다고 했는데 모든 버스가 지나쳤어요. 짐작컨데 버스 정류장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런 것 같았어요. 버스가 우리를 보고 속도를 줄이다가 사람이 많은 것을 확인하고는 그냥 가 버렸거든요. 버스 시간표에 나와 있는 4시 45분 자그레브행 버스조차 버스 정류장에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더니 그냥 가 버렸어요. 결국 6시 버스를 타고 자그레브에 가게 되었어요. 이것은 스플리트에서 출발한 버스. 버스에 타서 현금으로 돈을 지불했어요. 4시부터 6시까지 2시간 동안 밖에서 추위에 떨며 버스를 기다렸어요. 그래서 더 이상 돌아다닐 힘이 남아있지 않았고, 짜증은 극에 달했어요.


자그레브에 도착하니 저녁 8시였어요. 플리트비체가 매우 마음에 들기는 했지만 그거 빼면 일정을 완벽히 망쳤어요. 자그레브에 도착했는데 이미 시각은 저녁 8시. 돌아다니기엔 긴장되는 시각이었어요. 더욱이 기차 시간도 잘 몰랐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일단 기차역으로 가야 했어요. 그래서 택시를 탔어요.


택시는 일부러 빙빙 돌아갔어요. 택시 요금까지 바가지를 쓰자 크로아티아에 대한 정나미가 뚝 떨어져 버렸어요. 기차역에서 표를 사려는데 이미 늦어버려서 선택지는 오직 2개 밖에 없었어요. 23시 30분 베오그라드행 기차를 타거나 04시 부다페스트행 기차를 타는 것이었어요.


"어떻게 할까요? 다시 베오그라드로 돌아갈까요?"

"그냥 부다페스트로 가요."


후배가 부다페스트로 가자고 했어요. 그래서 기차표를 사려는데 쿠나가 또 부족했어요. 이번에도 역시 후배가 ATM에서 현금을 인출해 문제를 해결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새벽 4시 부다페스트행 기차를 선택한 것은 뭔가 아닌 것 같았어요. 시계를 보니 이제야 저녁 9시 반. 부다페스트행 기차 시각은 고사하고 베오그라드행 기차 시각도 엄청나게 많이 남아 있었어요.


"우리 그냥 표 바꾸어서 베오그라드로 갈까요?"

"아니요. 그냥 부다페스트로 가요."


그래서 표를 바꾸지 않고 새벽 4시까지 기다리기로 했어요.


드디어 베오그라드행 기차도 떠나고 밤이 찾아왔어요. 우리가 타는 새벽 4시 부다페스트행 기차는 자그레브역에서의 첫 기차. 4시간 동안은 역이 문을 닫아요. 바람을 피할만한 곳은 모두 문을 걸어잠갔어요. 새벽 4시까지 역에서 버텨야 하는데 바람을 피할 만한 곳이 없었어요.


역 안에서 바람을 피할만한 곳을 찾다가 결국 출입구에서 멀리 떨어진 복도에 주저앉았어요. 처음에는 우리밖에 없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청소년들이 바글바글 몰려들기 시작했어요. 역 안에서 담배 태우는 건 기본이고 노래 부르고 춤 추고 시끄럽게 떠들어대기 시작했어요.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각. 경찰관 두 명이 역 안에 들이닥쳤어요. 경찰관을 본 청소년들이 급히 담배를 끄기 시작했어요. 경찰관은 청소년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다 우리를 발견하자 우리에게 말을 걸었어요.


"어디에서 왔어요?"

"한국이요."

"표 보여주세요."


경찰관은 우리에게 표를 보여달라고 했어요. 표를 보여주자 경찰관은 밤에 이 역은 위험하니 조심하라고 했어요. 그리고 청소년들에게 뭐라고 크로아티아어로 말한 후 가 버렸어요. 그냥 황당해서 할 말이 없었어요. 베오그라드역은 경찰이 계속 순찰을 다녀서 매우 안전했어요. 역 주위는 위험할 수도 있지만 최소한 역 안은 매우 안전했어요. 불량 청소년이나 노숙자가 역 안에서 어슬렁거리면 경찰이 바로 쫓아냈어요. 그런데 자그레브역은 경찰이 휙 둘러보고 끝이었어요. 건물 안에서 애들이 담배를 뻑뻑 태우고 바닥에 비벼 끄고 있는데도 전혀 신경쓰지 않았어요. 자정 이후, 자그레브 역에서 경찰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어요. 신기한 것은 애들이 실내에서 담배를 태우기는 하지만 바닥에 침을 뱉지는 않았다는 것이었어요.


