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복습의 시간 (2016)

복습의 시간 - 02 정신 놓고 인천국제공항 가기

좀좀이 2016. 6. 26.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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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판은 어지간하면 넣지 않을 생각이었어요. 볼거리가 있기는 했지만 그렇게 크게 끌리지 않는 곳이었거든요. 투르판을 집어넣은 결정적 이유는 A의 강력한 주장 때문이었어요. 그리고 그 주장의 근거는 38시간 이동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도중에 한 번 내려서 쉬었다 가자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그 투르판이 제대로 문제덩어리였어요. 지도를 뒤져보니 기차역은 투르판 시내에서 40km 넘게 떨어져 있었어요. 친구가 제가 지도에서 찾은 그 역이 아니라 투르판 북역이라고 알려주었지만, 그 투르판 북역도 시내에서 17km 떨어져 있었어요. 친구는 17km 정도면 주변 풍경 감상하며 걸어가면 된다고 했어요. 저와 A가 예전에 서울에서 일산까지 걸어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 정도 거리라고 했어요.


그때는 우리가 짐이 없었지.


17km 걷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에요. 밤에 하천 산책로를 따라 산책하듯이 걷는 것이라면 걸을 수 있는 거리에요. 그러나 뜨거운 백주대낮에 걷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져요. 그것도 부족해서 짐까지 짊어지고 걸어야 해요. 이건 아주 그냥 과거 당나라 현장 스님의 인도 방문 체험판. 저 혼자 걷는 것도 힘든데 A 는 절대 걸을 수 없는 거리였어요. 보나마나 10km 도 못 가서 배고프다고 징징대고, 목마르다고 징징대고, 덥다고 징징대고, 힘들다고 징징댈 것이었어요. 이 친구와 한두 해 알고 지내는 사이도 아니고, 같이 걸어다녀보기를 일,이백 미터 해본 사이도 아니에요. 뙤약볕 아래에서 짐을 짊어지고 17km 가려면 물도 2L 는 챙겨야 하는데, 이건 그냥 웃으며 할 일이 절대 아니었어요. 게다가 시내 갔다가 그 거리를 또 걸어나오든가 한 푼이 아쉬운 위안화를 써가며 차타고 나가든가 해야하는 문제가 덤으로 있었어요. 즉, 투르판 북역에서 시내까지 거리는 17km. 실제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거리는 왕복이므로 34km. 17km 는 어찌 해보겠지만, 34km 는 절대 무리였어요. 이건 걷는 것만 10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


저 34km 는 사실상 해결할 방법이 없어 보였어요. 여유롭게 왕복 30위안 내어가며 올 돈이 없었어요.


투르판은 완벽한 패착이다. 이건 이번 여행의 저주고, 이번 여행의 지옥이다.


투르판 시내를 어찌 간다 해도, 이번에는 투르판에서 볼 것이 죄다 투르판 외곽에 있었어요. 당연히 입장료도 있었구요. 이건 말 그대로 돈 잡아먹는 바퀴벌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어요. 결론은 하나였어요.


투르판을 가지만, 투르판을 포기한다.


친구가 투르판에서 보고 싶다는 것은 포도밭. 오직 그것 뿐이었어요. 이 말을 듣고 진심 허무했어요. 그 전까지는 친구가 투르판을 꼭 가보고 싶어하는 이유가 한 개 쯤은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어떻게든 투르판 일정을 살려보려고 노력했어요. 그렇지만 제가 아무리 인터넷을 뒤져본다 해서 없던 0.5위안짜리 시내 가는 버스가 생기는 것도 아니었고, 갑자기 관람료가 폐지되는 것도 아니었어요. 결국 투르판을 포기해야만 한다고 결론을 내리고 친구에게 힘들게 설명했는데, 친구가 거기서 보고 싶어한 것은 고작 포도밭 뿐이었어요.


여행 경로는 다시 바뀌었어요.


