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복습의 시간 (2016)

복습의 시간 - 01 너덜너덜 누더기 중국 여행 계획

좀좀이 2016. 6. 23. 07:15
728x90

"티벳 안 가. 위구르라면 몰라도."


티베트는 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티베트인 시짱은 원래 궁금한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들의 삶이 궁금하지도 않았고, 신기해보이지도 않았어요. 만약 제가 티베트를 간다면 그 이유는 고지대에 가기 때문인데, 그런 경험이라면 비록 지진의 위험이 있기는 했지만 네팔도 있었어요. 그렇다고 해서 티베트인들의 삶과 문화, 언어에 큰 흥미를 느끼는 것도 아니었어요. 누가 공짜로 보내준다고 하면 가겠지만, 제 돈 들여서 가고 싶은 나라는 절대 아니었어요.


신장-위구르 자치지역이라면 살짝 가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어요. 신장-위구르 지역만 간다면 실크로드 완주. 단순히 실크로드 완주 정도가 아니라 유라시아 대륙 횡단이었어요. 대서양에서 광활한 태평양까지 쭉 달리는 것이었어요. 약간 욕심이 나기는 하는 코스. 그러나 '중국'이라는 점 때문에 신장-위구르 지역으로의 여행을 결단내리지 않았어요. 사실 실크로드, 유라시아 횡단에 대한 로망이 있어서 그렇게 여행한 것이 아니었어요. 그냥 어찌어찌 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었어요. 실크로드, 유라시아 대륙 횡단이 원래 목표가 아니라, 여행을 하나하나 해나가다보니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었어요. 전혀 의도했던 것이 아니었어요. 이러다보니 실크로드 때문에 중국에 간다는 것은 그 어떤 동기유발이 되지 않았어요.


올해 말레이시아를 다녀온 후, 여권을 새로 발급받았어요. 여권 유효기간이 올해 8월까지라서 재발급받아야 했거든요. 원래는 올해 여행을 또 갈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여권을 발급받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다 4월이 되어서야 의정부에서 여권을 재발급받았어요. 이제 저도 구여권이 아니라 전자여권을 보유하게 되었어요. 이 새 여권을 가지고 간 외국은 아직 하나도 없었어요. 이 새 여권의 첫 장에 중국 비자를 붙이고 중국 입국 도장을 찍고 싶지는 않았어요.


게다가 모든 관심은 미얀마, 방글라데시, 이란에 가 있었어요. 이 세 나라 중 한 나라를 가보고 싶었어요. 여행금지국가를 제외하고 당장 가보고 싶은 나라는 이 세 나라인데, 언제 갈지 망설이고 있었어요. 만약 여행을 간다면 미얀마와 방글라데시를 묶어서 가든가, 아니면 이란만 다녀오고 싶은데, 이러면 여행 기간 및 경비가 상당히 많이 들 것이었어요. 이 나라들은 관심을 가진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제가 알고 있는 것도 거의 없었구요.


"위구르 갈까?"


친구가 위구르 같이 가겠냐고 물어보았어요.


"되었다."


위구르를 가볼 생각을 아예 안 해 본 것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위구르 지역에 가기 위해서는 비행기표 가격이 장난아니었어요. 비행기를 타고 위구르 지역에 가기 위해서는 우루무치나 카슈가르로 가야 했어요. 여기 가는 비용이면 동남아시아도 비행기를 타고 다녀올 수 있었어요. 요즘은 에어아시아 등 동남아시아를 가는 저가항공사가 많아져서 동남아시아 가는 비용이 많이 줄어들었거든요. 기간만 잘 맞추면 우루무치, 카슈가르 가는 항공권 가격보다 훨씬 저렴하게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다녀올 수 있었어요. 지난 1월 말레이시아 여행은 쿠알라룸푸르 구경도 제대로 못했어요. 비싼 돈 내고 비좁은 비행기 이코노미 클래스 좌석에 낑겨 앉아서 가며 힘들게 위구르 지역 돌아볼 바에는 널찍한 에어버스 좌석에 앉아 말레이시아를 다시 다녀오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어요.


며칠 후. 친구와 다시 이야기를 하는데 친구가 또 여행을 같이 가자고 했어요.


"위구르 가려면 비싸. 비행기 타고 가야할 거 아니야."

"아니, 상하이에서 기차 타고 가면 싸."


상하이에서 기차?