청소년들이 우리를 건들지는 않았어요. 자기들끼리 구내에서 다시 담배 태우고 놀기 시작했어요. 짐을 꼬옥 껴안고 졸다 깨다를 반복했어요. 애들이 짐을 훔쳐갈까봐 잠을 못 잔 것 보다는 도저히 추워서 잘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새벽 3시까지 불량 청소년 틈바구니에서 졸다 깨다를 반복했어요.


새벽 3시가 된 것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짐을 끌고 일단 플랫폼으로 나갔어요. 너무 추워서 있을 수 없었어요. 다시 그 청소년 무리 속으로 들어가야하나 고민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불이 켜진 곳이 보였어요. 그곳은 매표소였어요.


"여기 이제 열었네? 엄청 따뜻하다..."

매표소는 확실히 복도보다 춥지 않았고, 불량 청소년들도 없었어요. 매표소 벽에 기대 앉았어요. 복도보다 따뜻하기는 했지만 역시 잠깐 눈을 붙이기에는 추웠어요.


"내가 다시는 크로아티아 오나 봐라. 여긴 절대 안 온다!"


기차에 올라타며 굳게 다짐했어요.



이 글을 쓰며 그때 정말 여행 정보가 없어서 얼마나 미련한 짓을 했는지 후회하고 있어요. 만약 그때 두브로브니크로 갔다면 굳이 숙소에서 잠을 자지 않고도 원하는 대로 여행이 가능했어요. 두브로브니크로 넘어가서 구경하다가 막차로 자그레브로 가면 다음날 아침 7시 도착. 도착하자마자 플리트비체행 버스를 타고 플리트비체를 보고 다시 자그레브로 돌아와 자그레브를 조금 보고 나서 부다페스트로 야간 이동하는 방법이 있었어요. (크로아티아 버스 시간표 검색 : http://www.akz.hr/default.aspx?id=261) 두브로브니크야 워낙 유명한 관광지였으니 일요일에 문을 연 환전소가 한 개는 있었을 거에요. 아니면 ATM에서 돈을 뽑던가요. 물론 이 방법은 정말 강인한 체력을 요구하는 방법이기는 해요. 이틀간 미친 듯 걸을 자신이 없으면 섣불리 시도하지 않는 게 좋은 방법.


크로아티아 일정을 통해 크게 깨우쳤어요. 정말 '이렇게 하면 여행 단번에 망칠 수 있다'를 몸소 깨우치게 되었어요.


1. 일요일은 반드시 쉬거나 하루 종일 이동을 할 것.

-> 이게 가장 중요한 것이었어요. 특히 유로를 사용하지 않는 지역에서 이건 매우 중요해요. 현지화가 없으면 돈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거든요. 일요일은 가게가 거의 다 닫아버리기 때문에 아무리 강행군을 하더라도 휴식 및 정비일로 잡거나 정말 엄청난 거리 이동으로 하루를 날려버리는 것이 좋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아니면 대자연을 보러 가거나요.


2. 해외 사용 가능한 카드 한 장은 반드시 챙길 것.

-> 후배가 해외 ATM에서 현금 인출 가능한 체크 카드가 있었기에 망정이었지 아니었으면 스플리트에서 갇힐 뻔 했어요.


3. 절대 여행 일정에 욕심 부리지 않기

-> 아무리 강행군을 한다 하고 대충 본다 하더라도 하루 1개 도시를 넘어가면 일정 자체가 엉망진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프리슈티나-스코페는 정말 특수한 경우.


솔직히 환전 문제가 아니었다면 보다 좋은 일정을 보냈을 거에요. 하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환전 문제가 쫓아다녔고, 이 문제 때문에 계속 골치 아픈 일과 맞닥뜨리고 일정이 꼬이게 되는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환전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일요일이라는 사실을 까먹고 평일에 시도해도 될까 말까한 무리한 일정을 밀어붙였다는 것이었어요. 일요일에는 모든 가게가 쉰다는 것만 충분히 염두하고 갔다면 첫 선택을 무조건 두브로브니크로 했을 테고, 그랬다면 이런 최악의 참사는 피했을 거에요. 준비 부족과 정보 부족이 만든 참사였기 때문에 제가 뭐라고 변명할 거리도 없어요. 이건 전적으로 저의 무지와 준비 부족이 빚어낸 대참사.


크로아티아에서 정말 호되게 당해서 이제부터는 반드시 일요일 일정은 잘 생각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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