상하이 - 투르판 - 우루무치 - 카슈가르 - 호탄 - 쿠처 - 시안 - 상해


큰 틀은 같지만, 투르판 북역 근처에서 적당히 서너 시간 돌아다니다 역으로 돌아가기로 했어요. 그냥 장시간 기차 타면 지루하니, 잠깐 바람 좀 쐬는 느낌으로 나갔다 오기로 했어요.


그리고 또 알아보았어요. 호탄까지 들어갔다 나오는 것이 문제였어요. 호탄은 신장-위구르 지역의 최변방이라 해도 되는 곳. 상하이를 기준으로 멀기는 카슈가르가 가장 멀어요. 그러나 카슈가르는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으로 이어지는 교통의 요지. 그에 비해 호탄은 카슈가르에서 남동쪽으로 한참 내려가야 했고, 호탄에서 남쪽으로 조금 더 내려가면 시짱 - 즉 티베트였어요. 국경도시도 아니었구요. 그야말로 외지라서 여기를 다녀오기 위해서는 시간, 돈 모두 많이 들었어요. 게다가 친구가 계속 카슈가르, 호탄 둘 다 가야하냐고 물어보고 있었어요.


호탄도 버린다.


이제 여행 경로는 '상하이 - 투르판 - 우루무치 - 카슈가르 - 쿠처 - 시안 - 상해'가 되었어요.


"우리 둔황 가면 안 돼?"


A가 메시지를 보내왔어요.


이건 무시할 수가 없었어요. 누구가와 같이 가는 여행 일정 및 계획을 혼자 다 짜는 것은 최악이에요. 설령 내가 100만점, 하느님, 부처님, 알라가 와도 따봉 날리며 페이스북에 좋아요 십억 개씩 찍어줄 계획이라 해도 혼자 짜면 결국 해피 엔딩을 볼 수 없어요. 이유는 간단해요. 상대방이 그 계획이 왜 최선이었는지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결국 불만이 나오게 되고, 그 불만이 동네방네 퍼지면 여행 계획 짠 사람만 나쁜 놈 되거든요.


여행의 만족도를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상대를 믿든 말든 중요하지 않아요. 어쨌든 상대도 일정 부분 계획하게 하고, 상대의 요구가 타당한 것이든 아니든 간에 어느 정도 들어주는 것이 핵심이에요. 이 여행을 A와 즐겁고 성공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A의 요구도 반영해야 했어요. A가 가보고 싶다던 란저우는 시간 및 예산 문제로 빼버렸어요. 지금까지 모두 제 의견만 반영된 여행계획이었어요. 그나마 있던 투르판조차 여행 경비 문제 때문에 이름만 있지 사실상 통편집 당했어요. A가 동네방네 저에 대해 나쁘게 말할 친구는 아니었지만, 여행 계획에 A의 요구가 제대로 반영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점은 분명 문제였어요.


둔황이 어떤 곳인지 알아보았어요. 의외로 괜찮은 곳이었어요. 막고굴, 반월담 모두 시내버스로 갈 수 있는 곳이었어요. 신장-위구르 지역 여행에서 문제가 된 것은 비용 - 정확히 말하자면 입장료도 비싼데, 거기까지 가는 교통비도 비싸다는 점이었어요. 막고굴, 반월담 관람료는 저렴하지 않았지만, 시내버스로 갈 수 있는 곳들이다보니 교통비는 상당히 저렴했어요.


이제 해결해야 하는 부분은 바로 일정. 둔황을 집어넣는 것까지는 좋은데, 하루에 막고굴, 반월담 둘 다 보는 것은 무리였어요. 방문에만 의미를 둔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지만, 사진 찍기 좋아하는 A와 같이 가면 분명히 남들보다 시간이 더 걸릴 것이었어요. 게다가 A가 원하는 것은 누구나 상상하는 전형적인 배낭여행. 길 가다 맛있는 길거리 음식 보이면 먹어보기도 하고, 신기한 것 있으면 구경도 하는 그런 자유로운 영혼 같은 여행이었어요. 정보도 없는데 그런 여행을 하려면 시간이 상당히 필요했어요. 하루에 막고굴, 반월담 둘 다 보려면 A에게 빨리 가자고 계속 재촉해야할 것이 뻔했어요.