친구가 상하이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상하이로 가서 기차를 타고 우루무치까지 가는 방법이 있었어요. 기차로 가면 어쨌든 비행기로 가는 것보다는 많이 저렴할 것이었어요. 한국에서 상하이 가는 것은 비행기가 많기 때문에 저렴한 비행기표가 많았어요. 한국에서 우루무치 가는 비행기표 가격은 한국에서 상하이 가는 비행기표보다 훨씬 비쌌어요. 만약 상하이에서 우루무치까지 기차로 간다면 여행 경비를 크게 줄일 수 있었어요.


"그래도 거기 경비 많이 들지 않을까?"

"2000 위안이면 얼추 될 걸?"

"2000위안? 1위안이 얼마인데?"


중국에 대해 진짜로 관심을 하나도 주지 않았기 때문에 1위안이 얼마인지 아예 몰랐어요. 인터넷으로 환율을 조회해 보았어요.


1위안은 약 180원.


그냥 편하게 1위안을 200원 잡고, 여기에서 조금 액수를 깎으면 계산이 얼추 맞게 생겼어요. 2천 위안이면 곱하기 180 해서 36만원. 항공권이 정확히 얼마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여행 경비가 2천 위안이라면 상당히 저렴한 가격이었어요. 여행 기간은 2주일. 가격을 보자 마음이 또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미얀마든 이란이든 절대 100만원 안으로 다녀올 수는 없었어요. 미얀마에 관심이 생겨서 여행 정보를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여기도 여행 경비를 무시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어요. 미얀마 역시 작은 나라가 아니었어요. 온갖 입장료 같은 것을 다 계산해보고 항공권을 계산해보면 이게 100만은 들 것이었어요. 이란은 비행기표가 거의 100만원. 태국, 베트남 같은 곳이라면 2주일 여행하더라도 100만원 안으로 끊을 수 있겠지만 미얀마, 이란, 방글라데시는 한 도시에서 죽치고 있을 것 아니라면 100만원으로는 무리였어요.


돈 때문에 여행이 끌리는 이 상황. 그러나 계속 망설여졌어요.


갈까? 말까?


계속 고민하기는 했지만 매번 내리는 결론은 '안 간다'였어요.


2016년 5월 24일. 혼자서 안산시에 있는 고려인 마을로 찾아가는 길이었어요.


가야겠다.


안산으로 가는 지하철 4호선 안에서 갑자기 생각이 바뀌었어요. 이유는 없었어요. 그냥 창밖을 보고 있는데 생각이 바뀌었어요. 위구르 여행을 다녀오기 위해서는 시간이 많이 필요했어요. 언제까지고 이렇게 백수로 살고 있을 리는 없었어요. 일을 시작하면 길게 여행을 다녀올 수 없었어요. 장기간 여행을 다녀오기 위해서는 지금이 적기. 미얀마, 방글라데시, 이란은 지금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돈이 부족했고, 이제 곧 여름이었어요. 돈도 많지 않았어요. 최대한 쥐어짜야 100만원이었어요.


순간적으로 생각을 바꾸고는 바로 친구에게 연락을 했어요.


"야, 너 언제 올 수 있어? 5월 30일 정도면 좋은데..."나 이번주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여행 다녀올 거니까 네가 일요일에 오면 딱인데..."

"일요일?"

"너가 금요일에 오면 여행 취소하고 너랑 여행다니구."

"그래?"


이렇게 된 거 빨리 다녀와야겠다!


"금요일에 올래?"

"나 비자 받아야해."

"너 여권 있지?"

"여권은 있지."

"그럼 오늘 빨리 신청해."

"나 지금 안산 가고 있어."

"그러면 내일 바로 신청해."


안산 가는 전철에서 바로 뛰어내려 의정부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친한 동생이 의정부 녹양역에 있는 '힐링하우스'라는 카페에서 중국 복수 비자를 신청해서 받았다고 알려주었어요. 친한 동생 말로는 그 카페 사장님께서 여행사도 같이 하고 있어서 그 카페에 여권을 맡기면 중국 비자를 받을 수 있다고 했어요. 녹양역은 의정부역에서 지하철 1호선 상행선을 타고 2정거장. 동생에게 물어보니 전화번호를 알려주었어요.


"힐링하우스죠? 중국 비자 신청하고 싶은데 오늘 몇 시까지 하나요?"

"12시까지 해요."

"그러면 그 전까지 여권 가져다드리면 내일 여권 대사관에 들어가나요?"

"예."