이제 쿠처도 포기한다!


천산신비대협곡을 포기하는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여기는 비용이 많이 드는 곳이었어요. 게다가 이동 문제도 걸려 있는 곳이었어요. 위구르족의 큰 도시 중 하나인 쿠처까지 포기하는 것이 매우 아쉽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여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둔황을 갈 수 없었거든요. 머리속에서 비용을 계산해보니 둔황을 가고 쿠처를 포기하면 여행 경비에 어느 정도 숨통이 트였어요. 그래서 여행 경로를 또 바꾸었어요.


상해 - 투르판 - 우루무치 - 카슈가르 - 둔황 - 시안 - 상해


원래 계획과 상당히 달라져가고 있었어요. 여행 계획은 친구와 상의하고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아볼 때마다 계속 달라지고 있었어요. 이제 어떻게 여행 계획을 계속 바꾸어갔는지조차 햇갈릴 지경이었어요. 친구와 일단 저기까지 정하고 상하이 가서 일정을 제대로 짜기로 했어요. 중국 열차 시각 및 소요 시간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정확히 계획을 짤 수가 없었거든요.


여행 계획을 확정한 후, 총 경비에 대해 생각해 보았어요. 여행 경비가 과연 2800위안으로 될 지 의문이었어요. 아무리 여행 경로에 손을 대어서 지출을 많이 줄이기는 했지만, 아직도 여유가 전혀 없기는 마찬가지였어요. 돈이 얼마나 더 필요할지 계산해 보았어요. 하루에 200 위안씩 든다고 계산하면 얼추 될 것 같았어요. 친구는 계속 2800위안이면 충분하다고 했지만, 과연 가능할지 계속 의문이었어요.


'1000위안만 더 환전하자.'


1000위안만 더 환전하면 3800 위안. 20일이니까 하루 190위안씩 쓸 수 있어요. 하루 평균으로 해서 숙박비 및 도시 이동 비용으로 70위안씩 든다고 하면 120위안이 남아요. 120위안씩 남는다면 어찌되든 여행을 할 수 있는 액수였어요. 입장료 내어가며 이것저것 다 들어가지만 않는다면 그리 문제가 발생할 액수는 아니었어요. 일단 아낄만큼 아끼다가 둔황, 시안 가서 돈을 쓰면 만족스럽게 여행을 할 수 있는 액수였어요.


5월 26일 오후. 우리은행으로 환전하러 갔어요. 1000위안을 환전했더니 약간의 환율 우대를 받아서 1위안에 186원으로 해서 환전했어요. 왜 사람들이 명동에 가서 환전하러 하는지 알 수 있었어요. 1위안에 6원 차이가 났기 때문에, 3천 위안이면 벌써 18000원 차이였어요. 이 정도면 명동 가서 환전해 오는 것이 훨씬 이득이었어요. 18000원이면 위안화로 100위안. 친구 말에 의하면 100위안은 중국에서 세 끼 식사를 잘 할 수 있는 돈이었어요.


환전을 하고 나서 약국에 가서 바르는 모기약, 피부 연고, 밴드를 구입하고, 이발을 한 후, 다시 집으로 돌아왔어요.


'이번에는 인천공항 가서 밤을 샐 필요가 있을까?'


이번에 타고 갈 비행기는 아시아나 항공으로, 아침 10시 50분 비행기였어요. 아침 7시 전에 집에서 나오면 인천공항까지 충분히 갈 수 있었어요. 문제는 새벽에 일어나야 한다는 것. 제가 절대 하지 않는 약속은 바로 아침 일찍 만나는 약속. 아침 일찍 일이 있다면 그냥 밤을 새버려요. 세상에는 노력으로 극복이 가능한 일이 있고, 노력으로 극복될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극복되지 않는 일이 있어요. 올빼미형 인간이 된다는 것은 제게 있어서 사필귀정. 아무리 힘들게 아침형 인간으로 탈바꿈해도 단 한 번 까딱 잘못하면 다시 야간형 인간으로 되돌아가 버리기 일쑤. 아침 10시 50분 비행기라면 굳이 공항에서 잘 필요가 없었지만 바로 옆에서 깨워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 공항에서 밤을 새기로 했어요.