이때부터 모든 생각은 오늘 최대한 빨리 녹양역 힐링하우스로 가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어요. 기껏 힘들게 위치를 추적해 안산시 고려인 마을까지 갔어요. 저의 목표였던 고려인 식당은 문이 닫혀 있었어요. 그러나 기분이 하나도 나쁘지 않았어요. 안산까지 기어내려온 것이 허무했지만, 대신 국시 먹는 시간을 아낄 수 있었거든요. 녹양역에 도착하는 시간이 그만큼 빨라지는 것이었어요.


의정부로 돌아가는 지하철을 타고 위구르 지역 여행에 대해 알아보았어요. 2주일. 과연 위구르 지역을 둘러보기에 충분한 시간일까? 여행갈 거라 생각하고 위구르 지역 정보에 대해 읽어보자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지금까지 위구르 지역에 대해서는 그냥 우루무치, 카슈가르, 호탄만 보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도시 세 개 보는 것이니 얼마 안 걸리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여행을 가기 위해 제대로 계산하며 읽어보니 2주일로는 빠듯할 것 같았어요. 더욱이 이게 상하이에서 기차로 우루무치까지 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더욱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이러다가는 진짜 보는 것 없이 기차만 타고 돌아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행 일정을 너무 짧게 잡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어요. 여기에서 여해 일정이 짧다는 것은 3,4일 정도가 아니라 일주일 정도를 말하는 것이에요. 도시 3개 보고 돌아오는 것인데 일주일로는 택도 없었어요. 일주일에 세 도시를 다 돌려면 반드시 비행기를 타야 했어요. 기차로는 절대 무리였어요.


도시 3개.


광활한 대륙.


이 둘이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했어요. 도시 3개를 둘러보는 데에 과연 2주일이나 필요할까 하는 생각, 그리고 광활한 중국 대륙을 기차로 횡단 - 그것도 왕복으로 해야 하는 문제가 하나로 합쳐지지 않았어요. 지금까지의 여행에서 도시 3개를 보는 데에 일주일이면 충분했어요. 야간 이동을 네 번 한다고 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정이었어요. 그런데 이게 드넓은 중국땅 - 그것도 유독 넓은 신장-위구르 자치구역으로 들어가니 될 일이 아니었어요. 우루무치, 카슈가르, 호탄이라 하면 도시 3개에 불과해요. 그러나 이 도시들을 둘러본다는 것은 신장-위구르 자치구역을 최외곽으로 한 바퀴 돌아나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어요.


머리 속에서 절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두 가지였지만 어떻게든 일정을 대충 계산해 보았어요.


과연 2주일로 될까?


친구는 란저우를 들리고 싶다고 했어요. 이러면 도시가 4개. 상하이야 그냥 지나가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 하더라도 길 자체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어요. 게다가 친구 말로는 상하이 - 우루무치가 기차로 38시간이라고 했어요.


38시간!


저는 기차에 아무 로망이 없어요. 시베리아 횡단열차 따위는 1나노그램의 관심도 없어요. 기차라면 발칸 유럽 다닐 때 질리도록 탔어요. 우즈베키스탄 여행할 때에도 탔구요. 한국에서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대한 로망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야간 이동이라는 것 자체가 거의 없으니까요. 땅이 좁다보니 야간이동이 나오는 구간이라고는 기껏해야 서울-부산 정도. 며칠간 야간이동을 하며 여행을 할래야 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저는 야간 육로 이동이라면 이제 신물이 나게 많이 해 보았어요. '야간 육로 이동'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그건 토나올텐데'라는 생각부터 저절로 떠올라요.


38시간 기차는 타본 적이 없어요. 이것은 말이 좋아 이틀이지, 실상 3일 여정. 24시간을 빼도 다시 14시간이 남아요. 이 14시간 이동이 하루에 잘 끊어진다면 좋겠지만, 그러기는 상당히 어려워요. 예를 들어 저녁 8시에 기차를 타면 그 다음날 저녁 8시에 여전히 기차에 있고, 그로부터 하루 뒤 아침 10시가 되어서야 기차에서 내릴 수 있어요. 이것도 연착을 안 했다는 가정하에서의 이야기. 이러다보니 얼추 3일로 계산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저녁에 이동해서 아침에 도착하는데 왜 이틀이나 더 더해주어야 하냐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어요. 저녁까지 놀고, 다음날 아침에 내려서 점심부터 놀면 될 것 같으니까요. 물론 이론적으로 그렇기는 해요. 하지만 실제 해 보면 전날은 기차에서 밤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행동과 일정에 제약이 크게 생기고, 내려서는 숙소 들아가서 짐을 풀고 씻기부터 해야 해요. 더욱이 지금은 여름이니까요. 이러면 이래저래 날짜에서 크게 손해를 볼 수 밖에 없어요. 강행군을 해서 아주 억지로 일정을 짤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선진국으로 가는 여행이 아니었어요. 말도 잘 통하고 문화도 잘 알고 문제 발생시 어찌 대처해야하는지 매우 잘 아는 대한민국 여행에서도 여행 일정 짜놓은 것대로 완벽히 돌아가는 일이 없는데, 이것은 중국 여행. 게다가 이동경로도 길었어요. 이동 경로가 길다는 것은 예상대로 되지 않을 확률이 큰 의미를 가질 정도로 상승한다는 것을 의미해요.


지금까지의 여행 경험을 되짚어보니 2주일로는 조금 빠듯할 것 같았어요. 시간이 남는 것은 멍때리면 되지만, 시간이 부족하면 큰 문제였어요. 시간이 남는데 돈이 없어서 쫄쫄 굶는 것은 돌아와서 추억이 되지만, 시간이 없어서 포기한 것들은 돌아와서 후회가 되니까요. 다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어요. 만약 급행으로 받아서 금요일에 출국한다면? 5월 27일에 출국해서 6월 16일에 귀국한다면 3주. 3주일이라면 충분했어요. 여행 경비는 더 늘어나겠지만, 시간에 마구 쫓길 일은 없었어요.


"나 텐트랑 버너도 샀어. 여차하면 텐트 치고 자자."


이렇게 된 이상 금요일날 출국한다!


녹양역 도착하자마자 힐링하우스 카페로 갔어요. 중국 비자를 신청하러 왔다고 하자 이름과 폰 번호, 여권사진 1장 및 여권을 놓고 가면 이따 연락을 주겠다고 했어요. 이왕 온 김에 항공권까지 같이 하기 위해 여기에서 기다리면 사장님 뵐 수 있냐고 여쭈어보니 30분쯤 기다려야 한다고 했어요. 아주머니께서는 사장님꼐 연락을 드리고, 커피 한 잔 공짜로 줄 테니 아무 거나 하나 마시며 기다리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커피를 마시고, 카페에 무료로 먹으라고 비치되어 있던 과자 네 개를 집어먹었어요.


커피를 마시며 친구와 일정에 대해 상의해보았어요.


"우리 3주면 충분하겠지?"

"너 언제 올 수 있는데?"

"최대한 빨리 가려구. 그런데 3주는 되어야 제대로 볼 것 같아. 신장-위구르가 엄청 크더라."

"나는 괜찮아. 그래서 언제 올 건데?"

"기다려봐. 사장님 오셔야 비자 이야기를 하지."


잠시 후. 사장님께서 오셨어요.


"비자 가장 빠르게 하면 언제 할 수 있어요?"

"가장 빠르게 하면 1박2일도 가능해요. 대신 급행 수수료가 붙어요. 중국 비자 시스템은 단순해요. 기본 4박5일이고, 빨리 받고 싶으면 돈을 더 내라는 시스템이에요. 그런데 많이 급해요?"

"제 친구가 금요일에 여행 같이 가자고 해서요. 항공권도 같이 예약할 수 있죠?"

"당연히 되죠. 일정은 어떻게 되나요?"

"5월 27일부터 6월 16일이요. 3주 정도면 위구르 지역 다 볼 수 있겠죠?"

"충분하죠."

"그러면 비자는 언제 찾으러 오면 되나요?"

"목요일 오후 6시에서 8시쯤 오시면 되요."


여권을 맡기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나 중국 비자 신청했어!"


모두가 깜짝 놀랐어요.


"너 언제 출국해?"

"5월 27일부터 6월 16일까지 위구르."


제대로 된 계획이 아무 것도 없었어요. 그런데 여행은 이제 코앞이었어요. 5월 24일 밤. 위구르 지역 정보에 대해 검색을 해도 될까 말까할 때인데 고작 한다는 것이 친구들과 신장-위구르가 먹을 게 많은 곳이라고 '위꼴리스탄'에 간다는 농담이나 하는 것 뿐이었어요.


5월 25일. 여행 출발 D-2.


낮에 일어나서 무엇을 준비해야하나 생각해 보았어요.


"여기 와서 배낭 하나 사."

"무슨 배낭을 사. 그리고 나 캐리어 하나 들고 갈 거."

"캐리어 들고 다니면 다니기 불편할걸?"