인터넷으로 신장-위구르 지역 정보들을 찾아보는데 정보가 참 없었어요. 검색 중 매우 중요한 정보 하나를 찾아내었어요. 중국은 인터넷 통제가 엄청나게 심한 국가. 별 시덥잖은 것도 차단시켜버리는 우리나라와 달리, 여기는 차단이 아니라 봉쇄 수준. 인터넷 세계에서 중국은 흥선대원군의 쇄국 정책 뺨칠 정도. 아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중국은 혼자 인트라넷 쓴다고 해도 될 지경이었어요. 중국에서 네이버 라인도 안 되고, 구글도 안 되고, 카카오톡도 되기는 하는데 간간이 차단될 때가 있다는 것은 지인들 때문에 잘 알고 있었어요. 이러다보니 중국에 갈 때 vpn 프로그램을 스마트폰과 컴퓨터에 설치해 가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어요. vpn 프로그램을 제 스마트폰에만 설치한 후, 또 다른 정보가 있나 알아보다보니 저녁 7시가 넘었어요.


샤워하고 비자와 비행기표를 찾으러 가려는데 친구가 보이스톡을 걸어왔어요.


"너 비자 받았어?"

"비자 나왔대. 이제 찾으러 가려구."


별로 중요한 이야기는 없었지만, 전화통화를 하다보니 8시 10분이 되었어요. 친구에게 이제 나가야하니 끊자고 하고 의정부역으로 가서 전철을 타고 녹양역에 있는 힐링하우스로 가서 비자와 비행기표를 받아왔어요.


"아, 사진!"


녹양역에서 의정부역으로 돌아가는 전철에 타서야 힐링하우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을 까먹었다는 것이 떠올랐어요. 그곳 사진은 찍어올 필요가 있었어요. 왜냐하면 그 카페 사진 외에는 비자 발급 과정 이야기에 들어갈 사진이 단 한 장도 없었거든요. 중국 비자를 중국 대사관 가서 직접 받은 것이 아니니 중국 대사관 사진을 올릴 수 없었어요. 그렇다고 여권과 비자 사진을 올릴 수도 없었어요. 비자 및 여권에는 개인 정보가 담겨 있거든요. 녹양역 사진조차 제대로 찍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녹양역으로 돌아가 힐링하우스 사진을 찍을 수도 없었어요. 인천공항에서 밤을 새기 위해서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빨리 짐을 들고 공항으로 가야 했거든요.


밤 9시. 집에 도착했어요. 인천공항에서 밤을 새고 비행기를 타는 것은 이번이 세 번째. 지난 두 번의 경험을 통해 이제 인천공항에서 밤새는 것에는 나름 요령이 생겼어요.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는 돈이 없다는 것. 이번 달 생활비를 거의 다 털어써버리고 환전해버렸기 때문에 원화가 없었어요. 무조건 돈을 아껴야했어요. 여행에서 돌아와서 인천공항에서 의정부까지 걸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어요. 수중에 얼마나 원화가 부족했냐 하면, 인천공항에서 햄버거 하나 사 먹는 것이 엄청나게 비싼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아침, 점심, 저녁 세 끼 다 먹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어요.


앞선 두 차례의 경험을 통해 인천공항의 아침은 상당히 괴롭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공항에서 잠을 자기는 하지만 선잠으로 자고, 혼자서 밤을 샐 경우 짐을 항상 끌고 다녀야 해요. 잠은 제대로 못 잔 상태에서 아침이 오면 뭔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미치도록 들어요. 저녁 먹은 것은 소화가 다 되어서 무언가 먹고 싶은데 불편하게 밤을 지새운 것이다보니 이성이 본능을 제대로 억제하지 못해요. 기내식 먹을 때까지 참을 수가 없어요.


뭐가 어쨌든 돈을 아껴야 한다.


인천공항에는 음수대가 있어요. 갈증은 인천공항 음수대에서 물을 마시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어요. 여기까지는 좋아요. 그런데 문제는 허기. 허기는 물로 지울 수가 없어요. 허기를 지우기 위해 물을 마셔봐야 뱃속이 맑아지며 청아하게 배고파질 뿐이에요. 그냥 배고프냐, 청아하게 배고프냐의 차이일 뿐, 물로 허기를 없앨 수는 없어요. 그리고 바로 이 허기가 인천공항에서 밤을 샐 때 쓸 데 없는 지출을 늘리는 원인이에요. 공항 이용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에요. 공항에서 환전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고, 공항에서 파는 음식은 맛이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은행에서 인천공항에 환전소를 설치해 운영하고, 공항 안에 식당이 여러 개 있는 이유는 바로 하필 공항에서 한계에 다다른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에요.


허기와의 싸움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10시 50분 비행기이니 기내식은 아마 11시 30분 쯤 나오겠지? 현재 시각 밤 9시. 이론적으로 14시간 30분만 참으면 돼. 수속을 밟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그쪽에 정신이 팔려 허기를 잘 느끼지 못하니 실질적으로 참아야하는 시각은 그보다 짧아. 문제는 바로 마의 시간인 아침 5시부터 8시까지 어떻게 버티는가야. 아침 5시부터 공항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하면서 잠을 자기 어려워진다. 그리고 이때부터 허기는 극한으로 치달아간다. 아침 7시쯤 되면 먹고 싶다는 본능이 돈을 아껴야한다는 이성을 짓밟아버려. 즉 아침 8시까지 어떻게든 안 먹고 버텨내야 해.


라면을 뱃속에 꾸겨넣는다.


문제의 해결 방법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어요. 아침 9시까지 배고픔을 느끼지 않도록 라면을 최대한 많이 뱃속에 꾸겨넣는 것이었어요. 국물이 있는 라면은 안 되요. 순간적으로는 양이 많지만 국물은 위를 빠르게 통과해버려요. 다음날 아침까지 뱃속에 남아 있을 건더기를 뱃속에 우겨넣는 게 중요하지, 순간의 포만감은 중요하지 않아요. 방을 둘러보니 비빔 라면이 눈에 들어왔어요.


냄비에 물을 받아 가스레인지 위에 올리고 끓이기 시작했어요. 비빔 라면은 국물이 없으므로 뱃속에 건더기를 최대한 우겨넣을 수 있었어요. 고통은 한순간이나, 그 고통은 포만감. 이 고통이 사라질 때 쯤 나는 못해도 보안 검색대 앞에 서 있겠지. 그러면 몇 개를 끓여야할까?


냄비에 비빔 라면 4개를 집어넣었어요.


유통기한 지난 라면을 해치우기 위해 비빔 라면 3개를 한 번에 먹어치운 적은 있었어요. 보통 제가 먹는 라면은 한 번에 2개. 3개 먹는 일조차 급히 집에 있는 라면을 전부 해치워야할 때 아니면 없어요. 양이 적은 비빔라면이라 해도 4개를 한 번에 먹는 것은 상당히 부담되는 일이었어요. 그렇기에 지금 이 상황에서 해야만 하는 일이었어요. 그렇게 부담이 되어서 아침까지 소화가 잘 안 되어 있어야 공항에서 무언가를 사먹는다고 돈을 쓰지 않을 수 있었거든요.


절반까지는 그냥 먹을만했어요. 4개 끓여서 절반이면 2개. 이건 항상 먹던 양이었어요. 아직 아무 느낌 없었어요. 절반을 넘어가는 순간 배에 쑤셔넣는 기분이었어요. 뜨겁지 않아서 원하는 만큼 듬뿍 면을 입에 물고 삼킬 수 있었어요. 분명히 줄어드는 양이 선명하게 보였어요. 뚜렷이 줄어가고 있기는 한데, 여행을 갈 광활한 신장-위구르 자치구역처럼 남아 있는 라면 양도 엄청났어요. 마지막에는 그냥 목구멍으로 밀어집어넣었어요. 비빔 라면 4개를 끓여서 한 번에 다 먹으니 제가 인간인지, 사료가 쑤셔넣어진 푸아그라용 거위인지 아리까리했어요. 식욕은 쓰레기통에 버린 라면 봉지와 함께 버려졌어요. 뭐든 먹기가 싫은 상태가 되었어요.