친구가 계속 배낭을 짊어매고 캐리어는 웬만하면 들고오지 말라고 했어요. 친구가 왜 그러는지 짐작하고 있었어요. 친구는 이번에 텐트를 구입했어요. 이번에 같이 여행하면서 텐트를 치고 잠을 자보고 싶은 것이었어요. 캐리어가 있든 없든 여행할 때에는 큰 차이가 없어요. 숙소에 머무르지 않고 잠깐 들려서 구경하는 일정이 있거나 노숙할 때 외에는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것이나 그냥 배낭만 들쳐매고 다니는 것이나 비슷해요. 둘 다 숙소에 큰 짐은 던져놓고 나와서 돌아다니니까요. 즉, 여행을 다녀볼 만큼 다녀본 친구가 계속 캐리어 놓고 오라고 한다면 그 이유는 다른 데에 있다는 것이었어요. 일정상 잠깐 내려서 들려볼 일정이 없었거든요.


일단 기본 계획은 상하이에서 출발해 우루무치로 간 후, 카슈가르 (카스), 호탄을 보고 돌아오는 것이었어요. 처음 세운 일정은 '상해 - 우루무치 - 카슈가르 - 호탄 - 상해' 였어요.


친구는 란저우에 가보고 싶다고 했어요. 둔황도 가보고 싶다고 했어요. 둔황은 막고굴 보러 가는 것이고, 란저우는 뭐가 있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어쨌든 친구가 란저우도 가보고 싶다고 해서 '상해 - 우루무치 - 카슈가르 - 호탄 - 란저우 - 상해'로 바꾸었어요.


"너 시안은 안 가보고 싶어?"

"응. 시안은 전혀 생각 없어."

"나는 시안 가 봐서 너 싫다고 하면 괜찮구. 그런데 정말 가는 길에 있는 도시 하나도 안 봐도 되겠어?"

"응. 나는 오직 신장-위구르만 보고 싶어."


여기까지 정해놓고 환전을 하러 명동으로 갔어요. 위안화 환전은 명동이 매우 좋거든요.


명동을 가기 위해 먼저 의정부에서 전철을 타고 창동역으로 갔어요. 의정부에서 명동을 가기 위해서는 지하철 1호선 하행선을 타고 가다가 창동역에서 4호선으로 환승하는 것이 빠르거든요.


창동역에서 내렸을 때, 역사 내부에서 구내 방송이 나오고 있었어요.


"공항철도가 탈선했으니 승객 여러분들께서는 차질이 없으시기 바랍니다."


공항철도 탈선?


방송 내용인 즉, 공항철도가 탈선해서 공항철도가 단선으로 운행되고 있으니 운행 시간이 더 걸리고 있다는 내용이었어요. 공항철도 탈선 방송을 들으며 능숙하게 4호선으로 환승했어요. 별 생각 없이 지하철 4호선을 탔어요.


나는 왜 종점에 와 있는가?


분명 지상으로 달릴 지하철이 아닌데 지상으로 계속 달렸고, 결국 종점에 도착해 버렸어요. 창동에서 4호선 상행선 종점이 여러 정거장 들러야하는 곳이 아니라 다행이기는 했지만 기분좋은 출발은 아니었어요.



환전소가 몰려 있는 곳은 중국 대사관 앞 거리. 여기는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성지와 같은 곳.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모두 여기로 가서 환전을 하거든요. 여기서 위안화 환전을 많이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얼마나 환율이 좋은지는 잘 몰랐어요. 저는 그저 중국인들에게 명동 중국 대사관 앞으로 가라고 안내만 해줄 뿐이었으니까요. 제가 위안화를 환전할 일은 전혀 없었어요.


친구는 2천 위안이면 될 거라고 했지만, 그래도 부족한 것보다는 넉넉한 것이 나았어요. 대충 2800 위안이면 넉넉하겠다 싶었어요.



이날 환율은 1위안에 180원.



이것이 이때 제가 환전한 액수 및 적용 환율이에요. 1위안에 179.9원으로 해서 50만 3720원에 2800위안을 환전했어요. 이때까지 제가 얼마나 크게 이득을 보았는지까지는 몰랐어요. 그저 공시된 환율 기준가보다도 더 싸게 했다는 것에 명동 환전의 위엄을 느꼈을 뿐이었어요. 공시된 거래 기준가에 해주는 것만 해도 대단한 것인데, 여기는 그보다 낮았어요. 바로 앞 중국 대사관의 위엄처럼 그 대단함에 깜짝 놀랐어요.



환전소에서 나와서 혹시 신장-위구르 지역 가이드북이 있는지 보러 교보문고로 갔어요.



그런 게 있을 리 없었어요. 설령 전세계적으로 보았을 때 있다 하더라도 우리나라에 있을 리가 없었어요. 우리나라는 아직 세계경영을 할 수준이 아니니까요. 중국 가이드북은 많았으나 신장-위구르 지역을 다룬 책은 없었어요. 그냥 답이 없었어요. 그래서 우리나라 가이드북의 부모님인 일본의 가이드북을 찾아보았어요. 일본에서 나온 중국 여행 가이드북 중에 위구르 지역 일부가 나와 있는 책이 있었어요. 이거라도 살까 했지만 지도도 제대로 없고 설명도 매우 부실했어요. 이 정도라면 우리나라 지하철역에 붙어있는 주변 안내도만한 수준. 그러나 이것 밖에 없다고 일본을 비웃을 수는 없어요. 이거라도 있는 일본과 이거조차 없는 한국은 상당한 차이니까요.


그 다음 찾아본 것은 론니플래닛. 론니플래닛에 나와 있는 정보가 일본의 중국 여행 가이드북보다는 자세했어요. 그러나 이 역시 중국 여행 가이드북의 너무나 작은 부분이었어요. 위키피디아에서 중국 도시 정보를 읽어보는 것보다 조금 못한 수준이었어요. 대한민국은 아예 없으니 언급할 가치조차 없고, 그나마 있는 게 일본 가이드북과 서양 가이드북인데, 서양 가이드북인 론니플래닛이 그나마 조금 나았어요. 문제는 그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은 아니라는 것. 그냥 '있다'는 것에 의의를 둘 뿐, 그 이상의 가치는 없었어요.


결국 가이드북 찾는 것은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갔어요.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이상한 일을 겪었어요. 제가 항상 입고 다니는 외투의 허리띠 버클만 없어진 것이었어요. 천으로 된 허리띠가 끊어졌다면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런데 희안하게 금속으로 된 버클만 딱 떨어져서 없어졌어요. 이것은 버클 위, 아래가 다 끊어지지 않는 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어요. 허리띠가 끊어진 것인지 몇 번이고 확인해보았지만 허리띠는 멀쩡했어요. 뭔가 예감이 상당히 좋지 않았어요.


"야, 나 내일 너 못 만나. 중국 갈 거라서...미안."

"중국? 부럽다!"


5월 26일에 원래 다른 친구를 만나기로 했어요. 그런데 이날은 짐을 싸고 여권과 항공권도 찾아와야 했어요. 친구를 만날 수가 없었어요. 만나려고 하면 만날 수야 있겠지만, 그러려면 당장 오늘 짐을 다 싸고 다음날 점심에 친구를 만난 후, 바로 녹양역 가서 여권과 항공권을 찾아와야 했어요. 친구와 만나기 위해서는 최소 전철 타고 한 시간은 나가야했기 때문에 무리였어요.


"나도 중국 갈 거. 걔한테 말했어."

"응? 언제?"

"6월초."


저와 같이 여행하기로 한 친구가 6월초에 이 친구와 만나기로 했다고 했어요. 여행을 같이 다니기로 한 친구 (편의상 A)가 저와 만나고, 6월초에 이 친구 (편의상 B)를 만날 수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저와 A는 6월 16일까지 신장-위구르 지역을 같이 여행하기로 했거든요. 신장-위구르 지역은 무슨 동네 옆집 편의점도 아니고, 상해에서 기차로 38시간을 가야 하는 곳이에요. 두 약속을 동시에 이행할 방법은 분신술을 쓰지 않는 한 없었어요.


"야, B도 너 보러 중국 간다던데 어떻게 된 거?"

"아, 걔도 휴가 받아서 중국 온대."


여행 일정은 또 바뀌었어요. B가 중국으로 온다고 했기 때문에 여행 마지막 일정은 그 친구와 만날 수 있게 조정해야 했어요. B는 상하이는 가본 적이 있기 때문에 굳이 상해로 가지 않아도 된다고 했어요. 그렇다면 저와 A가 가는 노선에 B를 만날만한 장소를 하나 찾아야 했어요. B가 최대한 낼 수 있는 시간은 4일. 저 역시 신장-위구르 지역 이동 시간이 상당히 길다보니 어설프게 다른 곳을 갈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어디로 가야하나 머리를 굴려보았어요.