설거지를 후다닥 끝내고 의정부역으로 갔어요.


의정부 야경


밤 9시 50분. 의정부역에서 서울로 가는 지하철 1호선에 탑승했어요.



지하철을 탄 후, 자리에 앉아 카메라를 켜보았어요.


"이거 사진 찍을 수 있는 수가 왜 이리 적지?"


메모리 카드 안에 사진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촬영 가능 매수가 너무 적어서 메모리 카드를 꺼내보았어요.


"메모리 카드 바꿔오는 거 깜빡 했다!"


원래 컴팩트 디카에는 2GB, 하이엔드 디카에는 8GB 메모리 카드를 끼워서 사용하고 있었어요. 이 두 개가 뒤바뀐 이유는 8기가 메모리 카드에 여행 사진들이 들어 있었는데 백업 차원으로 방치하고 있었고, 서울에 있는 절을 하나씩 가볼 때 사진을 찍기 위해 컴팩트 디카에 있던 메모리를 하이엔드 디카로 옮겨 찍고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원래 이발하고 돌아와서 메모리카드를 바꾸어 끼울 생각이었는데 까맣게 까먹고 있던 것이었어요.


그 순간, 왼쪽 가슴이 묵직하다고 느껴졌어요. 묵직한 무언가가 외투 왼쪽 안주머니에 있었어요. 지갑을 꺼내보았어요. 여행에 필요없는 카드들이 지갑에 전부 그대로 들어있었어요. 지갑에서 여행에 필요없는 것을 빼고 나온다는 것 또한 깜빡 잊어버렸어요. 이제 지하철을 내려서 다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없었어요. 제 지갑 속에 있던 모든 것들이 저와 중국 여행을 함께 할 것이었어요.


서울역까지 무난하게 잘 도착했어요.


"이제 서울역을 가로질러서 환승하러 가야지."


서울역 환승


서울역에서 공항철도 환승하는 것은 한두 번 해본 일이 아니었어요. 서울역으로 들어가서 서울역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걸어간 후, 제일 끝쪽에 있는 공항철도 입구를 통과해 지하로 한참 내려야가 했어요. 서울역에서 공항철도 환승하는 것에 긴장할 필요는 전혀 없었기 때문에 표지판을 따라 쭐쭐쭐 걸어갔어요. 예전과 다르게 지하에서 조금 돌아가라고 되어 있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어요. 그냥 여기서 무슨 공사해서 그런가보다 했어요.



"뭐지?"


환승 경로가 바뀌어 있었어요. 이제 서울역으로 아예 나가지 않고 지하로 계속 걸어가도 환승할 수 있게 되었어요. 작년 이맘때 동남아시아에 갈 때만 해도 분명히 서울역을 관통해야 했는데, 1년 사이에 바뀌어 있었어요. 서울역을 관통해서 걸어야 한다는 점은 변한 게 없었어요. 그러나 서울역에 들어가는 것과 들어가지 않는 것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었어요.



공항철도를 타서 자리에 앉자 잠이 슬슬 밀려오기 시작했어요. 이것은 식곤증이었어요. 언젠가부터 밥을 먹으면 잠이 밀려오기 시작했어요. 이날도 마찬가지였어요. 아니, 이날은 더욱 심했어요. 한방에 폭식을 해버렸으니 밀려오는 잠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 이 지하철의 종점은 인천공항. 게다가 거의 막차였어요. 마음놓고 자도 종점인 인천공항 가면 내리라고 깨울 것이었어요. 게다가 여기는 한국. 지하철에서 잠을 자는 것이 위험한 나라는 아니에요. 밀려오는 잠에 몸을 맡겼어요. 지하철은 인천 공항을 향해 쭉쭉 달려나가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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