결국은 시안.


한국에서 직항 노선이 있고, 이것저것 보고 놀만한 곳은 시안이었어요. 제 계획에 시안은 원래 전혀 없었어요. 실크로드 마지막이 장안에서 끝난다고 해도 가고 싶지 않았어요. 장안에서 끝나든 말든 제 머리 속에서의 실크로드는 길게 봐주어야 신장-위구르 자치구역이었어요. 그만큼 원래 중국에 갈 생각이 전혀 없었으니까요. 순간의 충동으로 중국을 가기로 결정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신장-위구르 자치구역이었고, 실크로드 마지막 도시인 시안은 갈 마음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러나 B가 온다고 한 이상 시안을 추가해야 했어요.


이제 여행 경로는 '상해 - 우루무치 - 카슈가르 - 호탄 - 쿠처 - 시안 - 상해'가 되었어요.


보통 여행 다닐 때 여행 경로는 제가 거의 다 짜요. 큰 틀은 제가 잡고, 세세한 숙소 예약 같은 것은 같이 가는 사람이 하는 편이에요. 이번도 원래는 그렇게 하려고 했어요. 신장-위구르 지역을 가자고 한 것이 저였기 때문에 커다란 동선 및 주요 관광지 정도는 제가 정하고, 나머지 숙소 예약 같은 것은 친구가 하는 쪽으로 할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이동시간 계산을 위해 씨트립 Ctrip 에 접속했어요.


기차표 검색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기차를 타고 다녀야 하는데 기차표 검색이 만족스럽게 되지 않았어요. 중국어의 장벽은 인터넷 사전 및 번역기의 도움으로 어찌 넘길 수 있었어요. 문제는 제가 가려는 곳 기차표 대부분이 검색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중국어를 모르다보니 어디부터 잘못되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어요. 열차 시각 및 소요 시간을 하나도 알 수 없는 상황. 제대로 된 계획을 짤 수 없었어요.


"야, 검색 안 된다."

"괜찮아. 그건 내가 해도 돼. 나중에 너 상해 오면 호텔에서 여행 경로 짜게."


친구를 못 믿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평소라면 관광지 정보를 찾아보는 정도만 한국에서 해 가고, 세세한 여행 경로는 상하이 가서 친구와 짰을 거에요. 그러나 외투 허리띠 버클이 떨어져 사라진 것이 영 찝찝했어요. 이게 어지간해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이대로 가면 심히 골치아픈 문제와 맞닥뜨리게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어요. 정확히는 하루 전 - 신장-위구르 자치구역 여행을 결정한 이후부터 모든 게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느낌 속에 있었어요. 기껏 안산까지 갔더니 고려인 식당이 문을 열지 않아서 허탕치고 돌아왔고, 환전하러 명동 갔는데 수십 번 환승했던 그 경로에서 실수해서 4호선 상행선 종점을 가버렸고, 외투 허리띠 버클마저 사라져버렸어요. 불운과 실수가 이 정도 겹치면 기분이 안 좋을 수밖에 없어요. 오늘의 운세를 보면 '너는 오늘 죽지 않은 것을 감사해라'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재수없는 일의 연속.


"아, 지금 뭔가 찝찝하니까 여행 경로 좀 짜놔야돼."

"무슨 일 있었는데?"


친구에게 모든 일을 다 말하기는 귀찮아서 외투 허리띠 버클 이야기만 해 주었어요. 친구는 별 말 없이 기차 시각 및 소요 시간을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친구가 소요 시간을 알려주었고, 저는 그동안 여행 정보를 찾아보았어요. 그때 마침 다른 친구와 이야기하는데, 그 친구가 한때 자기가 투르판을 가보고 싶다고 말했어요. 투르판도 볼 것이 이것저것 있다는 것을 그 친구 덕택에 알게 되었어요. 여기에 친구가 우루무치 가는 길에 한 번은 꼭 쉬는 게 좋다고 강력히 주장해서 원래 계획에는 전혀 없던 투르판이 추가되었어요.


이렇게 해서 여행 경로는 아래와 같이 다시 바뀌었어요.


상하이 - 투르판 - 우루무치 - 카슈가르 - 호탄 - 쿠처 - 시안 - 상하이


A는 란저우를 못 가는 것이 못내 아쉬운 것 같았어요. 그렇지만 이미 저 정도 돌아보는 것도 널널한 일정은 아니었어요.


"어? 이거 될 일인가?"


여행 정보를 알아볼 때마다 예상 경비가 증가해나갔어요. 한 번 알아볼 때마다 얼마씩 늘어나고 있었어요. 차라리 안 알아보는 게 좋을 지경이었어요. 일단 이쪽을 제대로 다녀온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게다가 이동의 개념이 아예 다른 세상이었어요. 적당히 조금 간다는 개념이 아니라 열 시간, 스무 시간, 서른 시간 이렇게 이동하는 곳들이었어요. 이동 경로가 복잡해질 수록 여행 경비 및 시간 모두 증가했어요. 워낙 이동 거리가 길다 보니 발생하는 특이한 상황이었어요. 이동 시간이 열 시간 내외라면 야간 이동으로 숙박비를 절약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게 열 시간이 넘어가기 시작하면 앉아서 가기 힘들어져요. 그래서 침대칸을 예약하면 숙박비보다 더 비싸져요. 즉, 이건 초장거리 육로 이동들의 조합이다보니 여러 도시 많이 안 돌아다니는 것이 오히려 경비 절약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어요.


게다가 저와 친구 모두 입장료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어요. 쿠처에 가야 하는 이유인 천산신비대협곡의 입장료는 75위안이라고 했고, 투르판은 볼거리가 사방팔방 다 떨어져 있는데 입장료도 꼬박꼬박 다 받고 있었어요. 위안화 계산이 어려웠기 때문에 편의상 '1위안 = 200원보다 조금 적음'으로 계산하고 있었어요. 보통 30위안 정도 하는 것 같았는데, 이러면 얼추 5600원 정도였어요. 한 도시에서 두 곳만 가도 관람료로 11000원이 훅 날아가는 것이었어요.


제가 환전한 위안은 2800위안. 20일로 계산하면 하루 평균 140 위안을 사용할 수 있었어요. 도시간 이동 비용 및 숙박료가 1400위안을 차지한다고 했을 때, 남는 돈은 1400 위안. 하루 평균 쓸 수 있는 돈은 70위안 정도였어요. 그런데 중국도 이제 물가가 많이 올라서 식사 한 번 하는 데에 10 위안 이상은 든다는 말이 많았어요. 한 끼에 10위안 잡으면 하루 30위안. 남는 돈은 그러면 하루 평균 40위안. 하루 한 곳 볼 돈 뿐이었어요. 하루 두 곳만 보아도 당장 식사 한 끼를 굶어야 했어요. 이러면 음료수조차 사먹을 수 없었어요. 이것은 아무리 대학교 3학년때 친구와 고시원에서 살며 같이 '고난의 행군'을 했던 경험이 있다 해도 무리였어요. 일단 여름이기 때문에 음료수 비용이 꽤 나갈 것이 자명했거든요.


이건 정말 아니었어요. 2주일 여행에 2800 위안이면 하루 200 위안이니 낭비만 하지 않으면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겠지만, 이 여행은 3주 여행. 3주를 도시간 이동비 및 숙박비 포함해서 2800 위안에 다니는 것은 거지처럼 구걸여행 다니지 않는 한 답이 보이지 않았어요. 위안화가 남으면 한국 와서 환전하면 될 일. 그러나 현지에서 위안화가 부족하면 그것도 문제였어요. 친구에게 돈을 빌려서 다닌 후, 한국 돌아와서 친구에게 송금해주는 방법도 있었지만, 친구가 과연 제 여행 경비 부족분까지 다 해결할 여력이 될 지도 의문이었어요. 얼마가 부족할지 감도 안 오는 상황이었구요.


이렇게 된 이상 경비에 일정을 꾸겨넣는다!


일정에 경비를 맞추는 게 아니라 경비에 일정을 맞추는 상황. 이미 시작과 끝은 정해졌기 때문에 남은 카드라고는 동선을 최대한 단순화시키는 것이었어요. 한 도시에 오래 머무르면서 최대한 아끼고 버텨야만 했어요. 그리고 관람비를 줄이기 위해 관람지까지의 이동료 및 관람료가 많이 드는 곳은 모두 제외해야 했어요. 상해-투르판 표는 친구가 이미 구입한 상황. 침대칸을 2층, 3층으로 주고 1층은 없다고 해서 각각 10위안씩 웃돈을 주고 구했다고 했어요. 게다가 이제 이 구간 표는 취소도 불가능하다고 했어요.


그나마 얼마 없는 여행 정보를 다시 찬찬히 살펴보았어요. 제일 볼 것 없는데 돈 많이 들어가는 도시는...


투르판이었다.


반응형